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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는 나답게 산다 -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 도서
  2. 용서
  3. 백화점의 문화사, 근대의 탄생과 욕망의 시공간 살림지식총서 김인호 저서
  4. 상도 1
  5. 상도 2
  6. 상도 4
  7.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나는 나답게 산다 -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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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답게 산다
국내도서
저자 : 황병기
출판 : 산하 1998.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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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정보>제   목 : 나는 나답게 산다
저   자 : 황병기 등저
출판사 : 산하
출판일 : 1998년 12월
책정보 : ISBN : 8976501853 | 페이지 : 331
구매처 : 오디오북
구매일 :
일   독 : 2006/9/28

<미디어 리뷰>
황병기
1936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법과대학 졸업했다. 1951년 한국전쟁 중 국립국악원에서 가야금을 배우기 시작했고,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 국립국악원, 워싱턴대학교 등의 강사로 재직했다. 1954년 전국 국악 콩쿨 최우수상, 1965년 국악상, 1992년 중앙문화대상 등을 수상했고, 1974년부터 이화여대 음악대학 교수를 역임했다. 2005년 현재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창작 가야금 작품으로 '가을' '석류집' '숲' '침행무' '남도환상곡' '달하 노피곰' '미궁' 등이 있으며, 지은 책으로는 에세이집 <깊은밤 그 가야금 소리> 등이 있다.

이화여대 국악과 교수 황병기, 탐험가 허영호, 만화가이현세, 공주교육대학교 심혜경, 서울대 경영학과대학원까지 졸업하고도 야구가 좋아 야구협회에서 일하는 사람 등 자기가 원하는 전공을 찾아 가는 사람들의 감동적인 삶이야기.

세기말적 전환기이지만 여전히 역할 모델이 필요하다. 특히 대중 소비 시대에 '나답게 산다'는 것을 보여준 선배들의 삶은 귀감이 될 것이다. 거대한 체제에 순응하기 보다 자기에게 맞는 체제, 직업, 삶의 스타일을 만들어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린 이책은 그런 면에서 널리 읽혀야 할 추천할 만한 책이다.

이 책은 자유에 대한 이야기이다. 또한 자신의 개성과 선택, 그리고 노력에 대한 이야기다. 이책에 실린 많은 사람들은 안정되고 평탄한 길보다는 험난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고 정점에 선 사람이거나 현재 나의 꿈을 찾아 좋은 대학 안정된 과가 아닌 개성을 살릴 수 있는 대학을 선택한 사람들이다. 남들의 시선과 사회적인 안정을 과감히 버리고 '나답게 사는'방법을 찾는 이들에게 하나의 지침서가 될 수 있다.
고민하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기준과 용기를 제공하고 있다. 당당하게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에서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책속으로>제1부 나는 나답게 산다 -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
가야금 인생 /황병기
인기직종의 허상-진보적이고 다원화된 직업관을 가져라! /강승문
죽음과 도전 /허영호
가시덤불길이라 해도. . . /이현세
내 나이 '스물다섯'은 할 일이 너무 많다 /정호균
기능장이 되기까지 /김기열

제2부 집념과 믿음으로 내 길을 - 「능력중심 사회 구현을 위한 실천 수기」 공모 수상작

최우수상
내 안의 나 /김보흠

우수상
다시 돌아오게 된 포항공대 /정승원
후회 없는 나의 길 / 전우리
공고생에서 참 대학인으로 자리 매김 /최상유
잃어 버린 나를 찾아서 /김정국
박찬호, 선동렬 그리고 마이클 조던에게 내가 만든 신발을… /이은이

가작
특기자 특별전형 당당 합격 /옥태석
돌계단에 앉아 /심혜경
살아 숨쉬는 나를 느끼는 삶 /이화진
호박잎에서 하루, 장미잎에서 하루 /이정우
보람있는 나의 대학 생활에 관한 수기 /장관영
자신의 길을 찾아 모험하길… /이혜용
두 번의 선택 /김은주
120일간의 행복 /서인자
내가 선택한 나의 길 /김미경
내일은 태양 /김숙경

누군가의 시구가 생각났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 한 길은 편하고 한 길은 인적이 드문 오솔길인데 작가는 그 중 한 길을 택했고 영영 가지 못한 나머지 길을 내내 동경한다는 내용이었는데, 그러나 후회는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19살의 어린 나이로 어설픈 친구들의 위로 속에 소주 한 병을 마신 그날 밤, 내 머리 속에서 이 두 글귀만이 어지럽게 맴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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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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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조국을 빼았고, 괴롭히고, 그 존재를 지워가지만... 중국인을 미워하지 않는 달라이라마...
데모중에 고무총탄에 눈을 맡고, 양쪽눈을 실명하지만, 그 군인을 미워하지 않고, 새로운 삶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한 사람....
과연 가능한 것일까?
그래 불가능한것은 아닐것이다. 그리고 분노를 가슴에 안고 살아가봤다. 실제로 손해를 보는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유태인이 독일인을 용서한다고 한것은 독일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유태인 자신들을 위해서이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퇴근길에 왠 아줌마가 불쑥 튀어나온다... 사고가 날뻔했다.. 하지만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그냥 가버리는 아줌마... 욕이 입에서 웅얼거리고, 속에서는 화가 치민다... 하지만... 용서했다. 나를 위해서...
그리고 아줌마에게 속으로 조용히 말해준다...
"아줌마, 조심하세요. 사고나면 어떻하실려고요..."
마음에 평화가 찾아온다. 그리고 잊고 집에 들어와서 편하게 쉬었다...

만약에 내가 저 상황에서 계속 신경질을 부리고, 화를 내고 집에들어왔다면 어땠을까?
그 아줌마가 미안한 생각에 잠못이루고 있을까? 내가 잠을 못 이루고 있을까?


용서에 대한 많은 이야기와 달라의 라마의 관한 이야기에 대한 책... 예전에 읽었던 행복이라는 책과 비슷하게 대담형식으로 이루어졌고, 중간에 도올 김용옥의 이야기도 나오는데 재미있더구만...:)

암튼 용서해야 할 일은 용서하고, 마음의 평화를 찾자.
내가 통제할수 없는 어떠한 일이 벌어지는것은 어쩔수 없다. 하지만 그 후에 내 마음가짐과 내 마음의 상태는 내 스스로 결정할수 있다. 잊지말자!
항상 상자밖에서 살아갈수 있도록...


<도서 정보>제   목 : 용서
저   자 : 달라이 라마,빅터 챈 저/류시화 역
출판사 : 오래된미래
출판일 : 2004년 9월
책정보 : ISBN : 8995501464 | 페이지 : 296 | 512g
구매처 : 오디오북
구매일 :
일   독 :
재   독 :
정   리 :

<이것만은 꼭>



<책 읽은 계기>



<미디어 리뷰>
대담자 : 빅터 챈
홍콩 출신으로 물리학을 전공했고, 캐나다 브리티시 콜럼비아 대학의 동양학 연구학회에서 일하고 있으며 인도와 네팔과 티베트를 여러차례 여행했다. 지금은 밴쿠버에서 살고 있다.

티베트 불교의 영적 지도자인 14대 달라이 라마와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 동양학연구소 교수 '빅터 챈'가 30여 년 동안 나눈 대화를 한권의 책으로 묶었다. '용서'라는 주제 하에 달라이 라마가 몸소 겪은 중국과 티벳이라는 정치적 상황 뿐 아니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그간 만나며 나눈 깨달음을 풀어놓고 있다.

그는 용서의 지점을 이렇게 얘기한다. 우리에게 상처를 주고 우리가 적이라 부르는 사람이 우리에게 어떤 짓을 했는가에 상관 없이, 세상 모든 존재는 우리 자신이 그렇듯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존재임을 떠올린다면, 비로소 용서와 화해로 나아갈 수 있지 않겠냐는 것. 더 나아가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인내심을 키우기 위해서 우리는 상처입힌 누군가가 있어야 하며, 그런 사람들이 있어서 비로소 우리는 용서를 베풀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라고. 결국, 진정한 삶의 승리자는 적이 아닌, 자기 자신의 분노와 미움을 이겨낸 사람이라는 가장 본질적인 '나'를 넘어서는 이야기를 전해준다.


<책속으로>
옮긴이의 말 : 용서의 지혜

함께 있어서 기분좋은 사람
친절이라는 이름의 종교
영혼이 살아있는 얼굴
용서와 마음의 평화
가장 큰 수행은 용서
세상에서 가장 이타적인 사람
보살피는 마음, 나누는 마음
용서하라, 그러면 행복해진다
자비와 상호 의존의 가르침
지혜로운 자의 눈
자기를 비운 사람의 아름다움
지혜와 자비는 새의 두 날개
공중을 나는 요가 수행자
나를 아파하는 대신 남을 아파하라
행복한 삶에 이르는 길
보리죽 한 그릇의 만족
단순한 삶, 고요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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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의 문화사, 근대의 탄생과 욕망의 시공간 살림지식총서 김인호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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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촌형이 집필한 책으로 선물로 받았는데, 분량이 얼마 안되는 관계로 집에 오면서 거의 다 보았는데, 백화점이라는 유통센터를 아주 흥미로운 관점해서 바라보고 해석한 책인듯 합니다.

백화점의 시작부터 역사를 보여주고 그 과정에서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고, 어떠한 마케팅 기법이 사용되었는지를 보여주고, 우리나라의 백화점의 역사.. 뭐 일본의 역사와 많이 연관되어있는 것들을 보여주며, 백화점이라는 존재가 단순히 물건만을 판다는 장소라는 의미보다는 유희, 문화, 욕망등과 관련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단순히 백화점의 역사나 마케팅기법만을 가르쳐준다고 본다면 보통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책일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분야라고 해도 자신의 일에 적용을 하려고 본다면 꽤 괜찮고, 핵심적으로 내용을 많이 줄여서 보기도 쉽습니다.

무엇보다도 핵심은 모든 장사가 고객을 모아서 돈을 벌기위해서 장단기적으로 많은 마케팅, 홍보등 기술을 사용하는것이 아닐까요?

백화점의 문화사
국내도서
저자 : 김인호
출판 : 살림 2006.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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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정보>제   목 : 살림지식총서-250 백화점의 문화사 : 근대의 탄생과 욕망의 시공간
저   자 : 김인호
출판사 : 살림출판사
출판일 : 2006년 8월


<미디어 리뷰>

저자 : 김인호
현 리테일 콤비나트 대표, 팜스퀘어 상무.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일본릿코대학원 경제학 박사전기과정을 졸업하였다. 산업자원부 유통물류위원회 위원, 현대유통연구소장등을 역임하였으며, 저서로는 『일본 유통기업의 출점 전략』,『세계의 유통기업』, 공저로는 『한국유통산업 발전사』,『유통시장개방 10년, 유통산업 구조변화와 핵심이슈』등이 있으며 논문으로는 <국내 소매시장의 국제화 패턴과 기업의 대응방안> 외 다수가 있다.

백화점은 도시의 상징물이다. 도시의 발전과 함께 등장하면서 오랜 역사성을 유지해 왔다. 이 책은 탄생 후 150년 동안 대자본의 ‘욕망환기 장치’ 혹은 도시민의 ‘입장료 없는 생활 유원지’ 등으로 시기마다 그 기능을 달리해온 백화점의 문화적 원류를 탐험함으로써, 오늘날 쇼핑과 소비의 공간으로만 여겨지는 백화점을 다른 문화적 코드로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프랑스에는 봉마르셰, 조선에는 미츠코시 경성지점
백화점의 기원은 1852년 프랑스 파리에 설립된 봉마르셰이다. 개설 초기의 봉마르셰 백화점은 내?외관이 극도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파리 어느 곳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 호화 사교 살롱의 이미지를 갖추었다. ‘살롱’이 귀족이나 부르주아들이 성이나 저택을 일상적인 생활공간에서 연회나 토론의 장으로 바꾼 것이라면, 봉마르셰라는 백화점은 이들 살롱을 통해 사회적 역할이 커지고 과거의 풍습에서 해방된 여성의 욕망 분출구였다. 그러다 보니 봉마르셰는 자연스럽게 파리 최대 사교 살롱의 이미지도 갖추어, 파리인들 사이에서 베르사유 궁전에 버금가는 ‘소비의 궁전’으로 불렸다. 봉마르셰의 등장 이후 휘틀리와 해롯 등 유럽에서 급속히 확산된 ‘백화점’은 곧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서 전성기를 맞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 최초의 백화점이 등장한 시기는 언제이고, 누구에 의해서였을까? 세계 최초의 백화점인 프랑스의 봉마르셰가 탄생한 후로부터 약 80년이 지난 1929년, 일본의 미츠코시 백화점이 일제 치하의 서울에 진출한 ‘미츠코시 경성지점’이 국내 최초의 백화점이다. 본래 한일합방 이전인 1906년에 세워졌던 미츠코시 경성출장대기소’는 조선에 체류하고 있는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통신판매업체였으나 한일합방 후 조선재류 일본인이 급증하면서 그와 함께 발전, 1929년 9월 1일부로 정식지점으로 승격하였다. 그로부터 1년 뒤인 1930년 10월, 현재의 명동 신세계 백화점의 건축공사를 완공하여 개점하였다. 국내 최초의 백화점이 일본인의 손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유감스럽긴 하지만, 어쨌든 미츠코시 경성지점은 만주의 대련지점과 함께 미츠코시가 식민지에 세운 직영점의 하나로, 1930년대 말부터 해방이 되기까지 전 미츠코시 지점망 가운데 매우 중요한 점포로 군림하였다.

조선의 양대백화점, 동아백화점과 화신상회
백화점 역사가 그리 길지 않은 국내에서 백화점 여사원이 최초로 등장한 것은 1932년 동아백화점이다. 그들의 이름은 거론되지 않지만, 동아백화점의 최남 사장이 화신백화점과의 차별화를 위해 미모의 여사원들을 고용했다고 한다. 소위 ‘백화점 걸’이 탄생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장안의 미인은 비행기와 백화점 안에 모여 있다”는 이야기가 돌던 시기도 있었다.

한국 초기 백화점의 양대산맥이었던 동아백화점과 화신상회는 경쟁방식에서 차이를 보였다. 전자는 양장에 늘씬한 몸매를 자랑하는 미모의 여직원들을 활용, 미인계 전략을 선보였고, 후자는 봉사제일주의, 신용제일주의로 맞섰다. 처음 몇 달 간은 양 백화점의 경쟁이 점점 심화되어 좀처럼 승부가 판가름나지 않았지만, 장기화되리라던 예상과 달리 이 백병전은 불과 6개월 만에 동아백화점이 백기를 듦으로써 종식되었다. 당시 동아백화점의 최남 사장의 경영방식이 주먹구구식이었고, 미인계 전략의 운영에 있어서도 경영자의 감독 소홀을 틈탄 관리자가 오히려 여직원 여러 명을 농락했다는 추행이 세간에 알려졌던 것이다. 결국 동아백화점은 화신상회에게 상호와 상품 및 경영권 일체를 양도하였고, 화신상회와 동아백화점의 양 건물을 잇는 한국 초유의 육교가 가설되어 경성의 새로운 명물로 자리 잡았다.

탄생 후 150년 동안 백화점은 대자본의 ‘욕망환기 장치’로, 때로는 도시민의 ‘전인교육장’ ‘도시의 오아시스’ ‘입장료 없는 생활 유원지’로 시기마다 그 기능을 달리해오며 도시인들의 끊임없는 변화 적응성과 사회 순응 테스트 과정의 정점에 위치했다. 저자는 백화점의 이러한 시류적응성과 문화의 원류를 탐험해 나아가며, 오늘날 쇼핑과 소비의 공간으로만 여겨지는 백화점을 다른 문화적 코드로 읽을 수 있는 기회를 독자들에게 제공한다.


<책속으로>
만국박람회와 백화점
공간 자본화와 욕망의 환기 장치
에밀 졸라와 『부인들의 천국』
이미지를 상징화한 기호, '백화점'
사치의 민주화와 백화점이라는 학교
창세기 백화점의 투시
시류는 여류
입장료 없는 생활유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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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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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던 임상옥의 이야기 상도...
근데 책을 보니 첫부분에 왠 자동차 대기업 회장의 이야기부터 시작이 된다.
자동차강국의 꿈을 꾸던 그가 크리스마스 전날 갑자기 사망하는데 그의 지갑속에서 財上平如水 人中直似衡(재상평여수 인중직사형)이라는 글귀가 나온다. 이 글귀의 출처를 찾다가 임상옥이라는 상인을 알게되고, 그에 대해 탐구하기 시작한다.
임상옥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똘망똘망하게 자랐고, 한때는 절에 들어가서 많은것을 배우고, 점원일을 시작해서 상주의 눈에 들어 인삼무역을 위해 중국에 갔다가 공금으로 창녀촌에서 한 여자를 구해주지만, 그로 인해 쫓겨난후에 절에 들어가 스님이 된다.
근데 어느날 갑자기 한 상인이 나타나서 임상옥을 찾고, 그를 찾으라고 시킨 사람은 그가 구해주었던 여자였고, 그 여자는 대상인의 부인이 되어서 이제야 그에게 은혜를 갚고, 임상옥은 다시 상인에 들어선다는것이 1권의 스토리이다.
대략 임상옥의 성장과정과 그의 가치관등을 보여준다. 재미도 있고 배울점도 많고, 앞으로 5권까지 달려보자...:)


<도서 정보>제   목 : 상도1
저   자 : 최인호
출판사 : 여백미디어
출판일 : 2000년 11월
책정보 : ISBN : 8985804510 | 페이지 : 334 | 504g
구매처 : 오디오북
구매일 :
일   독 : 2006/10/16
재   독 :
정   리 :

<이것만은 꼭>



<책 읽은 계기>



<미디어 리뷰>
저 : 최인호
최인호는 1970년대 청년 문화의 중심에 선 작가다. 세련된 문체로 '도시 문학'의 지평을 넓히며 그 가능성을 탐색한 그는 황석영, 조세희와는 또다른 측면에서 1970년대를 자신의 연대로 평정했다.

1973년 스물여덟의 나이에 파격적으로 <조선일보>에 소설『별들의 고향』을 연재하게 되었다. 이 소설은 신문에 연재될 때부터 화제가 되더니 단행본으로 묶여 나오자 단숨에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또 얼마 뒤에는 이장호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져 크게 인기를 모은다. 이후 「술꾼」, 「모범동화」, 「타인의 방」, 「병정놀이」, 「죽은 사람」 등을 통해 산업화의 과정에 접어들기 시작한 한국사회의 변동 속에서 왜곡된 개인의 삶을 묘사한 최인호는 "1960년대에 김승옥이 시도했던 '감수성의 혁명'을 더욱 더 과감하게 밀고 나간 끝에 가장 신선하면서도 날카로운 감각으로 삶과 세계를 보는 작가"라는 찬사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호스티스 작가', '퇴폐주의 작가', '상업주의 작가'라는 달갑지 않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도 일간지와 여성지 등을 통해 『적도의 꽃』, 『고래 사냥』, 『물 위의 사막』, 『겨울 나그네』, 『잃어버린 왕국』, 『불새』, 『왕도의 비밀』, 『길 없는 길』과 같은 장편을 선보이며 지칠줄 모르는 생산력과 대중적인 장악력을 보여준 최인호는 2001년 『상도』의 대성공 이후 제 2의 전성기를 맞으며 거듭나는 작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최연소 신춘문예 당선', '최연소 신문 연재 소설가', '작품이 가장 많이 영화화된 작가', '책 표지에 사진이 실린 최초의 작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으며, 담배를 피우지 않는 대신 시거를 피운다.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 청계산에 오르는 생활 습관이 있으며 컴퓨터로 작업한 글은 “마치 기계로 만든 칼국수” 같고 왠지 “정형 수술한 느낌”이 들어 지금도 원고지 위에 한 글자, 한 글자씩 새긴다.

우리나라의 본받을 만한 역사적인 상인을 소재로 작품을 구상하던 저자가 이 작품에서 말하고 있는 주제는 '경제의 신철학(新哲學)'이다. 그는 그것을 2백여 년 전에 실재하였던 의주 상인 '임상옥'에서 발견하였다. 우리나라가 낳은 최대의 무역왕이자 거상이었던 임상옥은 죽기 직전 자신의 재산을 모두 사회에 환원한 인물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다른 주인공들, 홍경래와 김정희와 같은 역사적 인물들 역시 우리에게 어떠한 삶의 방식이 올바른 것인가를 선험적으로 드러내 보이고 있다.

겨울이 성큼 다가왔다. 여름은 지리멸렬하고 가을은 놀 일이 너무 많고 비로서 긴 호흡의 독서를 시도해 볼만한 마음의 시베리아가 찾아왔다. 신간의 양도 부쩍 늘었다. 이번 겨울에 마음 먹고 시도할 묵직한 책은 무얼까.

먼저 시간이 엄청나게 많은 사람, 가령 방학을 맞이할 대학생이라면 어디 아르바이트라도 해서 한 30만원쯤 장만하시라. 올봄 열린책들에서 출간한 장장 25권짜리 [도스또예프스끼 전집]을 구입하는 것이다. 젊은 시절에 도...끼 작품 몇권 읽지 않으면 평생 후회한다. 제발 이 말은 믿어달라.

도...끼 섭렵이 평생 계획에 든다면 이번 겨울로만 한정해서 정복해볼 대상으로 맞춤한 책이 나왔다. 민음사에서 최근 완간한 로제 마르탱 뒤 가르의 『티보 가(家)의 사람들』 총 2천 페이지가 넘는 장장 5권짜리 대작이다. 엄청난 작가임에도 우리에게 낯선 인물이 종종 있는데 대표적인 존재가 장 지오노와 마르탱 뒤 가르이다. 장 지오노는 이학사에서 여러 권을 번역해 냈고, 티보 가...는 서울대 정지영 교수가 10년 고생해서 완벽을 기해 펴낸 노작 중의 노작이다. 작가는 이 작품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런 고전물들이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게 바쁜 직장인이라면, 특히 의미 찾고 보람 찾고 할 생각보다는 그저 무지하게 재미있는 소설로 이 겨울의 빈 시간을 채우고 싶은 사람이라면 그 역시 맞춤한 신간이 있다. 후딱 읽으면 사실 며칠 걸리지 않게 속도가 나는 작품인데 벌써 베스트셀러 종합순위에 진입했다. 최인호가 한국일보에 연재했던 역시 5권짜리 대하소설 [상도(商道)]가 그것.

백과사전에도 나오는 실존인물 임상옥의 일대기로서 한말 의주에서 큰 사업을 일으킨 거상의 이야기다. 현재시점에서 출발하는 작품은 자동차 사업에 미쳐 있다가 그로 인해 불우한 사고사를 당한 기업인 김기섭의 이야기로 시작, 그가 사숙한 임상옥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반부에 한참 나오는 김기섭을 읽다보면 슬그머니 웃음이 나온다. 인물 묘사에서 바퀴에 미쳤다는 점에서는 기아자동차 창업주의 면모가, 폐쇄적일 정도로 내성적인 성격묘사에서는 이건희가, 무식할만치 저돌적이고 워커홀릭인 대목에서는 정주영이, 또한 한창 일을 벌리는 대목에서는 김우중의 이미지가 배어나온다. 작가에게 직접 확인해 봤더니 의도적으로 그랬다는 건데 하여간 한국의 대표적인 재벌총수들 캐릭터가 짬봉된 인물을 상상해 보라.

작가 서문에 나온 집필동기인 즉, 우리나라엔 본받을 만한 역사적인 상인이 없다는 탄식이 기업인들 사이에 많다는 말을 듣고 그 표상으로 임상옥을 내세웠다는 것이다. 과연 실제로 두 권의 저작을 남긴 바 있는 임상옥은 오늘에 되살려 놓기에 손색없을 만큼 큰 족적을 드리운 사람이다. 무엇보다 그는 재물을 모았으되 대물림하지 않고 사회환원을 실천한 사람이었다. 노년에 전재산을 주변에 나누어 주고 홀홀히 '채소 가꾸는 노인'으로 여생을 보내며 시작(詩作)에 매진했던 것이다.

역시 최인호는 최인호다. IMF를 거쳐 또다시 경제대란설이 난무하는 시점에 대중들이 무얼 원하는지를 절묘하게 포착해낸 것이다. 21세기 경제를 움직이는 큰 동력으로 프랜시스 후쿠야마한 창안한 "신뢰"의 개념이 있다. [상도]의 임상옥은 2천년대 한국경제의 현실에 대해 150년 앞서 방향을 제시하고 스스로 실천한 실존인물이다.


<줄거리>
기평그룹의 총수 김기섭 회장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죽은 후 그의 지갑에서 나온 '財上平如水 人中直似衡(재상평여수 인중직사형)'이란 문장의 출처를 밝혀달라는 회사측의 요청에 나는 그 문장을 쓴 사람이 조선 중기의 무역왕 임상옥(林尙沃)임을 알아낸다.

임상옥은 의주 태생으로 스무 살 무렵 중곡 연경에 들어가 처음으로 큰 돈을 벌었으나 이 돈으로 유곽에 팔려 온 장미령을 사서 자유의 몸을 만들어주고 자신은 공금을 유용한 죄로 상계에서 파문을 당한다. 할 수 없이 승려가 된 임상옥은 고관대작의 첩이 된 장미령이 자신을 찾고 있다는 말을 듣고 환속하여 재기하기 시작한다. 하산할 무렵 석숭 스님이 내려준 세 가지 비결, 즉 '죽을 사(死)' 자와 '솥 정(鼎)' 자와 '계영배(戒盈盃)'의 술잔을 통해 임상옥은 일생일대의 위기를 벗어나게 된다. 첫 번째로는 베이징 상인들의 인삼불매동맹을 스스로 인삼을 태우는 방법으로 물리칠 수 있었으며, 두 번째는 풍운아 홍경래의 유혹을 '솥 정(鼎)'자의 비의를 타파함으로써 그 혁명의 와중에도 온전히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가득 채우면 다 없어져 버리고 오직 팔 할쯤 채워야만 온전한 '계영배'의 비의를 통해 스스로 만족하는 자족이야말로 최고의 상도(商道)임을 깨달은 임상옥은 사랑하는 여인 송이를 떠나보내고 스스로 물러나 은둔생활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마당에서 모이를 쪼고 있는 닭 한마리를 솔개가 채어가는 모습을 보는 순간, 자신의 명운이 다하였음을 직감한 임상옥은 자신에게 빚진 상인들을 모두 불러 일일이 빚을 탕감해주는 한편 오히려 금덩어리까지 들려 보내는 것이 아닌가. 이를 못마땅히 여긴 개성상인 박종일이 그 이유를 따져 묻자 임상옥은 이렇게 말한다. "어차피 빚이란 것도 물에 불과한 것. 목마른 사람에게 물을 주었다고 해서 그것이 어찌 받을 빚이요, 갚을 빚이라 하겠는가. 또한 빚을 탕감하고 상인들에게 금덩어리를 들려보낸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들이 없었더라면 나 또한 상인으로서 성공을 거둘 수가 없었을 것이다. 애초부터 내 것이 아닌 물건을 그들에게 돌려주는 것에 불과한 일이다."

박종일은 임상옥의 명령으로 한양에 있는 봉은사로 출장을 떠난다. 그것에서 추사 김정희를 만나 임상옥이 보낸 산삼을 전하고 추사로부터 상업지도란 그림을 받아 오게 된다. 한편 임상옥이 사랑하는 여인 송이는 천주교인이 되어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대세를 주며 천주학을 전파하다가 포졸들에게 붙잡혀 황새바위에서 돌에 맞아 죽는 형벌인 석투살로 처형당한다. 그 이후 임상옥도 건강이 급속도로 쇠약해지고 박종일에게 '재물은 평등하기가 물과 같고, 사람은 바르기가 저울과 같다'는 유언을 남기고 죽는다.

끝으로 나는 김기섭 회장의 호를 딴 <여수기념관>의 개관식에 참석, 추사가 임상옥을 위해 쓴 발문의 내용을 천천히 훈독한다. 그리고 지난 일년동안 우연치 않게 뛰어들어 임상옥의 생애를 추적해 오고 있던 일련의 작업이 추사의 발문으로 대단원의 종지부를 찍는다.


<책속으로>
1. 천하제일상
작가의 말
바퀴벌레
서곡
비밀의 열쇠
운명의 밤
기사회생
천우신조

'허 대인게오서는 누가 돌아가셨습니까. 가슴에 검은 상장을 두르고 있는데.'

'신의 아비가 돌아가셨나이다.'

'그러하면 친상을 당하셔서 대상 중이신데 어찌하여 의병을 일으키려 하시나이까.'

이 말을 들은 허항이 눈을 부릅뜨고 말하였다.

'예로부터 군사부일체라 하였나이다. 나라의 임금과 스승과 아버지의 은혜는 다 같아 하나라는 뜻이나이다. 비록 이 몸은 아비에게서 나왔으나 나를 가르친 것은 스승이요. 나를 기른 것은 나라의 임금이나이다. 그러므로 어찌 사사로운 정에 이끌려 나라의 위태로움을 모른 체할 수 있겠나이까.'

이 말을 들은 임상옥은 한참이나 침묵을 지키며 허항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임상옥은 말하였다.

'무엇이든 원하는 것은 말하시오. 내가 할 수 있는 능력껏 도와드리겠소이다.' <중략>

'물론 홍경래는 내게 있어 은인이라고 말할 수는 있네. 그러나 홍경래는 내게 은인이지만 의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네.'

말을 끝내고 나서 임상옥은 붓을 들어 종이 위에 문장하나를 써내렸다. 박종일은 임상옥이 쓴 문장을 읽어 보았다. 그문장은 다음과 같았다.

'墨翟之守'(묵적지수)................--- p.85-86 상도 3권 中
'장사란 이익을 남기기보다 사람을 남기기 위한 것이다. 사람이야말로 장사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이윤이며, 따라서 신용이야말로 장사로 얻을 수 있는 최대의 자산인 것이다.'

자신은 신용은커녕 최소한의 이익조차 남기지 못하고 비참한 최후를 마친 객상이었지만 그가 남긴 교훈은 임상옥의 인생에 있어 귀중한 법도가 된 것이다.

'상즉인'

'장사는 곧 사람이며 사람이 곧 장사'라는 상도에 있어서의 제 1조는 임상옥이 평생을 통해 지켜나간 금과옥조였던 것이다.--- p.202, --- pp.3-11,--- 제 4장 운명의 밤 중에서
작은 장사는 이문을 남기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만 큰 장사는 결국 사람을 남기기 위해서 하는 일이라는 철학이었다. 이는 <논어>에 나오는 구절인데 이인편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사람이 이익대로 한다면 원망이 많다. 이익이란 결국 나 자신을 위하는 것이니 필히 상대방에게 손해를 주는 결과가 된다. 그래서 이익을 좇으면 원망을 부르기 쉬우니 결국 '의를 따라야 한다.' 따라서 '군자가 밝히는 것은 의로운 일이요, 소인이 밝히는 것은 이익인 것이다.''--- p.201
'이봐. 이 여인은 분명히 우리 조선 여인의 얼굴이야. 봐. 이 표정 봐. 울 밑에 선 봉서놔 같지 않아.' 회장님은 이 돈에 새겨진 이 조선족 여인의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참 슬픈 조선의 얼굴이다. 눈물나도록 슬픈 우리들 엄마의 얼굴이다. 우리 엄마의 엄마. 그 엄마를 낳은 할머니. 그 할머니를 낳은 할머니의 할머니 얼굴이다. 또한 시집간 누이의 얼굴이다.'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회장님은 이 돈을 자신의 지갑 속에 넣으셨습니다. 그때부터 이 돈은 회장님의 부적이 되었습니다. 회장님은 가끔 이 돈을 꺼내 이 돈에 새겨진 조선 여인의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기도 하셨습니다.'--- p.81
우리나라가 낳은 최대의 무역왕이자 거상이었던 임상옥의 발견은 우리나라에도 상업에 도를 이룬 성인이 있다는 자부심을 느끼게 하였으며, 그렇다면 오늘을 사는 기업인들에게도 자랑할 만한 사표로서 임상옥을 부각시키는 것이 올바른 도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임상옥은 죽기 직전 자신의 재산을 모두 사회에 환원하였고, 이란 유언을 남긴 최고의 거상이었다. '재물은 평등하기가 물과 같고, 사람은 바르기가 저울과 같다.'라는 그의 유언은, 평등하여 물과 같은 재물을 독점하려는 어리석은 재산가는 반드시 그 재물에 의해서 비극을 맞을 것이며, 저울과 같이 바르고 정직하지 못한 재산가는 언젠가는 반드시 그 재물에 의해서 파멸을 맞을 것이라는 교훈을 우리에게 주고 있는 것이다.--- 책머리에
앞에만 머리카락이 있고 뒤통수는 대머리인 것은 바로 기회이나이다. 무슨 일이든 하기에 가장 알맞은 시기인 기회는 자주오지 않나이다. 사림이 살아가는 데 있어 세번 이상 찾아오지 않는다고들 말하나이다. 기회는 찾아올 때 그 머리카락을 붙들고 놓지 말아야 하나이다. 기회는 앞에만 머리카락이 있어 왔을 때 잡아 붙들어야 합니다. 아차 하는 순간에 스텨 지나간 기회는 이미 그 뒤통수가 대머리여서 붙잡으려 하여도 붙잡을 머리카락이 없는 법이나이다.--- p.247~248
순간 임상옥은 당황하였다. 내가 쓴 글씨가 비단 속옷 위세 쓴 글씨와 같지 않고 다르다니. 어째서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저 비단 속옷은 분명히 내가 5년 전 헤어질 때 장미령에게 사는 곳과 이름을 적어 주었던 바로 그 속옷이 아닐 것인가. 그때 장미령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자신의 비단 속옷을 들고 임상옥에게 말하였었다.--- p.293-294
'상업의 길'(商業之道).
일찍이 태사공(太史公)은 <사기>에서 '못이 깊으면 고기가 그곳에서 생겨나고 산이 깊으면 짐승이 그곳으로 달려가며 사람이 부유하면 인의가 부차적으로 따라온다'고 말하였다. 이는 옳은 말이다. 그러나 오직 부유하기 때문에 인의가 따라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람의 부유보다는 마땅히 사람으로서 지켜야할 인도(人道)가 있어야만 인의(人義)가 따라오는 것이다. 이를 일컬어 '상업의 길'이라고 부를 만하다.

가포는 평생 부를 모아 마침내 조선 팔도에서는 그 누구도 당할 수 없는 거부가 되었다. 그러나 가포는 일찍이 공자가 말하였던 대로 '상업이란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의(義)를 추구하는 것'이라는 것에 충실하여 평생동안 인의를 중시하던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마침내 '재물은 평등하기가 물과 같고 사람은 바르기가 저울과 같다'는 사실을 깨달아 재물보다는 사람을 우선하였다.

따라서 그는 평생동안 재물을 모았지만 실은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는 평생 황금을 벌었으나 이는 다만 채소를 가꾼 일에 지나지 않는 것이니 그를 '채소를 가꾸는 노인'이라 부를 만하다. 고로 그를 상불(商佛)이라 불니 이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즐겁고 기쁜 일이다.--- p.256:13---p.257:14----제5권 중에서
도척은 도둑의 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집안에 간직한 재물을 밖에서 추측할 수 있는 것을 성(聖)이라고 한다. 이것이 도둑이 지켜야 할 제 1의 도다. 그 다음엔 선두에 서서 남의 집에 들어가는 것을 용(勇)이라고 한다. 이것이 도둑이 지켜야 할 제2의 도다. 그 다음엔 맨 나중에 나오는 것이 의(義)라고 한다. 이것이 도둑이 지켜야 할 제 3의 도인것이다. 그다음엔 도둑의 성공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지(知)라고 한다.

이것이 도둑이 지켜야 할 제4의 도인것이다. 가장 마지막에는 훔쳐온 물건을 덜 갖고 치우침없이 공평하게 나누는 것을 인(仁)이라고 한다.이것이 도둑이 지켜야 할 제5의 도인것이다. 이다섯가지 도를 터득하지 못하면 천하에 이름을 떨치는 큰 도둑은 절대로 되지 못할 것이다.--- p.105
개성 상인 박종일은 남문 성곽 아랫마을의 임씨 집성촌에 들러서야 마침내 임상옥의 행방을 알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다음날 금강산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그에게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의주에서 임상옥을 찾아내야 할 의무가 있었던 것이다.

암상옥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찾을 때까지 의주를 떠날 수 없을 만큼 박종일에게는 이 일이 중차대한 일이었다. 임상옥을 찾고 못 찾고는 상인으로서의 그의 운명이 걸린 일이었다. 임상옥을 만나 그에게 전해줄 물건이 따로 있었던 것이다. 만약 임상옥을 만나지 못해 그 물건을 전해주지 못한다면 박종일은 그만큼 상인으로서의 역량을 인정받지 못하게 되어 있었던 깃이다.

천신만고 끝에 박종일은 임상옥이 속세를 떠나 입산출가하였음을 알게 된 것이었다. 그것이 벌써 일년 전. 일년 사이에 임상옥이 또다시 다른 사찰로 거처를 옮겼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금강산 속에 있는 추월암으로 그를 찾아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박종일은 가파른 바윗길을 오르고 올라 마침내 산정에 이르렀다. 그가 임상옥을 만난 것이 기록에 의하면 7월 14일. 7월이면 한여름의 성하. 무더위를 무릅쓰고 산정에 오른 박종일은 산 아래 펼쳐진 너른 만주땅의 벌판을 땀을 닦으며 내려다보았다.

산정에는 대여섯 게의 요사체로 구성된 암자가 우뚝 솟아 있었다. 가파른 계단 위 암자로 들어가는 전문 위에는 '추월암'이라는 현판이 내걸려 있었다. 어림하여 5백 년 이상 된 사찰로 한때 묘향산에 오래 있어서 서산대사라고 불리던 청허 휴정 스님도 젊었을 때 이 암자에서 공부했던 유서 깊은 사찰인 것이다.---pp.1권 231~232
' 장사란 이익을 남기기보다 사람을 남기기 위한 것이다. 사람이야말로 장사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이윤이며, 따라서 신용이야말로 장사로 얻을 수 있는 최대의 자산인 것이다.' 자신은 신용은 커녕 최소한의 이익조차 남기지 못하고 비참한 최후를 마친 객상이었지만 그가 남긴 교훈은 임상옥의 인생에 있어 귀중한 법도가 된 것이다. '상즉인'

'장사는 곧 사람이여 사람이 곧 장사' 라는 상에 있어서의 제 1조는 임상옥이 평생을 통해 지켜나간 금과독조였던 것이다. 임상옥이 장미령의 몸을 사서 그녀를 자유의 몸으로 살려준 것도 '이를 남기기보다 의를 좇으려는' 그의 상도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이 문상으로 독립할 수 있는 종자돈뿐 아니라 공금 횔령해서까지 가진 동을 모두 털어 한 여인의 생명을 구해내었다. 그는 옳은 일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버린 것이다.--- p.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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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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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상업에 뛰어 들은 임상옥... 드라마 상도에서 유명한 인삼을 태우는 장면으로 큰 부를 이루고, 국가에서 인삼교역권을 제한하자 실권자에게 백지어음을 주고 권력과 손을 잡고 부를 유지해 나간다.
한편 민심이 흉흉한 이때 홍경래가 임상옥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위해서 임상옥의 직원으로 들어와서 일을 잘해내지만, 홍경래의 의중을 파악한 임상옥은 어찌할바를 결정을 못하고 고민을 하게되는것이 2권의 내용...
소설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소설속에 들어있는 수많은 고사, 이야기들이 더 재미있는듯하다...:)
그리고 드라마와는 전반적인 맥락은 비슷하지만, 재미를 위해서 그 내용이 많이 가감되어있는것을 느낀다...


<도서 정보>제   목 : 상도2
저   자 : 최인호
출판사 : 여백미디어
출판일 : 2000년 11월
책정보 : ISBN : 8985804529 | 페이지 : 325 | 492g
구매처 : 오디오북
구매일 :
일   독 : 2006/10/18
재   독 :
정   리 :

<이것만은 꼭>



<책 읽은 계기>



<책속으로>
1. 폭풍전야
계영배
개미와 꿀
불매동맹
요원
푹풍전야

임상옥은 큰스님 석숭의 참언대로 죽음으로써 보다 큰 생명을 얻었던 것이다. 이는 비단 상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모든 정치, 모든 종교, 모든 예술, 인간사회의 모든 일들은 자기 자신을 버리고 자아 포기의 죽음이란 무를 반드시 통해야만 생명의 기쁨인 존재의 유를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진리 그 자체인 것이다. 추사 김정희를 통해 이순신의 반드시 죽으려 하면 살 것이요, 반드시 살려 하면 죽을 것이다. 란 문잔을 접하게 되고 그 문장에서 큰스님이 내려준 죽을 사자의 비의를 깨닫게 된 임상옥은 이로써 일생일대에 맞닥뜨린 첫번째 위기를 통쾌하게 물리치게 되는 것이다.--- p.183-184
그들은 임상옥이 회동관 앞마당에 불을 지르고 그 불 속에 인삼꾸러미를 집어던져 태우기 시작하자 혼비백산하였다. 그들은 달려가 자신들의 주인인 약재상들에게 이를 낱낱이 고하였다.

"조선의 상인이 불을 지르고 인삼을 모두 태우고 있습니다."

염탐꾼들의 전갈을 받은 상인들은 모두 단숨에 뛰어왔다. 그들은 실제로 임상옥이 인삼을 태우고 있는가를 살펴보았다. 연경을 드나드는 인삼 상인들은 예로부터 가짜 인삼, 즉 도라지를 따로 준비해서 갖고 다니는 것이 보통이었다. 여행 도중에 도적을 만나면 인삼이라 하고 도라지를 대신 빼앗기기 위해서 그런 방법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약재상들은 임상옥이 인삼을 태우는 척하고 실은 도라지를 태우는 것이 아닐까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불 속에 던져지는 것은 분명히 인삼이었다. 인삼 중에서도 수년간 볼 수 없었던 정품의 홍삼이었던 것이다. 인삼에는 사포닌이라고 하는 독특한 주성분이 있다. 이를 중국의 약재상들은 배당체라고 부르고 있었다. 인삼을 먹었을 때 약간 씁쓰레한 이 향기야말로 인삼만이 가진 독특한 맛이자 약리작용을 하는 주성분임을 약재상들은 오랜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인삼을 태우면 사포닌 성분이 불과 작용하여 연소할 때 인삼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냄새를 풍기는 것이다. 약재상들은 본능적으로 솟아오르는 연기 냄새를 통해 인삼이 타오르고 있음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pp.177~178
그 한순간 임상옥은 큰스님 석숭이 써준 죽을 사(死) 자의 의미를 깨달은 것이었다. 그 의미를 깨달았을 때 임상옥은 큰 소리로 껄껄 웃었다고 전하여진다. 한바탕 크게 웃고 나서 임상옥은 느닷없이 의관을 정제한 후 김정희 앞에 세 번을 무릎 꿇고 절을 하였다.---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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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도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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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래의 난이 끝나고 역적중에 친구의 시신을 몰래 묻어주고, 나중에 그의 딸을 첩으로 빼돌려 양인으로 만들어준 임상옥은 비변사에게 걸려서 1년간 유배를 가게되지만, 술자리에서 계영배의 비밀을 깨닫게 되고, 계영배를 깨버린 사람의 배려로 유배를 끝낸다. 그리고 계영배의 비밀을 찾아다니던 임상옥은 나라에 자기를 납품하는 명장의 수양아들이 만든것임을 알게되고, 그가 사라졌다는것을 알고 예전에 절의 스님에게 돌아가지만 그 스님은 얼마전에 돌아가셨다고 하고, 그때가 계영배가 깨진 바로 그날임을 알게되고, 주지스님이 바로 그 수양아들이라는것을 알게된다.
다시 집으로 돌아온 그는 큰집을 줄여서 없애고, 마음속에 큰집을 짓기로 한다. 그리고 친구의 딸인 송이의 출생의 비밀을 알려주고 그녀와의 연을 끊고 돌아와서 모든 상권을 동업자에게 물려주고 자신은 조용히 물러난다.

사슴을 쫓다보면 산을 보지 못하고, 돈을 쫓다보면 사람을 보지못한다는것을 계영배를 통해서 느낀 임상옥.. 모든것을 포기하고 한발자국 뒤로 물러선다. 그의 용기와 용단속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본다... 과연 나에게 진정으로 중요한것,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토록 사랑하던 송이와의 연을 끊을때 저자는 김유신, 읍찹마속,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등등 많은 비유를 든다. 물은 한번 흘러가면 끝이고, 마음도 떠나가면 그만이라는 말과함께...
나에게도 끊어야 할것들.. 버려야 할것들이 많다... 과연 나도 김유신처럼... 제갈공명처럼.. 부처님처럼 용단을 내리고, 과감하게 살아갈수 있을까?
그래야 하는데.. 너무도 용기가 없고, 단호하지 못하고, 나약하고, 비겁하다.. 그리고 이런 내가 부끄러울뿐이다...


<도서 정보>제   목 : 상도4
저   자 : 최인호
출판사 : 여백미디어
출판일 : 2000년 11월
책정보 : ISBN : 8985804545 | 페이지 : 262 | 406g
구매처 : 오디오북
구매일 :
일   독 : 2006/10/23
재   독 :
정   리 :

<이것만은 꼭>



<책 읽은 계기>



<미디어 리뷰>


<줄거리>


<책속으로>
1. 계영배의 비밀
누란지위
계영배의 비밀
석숭 스님
길 없는 길

'이제야 아시겠는가. 박공. 내가 왜 이 새집을 허물어뜨리려 하는지 그 이유를 아시겠는가. 그렇소이다. 내게 있어 이 집은 새 집이 아니라 바로 공중에 떠 있는 누각인 것이외다. 하늘에 떠 있는 신기루인 것이외다.'--- p.199
스스로 상계에서 물러나 가객이 됨으로써 금강사에서 새벽 종소리를 들었을 때 깨달았던 길 없는 길의 세 번째 길을 완성한 임상옥은 자신이 자서한 <가포집> 서문에서 자신의 인생을 근본적으로 바꾼 '계영배'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나를 낳아준 사람은 부모이지만 나를 이루게 해준 것은 그 하나의 잔이었다 (生我者父母 成我者一杯)'

그렇다. 그 술잔, 계영배는 임상옥을 거상에서 거인으로 변화시켰던 것이다. 이때의 심경을 임상옥은 <가포집> 서문에 담담한 필치로 간단하게 표현하고 있다. '...새 집을 짓고 입주하여 들어오매, 숲과 연못, 꽃과 돌 사이에 새들이 날아와 다투어 집을 지으며 지저귄다. 가히 책을 읽고 시를 지으면서 만년에 휴식을 취할 장소가 될 만하다.'--- p.262
송이는 방안에서 떠나는 임상옥의 목소리와 발자국 소리와 양어미 산홍의 호들갑스런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송이는 숨죽여 듣고 있었다. 자칫 통곡으로 터져 흐르려는 눈물을 막기 위해서
송이는 입안에 가득 숨을 베어물고 있었다. 가신다. 임께서 떠나가신다. 떠나가시오면 이제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신다. 아아, 날더러 어찌 살라시고 나를 버리고 떠나가신다.마침내 임상옥이 문 밖으로 나아가 발자국 소리가 멀어져 가자 송이는 노리개로 차고 있던 칼집 속에서 날카로운 은장도를 빼어들었다. 은장도. 송이가 정절을 지키기 위해서 항상 옷고름에 차고 다니던 패도. 그러나 이제 정절이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 송이는 칼집에서 날카로운 칼을 빼어들고 허공으로 치켜들었다. 유시사에는 상대를 공격하거나, 마지막으로는 자결하기 위해서 갖고 다니던 칼이 아니었던가. 허공으로 치켜들었던 은장도를 송이는 순간 내리찍었다.

송이의 손에서 은장도는 춤추었다. 베틀 위에 거의 완성되어 가던 명주옷의 실을 은장도는 단숨에 베어내었다. 임이 오시면 만들어 주리라 일년여 동안 직접 짜던 명주옷이었다. 그러나 이제 떠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임을 위해 옷감을 짜서 무엇하며, 옷을 지어 무엇할 것인가. 임은 떠났다. 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송이는 베틀에 걸려 있는 명주옷을 은장도로 갈갈이 찢어내리면서 무너졌다. 마침내 참았던 울음이 통곡이 되어 터져 흘렀다. 날더러는 어찌 살라 하시고 나를 버리고 떠나시고 말았다.--- pp.249-250
동이 트기 전에 임상옥과 송이는 곽산을 떠나 가산으로 출발하였다. 임상옥은 말을 타고 떠났으나 송이는 교부들이 맨 가마를 타고 떠났다. 간밤에 이른대로 송이는 흰 상복을 입지 아니하였으나 삼베로 만든 최를 양쪽 가슴에 매달았으며 백댕기라 하여서 삼베로 만든 헝겊으로 머리를 묶고 있었다.

예로부터 '2월 한식에는 꽃이 피어도 3월 한식에는 꽃이 피지 않는다'는 말이 전해오고 있었다. 2월에 한식이 드는 해는 철이 이르고, 3월에 드는 해는 철이 늦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산을 찾아가는 길 양옆에는 유난히 철이 이른 탓인지 흐드러지게 봄꽃이 피고 있었다.

가산은 곽산보다 남쪽에 있었고, 청천강과 대령강의 두 강줄기가 합쳐지는 그 어귀에 자리잡고 있는 작은 한촌이었다. 길은 멀지 않았지만 주위에 첩첩한 산이 많아 가고 오기가 수월치 않았다.

해가 있는 동안에 성묘를 마치고, 해거름까지는 곽산으로 돌아와야 했으므로 임상옥은 인부들을 재촉하여 서둘러 길을 가도록 명령하였다. 임상옥은 20여 년 만에 가산으로 이희저의 무덤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임상옥은 종자가 이끄는 대로 말을 타고 가면서도 줄곧 마음이 착잡하였다. 남의 눈을 피해 매장을 하였으니 묘비는 물론 봉분조차도 제대로 세우지 못하였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 하였는데 20여 년의 세월이 흘러 강산이 두 번 이상 변하였으므로 20여 년 전에 묻었던 이희저의 묘자리를 어떻게 쉽사리 찾아낼 수 있으리오.---pp.221~222
곽산에서 돌아온 임상옥은 즉시 금강사에서 새벽 종소리를 들었을 때 깨달았던 길 없는 길 중에서 그 세 번째의 길을 실행에 옮길 것을 결심하였다. 이미 스스로 지은 집을 파기하는 것으로 그 첫 번째의 길을 실천하였던 임상옥은 사랑하는 송이와의 인연을 끊고 이별함으로써 두 번째의 길 없는 길을 행하였다. 이제 남은 것은 세 번째의 길이었다.임상옥은 조촐한 주안상을 차린 후 박종일을 불러들여 단둘이 마주앉았다. 주거니 받거니 몇 순배의 술잔이 오간 뒤 임상옥이 먼저 입을 열어 말하였다.--- p.254

정히 그러하시겠다면 언제부터 파가를 하시겠나이까"
"지금부터"
조금도 거리낌도 없이 임상옥은 단박 대답하였다.
"바로 당장 여기서부터"
"하오나"
박종일은 말을 잘랐다.
"지금은 엄동설한이나이다. 밖은 북풍한설이 몰아치고 있는 한겨울이나이다.
그러하오니 한겨울은 새 집에서 보내셨다가 봄이 되어 집을 파가하여도 늦지 않으실 것이나이다,
나으리. 그러하오니 한 철만 늦추셨다가 새 봄이 들었을 때 이를 시행함이 옳을까 하나이다"
박종일의 말을 들은 임상옥은 마시던 술잔을 갑자기 탁자 위에 내려 놓으며 말하였다.
"옛 중국의 건봉선사에게 제자 한 사람이 다음과 같이 물었소이다.
'사방이 다 불토로 뚫리고 큰길 하나가 곧바로 열반의 문으로 뚫였는데
그 길을 가려면 어디서부터 출발하여야 합니까'
이 질문에 건봉선사는 다음과 같이 답하였네.
'눈앞이 곧 길이다'
그리고 나서 건봉은 이렇게 말하였소.
'곧바로 여기에서 출발하라'
이보시게나, 박공. 공중에 뜬 누각을 허물어뜨리는데 때를 살펴 무슨 소용이 있으며
바다 위에 뜬 신기루를 무너뜨리는데 때를 살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러하오니 옛 스님이 말씀하였듯, '곧바로 여기에서부터 출발하는 것'만이 옳지 않겠는가.
그러니 박공, 당장 내일 아침부터 시작하시오"

읍참마속.
촉한의 제갈량이 군령을 어긴 마속을 눈물을 흘리면서 목을 베었다는 고사처럼
사랑하는 송이를 진심으로 위하는 길은 송이의 목을 단칼에 내려치는 것임을 임상옥은 깨달을 수 있었다.

송이를 진심으로 위하는 것은 단칼에 인연의 끈을 끊어버림으로써 그녀를 자유롭게 하여 주는 것이다.
사사로운 정념으로 그녀를 구속하는 것이 아니라 송이의 목숨을 단칼에 내리킴으로써
그녀를 죽여버리는 일인 것이다.
이제야말로 송이를 죽여버릴 바로 그때가 다가온 것이다.

해거름에 서둘러 돌아오는 길이었으므로 뉘엿뉘엿 해는 지고 있었다.
온 산을 붉게 물들인 진달래와 철쭉꽃 사이로 소쩍소쩍- 피를 토하면서 소쩍새가 울고 있었다.
그 소쩍새의 애조띤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임상옥은 묵묵히 옛 신라시대 때의 고사를 떠올렸다.

신라 진평왕 때 유명한 기생 하나가 살고 있었는데 그녀의 이름은 천관, 혹은 천관녀라고 하였다.
그녀는 소년 시절 화랑이었던 김유신과 서로 좋아하고 있었다.
우연히 천관의 집에 유숙한 뒤로 하루도 그녀를 보지 못하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김유신은 사랑에 빠져 있었다.
이 일을 알게 된 김유신의 어머니 만명부인은 김유신을 불러 앉히고 울면서 다음과 같이 훈계하였다.

"네가 성장하여 공명을 세워 임금과 어버이를 영화롭게 하기를 밤낮으로 바랬었는데
이제 너는 천한 년과 술집에서 놀아나고 있단 말이냐"

이때 김유신은 어머니 앞에서 다시는 그 집에 가지 않겠다고 맹세하였다고 전해오고 있다.
실제로 어머니와의 약속은 지켜져서 김유신은 그 이후 천관녀의 집을 지나지 않았으나
어느 날 술에 취해 말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깜박 마상에서 잠이 들었는데
말은 이전에 다니던 옛길을 따라 기녀 천관녀의 집으로 찾아간 것이었다.
천관녀는 원망하던 김유신이 찾아오자 맨발로 달려나와 그를 반갑게 맞이하였다.
말 위에서 잠을 깬 김유신은 놀라 술이 깨었으며
그 순간 김유신은 칼을 빼어 말의 목을 베어버리고 안장을 버린 채 그대로 집으로 돌아가 버린 것이다.
이를 본 천관녀는 원사라는 사랑노래를 지어 불렀는데 이 노래는 널리 불렸다고 알려져 있으나
지금은 전해 내려오지 않고 있는 것이다.

훗날 천관녀는 김유신을 그리다가 병에 걸려 죽었으며
김유신은 그 영혼을 달래기 위해서 천관녀의 집자리에 절을 지었는데 그 절 이름을 천관사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또한 자기가 탔던 말의 목을 베어 죽인 자리를 참마항이라 불렀는데,
뒷날 김유신이 삼국통일의 큰 업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말의 목을 베어버린
참마항에서 움튼 것이라는 이야기를 임상옥은 소년시절 행자 노릇을 할 무렵 승려들로부터 전해들었던 것이다.

참마항.
말의 목을 베어 죽인 바로 그곳. 말의 목을 단칼에 베어버림으로써 애욕을 끊어버린 김유신처럼
이제 나도 미몽에서 깨어난 말의 목을 단칼에 베어버려야 하는 것이다.

애욕. 이성에 집착하는 성적인 욕망.
송이를 향한 육체적 욕망. 마셔도 마셔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
일찍이 부처는 애욕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왕이 거동하면 신하도 따라가듯 애욕이 가는 곳에는 항상 미혹이 따른다.
습한 땅에 잡초가 무성하듯 애욕의 습지에는 번뇌의 잡초가 무성한다.
또한 애욕은 나찰의 딸과 같아 아이를 낳는 대로 잡아먹고 마침내는 자기의 남편까지도 잡아먹는다.
중생들이 선업의 아이를 낳으면 낳는 대로 잡아먹고 중생까지도 잡아먹는다.
애욕은 또한 꽃밭에 숨은 독사와 같다.
사람들이 꽃을 탐해 꽃을 꺽다가 독사에게 물려 죽는다.
중생들은 오욕의 꽃을 탐하다가 애욕을 뿜는 독사의 독을 받고 마침내 악도에 떨어진다"

그리고 나서 부처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차라리 남근을 독사의 아가리에 넣을지언정 여자에 몸에는 대지 말라.
이와 같은 인연도 악도에 떨어져 헤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애욕은 착한 법을 태워버리는 불꽃과 같아서 모든 공덕을 없애버린다.
애욕을 얽어묶은 밧줄과 같고 시퍼런 칼날을 밟는 것과 같다.
애욕은 험한 가시덤불을 뛰어드는 것과 같고 성난 독사를 건드린 것과 같으며 더러운 시궁창과 같은 것이다"

어느덧 주위는 서서히 땅거미가 내려 어두워져가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어둠이 내리기 전에 곽산읍내에 도착한 것이다.
말 위에 오래 앉아 종자가 이끄는 대로 우쭐우쭐 타고 가면서
임상옥은 묵묵히 귓가를 때리는 부처의 사자후를 마음에 새겨들었다.
이제야말로 말의 목을 단칼에 베어버리고 애욕의 굵은 밧줄을 끊어버릴 때인 것이다.
애욕의 습지에 돋아난 번뇌의 잡초를 뿌리채 뽑아 버릴 때인 것이다.
바로 이것이 금강사에서 새벽 종소리를 들었을 때 깨달았던 길 없는 길의 두 번째 행인 것이다.
송이를 향한 애욕의 번뇌를 단칼에 끊어버리는 일인 것이다.


"다시 한 잔 더 따라주지 아니하겠느냐"

술 석 잔의 삼배였다.
예로부터 술 석 잔의 삼배를 마신다 함은 자신의 결연한 의지를 드러내 놓겠다는,
술자리에 있어서의 주도였던 것이다.

송이 역시 그 주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말없이 두 손으로 다시 빈 잔을 채웠다.
이미 마신 술이 상당하여 취했을 법도 하건만 임상옥은 조금도 취한 기색이 없이
묵묵히 송이가 따라주는 삼배를 들이켜고 나서 빈 술잔을 소리가 나도록 술상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나서 송이를 마주보며 입을 열어 말하였다.

"네가 물으니 내가 분명 대답할 것이다.
묻지 아니하면 대답하지 않아도 좋은 것을 송이 네가 물으니, 그러면 내가 대답하겠다.
이제 모든 것은 끝이 났다. 모든 것이 내 소원대로 이루어졌다"

문득 말을 그치며 임상옥은 벼루를 가져오게 한 후 붓에 먹을 듬뿍 묻혀서 종이 위에 단숨에 한시를 써내려갔다.
임상옥이 종이 위에 쓴 시는 다음과 같았다.

하마음군주
문군하소지
군언부득의
귀와남산수
단거막부문
백운무진시

단숨에 흰 종이 위에 한시를 써내리고 나서 임상옥이 송이에게 물어 말하였다.

"이 시가 누구의 시인지 알고 있느냐"

"알고 있나이다. 당의 시인 왕유의 시이나이다"

"그렇다"

임상옥은 붓을 던지며 말하였다.

"이 시는 왕유의 '송별'이라는 시이니라"

임상옥은 손가락으로 일일이 짚어 내리면서 자신이 쓴 왕유의 시를 읊어 내려갔다.

"말에서 내려 그대에게 술을 권하면서,
그대에게 묻노니 '어느 곳으로 갈 것인가',
그대 말하기를 '뜻을 얻지 못하면 남산 언저리에 돌아가 눕겠네',
'그저 가게 다시 묻지 않겠네. 흰구름이 끝날 때가 없을 테니까' "

왕유의 시를 읊고 나서 임상옥이 송이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송이가 내게 술을 권하며 어느 곳으로 갈 것인가 하고 물으니 내가 왕유의 시를 빌어 대답하노라.
송이야, 나는 이제 너의 질문에 대답하노라"

임상옥이 마치 타령을 하듯 노래조로 말을 하였다.

"나는 이제 뜻을 얻지 못하였으니 남산 언저리에 돌아가 누울 것이다.
그러니 송이야, 다시는 내게 어디로 갈 것인가 묻지를 말아라.
어차피 흰구름이 그칠 때는 없을 터니까"

왕유의 시를 빌려 한바탕의 타령을 끝내고 나서 임상옥이 말을 맺었다.

"송이야, 너는 이제 내 마음에서 떠났음이니라.
한 번 흘러간 물은 거꾸로 흘러갈 수 없고 한 번 흘러간 마음은 돌이킬 수가 없는 것이니라"

그리고 그만이었다.
그것이 송이의 마지막 질문에 대한 임상옥의 최종답변이었던 것이다.
임상옥의 마지막 답변을 들은 송이가 몸을 일으키며 말하였다.

"나으리, 잘 알겠사옵니다"

그리고 나서 송이는 천천히 임상옥에게 삼배를 올리기 시작하였다.
그녀의 두 눈에는 여전히 눈물이 맺혀 있었으나 흘러내리지는 아니하였다.
그것은 작별의 인사였다.
불교에서 말하는 최대의 경의를 표하는 삼배를 올림으로써 이제는 사랑의 인연과 애욕의 인연을 끊고,
그 동안 베풀어 준 은덕에 감사한다는 마음을 담는 송별의식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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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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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을듯하지만.. 작가가 소설이라고 했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상상력을 더했으니 소설이라고 불러도 될듯한... 조금은 애매한 자전적인 성장소설이라고 할까?
일제시대에 태어나서 어찌보면 일본인으로 살았고, 625를 겪는 과정까지의 박완서 자신의 이야기였다.
지금 세상이니 허용되고, 이해가 될수도 있지만... 70년대에 이런 책이 나왔다면 거의 매장당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말을 하고, 일본책을 읽고, 한국어를 알고 있다는것을 부끄러워했던 어린 시절부터... 좌익에 가담했던 오빠와 친척의 이야기등등... 조금은 달라지고 포용할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는것은 어찌보면 다행스럽게도 느껴진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지금의 상태와 현상과 사고방식에서 지난 시절을 평가하는것만큼 어리석고 우매한 일도 없을것이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그녀라면 일제시대에 어떻게 살아왔을지... 좌우익이 편을 가를때 어떻게 판단하고, 생각하면 살아왔을지를 조심스럽게 생각해보려하지만... 쉽지는 않고... 내가 그런 시절과 그런 환경에서 살아오지 않은 이상.. 상상일뿐이다.
지대가 높아 동네가 한 눈에 내려다보였다. 혁명가들을 해방시키고 숙부를 사형시킨 형무소도 곧장 바라다보였다. 천지에 인기척이라곤 없었다. 마치 차고 푸른 비수가 등골을 살짝 긋는 것처럼 소름이 쫙 끼쳤다. 그건 천지에 사람 없음에 대한 공포감이었고 세상에 나서 처음 느껴 보는 전혀 새로운 느낌이었다. 독립문까지 빤히 보이는 한길에도 골목길에도 집집마다에도 아무도 없었다. 연기가 오르는 집이 어쩌면 한 집도 없단 말인가. 형무소에 인공기라도 꽂혀 있다면 오히려 덜 무서울 것 같았다. 이 큰 도시에 우리만 남아 있다. 이 거대한 공허를 보는 것도 나 혼자뿐이고 앞으로 닥칠 미지의 사태를 보는 것도 우리뿐이라니. 어떻게 그게 가능한가. 차라리 우리도 감쪽같이 소멸할 방법이 있다면 그러고 싶었다.

그때 문득 막다른 골목까지 쫓긴 도망자가 휙 돌아서는 것처럼 찰나적으로 사고의 전환이 왔다. 나만 보았다는 데 무슨 뜻이 있을 것 같았다. 우리가 여기 남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약한 우연이 엎치고 덮쳤던가. 그래, 나 홀로 보았다면 반드시 그걸 증언할 책무가 있을 것이다. 그거야말로 고약한 우연에 대한 정당한 복수다. 증언할 게 어찌 이 거대한 공허뿐이랴. 벌레의 시간도 증언해야지. 그래야 난 벌레를 벗어날 수가 있다.

그건 앞으로 언젠가 글을 쓸 것 같은 예감이었다. 그 예감이 공포를 몰아 냈다. 조끔밖에 없는 식량도 걱정이 안 됐다. 다닥다닥 붙은 빈 집들이 식량으로 보였다. 집집마다 설마 밀가루 몇 줌, 보리 쌀 한두 됫박쯤 없을라구. 나는 벌써 빈 집을 털 계획까지 세워 놓고 있었기 때문에 목구멍이 포도청도 겁나지 않았다.

위의 작품속 박완서씨의 마지막 글처럼... 내가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하던지.. 어떻게 살아가던지 난 해야만 할 일이있다. 그리고 해야한다... 그래서 살아가야 한다... 처절하게...

<도서 정보>제   목 :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저   자 : 박완서
출판사 : 웅진닷컴
출판일 : 2002년 2월
책정보 : ISBN : 8901017601 | 페이지 : 294 | 444g
구매처 : 오디오북
구매일 :
일   독 : 2006/10/25
재   독 :
정   리 :

<이것만은 꼭>



<책 읽은 계기>
진호가 어디서 책을 빌려왔는데, 읽어봤냐고 물어보기도 했고... 괜찮다는 평을 많이 들어서...


<미디어 리뷰>
저 : 박완서
개성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서울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박완서 씨에게 한국전쟁은 평생 잊을 수 없을 없는 기억으로 남는다. 의용군으로 나갔다가 부상을 입고 거의 폐인이 되어 돌아온 `똑똑했던` 오빠가 `이제는 배부른 돼지로 살겠다`던 다짐을 뒤로 하고 여덟 달 만에 죽음을 맞이하고, 그후 그의 가족은 남의 물건에까지 손을 대게 되는 등 심각한 가난을 겪는다. 결국 대학을 중퇴하고 미군 PX에서 일하다가 훗날의 남편을 만나게 된다.
한국 전쟁과 분단의 아픔을 다룬 데뷔작 <나목>과 <목마른 계절>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틀니> <아저씨의 훈장> <겨울 나들이>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등을 비롯하여 70년대 당시의 사회적 풍경을 그린 <도둑맞은 가난> <도시의 흉년> <휘청거리는 오후> 등까지 저자는 사회적 아픔에 주목하여 글을 썼다. <살아있는 날의 시작>으로부터 여성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작가는 <서 있는 여자>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등 점점 독특한 시각으로 여성문제를 조명하기 시작한다. 또 장편 <미망><그 많던 싱아를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등에서는 개인사와 가족사를 치밀하게 조명하여 사회를 재조명하기도 한다.

평온했던 어린시절에서 전쟁을 치르고 분단이 된 민족사 안에서의 자신과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탁월한 문체로 잔잔하게 읊고 있다. 시큼한 싱아에 물든 고향이 아련하게 다가오는 듯 하다.

이 책은 6.25 전까지의 얘기를,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는 6.25와 그 이후 이야기를 담고 있다.


<책속으로>
다시 책머리에
작가의 말

1. 야성의 시기
2. 아득한 서울
3. 문 밖에서
4. 동무 없는 아이
5. 괴불마당 집
6. 할아버지와 할머니
7. 오빠와 엄마
8. 고향의 봄
9. 패대기쳐진 문패
10. 암중모색
11. 그 전날 밤의 평화
12. 찬란한 예감

작품해설

흰옷이란 얼마나 좋은 것인지, 초가지붕마다 뿜어올린 저녁연기가 스멀스멀 먹물처럼 퍼져 길과 논밭과 수풀과 동산의 경계를 부드럽게 지워버려, 마침내 잿빛 하늘을 인 거대한 한덩어리가 되었을 때도 흰옷 입은 사람이 산모롱이를 돌아오는 것은 잘 분간이 되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다들 흰 옷을 입었다. 특히 송도 나들이를 갈때는 때도 안 묻은 고운 흰옷으로 호사를 했다. 그래도 나는 할아버지와 딴 사람이 헷갈리지 않았다.--- p.16
이차대전을 맞은 것도 괴불마당 집에서였다. 일본 사람들은 대동아전쟁이라고 했다. 무언지도 모르고 신이 났다. 우리는 그전부터 이미 호전적으로 길들여져 있었다. 일본은 벌써부터 지나사변이라 부르는 전쟁(중일전쟁)을 하고 있었고 우리는 중국을 '짱골라'장개석을 '쇼오가이세끼'라고 부르면서 덮어 놓고 무시할 때였다.--- p.128
이런 글을 소설이라고 불러도 되는지 모르겠다. 순전히 기억력에만 의지해서 써 보았다. 쓰다 보니까 소설이나 수필 속에서 한두 번씩 울거먹지 않은 경험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그때 그때의 쓰임새에 따라 소설적인 윤색을 거치지 않은 경험 또한 없었으므로 이번에는 있는 재료만 가지고 거기 맞춰 집을 짓듯이 기억을 꾸미거나 다듬는 짓을 최대한으로 억제한 글짓기를 해 보았다. 그러나 소설이라는 집의 규모와 균형을 위해선 기억의 더미로부터의 취사 선택은 불가피했고 지워진 기억과 기억 사이를 자연스럽게 이어주기 위해서는 상상력으로 연결 고리를 만들어 주지 않으면 안 되었다.--- p.머리말
우리는 그냥 자연의 일부였다. 자연이 한시도 정지해 있지 않고살아 움직이고 변화하니까 우리도 심심할 겨를이 없었다. 농사꾼이 곡식이나 푸성귀를 씨 뿌리고, 싹트고 줄기 뻗고 꽃피고 열매 맺는 동안 제 아무리 부지런히 수고해 봤자 결코 그것들이 스스로 그렇게 돼 가는 부산함을 앞지르지 못한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삼시 밥 외의 군것질거리와 소일거리를 스스로 산과 들에서 구했다. 삘기,찔레순, 산딸기, 칡뿌리, 메뿌리, 싱아, 밤, 도토리가 지천이었고, 궁금한 입맛 뿐 아니라 어른을 기쁘게 하는 일거리도 많았다. 산나물이나 버섯이 그러했다. 특히 항아리 버섯이나 싸리버섯은 어찌나 빨리 돋아나는지 우리가 돌아서면 땅 밑에서 누가 손가락으로 쏘옥 밀어올리는 것 같았다.--- p.26
엄마는 이렇게 온갖 주접을 다 떨다 잠든 아들을 슬픈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생전 안 하던 술 처먹고 우는 버릇을 왜 했을꼬'라는 말밖에 안 했다. 아들이 자는 머리맡도 지나가 본적이 없는 엄마로서는 그 정도만 해도 큰 욕을 한 셈이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본인보다도 엄마가 더 전향의 후유증 같은 걸 두려워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p.215
엄마는 아직도 쫓기고 있었다. 엄마는 좌익조직으로부터 헛되게 도망을 다녔듯이 이번엔 전향한 후환으로부터의 도피를 시도하고 있었다. 나는 엄마가 전전긍긍하는 것을 전혀 터무니 없는 일종의 신경불안 증세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번 이사야말로 가장 성공적인 치료가 되리라고 생각했다. 엄마에게도 나에게도 새롭게 전개될 생활에 대한 예감에 충만한 특별히 아름다운 5월이었다. 그러나 하필 1950년의 5월이었다. 남달리 명철한 엄마도 환멸을 예비하지 않고 마냥 마음을 부풀린다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라는 걸 미처 모르고 있었다. 그해 6월이 다가오고 있었다. (p. 246)

지대가 높아 동네가 한 눈에 내려다보였다. 혁명가들을 해방시키고 숙부를 사형시킨 형무소도 곧장 바라다보였다. 천지에 인기척이라곤 없었다. 마치 차고 푸른 비수가 등골을 살짝 긋는 것처럼 소름이 쫙 끼쳤다. 그건 천지에 사람 없음에 대한 공포감이었고 세상에 나서 처음 느껴 보는 전혀 새로운 느낌이었다. 독립문까지 빤히 보이는 한길에도 골목길에도 집집마다에도 아무도 없었다. 연기가 오르는 집이 어쩌면 한 집도 없단 말인가. 형무소에 인공기라도 꽂혀 있다면 오히려 덜 무서울 것 같았다. 이 큰 도시에 우리만 남아 있다. 이 거대한 공허를 보는 것도 나 혼자뿐이고 앞으로 닥칠 미지의 사태를 보는 것도 우리뿐이라니. 어떻게 그게 가능한가. 차라리 우리도 감쪽같이 소멸할 방법이 있다면 그러고 싶었다.

그때 문득 막다른 골목까지 쫓긴 도망자가 휙 돌아서는 것처럼 찰나적으로 사고의 전환이 왔다. 나만 보았다는 데 무슨 뜻이 있을 것 같았다. 우리가 여기 남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약한 우연이 엎치고 덮쳤던가. 그래, 나 홀로 보았다면 반드시 그걸 증언할 책무가 있을 것이다. 그거야말로 고약한 우연에 대한 정당한 복수다. 증언할 게 어찌 이 거대한 공허뿐이랴. 벌레의 시간도 증언해야지. 그래야 난 벌레를 벗어날 수가 있다.

그건 앞으로 언젠가 글을 쓸 것 같은 예감이었다. 그 예감이 공포를 몰아 냈다. 조끔밖에 없는 식량도 걱정이 안 됐다. 다닥다닥 붙은 빈 집들이 식량으로 보였다. 집집마다 설마 밀가루 몇 줌, 보리 쌀 한두 됫박쯤 없을라구. 나는 벌써 빈 집을 털 계획까지 세워 놓고 있었기 때문에 목구멍이 포도청도 겁나지 않았다. (pp. 286-287)--- p.
'야성의 시기' - 우리는 그냥 자연의 일부였다. 자연이 한시도 정지해 있지 않고 살아 움직이고 변화하니까 우리도 심심할 겨를이 없었다. 농사꾼이 곡식이나 푸성귀를 씨 뿌리고, 싹트고 줄기 뻗고 꽃피고 열매 맺는 동안 제아무리 부지런히 수고해 봤자 결코 그것들이 스스로 그렇게 돼 가는 부산함은 앞지르지 못한다.

'찬란한 예감' - 그건 앞으로 언젠가 글을 쓸 것 같은 예감이었다. 그 예감이 공포를 몰아 냈다. 조금밖에 없는 식량도 걱정이 안 됐다. 다닥다닥 붙은 빈 집들이 식량으로 보였다. 집집마다 서마 밀가루 몇 줌, 보리쌀 한두 됫박쯤 없을라구. 나는 벌써 빈 집을 털 계획까지 세워 놓고 있었기 때문에 목구멍이 포도청도 겁나지 않았다.--- p.27, ---p.287
시골 애들은 심심해서 어떻게 살까 불쌍하게 여기는건 서울 내기들의 자유지만 내가 심심하다는 의식이 싹 트고 거의 짓눌리다시피 한 것은 서울로 오고 나서였다. 서울 아이들의 장난감보다 자연의 경이가 훨씬 더 유익한 노리갯감이었다고 말하는 것도 일종의 호들갑일뿐, 그 또한 정말은 아니다. 우리는 그냥 자연의 일부였다.--- p.27
솔직히 말해서 이렇게 천격스러운 하치 양반 집안에서 총독부에 취직이 된 자식은 가문의 영광이었다. 엄마가 더욱 당당해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오빠는 반 년 만에 총독부를 그만 두었다. 오빠의 다음 취직 자리는 와타나베 철공소라는 일인의 개인 회사였다.--- p.116
서울 아이들이 알기나 할까, 쫙 깔린 달개비꽃의 남색이 얼마나 영롱하다는 걸. 그리고 달개비 이파리엔 얼마나 고운 소리가 숨어있단는 것을. 달개비 이파리의 도톰하고 반질반질한 잎살을 손톱으로 조심스럽게 긁어 내몀 노방보다고 얇고 섬세한 잎맥만 남았다. 그 잎맥을 입술에서 떨게 하면 소리가 나는데 나는 겨우 소리만 냈지만, 구슬픈 곡조를 붙일 줄 아는 애도 있었다.--- p.76
바위라고는 하나도 없이 능선이 부드럽고 밋밋한 동산이 두 팔을 벌려 얼싸안은 듯한 동네는 앞이 탁 트이고 벌이 넓었다. 넓은 벌 한가운데를 개울이 흐르고, 정지용의 시 말마따나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은 아무데나 있었다.--- p. 13
동그란 유리를 통과한 햇빛이 점점 도타워지고 오므라들면서 꼭 칠흑 속에 숨은 고양이 눈깔처럼 요괴롭게 빛나다가 마침내 종이에서 모락모락 연기를 뿜어올려 구멍을 내고 구멍이 실고추처럼 가늘고 새빨갛게 종이를 먹어들어가는것을 지켜보는 동안 나는 숨이 막히고 배창자가 쪼글쪼글 오그라들면서 오줌이 마려웠다.--- p.34
더위가 심해지면서 진중한 오빠도 방에서 견디기가 힘든지 저녁만 먹고 나면 내 손을 잡고 선바위까지 바람을 쐬러 올라갔다. 나는 그때가 가장 즐거웠다. 선바위에 바람을 쐬러 나온 많은 사람들 중에서 오빠가 제일 잘나 보이는 것이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나는 오빠와의 친밀감을 과시하기 위해 멀리까지 가서 조리풀을 따다가 오빠한테 붙들게 하고 조리를 엮었다. 조리풀을 뜯을 때마다 습관적으로 먹을 만한 풀을 찾았지만, 선바위 주위 척박한 따에는 모질고 억센 잡풀밖에 자라지 않았다. 가끔 나는 손을 놓고 우리 시골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하염없이 생각하곤 했다. 말수 적은 오빠도 내 향수를 알아차리고는 여름방학이 며칠 안 남았다는 걸 손가락으로 헤아려 보여 주곤 했다.
--- p.91
그러나 텃밭에는 먹을 게 한창일 때였다. 당장 따서 쪄낸 옥수수의 감미를 무엇에 비길까. 더위가 퍼지기 전 이른 아침 이슬이 고인 풍성한 이파리 밑에 수줍게 누워 있는 애호박의 날씬하고도 요염한 자태를 발견했을 때의 희열은 또 어떻고. 못생긴 걸 호박에 비기는 건 아무것도 모르는 도시 사람들이 지어 낸 말이다. 늙은 호박에 비한 거라고 해도 그건 불공평하다. 사람도 의당 늙은이하고 비교해야 할진대 사람의 노후가 늙은 호박만큼만 넉넉하고 쓸모 있다면 누가 늙음을 두려워하랴.--- p.97
그때 생각을 하면 지금도 미소가 지어지는 것은 그들이 내 눈에 어린에 처럼 자유롭고 귀여워 보였기 때문이다. 나이 든 사람이 티 없는 귀여움으로 인상에 남기는 쉽지 않다. 고서도 남아 있지 않지만 그릇도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엄마와 숙모들의 요새말로 스트레스를 풀고 나서 맛본 건강한 즐거움은 죽는 날까지 그분들의 마음 속 어딘가에 남아 있었으리라고 생각한다.--- p.184
그들은 마치 나를 짐승이나 벌레처럼 바라다보았다. 나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돼 주었다 .벌레처럼 기었다. 정말로 그들에겐 징그러운 벌레를 가지고도 오락거리를 삼을 수 있는 어린애 같은 단순성이 있었다. 다행히 그들은 빨갱이를 너무도 혐오했기 때문에 빨갱이의 몸을 가지고 희롱할 생각은 안 했다. 나는 내가 너무 귀족적으로 자란 걸 다 원망했다. 잘 먹고 잘 입고 떠받들어졌다는 소리가 아니라 수모에 길들여질 기회 없이 커 왔다는 뜻이다. 나는 밤마다 벌레가 됐던 시간들을 내 기억 속에서 지우려고 고개를 미친 듯이 흔들며 몸부림쳤다.

그러다가도 문득 그들이 나를 벌레로 기억하는데 나만 기억상실증에 걸린다면 그야말로 정말 벌레가 되는 일이 아닐까 하는 공포감 때문에 어떡하든지 망각을 물리쳐야 한다는 정신이 들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어버린 부분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여러 군데서 개별적으로 당한 일들이 한 묶음으로 단순화돼 남아 있고, 구체적인 사건들을 추상적으로밖에 생각해 낼 수가 없다. 그건 몸으로 벌레처럼 기었을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폭력에 굴복당했다는 증거겠지만 어쩌랴 그렇게 생겨먹은 게 보통 사람이 안 미치고 견딜수 있는 정신력의 한계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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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으로 수학여행 떠나는 날 엄마는 경성역까지 배웅을 나와서 혹시 개성역에 누가 마중을 안 나오더라도 너무 섭섭해하지 말고 잘 놀다 오라고 타이르고 들어갔다. 제발 아무도 안 나왔으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꼭 나올 것 같아 마음이 영 개운치 않은 채 기차가 개성역을 도착했다. 육학년은 총 다섯반이었다. 개성역 앞 광장에 반끼리 줄을 서서 인원 점검을 할 때였다. '완서야, 완서야.' 하고 내 이름을 크게 부르는 소리가 났다. 저만치서 할머니가 무법자처럼 아이들 사이를 마구 헤집고 다니면서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 숙모도 아니고 할머니였다. 어찌나 창피한지 잠시 꺼질 수 있는 거라면 꺼지고 싶었다.---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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