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쓴다는것이 단순하게 글을 쓴다는것의 차원을 넘어서서...
나 자신을 돌이켜보고, 내 속에 잠재되어 있는 의식을 깨우치는것이라고,
생각이 들게 만들어 주었던 책...
글을 쓰기 위해 무언가를 우리 안에 채워 넣을 필요는 없다. 대신 글쓰기를 방해하는 요소들을 덜어내고 비워내면 자연스럽게 창조성과 만난다고 강조한다. 식탁에 묻은 커피 얼룩에까지 "그래!"하고 긍정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훌륭한 글쓰기 자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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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탈리 골드버그의 버리는 글쓰기 도서 서평, 글을 써서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방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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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만에 두번째 책이 새롭게 나왔네요~
정호의 정리
뼛속까지 내려가서 쓰라. 자기 마음의 본질적인 외침을 적으라.읽는 데서 끝내지 말라. 써라. 그리고 자신을 믿어라. 자신의 요구가 무엇인지 배우라.
글쓰기를 위한 연장을 신중하게 선택하되, 글을 쓰기 위해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보다 문구점에서 헤매는 시간이 더 길어질 정도로 장비를 구하는 데 겁을 먹지는 말라.
손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당신은 당신 인생의 모든 면모를 기록하고 심장부로 뚫고 들어가도록 손을 계속 움직여야 한다.
이러한 치열한 글쓰기 훈련에 있어 가장 기본은 제한된 시간 동안 글을 써 보는 것이다. 시간의 길이는 큰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글쓰기에 할애한 시간이 얼마이든 간에 그 시간 동안만큼은 글쓰기로만 완전하게 채우도록 집중하는 일이다.
마음을 통제하지 말라. 마음 가는대로 내버려 두어라. 생각하려 들지 말라.
장거리 육상선수들이 어느 시점부터 달리기가 힘들고 지겨워져서 내딛는 한 발 한 발에 저항심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달리는 행위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원하든 원하지 않든 연습을 하게 된다. 가만히 앉아서 눈부신 영감이 솟아날 때와 계속 달리고 싶게 만드는 깊은 열망이 찾아올 때를 기다리지 않는다. 더구나 열망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게을리 하거나 회피하는 사람에게 절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규칙적으로 달리기 훈련을 하게 되면, 이 훈련 자체가 저항심을 잘라내고 무시해 버릴 수 있는 또 다른 훈련이 된다. 당신은 계속 달린다. 이렇게 한참 동안 달리다 보면 당신은 어느새 달리기를 사랑하게 된다. 목적지가 보이게 되면 절대 중간에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골인을 하고 난 후에는 다시 또 달려 보고 싶다는 갈증에 사로잡힌다.
이것이 바로 글쓰기다. 일단 글쓰기에 빠지게 되면, 왜 그토록 오랜 시간을 방황하고 이제야 책상에 앉게 되었는지 의아해질지도 모른다. 글쓰기도 훈련을 통해서만 실력을 쌓을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깊은 자아를 믿게 되면, 이제 그곳에는 글쓰기를 회피하라는 목소리가 설 자리는 자연스럽게 없어진다.
목적지가 없어도 많은 글을 쓰겠다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라. 미래의 위대한 소설가가 되리라 결심을 했으면서도 정작 단 한 줄도 쓰지 못한 학생들을 나는 너무나 많이 보아왔다. 만약 당신이 책상에 앉을 때마다 무언가 위대한 작품을 쓰리라 기대하는 사람이라면, 대개 커다란 절망으로 끝나기 쉽다는 걸 명심하라. 이런 기대감이 글쓰기를 포기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나는 한 달에 노트 하나를 채우는 것으로 내 임무를 다한다.
지금 당장 자리에 앉으라. 지금 당신의 마음이 달려가는 곳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그대로 적어 내려가라. 제발 어떤 기준에 의해 글을 조절하지는 말라. 무엇이 다가오더라도 지금 이 순간의 것을 잡아라. 손을 멈추지 말고 계속 쓰기만 하라.
빠르고 늦은 것은 중요하지 않다. 계속 훈련을 하라.
평소 쓰고 싶은 주제가 떠오를 때마다 아이디어를 적어 두는 노트를 따로 마련해 두자. 단 한 줄짜리 짧은 글일 수도 있다.
글쓰기 작업에 들어가는 자신만의 방법을 만들어 내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 이 방법을 찾아 내지 못한다면 설거지가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또 무엇이든 글을 쓰지 못하게 만드는 핑계를 잡아 옆길로 새게 될지도 모른다. 결국 글을 쓰는 사람은 입을 굳게 다물고 앉아서 쓸 수밖에 없다. 이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작업이다. 글쓰기 작업은 아주 단순하고, 근본적이며, 엄숙한 일이다. 인간의 마음은 간사해서 고독한 글쓰기에 전념하기보다 친구와 멋진 식당에 앉아 인간의 인내심에 대해 토론하거나 글쓰기의 고통을 상담하고 치료해 줄 상대를 찾아가는데 더욱 마음이 동할 수도 있다. 이렇게 우리는 스스로 지극히 단순한 임무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려는 경향이 있다.
글을 쓸 때는 쓰기만 하라. 열등감과 자책감으로 중무장한 채 자신과 피 흘리는 싸움은 하지 말라.
밑도 끝도 없는 죄의식과 회피, 무력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쓸데없는 시간 낭비다.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있다면, 어떤 글이든 언제든지 쓰겠다는 자세가 중요하다.
글쓰기는 글쓰기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 자신의 바깥에서는 어떤 배움의 길도 없다. 당신이 아무리 훌륭한 대가 열 사람을 만난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글쓰기를 배우지 못한다. 비만으로 고민하던 사람이 운동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필요한 정보를 충족시킬 책을 구하러 서점을 찾았다. 하지만 운동법이 적힌 책을 읽는 것만으로는 절대 살을 뺄 수 없는 법이다. 체중을 줄이기 위해서는 실제적으로 운동을 해야만 한다.
시의 온기에서는 발을 떼고 시에 대하여 말하는 데만 열을 올리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자. 시에 머물 수 있도록 가까이 다가가라. 작품 그 자체 속으로 들어가라. 그것이 시를 쓰는 것을 배우는 방법이다.
진짜 인생은 글 쓰는 행위에 있는 것이지 같은 작품을 몇 년 동안 되풀이해서 읽고 또 읽는 것에 있지 않다.
자신의 생각대로 글을 조절하겠다는 마음을 버리고 그때그때 솟아 나오는 감정들을 글로 써 내려가라. 아주 간단한 말로 단순하게 시작하고, 당신 속에 깃들여 있는 것을 그대로 표현하도록 애써라.
엄청난 분량의 글을 쓰겠다는 결심을 하기 전에 먼저 자신에게 여유를 주자. 자신의 목소리가 지닌 힘을 믿는 법을 배우자. 자연히 이런 과정에서 우리는 방향 설정을 하고 목적지가 어딘지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그 목적지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다른 장소에서 나타날지도 모른다. 글쓰기는 햄버거가 아니다. 요리는 천천히 익어 가고 있으며, 시작 단계에 있는 당신은 그 음식이 구이가 될지, 바베큐가 될지, 국이 될지 아직 모르는 것이다.
가끔 작가들 중에서 술에 의지해 생활하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나는 과연 그들이 작가이기 때문에 술을 마시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그보다 이유야 어떻든 마땅히 글을 써야 하는 순간에 글을 쓰지 않기 때문에, 또는 글 쓰는 데 문제가 생길 때 더 많은 술을 마시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결국 그것도 문제와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 아닌 일종의 회피이고 게으름인 것이다. 글쓰기에 대한 강박증은 직접 글을 써서 풀어내야 한다. 쓸데없이 술에 취하는 엉뚱한 방식으로 풀려고 하지 말라.
당신이 소설 한 권을 채울 만한 파란만장한 경험을 했다 하더라도 그 사실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여기에 당신 마음에서 나오는 열과 에너지를 첨가시켜야 한다.
삶의 모든 세부 사항들을 조심스럽게 다루고 다정하게 접촉하라. 당신을 둘러싼 것에 진정한 관심을 기울이라. 강에 대해 쓰고 있다면 그 강에 온몸을 적시라. 그 강이 탁한 황토 빛으로 둔하게 흐른다고 적는다면 당신의 몸이 그 탁한 느낌을 그대로 느껴야 한다. 글쓰기에 깊이 빠져들면 쓰는 사람과 글이 분리되지 않는다.
글을 쓸 때 당신은 “오, 난 내 인생이 싫어. 서울이 아니라 부산에서 태어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런 식의 생각으로 에너지를 분산시키지 말라. 그저 당신의 상황과 진실을 적어 내려가라.
당신이 만약 글을 쓰는 중간 중간 자주 시계를 보는 사람이라면, “나는 공책 다섯 장이 다 채워질 때까지, 케이크가 완전히 구워질 때까지 계속 글을 쓰겠다.”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라. 열을 가하다 중단한다면 그것은 죽도 밥도 되지 않는다.
만약 당신이 진정으로 불후의 명작을 완성시키고 싶다면 위스키를 마셔서는 안 된다. 대신 셰익스피어와 홉킨스, 밀레이 이들의 글을 소리 내어 읽고 또 읽어 당신 몸을 그들의 운율에 맞춰 춤추게 만들어야 한다.
좋은 작가가 되려면 기본적으로 다음 세 가지가 필요하다. 많이 읽고, 열심히 들어 주고, 많이 써 보는 것이다. 그리고 너무 많이 생각하지는 말아야 한다. 그냥 단어와 음향과 색깔을 통해 감각의 열기 속으로 뛰어 들어가라. 그리고 그 살아 있는 느낌이 종이 위에 생생히 옮겨지도록 계속 손을 움직이라.
안개 속을 걷는 사람은 안개에 젖는다. 그러니 그저 듣고, 읽고, 쓰라. 당신은 아주 조금씩 당신이 말하고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 당신만의 목소리를 통해 흘러나오는 것을 들을 수 있게 된다. 너무 조바심을 내지 말고 그 자연스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올 때가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라. 그냥 흐르는 대로 운율에 맞춰 노래하고 쓰라.
가끔 우리는 쓴 글을 읽고, “모르겠어요. 너무 어려워요.” 라든가 “너무 서술이 많아서, 내 머리로는 따라가기가 벅차.”라는 말을 듣게 되기도 한다. 이런 경우에 글을 읽은 독자에게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글쓰기 방법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일은 작가가 자신의 감정에 너무 빠져 버려 원래 하고자 하던 이야기의 방향을 망각하고 본래의 줄거리에서 너무 멀어져 버렸을 대에 일어난다.
또한 작가 스스로 글의 방향을 명확하게 밝히지 않은 채 글을 써 내려가거나, 다루고 있는 글의 소재에 밀착되어 있지 않은 경우도 문제가 된다. 이런 부분이 글의 초점을 흐리게 만들고 결국에는 독자들의 흥미를 잃게 만든다. 아무리 작은 부분이라도 윤곽이 흐릿한 부분이 있다면 독자들로 하여금 그 작품이 아닌 다른 곳으로 정신이 분산되도록 틈새를 제공하는 것이다.
문학의 책임은 사람들을 깨어 있게 하고, 현재에 충실하게 하고, 살아 숨쉬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가 방황한다면, 독자 역시 방황하게 된다.
그들도 훌륭하고 나도 훌륭하다고 말하자. 이 말은 많은 가능성을 만들어 준다.
예술가는 외롭고 고통 받는 존재라는 생각 같은 것은 떨쳐 버려라. 우리 모두는 어차피 인간이기 때문에 누구나 고통스럽다. 그것을 자신만이 고통스런 존재로 생각해서 더 어렵게 할 이유는 없다.
길을 잃어버릴까 하는 두려움이 바로 그녀가 항상 길을 잃어버리는 이유인 것이다.
아침 10시에 글을 쓰겠다고 작정했다면, 그 주어진 시간에 압력을 가해야 한다. 1시간 또는 20분, 시간의 길이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 시간을 의미 있고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손을 멈추지 말고 모든 것을, 정맥에서부터 곧장 펜을 통해 종이 위에 토해 놓게 만들라. 멈추지 말라. 망설이지 말라. 백일몽을 꾸지 말라. 제한된 시간이 끝날 때까지 쓰라.
자신이 만들어낸 질문에는 스스로 대답도 할 수 있어야 한다.
혹시 내가 만든 질문에 답을 못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은 떨쳐버리라. 자신 속에 무한한 자원이 숨어 있음을 알게 되는 그런 날은 찾아온다. 글쓰기는 안개에 싸여 있는 마음에 불을 태우는 행위이다. 종이 위에 안개를 옮겨 놓지 말라. 설사 확실하지 않을 때라도 자신이 그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표현하라. 이런 훈련은 결국 확실치 않았던 부분을 확실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거의 완벽에 가까운 공간을 만들어 놓고서도 작업을 하지 못하는 친구를 여럿 보아 왔다. 그들도 차라리 부엌 식탁에 앉아서 글 쓰는 것이 훨씬 편하다고 생각한다. 글 쓰는 작업 자체가 우리의 불완전성을 자꾸 들추어내게 마련인데 더 이상 손 볼 데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공간에 앉아서 이 사실을 잊으려 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나는 글쓰기 공간은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오히려 약간 지저분하고 정리되어 있지 않은 공간을 볼 때 그 공간의 주인인 작가는 비옥하고 아주 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표시로 여긴다. 완벽하게 꾸며 놓은 작업실에 갈 때마다 나는 어김없이 그 곳의 주인은 자신의 마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내적 조절력의 필요성을 외적 환경으로 반영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그들은 창조성은 완전히 그 반대편, 조절력을 포기하는 데서 나오는 것임을 모르는 것이다.
결국, 세상에 완벽은 없다. 진정 글을 쓰고 싶다면 모든 것을 잘라내고 쓸 수밖에 없다. 글을 쓰기 좋은 완벽한 환경도, 습작 노트도, 펜도, 책상도 없다면, 자신을 유연하게 훈련시킬 수밖에 없다. 아무리 낯선 환경 속에서도, 완전히 다른 장소에서도, 글쓰기 훈련은 계속 되어야 한다.
심지어 당신이 충분히 자신을 밀고 나갔고 철저하게 에고가 깨졌다고 느낄 때조차도 조금 더 앞으로 밀고 나가라. 중간에서 멈추지 말라. 이 순간은 다시는 같은 방식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니 나중으로 미룬다면 지금 작품을 끝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것은 순전히 내 경험에서 우러나온 충고이다. 당신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언제나 더 멀리 계속 밀고 나가야 한다.
의심과 의혹은 고문이다. 우리가 무언가에 전적으로 매달려 심혈을 기울였다면, 그 일은 일을 그만두어야 할 때가 언제인지도 우리에게 분명하게 알려 준다. 이것은 굽히지 않는 불굴의 정신을 끊임없이 시험하는 것이다. 때로 나는 의혹에 찬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잠시 빗나갈 때가 있다. “세일하는 가게에나 가 볼까? 다른 작가들에게 카푸치노를 마시며 글을 쓰게 하는 카페나 하나 열어 볼까? 아니면 결혼해서 아기나 낳으면 좋을 텐데....”
이런 의혹에 귀 기울이지 말라. 의혹이 이끄는 곳에 가보았자 고통과 부정적인 마음만 만나게 될 뿐이다. 당신은 열심히 글을 쓰려고 하는데 당신 글의 문제점만 집어내는 비평가에게도 마찬가지다. 신경 쓸 것 없다. 거기에는 당신이 글을 쓰는데 도움이 될 만한 게 하나도 없다. 대신 자신의 글쓰기를 너그럽게 받아들이라. 자신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고 인내심과 유머 감각을 키우라. 의심이라는 생쥐에게 먹히지 말라. 훈련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믿음을 일지 말고 저 너머에 있는 광활한 인생을 바라보라.
“나는 왜 글을 쓰는가?” 아주 좋은 질문이다. 우리는 이따금 자신에게 물어 보아야 한다. 대답을 하지 못하면 글쓰기를 중단하고, 시간이 지나면 그 질문 안에 모든 대답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왜 나는 글을 쓰는가? 또는 나는 왜 글을 쓰고 싶어 하는가? 라고 묻되, 깊이 생각하지는 말라. 그 대답은 펜을 잡고, 종이 위에 분명하게, 단정적으로 진술로 하라. 모든 진술이 100% 진실일 필요는 없으며 하나의 문장이 나머지 문장들과 모순 되어도 상관없다. 아니, 거짓말을 꾸며서라도 계속 끌고 가보라. 만약 왜 글을 쓰려는 것인지 모른 다해도 글을 쓰는 이유를 아는 것처럼 대답해보라.
글쓰기 훈련은 의무적인 것이 아니며,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길속으로 뛰어든다는 점이 다른 훈련과 다르다. “그래, 나는 오늘 한 시간 동안 글을 썼지. 어제도 그제도 한 시간씩 훈련했어.” 이렇게 그냥 시간만 채우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라. 이걸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시간 속에서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글을 쓰기 위해 자리에 앉을 때는 목숨 전체를 기꺼이 그 글속에 집어넣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기계적으로 펜을 끄적거리면서 언제 시간이 끝날까 자구 시계만 쳐다보게 될 것이다.
“매일 글을 쓰라.” 이 규칙대로 실행하는데도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것은 의무감으로 했기 때문이다. 규칙만 따지는 사람들이 빠지는 함정이다. 마음은 다른 곳에 두고 단지 규칙에 맞추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쏟는 것처럼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는 없다. 만약 당신의 기본자세가 이렇다면 당장 글쓰기를 중단하라. 일주일, 멀게는 1년이 되어도 좋으니 글쓰기에서 떨어져 있으라.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 갈증을 느껴, 말하지 않으면 병이 날 벗 같을 때까지 기다리라. 그런 다음 당신의 원래 자리로 돌아가라.
나는 매주 작업 스케줄에 변화를 주었다. 낮과 밤 모두 시도해 보았다. 완벽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중요한 것은 수많은 전술의 변화와 상관없이 무슨 일이 있어도 글쓰기와의 관계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었다.
글쓰기는 숨을 쉬는 것과 똑같다. 아무리 급하고 중요한 일이 있어도 숨쉬기를 잊어버릴 순 없다. 정원을 손질해야 하고, 지하철을 타야하고, 아이들을 가르쳐야 하는 소중한 일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이것이 글쓰기의 기본이다.
가장 힘든 싸움은 글 쓰는 행위가 아니었어요. 과연 내가 성공할 수 있을까, 실패하거나 그저 한 번 시도해 보는 단순한 활동으로 끝이 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과 싸우는 게 제일 힘들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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