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꼭 한번 읽고 싶었던 책인데, 오디오북을 구해서 읽어봤다. 2번인가 3번인가를 읽으려고 시도를 했는데, 책의 내용이 간단한 걷기에 대한 예찬이라기 보다는 저자의 철학적인 내용, 생각 등을 표현한 책이라서 그런지 도저히 귀에 들어오지가 않는다.
오디오북의 한계라고나 할까... 이런 책들은 아무 마음편할때, 푹신한 쇼파나 오솔길에 있는 벤치에 앉아서 밑줄을 쳐가면서 한구절 한구절을 음미해야하는데, 오디오북은 그것이 안된다. 다른 소설이나 여행기같은 장르야 오디오북이 더 괜찮은듯 한데... 이런 장르는 영 아닌듯... 암튼 나중에 다시 책을 구매해서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어야겠다.
<도서 정보>제 목 : 걷기 예찬(원제 Eloge de la marche)
저 자 : 다비드 르 브르통 저/김화영 역
출판사 : 현대문학
구매일 :
일 독 : 2005/1/16
재 독 :
정 리 :
<이것만은 꼭>
나중에 책으로 사서 천천히 음미하면서 다시 읽자!
<미디어 리뷰>
저자 : 다비드 르 브르통(David Le Breton) |
현재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학의 사회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오래 전부터 '몸'의 문제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 『몸과 사회』『몸과 현대성의 인류학』『위험의 열정』『살아 있는 살』『고통의 인류학』『몸의 사회학』『몸이여 안녕』 등 수많은 저서를 냈다. |
걷기에 대한 여느 말랑말랑 수필집이 아니다. 무척이나 철학적이고 진지하며 또 깊다. 사회학전공 교수인 저자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것, 가져야 하는 것들을 '걷기'라는 수단을 통해 설득하고 있다. 걷기라는 행위가 의미하는 것이 이렇게나 넓고 또 다양하였을 줄이야. 모든 책들이 그렇겠지만, 이 책 역시 우리가 가까이서 흔히 보던 것들에 대한 시각을 넓히고 또 변화시킨다.
■ 걷기의 즐거움, 몸의 자유로운 감각에로의 초대
《걷기예찬》은 제어장치 없이 돌아가고 있는 현대사회의 속도에 제동을 걸고, 몸의 의미를 본래대로 되돌려놓고 있는 책이다. 다른 '걷기'에 관한 책들과 구별되는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걷기를 '생명의 예찬인 동시에 깊은 인식의 예찬'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초고속광통신이란 신조어를 만들어낸 현대사회 속에서 몸이란 그러한 장치들을 보조하는 수단, 혹은 군더더기로 전락하고 있다. 누군가 사방을 두리번거리면서 대낮의 도심 속을 느긋하게 걸어간다면 그는 할일 없는 사람, 팔자 좋은 사람이란 오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걷기'만큼 삶의 불안과 고민을 해소하고 정신적으로 평온함을 주는 대체물도 없다. 한걸음씩 내딛는 순간에 느껴지는 몸의 육체적인 감각을 통해서 정신은 더 넓은 세계로 걸어나간다.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로 시작되고 있는 서두는 걷기에 대한 저자의 철학을 잘 집약하고 있다. 이 책에서 걷는다는 것은 몸으로 걷는다는 것을 뜻하며, 몸은 정신과 합일된 몸을 지칭하고 있다. 때문에 문득문득 보여주고 있는 동양적인 존재론이 낯설지 않다. 영혼의 구원에 가까운 길 떠남을 저자는 다음처럼 적고 있다. '길은 구체적인 걷기 체험을 통해서, 때로는 그 혹독한 고통을 통해서, 근원적인 것의 중요함을 일깨움으로써, 인간으로 하여금 고통스런 개인적 역사와 인연을 끊어버리고 쳇바퀴 도는 것 같은 일상의 길에서 멀리 떨어진 내면의 지름길을 열도록 해준다.'
우리의 생활 터전이 도시화될수록 개인은, 몸은 소외된다. 지금 당장 문을 열고 거리로 나서보라. 끊임없이 밀리는 자동차와 사람들, 그리고 온갖 통제할 수 없는 소음들. 보통의 경우, 걷기란 일에 필요한 약속시간을 맞추기 위한 걷기, 즉 노동의 연장선일 따름이다. 게다가 걷다가 지쳐도 마땅히 앉을 곳이 없는 비인간적인 길이 대부분이다. 때문에 조용히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고 길을 나서는 행위는 '저항'내지는 '모험'에 가까운 것이 되었다. 즉, 걷기란 '미친 듯한 리듬을 타고 돌아가는' 현대성에 대한 도전이며, 개인적 존재의 확인인 동시에 '승리'의 보증이 된다.
저자는 '몸'과 '걷기'의 중요성과 행복을 강조하고 있지만, 걷기의 즐거움 못지않게 읽기의 즐거움에도 감각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 깊은 인식이 배어있는 행간,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초대하고 있는 다양한 텍스트는 예사로운 에세이를 넘어서게 만든다. 우리는 이 책의 페이지들을 산책하면서 장 자크 루소, 피에르 상소, 랭보, 패트릭 리 퍼모, 스티븐슨, 그리고 일본 하이쿠의 대가 바쇼 등, 훌륭한 여행가들을 만나 한동안 길동무할 수 있을 것이다.
<책속으로>
길을 걷는 것은 때로 잊었던 기억을 다시 찾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리저리 걷다보면 자신에 대하여 깊이 생각할 여우가 생기게 되기 때문만은 아니라 걷는 것에 의해서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는 길이 트이고 추억들이 해방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걷는 것은 죽음, 향수, 슬픔과 그리 멀지 않다.(피에스 상소 - 풍경의 변주)--- p.255 |
걷는다는 것은 지극히 본질적인 것에만 이 세계를 사용한다는 것을 뜻한다. 가지고 가는 짐은 얼마 안 되는 옷가지, 그릇, 추위에 얼어 죽지 않을 정도의 땔감, 방향을 가늠하는 도구, 양식, 혹은 무기, 그리고 물론 약간의 책 등 가장 기초적인 것으로 제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이상의 군더더기는 괴로움과 땀과 짜증을 가져올 뿐이다. 걷는 것은 헐벗음의 훈련이다. 걷기는 인간을 세계와 정대면하게 만든다. 소로는 산책 sauntering 이라는 말의 어원을 근거로 걷는 기술은 상징적으로 성스러운 땅에 도달하자는 데 그 목적이 있으며 길의 자력에 발을 맡기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마치 강물이 구불구불 흘러가긴 하지만 그렇게 흐르는 동안 줄곧 고집스럽게 바다로 가는 가장 짧은 지름길을 찾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걷기는 시선을 그 본래의 조건에서 해방시켜 공간 속에서 뿐만 아니라 인간의 내면 속으로 난 길을 찾아가게 한다. 걷는 사람은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고 모든 것과 다 손잡을 수 있는 마음으로 세상의 구불구불한 길을, 그리고 자기 자신의 내면의 길을 더듬어 간다. 외면의 지리학의 내면의 지리학과 하나가 되면서 우리가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을 평범한 사회적 제약으로부터 해방시킨다--- pp.250-251 |
지구는 둥글다. 그러므로 그 지구를 태연한 마음으로 한 바퀴 돌고나면 우리는 어느 날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다. 그리하여 또 다른 여행의 준비를 할 것이다. 그토록 많은 길들, 마을들, 도시들, 산과 숲들, 바다와 사막들이 있는 한 그곳에 이르고 그곳을 느끼고 그곳에 도달한 기쁨 속에서 우리의 기억을 껴안기 위한 그토록 많은 코스들이 또한 열려 있는 것이다. 오솔길, 땅, 모래, 바닷가, 심지어 진흙탕이나 바위까지도 우리의 몸과 어울리고 존재한다는 희열에 어울리는 모습으로 존재한다.
여기 혹은 저기에 존재한다는 것은 실처럼 뻗어간 길, 고저장단으로 변화하는 곡선의 한 과정에 불과하다. 사실 걷는 사람은 공간이 아니라 시간 속에다가 거처를 정한다.
내 가슴은 나무들 속에서 수런거리는 바람 소리에 전율한다. 어제까지만 해도 지리멸렬한 삶에 지쳐있던 내가 돌연 그 소리들을 통해서 내 힘과 정신성을 발견하는 것이다. 여러 가지 소리들이 침묵의 한가운데로 흐르지만 그 침묵의 배열과 질서를 어지럽히지 않는다. 오히려 때로는 그 소리들이 침묵의 존재를 드러내주고 처음에는 알아차리지 못했던 어떤 장소의 청각적 질감에 주의를 기울이게 만들어준다. 침묵은 감각의 한 양식이며 개인을 사로잡는 어떤 감정이다.
걷기는 세계를 느끼는 관능에로의 초대다. 걷는다는 것은 세계를 온전하게 경험한다는 것이다. 이때 경험의 주도권은 인간에게 돌아온다. 기차나 자동차는 육체의 수동성과 세계를 멀리하는 길만 가르쳐주지만, 그와 달리 걷기는 눈의 활동만을 부추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목적 없이 그냥 걷는다...(중략)... 아니 길이 거기에 있기에 걷는다.
걷는다는 것은 잠시 동안 혹은 오랫동안 자신의 몸으로 사는 것이다. 숲이나 길, 혹은 오솔길에 몸을 맡기고 걷는다고 해서 무질서한 세상이 지워주는 늘어만 가는 의무들을 면제받는 것은 아니지만 그 덕분에 숨을 가다듬고 전신의 감각들을 예리하게 갈고 호기심을 새로이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걷는다는 것은 대개 자신을 한곳에 집중하기 위하여 에돌아가는 것을 뜻한다.
걷는 것은 자신을 세계로 열어놓는 것이다.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
여행의 단초에는 우선 어떤 꿈, 계획, 의도가 있기 마련이다. 상상을 채찍질하는 그 어떤 이름들, 길이, 숲이, 사막이 부르는 소리, 일상에서 벗어나 몇 시간 혹은 몇 년 동안 슬쩍 빠져나가고 싶은 마음, 혹은 어떤 지역을 답사하여 더 잘 알고싶은 욕심, 서로 떨어져 있는 공간의 두 지점을 이어보고 싶은 욕망, 혹은 순수한 유랑의 선택.. 세상의 아득한 저 끝에 대한 꿈은 언제나 사납고 매혹적인 법, 그리하여 그 세상 끝에 이르러 허리 굽혀 들여다보면 바닥없는 심연이 보일 것 같고 몸을 일으켜 세우면 거대한 벽이 가로막을 것만 같은 느낌은 바로 그 꿈에서 자양을 얻어 생겨난 무의식속의 풍경이라고 하겠다. ------ 걷는다는 것은 침묵을 횡단하는 것이며 주위에서 울려오는 소리들을 음미하고 즐기는 것이다.. 말하고 있잖아, 천사들의 언어인 침묵으로 말하고 있을 뿐이지, 그리고는 갑자기 성이 난 듯 이렇게 내뱉았다. 무슨 말을 했으면 좋겠어? 야 정말 아름답구나 하고? 마음에 날개가 돋아나서 날아가고 싶어졌다고? 이제 천국으로 가는 길로 들어섰다고? 말, 그리고 또 말! 입을 다물어야지 출처 :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