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iN '에 해당되는 글 137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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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걸어서 히말라야 : 하늘에 주소를 둔 사람들
  3. 이문구 - 관촌수필 - 행운유수(行雲流水)
  4. 내 인생 최고의 멘토
  5.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 1 : 아프리카, 중동, 중앙아시아
  6.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7. 한비야의 중국견문록

성공한 리더들의 특별한 말 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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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리더들의 간략한 소개와 그들이 남긴 위대한 명언들을 모아둔 책.
이런책은 밑줄을 쳐가면서 꼭꼭 씹어먹어야 하는데, 그런대로 오디오북으로 듣는것도 괜찮은듯...
여러사람이 소개되었지만 패튼장군이 남긴 말들이 내 가슴에 비수를 꼿는다.

이기려면 한 가지를 명심해야 한다. 마음이 몸을 움직이게 해야지 몸이 마음을 명령하게 하면 이길 수 없다.

항상 머리속에, 마음속에는 많은 계획을 가지고 살지만, 거의 대부분의 육체가 원하는 본능에 따라서 살아가고 있는듯하다.
술 안마시고, 담배안피우고, 아침에 일찍일어나서 운동도 하고, 열심히 일하고... 이렇게 생각은 하지만...
한잔만이라는 생각이 들고, 한대만이라는 생각이 들고, 피곤하고, 추워서 늦게 일어나고, 귀찮아서 운동은 미루고, 쓸데없는 일들에 빠져서 막상 해야 할 일에는 신경을 못쓰고...
패튼장군의 말씀을 항상 기억하고, 실천하도록 해야겠다.
내가 바라는데로, 내가 진정 원하는데로 하면서 살아야겠다. 그리고 절대 나를 속이거나 기만하거나, 합리화하지 말자!

맨밑의 글이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이책의 전문이다.



<도서 정보>제   목 : 성공한 리더들의 특별한 말 말 말
저   자 : 페기 앤더슨 저/남경태 역
출판사 : 위즈덤하우스
출판일 : 2001년 3월
매일 :
일   독 : 2005/12/8
재   독 :
정   리 :

<이것만은 꼭>
몸이 마음을 지배하게 하지 말자! 내 마음이 내 몸을 지배하자!


<미디어 리뷰>
다른 사람보다 미래를 봐야만 살아남고, 스피드가 최고의 미덕이 되어버린 시대에 진정한 성공을 이루어낸 사람들이 남긴 말들이야 말로 삶의 진리를 깨닫게 해주는 최고의 교과서이다. 세계를 움직인 사람들이 남긴 말에는 마음을 꿰뚫는 통찰력과 혜안이 있다. 삶의 경영하는 지혜의 말은 이러한 리더들이 선사하는 주옥같은 말들을 여성, 스포츠 스타, 리더, 지그 지글러로 나누어 담았다.


<책내용>
▶ 윈스터 처칠
저술가. 웅변가이자 정치가인 윈스턴 처칠 경은 전시 영국의 총리로서 영국을 패배 일보 직전의 상황에서 승리로 이끌었다. 1874년 영국의 옥스퍼드 주에서 태어난 처칠은 1차 세계대전에서 군 장교로 조국을 위해 일하기 시작했다. 의회 의원이 된 뒤 그는 여러 차례 히틀러가 주도하는 독일의 위협에 대해 경고했다. 그와 더불어 공격적이고 설득력 있는 연설 솜씨로 1939년 총리에 임명되었다. 1940년 프랭클린 루즈벨트, 요시프 스탈린과 함께 2차 세계대전의 연합국 전략을 구상했다. 철저한 애국주의자이며 낭만적이라 할 만큼 조국의 위대함을 굳게 믿었던 처칠은, 강력한 리더십과 헌신적 열정으로 국민들을 이끌어 결국 영국의 군사적 위기를 타개했다. 그는 1953년 저서 `2차 세계대전`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그해에 기사 작위도 받았다.

"위대함의 대가는 책임감이다.
인생에서 가장 큰 교훈은 바보라도 때로는 옳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나는 남의 가르침을 언제나 환영하지는 않지만, 언제나 배울 자세를 가지고 있다.
자신의 원칙을 희생하고서라도 소속 정당을 옮기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정당을 희생하고서라도 자신의 원칙은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전세계 모든 나라와 민족은 누구나 사자의 심장을 가지고 있다.
나는 다행스럽게도 포효를 울리라는 명을 받았다.
화해를 주선하는 사람은 악어에게 먹이를 주면서 자기를 맨 나중에 잡아먹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한 번 내뱉은 말은 도로 삼켜도 잘 소화가 되지 않는다.
복수만큼 값이 비싸면서도 무익한 것은 없다.
용기가 없다면 모든 미덕이 의미를 잃는다.
정치는 전쟁만큼이나 흥미로우면서도 위험하다.
전쟁에서는 한 번만 죽으면 되지만. 정치에서는 여러 번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느 민족에게서든 존경 이외에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광신자란 자기 마음을 변화시킬 수도 없고 스스로를 변화시키려 하지도 않는 사람이다.
어떤 사회에서든 아기에게 우유를 주는 것 보다 더 훌륭한 투자는 없다. 너무 멀리 바라보는 것은 잘못이다.
운명의 사슬에서는 한 번에 하나의 고리만 다룰 수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 마하트마 간디
영국의 지배에 맞서 인도의 민족주의 운동을 지도한 모한디스 `마하트마` 간디는 인도의 아버지로 추앙받고 있다. 정치.사회적 진보를 달성하기 위해 비폭력주의를 강조한 그의 주장은 국제적으로도 널리 존중된다. 간디는 인도에서 교육을 받은 다음 1888년 영국에 가서 법을 공부했다. 그 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서기로 할 때 목격한 인종 차별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동료 인도인들의 권익을 옹호하는 일을 시작했으며, 그 과정에서 정부의 탄압을 받아 투옥되기도 했다. 1919년 인도의 정계에 입문해서 영국의 치안 유지법에 저항했으며 이어 인도 국민회의의 수반이 되었고, 인도의 독립을 달성하기 위한 비폭력 저항운동을 전개했다. 2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도 탄압을 받았던 간디는 마침내 1947년 인도 자치국을 수립하는 협상을 성사 시켰다. 그러나 이듬해에 암살되고 말았다.

"증오는 오직 사랑으로써만 극복할 수 있다. 약한 자는 결코 남을 용서할 수 없다.
용서란 강한 자가 지닌 속성이다.
진리는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 있다.
우리는 마음 속에서 진리를 찾아야 하며, 자신이 찾은 진리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그러나 누구도 자신의 진리관을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할 권리는 없다.
잘못할 수 있는 자유를 포함하지 않는다면 그 자유는 가치가 없다.
인내란 자신에게 가하는 고통을 뜻한다.
신을 두려워한다면 우리는 인간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신념은 이성의 제재를 받아야 한다. 맹목적인 신념은 죽는다.
배타적인 성향을 지닌 문화는 결코 존속할 수 없다.
만족감은 달성이 아니라 노력에 있다. 전력을 다한 노력이야말로 완전한 승리다. 사랑이 있는 곳에 생명이 있다.
이 세상에서 내가 인정하는 유일한 독재자는 내 안의 고요한 목소리뿐이다.
정당한 차이는 진보의 건강한 신호이다."
 
▶ 공자
공자는 중국의 가장 유명한 스승이자 철학자이자 정치이론가이다. 그의 사상은 동아시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공자는 기원전 551년에 태어나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었으며, 독학을 통해 당대 최고의 학자가 되었다. 그는 당시 사회적 상황에 크게 실망하고, 사회 개혁을 위해 자신의 생애를 바쳤다. 공자는 주로 성실을 강조했으며, 그의 가르침은 대부분 윤리에 뿌리를 두고 있다. 공자는 국가가 지배자들의 쾌락이 아니라 백성들의 행복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믿었다. 자신의 개혁 사상을 실현한 만한 공적인 지위를 얻지 못한 탓에 그는 제자들을 가르치는 데 생애의 대부분을 보냈다. 그의 가르침은 사후에 제자들이 기록한 `논어`라는 책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이후 `논어`는 회적 생활 양식의 근간이 되었으며, 공자를 동양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만들었다.

"재물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모두 쓰지는 말라.
세상을 바로잡으려면 먼저 나라를 바로잡아야 한다.
나라를 바로잡으려면 먼저 가족을 바로 잡아야 한다.
가족을 바로잡으려면 먼저 자신의 생활을 닦아야 한다. 따라서 가장 먼저 할 일은 자신의 심성을 바로잡는 일이다.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면 인생에서 하루도 일할 필요가 없다.
어진 자는 근심하지 않고, 지혜로운 자는 의혹을 품지 않으며, 용감한 자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옳은 것을 알고서도 행하지 않는 것은 용기가 없는 것이다.
옛 것을 되새겨 새 것을 살필 줄 알면 능히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의 재물을 얻고자 하는 사람은 이미 자신의 재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말의 힘을 알지 못하면 더 이상 아는 것이 불가능하다.
하늘을 얻는 자는 자신의 마음 속에 하늘을 가진 사람이다."
 
▶ 노먼 빈센트 필
낙관적인 종교 철학과 화려한 웅변술을 바탕으로 노먼 빈센트 필은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개신교 목사들 중 한 사람이 되었다. 그는 라디오, TV, 신문을 이용하여 수백만 명에게 기도의 은총을 강조하는 자신의 메시지를 퍼뜨렸다. 필은 오하이오의 바워스빌에서 감리교 설교사의 아들로 태어나 1920년 오하이오 웨슬리언 대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보스턴 공과대학에 다녔으며, 1922년 감리교회에서 목사 서품을 받았다. 10년 후 필은 뉴욕의 마블 개혁교회의 목사로 임명되었다. 종교의 주요 임무는 사람들을 돕는 것이라고 생각한 그는 그런 주제로 `긍정적 사고의 힘`을 비롯한 몇 권의 책을 썼다. 그의 설교에서 가장 중심적인 주제는 신에 대한 낙관적인 믿음, 기도와 긍정적 사고의 힘에 대한 확신이었다. 필은 또한 미국 종교 및 정신의학 협회의 창립에 기여했다.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투영하게 마련이다.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사실은 그 사실에 대한 우리의 태도보다 중요하지 않다.
성공과 실패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태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겪는 문제는 비판으로 구원받기보다 칭찬으로 망치기 쉽다는 점이다.
자신이 패배했고 그 패배가 오래 간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기정사실이 되기 쉽다.
오늘과 매일매일을 위한 일을 계획한 다음 그 계획을 실행하라.
기대하는 만큼 얻게 마련이다
모든 것에 대해 열정적으로 생각해야 하지만, 특히 자신의 일에 관해서는 더욱 열정을 품어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인생에서 영광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일을 열정적으로 사랑한다면 쉽게 목표를 이룰 수 있다
가능성을 믿어라
사태가 아무리 어두워 보이고 실제로 어둡다 하더라도 시선을 높여 가능성을 바라보라
가능성은 항상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크게 긍정하고, 크게 믿고, 크게 기도하면 큰 일이 실현된다
우리는 대개 복잡한 것을 가지고 고민하며 단순한 것은 회피한다."
 
▶ 아리스토텔레스
고대 그리스의 사상가, 철학자, 과학자, 작가였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지성인 중의 한 사람이다. 철학과 과학의 발전에 그가 남긴 공헌은 서구적 지성과 사상의 표준이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과학계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은 엄청나다. 그는 형식논리학을 발명했으며, 그 원리를 물리학, 화학, 생물학, 동물학에 적용했다. 또한 인간 존재의 현상을 꿰뚫어보는 그의 능력은 심리학과 문학의 영역에까지 두루 영향을 미쳤다. 정치학과 윤리학에 관해 아리스토텔레스가 남긴 저작과 발언은 현대 철학에서도 여전히 읽히며 토론의 대상이 되고 있다.

"교육을 받은 사람과 받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차이와 똑같다. 희망이란 꿈에서 깨어나는 것이다
아름다움은 신이 내린 선물이다
친구란 무엇인가? 친구는 하나의 영혼이 두 개의 몸에 거주하는 것이다
교육은 노년을 위한 최선의 준비다
자기 행동의 근원은 자기에게 있다
다른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 해도 친구가 없다면 아무도 살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다
자연의 만물에는 경이로운 것이 있다
자연은 불필요한 일을 결코 하지 않는다
좋은 시작은 절반의 완성이다
확실해 보이는 불가능성은 의문의 여지가 있는 가능성보다 언제나 더 낫다
미덕이란 단지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고 반드시 지니고 사용해야만 한다
존엄성은 명예를 소유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명예를 누릴 만한 자격이 있다고 여기는 데서 온다."
 
▶ 마틴 루터 킹
마틴 루터 킹은 강한 개성과 뛰어난 웅변술로 1950년대와 60년대에 미국의 인권 운동을 이끌었다. 침례교 목사였던 킹은 1955년 앨러배마의 몽고메리에서 인종 차별적 버스 탑승 제도를 거부하는 것으로 인권 운동을 시작했다. 1957년 그는 남부 기독교 지도자 회의를 창립하고, 인종차별 정책에 대한 비폭력 투쟁을 조직했다. `워싱턴 행진` 이 절정에 달한 1963년 8월 28일 모든 인종의 미국인 20만 명이 킹의 연설을 듣기 위해 링컨 기념관에 운집했다. 1964년 의회에서 민권법이 통과됨으로써 킹의 인권운동은 커다란 승리를 거두었다. 그 성과로 킹은 사상 최연소 노벨 평화상 수상자가 되었다. 그러나 1968년 암살범의 총에 맞아 숨지면서 세계는 자유와 정의의 숭고한 상징을 잃었다.

"생각해야 한다는 것만큼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없다
나에겐 꿈이 하나 있다
언젠가 이 나라가 떨쳐 일어나, 당당히 이 신념을 실현해낼 거라는 꿈이다
우리는 진실이 스스로 그 가치를 증명할 거라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그 진실이란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것이다
목숨을 걸 만한 것을 찾지 못한 사람은 온전한 삶을 살지 못한다
어둠은 어둠을 몰아낼 수 없고, 오직 빛만이 어둠을 몰아낼 수 있다
증오는 증오를 몰아낼 수 없고, 사랑만이 증오를 몰아낼 수 있다
나는 맨손의 진리와 무조건적 사랑이 현실에서의 마지막 약속이라고 믿는다
거리의 청소부라 불릴 자격을 얻으려면 미켈란젤로가 그림을 그리듯이, 베토벤이 음악을 작곡하듯이, 세익스피어가 시를 쓰듯이 거리를 청소해야 한다
장차 하늘과 땅의 모든 주인들이 "여기 자기 일을 충실히 수행한 위대한 청소부가 있었노라"고 감탄 할 만큼 거리를 깨끗이 청소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독사의 강인함과 비둘기의 부드러움을, 즉 강인한 정신과 친절한 마음을 결합시켜야 한다
한 곳에 부정이 있으면 모든 곳의 정의를 위협하게 된다
사악한 사람은 음모를 꾸미지만, 선량한 사람은 계획을 세운다
사악한 사람은 증오의 추악한 말을 외치지만, 선량한 사람은 영예로운 사랑을 위해 헌신한다"
 
▶ 조시 패튼
냉혹하고 비정하고 고집스럽다는 말은 2차 세계대전에서 활약한 미국 최고의 장군인 조지 패튼을 묘사하는 일부의 수식어에 불과하다. 그는 전차와 장갑차를 이용한 전술에 능했다. 탱크 부대 사령관으로서 그의 용맹은 특히 불주 전투에서 독일군의 역공을 저지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1944년 여름 그는 전통적인 전술을 무시하고 프랑스를 가로질러 가차없이 진공해서 대성공을 거두었다. 1945년 1월 패튼의 군단은 독일 국경에까지 접근하면서 수천 명의 독일군을 포로로 잡았다. 패튼은 군대 역사상 가장 화려하고 논쟁적인 인물 중의 하나로 꼽혔다. 비록 그의 거침없는 언사와 예측 불가능한 행동은 민간 정부 당국자들의 비판을 받았지만, 그는 휘하 병사들에게 커다란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그는 거친 태도 때문에 `지독한 노인` 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부하들에게 일을 처리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지 마라. 그저 무엇을 하라고만 명령하면 그들은 나름대로의 독창성으로 당신을 놀라게 할 것이다.
모두가 똑같이 생각하고 있다면 누군가는 생각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도전을 받아들여야 승리의 환희를 느낄 수 있다.
전쟁은 무기로 하는 것이지만 승리는 사람이 거두는 것이다.
승리를 이끌어내는 것은 따르는 사람들의 정신과 이끄는 사람의 정신이다.
병사로서 가장 중요한 자질은 자신감이다.
하나에만 전념해야 한다. 자신이 결정한 한가지 목표만을 추구하라.
언제나 필요한 만큼 이상의 일을 해라.
전투에서 이기려면 한 가지를 명심해야 한다. 마음이 몸을 움직이게 해야지 몸이 마음을 명령하게 하면 이길 수 없다.
나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단지 내 안에서 "멈추지 마. 누군가는 정상에 올라야 하는데 바로 네가 해보지 그래?" 하고 말하면서 힘차게 뛰는 엔진이 속도를 늦추게 되는 것뿐이다.
한 방울의 땀이 한 동이의 피를 구한다.
최선을 다한다면 뭘 더 바라겠는가?
 
▶ 교황 요한 바오르 2세
1978년 교황으로 취임한 요한 바오르 2세는 가톨릭 교회 역사상 최초의 폴란드 출신 교황이자 456년만에 처음으로 이탈리아인이 아닌 성직자로서 교황이 된 사람이었다. 그는 가톨릭 교회의 교의를 전세계 사람들에게 널리 퍼뜨리는 업적을 남겼다. 풀란드의 바도비체에서 카롤 보이틸라라는 이름으로 태어나 교황은 폴란드 문학을 공부하고 화학 공장에서 일하던 중에 2차 세계대전을 맞았다. 사제가 될 결심을 굳힌 그는 크라코프 대주교궁에 은신하다가 1946년 사제 서품을 받았다. 이후 윤리학 박사학위를 받고 철학 교수를 역임한 뒤 크라코프 대주교가 되었다. 1967년 추기경이 되었으며, 그로부터 10년만에 교황위에 올랐다. 교황은 여러 나라 말에 능통했기 때문에 가톨릭 교회의 국제적 대사로서 널리 말씀을 전하는 데 애썼으며, 1981년에 암살의 위협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왕성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형제가 되고자 한다면 무기를 버려라
전쟁은 비극적인 과거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미래의 세상에는 전쟁이 발붙일 곳이 사라져야 한다
목적을 가지지 않는 자유, 인간의 마음 속에 있는 법의 지배를 받고자 하지 않는 자유, 양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자유, 그런 자유는 인관가 사회에 반하는 것이다
명랑한 가정을 꾸리기 위해서는 부모와 자식이 모두 노력해야 한다
가족 구성원들은 각기 나름의 방식으로 다른 식구들의 종복이 되어야 한다."
 
▶ 존 F. 케네디
존 F. 케네디는 43세에 미국 35대 대통령으로 당선됨으로써 사상 최연소이자 최초의 가톨릭교 대통령으로 기록되었다. 케네디는 1936년에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하고 미 해군에 입대했다가 곧이어 벌어진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태평양에서 현역으로 복무하던 중 그의 지휘하에 있는 함선이 일본군에 의해 파괴되는 사태를 겪었다. 그는 등에 부상을 입은 몸으로도 휘하 승무원들을 구조하는 영웅적 행위를 보였다. 하원과 상원을 거친 뒤 1960년에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그는 독특한 스타일과 카리스마. 뛰어난 연설 솜씨로 국내외에서 높은 평판을 받았으나 1963년 암살범의 총탄을 맞고 짧고 비극적으로 삶을 마쳤다. 그의 주요 치적으로는 평화봉사단을 창립한 것과 쿠바 미사일 위기를 훌륭하게 해결한 것을 꼽을 수 있다. 그의 저서 `용기 있는 사람들`은 1957년에 퓰리처상을 받았다.

"그러므로 나의 동료 국민들이여, 여러분의 나라가 여러분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을 묻지 말고, 여러분의 나라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을 물으라
우리는 무엇보다 평화로운 세상을 추구한다
모든 민족이 상호 존경 속에서 함께 살면서 상호 존중 속에서 함께 일할 수 있는 세상을 바라는 것이다
활력과 신념, 헌신성으로 노력하면 우리의 나라와 나라를 위해 일하는 모든 이들에게 밝은 빛이 될 것이며
그 빛은 다시 전세계를 밝히는 참된 불로 자라날 것이다
평화로운 혁명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자들은 폭력적인 혁명을 불가피하게 만들 것이다
해가 있을 때 지붕을 고쳐야 한다
자식 교육을 잘못하면 자식을 잃게 된다
내가 바라는 우리 나라는 군사력과 도덕적 절제
재력과 지혜, 힘과 목적이 서로 잘 조화를 이룬 나라다
인간은 개인적인 대가가 따른다 할지라도, 장애물과 위험과 부담감이 있다 할지라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한다
그게 바로 모든 인간적 도덕의 기본이다
적을 용서하되 그 이름은 잊지 말라
두려움에서 협상하지 말고, 협상에서 두려워하지 말라."
 
▶ 헨리 포드
공학의 천재이자 대중의 영웅으로 이름을 떨친 헨리 포드는 자동차 산업에서 창조성을 발휘했다. 그의 혁신은 미국만이 아니라 전세계의 경제. 사회적 성격을 크게 바꾸었다. 포드는 `T 모델`을 대량생산용 자동차로 개발해서 보통 사람이 구입할 수 있는 가격으로 판매했다. 대량 생산에 조립 라인을 사용함으로써 절약할 수 있게 된 시간과 경비를 활용해서 더 많은 자동차를 그 전의 어느 누구보다도 낮은 가격으로 사람에게 공급하였다. `T 모델` 은 1908년부터 1927년까지 미국에서 1,500여만 대나 팔렸다. 박애주의자로도 유명했던 포드는 미시간의 디어본에 역사적 건물들을 모아 그린필드 빌리지를 건설했다. 또한 헨리 포드 박물관과 포드 재단도 설립했다.

"멈추는 자는 스무 살이든 여든 살이든 상관없이 늙은 사람이다
반면 끊임없이 배우는 자는 누구나 젊다
인생에서 가장 큰 일은 자신의 마음을 젊게 유지하는 일이다
실패는 단지 더 현명하게 시작할 기회일 뿐이다
당신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든, 할 수 없다고 생각하든 상관없이 당신이 옳다
모이는 것은 시작이고, 함께 있는 것은 진행이며, 함께 일하는 것은 성공이다
큰 일도 작은 일들로 나누면 특별히 어렵지 않다
자립하기 위해 돈을 바란다면 결코 그것을 얻지 못할 것이다
이 세상에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하게 참된 보장은 지식과 경험, 능력의 보고이다
임금을 지불하는 것은 고용주가 아니다
그는 단지 돈을 관리할 뿐이다
임금을 지불하는 것은 생산품이다
실수라 해도 얼마든지 가치 있는 성취를 위해 필요한 것이 될 수 있다
기업은 마치 병아리처럼 땅을 파서 원하는 것을 얻을 때 가장 건강할 수 있다
이상주의자란 다른 사람들이 성공하도록 도와주는 사람이다
허물을 찾지 말고 해결책을 찾아라."
 
▶ 테레사 수녀
아그네스 곤자 보야주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테레사 수녀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평생토록 헌신한 것으로 큰 존경을 받았으며, 특히 인도의 빈민들을 위해 활동했다. 1928년 열여덟 살이던 그녀는 아일랜드로 가서 성모마리아 학교에 들어갔다가, 곧이어 인도로 가서 캘커타의 빈민들과 함께 살기 시작했다. 간호학을 공부한 뒤 캘커타 시의 빈민가로 이주해서 사랑의 선교회를 창립했다. 1968년 테레사 수녀는 로마로 호출되어 빈민들을 위한 집을 세웠으며, 3년 뒤에 처음으로 교황 요한 23세가 수여하는 평화상을 받았다. 1970년대 후반 1,000명이 넘는 사랑의 선교회 소속 수녀들은 캘커타의 60개 센터와 전세계에 걸쳐 200곳이 넘는 센터에서 활동했다. 빈민들을 돕기 위한 그녀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에 캘커타에서만도 약 8,000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그러한 열정과 헌신적인 사랑으로 1979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우리는 위대한 일을 할 수 없다
다만 위대한 사랑으로 작은 일만을 할 수 있을 뿐이다
나는 이 세상에 사랑의 편지를 보내시는 하느님의 수중에 있는 작은 연필이다
오늘날의 가장 큰 질병은 나병이나 결핵이 아니라 소외감이다
사람들은 우리의 활동이 마치 우리의 사명인 것처럼 착각한다
우리의 사명은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이다
나는 성공을 달라고 기도하지 않고 성실을 요청한다
고독감과 소외감은 가장 비참한 빈곤이다."
 
▶ 더글러스 맥아더
맥아더는 육군사관학교 최우등으로 졸업했다. 명석하고 논쟁을 즐겼던 그는 1차, 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에서 요직들을 두루 거치며 자신의 꿈과 야망을 실현해갔다. 1차 세계대전 중 맥아더는 장군으로 진급해서 육군 참모장이 되었다. 2차 세계대전 중에는 필리핀에서 일본군과 싸웠으며, 일본 점령군의 연합군 사령관으로 활약했다. 1950년 한국전쟁이 시작되자 곧바로 UN군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전쟁 초기에는 성공을 거두었으나 곧이어 대규모 중국군의 저항을 받아 트루먼 대통령과의 관계가 크게 악화되었다. 트루먼은 국지전을 주장했지만 맥아더는 선제 공격을 시도했다. 결국 그는 1951년에 명령 불복종으로 해임되었다. 그 뒤 여느 때처럼 초연한 태도로 사생활로 돌아왔다. 맥아더는 의무와 명예를 숭상하고 조국에 열정적으로 헌신한 표상과도 같은 인물이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만이 세상을 살아갈 자격이 있다
젊음이란 단지 나이만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 상태의 문제다
오랜 세월을 살았다고 해서 누구나 다 늙은 것은 아니다
자신의 이념을 포기했을 때 사람은 늙는다
신념이 있으면 젊고, 의심이 많아지면 늙는다
자신감이 넘치면 젊고, 두려움이 많아지면 늙는다
희망이 있으면 젊고, 절망이 크면 늙는다
인생에는 확실한 것이란 없고 오로지 기회만 있을 뿐이다
승리하겠다는 의지가 없이 전쟁에 뛰어드는 것은 극히 위험하다
오랜 세월 빛을 찾아다니던 결과 종국에는 진리가 칼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신이시여, 저를 이런 사람으로 만들어주소서
언제 자신이 약한지 알 수 있을 만큼 강하며, 두려워하는 자신을 직면할 수 있을 만큼 용감하고, 정직한 패배 앞에서 자랑스럽고 꿋꿋하며, 승리 앞에서 겸손하고 점잖은 그런 사람이 되게 해주소서
모든 사람의 마음 한가운데에는 기록실이 있다
그 방에 아름다움, 희망, 갈채, 용기의 메시지가 가득한 사람은 젊다
반면에 커튼이 드리워지고 비관의 눈발과 냉소의 얼음만이 가득하다면 늙은 사람이다."
 
▶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가 2차 세계대전 중 연합군 최고 사령관과 미국 34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정직, 겸손, 인내가 함께 어우러진 결과였다. 아이젠하워는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1차 세계대전에서 탱크 훈련소 소장을 역임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육군의 전쟁 계획 부서에 배치되어 연합군의 유럽 공격을 위한 전략을 수립했다. 이후 그는 유럽의 미군 사령관으로 발탁되었다. 군에서 퇴임한 뒤에는 컬럼비아 대학교 총장을 맡으면서 전쟁에 관한 베스트셀러를 펴내기도 했다. 그는 민주와 공화 양당의 구애를 받았으나 1952년과 1956년 두 차례에 걸쳐 공화당 후보로 대통령 선거에 나서서 모두 승리했다. 아이젠하워는 국민들로부터 엄청난 인기를 누렸으며, 사회보장제도를 확대하고 최저임금을 증대하기 위해 노력했다. 또한 보건부, 교육 및 복지부, NASA를 창립하는 업적도 남겼다.

"자유 세계는 과거의 세계와 다를 바 없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우리 모두가 각자의 마음 속에 자유에 대한 신념을 가질 때 우리는 자유로울 수 있다
비상시에는 무력이 필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오직 정의, 부드러움, 배려, 협력만이 인류를 항구적인 평화로 이끌어갈수 있다
자유는 인간의 마음, 행동 정신 속에서 살아 있다
그러므로 자유는 매일 새로이 얻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마치 생명의 뿌리가 잘려나간 꽃처럼 자유는 시들고 죽어버릴 것이다
현명한 사람과 용감한 사람은 역사의 궤도 위에 누워 미래의 열차가 자신을 치고 지나가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 마거릿 대처
마거릿 대처는 유럽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으로서 총리에 당선된 인물이다. 잡화상 집안의 딸로 태어난 대처는 옥스퍼드에서 화학으로 학위를 받았으며, 대학 보수 연합의 회장이 되었다. 1950년대에 화학 연구자로 일하면서 동시에 법과 세금제도를 공부했다. 1950년 대처는 처음으로 의회의 문을 두드렸으나 1959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하원에 당선될 수 있었다. 그녀는 연금 및 국가보험 정무차관을 역임했으며, 그 후에는 교육 및 과학 담당 장관으로 일했다. 1975년 보수당의 당수로 당선되었고, 1979년 선거에서 보수당이 승리함으로써 총리가 되어 1990년 까지 재임했다.

"장관들이 내가 말한 대로 실행하기만 한다면, 나는 그들이 말을 많이 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다
성공이란 무엇인가? 우선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흥미를 가져야 하며, 그것으로 충분치 않다는 것을 알고 더 열심히 노력해서 어느 정도의 목적 의식을 가지게 되는 것을 나는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까다롭지 않고 오히려 놀랄 만큼 부드러운 사람이다
그러나 나는 남의 말에 부화뇌동하지는 않는다
승리를 거두려면 여러 번의 전투를 치러야 한다
최종적으로 내가 택한 방향으로 가기만 한다면 나는 얼마든지 인내할 수 있다
빅토리아 시대의 가치관은 우리 나라가 위대했을 때의 가치관이었다
외교에 관해 "의도적인 거짓말은 하면 안되지만 때때로 모호한 태도를 취할 필요도 있죠." 노력 없이 정상에 오른 사람은 없다
노력이 바로 성공의 비결이다
돈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게 아니라 지상에서 벌어야 하는 것이다."
 
▶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의 16대 대통령인 링컨은 남북전쟁 시기에 연방을 보존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타고난 성실성과 정직성, 결단력, 유머, 용기를 가지고 미국 역사상 가장 유혈이 낭자한 시기에 나라를 이끌었다. 1809년 켄터키의 벽지에서 태어난 링컨은 철도 노동자, 선원, 잡화점 직원, 우체국장, 측량기사 등의 일을 하다가 법률을 공부해서 변호사가 되었다. 이후 상원의원 선거에서 벌인 공개토론으로 전국적인 유명 인사가 되었고, 1860년에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링컨이 대통령에 취임했을 무렵, 노예제 문제 때문에 이미 일곱 개 주가 연방을 탈퇴한 상태였다. 1863년 노예 해방을 선언함으로써 반대하는 주들의 노예들을 해방시켰다. 남북전쟁 중에는 여러 전투에서 직접 총사령관을 맡았는데, 그의 군사적 재능은 연방이 승리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1864년 대통령에 재선되었으나, 남부의 재건을 지휘하기 전에 암살되는 비운을 당했다.

"역경에 대처하는 것은 거의 모두가 할 수 있다
그러나 인물됨을 시험하고자 한다면 그에게 권한을 부여하라
한 통의 쓸개즙보다 한 방울의 꿀이 더 많은 파리를 잡는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한사람을 내 편으로 끌어들이려면 먼저 자신이 그의 성실한 친구라는 점을 납득시켜야 한다
바로 그것이 그의 마음을 잡을 수 있고 그의 의지를 합리성으로 향하는 큰 길로 이끌 수 있는 한 방울의 꿀이다
미래가 지니는 가장 큰 장점은 한 번에 하루씩만 닥친다는 것이다
재치란 다른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할줄 아는 능력이다
내 경험이 말해주는 바에 따르면, 악덕이 전혀 없는 사람은 미덕도 별로 없다
거짓말은 통하게 만들 만큼 기억력이 좋은 사람은 없다
어제보다 오늘 더 현명해지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적과 친구가 된다면 그것은 곧 적을 쳐부수는 게 아닐까? 성공하려는 자신의 의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음을 항상 명심하라
나는 내가 아는 한,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한다
나는 죽을 때까지 내내 그렇게 할 작정이다
무력은 모든 것을 정복하지만, 무력에 의한 승리는 오래 가지 않는다
그 사람이 스스로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 일을 대신 해주는 것은 그를 영원히 돕는게 아니다
나의 꿈은 이 나라를 다시 한번 세계의 마지막이자 최선의 희망으로 만드는 것이다."
 
▶ 앤드루 카네기
앤드루 카네기는 기업가적 성공과 시민의 책무가 잘 결합된 표상적인 인물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열심히 일하는 것의 중요성을 믿었고 그 믿음을 실천했다. 1848년 가족과 함께 스코틀랜드에서 미국으로 이주했으며, 열세 살 때부터 면화 공장에서 주급 1달러 25센트를 받고 얼레를 잡는 일을 시작했다. 곧이어 철도 전신소로 직장을 옮겼으며, 이 후 한시도 일을 멈추지 않았다. 철도 산업의 성장에 따른 수요를 예측한 카네기는 빌린 돈에 얼마 안 되는 자신의 봉급까지 합쳐 석유와 철강에 투자했다. 이 투자는 나중에 카네기 철강회사라는 대기업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철강회사가 성장하면서 카네기는 당대 최고 부자의 반열에 올랐다. 그는 막대한 재력을 이용해서 수많은 문화, 교육, 과학 재단들을 설립했다. 1911년에 창립된 카네기 법인은 전세계에 걸쳐 수천 개에 이르는 공공 도서관의 창설을 지원했다.

"명예에 따르는 상처는 모두 스스로 자초한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나는 사람들이 하는 말에 더 주의를 기울이지 않게 된다
그저 사람들이 하는 일을 지켜볼 따름이다
스스로를 돕지 않는 자를 도우려 하는 것은 아무 소용도 없다
스스로 사다리를 올라가려는 의지가 없는 자를 억지로 떠밀어 올라가게 만들 수는 없다
나의 신조는 집중이다
첫째는 정직이고, 다음은 근면이며, 그 다음은 집중이다
잉여의 부는 그 소유자가 평생 동안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잘 운영해야 하는 신성한 위탁이다
집중이란 자기가 가진 달걀들을 한 바구니에 넣고 그 바구니를 잘 관리하는 것과 같다
보통 사람은 자신의 힘과 능력 중에서 25퍼센트만을 자신의 일에 쏟아 붓는다
자신이 지닌 역량의 50퍼센트 이상을 투입하는 사람은 성공할 것이며, 100퍼센트를 바치는 사람은 성공의 정점에 오를 것이다
부자와 가난한 자는 형제애의 유대감이라는 조화로운 관계로 결합되어 있다."
 
▶ 토머스 제퍼슨
미국의 3대 대통령이자 초대 국무장관을 지낸 토머스 제퍼슨은 독립선언문을 쓴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부유한 버지니아 이주민 출신인 제퍼슨은 1769년 시의회 의원으로 정치 경력을 시작했다. 이후 2회 대륙회의의 대표가 된 그는 벤자민 프랭클린, 존 애덤스와 함께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분리되어야 하는 공식적 이유의 초안을 잡는 역할을 부여받았다. 그 결과로 나온 독립선언문은 주로 제퍼슨이 집필했는데, 신생국이 생존과 자유, 자치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 뒤 제퍼슨은 프랑스 대사로 일하다가 조지 워싱턴에 의해 초대 국무장관으로 임명되었다. 1801년 대통령직을 맡은 그는 곧이어 루이지애나를 나폴레옹에게서 사들여 미국의 영토를 두 배로 늘렸다. 은퇴 후에는 버지니아 대학교를 설립했다.

"우리는 다음의 진리들을 자명하게 여긴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다
사람은 누구나 창조주에 의해 특별히 소외받지 않을 권리를 부여받았다
그러한 권리들 중에는 생명, 자유, 행복 추구의 권리 등이 포함된다
어떤 사람도 대통령직에서 현재 자신이 지닌 평판을 끌어내지는 못할 것이다
인간을 파괴하지 않고 인간의 생명과 행복을 배려하는 것은 훌륭한 정부의 최우선이자 유일하게 적법한 목표다
항구적인 경계는 자유를 위해 치르는 대가다
모든 재능 가운데서도 으뜸은 한 단어로 족할 것을 두 단어로 말하지 않는 재능이다
한 번 거짓말을 해본 사람은 두 번째 거짓말이 훨씬 쉽다는 것을 안다
화가 날 때는 말하기 전에 10까지 세어보라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 때는 100까지 세어보라
늘 활동하고 있는 마음은 늘 즐겁다
그것이 바로 행복의 참된 비결이자 지름길이다
나는 행운을 크게 믿는다
그리고 더 열심히 노력할수록 더 많은 행운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 레흐 바웬사
노동운동 지도자인 레흐 바웬사는 공산주의 폴란드 최초의 독립적인 노동조합인 연대자유노조의 의장이었다.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한 그의 투쟁은 전세계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1943년 폴란드에서 태어난 바웬사는 국립 직업학교를 다녔고, 그다니스크에 있는 레닌 조선소에서 전기공으로 일을 시작했다. 1970년 거리 시위에서 폭력적인 죽음을 목격한 뒤, 폴란드에 참된 자유노조를 결성하기 위한 투쟁에 돌입했다. 1980년 파업위원회의 위원장에 당선되었으며, 그다니스크의 다른 노동자들과 연대하여 파업을 전개했다. 폴란드 정부가 계엄령을 발포하면서 연대자유노조는 불법이 되었고 바웬사는 체포되었다. 그러나 1983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그는 정부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개혁을 요구했으며, 마침내 1989년 폴란드 정부는 연대자유노조를 합법화시키기에 이르렀다.

"모든 사람이 자유를 원한다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는 자유의 불길이 이글거리고 있다
우리는 용기를 가져야 하지만 이성도 있어야 한다
세계는 팽팽한 줄 위를 걸어가는 우리에게 찬사를 보내고 있다
줄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면 균형이 필요하다
나는 보지 못하겠지만 장차 사소한 폴란드의 문제들이 모두 해결되고, 전세계에 조화와 평화가 자리잡는 시대가 올 것이다
그때가 되면 우리 아이들과, 또 아이들의 아이들이 함께 어울려 긍정적인 노래를 부르게 되기를 바란다
그때까지 우리에게는 할일이 있다."
 
▶ 벤자민 프랭클린
인쇄업자, 출판업자, 저자, 발명가, 과학자, 외교관 등등 팔방미인이었던 벤자민 프랭클린은 식민 아메리카를 영국으로부터 분리시키고 독립선언문의 초안을 작성한 공로로 널리 알려져 있다. 프랭클린은 외교관 시절에도 발명가이자 과학자로서 꾸준히 활동했다. 프랭클린 난로, 이중초점 안경, 피뢰침 등이 그의 발명품이다. 또한 처음으로 소방서, 도서관을 공공 기관으로 만들었고 학술원을 세우기도 했는데, 그것이 나중에 펜실베이니아 대학교가 되었다. 2회 대륙회의의 대표를 지낸 후에는 프랑스로 가서 독립전쟁을 위한 군사적. 재정적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또한 영국과 종전 협상을 벌이는 외교관으로 발탁되었으며, 미국 헌법을 채택하는 데도 일익을 담당했다.

"현자는 충고가 필요없고, 바보는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사소한 지출을 주의하라
작은 구멍이 큰 배를 침몰시킬 수도 있다
세상에는 바보들과 소심한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누구나 재난을 견딜 만한 용기는 가지고 있으며, 자기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처리할 만큼의 지혜를 갖추고 있다
이웃을 사랑하라
하지만 자기 집의 울타리를 허물지는 말라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사람은 축복을 받은 것이다
실망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바보의 가슴은 입에 달렸지만, 현자의 입은 가슴에 달려 있다
열정에 휘말렸을 때는 이성으로 제어하라
그는 말을 아홉 가지 언어로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학식이 풍부하지만, 소를 타려고 사려들 만큼 무지하다
적을 사랑하라
적은 당신에게 당신의 결함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현자란 누군가? 모든 사람들에게서 배우는 사람이다
강자란 누군가? 자신의 열정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다
부자란 누군가?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어디 있는가? 아무 데도 없다
노력 없이는 결실이 없다."
 
▶ 알베르트 슈바이처
당대에 가장 위대한 기독교인의 한 사람이었던 알베르트 슈바이처는 뛰어난 철학자, 음악가, 신학자, 의사이기도 했다. 슈바이처는 1875년 독일의 알자스에서 태어났다. 스물한 살 때 자신의 인생 중에서 향후 9년 동안 과학, 음악, 설교에 전념하기로 마음먹었다. 서른이 되었을 무렵 이미 신학에 관한 작가로서, 재능있는 오르간 연주자로서, 그리고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생애와 작품에 관한 권위있는 비평가로서 국제적 명성을 날렸다. 성 토마스 신학대학에 다니던 시절 의료 전도 사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6년간 의학을 공부한 뒤 아프리카에 병원을 세웠다. 슈바이처는 연주회와 강연에서 얻은 수입으로 병원 유지에 필요한 경비를 댔고 나중에는 나환자촌도 설립했다. 그간의 헌신적인 노력이 공적으로 인정되어 1952년에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매일 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않고 누군가를 위해 뭔가를 하라
본보기로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데 단지 주요한 정도가 아니라 유일한 역할을 한다
명백한 진리가 하나 있다
세계 역사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의 중심에는 정신적인 것이 있다
정신의 힘이 강하면 세계 역사를 창조할 수 있고, 정신의 힘이 약하면 세계역사에 의해 고통을 겪는다
인간을 위한 것보다 더 고결한 종교는 없다
공통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가장 큰 종교다
자신의 문제를 주변 환경의 탓으로 돌리지 말고, 자신의 의지와 개인적 책무를 다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모두 죽는다
그러나 고통에서 벗어날 길은 있다
나는 그것을 내가 지닌 위대하고 늘 새로운 특권으로 여긴다
개인적 고통에서 면제된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소명을 받았다고 여겨야 한다
낙관주의자는 모든 곳에서 푸른 신호등을 보며, 비관주의자는 붉은 신호등만 본다
그러나 진정으로 현명한 사람은 색맹이다."
 
▶ 시어도어 루스벨트
군인, 정치가, 작가, 탐험가를 두루 거친 루스벨트는 미국의 26대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인생에 대한 엄청난 에너지와 열정으로 미국 역사상 가장 화려한 지도자들 중 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루스벨트는 해군의 차관보로 재직하다가 1898년에 사임하고 쿠바 전쟁에 참전했다. 전쟁 영웅으로 개선한 뒤 그는 손쉽게 뉴욕 주지사에 당선되었다. 그 후 미국 부통령이 되었다가 1901년에 윌리엄 매킨리 대통령이 암살당하자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루스벨트는 대통령과 연방정부의 권한을 대폭 확장해서 공익을 바탕으로 대기업과 대형 노조 사이의 갈등을 처리했다. 1906년 러일 전쟁의 종전을 중재한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으며, 파나마 운하의 건설을 추진했다. 투철한 자연주의자였던 루스벨트는 수천 에이커의 땅을 보호 구역으로 설정했는데, 그 땅들은 오늘날도 국립공원과 삼림으로 남아 있다.

"법 위에 사람 없고 법 아래에 사람 없다
말은 부드럽게 하고, 지팡이는 큰 것을 가지고 다니라
그런 사람은 멀리 갈 수 있다
인생에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상은 노력할 가치가 있는 일을 열심히 할 수 있는 기회다
법에 대한 복종은 부탁이 아니라 요구다
유능한 간부는 자신이 원하는 일을 맡길 적임자를 고르는 감각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그가 그 일을 하는 동안 간섭하지 않을 만큼 자제력을 가져야 한다
결정을 내릴 순간에 최선의 행위는 올바른 결정이고, 차선은 그른 결정이며, 최악은 아무 결정도 내리지 않는 것이다
애국심을 퍼뜨리려다가 오히려 흐려지게 해서는 안 된다
지혜의 9할은 적시에 지혜를 발휘하는 데 있다
행동을 취하라
순간을 포착하라
사람은 딱딱한 껍질을 쓴 굴처럼 움직이지 않는 존재가 아니다
비정한 마음보다 더 나쁜 게 딱 하나 있는데, 그것은 나약한 머리다."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과학의 지성들 가운데 한 사람인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물리학 분야에 이바지한 공로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1879년 독일에서 태어난 아인슈타인은 취리히에 있는 스위스 연방공과대학에서 학위를 받고, 물리학과 수학 강사로 일했다. 1905년에 박사학위를 받고 네 편의 연구 논문을 발표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논문은 특수 상대성 이론에 관한 것이었다. 이후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1922년에는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우라늄 핵분열의 발견이 중요한 군사적 용도를 지닌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인슈타인은 1939년에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호소하기에 이르렀다.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에서 아인슈타인은 원자폭탄을 개발하라고 권고했다. 아인슈타인이 물리학 분야에 기여한 공로로 물리학은 크게 변화되었다. 그의 발견은 우주의 신비를 이해하기 위한 미래의 연구에 커다란 자극제가 되었다.

"분노는 바보들의 가슴 속에만 있다
성공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지 말고, 가치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라
하루에도 수백 번씩 나는 내 삶이 살아 있거나 죽은 수많은 사람들의 노동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 자신에게 일깨운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는 만큼 다른 사람들에게 되돌려주어야 한다고 나 자신을 타이른다
개인의 고결한 운명은 지배에 있지 않고 봉사에 있다
어려움의 한복판에 기회가 있다
나 자신과 내 사고방식을 면밀히 검토해보면, 내게는 실증적인 지식을 흡수하는 재능보다 공상의 재능이 더 중요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경이로움과 경외감에 빠져들지 못하는 사람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고 맹인이나 마찬가지다
배가 고프면 좋은 정치적 자문을 하지 못한다
예쁜 여인과 한 시간 동안 함께 앉아 있다면 그 시간은 마치 1분처럼 짧게 느껴진다
그러나 1분 동안 뜨거운 난로 위에 앉아 있다면 마치 한 시간처럼 길게 느껴질 것이다
그게 바로 상대성이다."

▶ 헬렌 켈러
헬렌 켈러는 1880년에 앨러배마의 터스컴비아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두 살도 채 되기 전에 심한 병을 앓아 시력과 청력, 말하는 능력을 모두 잃었다. 그녀의 삶은 신체적 장애를 극복한 인물의 대표적인 사례를 잘 보여준다. 앤 설리번의 끈질긴 가르침을 통해 헬렌 켈러는 글을 읽고 쓰고 말하는 것을 배웠을 뿐 아니라, 1904년에는 래드클리프 대학을 우등으로 졸업했다. 이후 여러 편의 글, 책, 자서전을 썼으며, 미국 맹인 협회와 해외 맹인들을 위한 미국 재단의 임원으로 활동했다. 또한 25개국에서 강연 활동을 했고, 세계 유수의 상도 여러 차례 받았다. 엄청난 장애를 이겨낸 헬렌 켈러의 용기, 신념, 낙관주의는 여러 가지 방면에 큰 영향력을 미쳤다. 그녀의 놀라운 업적은 우리 모두가 지닌 잠재력의 상징이다.

"안전이란 대개 미신일 뿐이다
자연은 결코 안전하지 않으며, 인간의 아이들도 대체로 안전함을 느끼지 못한다
위험을 회피하는 것은 장기적으로는 위험에 완전히 노출되는 것보다 안전하지 못하다
용기와 모험심이 없다면 인생은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내게 역경을 내려주신 데 대해 신에게 감사한다
역경을 통해 나는 나 자신과 나의 일, 나의 신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참을성은 가장 큰 마음의 선물이다
참을성은 자전거 위에서 균형을 잡는 데 필요한 것과 같은 두뇌의 활동을 필요로 한다
얼굴을 해가 있는 쪽으로 향하면 그림자를 볼 수 없다."
 
▶ 해리 트루먼
미국 33대 대통령인 해리 트루먼은 2차 세계대전 종전 무렵의 혼란기를 맞아 정직과 용기, 결단력을 발휘함으로써 현대의 대중적 영웅으로 떠올랐다. 1차 세계대전에 대위로 참전했던 트루먼은 판사와 상원의원을 거쳐 부통령이 되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1945년에 죽자, 트루먼은 순식간에 미국 역사상 가장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그는 신속하게 UN을 조직했고, 독일의 무조건 항복을 이끌어냈으며, 포츠담 정상회의에 참석했으며, 히로시마와 나가키에 원자탄을 투하함으로써 태평양전쟁을 끝냈다. 1948년 대통령에 당선된 뒤 그는 마셜 플랜을 통해 서유럽의 경제 복구를 지원했으며, NATO를 결성하여 유럽의 비공산주의 국가들과 집단 안보 체제를 구축했다.

"역사가가 아니라 인간에게서 배워라
우리는 인간의 존엄성이 영원히 존중되는 새로운 세계,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은 세계를 건설해야 한다
역사가 인간을 만드는 게 아니라, 인간이 역사를 만드는 것이다
정의는 이 세상의 가장 강력한 힘이다
우리는 오로지 정의의 엄청난 힘 앞에만 굴복할 것이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나는 늘 정치가보다 군인을 아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열기를 견딜 수 없다면 주방에서 나가라
대통령이란 마치 호랑이 등에 타고 있는 것과 같다
아래로 떨어지면 잡아먹힐 뿐이다
적을 설득할 수 없다면 혼동시켜라
아이들에게 충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먼저 아이들이 원하는 게 뭔지 알아낸 다음 그것을 하라고 충고하는 것이다
이웃이 일자리를 잃으면 불경기이고, 자신이 일자리를 잃으면 공황이다.

▶ 월트 디즈니
만화영화의 개척자인 월트 디즈니는 어릴 때부터 창조적인 재능을 선보였다. 타고난 예술적 재능을 바탕으로 그는 통신학교에 다니던 시절부터 만화를 공부했으며, 나중에 캔자스시티 예술학교와 디자인스쿨에 들어 갔다. 1920년대 후반 디즈니는 만화영화에 음향을 넣을 수 있는 가능성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음성과 음악이 담긴 단편 만화영화 `증기선 윌리 호`를 만들어 미키마우스의 캐릭터를 소개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였던 1930년대에 디즈니의 만화는 관중을 사로잡았다. 이후 여러 작품을 통해 장편 만화영화계의 거장으로 확고하게 자리잡았다. 월트 디즈니는 48개의 아카데미상과 일곱 개의 에미상을 받았다. 그의 창조성과 독창성, 그리고 공상을 현실로 만드는 그의 능력은 이후에도 시대를 초월한 지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그것에 집착하라
그것을 파고들어 마침내 현실로 이루어질 때까지 노력하라
요즘 같은 시대에 어느 누구든 자신이 완전히 자수성가 했다든가, 오로지 자신의 힘만으로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하는 것은 얄팍하고 건방진 태도이다
어느 한 개인이 많은 사람들의 몸과 마음이 함께 어우러진 결과다
가까운 인간관계가 공동의 성공에 영향을 미친다고 여기는 데서 커다란 위안과 영감을 얻을 수 있다
그것은 때때로 닥쳐오는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는 데 필요한 든든한 힘이 된다
꿈을 추구할 용기만 있다면 어떤 꿈이든 실현될 수 있다."
 
▶ 조지 워싱턴
미국의 장군이자 총사령관으로서 식민지 군대를 지휘하여 미국의 독립혁명을 성공시키고, 이후 미국의 초대 대통령에까지 오른 조지 워싱턴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부유한 버지니아 이주민의 가정에서 태어난 워싱턴은 측량기사로 일하다가 프렌치-인디언 전쟁에서 군사적 경험을 쌓았다. 곧이어 닥친 미국 혁명에서 조국은 그의 도움을 필요로 했다. 워싱턴은 1775년 식민지 전 군대의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이후 5년여 동안 그는 포지 계곡에서 혹독한 겨울을 보내는 등 숱한 고난 속에서도 순수한 품성과 뛰어난 영도력으로 전군을 지휘했다. 결국 1781년 요크타운의 콘윌리스를 장악하면서 전쟁은 끝났다. 곧이어 만장일치로 대륙회의의 주재자가 되었다. 1789년 미국 초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고, 4년뒤 재선되었다.

"자신의 명성과 평판을 고려한다면 좋은 품성을 가진 사람들과 교류하는 게 좋다
나쁜 사람들과 어울리느니 차라리 혼자인 편이 더 낫기 때문이다
자신을 가장 잘 알아주는 사람에게 항거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참된 우정은 서서히 자라난다
숱한 역경을 거치고 견뎌내야만 우정이라 불릴 자격이 있는 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항상 내가 가장 탐내는 것, 즉 정직한 품성을 유지할 만큼 굳고 고결한 미덕을 가지고 있기를 바란다
자유는 한 번 뿌리 내리면 순식간에 큰 나무로 자란다
이성은 뒤늦게라도 잘못 보낸 어리석은 시절을 깨우치게 한다
전쟁에 대비하는 것은 평화를 보존하기 위한 효과적인 수단 가운데 하나다
언론의 자유가 박탈된다면 우리는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들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침묵하게 될 것이다."
 
▶ 골다 메이어
골다 메이어는 이스라엘을 건국하는 데 이바지했고 4대 총리를 역임했다.(1969-74). 1898년 우크라이나의 키예프에서 태어나, 1906년 미국 위스콘신으로 이주했다. 그녀는 밀워키 시오니스트 노동당의 지도자가 되면서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1921년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한 뒤, 유대인 단체와 세계 시오니스트 기구에서 두루 요직을 맡았다.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언한 뒤 노동부 장관과 외무부 장관을 거쳐 1969년에 총리로 임명되었다. 정부를 이끄는 동안에는 외교적 수단으로 중동의 평화 정착을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평화를 이루려는 그녀의 노력은 4차 아랍-이스라엘 전쟁이 터지면서 중단 되었다. 1974년에 총리직에서 물러났으나 그 후에도 큰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1978년 그녀가 죽고 난뒤에 12년간이나 백혈병을 앓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녀의 강인한 힘과 정신이 널리 알려졌다.

"움켜쥔 주먹으로는 악수를 할 수 없다
진심으로 통곡해 보지 않은 사람은 진심으로 웃을 줄도 모른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어떤 일을 할 때 성공여부를 따져본 적이 없다
그저 옳다고 여기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를 고려하지 않고 행할 따름이다
노년이란 폭풍우를 뚫고 날아가는 비행기와 같다
일단 비행기를 타고 있으므로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나라를 전쟁으로 몰아넣는 데 주저함이 없는 지도자는 올바른 지도자가 아니다."

▶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32대 대통령 프랭클림 델라노 루스벨트는 12년 이상 재임함으로써 역대 최장기 대통령을 지냈다. 그는 연방의 권한을 크게 확장시켜 대공항 기간에 경제 복구를 꾀했으며, 2차 세계대전 중에는 연합국의 주요 지도자로 활약했다. 구스벨트는 하버드 대학교와 컬럼비아 법과대학을 다녔다. 1910년 뉴욕상원의원에 당선되었고, 3년 뒤에는 해군 차관보로 임명되었다. 그는 소아마비 장애를 극복하고 민주당 소속으로 활발한 정치 활동을 전개했으며, 1928년에는 뉴욕 주지사로 당선되었다. 1931년 대통령에 당선된 루스벨트는 뉴딜이라는 광범위한 경제 정책을 신속하게 집행했는데, 이는 다양한 연방 기관들을 통해 구제, 차관, 일자리를 창출하려는 정책이었다. 루스벨트는 군수 산업을 일으켜 영국에 대한 대대적인 지원에 나섰다. 그는 영국, 소련과의 동맹을 이루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맡아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밧줄의 끝부분까지 갔을 때는 매듭을 짓고 매달려라
우리가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오로지 두려움 자체뿐이라는 게 나의 굳은 신념이다
우리가 바라는 세계는 네 가지 필수적인 인간의 자유에 뿌리를 두고 있다
첫째는 언론과 표현의 자유다
둘째는 모든 사람이 자기 방식대로 신을 숭배할 수 있는 자유다
셋째는 결핍으로부터의 자유다
넷째는 공포로부터의 자유다
우리는 항상 지평선 너머에 더 나은 삶, 더 나은 세상이 있다는 희망을 굳게 믿는다
진리는 인간이 그것을 추구할 자유를 가질 때 발견된다
내일을 실현하는 데 한계가 있다면 그것은 단지 오늘 품고 있는 회의 뿐이다
연설에 관해
"성실하게 하시오
간략하게 하시오
자리에 앉아서 하지오." 우리 그리고 우리만큼 자유를 굳게 믿는 모든 이들을 무릎을 꿇고 살기보다 서서 죽기를 원한다
우리는 전쟁을 끝내기보다 모든 전쟁의 시작을 끝내고자 한다."
 
▶ 샤를 드골
군인이자 작가이자 정치가인 샤를 드골은 2차 세계대전 중 프랑스 저항운동의 상징으로 활약하면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그는 프랑스 5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여 1958년에서 1969년 까지 재임했다. 1차 세계대전에 중위로 참전했던 드골은 세 차례나 부상을 입고 3년 동안 포로 생활을 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공 정부차관으로 승진했다. 친독일 성향의 비시 정부가 들어서자 영국으로 망명했다. 영국에서 그는 라디오 방송을 통해 프랑스 국민에게 저항 투쟁을 계속하라고 호소했으며, 그 때문에 부재중에 사형선고를 받았다. 하지만 드골은 자유 프랑스저항 세력을 구축하는 작업에 계속 전념했다. 결국 연합국 지도자들의 지지를 받아 1944년 드골은 다시 새 정부를 구성하고 5공화국의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묘지에는 반드시 필요한 사람들이 가득하다.
위대한 일은 위대한 인물 없이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
인간은 오직 위대해지려는 각오가 있어야만 위대해질 수 있다.
역사는 숙명론을 가르치지 않는다.
지금은 소수 자유로운 사람들의 의지로 결정론을 격파하고 새 길을 열어야 할 때다.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어울리는 역사를 꾸리게 마련이다.
영광은 늘 그것을 꿈꿔온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다.
심사숙고는 많은 사람이 하는 일이고, 행동은 한 사람만이 하는 일이다.
침묵은 궁극적인 무기다.
정치란 언제나 불리한 조건에서 선택하는 것이다.
위대한 리더들은 항상 자신의 영향력을 배후에서 조종한다.
행동적인 사람은 누구나 강한 자존심과 긍지를 가지고 있으며 냉혹하면서도 교활하다. 그러나 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다면 그 모든 것들은 고결한 자질이 될 것이다."
 
▶ 데일 카네기
데일 카네기는 연설과 인성 개발의 개척자이다. 그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는지 보여줌으로써 명성을 얻었다. 그의 저서인 `친구들을 얻고 사람들을 움직이는 방법`은 1,000만 부 이상 팔려나갔으며, 30개 국어로 번역되었다. 간단하고 매끄러운 말투로 이야기를 섞어 연설하는 그의 방식은 사람들에게서 큰 인기를 모았다. 활동을 시작할 무렵 카네기는 `비즈니스의 연설과 사람들을 움직이는 법`을 썼는데, 이 책은 연설 방법의 표준 교과서로 자리 잡았다. 데일 카네기는 자신의 작업을 학생들과 함께 하는 시리즈 강연으로 조직했다. `효율적인 연설과 인간관계를 위한 카네기 학교`의 강의 내용은 50년 이상에 걸쳐 성공적인 비즈니스 활동을 위한 초석이 되었다. 데일 카네기는 성공이란 끈기와 인내와 솔선수범의 소산이라는 자신의 주장을 몸으로 직접 보여준 산 증거였다.

"자신의 현재 하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성공을 이룰 수 없다.
아첨은 입에서 나오지만, 진실한 생각은 가슴에서 나온다.
내가 먼저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면 두 달만에 많은 친구를 만들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이 내게 관심을 가지게 하려고 애쓴다면 2년이 걸려도 친구를 얻을 수 없다.
꿀을 모으려면 벌집을 걷어차서는 안 된다. 자신의 의무를 자신의 재산처럼 생각하기만 한다면 의무에 대해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자기 자신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면 인생에서 최고의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진취적이고 모험을 꺼리지 않는 사람이 가장 멀리 가게 마련이다. 분명한 것은, 보트를 타고서는 결코 해변에서 멀리 갈 수 없다는 사실이다.
실패에서 성공을 끌어내라. 좌절과 실패는 성공을 향한 가장 확실한 디딤돌이다.
두려워지면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생각을 집중하라.
만반의 준비를 갖춘다면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이다.
우리는 모두 우리 자신도 알지 못하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가능하리라고 꿈도 꾸지 못한 일을 할 수 있다."
 
▶ 부커 워싱턴
1856년 노예의 신분으로 태어난부터 워싱턴은 당대에 가장 영향력 있는 흑인 지도자이자 교육자가 되었다. 그는 흑인들이 대학 교육보다 실용적인 직업 교육을 통해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흑인들의 경제적 성공을 도우려는 일환으로 그는 앨러배마의 터스키기에 흑인들을 위한 직업학교인 터스키기 학교를 세우고 교장이 되었다. 터스키기 학교가 성공을 거두자 흑인과 백인의 공동진보가 가능하다고 굳게 믿은 워싱턴은 재빨리 정치 지도자로 변신해서 대통령과 의원, 주지사들에게 각종 자문을 해주었다. 그의 자서전 `노예 신분으로부터의 상승`은 베스트셀러가 되어 그를 전국적 유명 인사로 만들었다. 인종 갈등이 고조되던 시대에 워싱턴이 취한 협력적인 방식은 흑인과 백인 양측에게서 지지를 받았다. 그 시대는 당연히 `부커 워싱턴 시대`라고 불렸다.

"밭을 가는 것도 시를 쓰는 것에 못지 않게 존엄한 일이라는 점을 깨닫지 못하면 어떤 인종이라도 발전할 수 없다.
빼어나다는 것은 평범하지 않은 방법으로 행하는 것을 가리킨다.
성공은 인생에서 도달한 지위가 아니라, 성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극복해낸 장애물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사람과 함께 있지 않으면 그 사람을 얻을 수 없다.
세상은 한 개인이 얼마나 지식을 갖추고 있느냐에는 별로 주목하지 않고, 그 사람이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느냐에만 주목한다."
 
▶ 레이 크로크
맥도널드 사를 설립한 레이 크로크는 외식 산업을 혁명적으로 개선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의 고집과 근면 성실은 현대 기업 리더의 표상이 되었다. 크로크가 성공한 계기는 캘리포니아 샌버너디노에서 형제들과 함께 조그만 식당을 하면서 비롯되었다. 일관 작업 배치(기계 앞에서 각 단계별로 근로자가 배치되어 부분별로 제품을 완성해 나가는 방식;옮긴이)로 햄버거, 프렌치프라이, 밀크셰이크를 만드는 그들의 방법은 간단하면서도 효율적이었다. 크로크는 이런 방식이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크로크의 첫번째 맥도널드 상점은 1955년 4월 15일에 문을 열었다. 이후 크로크는 독특한 프랜차이즈 제도를 꾸준히 사세를 확장했다. 고개 서비스에 관한 그의 방식과 구상은 수많은 다른 기업들에게도 본받을 모델이 되었다. 자신의 구상을 지속적으로 견지함으로써 그는 개인적인 성공을 거두었을 뿐 아니라, 자선과 교육 사업에서도 자신의 뜻을 펼 수 있었다.

당신의 능력은 당신이 고용한 사람들이 좌우한다.
한 개인의 자질은 스스로 설정한 목표에 반영되어 있다.
원칙을 가진다는 것은 중요하다. 부자가 원칙을 가지기는 쉽지만, 중요한 것은 가난해도 원칙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싹틀 때는 성장하지만 다 익으면 부패하기 시작한다.
우리가 만든 것은 엄격한 원칙에 충실한 기업 조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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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히말라야 : 하늘에 주소를 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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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인 김인자씨가 희말라야 안나푸르나 트래킹을 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이야기들을 적은 여행기
약간은 좀 까탈스러운 듯한 성격인것과, 시인적인 감수성이 책 내용에서 그대로 베어 나온다.
나에게 지금 현재 가장 가고 싶은 여행지가 어디냐고 물어본다면 당연히 안나푸르나 트래킹을 하는것이다. 이 책을 보기 전에 아마 생각만 하다가 허영만씨의 식객을 본 다음부터 결정을 했던 것인데, 이렇게 책을 접하고 나니 더욱더 빨리 가고 싶어진다.
가서 무엇을 할지, 무엇이 보고 싶은지.. 그런것도 없다.. 그냥 가고 싶을 뿐이다... 하지만 이런 막연한 나에게 김인자씨가 속삭여 주는것 같다. 겸허한 마음으로, 경외하는 마음으로, 큰것만을 보고, 찾겠다는 생각보다는 작은것도 놓치지 않고, 작은것에도 기뻐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지라고...
눈의 집 희말라야 !
풍요의 여신 안나푸르나!
설인 예티!
기다려라 내가 간다!


<도서 정보>제   목 : 걸어서 히말라야 : 하늘에 주소를 둔 사람들
저   자 : 김인자
출판사 : 눈빛
출판일 : 2005년 7월
구매일 :
일   독 : 2005/12/21
재   독 :
정   리 :

<이것만은 꼭>
40살이 되기전에 반드시 희말라야에 간다!
기다려라! 안나푸르나... 희말라야...


<미디어 리뷰>
저자 : 김인자
김인자 님은 1955년 강원도 삼척 출생으로, 1989년 『경인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했고, 같은 해 시 전문지 『현대시학』 시를 찾아서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겨울 판화』 『나는 열고 싶다』 『상어떼와 놀던 어린 시절』 『슬픈 농담』이 있고, 산문집으로 『그대, 마르지 않는 사랑』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물』을 출간했다. 여행서로 『마음의 고향을 찾아가는 여행, 포구』 외 다수의 공저가 있다. 1990년대 초 배낭 여행을 시작으로 오늘에 이르렀으며, 그 경험을 바탕으로 쓴 기행문을 월간 잡지, 일간 신문 등에 연재하고 있다.
지난 1989년 문단에 데뷔해 네 권의 시집과 세 권의 산문집을 펴낸 바 있는 시인 김인자 씨의 히말라야 여행기가 한 권의 책으로 묶여 출간되었다.『걸어서 히말라야』에는 지난 2001년 11월, 한 달간의 여정으로, 베시샤하르를 출발해 마낭을 지나 트롱라 고개를 넘은 후 묵디나트 좀솜을 거쳐 마차푸차레 베이스 캠프와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에 이르는, 총 350킬로미터의 길을 오직 두 다리에만 의지해 걸으며 일기를 쓰듯 써내려간 삼십여 편의 글과 50여 컷의 컬러 사진이 함께 실려 있다.


<책속으로>
서문 - 나는 왜 히말라야를 걸었는가
히말라야 시편 - 하늘에 주소를 둔 사람들

제1장 그러나, 아름다운 예감
떠나는 것인가, 어디로 무엇을 향해
그러나, 아름다운 예감
가난, 그리고 삶과 죽음
트레킹도 인도 영화처럼
오직 당신 뜻대로

제2장 나마스떼와 노 플라블럼
나마스떼
똥을 밟지 않고 오를 수는 없을까
드디어 설산이다
오직, 노 플라블럼
한계를 넘어서

제3장 한밤중 은빛 설산
노부부
너무나 깊고, 너무나 높고, 너무나 그윽한
나는 예티를 만나고 싶어
실패를 축하받다
묵디나트 사원에서 한나절

제4장 부르트지 않은 생이 어디 있으랴
모래바람을 안고 걷다
부르트지 않은 생이 어디 있으랴
펜만으로 시를 쓰지 말자
아직도 오르막을 두려워하다니
푼힐 전망대와 공중마을 타다파니

제5장 햇살은 모든 존재를 눈부시게 한다
산, 텅 빈 혼에 머물다 가는 시간
다시 한 번 안나 신이여, 부디 저를 허락하여 주소서
햇살은 모든 존재를 눈부시게 한다
하산, 반갑지 않은 내리막
사랑이 아니면 무엇으로

제6장 신발 한 켤레로 시작된 트레킹
마지막, 이별
포카라의 페와 호수
자유, 주체할 수 없는 축복
아름답고 아픈 도시 포카라를 떠나며
나가르곳과 티미
굿바이 히말라야

발문 - 달을 가리키는 시인의 손 _ 임현담
트레킹 지도


내 친구는 다섯 달이나 되는 인도 여행에서 한 달 내내 눈만 뜨면 갠지스 강가 화장터에서 시간을 보냈고 그곳에서 얻은 답으로 지금까지 살고 있다고 했는데, 나도 여기서 한동안 밥을 먹듯 주검과 함께 살다 보면 언젠가 나는 무엇인지, 왜 사는지, 우리는 어디로 가는지, 삶과 죽음에 관한 현답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본문 45p 중에서

단 한번이라도 히말라야를 걸어본 사람은 다시는 이전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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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구 - 관촌수필 - 행운유수(行雲流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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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촌수필의 8편중에 행운유수(行雲流水)라는 편만을 읽었다. 저자의 어릴적 이야기와 같다고 하던데...
옹점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결혼을 잘 선택해야 겠다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해본다.
사랑이라는것도 당연히 중요한 부분이지만, 비슷한 수준, 비슷한 형편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를 제외하기란 힘들듯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도 사랑으로 극복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세상의 모든것이 그렇듯이 사랑도 변하는 법.. 물론 좋은쪽으로도 변할수도.. 나쁜쪽으로 변할수도 있는...
요즘 왠지 모르게 자유롭게 산다는것에 대해서 종종 생각하게 된다. 혼자 산다기보다는 억지로 메여서 사는것이 싫어지는.. 내 자신도 그러기 싫지만 상대방도 왠지 나때문에 구속이 되어서 산다는것이 서글픈 생각이 든다...

암튼 나머지 7편은 차차 읽자...


<도서 정보>제   목 : 관촌수필 - 행운유수(行雲流水)
저   자 : 이문구
출판사 :
출판일 :
구매일 :
일   독 : 2005/12/22
재   독 :
정   리 :

<이것만은 꼭>
시집, 장가는 잘가야되!


<미디어 리뷰>
저 : 이문구
고향 잃은 사람들이 갈 곳 없음을 밝히면서 우리 사회 현실 속에서 개인이 겪는 갈등과 불안의 실마리를 제시하는 글들을 써온 이문구 씨는 농민소설의 전범을 보여주는 소설가다. 오늘 날에는 보령으로 바뀐 충남 내천의 관촌 마을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랐으며, 6·25전쟁으로 아버지와 형들을 잃고, 이어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 15세 때 가장이 되었다. 1959년 중학교 졸업 후 상경해 막노동과 행상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그는 1961년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에 입학해 김동리, 서정주 등에게 수학했다. 등단작품《다갈라 불망비》(1963)와 《백결》(1966)의 독특한 문장과 문체에 주목한 김동리는 추천사에서 '한국 문단은 가장 이채로운 스타일리스트'를 얻게 되었다고 밝혔다. 문장으로 치면 '북의 홍명희, 남의 이문구'라 할 정도로 만연체와 구어체, 토속어와 서민들의 생활언어가를 구수하게 구사하고 있다. 그런 그의 작품들은 문학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고 독자들에게 오랜 시간 사랑을 받았지만 작가 등단 27년 만에 『매월당 김시습』이 처음으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한편 한국문학의 발전을 위해 민족문학작가회의, 한국소설가협회, 국제펜클럽 등의 단체에서 활발한 사회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일낙서산' 등 8편의 중,단편으로 분단과 전쟁으로 파괴된 토착,전통 세계의 몰락과 농촌의 현장을 현대의 실향의식으로 형상화 시킨 최초의 연작소설집.


<줄거리>
행운유수 - 어릴적부터 누나같이 엄마같이 지내던 옹점이와 주인공 나의 이야기로.. 옹점이가 시집을 가서 심하게 시집살이를 하다가 결국에 남편은 전쟁에서 죽고, 유랑극단을 따라간다는 이야기...


●관촌수필(冠村隨筆) : 이문구 연작(連作, 1972~1977)소설, 단편 소설

1. 일락서산(日落西山)

시골엔 다녀오되 성묘를 볼 일로 한 고향길이긴 근년으로 드문 일이었다. 더욱이 양력 정초에 몸소 그런 예모(禮貌)를 가려 스스로 치름은 낳고 첫겪음이기도 했다. 물론 귀성열차를 끊어 앉고부터 '숭헌, 뉘라 양력 슬두 슬이라 이른다더냐, 상것들이나 왜놈 세력(歲曆)을 아는 벱여.......' 세모가 되면 한두 군데서 들오던 세찬(세밑에 선물하는 물건)을 놓고 으레 꾸중이시던 할아버지 말씀이 자주 되살아나 마음 한 켠이 결리지 않은 바도 아니었지만, 시절이 이런 시절이매 신정 연휴를 빌미할 수밖에 없음을 달리 어쩌랴하며 견딜 거였다. 그러나 할아버지한테 결례(불효)를 저지르고 있다는 느낌을 나 자신에게까지 속일 순 없었다.

아주 어려서 입때(입때 : 이때까지)에 이르기까지, 나에게 있은, 우리 가문을 지킨 모든 선인 조상들의 이미지는 오로지 단 한 분, 할아버지 그분의 인상밖엔 없었기 때문이었다. 좀 야한 말로 다시 말하면, 내가 그리워해 온 선대인은 어머니나 아버지, 그리고 동기간들이 아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고색창연(古色蒼然)한 이조인(李朝人)이었던 할아버지, 오직 그 한 분만이 진실로 육친이요, 조상의 얼이란 느낌을 지워 버릴 수 없는 거였고, 또 앞으로도 길래 그럴 것만 같이 여겨진다는 이야기다. 받은 사랑이며, 가는 정으로야 어찌 어머니 위에 다시 있다 감히 장담할 수 있으랴만, 함에도 삼가 할아버지 한 분만으로 조상의 넋을 가늠하되, 당시로 받은 가르침이며 후제(후제 : 뒷날의 어느 때)에 이르러 깨달음을 진실로 받들고 싶도록 값지게 여겨지는 바엔, 거듭 할아버지의 존재와 그 추억의 편린(片鱗)들을 가재(家財)의 으뜸으로 다룰 수밖에 없으리라 싶은 것이다. 초사흗날, 그중 붐비잖을 듯싶던 열차로 가려 탄 게 불찰이라 하게 피곤하고도 고달픈 고향길이었다. 한내읍에 닿았을 땐 이미 세시도 겨워, 머잖아 해거름을 만나게 될 그런 어름이었다. (발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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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상 : 화자가 직접 자신의 성장과정을 말하고 있는 수필 같은 소설이다. 충청도 특유의 사투리 와 1인칭 독백체의 문체는 작품 전체를 훈훈한 이야기로 이끌어간다. 산업화 과정에서 겪는 소 외, 갈등, 농촌의 어려움 그리고 그 해체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오늘을 사는 우리의 모습을 되돌 아보게 하는 동시에 삶의 반성의 계기로 삼고자 한다.

* 배경 : 6.25직후 충청도 관촌(갈머리) 마을
* 시점 : 1인칭 주인공
* 성격 : 자전적, 회고적, 순수 소설
* 전체 내용 : 8편의 연작 소설 형태
1. 일락서산(日落西山) : 나의 인격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 할아버지와 옛날 어린 시절 고향 풍경을 향수조로 엮음
2. 화무십일(花無十日) : 6 25전쟁을 통한 윤영감 일가의 수난사, 비극적 관계를 회상
3. 행운유수(行雲流水) : 성장기에 함께 했던 옹점이의 결혼 생활, 인생유전을 가슴 아프게 그림
4. 녹수청산(綠水靑山) : 대복이와 그 가족에 얽힌 이웃 이야기 그리고 그 삶이 퇴색되어 가는 과정을 그림
5. 공산토월(空山吐月) : 왕조 체제의 억압적 구조 속에 신음하면서도 서로 돕던 백성의 전형을 석공(石工)을 통해 보여 줌
6. 관산추정(關山芻丁) : 포근하던 한내(大川)가 도시에서 밀려들어온 소비문화와 퇴폐의 하수구로 전락한 실상을 그림
7. 여요주서(與謠註序) : 아버지의 병구완을 위해 잡은 꿩 때문에 자연보호를 위배했다는 이유로 공권력의 횡포를 당함
8. 월곡후야(月谷後夜) : 벽촌에서 소녀를 겁탈한 사건을 둘러싸고 동네 청년들이 범인에게 사적인 제재를 가한다는 이야기

* 의의 : 농촌 문제를 비교적 사실적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여유있고 걸쭉한 입담과 해학으로 접근한 농민소설의 전범
* 주제 : 따뜻한 공동체적 삶의 파괴, 농촌의 어려움
* 출전 : [현대문학](1972~1977)


<책속으로>
1. 일락서산
2. 화무십일
3. 행운유수
4. 녹수청산
5. 공산토월
6. 관산추정
7. 여요주서
8. 월곡후야

시골을 다녀오되 성묘가 목적이기는 근년으로 드문 일이었다. 더욱이 양력 정초에 몸소 그런 예모를 찾고 스스로 치름은 낳고 첫 겪음이기도 했다. 물론 귀성 열차를 끊어 앉고부터 '숭헌... 뉘라 양력슬두 슬이라 이른다더냐, 상것들이나 왜놈 세력을 아는 벱여...' 세모가 되면 한두 군데서 들어오던 세찬을 놓고 으레껀 꾸중이시던 할아버지 말씀이 자주 되살아나 마음 하켠이 결리지 않은 바도 아니었지만, 시절이 이러매 신청 연휴를 빌미할 수 밖에 없음을 달리 어쩌랴 하며 견딘 거였다. 그러나 할아버지한테 결례(불효)를 저지르고 있다는 느낌을 나 자신에게까지 속일 수는 없었다. 아주 어려서부터 이렇게 되기까지, 우리 가문을 지킨 모든 선인 조상들의 심상은 오로지 단 한 분, 할아버지 그 분의 인상밖에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p.7
세월은 지난 것을 말하지 않는다. 다만 새로 이룬 것을 보여줄 뿐이다. 나는 날로 새로워진 것을 볼 때마다 내가 그만큼 낡아졌음을 터득하고 때로는 서글퍼하기도 했으나 무엇이 얼마만큼 변했는가는 크게 여기지 않는다. 무엇이 왜 안변했는가를 알아내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p.295
모닥불은 계속 지펴지는 데다 달빛은 또 그렇게 고와 동네는 밤새껏 매양 황혼녘이었고, 뒷산 등성이 솔수펑 속에서는 어른들 코골음 같은 부엉이 울음이 마루 밑에서 강아지 꿈꾸는 소리처럼 정겹게 들려오고 있었다. 쇄쇗 쇄쇗…. 머리 위에서는 이따금 기러기떼 지나가는 소리가 유독컸으며, 낄룩― 하는 기러기 울음 소리가 들릴 즈음이면 마당 가장자리에는 가지런한 기러기떼 그림자가 달빛을 한 옴큼씩 훔치며 달아나고 있었다.”--- p.51
'나는 살으야 되어...' '나둬라, 놔둬, 이늠으 여편네, 집에 가지 마. 절대루 가먼 안되여.... 내 한몸 살자구 논 팔구 밭 팔면 새끼 들은 뭣 먹구 사네, 새끼들 멕이구......차라리 내가 이냥 죽을 텨. 나 하나 죽구 여러 목숨 살으야지......'

'잘들 사는 걸 보구 죽으야 옳을 틴디, 이대루 죽어서 미안허네......부디 잘들 살어.......'--- p.367-368
그것은 내가 그리워해 온 선대인은 어머니나 아버지, 그리고 동기간들이 아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고색 창연(古色蒼然, 퍽 오래 되어 예스러운 풍치가 그윽함)한 이조인(李朝人)이었던 할아버지, 오직 그분 한 분만이 진실로 육친이요 조상의 얼이란 느낌을 지워 버릴 수 없은 거였고, 또 앞으로도 길래(오래도록) 그럴 것같이 여겨진다는 것이다. 받은 사랑이며 가는 정으로야 어찌 어머니 위에 다시 있다 감히 장담할 수 있을까마는, 그럼에도 삼가 할아버지 한 분만으로 조상의 넋을 가늠하되, 당신 생전에 받은 가르침이야말로 진실로 받들고 싶도록 값지게 여겨지는 터임에, 거듭 할아버지의 존재와 추억의 조각들을 모든 것의 으뜸으로 믿을 수밖에 없던 것이다.

초사흗날, 기중(其中, 그 가운데) 붐비지 않을 듯싶던 열차로 가려 탄 것이 불찰이라 하게 피곤하고도 고달픈 고향길이었다. 한내읍에 닿았을 때는 이미 3시도 겨워(때가 늦어) 머잖아 해거름을 만나게 될 그런 어름이었다. 열차가 한내읍 머리맡이기도 한 갈머리〔冠村部落〕 모퉁이를 돌아설 즈음엔 차창에 빗방울까지 그어지고 있었다. 예년에 없던 푹한(퍽 따뜻한) 날씨기에 눈을 비로 뿌리던 모양이었다. 겨울비를 맞으며 고향을 찾아보기도 난생 처음인 데다 정 두고 떠났던 옛 산천들을 돌아보이자, 나는 설레이기 시작한 가슴을 부접할(의지할) 길이 없었다.---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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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최고의 멘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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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작업후 관리자와 통화해서 안부와 문제가 없는지 연락하라.
만난지 24시간이내에 안부 메일을 보내라.
나 자신에게 완벽을 추구하라. 합리화하지 말라.
고객관리 프로그램을 구축하라.
전화상담이나 직접 상담시 다른 용무는 전혀 하지말라.

위의 내용은 내가 책을 읽다가 생각나거나 참고하기 위해서 메모를 해놓은것이고, 전체적으로 실망이다.
이영권씨가 말은 잘하는데, 글은 잘 못쓰는건지, 아주 책 내용이 성의가 없다. 앞에서 한 이야기를 뒤에서 또하고 뒤에가서 또하고.. 중요한 내용의 정리가 아니라.. 반복의 반복이다.
거기에다가 A4용지 한장이면 모두 정리가 될것같은 책의 내용을 책한권으로 뻥튀기를 해 놓았으니 답답할뿐이다.
얼마전에 들었전 강의내용이 같은 내용이지만 말을 잘해서 그런지 더 알차고 배울게 많았다는 생각뿐...
하지만 조지브라운에 대한 존경심은 변함이 없다. 이영권씨에 대한 실망뿐...
조지브라운씨의 이야기는 가슴 깊이 세기고, 실천하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해야겠다.


<도서 정보>제   목 : 내 인생 최고의 멘토
저   자 : 이영권
출판사 : 아름다운사회
출판일 : 2004년 5월
구매처 : Yes24
구매일 :
일   독 : 2005/1/1
재   독 :
정   리 :

<이것만은 꼭>
나 자신에게 완벽을 추구하자! 절대 합리화하지 말고, 내가 나에게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키자! 그리고 해내자!
나 자신에게 무섭도록 냉철해지자.. 남에게 그러듯이...


<미디어 리뷰>
저자 : 이영권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 뉴욕 New School에서 경영학 과정 수료. 명지대학교 경영학 박사. SK상사 뉴욕지사 근무. 마케팅실장, 사장실장 겸 홍보담당 이사 역임. 서울대 아주대, 홍익대 경영대학원에서 국제경영학 강사 역임. 명지대학교 겸임교수(現) 세계화전략연구소 소장(現) KBS 2라디오 ‘이영권의 경제포커스’ 진행자 (現) 매일경제TV 'MBN 경제매거진‘ 진행자
KBS2TV '생방송 세상의 아침‘ 경제 패널(現)

『세계가 보인다, 경쟁력이 보인다』『현대국제경영』『이영권의 경제포커스』『글로벌시대의 무역영어』『이영권의 경영, 경제이야기』『이것이 기업 PR이다』외 다수 저서

인생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성공의 길을 밝혀주고 격려해주며 이끌어 주는 스승을 '멘토'라고 부른다. 이 책은 KBS 2라디오 "이영권의 경제포서크" 진행자 이영권 박사의 힘든 청년기 시절에 대한 진솔한 경험을 공개한다. 그리고 인생을 바꿔놓은 정신적인 멘토, 조지 브라운에 대한 생생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펼쳐 놓는다.


<책속으로>
"세일즈맨으로서 비즈니스를 시작하면 주로 주변의 지인들부터 찾아가는데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누구에게나 아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는 법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세일즈계의 이직률이 높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조지 브라운이 택했던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조지 브라운은 주변의 지인들 대신 자신이 새롭게 만난 고객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보았다고 한다. 고객 한 사람을 보면서 그 사람에게 연결된 수많은 네트워크까지 보았던 그는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을 자신의 인적 네트워크로 연결시키는 작업을 했던 것이다.
'처음부터 서두르진 않았습니다.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마치 한 뜸 한 뜸 퀼팅을 하듯 성실하게 대하면서 내 방식을 만들어갔습니다."--- p.38

우물을 깊게 파려면 먼저 넓게 파야 한다. 전문성도 마찬가지다.

싱가포르 에어라인을 이용한 후부터 1년에 한 번씩 임원의 자필사인이 된 편지가 도착했고, 전화를 해서 주소나 직장 등에 대한 정보에 변동이 없는지를 확인하고 했던 것이다.
훗날 싱가포르 에어라인 항공사의 서비스가 세계 1위로 올라섰을때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아! 이게 바로 일류 항공사의 모습이구나하고 깨달았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가능한 한 24시간 이내에 인사편지를 쓴다.

시간약속을 잘 지키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일도 잘할수 없다. 기본이 안되어 있기 때문이다.

성공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 자신과의 약속을 반드시 지키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나 역시 결심을 했다가 중간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이렇게 자기 합리화를 시켰다.
'그래도 이정도면 괜찮은 편이지. 이 상황에서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이제 나는 분명하게 할 수 있는가를 재점검해보고 결심을 한다. 그리고 일단 결심을 했으면 무조건 실천에 옮긴다.

부지런함이란 하루를 일찍 시작하는 습관이다.

생활습관은 분명 바꿀 수 있다. 중요한것은 정신이다. 성공하고 싶다면 정신을 재무장해야만 한다.

아침에 할 일과 저녁에 할 일을 구별하여 관리한다.
아침의 상쾌함을 즐긴다.
아침식사는 꼭 챙겨 먹는다.
아침 기상시간을 정해 두고 반드시 지킨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면 성공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사람들과 약속을 정할 때는 다시 한 번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습관을 갖는 것이 좋다.
나는 이 약속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
자기 자신과의 약속도 마찬가지이다. 뭔가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으면 그것을 꾸준히 해내는 사람이 성공하게 되어 있다. 자기 자신에게 지나치게 관대한 사람은 성공하기가 어렵다. 설사 다른 사람에게는 관대할지라도 자기자신에게 만큼은 무섭도록 냉철해야 한다.

어떻게 그토록 자기 자신을 잘 관리하십니까?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결심한 일을 꾸준히 실행할 뿐입니다.

자, 일어나자. 성공이 너를 기다리고 있지 않느냐! 즐거운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자!

끊임없는 노력만이 우리를 성공의 길로 이끈다. 전문가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라. 그리고 한 번 시작하면 끝장을 보겠다는 근성을 보여라.

자기 자신에게 자신감이 없는 날에는 남 앞에 나서기가 싫은 법이다. 그리고 자신 없이 하는 일이 잘 될 리가 없다.

내 인생의 좌우명은 어떠한 상황이든 주어진 조건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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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 1 : 아프리카, 중동, 중앙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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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야씨의 책중에 3번째 읽는 책...
참.. 책을 잘쓰는 사람이다. 여행기같기도 하고, 수필같기도 하고, 자서전 같기도 하고, 소설 같기도 하고.. 하지만 내용은 충실하면서 재미있고...
그냥 어느 풍경하나 어느 느낌하나 쓸데없이 지나치지 않고, 본인의 생각, 느낌을 잘 표현해주면서 여행에 대한 정보도 잘 알려주며, 꼭 내가 현지에 가있는듯한 느낌을 받는다...
나도 언젠가 이런 책을 쓸수 있을까...

어려운 가정형편에 어렵게 대학에 들어가서 지인의 도움으로 유학을 갔다가, 늦은 나이에 들어간 외국계의 괜찮은 직장을 과감하게 그만두고 여행을 떠나는 한비야.. 과감하게 그만두었다기 보다는 어릴적부터 하고자 했던 일을 하기 위해서 경비를 벌기위해서 잠시 몸을 담았다고 하는게 옳은듯...
암튼 어릴적부터 일생의 로드맵을 그려놓고, 현재는 그토록 하고 싶었던 구호현장에서 띄고 있는 한비야씨가 존경스럽고, 부럽다.
보통 누구나 막연하지나마 하고 싶은 일이나 꿈꾸어왔던 일들이 있을것이다...
하지만 여건이 그렇고.. 핑계가 많다.. 이래서 못가고.. 저래서 못가고.. 너도 장가가봐... 등등.. 어찌보면 이런 사람들은 솔직히 가고 싶지가 않은것일 것이다.
물론 한비야씨가 지금 대략 50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 시집을 안간것도 한 몫을 하겠지만.. 30대초반에 모든것을 뒤로하고 세계여행을 떠나는 그의 모습이 너무나 부럽다.
어찌보면 나도 가고싶다 가고 싶다라고 말을 하지만.. 어쩌면 지금 이렇게 사는 생활에 젖어서 그냥 사는것이 편하기 때문에 떠나지 못하고 있는건 아닌지라는 생각도 든다...
더 한심한것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할것인지도 제대로 계획이나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암튼 한비야씨에게 한수 배웠고, 좋은 여행지 정보와 다른 나라의 문화등에 대해서도 많이 배웠다.
아프리카의 킬리만자로, 사막.. 안나푸르나도 등장하는데 내가 꼭 가고 싶은 여행지들 중에 하나...
자! 빨리 나도 결심하고 떠나고 싶다...


<도서 정보>제   목 :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 1 : 아프리카, 중동, 중앙아시아
저   자 : 한비야
출판사 : 금토
출판일 : 1996년 6월
매일 :
일   독 : 2005/1/3
재   독 :
정   리 :

<이것만은 꼭>
돈벌고, 시간나면 떠난다고? 언제? 나이먹고 늙어 죽기 전에 그런 날이 오겠어?


<미디어 리뷰>
저 : 한비야
"저는 들국화예요. 늦깎이, 그래요. 사실 사람들마다 생애 최고의 시절이 각각 다르잖아요. 어떤 이는 10대, 어떤 사람은 20대에 맞이하지만 저에게는 아직 안 왔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국화라는 거죠. 가을에 피는 한 송이 들국화."

그녀는 오지를 다닐 때 지키는 세 가지 원칙이 있다. 육로로만 다닌다, 한곳에서 적어도 일주일 이상 민박을, 한 나라에서는 적어도 한달 이상 있는다, 그리고 생활은 현지인들과 똑같이 한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손님일까 생각하던 눈빛이 어느새 친근하게 바뀌면서 곧 친구가 되어버린단다.

그렇게 정말 '바람'처럼 지구를 걸어다니던 오지여행가 한비야씨가 2002년 3월을 기점으로 국제난민운동가로의 변신을 시도했다. '비극의 땅' 아프가니스탄에 발을 딛게 된 이유도 첫 시작은 육로 이동의 원칙을 지키려던 의도에서였다. 그러나 전쟁의 한가운데 있던 아프가니스탄, 그 곳에서 지뢰를 밟아 왼쪽 다리와 오른팔을 잃은 여자 아이가 까만 눈망울을 반짝이며 건넨 '귀한' 빵을 한입 덥석 베어 물어 난민촌 아이들의 친구로 거듭나던 순간, 그녀는 그간의 오지 여행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결정적 계기를 발견해 내었다. 세계 여행 전에는 난민에 대해 전혀 관심도 없었고, 처음엔 그저 구경거리에 지나지 않던 그들인데 아프리카 여행을 끝으로 무엇을 하면 좋을까 고민하던 그녀에게 어린 소녀와의 만남은 인생을 결정짓게 되는 커다란 사건으로 꼽힌다.

전쟁이 무서운 것은 사실이나, 만에 하나라도 죽는 장소를 택할 수 있다면 현장에서 인생을 마감하고 싶다는 한비야는 현재 월드비전 긴급구호 팀장으로 일하며 현지 활동을 생생한 필체로 기고하고 있다.


오지 여행가 한비야씨(40)가 5년간의 세계여행을 끝내고 쓴 책. 여행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으로는 자신과 자신의 갈 길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된 것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광고회사 간부로 있다가 퇴직금 2,500만원을 밑돈으로 여행에 나선 이래 온갖 사람들과 숱한 일들을 경험했다. 나도 한번쯤... 하고 꿈꾸는 일들이 이 한권의 책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책속으로>

1. 테레한 반정부 지도자와 10일간의 사랑
2. 이란, 억압받고 있는 불의 나라
3. 전쟁터 아프가니스탄, 사진찍다 총살 직전까지
4. 커피 한 잔이면 어린이 3명 살릴 수 있다
5. 울며 넘은 투르크메니스탄 국경
6. 사마르칸트의 귀한 사랑, 배금자 목사님
7. 연붕홍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8. 눈물범벅 터키 꼬마친구가 준 이별의 지우개
9. 산산산 단풍단풍단풍, 산 속 고운 인심
10. 터키혼탕, 남자 마사지사의 스펀지같은 손길
11. 아프리카 첫날, 케냐에서 강동에게 목졸려
12. 한국딸에 애정 쏟는 맘바마을 엄마
13. 킬리만자로 산신령, 내 한국병 고쳐주다
14. 잔지바르 해변 잊지못할 남자 조나단
15. 인생은 유한하나 여행은 무한하다

'혹시 필리핀에서 오시지 않았어요?'
'또 시작이군.'
세계 어디를 가도 처음에 남자들이 수작을 걸어오는 수법은 비슷하다.
'한국에서 왔어요.'
약간은 짜증기가 묻은 말로 쌀쌀하게 대꾸하며 자리를 찾아 앉으려 하는데,
'내 말 때문에 마음이 상했다면 미안합니다. 그럴 생각은 정말 없었으니까요.'

유창한 영어가 건너왔다. 사과의 말도 마음을 끌었지만 그보다는 이란에서 흔히 들을 수 없는 유창한 미국식 영어가 의아해서 뒤돌아 보았다. 건너편에는 점잖은 태도에 잘 생긴 중년 남자가 미안하다는 뜻으로 오른쪽 손을 가슴에 갖다 대고 있었다. 그 진지한 표정이 왠지 낯설지 않았고 그렇게 점잖은 사람에게 아침부터 냉랭하게 대했다는 게 미안하기도 해서 '아니에요' 하면서 그 사람의 테이블에 합석을 했다.--- p.32
헤라크에서 투르크메니스탄 국경도시 토르곤디까지 가는 험한 길을 고물 러시아 지프로 두 번이나 왕복하게 되었다. 길이 멋있거나 볼거리가 많아서가 아니라 순전히 비자문제 때문. 사연도 복잡하다. 비가 오는 헤라트를 떠나 국경까지는 세 시간만에 무사히 갔다. 그러나 별일 없을 것 같던 입국문제가 여간 까다롭지 않다. 국경사무소에서 한 시간을 기다려도 내 여권 가져간 출입국 경찰은 감감 무소식. 하도 답답해 경비경찰에게 내 여권 가지고 간 사람 어디 갔느냐니까 험악한 얼굴로 무조건 기다리란다. 미친놈! 욕이 저절로 나온다. 러시아식 권위주의가 이런 국경초소 말단 경비경찰에까지 단단히 베어 있는 거다. 맥없이 두 시간을 더 기다리자 출입국 경찰이 내 여권을 들고 한무리 회색코트 정장 차림 경찰들과 나타났다. 그중에 마피아 보스 같은 사람이 딱 잘라 말한다.

'네 여권 가짜니 입국할 수 없음.'
'뭐라구? 내 여권이 가짜라고?'--- p.76
파란 고기, 노란 고기, 까만 고기, 초록색 고기, 파란 바탕에 까만 무늬가 있는 고기, 까만 바탕에 노란 무늬가 있는 고기 등 온갖 종류에, 혼자 다니는 놈이 있는가 하면 떼를 지어 몰려다니는 놈들도 있다. 어떤 놈들은 내가 먹이인 줄 알고 내 얼굴에 입질을 하기도 했다. 말라위 호수는 그냥 멀리서 보기만 해도 아름답지만 그 안에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p.187-188
킬리만자르의 우후르봉에 오를 때 깨달은 대로 나는 남과 비교하지 않고 묵묵히 나의 길을 갈 것이다. 또한 남미의 어디에선가 작정한 것처럼 가슴은 따뜻하고 생활은 심플하게 살면서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할 것이다.

여행을 하면서 바로 그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는 것도 커다란 수확이다. 국제난민관련 프로그램에서 일하는 것이다. 여행을 하지 않고 한국에서만 있었다면 관심조차도 없었을 분야다. 아프리카, 중도, 인도차이나, 남부아시아 등을 여행하면서 수많은 난민들을 보고, 애써 난민촌에서 같이 지낼 기회를 만들면서 찾아낸 평생의 일이다.

당장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목숨이 위험한 국제난민들을 위한 기구에 들어가 적어도 20년간은 `목숨을 걸고` 일을 할 생각이다. 물론 그 일이 돈과 명예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을 수도 있고 막대한 개인적인 희생을 치러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확실히 알았다.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할 용기가 나고 행복을 느낀다는 것을.--- p.3
'인생은 단 한번 사는 거고 게다가 얼마큼 살지 예측할 수 없는 것이오. 이런 귀한 인생을 누구 눈치 보거나 체면 따지면서 낭비하지 않고 남에게 피해 주지 않는 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최대한 즐기며 살아야 하오.'

지금은 중요하게 여겨지는 '남들과의 비교'는 나중에 인생을 되돌아볼 때는 아무 것도 아닌데 그것들에 얽매여 소중한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다는 거다.--- p.185
시리아 국경에서 터키 동부 에르줄룸까지 20시간 가는 버스삯이 100만리라. 간단한 샌드위치가 7만리라. 휴게실 화장실 사용료가 1만리라. 터키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엄청난 돈단위가 정신을 빼놓는다. 공식환율이 1달러에 6만리라니 가뜩이나 숫자개념이 약한 나는 거스름돈을 받을 때마다 계산이 빨리 안돼 쩔쩔 맨다. 그래도 언제나 주머니 속에 수백만 리라가 들어있으니 마음까지 든든해진다.

터키는 여러모로 아주 특이한 나라다. 국민의 99프로가 회교도인점에서는 중동의 일부로 볼 수 있으나 지리적으로는 국토의 3%가 유럽쪽에, 97%가 아시아쪽에 붙어있다. 세계지도를 펴놓고 보면 이스탄불은 세계의 동서남북을 잇는 교차로라는 걸 한눈에 알 수 있다. 동쪽으로는 이란 인도 중국으로 이어지는 아시아, 서쪽으로는 유럽 대륙, 남쪽으로는 시리아 요르단 이집트를 거쳐 아프리카로, 북쪽으로는 흑해를 넘어 거대한 러시아가 있다.--- p.106
'사람은 참 다르더라. 그런데 사람은 다 똑 같다더라'라는 것이다. 생활과 풍습이 다르고, 인종과 종교는 다르지만 결국 그 옷들을 다 벗어놓으면 남는 것은 인간 그 자체인 것이다.--- p.24
만약 이란을 가게 된다면 가는 길에 꼭 다시 들르겠다는 약속에 약속을 하고 가족들에게 작별인사를 하는데 다리야가 보이지 않는다. 키멧이 찾아보니 방안에서 혼자 울고 있더라며 데리고 나오는데 얼굴이 눈물범벅.이 쬐끄만 아이가 나름대로 정이 들었나보다. '안녕히 가세요 해야지.' 키멧이 말하자 울먹이며 '귈레 귈레(안녕안녕) 비야 이모'한마디 하고는 다시 방으로 뛰어들어간다. 모두에게 인사를 마치고 뒤돌아서는 데 다시 나타난 다리야가 내 손에 뭔가를 쥐어준다. 토끼모양의 분홍색 새 지우개! 내 터키 꼬마친구로부터 받은 소중한 마음의 선물이다. '잘 있거라, 귀여운 다리야.'--- p.112
르완다 난민촌에서는 아이 하나가 병에 걸리면 그렇지 않아도 건강이 나쁜 다른 아이들에게 삽시간에 번져 마른 검불에 불붙듯 며칠새 수십명이 죽어나간다고 했다. 먹을 것 없이 떠돌던 난민들이 처음에 수용송에 들어올 때는 피골이 상접한 반송장이 어서 아이들은 걷기는커녕 힘이 없어 음식도 먹지 못하고 억지로 입에 넣어주어도 삼키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p.72
내가 킬리만자로 등반을 하면서 평소처럼 '남보다 빨리, 남보다 먼저'를 외쳤다면 나는 아마 정상은 쳐다보지도 못하고 주저앉았을 것이다. 실제로 중요한 건 남과 비교해서 내가 얼마큼 왔는가가 아니라 내가 지금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힘을 제대로 축적하면서 알맞은 속도로 가고 있는가라는 것이라는 중요하고도 고마운 자각을 하게 되었다.

자기 목표가 뚜렷하다면 남이 얼마나 빨리 가는지, 가면서 무엇을 하는지 비교하지 않고 자기 페이스를 지키는 게 어렵지는 않겠지. 불경에서도 모든 번뇌의 근본은 남과 비교하는 데에서 비롯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p. 165
낮에는 부인들이랑 나무를 하러 갔다. 땔감을 하러 가는 부인들은 밤에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하고서도 나무를 하다가 그늘에 앉아 또 한참 수다를 떤다. 그들에게 사는데 무엇이 가장 힘드느냐고 물었더니 당장 물 긷는 일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대답한다. 하루종일 열심히 일하고 밤에는 남편을 나누어 가지면서도 물 긷는 일 이오에는 어려움을 모르는 마사이 여자들 그들의 고단한 삶 뒤에 숨어 있는 부드러운 미소를 찾아낼 수 있었다.--- p. 212
나이가 들어가면서 내게는 부러운 사람이 많다.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주장을 뚜렷하게 내세울 수 있는사람 단단한 실력을 갖추고 있으나 거만하지 않은 사람 늘 남을 배려하면서 모두를 포용할 수 있는 사람살아가면서 사람들을 만나다보니 아름답고 부러운 사람이 하나 둘 늘어간다 그렇게 부러운 사람중에 하나가 비야다. 겉으로는 적게 가졌으면서도 안으로는 단단하게 중무장을 하고서 늘 높은 톤으로 깔깔거리며 살아가는 사람 누구도 쉽게 엄두조차 내기어려운 세계여행을 떠나 몇년뒤 밝고 건강한 돌아올 수 있는사람 누구에게라도 무슨 말이든지 쉽게 물어볼수 있도록 마음이 열려있는사람 이 밖에도 비야에게는 부러운 점이 버무도 많다.--- p.추천의 글
그렇다. 나는 안정기에 들어서야 할 나이에 오히려 그때까지 가지고 있었던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세계여행을 떠났다.....중략... 세상이라는 바다를 헤쳐 나가는 내 인생이라는 배의 선장은 바로 나라는 것.누구도 대신할 수 없고 대신해서는 안된다는 것.바다가 고요할 때나 폭풍우가 몰아칠 때나 나는 내 배의 키를 굳게 잡고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그래야만 지금과 같은 깊은 행복감을 내내 맛보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마침내 깨닫게 되었다.--- p.29
그러나 해가 지자 내 생각이 백팔십도 달라졌다. 그날 밤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가본 제일 조용한 곳에 앉아 침묵의 소리까지 들을 수 있었다. 달없는 하늘에 빈자리 없이 박혀있던 숨낳은 별들. 그리고 세상 천지에 우리들 밖에 없다는 완전한 고립감, 그래서 생긱는 진한 연대감. 그 뿐만이 아니었다. 우리가 평상시 그렇게 필사적으로 추구하는온갖 물질적인 풍요가 아무 구실도 못하는 물질 무풍지대. 세상을 살면서 정말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를 깊게 되돌아보게 되었다. 이 새롭고도 놀라운 경험! 그 후 나는 열광적인 사막 팬이 되어 여러 사막을 가보았다.--- p.285
그녀는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절제와 조화도 가지고 있었으며 따뜻하기까지 하다. '나는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정성스러운 게 천성이자 직업이지만 내가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있을 때까지만 하려고 해요. 친절도 도가 넘치면 버겁고 부담이 되는 건 물론, 하고 나서도 내가 이만큼 해주었는데 하는 마음이 생겨 어떤 형태로든 반대급부를 기대하게 된단 말예요. 망국적인 한국병 '섭섭증'은 여기서 비롯되는 것이지요.'130 p.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마찬가지. 함디는 내가 못떠나게 하려고 일부러 늦게 돌아오는 것이 분명했다. 결국 예정보다 3일을 더 머물러 고야 겨우 떠날 수 있었다. 낯선 외국인을 하루라도 더 붙들려고 하는 인정에 가슴 뭉클하다. 내가 떠나는 날 온 집안은 울음바다가 되었다. 내가 여자들과 아이들을 일일이 껴안아주자 아이들은 드러내놓고 울고 여자들은 연방 눈물을 훔쳤다. 이것을 바라보던 남자들도 나를 제대로 쳐다보지 못한다.

모두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돌아서려는데 참았던 눈물이 볼을 타고 주루룩 흘러내린다. '비야 마 살리마, 마 살리마!'(비야! 안녕 잘까요, 안녕 잘가요) 그 집 식구들이 소리를 지르는데 눈물을 들킬까봐 제대로 손도 못 흔들어 주고 차에 올랐다. 안녕, 아름다운 사람들 정다운 내 이집트 가족들!--- p.282
<중앙아시아의 옥외박물관 부하라>
우주베키스탄은 중앙아시아를 여행한 사람이라면 이구동성으로 가장 볼거리가 많은 곳이라고 한다. 실크로드 교역의 중심지요 이슬람교 전파 후 종교와 교육의 중심지였다. 특히 부하라의 사마르칸트는… 화려한 사원과 신학교 등 모슬렘 건축물을 세운 곳이라 건축의 걸작과 백미들이…이 탑은 칭기스칸의 침략으로 온 도시가 초토가 될 때도 무사히 남을 수 있었는데 거기에는 이런 일화가 있다. 칭기스칸이 앞을 지나갈 때 바람에 모자가 벗겨져서 그 모자를 주우려고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본 부하들이 칭기스칸도 고개를 숙인 이 탑은 수술 수 없다며 그대로 두었다는 것이다 …

<알렉산더 대왕도 놀란 도시, 사마르칸트>
.. 그렇게 화려하고 번창했던 도시를 1220년 칭기스칸이 지나가며 몽땅 파괴해버렸다. 그 후 티무르 왕이 이 곳을 도읍으로 정하고 그이 손자 때까지 80년간 모든 것을 총동원해 지금의 아름다운 도시로 복고했다…p.87-89
<중앙아시아의 옥외박물관 부하라>
우주베키스탄은 중앙아시아를 여행한 사람이라면 이구동성으로 가장 볼거리가 많은 곳이라고 한다. 실크로드 교역의 중심지요 이슬람교 전파 후 종교와 교육의 중심지였다. 특히 부하라의 사마르칸트는… 화려한 사원과 신학교 등 모슬렘 건축물을 세운 곳이라 건축의 걸작과 백미들이…이 탑은 칭기스칸의 침략으로 온 도시가 초토가 될 때도 무사히 남을 수 있었는데 거기에는 이런 일화가 있다. 칭기스칸이 앞을 지나갈 때 바람에 모자가 벗겨져서 그 모자를 주우려고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본 부하들이 칭기스칸도 고개를 숙인 이 탑은 수술 수 없다며 그대로 두었다는 것이다 …

<알렉산더 대왕도 놀란 도시, 사마르칸트>
.. 그렇게 화려하고 번창했던 도시를 1220년 칭기스칸이 지나가며 몽땅 파괴해버렸다. 그 후 티무르 왕이 이 곳을 도읍으로 정하고 그이 손자 때까지 80년간 모든 것을 총동원해 지금의 아름다운 도시로 복고했다…p.87-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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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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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류시화의 시만을 접했을때는 여자라고 상상을 하다가 그가 남자라는 사실에... 그의 이외수같은 용모에.. 그의 기행에 몇번이고 놀라게 했던 사람...
시만을 접했다가 이 책을 접하게 되면 그의 독특한 세계에 혀를 둘를지도 모른다...
그가 명상과 득도(?)를 하기 위해서 떠난 인도를 여행하면서 보고, 격고, 느낀 이야기의 책인데, 정말 인도인의 정신구조에 놀라게 되고, 그것들을 받아들이는 류시화의 정신구조에 또 한번 놀라게 된다.
정말 인도인들이 성자처럼 사는것인지.. 뻔뻔하게 사는것인지...
남의 물건을 훔치다가 걸리면, 왜 이게 네것이냐고 따지고...
꽉 찬 버스를 몰다가 친구를 만나가 위해서 버스를 두고 내려버린 기사와 가만히 기다리는 승객들...
거기다가 그것에서 도를 느끼고, 깨우치려고 하는 류시화...-_-;;
물론 전적으로 아니다라는 생각은 아니지만.. 잘 받아들이기가 쉽지는 않다...
하지만 류시화씨가 배우면서 나도 많은 것을 배우게 되는것은 사실이다...
97년도에 발행되었으니까.. 대략 10년전의 인도인의 모습이라고 할수 있겠고.. 지금은 간혹 다큐를 보면 많이 바뀐것 같다.
물론 그중에서도 그들의 세계관이나 종교관은 여전하지만 젊은층을 중심으로 많이 바뀌고 있느듯...
아무튼 잠시나마 류시화씨를 따라한 인도기행.. 웃음, 진지, 연민.. 많은 감정을 느끼게 하고...
어떻게 사는것이 정답인지.. 어떻게 세상을 받아들이면서 살아야하는지 한번쯤 진지하게 생각하게 해준 책이였다.

<도서 정보>제   목 :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저   자 : 류시화
출판사 : 열림원
출판일 : 1997년 5월
구매일 :
일   독 : 2006/1/8
재   독 :
정   리 :

<이것만은 꼭>
나의 하루하루의 순간순간의 삶을 내가 할 수 있는것은 스스로 열심히 하면서...
나머지는 그들처럼.. 신의 뜻대로...


<미디어 리뷰>

 
저자 : 류시화
경희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198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했다. 시운동 동인으로 활동하다 1983∼1990년 작품활동 중단하고 구도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이 기간동안 명상서적 번역작업을 했다. 「성자가 된 청소부」「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등 명상과 인간의식 진화에 대한 주요서적 40여권을 번역했고 여러 명상센터을 돌아다니며 생활하였다. 산문집에는「삶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들」이 있고 두번째 시집「외눈박이 물고기 사랑」인도여행기「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잠언시집「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이 있고 현재 서울 대학로에 작업실이 있다.

저 : 류시화
시인, 명상가. 경희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198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된 바 있다. 1980~1982년까지 시운동 동인으로 활동했으나 1983~1990년에는 창작 활동을 중단하고 구도의 길을 떠났다. 이 기간 동안 명상서적 번역 작업을 했다. 이때 <성자가 된 청소부>,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티벳 사자의 서>, <장자, 도를 말하다>,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영혼을 위한 닭고기 스프> 등 명상과 인간의식 진화에 대한 주요 서적 40여 권을 번역하였다.

1988년 '요가난다 명상센터' 등 미국 캘리포니아의 여러 명상센터를 체험하고, <성자가 된 청소부>의 저자 바바 하리 다스와 만나게 된다. 1988년부터 열 차례에 걸쳐 인도를 여행하며, 라즈니쉬 명상센터에서 생활해왔다.

가타 명상센터, 제주도 서귀포 등에서 지내며 네팔, 티벳, 스리랑카 여행집과 산문집을 냈다. 시집으로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잠언 시집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과 산문집 <삶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들>, 인도 여행기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등이 있다.
작가 류시화의 독특한 산문집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이 도서출판 <열림원>에서 출간되었다.

이미 두 권의 시집을 낸 시인이자 명상가·번역가로 활동중인 류시화는 주로 명상과 인간의식 진화에 대한 번역서를 소개하는 한편 인도와 네팔, 티벳 등지를 여행하며 사진을 찍고 글을 쓴다. 그는 특히 발간 직후 베스트셀러에 올라 6년이 지난 지금까지 50만부가 넘는 발행기록을 세운 채 계속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라 있는 첫번째 시집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와 출간 6개월 만에 30만부를 돌파하여 시집 출판계에 유례가 없는 기록을 세운 두번째 시집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을 통해 독특한 시세계를 인정받았다.

류시화는 자신이 전생에 인도인이었다고 말할 만큼 인도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내 인생의 황금기는 여행에 있었으며, 특히 인도 여행은 그 황금기의 열매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 속에서 나는 삶을 배웠고, 세상을 알았다. …… 그곳에서 나는 때로 당혹스러웠고, 어지러웠으며, 사기를 당하기도 했고, 무서워 도망치기도 했다. 허무하거나, 존재 밑바닥까지 행복하기도 했다. 눈을 똑바로 뜨고서 나 자신과 마주서본 적이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인도였다.' 놀라운 것은 평범하다 못해 천하기 짝이 없는 책 속의 인도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나름대로 철학자라는 점이다. 가난한 릭샤 운전사 차루의 '노 프라블럼' 철학, 누더기 담요를 두른 요기 싯다 바바의 세 가지 만트라, 미치광이 구루(영적 스승) 스리 바가반 구루의 '자유로운 정신'에 대한 화두 등……. 또 돈을 줘도 절대로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는 거지들, 선행을 베풂으로써 자신의 악업을 씻으니 고마워해야 할 사람은 바로 우리들이라는 것이다. 가방 속의 화장지를 아무 말없이 꺼내가는 인도인 남자에게 따지면 '이게 왜 너의 거냐? 네가 잠시 갖고 있는 거지?'라며 오히려 당당하다. 기차 안에서 좌석표도 없이 무례하게 끼여앉은 사람들 보고 자리 주인이라고 말하면 '잠시 앉았다가 떠날 자리를 가지고 무슨 근거로 네 자리라고 주장하는가?' 하고 조용히 대답한다. 물건값을 깎고 기분이 좋아 돌아서는데 '그렇게 물건값을 깎아서 사니까 넌 행복하냐?'고 상인들은 반문한다.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은 이렇듯 그가 지난 10년 동안 열 차례에 걸쳐 인도 등지를 여행하면서 체험한 엉뚱하고, 기발하고, 감동적인 일화들을 모은 것이다. 이 책에는 여행기가 주기 쉬운 지나치게 개인적인 감상이나 그 흔한 풍물 스케치 한 줄 없다. 다만 명상을 하고 글을 쓰고 구도의 길을 걷는 그가 인도의 시장에서, 허름한 여관에서, 더러운 기차 안에서, 한적한 마을에서, 광활한 평원에서, 히말라야 동굴의 스승 밑에서 직접 체험한 사건들과 감동이 있을 뿐이다.

이 책의 백미는 권말에 있다. '인디아 어록'이 그것. '인디아 어록'은 그가 인도를 여행하면서 대중 속의 현자(賢者)들과 이야기하다 그들로부터 들은 인상적인 말들만 모아 하나의 장(章)으로 엮은 어록이다. 짤막한 말로 사물의 핵심을 잘 찌르는 것으로 유명한 인도인의 재치있는 순발력과 번뜩이는 통찰력이 잘 나타났을 뿐만 아니라 인도인의 현실 수용의 철학까지를 그대로 알 수 있다.

서른네 편의 감동적인 글과 아름다운 사진이 만나, 인도의 신비와 더이상 숨길 것 없는 인도의 현실이 절묘하게 표현됐다.


<책속으로>

한 대학교수가 있었다. 그는 미국인이었다. 캘리포니아의 UCLA대학 사회학과 교수였던가. 어느날 그는 동료교수들과 함께 네팔로 관광여행을 떠났다. 도중에 그는 여행경유지인 인도 북부의 바라나시에서 하루를 머물게 되었는데………. 여기서 그의 이야기는 갑자기 끝이 난다. 왜냐하면 존 아무개라는 그 교수는 그곳 바라나시에서 평생을 보내게 되었으니까. 그는 네팔로도 가지 않았고 미국으로도 돌아가지 않았다. 생에서 그런 순간을 조심해야 하리라. 저기 어딘가에서 인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꽃과 태양과 비의 나라, 사막과 해변과 만년설의 나라, 영원한 지혜를 축복하는 신들의 나라가! 어느 순간엔가 우리는 이 평범한 일상을 탈출해 그곳으로 영원히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 pp. 202-203
'첫째 만트라는 이것이다. 너 자신에게 정직하라. 세상 모든 사람과 타협할지라도 너 자신과 타협하지는 말라. 그러면 누구도 그대를 지배하지 못할 것이다. 둘째 만트라는 이것이다. 기쁜 일이나 슬픈 일이 찾아오면, 그것들 또한 머지않아 사라질 것임을 명심하라.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음을 기억하라.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난다 해도 넌 마음의 평화를 잃지 않을 것이다. 셋째 만트라는 이것이다. 누가 너에게 도움을 청하러 오거든 신이 도와줄 것이라고 말하지 말라. 마치 신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네가 나서서 도우라.'--- p.54
존 아무개라는 그 교수는 그곳 바라나시에서 평생을 보내게 되었으니까. 그는 네팔로도 가지 않았고 미국으로도 돌아가지 않았다. 생에서 그런 순간을 조심해야 하리라. 저기 어딘가에서 인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p.202
전생에 나는 인도에서 살았다. 어떤 장소엘 가거나 누구와 애기를 하고 있는데, 언젠가도 꼭 한번 이런 상황이 일어난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이른바 데자뷔(기시감)현상이다. 몇해전 올드 델리에서 나는 그것보다 휠씬 더 신비한 체험을 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자전거 릭샤를 타고 옛 성곽을 보러 가는길이었다. 릭샤운전사 샤부가 뜻모를 애기를 중얼거리지만 않았어도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시내 중심가에 있는 찬드니 쵸크시장을 꾸불꾸불 지나가고 있을 때였다.갑자기 샤부가 말해다. '난 당신을 압니다.당신은 날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난 분명히 당신을 기억해요'--- p.187
저울을 준 신

동인도 캘커타 시내에서 둥근 저울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몸무게를 달아 주고 1루피(30원)를 받는 직업을 가진 인도인 남자는 인생이 행복한가를 묻는 내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행복의 양과 불행의 양은 같은 겁니다. 신이 내게 주지 않은 것 보다 준 것들을 소중히 여겨야지요. 신은 내게 벌어먹고 살 저울을 주셨습니다. 그것만으로도 난 얼마나 행운입니까. 이 저울을 주지 않았다면 우리 식구는 굶어 죽었을 거에요.'--- p.214
'오늘은 아무 소득도 없었어요. 하지만 내일은 뭔가 훔칠 수 있을 거예요.' 비시누는 언제나 그렇게 희망적이었다.

-아름다운 도둑 중에서--- p.57
'어디로 가든지 너무 자신을 끌고 다니지 마시오.한 장소에 앉아서도 많은 걸 볼 수 있으니깐요.좋은 여행이 되길 빌겠소. 그런 잘 가시오.나마스카'--- p.201
'무엇을 하며 삶을 살아가야 할까요?'
내가 묻자 머리를 산발한 요가 스승이 말했다.
'적게 말하고 많이 행동하라.'--- p.229
모든 인간은 보이지 않는 밧줄로 스스로를 묶고 있지. 그러면서 한편으론 자유를 찾는거야. 그대는 그런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말게. 그대를 구속하고 있는 것은 다른 어떤 것도 아닌 바로 그대 자신이야. 먼저 그대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해. 그렇지 않으면 결코 어떤 것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없어.--- p.69
마음이 내키지도 않는 상태에서 1백 루피, 약 3천 원 정도를 적선한 덕분에 나는 뜻하지 않은 선물을 받았다. 노인은 내게 작은 베풂에도 보답하는 자세를 가르쳤고, 가난하지만 아직은 부유함을 잃지 않은 마음을 전해주었다.

그 노인 덕분에 나는 지금도 잘난 체 하며 말한다. 나처럼 인도 여행을 멋지게 한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고. 어떤 국가 원수가 인도를 방문했을 때 과연 아침마다 누군가가 와서 환상적인 피리소리로 잠을 깨워 주었겠느냐고. 내가 알기로 인도 역사상 그런 일은 한번도 없었다.--- p.115
마드라스를 떠나는 날 아침, 마지막으로 차루를 만났다. 작별 인사도 할 겸, 그 동안 타고 다닌 릭샤 값을 지불하기 위해서였다. 그러자 차루는 또 손을 흔들며 허풍을 떨었다.
' 돈은 주고 싶은 대로 주세요. 전 아무 문제없습니다.'
내가 일부러 정색을 하면서, 그럼 1루피(30원)만 줘도 되겠느냐고 묻자 차루는 외쳤다.
' 노 프라블럼!'
그러면서 차루는 당당하게 덧붙였다. 1루피만 줘서 내가 행복하다면 그렇게 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미 자기의 친구이니까, 자기한테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내 행복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잠시마의 행복이 아니라 돈을 준 내 자신이 오래도록 행복할 수 있을 만큼 돈ㅇ르 달라고 했다. 영리한 차루, 얄미운 차루, 못난 차루...... 마드라스를 떠난 뒤에도 오랫동안 차루의 인상이 지워지지 않았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생일 살면서도 '노 프라플럼!' 을 외치며, 푸웅푸웅 고무나팔을 울리며 세상 속으로 달려가는 차루! 많은 걸 갖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집착과 소유를 벗어 던지지 못하는 내게 그는 잊지 못할 훌륭한 스승이었다.--- p.
릴루가 말했다.

'사실 난 그때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고통이나 슬픔 같은 것들을 느끼고 있지도 않았어요.그런데 성자가 내게 마음의 평화를 찾으라고 말하니까 기분이 이상했어요.내 인생에서 그때가 가장 평화로운 시기였거든요.그래서 난 그 성자가 그냥 아무에게나 그렇게 말하는가 보다고 생각했어요.'

그 기운은 바로 릴루가 내게 준 선물이었음을,흔들리는 기차에 앉아 멀리 인도 대륙을 바라보면서 나는 깨달았다.그토록 젊은 나이에 생의 고통을 체험한 뒤,홀연히 내면의 목소리에 따라 여행을 떠나기로 한 그 용기가 내게도 힘을 주었던 것이다.그 생명력이 어느새 내 안에도 옮겨와 있었다.
그 생명력 말고도,릴루는 헤어지면서 내게 자신이 두르고 있던 그 초록색 인도 스카프를 선물했다.

그로부터 여러 해가 흘렀지만 난 아직도 그 스카프를 갖고 있다.가끔 그걸 꺼내 스카프에 매달린 작고 둥근 장식용 거울들을 들여다본다.그러면 또다시인도에 가고 싶다. 릴루는 잘 있을까.그녀는 정말로 강고트리의 그 성자를 만나러 떠났을까.그리고 마침내 그녀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자기 안에서 찾아냈을까.--- p.133, 38-9
'두 유 원트 쉬-?'
쉬-하고 싶은가? 그런 뜻이었다. 어머니의 속삭임과도 같은 그 정겨운 '쉬-'라는 말을 듣는 순가 나는 마음 속에 있던 두려움과 고독감이 사라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어렸을 때 수없이 들어서 내 무의식 속에 남아 있는 그 한마디가, 낯선 곳에 병들어 쓰러진 내 영혼을 부드럽게 위로해 주었다.--- p.94
'당신은 형이 죽었는데 이 명상센터의 앞날이 걱정되지 않는가? 다들 앞으로의 일을 염려하고 있고, 슬픔에 잠겨 있다. 그런데 당신은 왜 아무렇지도 않은가?'
그러자 스와미 아난다는 대답했다.
'내가 왜 걱정을 해야 하는가? 이 명상센터는 내 소유가 아니다. 그런데 왜 내가, 내 소유가 아닌 것을 놓고 미래를 염려해야 한단 말인가? 더구나 스승은 우리에게 미래가 아니라 현재에 살라고 가르쳤지 않은가?'
그의 이 말은 우리 모두에게 큰 깨우침을 주었다. 이 세상에 진정으로 우리의 것이란 없음을 배우기 위해 우리는 명상센터에 오지 않았던가. 미래에 살기보다는 '지금 여기'에 살기 위해 온갖 명상 프로그램에 참가히지 않았던가. 다들 어리석은 사람으로 여겼던 스와미 아난다는 어는새 '진정으로 자신의 것'이 무엇인가를 구별하는 능력을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스와미 아난다의 그 말은 나한테도 큰 지침이 되었다. 상황의 변화가 생기고 내 곁에 머물렀던 것이 떠나갈 때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자리잡으려고 할 때마다, 나는 스승의 어떤 가르침보다도 스와미 아난다의 그 말을 깨우침의 거울로 삼았다.
'그것은 내 소유가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내가 왜 걱정해야 하느가? 스승은 우리에게 미래가 아니라 현재에 충실하라고 가르쳤지 않은가?'--- p.120, ---pp.11-24, ---p.121,---pp,1-7
노인의 말은 진심이었다. 그것이 곧 밝혀졌다. 그는 내가 그 갠지스 강가에 머무는 닷새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아참마다 내 방 앞에 와서 필릴리 필릴리 피리를 불었다. 피리소리에 잠이 깨어 창문을 열면 미명을 헤치고 갠지스 강 위로 오렌지색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노인이 불어주는 피리곡 때문에 나는 날마다 새롭고, 뭔가 다른 하루를 맞이할 수 있었다.

마음이 내키지도 않은 상태에서 1백 루피, 약 3천 원 정도를 적선한 덕분에 나는 뜻하지 않는 선물을 받았다. 노인은 내게 작은 베풂에도 보답하는 자세를 가르쳤고, 가난하지만 아직은 부유함을 잃지 않은 마음을 전해주었다. 그 노인 덕분에 나는 지금도 잘난 체하며 말한다. 나처럼 인도 여행을 멋지게 한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고. 어떤 국가원수가 인도를 방문했을 때 과연 아침마다 누군가가 와서 환상적인 피리소리로 잠을 깨워주었겠느냐고. 내가 알기론 인도 역사상 그런 일은 한번도 없었다.--- p.115
날이 밝았으니 이제 여행을 떠나야 하리.
시간은 과거의 상념속으로 사라지고
영원의 틈새를 바라본 새처럼 그대 길 떠나야 하리.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그냥 저 세상 밖으로 걸어가리라.
한때는 불꽃 같은 삶과 바람 같은 죽음을 원했으니
새벽의 문 열고 여행길 나서는 자는 행복하여라.--- 여행을 위한 서시 중에서
난 신이 인간을 만들때는 목적이 있다고 믿소. 누구는 달리기를 잘하도록 만들었고 누구는 장사를 잘하도록 만들었소. 반면에 내게는 문둥병을 주어 인생의 집착을 끊어버리도록 만든 거요. 하루에도 수십 구의 시신을 장작에 얹고 태우면서 신이 내게 부여한 삶의 목적을 깨달으라고 말이오.
--- p.109
그대를 구속하고 있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그대 자신임을 잊지 말게. 그대만이 그대를 구속할 수 있고 또 그대만이 그대를 자유롭게 할 수 있어. 모든 인간은 보이지 않는 밧줄로 스스로를 묶고 있지, 그러면서 한편으론 자유를 찾는 거야.--- 본문 중에서
' 오늘은 아무 소득도 없어요.하지만 내일은 뭔가 훔칠수 있을거예요'
비시누는 언제나 그렇게 희망적이었다. 단 한번도 내 앞에서 실망한 기색을 내보인 적이 없었다.
'오늘은 어땠지?'
대답은 한결 같았다.
' 오늘은 아무 소득도 없어요.하지만 내일은 뭔가 훔칠수 있을거예요'--- p.57--아름다운 도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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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야의 중국견문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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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여행을 마치고, 한국 국토 종단을 마친 한비야씨가 다시 한번 꼭 가겠다고 생각먹었고, 중국어를 배우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했던 중국견문론..
한비야씨의 책이 그렇듯이 여행기라고 하기는 그렇고, 에세이라고하기도 그렇고.. 적절한 제목인듯 하다.. 중국견문록...
예전에 읽었던 김정현씨의 중국읽기와 맥락이 많이 비슷하다. 그냥 중국이 넓고, 볼것이 많고, 뒤떨어져있고, 먹을것이 많다는 그저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점차 커져가는 중국을 바라보면서 우리나라를 걱정하고, 진취적으로 생각을 하게 해준다.
삼국지에 보면 제갈공명과 손나라 주유가 조조를 잡기위해서 준비를 다 해놓고, 이제 동풍만 불면 된다는 이야기후에 일어났던 적벽대전...
중국의 속담에도 그런 말이 있다고 한다.. 동풍만 불면 된다고.. 풍부한 자원, 자급자족이 되는 식량, 중국인의 자신감, 많은 인구.. 이제 그 중국이 깨어나고 있고, 그 중국에 동풍이 불기 시작했다.
지금도 그 존재가 두려운 중국이지만 2008년 올림픽이후에는 더욱더 강대한 나라가 될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이 배우고, 많이 노력해야 할것이고, 그들과 같이 커 나가야 할것이다. 중국은 이제 더이상 우리가 알던 짱꼴라가 아니다...
암튼 중국에 대해서 많이 배우게 됬고, 더욱더 중국이라는 나라가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고, 한비야씨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점점 더 들게한다...
정말 하루하루.. 순간순간을 열심히 사는 사람처럼 무서운 사람.. 무서운 나라는 없을것이다!




<도서 정보>제   목 : 한비야의 중국견문록
저   자 : 한비야
출판사 : 푸른숲
출판일 : 2001년 8월
구매일 :
일   독 : 2006/1/14
재   독 :
정   리 :

<이것만은 꼭>
하루하루 한걸음 한걸음.. 나의 목표, 나의 꿈, 나의 지도위를 걸어가자!
바위, 돌, 모래중에 돌이나 모래는 내 인생의 항아리에 안들어가도 상관없다. 내 인생의 항아리에 나의 소중한 목표이자 꿈인 바위를 집어넣자!


<미디어 리뷰>
저 : 한비야
"저는 들국화예요. 늦깎이, 그래요. 사실 사람들마다 생애 최고의 시절이 각각 다르잖아요. 어떤 이는 10대, 어떤 사람은 20대에 맞이하지만 저에게는 아직 안 왔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국화라는 거죠. 가을에 피는 한 송이 들국화."

그녀는 오지를 다닐 때 지키는 세 가지 원칙이 있다. 육로로만 다닌다, 한곳에서 적어도 일주일 이상 민박을, 한 나라에서는 적어도 한달 이상 있는다, 그리고 생활은 현지인들과 똑같이 한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손님일까 생각하던 눈빛이 어느새 친근하게 바뀌면서 곧 친구가 되어버린단다.

그렇게 정말 '바람'처럼 지구를 걸어다니던 오지여행가 한비야씨가 2002년 3월을 기점으로 국제난민운동가로의 변신을 시도했다. '비극의 땅' 아프가니스탄에 발을 딛게 된 이유도 첫 시작은 육로 이동의 원칙을 지키려던 의도에서였다. 그러나 전쟁의 한가운데 있던 아프가니스탄, 그 곳에서 지뢰를 밟아 왼쪽 다리와 오른팔을 잃은 여자 아이가 까만 눈망울을 반짝이며 건넨 '귀한' 빵을 한입 덥석 베어 물어 난민촌 아이들의 친구로 거듭나던 순간, 그녀는 그간의 오지 여행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결정적 계기를 발견해 내었다. 세계 여행 전에는 난민에 대해 전혀 관심도 없었고, 처음엔 그저 구경거리에 지나지 않던 그들인데 아프리카 여행을 끝으로 무엇을 하면 좋을까 고민하던 그녀에게 어린 소녀와의 만남은 인생을 결정짓게 되는 커다란 사건으로 꼽힌다.

전쟁이 무서운 것은 사실이나, 만에 하나라도 죽는 장소를 택할 수 있다면 현장에서 인생을 마감하고 싶다는 한비야는 현재 월드비전 긴급구호 팀장으로 일하며 현지 활동을 생생한 필체로 기고하고 있다.




<책속으로>
1. 봄
"너무 늦게 왔는데요."
바람의 딸, 둥지를 틀다
대한민국, 내 영원한 베이스캠프
중국에서 맺은 인연 1,2
사랑에 빠지다
베이징의 봄 - 복숭아꽃 그리고 바람
'짱께집'의 유래
칭송칭송 - 느긋하게 사세요
등교길의 아침 풍경
누구에게나 냄새는 있다
튀기고 지지고 볶고…
왕샹네 가는 길
통즈는 없다
"파인애플을 먹으면 성병에 걸려요?"
윈난성 여행, 나의 통역사 데뷔 무대

2. 여름
베이징의 여름 밤은 이래저래 뜨겁다
한자 문화권에서 산다는 것
중국인의 혈관에는 돈이 흐른다
드디어 중국어로 통일 문제를 논하다
자전거를 도둑맞지 않는 5가지 방법
화교는 힘이 세다
한비야, 인민재판을 받다
입시 지옥은 중국에도 있더라
한국 학생들은 왜 봉이 되는가
만날 사람은 반드시 만난다
물, 물로 보지 마!
"비야 언니, 오늘 도서관 열어요?"
여행은 정말로 남는 장사라니까
긴급 구호 활동가 한비야
캄보디아 에이즈 현장 보고서
반 컵의 물에 목숨 거는 사람들! 케냐에서

3. 가을
나는야, 청화대00학번
국기에 대하여 경례!
다국적 한국어 사용 집단
폼나게 '인민일보'를 넘기며
"목숨 붙어 있는 한 희망은 있습네다."
제철에 피는 꽃을 보라
우리 반 북한 아저씨
세계 5위, 청화대 엘리트들의 야망
"한국에 다시는 안 갈 거예요."
인구조사원은 저승사자
뼛속의 힘까지 다 써버렸다니
쟝 할아버지의 사랑 이야기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어!
이름도 바꾸고 인생도 바꾸고
오늘이 없으면 내일도 없다
"한국 남자들은 밥 안 해먹어요?"
그리운 우리 엄마

4. 겨울
베이징에서 겨울나기
칭기즈칸도 먹던 요리, 훠궈
고구마를 팔던 아이
무쇠돌이 한비야, 감기에 항복
시험이 좋은 이유
너무도 반가운 내 친구 데레사
왕샹, 사장 만들기 작전
중국 부잣집 관람기
설날 인사도 돈 타령
북에 번쩍, 남에 번쩍
만만한 중국인은 정말 없더라
한비야식 외국어 학습법
마음의 소리에 귀기울이기
내가 본 중국의 빛과 그림자
419 도서관을 닫으며
짜이찌엔 베이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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