기존의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사실주의 화법과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젊은 나이에 인정을 받고, 지원을 받지만, 파란만장한 삶과 사건들로 도망을 다니다가 결국에는 죽음에 이르게 된 한 천재 화가의 이야기...
방송을 보다보면 신앙이 깊은 사람같기도 하고, 망나니같기도 하고.. 참 모호한듯 한데..
무엇보다 타협보다는 자신이 추구하고자것에 대해서는 타협없이 자신의 의지대로 밀어붙이는 모습이 참 대단한듯...
그리고 죽음이후에 잊어졌다가, 20세기 이후에 다시 거장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카라바조의 삶을 그린 영화도 있다고...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Main.do?movieId=26797
- NHK스페셜이 천재화가의 삶으로 제작한 세계 걸작화가들의 삶과 작품을 다룬 시리즈 다큐멘터리로 작가들의 작품을 재현하고 그림으로 표현되기까지의 회화기법이나 삶의 추적을 담아 입체적인 작가이해를 도모하는 수작.
▶ 주요내용
이탈리아 바로크 미술의 선구자이자 사실주의 화법의 개척자 카라바조는 그림 뿐 아니라 그의 드라마틱한 삶이 주목받는 화가이다.
당시의 사회규범이나 권위적인 질서 체계에서 도전적이고 반항적이었던 기질과 태도 때문에 사회적인 문제생활을 했던 그는 언제나 죄와 용서, 그리고 구원의 주제를 강렬한 작품으로 표현했던 교회성화 작가였다.
‘카드 사기꾼’과 ‘악사들’이란 작품에서 그의 자유롭고 분방한 기질과 감각을 보여 일약 스타화가로 떠오르지만 그런 기질로 인하여 항상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그 가 그린 성화는 이런 문제의식으로 인하여 자신이 교회로부터 파문을 당하고 사형언도까지 받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로레토의 성모’에서 마리아의 모델로 실제 창녀를 선택하였고 ‘황홀경에 빠진 막달라 마리아’는 매춘부 막달라 마리아의 황홀경을 묘사함으로써 로마교회와 대립한다.
자신의 이런 반항적인 문제 기질을 의식한 그는 죄의 참회와 용서, 그리고 구원의 주제를 강렬한 색채와 조명으로 표현하고 있다.
‘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윗’에서 자신을 머리가 잘린 골리앗으로 묘사하며 섬뜩한 죽음을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같은 작품에서 다윗의 칼에 ‘겸손은 교만을 이긴다’ 경구를 넣어 자신의 회한과 구원의 열망을 갈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 로레토의 성모’에서 그는 마리아를 비추는 빛, 순례자를 비추는 빛을 구별하고 그들의 존재에서 구원을 바라보는 열정을 성스럽게 묘사한다. 즉, 하나의 광원에서 나온 빛이 아니라 다양한 광원에서 나온 빛을 통하여 다양한 존재와 구원의 차원을 보여주고 있는 것.
이러한 주제의식의 회화적인 표현을 실제 모델들을 동원하고 조명시설을 설치하여 재구성하여 그만의 독특한 ‘추상적 명암법’을 밝혀본다.
그의 삶은 불가사의하고 매혹적이며 위험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는 1600년 로마 미술계에 갑자기 등단했다. 그 이후 그는 어떠한 수입이나 후원자도 없었으나 그는 극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초기에 발표된 그에 관한 비평은 1604년까 지 거슬러 올라가며 그 앞의 3년간의 삶을 묘사하고 있는데 그 비평은 이렇게 말한다. "2주간의 작업 후 그는 데리고 다니는 하인과 함께 한 두 달간 칼을 들고 테니스장 여기저기를 으스대며 다녔고 싸움이나 논쟁에 개입되기도 하였다." [1] 그러다가 1606년 5월 29일 테니스 경기도중 말다툼 끝에 상대인 젊은 남자를 살해하고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그는 현상금이 걸린 채 로마를 도망쳐 나왔다. 이후에도 1608년 몰타에서 말다툼에, 1609년에 나폴리에서 또 다른 말다툼에 개입되었다. 이런 요인들로 인해 정체를 알 수 없는 적이 그를 고의로 살해한다. 다음 해인 1610년에 그의 10여 년간의 활동을 뒤로한 채 포르토 에콜레(Porto Ecole)에서 사망하였다.
그는 극적인 조명과 사실적인 묘사로 바로크 양식의 탄생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초기에 사실적이고 파격적인 주제들로 인해 비난과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으나 점차 인정받게 되어 유명해진다. 로마에서 오랫동안 활동하며 미술의 흐름을 급격히 변화시켰다.
사망 후 오랫동안 잊혀졌다가 20세기에 들어서 재발견되어 거장으로 재평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