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쁜 부인이 동생에게 너무 잘해주는것에 질투를 느끼던 남편이 어느 날 커다란 오해를 하고, 동생과 부인을 쫓아냈는데, 오해는 풀렸지만... 부인은 자살을 하고, 동생은 떠나고... 그후에 동생을 찾아다니는 형의 이야기...
예전에 이런 이야기를 들은것은 같았는데, 이게 배따라기 였었군요...^^;;
참.. 애매한 경우입니다... 솔직히 남편으로서 질투는 나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니 쪼잔하게 보이고... 태연한척은 못하겠고...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가 오해를 살만한 모습을 보고 질투에 어쩔줄을 몰라하는 남자를 보면서... 과연 저라면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어떤 경우가 있을까요? 죽인다, 삐쳐서 떠난다, 대화한다... 암튼 솔직한 심정으로 이성을 가지고 대하기는 힘들것이고, 정상적으로 대화를 하기도 힘들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장 중요한것은 평소의 많은 대화... 솔직한 대화... 그리고 서로간에 어떠한 경우라도 믿어주는 마음... 그런 부부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도서 정보>제 목 : 배따라기
저 자 : 김동인
출판사 :
출판일 :
일 독 : 2005/8/30
재 독 :
정 리 :
<이것만은 꼭>
탐욕.. 정욕.. 시기.. 분노.. 오해... 그리고 이별... 후회...
<책속으로>
좋은 일기이다. 좋은 일기라도,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는 ― 우리 '사람'으로서는 감히 접근 못할 위엄을 가지고, 높이서 우리 조그만 사람을 비웃는 듯이 내려다보는, 그런 교만한 하늘은 아니고, 가장 우리 '사람'의 이해자인 듯이 낮추 뭉글뭉글 엉기는 분홍빛 구름으로서, 우리와 서로 손목을 잡자는 그런 하늘이다. 사랑의 하늘이다. 나는 잠시도 멎지 않고, 푸른 물을 황해로 부어 내리는 대동강을 향한, 모란봉 기슭 새파랗게 돋아나는 풀 위에 뒹굴고 있었다.
하늘에도 봄이 왔다. 하늘은 낮았다. 모란봉 꼭대기에 올라가면 넉넉히 만질 수가 있으리만큼 하늘은 낮다. 그리고 그 낮은 하늘보다는 오히려 더 높이 있는 듯한 분홍빛 구름은, 뭉글뭉글 엉기면서 이리저리 날 아다닌다. 나는 이러한 아름다운 봄 경치에 이렇게 마음껏 봄의 속삭임을 들을 때는, 언제든 유토피아를 아니 생각할 수 없다. 우리가 시시각각으로 애를 쓰며 수고하는 것은 ― 그 목적은 무엇인가?
역시 유토피아 건설에 있지 않을까? 유토피아를 생각할 때는 언제든 그 '위대한 인격의 소유자'며, '사람의 위대함을 끝까지 즐긴' 진나라 시황〔秦始皇〕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우리가 어찌하면 죽지를 아니할까 하여, 소년 삼백을 배를 태워 불사약을 구하러 떠나 보내며, 예술의 사치를 다하여 아방궁을 지으며, 매일 신하 몇천 명과 잔치로써 즐기며, 이리하여 여기 한 유토피아를 세우려던 시황은, 몇만의 역사가 어떻다고 욕을 하든, 그는 정말로 인생의 향락자이며 역사 이후의 제일 큰 위인이라고 할 수가 있다. 그만한 순전한 용기 있는 사람이 있고야 우리 인류의 역사는 끝이 날지라도 한 사람을 가졌었다고 할 수 있다.
"그놈의 쥐 어디 갔니?"
"흥! 쥐? 훌륭한 쥐 잡댔구나!"
그는 말을 끝내지도 않고, 짐을 벗어 던지고, 뛰어가서 아우의 멱살을 끌어 잡았다.
"형님! 정말 쥐가……."
"쥐? 이놈! 형수하고 그런 쥐 잡는 놈이 어디 있니?"
그는 아우를 따귀를 몇 대 때린 뒤에 등을 밀어서 문 밖에 내어던졌다.
그런 뒤에 이제 자기에게 이를 매를 생각하고 우들우들 떨면서 아랫목에 서 있는 아내에게 달려들었다.
"이년! 시아우와 그런 쥐 잡는 년이 어디 있어!"
그는 아내를 거꾸러뜨리고 함부로 내리찧었다.
"정말 쥐가…… 아이 죽갔다."
"이년! 너두 쥐? 죽어라!"
그의 팔다리는 함부로 아내의 몸에 오르내렸다.
"아이 죽갔다. 정말 아까 적으니(시아우) 왔기에 떡 자시라구 내놓았더니……."
"듣기 싫다! 시아우 붙은 년이, 무슨 잔소릴……."
"아이, 아이, 정말이야요. 쥐가 한 마리 나……."
"그냥 쥐?"
"쥐 잡을래다가……"
"상년! 죽어라! 물에라두 빠데 죽얼!"--- pp.20-21
여기까지 이르렀을 때에 저편 아래 물에서 장고(長鼓) 소리와 함께 기생의 노래가 울리어 오며 배따라기는 그만 안 들리게 되었다. 나는 이 년 전 한여름을 영유서 지내 본 일이 있다. 배따라기의 본고장인 영유를 몇 달 있어 본 사람은 그 배따라기에 대하여 언제든 한 속절없는 애처로움을 깨달을 것이다. 영유, 이름은 모르지만 ×산에 올라가서 내다보면 앞은 망망한 황해이니, 그곳 저녁때의 경치는 한번 본 사람은 영구히 잊을 수가 없으리라. 불덩이 같은 커다란 시뻘건 해가 남실남실 넘치는 바다에 도로 빠질 듯 도로 솟아오를 듯 춤을 추며, 거기서 때때로 보이지 않는 배에서 '배따라기'만 슬프게 날아오는 것을 들을 때엔 눈물 많은 나는 때때로 눈물을 흘렸다.
이로 보아서, 어떤 원의 아내가 자기의 모든 영화를 낡은 신같이 내어던지고 뱃사람과 정처없는 물길을 떠났다 함도 믿지 못할 말이랄 수가 없다. 영유서 돌아온 뒤에도 그 '배따라기'는 내 마음에 깊이 새기어져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었고, 언제 한번 다시 영유를 가서 그 노래를 한번 더 들어 보고 그 경치를 다시 한번 보고 싶은 생각이 늘 떠나지를 않았다.--- p.46
[줄거리]
수도 파이프 수리공으로 생계를 잇는 난쟁이 아버지와 인쇄소 제본 공장에 나가는 어머니, 수재 소리를 들을 정도로 우등생이었으나 가정 형편으로 학교를 그만두고 인쇄소에 나가는 두 아들 영수와 영호, 그리고 막내 영희. 이렇게 다섯 식구로 이루어진 난쟁이 가족은 철거 계고장을 받는다. 물론 아파트 입주권이 나오지만 가난한 철거민들에게 그것은 그림의 떡이다. 그래서 대부분은 입주권을 팔아서 변두리나 시외로 세를 얻어 나갔지만, 영수네는 세든 사람의 전세금을 내주려고 명희네에서 빌린 돈을 갚기 위해서 입주권 값이 조금이라도 더 오를 때까지 버티고 있는 중이다.
명희는 동생 영희의 친구이자 영수와 미래까지 약속한 사이었으나, 가난에 쪼들려 다방 종업원, 버스 안내양, 골프장 캐디를 맴돌다가 임신까지 하게 되어서 자살해 버린다.
마침내 난쟁이네도 기다린 보람이 있었던지 시가보다 높은 가격에 입주권이 팔려서 빌린 돈 십오만원을 갚고도 십만 원이나 남아서 대부분의 철거민들이 몰리는 성남으로 이사가기로 결정한다. 그날 난쟁이 아버지와 막내 영희는 집을 나간 후 소식이 없다. 아버지는 체력이 떨어져 일을 나갈 수 없게 되면서부터 친구를 따라 써커스 무대에 선다는 환상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이 집을 빼앗겨야 한다는 충격으로 표면화되어 집을 나가게 된 것이다. 영수와 영호는 백방으로 수소문하였으나 찾을 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남은 세 식구만 이사를 떠났다.
한편 영희는 자기네 입주권을 사간 부동산 업자이자 사업가인 젊은이를 따라간다. 영희는 젊고 아름다움을 담보로 그의 비서로 동거인으로 같은 아파트에 머물면서 입주권을 되찾을 기회를 엿본다. 그는 그녀에게 여러 벌의 옷을 사주면서 그녀의 젊고 순수한 육체와 영혼을 마음껏 유린한다.
그러던 중 영희는 그의 금고를 뒤져서 입주권과 약간의 돈을 꺼내 그 집에 들어갈 때의 복장으로 도망쳐 나온다. 그길로 그녀는 주택공사로 달려가 아버지의 이름으로 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는 모든 수속을 끝마치고, 집에 왔으나 가족들은 이미 떠난 뒤였다. 아버지는 굴뚝에서 떨어져 돌아가셨다는 것과 가족들은 성남으로 이사갔다는 말을 신애 아주머니한테서 듣고 영희는 쓰러진 채 깊은 잠에 빠진다. 꿈 속에서 가족들을 만난 영희는 '아버지를 난쟁이라고 부르는 악당은 죽어 버려'라고 큰오빠에게 이른다.
[인물의 성격]
아버지 → 난쟁이, 소외계층을 대표하는 인물. 성실하고 근면하나 매사에 소극적임
어머니 → 자상하고 인간미가 넘치는 긍정적 인물
영수 → 장남. 수재이나 가난으로 학업을 중단한 적극적이고 진취적이며 합리적인 인물
영호 → 둘째. 형과 같은 인쇄소에 나가면서 형을 존경함.
영희 → 막내. 가족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헌신적 인물
명희 → 영희의 친구. 가난 때문에 희생하는 물질 만능의 피해자
[이해와 감상]
◈ 작가 조세희의 실험정신이 담긴 난해한 작품이다. 과거와 현재가 뒤섞여 서술되는데 그것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아 사건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기가 어렵다. 시점에 있어서도 3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소설은, 1장은 난쟁이의 남매 중 맏형인 영수, 2장은 둘째 영호, 3장은 막내 영희의 시점으로 각각 서술되는 복합적 구성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것이 작가의 실험정신의 일단으로 보여지지만, 그것으로 인해 획득되는 문학적 성과는 그다지 커 보이지 않는다.
◈ 이 작품의 중심 갈등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사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것은 '천국'과 '지옥'으로 비유된다. 영수(맏이)는 가진자와 못 가진자의 대립에서 피해자라는 의식을 가진다. 난쟁이는 선량하지만 힘이 없고, 그들은 부도덕해도 힘이 있다는 인식이다. 난쟁이의 이 가난과 불평등은 역사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러한 삶은 3남매에게로 그대로 물려질 것이며, 그들이 저항하면 저항할수록 더욱 사회로부터 핍박을 받는 것이 못 가진 자들의 비애이며 굴레인 것이다. 사회의 중심에 설 수 없기에 항상 소외되고 위축되어 있다. 이 왜소한 자아의 모습은 '난쟁이'로 상징화되어 있으며, 난쟁이는 신체적 왜소함을 넘어서서 사회적 신분의 왜소화를 가져오게 된다.
◈ 난쟁이 아버지에게 있어서 지섭이라는 청년은 아버지의 행동을 결정지어주는 중요한 사람이다. 지섭은 아버지에게 열심히 일하고, 나쁜 짓을 하지 않고, 기도를 열심히 하고서도 삶이 이렇다면 이 땅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는 죽은 땅이라고 말하면서, 이 땅을 떠나 달나라로 떠나야 한다고 말한다. 이 말에 아버지는 공감하고 그 삶의 지표를 지섭이 설정한 것에 맞춘다. 따라서 지섭이 꿈꾸는 세계(달나라)야말로 이 소설이 최종적으로 향해 있는 지점이 된다.
◈ 못 가진 자들도 행복을 꿈꾼다. 달나라로 가는 것을 꿈꾼다. 괴로울 때마다 달나라로 난쟁이는 작은 쇠공을 쏘아 올린다. 물론 그 공이 지구에 다시 떨어지는 것처럼 난쟁이도 결국 꿈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실제로 난쟁이는 가능한 한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굴뚝 높은 곳에 올라 그의 꿈을 비상해 본다. 그러나 난쟁이는 나중에 그 굴뚝에서 떨어져 죽는다. 즉 난쟁이의 비상은 곧 추락이었다. 세상은 비상을 용납하지 않고 철저히 추락만을 준다. 그것은 말할 수 없는 한으로 표상된다. 달나라라는 실현될 수 없는 유토피아를 꿈꾸는 인물들에게서 우리는 더 큰 비극을 느낀다.
(참고 : 우리넷 현대소설 http://www.woorimal.net/hangul/hyundai%20fiction-menu.ht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