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iN '에 해당되는 글 137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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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미셸 푸코 - 만화로 읽는 삶과 철학
  3.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4. 소프트웨어 영업 노하우 - SE를 위한 제안서 작성법
  5. 좀머 씨 이야기
  6. 현진권 - 술 권하는 사회
  7. 오헨리 - 마지막 잎새 소설 도서 서평

앗살람 아라비아 : 배낭속에 담아온 아줌마의 중동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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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더운 날씨에 중동여행기를 읽었습니다...-_-;;
왠만하면 선선한 가을이나 겨울에 읽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솔직히 재미있고, 유익한 정보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날씨가 너무 무더워서 좀 짜증이 났습니다. 중간에 그만두고 겨울에 다시 읽어야지 하다가도 또 이런저런 재미에 읽다가 보니 35도까지 기온이 올라간 오늘 다 읽고 말았습니다.
중동에 대한 환상이나 애증은 거의 없습니다. 예전에 읽었던 미애의 버스여행중 중동부분을 읽으면서도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제가 중동에서 가보고 싶은곳은 사막과 이집트의 피라미드 두곳이였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요르단에 인디아나존슨의 촬영지로 유명한 페르타를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사막의 밤에 볼 수 있는 달과 별빛은 물론이고요...
여행을 하면서 내가 몰랐던 나를 찾아간다는 저자의 말도 참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여행이라... 언젠가 떠나야 하고.. 떠나고 싶은데... 빨리 맘 편하게 떠날수 있도록 준비해야겠습니다...



<도서 정보>제   목 : 앗살람 아라비아 : 배낭속에 담아온 아줌마의 중동 이야기
저   자 : 김순
출판사 : 두물머리
출판일 : 2004년 3월
구매처 : 오디오북
구매일 :
일   독 : 2005/7/23
재   독 :
정   리 :

<이것만은 꼭>
모든 핑계를 버리고!
여행을 떠나자!
그리고 진정한 나를 찾자!


<미디어 리뷰>
저자는 2000년 12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2003년 2월부터 4월까지 두 번에 걸쳐 총 9개월간 중동을 여행했다. 그녀가 겪은 따뜻한 중동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책을 통해, 중동지방에 대한 한국인들의 편견은 소리없이 깨진다. 기혼녀가 혼자 여행하기에도 호락호락했던 중동에서 겪은 다양한 에피소드는 그들의 인간미를 느끼게 해준다.

마흔을 넘긴 아줌마인 저자가 중동의 이란, 터키, 시리아, 요르단, 이집트 등을 돌아보며 서서히 바뀐 자신의 선입견을 은근슬쩍 드러낸다. 목욕탕에서 만난 시리아 아줌마를 이태리 타월 한 장으로 홀라당 벗겨준 이야기, 끝없이 이어지는 아랍인들의 초대를 피해 도망다닌 이야기, 이슬람 최대의 명절 라마단에 쫄쫄 굶으며 다닌 이야기가 생동감있게 펼쳐진다.


저자: 김순
본명 김순향. 월급쟁이 남편과 중2 아들이 딸린 평범한 40대 아줌마. 십여 년 직장생활을 접자마자 난생 처음으로 배낭 짊어지고 중동으로 직행, 2001년과 2003년 두 번에 걸쳐 총 9개월간 혼자 여행했다. 가계부 쓰기보다 웹 페이지에 끄적이는 걸 좋아하고, 인터넷에서 여행자료 뒤지느라 찌개 태우기가 다반사인 아줌마 함량 미달형. 팔팔한 20대 때보다 인생의 쓴맛 단맛을 적당히 아는 지금 나이가 여행의 적령기라고 굳게 믿으며 호시탐탐 또 다른 여행지를 노리고 있는 중이다.

여행 떠나기 전에 내가 중동으로 간다니까 다들 하는 첫 마디가 "제 정신이야?"였다. 어떻게 간 크게 그 '위험'한 데를 혼자 다닐 생각을 하냐는 거였다. 나 역시 그때까지만 해도 중동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었다. 아랍인들은 단순무식하고 호전적이며 툭하면 테러나 일삼는 상종 못할 것들인 줄만 알았으니까.

하지만 막상 겪어보니 전혀 딴판이었다. 그건 뭐랄까, 겉으론 과격해 보이고 촌스러운 남자가 알고보니 정 많고 속 깊은 진국이더라는 스토리와 비슷했다. 길을 물으려고 두리번거리는 기색만 보여도 도와주려는 남자들이 줄을 섰고, 원하는 곳까지 먼 길을 마다않고 직접 데려다 주었다.

가는 곳마다 차와 음식을 공짜로 대접받았고 잠까지 거저 얻어 잔 적도 부지기수. 그에 비하면 눈 돌아가게 화려한 이슬람 건축이나, 입이 딱 벌어지는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흔적, 볼거리 천지인 아랍 재래시장 같은 건 보너스에 불과했다.

이 책은 생면부지의 아랍인들이 내게 베푼 친절에 대한 일종의 빚갚음이다. 자살폭탄 테러와 총격전 일색인 외신의 이면에 세상에서 가장 따스하고 순박한 사람들이 살고 있음을 알리고 싶었다. 부시가 '악의 축' 운운하면서 도발적인 발언을 했지만, 내가 만난 아랍인들은 한결같이 '천사의 축'이었다.

그래도 여행하기엔 너무 위험한 곳 아니냐고? 내가 바로 그 산 증거다. 시들시들한 사십대에 어벙하기 짝이 없는 나 같은 아줌마도 아무 탈 없이 룰루랄라 신나게 돌아다닐 수 있는 곳이 바로 중동이었다. 분쟁은 이스라엘과 이라크의 일부 지역에 한할 뿐, 칼 들고 설치는 강력범조차 구경할 수 없으니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여행지가 아마 중동이 아닐까 싶다.

나는 이제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중동은 평생 갈 일 없는 곳으로 멀찍이 떼놓기에는 너무 아까운 곳이라는 것을. 부디 사막의 별 하나가 당신을 거기까지 인도하기를! 내가 그랬듯이... (2004년 3월 27일 알라딘에 보내주신 작가코멘트) - 김순 ( sunyko@hotmail.com )

아줌마, 중동가서 여왕 대접 받다.
-9개월 배낭여행 책으로 펴낸 김순씨-

40대 중반이란 나이에 잘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 수술후 몸도 성치 않은 남편과 중학생 아들, 심지어 늙은 시아버지도 집에 두고 김순씨는 떠났다. 아무런 연고도 없고 오라는 사람도 없는 중동으로. 2001년 배낭 하나 달랑 메고 떠나 남자들도 위험하다고 벌벌 떠는 곳, 황량하기 이를 데 없는 이란, 요르단, 시리아, 터키 등을 2001, 2003년 두차례에 걸쳐 9개월동안 돌아다닌 그는 이제 중동전문가 수준이 됐다.

“3년 전 남편이 많이 아팠어요. 응급실·중환자실·수술실을 오가느라 직장을 그만두고 간병을 했죠. 20년 가까이 익숙한 직장을 떠나 전업주부, 간병인 역할을 하다보니 가슴속에서 뭔가 부글부글 끓더군요. 남편 건강이 회복되었을 때, 남편과 함께 여의도 앙카라공원에 산책갔다가 갑자기 ‘중동으로 가볼까’란 생각이 들어서 무조건 떠났죠.”

별다른 준비없이 떠난 아줌마의 배낭여행은 그동안의 고통과 스트레스를 보상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단다.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아랍인들은 단순무식하고 호전적이며 툭하면 테러나 일삼는 이들인 줄 알았는데 막상 겪어보니 전혀 딴판이었단다. 길을 물으려고 두리번거리는 기색만 보여도 도와주려는 남자들이 줄을 섰고, 원하는 곳까지 마다않고 직접 데려다 주었다. 가는 곳마다 차와 음식을 대접받았고 집으로 초대해 잠까지 재워준 이들도 부지기수. 결혼후 가정과 직장에서 내내 시중드는 하녀로 지내다 하루아침에 공주로 등극한 것이다.

“게다가 가는 곳마다 전부 나를 열아홉 꽃띠로 보는 거예요. 생년월일이 찍힌 여권을 보여줘도 왜 엄마것을 갖고 다니느냐고 안믿으니 어찌 중동을 싫어할 수 있겠어요.”

물론 이렇게 황홀한 공주대접만 받고 살 수는 없었다. 워낙 열악한 환경이어서 구토가 치밀 만큼 더러운 숙소, ‘히잡’이란 보자기로 항상 얼굴을 친친 감고 다녀야 하는 엄격한 이슬람문화 때문에 숨막히기도 했고 사막지대에선 며칠동안 세수도 하기 힘들었지만 아랍인들이 베푼 친절은 모든 것을 보상하고도 남았다. 그래서 이라크 전쟁이 한창일 때도 그는 주저없이 중동으로 다시 날아갔었다. 유적지만이 아니라 작은 골목, 보통사람의 집, 커피 한잔의 맛까지 다 수첩에 적어왔다.

“남들은 중동을 1년 가까이 돌아보고 왔다니까 ‘아줌마가 하루이틀도 아니고 몇달씩 집을 비울 수 있느냐’고 놀라더군요. 저 역시 떠나기 전까진 모든 것이 불가능해 보이고 장벽이었지만 막상 떠나겠다고 결심하니 그동안 여행을 하지 못했던 가장 큰 장애요소는 가족이나 시간, 돈이 아니라 ‘난 못떠나’란 자신의 용기없음이더군요.”

중동문화에 대한 이해와 푸근한 인심을 선물로 받아온 그는 그들의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 ‘앗살람 아라비아’(두물리)란 책을 펴냈다. 시들시들한 40대 아줌마도 아무탈없이, 심지어 여왕대접 받으며 다녀올 수 있는 것이 중동이란 자신감을 널리널리 퍼뜨리기 위해서란다.

2004. 3. 29. 경향일보 유인경

<책속으로>
<이란>

세로 국경/ 국경에서 스파이로 몰리다
우르미예/ 차 한 잔의 ‘쌀람 알레이쿰’
타브리즈/ 섹시빵빵 차도르 여인들
젠잔/ 엽기 행진 ‘아슈라’
젠잔/ 이란 아줌마들의 수다발 내공
테헤란/ 악! 소리 나는 거리 풍경
테헤란/ 가축 사료 먹는 한국인
카샨/ 공포의 ‘손님 초대’
에스파한/ 나를 울린 ‘마포종점’
야즈드/ 일본인 남동생
밤/ 싼 값에 뿅 가는 뽕, 종류별로 골라골라
마슈하드/ ‘여자에겐 모자 안 팔아요’
노샤흐르/ 누가 남의 음식 갖고 ‘야만’이라 하는가
테헤란/ 호다 하페스, 이란!

<터키>

이스탄불/ 시차보다 더 헷갈렸던 환차 적응
이스탄불/ 하렘, 터키판 ‘여인천하’
카파도키아/ 지구상에 이런 곳이 다 있었네
콘야/ 외간남자와의 하룻밤
안탈야/ 족집게 소동
셀축/ 라마단, 여행자는 서러워
트라브존/ 터키탕과 이태리 타월
우준골/ 하느님도 심심한 마을
에르주룸/ 배낭 잃고 ‘바가지’ 소동
카르스/ 스무 살 총각에게 손목 잡히다

<시리아>

밥 하와 국경/ 잃어버린 여권
알레포/ 한국식 때밀이 시범
아파미아/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크락 데 슈발리에/ 중세판 나바론 요새
팔미라/ 울어라, 암탉이여!
데레졸/ 오물벼락
마리/ 부잣집 마나님
다마스쿠스/ 십자군과 지하드
다마스쿠스/ 시리아 내 사랑, 마앗쌀라마!

<요르단>

이르비드/ 유세프 가족의 눈물
페트라/ 장미처럼 붉은 도시
페트라/ 생애 최고의 생일 파티
와디 아라바/ 아라비아의 로맨스
와디 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막
알 군룬/ 남정네와 한 방을 쓰겠다고?
암만/ 캄온 요르단 어게인!

<이집트>

다합/ 천국으로 가는 계단
카이로/ 바가지와의 한판 승부
기자/ 시간은 피라미드를 두려워한다
사콰라/ 입맛의 세대차
이집트 국립 박물관/ 너희가 이집트 예술을 아느냐
룩소르/ 아줌마 복 터졌네
룩소르/ 파라오의 미라가 건어물이라고?
카르낙/ 떠나는 손님의 발뒤꿈치

<여행의 끝>

이스탄불/ 특급호텔에서 벌인 속옷 패션쇼



그전까지만 해도 아랍인들은 다순무식하고 호전적이며 툭하면 테러나 일삼는 상종 못할 것들인 줄 알았는데 막상 겪어보니 전혀 딴판이었다. 그건 뭐랄까, 겉으론 과격해 보이고 촌스러운 남자가 알고 보니 정 많고 속 깊은 진국이더라는 스토리와 비슷했다.
길을 물으려고 두리번거리는 기색만 보여도 도와주려는 남자들이 줄을 섰고, 원하는 곳까지 먼길을 마다 않고 직접 데려다 주었다. 가는 곳마다 차와 음식을 대접받았고 잠까지 공짜로 얻어 잔 적도 부지기수. 결혼 후 지금까지 내내 시중드는 하녀로 살아온 내가 하루 아침에 공주로 등극한 것이다. 게다가 만나는 사람마다 전부 나를 열아홉살 꽃띠로 보는 거였다. 생년월일이 찍힌 여권을 보여줘도 왜 엄마 것을 갖고 다니냐며 절대로 믿으려 하질 않았다. 이러니 내 어찌 중동을 싫어할 수 있으리

양빛에 드러난 와디 아라바는 밤과는 또 달랐다. 풀 한 포기 없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나무들이 꽤 많았다. 그 아래로 낙타 몇 마리가 기린처럼 목을 뽑아 나뭇잎을 뜯고 있었다. 차 한 잔을 마시며 깊이 심호흡을 했다. 그 고요하고 평화로운 풍경을 허파 속에 집어넣기라도 하듯. 사막의 밤과 새벽을 보지 못한 채 인생을 흘려버린 사람들에게 삼가 조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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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푸코 - 만화로 읽는 삶과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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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어렵다... 만화라고 해서 약간은 우습게 봤는데, 정말 난해하고, 복잡하고, 심오한듯합니다...
어찌보면 짧은 책속에서 이 세상의 권력과 저항... 광기, 섹스... 너무 많은것을 설명하는듯 하지만 핵심을 찔러주고, 그동안 내가 생각해왔던것이 많이 잘못되었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역사적인 관점에서 지난옛일을 나의 현재 관점에서 보고 비판한다는것이 얼마나 우매한 생각인가라는 생각이 듭었습니다.

미셀 푸코... 아주 유명한 학자이자 지성인이라고 하는데, 제가 그동안 이런쪽과 거리가 멀어서 그런지 처음 들어봤고, 이런 분야의 책을 언제 또 손에 잡을지는 모르겠지만... 짧은 시간동안에 대단한 학자이자 지성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그에 따르는 이론의 모순이나 사적인 흠도 많이 보입니다.
역자의 후기는 캡쳐한것이 잘 안보여서 맨 밑에 덧붙입니다.



<도서 정보>제   목 : 미셸 푸코 - 만화로 읽는 삶과 철학
저   자 : 리디아 앨릭스 필링햄 (지은이), 모슈 슈서(그림), 박정자 (옮긴이)
출판사 : 국제
출판일 : 1995년 11월
구매일 :
일   독 : 2005/8/12
재   독 :
정   리 :

<이것만은 꼭>
내가 제대로 알고 있는것이 무엇일까?
내가 제대로 설명할수 있는것은 무엇일까?
세상은 요지경... 그러나 설명될수 있다! 단,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언어의 범주안에서만...


<미디어 리뷰>
현대 프랑스 철학계의 주도적 인물, 푸코의 사상을 만화로 엮어냈다. <성의 역사>, <감시와 처벌> 등의 저서로 문화, 사회 현상의 이면에 은폐된 권력의 문제를 파헤친 그의 사상을 일반인도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만들어 졌다.


[미셀, 오 미쎌...^^*]

푸코, 동성애자라 특이 취향(?) 보다는 68혁명 때 학생의 편에 서 있었다는 그 하나만으로 내 머리에게 크게 각인이 되었습니다. 어설픈 내게, 한 방울의 지식이 목말라 하는 내게, 문화적으로 부국인 듯한 프랑스의 68혁명은 10월 혁명과 같이 하나의 신화로 남아 있습니다.

무엇에 대해 깊이 알게 되면 그에 대한 어느 정도의 실체 접근이 이루어지지만 앞 못 보는 이가 코끼리를 더듬 듯 하여 어깨너머로 듣은 지식의 나부랭이, 스스로 성(城)을 만들어 튼튼한 아집을 형성합니다. 이런 것을 두고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 하지 않을까 합니다.

『미셜 푸코』'만화로 읽는 삶과 철학'이라는 부제가 붙은 책.

한 사람의 과정을 놓고-그가 동쪽 방에서 먹고 서쪽 방에서 잠을 자고, 7살에 본 강 위의 아가씨에 반한 이야기라든가 죽음 끝에서 살아온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닌, 철저하게 그가 생산한 '책'을 통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책을 읽는 동안 우리나라 선거 벽보용(用)에 붙은 학교 약력이 그 부분은 정말 미미합니다. 그의 사상적 노고가 집대성한 책을 통한 접근은 공사(公私)를 구분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가 큰 방에서 운우지정(雲雨之情)를 나누든 작은 방에서 학생의 점수를 맺기든 상관을 하지 않습니다.

그는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절대 명제에서 출발을 합니다.

"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격언에서 출발하지만, 우리는 절대적 진리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것이 없다. 절대적 진리라는 생각 자체를 없애 버린다면, 앎이란 무얼 뜻하는걸까? 그건 아무래도 일단의 사람들이 한데 모여 '이게 참이다'라고 정한거 아니겠어.(10쪽)"

아는 것이 힘이다. 그렇다면 많이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많이 아는 것이 아닌, 아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즉 자연(自然)의 모든 지식을 안다는 것보다 사람과의 관계에 선 지식을 아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물리적인 힘도 그렇지만 정신적인 힘도, 자신의 생각만이 옳고 진실된다고 다수에게 강요하는 힘센 소수들에 의해 행사되고 있다.(11쪽)" 보는 것입니다.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지식을 안다는 것은 적은 지식으로 힘을 쓸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다시 처음으로,
그렇다면 '안다는 것은 절대 진리인가?'

푸코는 "절대적 진리라는 생각 자체를 없애 버린다면"이라는 가정을 통해,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답을 찾고 있습니다.

" 인간에 대한 앎이나 사회과학 또는 푸코가 말하듯이 인간과학 분야에도, 무엇이 진실인지를 결정하는(진리를 구성하는) 사람들이 자기 마음대로 인간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또 그런식으로 일반인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입니다.(12쪽)" 그렇다면 "왜 한줌밖에 안되는 사람들"을 추종하는가? 이는 프로이드의 공격자와의 동일시 개념과 동일하다고 생각됩니다.

푸코는 "광기, 질병, 변태에 대한 정의가 시대에 따라 크게 다르다(20쪽)"는 가정을 검증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시대에 따름에 대한 다름을 역사적 고찰을 통해, 누군가의 의해 조종(-한줌밖에 안되는 사람)당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광기와 문명』에서는 어떻게 광기가 한 집에서 살지 못하고 두 집 살림을 하게 되었는가에 대해,

『진료소의 탄생』에서는 개인의 사물화에 대해, 이는 푸코의 제자를 많이 양산을 하게 되었는데 그들은 몇 몇 분야에서 탁월한 이야기를 끌어낸다. 『여자들이 의사의 부당의료에 속고 있다』와 『헬로우 블랙잭』 등의 책이 있습니다.

『사물의 질서』에서는 담론……. 내겐 조금 힘겨운 부분^^;

『감시와 처벌』에서는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힘의 권력. 즉 예전에는 칼로 찢어 공개 처형을 함으로써 그들의 힘을 과시하였지만 "그러나 18세기에, 고통을 야기하는 것이 정부를 위해 별로 좋은 이미지가 아니라고 철학자들이 비판하고 나서는 한편, 고문과 사형의 현장을 구경하러 나온 군중들도 점점 더 통제불능으로 날뛰기 시작했다. 뭔가 조취를 취해야만 했다.(123쪽)"

푸코는 이를 "규율"이라고 부른다. 그 원리는 공간배치, 행동에 대한 철저한 통제(특히 시간표를 이용하여), 반복 훈련은 "정상으로 만들기 위한 평가"의해 줄 세워집니다. 뭔가 떠오르는 생각…….

"
그 아이디어는 이렇다. 각각의 사람들은 작은 방에 격리 수용되고, 그들은 중앙 탑의 한 사람에 의해 계속적으로 감시를 받는다. 반지 모양 건물의 원 둘레에 칸칸이 분할된 이 방들은 밖으로부터 빛이 들어오므로 그 안에 있는 사람은 중앙 탑의 감시자에게 자세히 보인다. 그러나 수감자들은 중앙의 감시자를 볼 수 없고, 옆칸의 다른 수감자도 볼 수 없다. 벤담은 이 기본적인 개념을 공장, 학교, 막사, 병원, 정신병자 요양소 그리고 특히 감옥에 쓰이도록 고안했다.(130쪽)"

또한 여름과 겨울에 있는 방학!! 놀랍도록 잘 지켜지는 방학의 시간표. 몇 시에 일어나서 무엇을 하고 몇 시에 무엇을 한다는 생활계획표. 우리의 친절한 선생님은 스스로의 세계관에 대한 비판적인 사고를 하고서 이러한 주문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러한 사고에 대한 무개념적 접근인지……. 하지만 둘 다 문제를 가지고 있음을 직시해야 합니다. 비판적인 사고를 인지하고 있으면서 생활계획표를 주문한다는 것은 푸코가 말하는 "힘센 소수"라는 기득권적 권위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무개념적 접근이라면,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사고를 하지 않고 기득권에 줄 선 아름다움 선생님으로 불려 질 것입니다.

둘 백년 이 지나는 사이에 정상과 비정상이 갈리고, 정상은 비정상을 구속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은 서로를 나누는 힘이 되고, 일상에 숨어서 내 세계관을 구속하여 아무런 비판을 하지 않게 한다는 점입니다. 프로이드의 공격자와의 동일시 개념을 잠시 빌리면, 내 보다 조금 더 많이 가진 자에 대한 동경과 가지지 못한 자에 대한 낮은 눈빛. 제로섬 게임이라는 사회에서, 우리는 달콤한 사탕을 하나 지기위해 수백 명이 뛰어든 것입니다. 사탕을 어떻게 더 많이 만들것인가에 대한 고민보다는 내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이미지에 대한 욕심. 그리고 "규율"로 위장된 권력자들의 폭력. 약한 자의 소리를 비정상적인 구호로 보는 현재의 나 시선 등은 지금까지의 권력을 더욱 튼튼한 동아줄로 엮게 할 것임에 분명합니다.

이 헤게모니를 깨기 위해서는 절대 진리에 대한 개념을 상대적 진리로 받아들이고, 제로섬 게임이라는 무대위에 놓여있다는 커다란 시선이 있어야 되지 않을까 생각을 가져봅니다.

나는 푸코가 어디에서 무슨 학위를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궁금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가 쓴 책과 이런 알림에 대한 고민을 왜? 왜, 어려운 작업을 핸가에 대하여 궁금할 뿐입니다. 학생들이 기득권자에 맞설 때, 선뜻 자기의 방을 내어준 교수. 그의 실천적 지식에 대한 행위가 궁금합니다.



<책속으로>
이것들은 얼마나 많은 독자들의 기를 죽이고, 소외시키고, 지적 호기심의 의욕을 꺾어 놓았던가? 마치 자기들끼리만 통용되는 암호라도 말하듯 그렇게 생소한 용어들을, 학술 논문이 아닌 일반 도서에서 그냥 생경하게 쓰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오역까지 겹치면 글의 모호함은 극에 달한다.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이론은 이 모호함의 안개 속에 갇혀 완전히 구름잡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나 독자는, 특히 젊은 독자들은 권위 있는 대학의 권위있는 교수의 글이니, 글이 잘못됐다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고, 문제는 자신에게 있으며, 따라서 인내심을 가지고 독서를 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끝내 글이 이해가 안되더라도 최소한 어려운 책을 읽는다는 성취감이 어떤 고급 문화와 접촉하고 있다는 환상을 주기 때문에 응분의 만족감을 준다. 이것이 어려운 이론서를 쉽게 베스트셀러로 만들거나, 정확성이 매우 의심스러운 극도의 모호한 문체를 즐겨 사용했던 한 문학평론가를 1백 년만에 한 번 나올까말까하는 천재로 만들어 놓은 비밀이다. (<역자후기> p. 161)--- p.
우리는 정상적인 것과 같지 않은 다른 모든 것을 비정상이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다. 정상은 기본항이고, 정상적인 것은 너무나 분명한 것 - 우리 주위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것은 언제나 쉽게 구별이 되고 시대를 초월하여 언제나 똑같은 것이라고 우리는 흔히 생각한다. 그러나 방대한 역사적 자료를 훑어 본 뒤 푸코는 이 모든 가설에 도전장을 냈다. 광기, 질병, 변태에 대한 정의가 시대에 따라 크게 다르다는 것을 그는 보여주었다.--- p.19-20
비정상적 인간들을 추방했지만 그들이 우리 문화에서 덜 중요하게 된 건 아니다. 정상인은 비정상과의 비교 속에서만 규정되는 것이지 그 자체로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실상 비정상을 통해서 정상을 규정한다. 비정상을 통해서만 우리는 정상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그래서 비록 비정상이 추방되고 숨겨졌지만, 그외의 나머지 사라들, 다시 말해서 정상인들은 끊임없이 그리고 강박적으로 비정상인들을 연구하고 조사했다.--- p.21


역자후기

그 어려운 푸코를 만화로 그렸다니, 말만 들어도 재미있다. 아무리 어려운 이론도, 마치 외국어에서 모국어로 번역하듯, 난해한 말에서 쉬운 말로 번역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나는 푸코의 생애와 사상을 일러스트레이션으로 가시화해 놓은 이 책을 보고 짜릿한 흥분을 느꼈다. 내가 이 만화를 번역했던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언어의 모호함과 다의성이 문학에서는 미적 감동의 원천이지만 문학을 벗어난 이론서에까지 문체라는 미명하에 그것이 조장되고 찬양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어려운 글은 그 자체가 억압적인데, 민중 지향적인 지식인들이 민중은 한 줄도 이해할 수 없을 고답적인 글을 쉬운 말로 설명하려는 노력도 없이 마구 어렵게 써 나간다는 것은 분명 아이러니이다. 최신의 서구 이론들을 번역하거나 소개하는 저서에서 특히 그것이 문제이다. 푸코, 데리다, 라캉, 구조주의, 해체주의, 기호학, 포스트모더니즘.......... 이것들은 얼마나 많은 독자들의 기를 죽이고, 소외시키고, 지적 호기심의 의욕을 꺾어 놓았던가? 마치 자기들끼리만 통용되는 암호라도 말하듯 그렇게 생소한 용어들을, 학술 논문이 아닌 일반 도서에서 그냥 생경하게 쓰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오역까지 겹치면 글의 모호함은 극에 달한다.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이론은 이 모호함의 안개 속에 갇혀 완전히 구름 잡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나 독자는, 특히 젊은 독자들은 권위 있는 대학의 권위있는 교수의 글이니, 글이 잘못됐다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고, 문제는 자신에게 있으며, 따라서 인내심을 가지고 독서를 하는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끝내 글이 이해가 안되더라도 최소한 어려운 책을 읽는다는 성취감이 어떤 고급 문화와 접촉하고 있다는 환상을 주기 때문에 응분의 만족감을 준다. 이것이 어려운 이론서를 쉽게 베스트셀러로 만들거나, 정확성이 매우 의심스러운 극도의 모호한 문체를 즐겨 사용했던 한 문학평론가를 1백 년만에 한 번 나올까말까하는 천재로 만들어 놓은 비밀이다. 뛰어난 감성으로 우리의 미적 취미를 세련시키는데 기여하는 문학가들의 예술 작품이 아니라면, 글이란 가능한한 쉬워야 한다.
   하이데거가 1935-1936 학년도에 프라이부르대학에서 했던 강의서(프랑스 번역본 제목<사물이란 무엇인가?>, 독일어 제목 <형이상학의 기본적 문제들>)를 읽고 내가 느꼈던 감동과 선망도 그런 것이었다. 과연 대 철학자는 이렇게 쉽게 이야기를 풀어 놓는구나. 말만 들어도 골치 아플 것 같은 칸트의 물자체(物自體) 개념을 사물이란 무엇인가라는 평이한 질문에서부터 차근차근 단계적으로 밟고 올라가 마침내 정확하게 설명해주는 그 솜씨가 부러웠다. 나도 그렇게 글을 쓸 수 있다면, 나도 그렇게 강의를 할수만 있다면... 그러나 철학은 철학이었다. 뒷 부분으로 가면서 이야기는 점점 어려워져 철학 비전공자인 나의 호흡을 가쁘게 했다. 어려운 이론은 아무리 쉽게 설명하려 해도 한계가 있고, 결국 그것은 난해할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을 그 책은 동시에 보여 주었다. 그렇다면 학자나 전문가가 아닌 일반 교양인이 고도의 지적인 담론을 이해할 방법은 없는 것인가? 그것은 학습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아무런 학습의 기초가 없는 사람을 단숨에 이해시킬 쉬운 글이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 인간의 모든 인식은 앞 단계의 어떤 앎의 축적 위에서 가능한 것이다. 지식과 전혀 무관해 보이는 순전히 감정적인 이미지 마저도 학습의 결과이다. 어떤 사람이 뿔난 도깨비의 이미지를 꿈 속에서, 혹은 환상 속에서 보았다면, 그것은 자유로운 상상의 소산이기 보다는, 그가 어릴때부터 들어온 도깨비에 대한 지식의 소산인 것이다. 가장 감정과 닿아 있고, 가장 비합리적인 상상마저 학습의 기초 위에 얹혀져 있다면 고도의 합리적 사고력을 요구하는 학문적 이론에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손가락으로 반원을 그리며 야금야금 땅을 넓혀가는 어린시절의 땅 따먹기 놀이에서처럼 하나의 개념, 하나의 용어를 이해할 때마다 지식의 지평을 조금씩 넓혀간다. 이것이 학습이다. 이 학습의 부분을 우리나라의 지식인 사회는 소홀히 했다. 마치 자기가 알고 있는 개념이나 용어는 독자도 모두 알고 있다는듯이 다짜고짜로 생소한 말을 드리대었다. 그것은 좋게 말하면 학자의 직무유기이며, 나쁘게 말하면 자기가 다루고 있는 분야를 높은데서 내려다 보며 총괄적으로 조망할 지식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뜻한다. 철학적 논술을 고집스럽게 대학입학 자격고사의 시험 방식으로 채택하고 있는 프랑스 같으면 그것이 별 무리가 없지만, 고등학교에서 철학의 기초도 가르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이런 식의 저술 형태는 위험하기 짝이 없다. 영어(혹은 불어)로 intelligible이 플라톤의 이데아계(또는 초감성계)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그것을 지적인 것으로 번역하는 역자가 제아무리 해체니 기호니 하는 어려운 말들을 해보았자 그것은 글자 그대로 모래 위에 쌓은 성에 불과하다. 우리 젊은이들의 사고가 경직되어 있고, 학문의 기본 자세로서의 비판 의식도 결여되어 있는것은 이런 현상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한 이론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다른 무수한 이론들과의 관계를 알게 해주며, 따라서 그 이론에 대한 객관적, 상대적 이해를 도와주기 때문이다.

우리의 지식 사회에 두텁게 내리깔린 거품을 걷어 내려면 쉽고도 정확한 개념 설명을 통한 학문의 대중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아직도 학문의 상아탑을 주장하는 순수주의자가 있다면, 왜 사르트르에서부터 시작하여 오늘날의 푸코와 데리다에 이르기까지 프랑스의 철학이 종주국 독일을 누르고 비교 우위를 누리며 유망한 수출 품목으로 막대한 인세를 벌어 들이는지를 생각해 볼 일이다. 난해하기 그지없는 철학을 가지고 사르트르나 푸코가 그처럼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며 세계적 석학으로 떠오른 이유는 그들이 끈질기게 자신의 이론들을 대중화하는데 힘썼기 때문이다. 그것은 좀더 대중적으로 접근이 쉬운 문학의 길을 통한다든가 아니면 사회운동의 실천을 통해서였다. 여하튼 그것은 대중에게 자신들의 생각을 설득시키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었다. 사르트르는 에세이나 언론 매체의 기고문, 또는 소설이나 연극 등을 닥치는대로 이용하여 자신의 생각을 전파했다. 그것은 전통적 철학자라면 도저히 생각하지 못할 일이었다. 그런 그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기상천외한 매체가 철학의 운반 수단으로 등장했으니, 만화가 바로 그것이다. 모든 이론을 대중화하여, 아무리 고답적인 학문이라도 그것을 원하는 모든 泳宕湧?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는 푸코와 만화의 그 엉뚱한 결합이 유쾌하기 그지 없다. 학식 눞은 교수들만이 근엄하게 논하던 푸코의 담론이 이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책방의 만화 코너에서 만화책을 뒤적이는 어린 아이들의 곁으로 내려온 것이다.
   푸코의 철학은 강렬한 이미지들로 가득 차 있어서 만화라는 매체에 가장 잘 어울리는듯 하다. 중세의 프레스코화에 자주 비교되는 <광기의 역사>가 그렇고, 벨라스케즈의 그림 분석으로 시작되는 <말과 사물>이 그러하며, 끔찍한 차열형(車裂形)에 처해진 다미앵 재판기록과 제레미 벤담의 판옵티콘 개념을 중심축으로 하는 <감시와 처벌>이 그러하다. <초보자를 위한 푸코>(FOUCAULT FOR BEGINNERS)라는 원제 그대로 이 만화는 푸코의 이름을 한번도 들어보지 못해 그의 이름을 어떻게 발음해야 할지 조차 모르는 독자를 상대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푸코는 도대체 누구인가? 60년대까지 사상의 거장으로 막강한 지적 권력을 누렸던 사르트르 이후 프랑스에서는 기호학적 문학비평가 롤랑 바르트, 프로이트를 새롭게 해석한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 구조주의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그리고 철학자 미셸 푸코가 그 정상의 자리를 두고 서로 다투었다. 드디어 70년대 이후 그 넷 중 푸코가 선두를 달리는것을 우리는 보게된다. 철학자라고는 하지만 푸코는 일상적 관심과 동떨어진 형이상학에 몰두하는 전통적 철학자가 아니다. 그의 책 중에는 유일하게 <말과 사물>만이 인식론을 다루고 있을뿐 <광기의 역사>는 광기와 미친 사람들을, <진료소의 탄생>은 대학 부속병원을, <감시와 처벌>은 형벌 제도와 학교, 공장, 군대, 병원, 감옥등의 건물 형태와 규율을, 그리고 <성의 역사>는 성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것들은 모두 우리를 강하게 흡인하는 재미있는 주제들이다. 감옥에서야 더 말할 것도 없겠지만 우리 모두가 흔히 겪는 학교, 병원, 군대에서의 비합리적이고 억울한 경험들이야말로 푸코의 대중적 인기의 근원이다. 그리고 성에 대한 폭발적 관심이나, 동성연애가 당당한 권리를 주장하고 나서는 급격한 사회 변화 역시 푸코의 지위를 한층 더 공고히 다져주는 요인이다. 별로 공통점이 없을 것 같은 이 주제들을 관통하는 중심 개념은 권력이다. 이것 또한 개인의 권리 의식이 고조되고 있는 현대 세계에서 누구도 외면할수 없는 큰 관심사이다.
푸코는 광기와 성의 철학자이지만 무엇보다도 권력의 철학자이다. 그런데 그의 권력론은 딱딱하고 근엄한 정치사상 이론이 아니다. 그는 엉뚱하게도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격언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초등학교 때부터 아는 것이 힘이다, 배워야 산다, 라는 격언을 들으며, 공부 잘해서 훌륭한 사람 될 것을 독려받는다. 그런데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역사를 배우면 역사의 내용을 알고, 생물을 배우면 동물과 식물의 모든 것을 알게 된다. 그러니까 앎이란 모든 종류의 학문과 지식을 뜻한다. 전문적인 지식이 있을수록 사회에서 존경받는 직업을 갖게 되므로 과연 앎이란 힘이다. 그러나 앎이 힘이라는 것은 그런 소극적인 의미에서만이 아니다. 세상사와 전혀 관계가 없을 것 같고, 완전히 가치 중립적일것 같은 학문들이 사실은 모두 권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것은 한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형성하고, 또 그 지배 이데올로기의 유지에 봉사한다. 그런데도 그것이 외관상 학문의 엄격함을 띄고 있다는 것이 더욱 교묘하고 위험하다. 또 한편, 안다는 말은 지식을 뜻하는 것만은 아니다.옆집에서 어제밤 부부 싸움을 했다는 사실을 아는 것도 아는 것이고, 쿠르드족 지도자 오찰란이 체포된 사실을 아는 것도 아는 것이다. 그리고 정보기관이 어떤 장관, 어떤 금융기관장의 뇌물 수수 사실을 아는것도 역시 앎 이다. 그러니까 앎은 정보를 뜻하기도 한다. 그런데 정보란 우리가 재미있는 첩보 영화에서 익히 보아 알고 있듯이 무시무시한 폭발력을 갖고 있다. 정보는 마치 땅 밑바닥부터 파고 들어 가 마침내 그 위의 거대한 건물을 무너뜨리듯이 한 나라를 서서히 붕괴 시킬수도 있고, 평생 출세가도를 달려온 한 야심만만한 엘리트 관료의 일생을 단숨에 망칠 수도 있다. 앎은 이처럼 힘을 생산한다.

알고 있는 쪽이 알고 있지 못하는 쪽보다 월등한 힘을 행사한다.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상대방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 상대방에 대해 엄청난 통제력을 갖고 있을것이 틀림없다. 이 힘이 권력이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순진한 격언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엄청난 뜻을 감추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말로는 순 우리말인 `힘'과 한자말인 `권력'이 분리되어 각기 일상적인 힘과 정치 권력을 뜻하고 있지만, 영어(power)나 불어(pouvoir)에서는 그것이 매한가지 말이다. 푸코의 권력 이론을 정치 권력으로만 좁게 해석하여 계급 투쟁이론과 결부시키려 시도했던 일부 학자들의 오류도 거기에서 생긴 것이다. 푸코의 권력은 국민을 정보의 올가미 속에 얽어 넣어 완전히 통제하려는 정치 권력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넓은 의미에서의 모든 힘의 관계를 뜻한다. 가정에서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또는 남편과 아내의 관계이다. 아버자를 죽이는 아들의 사례가 가끔 보도되고 있는 현실은 무엇을 뜻하는가? 살인에 이를 정도의 엄청난 억압과 저항 관계가 가정 내에 형성되어 있다는 증거이다. 그것이 권력 관계가 아니고 무엇인가? 권력의 장에는 지배 엘리트와 백성이라는 단 두 개의 덩어리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반체제 단체와 그것을 억압하는 정부 사이에는 권력의 지배 관계가 있지만, 바로 그 반체제 단체 안에서도 지도부와 평당원 사이에는 권력 관계가 있다. 몇년 전 운동권 대학생의 총 리더가 같은 대학생들의 엄중한 경호 속에 피신해 다니며, 똑같은 대학생들인 운동권 학생들로부터 `...님' 이라는 깍듯한 존대말로 지칭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놀란 적이 있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되는 사회를 건설하겠다고 뭉친 젊은이들이 보여주는 행위 치고는 해괴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이것이 권력 관계이다. 직장에서라면 상사와 아랫사람의 관계가 역시 권력 관계이고, 천주교의 사제단이나 추기경, 불교의 종정, 이 모든 기관이 막강한 권력의 자리이다. 중요한 매체를 소유한 문학평론가와 그 앞에서 꼼짝 못하는 작가 지망생 사이에도 지배와 종속의 적나라한 권력 관계가 있다. 무릇 세 사람만 모이면 그 중에는 나머지 두 사람을 지도하려는 한 사람이 나오게 마련이고, 거기에는 권력 관계가 형성된다. 권력은 정치에 뜻이 있는 사람에게만 관련되는 단어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로빈슨 크루소처럼 외딴 고도에서 혼자 살지 않는 한 모든 인간의 근원적인 조건이다. 권력은 인간들의 모든 관계 속에 내재해 있다. 이처럼 사회의 구석구석까지 망을 형성한 권력 관계를 푸코는 모세 혈관에 비유하고, 그러한 권력을 미시 권력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흔히 우리는 권력이 총칼에서부터 나온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총 칼 든 사람 앞에서 우리는 공포에 떨며 무조건 복종한다. 그런데 힘에는 물리적 힘도 있지만 정신적 힘도 있다. 물리력 앞에서의 복종은 어디까지나 면종복배(面從腹背)일뿐 진정한 복종은 아니다. 상대방을 정신적으로 존경하며 자발적으로 하는 복종이야말로 진짜 복종이다. 푸코 이전까지 사람들은 정신적인 힘을 과소평가했다. 아니 그것은 틀린 말인지 모른다. 푸코가 처음으로 정신적인 힘을 평가한 사람은 아니다. 1920-1930년대에 이탈리아의 공산주의 이론가 안토니오 그람시가 헤게모니 라는 용어로 이미 그것을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지배하는 것은 단순히 경제적, 물리적 힘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지배계급의 신념 체계와 사회적, 문화적, 도덕적 가치를 받아 들이고 그것을 공유하도록 피지배자들을 설득하는 힘에 그 요체가 있다고 했다. 이 힘이 바로 헤게모니이다. 그러니까 소수가 다수에게 지도력을 발휘하고, 자신들의 가치나 신념을 다수에게 부과하는 방법이 바로 헤게모니이다. 우리 역사의 조선 왕조가 세계에 유래없이 5백 년간 지속될 수 있었던것도 강력한 유교 사상과 선비 정신이 피지배층의 동의를 얻었기 때문이라고 할수 있겠다. 그러나 피지배층이 더 이상 지배계급의 정신적, 도덕적 우위를 인정하지 않을 때, 이것은 권위의 위기, 다시 말해서 헤게모니의 위기가 되고, 이때 혁명이 가능해 진다. 그람시는 지도력과 지배를 구분하는 레닌의 이론에서 이 개념을 발전시켰지만, 동시에 15세기의 정치 사상가 마키아벨리의 저 유명한 <군주론>에서 깊이 영향을 받았다. 군주의 교육을 위해 쓰여진, 그리고 권모술수라는 의미의 마키아벨리즘을 유포시킨 이 책에는 구구절절이 군주가 민심을 장악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군주는 항상 민중을 자기 편으로 잡아 두어야 하며, 그렇지 못한 상태에서 역경에 처하면 구제방법이 없다고 마키아벨리는 주장했다.
그러나 푸코가 정신적인 권력에 관심을 집중시킨 것은 그람시나 마키아벨리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다. 그것은 제왕학도 아니며, 한 지배 계급을 타도하여 다른 계급이 정치 권력을 장악하도록 하기 위한 전략도 아니다. 그는 다만 좀더 근원적인 권력 관계를 폭로하여 인간을 모든 권력으로부터 해방시키려는 의도를 가졌을 뿐이다. 이를 위해 그가 사용한 방법론은 고고학과 계보학이다. 푸코를 처음 대하는 독자라면 고고학이니 계보학이니 하는 말에 심한 당혹감을 느낄 것이다. 고고학이라면 경주의 천마총이나 공주의 무령왕능 같은 발굴 현장이 떠오르고, 계보학이라면 명문가의 인사들이 그토록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우리의 족보가 떠오르지 않는가? 우리가 모르는 어떤 다른 의미가 이 용어들에 있는것일까? 푸코는 이때까지 자명하고 보편적인 진실로 여겨졌던 모든 지식과 체계를 그 뿌리에서부터 뒤흔들어 전혀 새로운 시각으로 인간과 역사를 새롭게 해석했다.

이처럼 모든 것을 뒤집어 엎는다는 의미에서 그에게는 전복적(顚覆的) 철학자라는 꼬리표가 붙게 되었다. 그의 글에서는 모든 것이 새로왔고 의외성이었다. 전혀 철학같지 않은 주제와 전혀 철학같지 않은 참신한 용어 사용이 폭발적인 대중 사회인 현대에 들어 맞았다. 그의 성공의 비결은 여기에 있다. 고고학과 계보학도 그중의 하나이다. 색색의 지층과 흙먼지를 연상시키는, 철학하고는 한 가닥도 닿아있지 않을것 같은 고고학이라는 용어로 그는 독자들의 강한 관심을 끌어 들였다. 마치 선사 유적지를 발굴하여 아득한 옛 시대 인류의 흔적을 더듬듯이 현재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어떤 관습이나 제도들을 그 형성 과정으로 거슬러 올라가, 그 지층의 미세한 차이를 검토하고 거기에 어떤 새로운 해석을 내리는 것이 푸코의 고고학과 계보학이다.
그 첫번째가 광기에 대한 발굴이다. 우리의 조선 시대를 한번 생각해 보자. 심한 저능의 바보나 실성한 사람은 그 가정의 문제일뿐 그들을 따로 모아 한데 가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들은 정상인과 전혀 구별되지 않은채 사이 좋게 같은 마을에서 살았다. 가끔 동네 개구장이들의 놀림을 받기는 해도 마을 전체가 따뜻한 시선으로 그를 감쌌고, 보통 사람과 다른 그의 행동 마저 인생의 한 부분으로 받아 들이며 무심하게 평화스럽게 살았다. 서양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서양에는 중세 때부터 우리가 영화 벤허에서도 보았듯이 문둥병 환자들을 격리 시켜 한데 수용했던 시설이 있었다. 전염성이 있어서도 그랬지만 단순히 그 모습이 혐오스러워서 사람들로부터 격리시켰던 것이다. 인류의 재앙이었던 이 문둥병이 왠일인지 14세기에 갑자기 사라졌다. 전에 나환자를 가두던 수용 시설이 텅 비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일뿐 곧 그것은 다른 사람들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15세기부터 바보들의 배라는 이상한 배가 유럽의 강물 위를 떠다니기 시작했다. 부랑인이나 저능아, 혹은 실성한 사람들, 요컨대 생활 능력이 전혀없어 가정이나 마을에서 쫓겨난 사람들을 가득 태운 이 배는 포구에서 포구로 하염없이 강물을 따라 표류했다. 그중에는 버젓한 가정에서 선장에게 돈을 주고 집안의 골칫거리룰 떠맡긴 경우도 있었다. 마침내 데카르트와 파스칼을 탄생시킨 고전주의 시대 17세기가 도래했다. 루이 14세의 베르사이유 궁전에 깎은 듯한 기하학적 정원이 들어서고, 데카르트의 합리주의 사상이 서양 역사의 근대 시대를 연 세기였다. 이 시기에 갑자기 프랑스에서는 대대적으로 사람을 가두는 현상이 일어났다. 범죄자는 물론이고, 그 전까지 사람들의 관심조차 끌지 못했던 사소한 위반자나 실성한 사람들이 갑자기 수용 시설에 갇히기 시작했다. 전에 집에서 간호를 받던 환자들도 수용되었는데 그중에는 간질 환자도 포함되어 있었고, 극빈자도 있었다. 파리 시민 1백 명 중 한 명 꼴로 감금되었다니 그 가둠의 규모가 얼마나 컸는지 우리는 짐작할수 있다. 그렇다면 극빈자, 환자, 광인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그들은 정상적인 인간이 아니고 비정상적인 인간이라는 것이다. 푸코는 17세기에 이르러 갑자기 서구 사회가 인간을 정상, 비정상으로 가르고, 모든 비정상인을 함께 가둬 일반 정상인들로부터 그들을 격리시켰다는데 주목했다. 이때 정상, 비정상을 가르는 잣대는 이성이며, 광기는 곧 비정상으로 정의되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성이고, 무엇이 비이성인가? 그리고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가? 우리는 다수의 사람들이 하는 행동을 정상이라고 부르고, 소수의 사람들이 보이는 행동을 비정상이라고 부른다. 애꾸의 나라에서는 두 눈 가진 사람이 불구자이다.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은 그러니까 미친 사람 취급을 받는다. 우리가 조금만 옷을 이상하게 입어도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저 사람 미쳤어'라고 말하지 않는가? 정상, 비정상의 분리가 이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므로 얼핏 보기에는 매우 합리적인 듯이 보이지만, 실제로 거기에는 극도의 비합리적인 몽매성이 있다. 그런데 합리성을 가장한 몽매성이 왜 갑자기 17세기에 솟아났는가? 푸코는 그것이 근대 부르주아 권력의 대두와 관계가 있다는 가설에서 출발한다. 자기들과 다르게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을 가둠으로써 일사불란한 권력의 행사가 가능해 진다. 여기서 광기가 남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사회에서 추방하기 위한 수단으로 등장한다. 광기가 정신병이며, 따라서 엄격한 과학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상식을 뒤엎고 푸코는 그것이 문화의 소산이며, 서구 부르주아 문명의 발명품이고, 남들도 모두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도록 강요하는 억압이라는 것을 밝혀낸다. 이것이 광기에 대한 그의 고고학적 방법의 성과이다. 17세기 이래 근대 문명은 모든 남다른 행동이나 남다른 생각을 이성의 이름으로 단죄했다. 그것은 정치적인 영역만이 아니라 가장 자유스러운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 문학, 예술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조금이라도 남다른 행동을 보이면 그것은 사회에 대한 위험한 도전으로 간주되어 어떤 식으로든 제재와 파문이 가해졌다. 푸코가 특히 이처럼 보이지 않는 사회적 검열에 민감했던 것은 그가 동성연애자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사회적 인습을 위반하려 애썼던 사드, 룻셀, 바타이유, 클로소프스키등의 작가들에게 강한 애정을 느꼈으며, 르네 샤르의 싯구중 `그대의 남다름을 계발하라'는 구절을 특히 좋아했다.

사전적인 의미에서의 discours는 이야기, 담화, 담론, 연설, 훈시, 인사 등의 뜻이었다. 문맥으로 보아 담론이 가장 비슷한 의미인 것 같았으나 이것도 그렇게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다. 담론이라는 말에서는 서너 사람이 화롯가에 둘러 앉아 담소를 즐긴다는 인상이 느껴지는데, 그 책들에서는 아무래도 그런 의미가 아닌 것 같았다. 누구의 말, 사상, 혹은 이론이라고 해야할 자리에 어김없이 discours를 썼다. 만족스럽지 못한채로 나는 가끔은 담론, 또 가끔은 사상, 이론, 말 등으로 이 단어를 번역했다. 그리고 나서 나는 담론에 대한 독학자의 탐구를 시작했다. 우선 언어학에서의 담론은 소리로 말해졌건, 글로 쓰여졌건간에 우리의 모든 언어행위를 뜻한다. 언어학자 방브니스트에게서 담화(discours, 이때는 또 담화라고 번역된다)는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을 전제로 하고, 어떤 방식으로든 상대방에게 영향을 끼치려는 의도를 전제로 하는 모든 언술 행위를 뜻한다. 그는 이것을 일체의 자전적 언어 형태를 배제하는 언술 양식인 `역사적 이야기(r cit historique)'와 대비시켰다. 철학에서는 사고의 언어적 표현이며 따라서 직관의 반대말이다. 푸코의 담론은 바로 이 두 가지를 합친 것이 아닐까. 쉽게 말하면 우리 머리 속에 떠오른 어떤 생각을 언어?표현했을 때(말이건, 글이건간에) 그것이 담론이다. 조금 더 어렵게 말해보면 언어라는 매개를 통한 대상의 인식이 바로 담론이다. 그리고 이때의 언술 행위는 상대방에게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어쨌거나 여기서 공통되는 것은 담론이 언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언어 중에서도 감정적인 외마디 소리가 아니라 정신적인 판단과 추론 작용의 결과로 나온 언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데모 현장의 짤막한 구호도 담론이고, 마르크스의 방대한 <자본론>도 담론이다. 소리나 문자로 되어서 우리가 귀로 듣거나 눈으로 볼 수 있게 된 인간의 모든 생각들, 그것이 담론이다. 푸코 자신의 말을 빌면 말과 생각 사이에 있는 것, 기호(記號)라는 옷이 입혀진 생각, 또는 말들에 의해 가시적으로 된 생각 (<담론의 질서>)이다. 따라서 일상적인 화제나, 개인간의 계약서, 대학 화장실에 붙어 있는 스티커의 구호, 대통령의 담화문, 성경 말씀, 법조문 등이 모두 담론이고, 마르크스, 프로이트, 니체, 칸트의 사상들이 담론이며, 수학, 생물, 경제학 같은 학문의 분야 하나하나도 모두 담론이다. 이처럼 담론은 학문, 이데올로기, 지식 등을 포괄하는 아주 편리한 단어이다. 어느 철학자의 저서나, 평생의 사상, 또는 그가 기자와 가진 인터뷰중의 한 구절을 각기 복잡하게 다른 말로 할 필요가 없다. 담론이라는 한 마디 말로 그것을 다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단순한 말이 푸코의 철학 체계를 떠받치는 중심 개념이 된 것은 그것이 권력을 실어 나르는 운반 수단이기 때문이다.
에피스테메가 한 사회를 통제하는 것은 이 담론을 통해서이다. 17세기에 권력이 광기를 이용하여 사람들을 사회에서 배제했을 때에도 그것을 믿받침하는 것은 담론이었다. 한 사회의 주도적 인물들의 담론은 다른 사람들의 담론을 제한한다. 세상의 모든 사회는 누구나 무슨 말이든지 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니다. 이것은 단순히 언론 자유가 제한되어 있는 독재국가냐 아니냐 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푸코는 담론이 가진 통제의 기능을 외부통제와 내부통제로 나눈다. 첫째로 담론의 외부적 통제에는 금기, 진실에의 의지등이 있다. 성이나 죽음에 대해 우리는 아무 말이나 할 수 없다. 금기라는 준엄한 벽이 그것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학문 분야에서건 시사적 정보의 차원에서건 우리는 하고 싶은 말을 생각나는대로 마구 할 수 없다. 그건 진실이 아니다,라는 차가운 반응이 우리를 무안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담론의 내부적 통제는 좀 더 학문적 차원이다. 그것은 주석(註釋), 저자, 말하는 사람에 대한 제한 등으로 이루어진다. 어느 분야의 권위있는 학자는 원전에 대한 주석을 통해 담론의 방만한 퍼짐을 제한하고, 저자가 불분명한 원전들을 여러 기준에 따라 특정 저자에 귀속시킴으로써 그 외의 담론들을 배제한다. 흥미로운 것은 말하는 사람을 제한하는 세 번째의 규제 장치이다. 한 개인은 어떤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어느 특정의 담론의 서열에 들어가지 못한다. 다시 말하면 담론의 모든 영역이 누구에게나 똑같이 개방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예컨대 우리나라에서 고대사에 관련된 재야 사학자들의 주장이 정통파 사학자들로부터 적대적 경멸을 받는 것은 진실에의 의지와 말하는 사람에 대한 제한이라는 이중의 통제 방식이다. `이 분야의 전문가도 아니면서....'라는 주눅들린 서문으로 자신의 저술을 책으로 출판하는 모든 저자들은 푸코의 이름도 모르면서 이미 담론의 통제 이론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동화 <어린 왕자>에서 자기 나라 고유 의상을 입고 국제 학술대회에서 발표를 했기 때문에 새로운 혹성의 발견을 국제적으로 인정 받지 못한 터키 천문학자의 이야기도 담론의 내부적 규제의 한 좋은 예이다. 이 두 예화는 말하는 사람의 소속(계급, 사회신분, 종족, 국적, 이해관계, 출신 대학등)을 문제 삼아 그의 언술을 사회 집단에서 배제하는 경우이지만 거꾸로 언술 자체를 문제 삼아 언술 주체를 배척하기도 한다. 어떤 이념을 공유하는 집단에서 그 이념에 배치되는 말을 한 사람을 탄핵하는 것은 이 거부의 메커니즘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이단이라는 말로 정통에 반대되는 모든 것을 배제하는 관행은 광신 집단의 행동만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사상과 이념에 내재해 있는 근본적인 성격이다. 그렇다면 누가 정통이고 누가 이단인가?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을 금기로 가로 막고,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고 오만하게 말하는자가 누구인가? 여기에 권력의 문제가 떠오른다. 힘 있는 자의 담론이 사회를 지배한다. 힘이 곧 정의다,라는 격언은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격언과 함께 푸코의 체계를 떠받치는 두 개의 중심 기둥이다. 힘이 곧 정의라는 사실을 우리는 정치 권력의 장에서는 입이 아프게 질타했으나, 담론의 장에서는 아직 충분히 이야기한 적이 없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나 무슨 이야기든지 할 수 있는 사회인듯 해도 실제로는 엄격한 금기와 제한이 우리의 말을 막고 있다. `우리 시대의 문명 말고 그 어느 문명이 이처럼 담론을 존중하고, 담론에 명예를 부여하고, 그것을 철저히 해방시키고, 보편화 했던 시대가 있었을까?(...) 그러나 이 외면적인 말사랑(logophilie)밑에는 두려움이 감춰져 있는 듯하다.(...) 모든 사회 안에는 이 사건, 이 말해진 물체, 이 모든 언술의 분출, 거기 있을 수 있는 모든 폭력적인 것, 불연속적인 것, 전투적인 것, 무질서한 것, 위험한 것, 이 끊임없이 뒤죽박죽인 담론의 웅웅거림에 대해 일종의 암묵적인 두려움, 말에 대한 깊은 공포(logophobie)가 있는 듯하다'(<담론의 질서>)라고 푸코는 말했다.
뭐니뭐니 해도 권력의 가장 적나라한 행사는 죄수에 대한 형벌권의 행사이다. 이 분야에 대한 푸코의 세밀한 고고학은 그 완벽한 고증과 해석이 가히 독자의 전율을 일으킬 정도이다. <감시와 처벌>은 1757년에 루이 15세의 시종 다미앵이 왕의 어깨를 칼로 살짝 건드린 죄로 파리의 광장에서 잔혹하게 고문을 당한후 말 네 마리에 몸이 묶이어 사지가 찢기는 장면의 묘사에서부터 시작한다. 광장에 운집한 군중 앞에서 죄수를 공개적으로 고문하고 이어서 잔인하게 죽인 후 그 시체를 공시하는 것은 근대 이전의 형벌 제도의 관행이었다. 죄수의 공개 처형이 있는 날이면 사람들은 생업을 중단하고 광장에 몰려들어 죄수에게 고문이 가해질 때마다 환호성을 지르고 범죄에 대한 분노를 소리 높여 외쳤다. 공개 처형은 사람들이 앞으로 저지를수 있는 모든 범죄에 대한 예방이면서 동시에 주민들의 축제였다. 그리고 그 공포와 함께 왕의 막강한 힘을 만천하에 공표하는 권력의 과시였다. 이 떠들석한 형벌의 관행이 1830년대경부터는 사람들의 눈으로부터 감춰져 은밀한 장소로 옮겨졌다.
종래의 학자들은 이것을, 근대 사회로 이행하면서 인간의 기본 권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푸코는 여기서도 우리의 상식을 뒤엎는 가설을 제시한다. 죄수를 인간적으로 대하기 위해서가 아니가 끔찍한 처형 장면이 죄수에 대한 사람들의 동정심을 유발시켜 오히려 권력에 대한 반감이 생겨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광장에 몰려들어 처음에는 주먹을 휘두르며 잔인한 살인자에게 고함을 지르던 군중도 형리로부터 끔찍한 고문을 받는 죄수의 모습을 보면 불쌍한 생각이 든다. 그렇게 되면 살인에 대한 분노는 그 범죄를 유발시킨 사회적 모순이나 권력의 압제 같은 것으로 돌려지게 된다. 이것은 권력에게 있어서 매우 위험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이때부터 권력은 떠들석한 과시에서부터 은밀한 영역으로 숨게 되었다. 그리고 죄인에 대한 처벌은 범죄의 종류에 관계 없이 감옥에 가두는 것으로 통일되었다. 우리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고 낯익은 투옥의 제도가 근대 이전의 사람들에게는 새롭고 이상하게만 보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감옥은 죄수가 재판을 기다릴 때까지, 혹은 빚쟁이가 빚을 갚을 동안 잠시 머무는 장소였을뿐, 그 자체가 형벌이라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죄수를 가만히 감옥에 가둬 놓기만 하는 것이 무슨 벌이 되며, 또 단순히 한 번 감옥에 갔다 오는 것만으로 어떻게 착한 사람이 될수 있겠느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이에 대한 대답을 푸코는 규율(discipline)에서 찾는다.
1830년대에 파리의 한 감옥은 죄수들의 일과를 꼼꼼하게 규정해 놓았다. 여름에는 아침 5시, 겨울에는 6시에 일과가 시작된다. 하루에 9시간 일하고, 2시간은 학습에 바쳐진다... 기상 북이 울리면 조용히 일어난다. 두 번째 북이 울리면 옷을 입고 침상을 정리한다. 세 번째 북소리에 맞춰 줄을 서서 예배당으로 향한다... 이것이 규율이다. 이제 권력은 야단스럽게 자신을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일과표만 챙기면 되었다. 규율이란 어떤 규범(norm)과 규칙을 정해 놓고 모든 사람들을 그 규범에 종속시킴으로써 통제를 용이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의 중고등학교에서 머리 길이, 옷모양 등을 정하여 그것을 위반하는 학생에게 제재를 가하는 것이 바로 규율이다. 규범은 강제의 원칙이며, 그 목적은 모든 사람들을 똑같은 모습으로 만드는 규격화(normalization)에 있다. 그리고 누가 규범을 어겼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감시를 통해서이다. 그러니까 감시와 규격화는 근대 권력의 필수적인 도구이다. 흥미로운 것은 푸코가 이 규율적 권력의 모델을 흑사병의 창궐 시기에서 찾았다는 점이다. 17세기의 대대적 감금 현상이 중세기의 문둥병의 격리에서 그 사회적 배척의 모델을 찾았듯이, 규율적 권력은 14-15세기에 유럽에서 1천만 명 이상의 희생자를 낸 흑사병에서 그 도식을 빌려왔다. 강한 전염성의 흑사병이 일단 발병하면 그 도시에는 전면적인 금족령이 내려진다. 주민들은 일체 집 밖에 나오지 못하며, 거리를 다닐 수 있는것은 도시의 치안을 담당한 관리들 뿐이다. 이들은 사람들에게 식품을 배급해줄 뿐만 아니라 누가 명령을 어기고 집에서 나오는지, 또는 환자가 새로 발생했는지를 감시하고 기록한다. 당국은 도시의 지도를 놓고 바둑판처럼 그것을 분할하여 각기 책임자를 임명하고, 전염병 환자의 수에 따라 통제를 좀더 철저히 해야할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의 등급을 매긴다. 이처럼 재난의 시기에 병력이나 경찰력을 효과적으로 배치하기 위해 시가지를 지구별로 나누어 행정력을 강화하는 방식이야말로 규율적 권력의 이상적인 모델이다. 바둑판 같은 지역분할(불어로 quadrillage)을 통해 모든 것에 등급이 매겨지고, 감시의 시선이 번뜩이며, 엄격한 기록이 행해지고, 온 도시가 얼어붙은듯 꼼짝하지 않는 것, 이것은 그대로 근대 권력이 꿈꾸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국가가 아니겠는가? 나환자들의 추방이 순수 공동체에 대한 꿈이라면 흑사병의 금족령은 규율사회에 대한 꿈이다. 19세기의 서구 사회는 인간에 대한 권력 행사인 이 두 방법을 한데 합쳤다. 이것이 근대 권력의 탄생이다.

누군가를 바라보는 단순한 지각행위가 엄청난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인간의 통제에 처음으로 사용했던 것은 군대였다. 모든 감시체계 건축물의 효시는 군막사이다. 야전장의 군막사는 통로의 방향과 텐트의 배치를 통해 병사들을 정확하게 감시할 수 있는 시선의 망을 구축했다. 그러니까 규율적 권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간의 배치다. 영국의 계몽주의 철학자 제레미 벤담이 판옵티콘(Panopticon, 한 지점에서 일목요연하게 건물 전체의 내부가 다 보이도록 설계된 건물)을 고안한 것도 군막사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다. 그의 아이디어는 이렇다. 2-3층으로 된 반지 모양의 원형 건물 원 둘레 부분을 칸칸이 분할하여 한 사람을 수용할만한 독방들을 만든다. 원형 건물의 안쪽에는 중앙탑이 세워져있다. 중앙탑에는 감시자가 한 사람 있어서 몸만 한 번 돌리면 손쉽게 원형 건물의 감방들을 모두 훑어 볼수 있다. 그러나 독방에 수감된 사람들은 중앙의 감시인을 볼 수가 없다. 외부에 면해 있는 감방들은 밖으로부터 빛을 받아 방안의 모습이 환히 중앙탑에서 보이지만 아무것으로부터도 빛이 들어오지 않는 중앙탑은 어둡기 때문에 그 안에 누가 있는지 감방에서는 볼 수가 없다. 그리고 또 한가지 특기할만한 것은 감방이 옆면으로 칸칸이 막혀 있기 때문에 수감자들 상호간에 서로를 바라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죄수들간의 뒤섞임은 위험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그들 상호간의 관계는 철저히 차단된다. 벤담은 이 기본적인 건축의 개념을 공장, 학교, 군막사, 병원, 정신병 요양소, 그리고 감옥에 적용할 것을 권장했다. 푸코는 여기서 근대 권력의 전형을 본다. 독방에 갇힌 사람은 감시인에게 완전히 보이지만 그는 감시인을 볼수가 없다. 한편 감시인은 죄수를 완전히 보지만 자신의 모습은 그에게 보이지 않는다. 여기에 시선의 불균형, 비대칭성이 있다. 우리의 지각행위는 보다-보이다 의 짝을 이루고 있는데 판옵티콘은 이 시선의 한 짝을 해체해 버렸다. 내가 볼 수 없는채로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다는 것은 나를 매우 불리한 지위에 놓는다. 더욱 교묘한 것은 중앙탑이 죄수들의 눈에 보이지 않으므로 그 안에 감시인이 항상 앉아 있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다. 죄수들에게 항상 감시받고 있다는 느낌만 주면 그것으로 이 권력 기구는 자동으로 작동된다. 감시의 시선은 보이는듯 할 필요는 있으되 반드시 있는지 확인될 필요는 없다. 시선은 확인되지 않을때 더욱 공포를 자아낸다. 판옵티콘이야말로 단순히 시선 하나로 가동되는 이상적인 권력 장치이다. 이때 시선은 앎과 직결된다. 죄수를 바라보는 감시인은 죄수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게 되지만 감시인을 바라보지 못하는 죄수는 감시인에 대해 아무 것도 알 수가 없다. 시선의 불균형은 앎의 불균형을 낳고, 앎의 불균형은 권력의 불균형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앎은 담론이 되어 사람들을 억압하는 교묘한 수단이 된다. 이 시선의 개념을 푸코는 근대 이래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공공 건물에서 발견한다. 감옥, 병원, 작업장은 더 말할 것도 없고, 복도를 따라 일렬로 배치된 학교 교실들, 문이 반쯤만 달려 위, 아래로 학생들의 다리와 머리가 보이도록 고안된 학교 화장실등이 모두 감시의 공간화인 것이다.
푸코가 시선과 관련하여 고대와 근대를 비교한 대목은 그의 권력 이론의 지향점이 어디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는 희랍·로마 시대를 스펙타클(구경거리)의 시대, 근대를 감시의 사회라고 정의했다. 스펙타클의 시대인 고대(영어로 antiquity, 불어로 antiquit 는 희랍·로마 시대를 뜻한다)에 사람들은 무리를 지어 공연자의 연희를 관람했으므로 그 때는 다중이 소수를 바라보던 시대였다. 고대의 원형극장은 그런 풍습에 딱 들어 맞는 건축양식이었다. 군중이 박수치며 공연물을 관람하는 행위와 함께 공공의 생활이 형성되었고, 축제가 이루어졌으며, 사람들 사이에는 감각적인 친밀성이 생겨났다. 과격한 축제 속에서 가끔 유혈적인 사태가 일어나는 일이 있어도, 이 의식들 속에서 사회는 활기를 얻고, 거대한 공동체의 일체감을 느낄수 있었다. 그러나 근대는 이와 반대로 소수가 (아니면 한 사람이) 다중을 바라보는 시대이다. 벤담의 판옵티콘 속에서 간수 한 사람이 원형 건물 감방에 갇힌 수많은 죄수들을 바라보듯이, 그렇게 소수가 다수를 바라본다. 그리고 이때의 다수는 감각적 친밀성의 공동체가 아니라 모래알같이 흩어져 있는 개인들이다. 죄수들 상호간의 관계가 차단되었다는 것은 이제 인간이 공동체가 아니라 개인이 되었다는 증거이다. 전통 사회에서는 공동체가 중요했을뿐 개인이라는 개념은 없었다. 그런데 근대의 규율적 권력이 개인을 창조했으며, 그것을 권력의 대상으로 삼고, 또 도구로 사용했다. 이제 개인은 각기 하나씩 모래알처럼 흩어져 권력의 감시 대상이 되었다. 마치 판옵티콘의 독방에 갇혀 중앙탑의 감시를 받는 죄수들처럼 인간 상호간의 소통이 없이 어떤 보이지 않는 시선의 감시를 받고 있는 현대인들은 정보의 대상일뿐 더 이상 커뮤니케이션의 주체가 아니다. 그것은 크게 보면 사적 개인들과 국가의 관계이며, 좁은 의미에서는 직장이나 학교, 군대등 모든 공공기관에서의 권력관계이다. 현대인은 관중석에도, 무대 위에도 있지 않고, 오로지 판옵티콘의 기계 장치 속에 들어 있다는 푸코의 말에서 우리는 차가운 시선이 번뜩이는 감시의 사회가 아니라 따뜻한 인간미가 흐르는 스펙타클의 사회에 대한 그의 간절한 염원을 읽을수 있다. 현대 젊은이들이 무대 위의 가수들이나 운둥장의 선수들에게 열광하는 것 역시 이와같은 사회에 대한 향수 때문이 아닐까?


▶ Krzysztof Pruszkowski가 찍은 푸코의 사진


▶ 성가대 소년 시절


▶ 푸아티에에 있는 생-스타니슬라스 고교 2학년때의 학생기록부, 1940-1941학년도


▶ 위의 사진 뒷장에 미셸 푸코는 "에이스 중의 에이스"(일류중의 일류)로 표기되어 있음. (글을 쓴 사람은 뤼세트 라바테)


▶ 교수자격시험(agr gation)을 준비하기 위해 미셸 푸코는 가능한 모든 주제에 관해 10여개의 예상 문제를 작성했다. 사진에 나와있는 것은 "무의식"에 대해서이다.


▶ 조르쥬 되메질, 1949년


▶ 1977년의 어느 하루.(사진 Mich le Brancilhon)


▶ 스웨덴에서 자기 제규어 차 앞에 선 미셸 푸코, 1958년.


▶ 웁살라의 프랑스 문화원에서, 1957년.


▶ 루이 알뛰세르, 1976년.


▶ "철학자 푸코" 심포지엄을 주재하던 1988년 1월의 조르쥬 캉길렘.


▶ 미셸 푸코가 앙리 구이에에게 보낸 편지, 1961년 5월 4일. 왼쪽 상단에는 앙리 구이에가 푸코의 박사학위 논문 발표중 써놓은 메모.


▶ 1961년 박사학위 논문으로 제출된 <광기와 비이성>.


▲ 마네의 <풀밭 위에서의 점심>을 패러디하여 캐리커추어로 그린 <구조주의자들의 점심>. 왼쪽부터 미셸 푸코, 자크 라캉,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롤랑 바르트.
모리스 앙리가 그린 이 그림은 1967년 7월 1일자 캥제느 리테레르지에 실렸다.


▶ 1971년 르몽드지 기사. "미셸 푸코가 경찰에 항의하다"라는 제목.


▶ 1975년 9월 22일, 11명의 반체제 인사들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스페인 정부에 항의하기위해 마드리드로 갔던 푸코와 지식인들이 스페인 정부로부터 추방당한후 루아시 공항에 내려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 누이 프랑신느와 함께


▶ 1983년 10월, 버클리에서 학생들과 함께 한 푸코. 학생들이 선물한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있다.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미국의 유명한 푸코 연구가 폴 레비노우.


▶ 조르쥬 뒤메질이 1984년 6월 누벨 옵세르바퇴르에 쓴 푸코 조사(弔辭).


▲ 아버지, 누이와 함께 스키장에서


▲ 1944년 푸아티에의 고등사범준비반(Hypokh gne) 시절. 제일 위쪽에 서있는 사람이 미셸 푸코


▲ 생-스타니슬라스 고교 3학년때의 학생기록부, 1942-1943학년도.


▲ 푸아티에 앙리 4세 고교 초등부 6학년 시절. 뒷줄 왼쪽에서 다섯 번째가 미셸 푸코, 1935-1936학년도


▲ 1966년 <말과 사물>이 나온 직후의 푸코.


▲ 1972년 2월, 피에르 오베르네 사망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며. 푸코의 옆에 있는 사람(사진의 오른쪽 제일 아래)이 장 주네이다.


▲ 1972년 11월 27일, 이민자를 지지하는 데모를 벌이는 푸코(마이크를 든 사람).
그의 앞에 사르트르의 모습이 보인다.


▲ 1972년 1월 18일, 미셸 푸코는 알렝 조베르, 클로드 모리악, 장-폴 사르트르, 미셀 비앙, 질 들뢰즈, 다니엘 드페르 등과 함께 방돔 광장에 있는 법무부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사진 한 중간의 약간 후면 왼쪽이 푸코, 그의 옆이 사르트르).


▲ 1981년 12월 22일, 파리의 오페라 극장에서 열린 폴랜드 국민을 지지하는 집회.푸코의 옆에 있는 여자가 배우 시몬느 시뇨레.


▲ 1978년 1월, 베를린의 한 집회에서.


▲ 1983년 자기 집 발코니에서 파리 시내를 내려다 보며.


▲ 1983년 자기 서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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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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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말도 많고, 탈도 많고... 그런 이야기들을 듣으면, 개인적으로 대우에 잠깐 다닌것때문이 솔직히 어떻다고 판단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물론 제가 긍정적인 면을 본다거나 같은 소속에 있었기 때문에 감정적으로 대할수도 있는 문제겠지요... 암튼 그런 문제는 각설하고...
어제 책을 정리하다가 책장에서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그래 간만에 한번 읽어보자라고 생각하고 다시 한번 대충 훓어봤는데... 이 책을 처음본것이 아마 재수하던 시절에 학원에 왔다갔다하면서 156번 버스 안에서 읽던 기억이 납니다... 암튼 그당시에 신선한 충격으로 저에게 다가왔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마 처음이였을껍니다... 저에게 꿈을 가져라.. 라고...
그동안 저에게 주위사람들이 이런 말을 해 준 적도 없었었고... 책도 거의 읽지 않았던 시기였으니까요...
세상이라는것이 그냥 고등학교 졸업하면 대학가고, 군대갔다와서 복학해서 졸업하고, 취직하고, 결혼하고, 애낳고... 그런건줄로만 알았던 19살의 재수생에게는 이런 세상도 있구나라는 감동을 받았던것 같습니다...
그때가 90년이니까... 벌써 15년이라는 세월이...-_-;;
그때 받았던 감동과 희열을 가지고 15년을 살아왔다면... 이라는 생각을 잠시 해봅니다... 부질없는 생각을...
그리고... 지난 일은 지난 일이고... 앞으로 다시 그때 받았던 감동과 충격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 가려합니다...



<도서 정보>제   목 :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저   자 : 김우중
출판사 : 김영사
출판일 : 1989년 8월
구매처 : 서점
구매일 :
일   독 : 1990년
재   독 : 2005/8/12
정   리 :

<이것만은 꼭>
꿈! 노력! 단련! 포부! 끈기! 계발!


<책속으로>젊은이는 꿈을 꾸어야 한다. 역사는 꿈꾸는 사람의 것이다.
꿈이 있는 사람, 꿈을 키우는 사회, 꿈을 공유하는 민족만이
세계사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젊은이가 꾸는 꿈은 순수해야 한다.
증류수처럼 맑아야 한다. 또 그 꿈은 원대해야 한다.
옹졸하고 조잡한 꿈은 젊은이의 몫이 아니다.

돈은 다시 벌 수 있지만, 시간은 다시 벌 수 없다

남을 도우면 다른 남에게 도움을 받게 되고, 그 선행은 더 커져, 자기에게 돌아온다.

모험없는 기회없고, 고통없는 성공없다.

아버지가 근심하지 않음은 자식이 효도하기 때문이요, 남편이 번뇌가 없는 것은 아내가 어질기 때문이다.

인간의 참된 행복은 인간상호간에 진실한 신뢰와 우정과 사랑과 존경같은 것으로 이루어 나가는 것이다.

친구란 좋은 것이다. 그리고 오래된 친구일수록 더욱 좋은 것이다. 아무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속사정을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가 친구이다. 그런 친구가 한 명도 없다면 그 사람은 참으로 불행한 사람이다. 젊은 시절에는 할 일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반드시 해야할 일인 좋은 친구를 만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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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웨어 영업 노하우 - SE를 위한 제안서 작성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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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사업을 시작한다고 했을때니까... 2000년도에 산것 같은데... 밑줄은 쫙쫙 거있는것이 보기는 2번정도 본것 같은데...
그 당시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SW라는 부분에 대한 특화된 영업책이 전무한 상황에서 기쁜 마음에 샀는데... 별 도움이 안되는듯...
그래서 그런지 아직까지 미정리 상태...
오늘 볼 일이 있는 겸에 정리하기로...
그나저나 2번을 봐도 정리를 안해놓으니 내용이 기억이 안남... 앞으로는 꼬박꼬박 정리를 해야겠습니다...
정리를 하다보니까... SW 영업 노하우라기 보다는 SW 영업을 하기 전에 필요한 제안서를 작성하는 실무 지침서의 내용임...
차후 제안서를 작성할 필요가 생길때 다시 찾아 볼것!



<도서 정보>제   목 : 소프트웨어 영업 노하우 - SE를 위한 제안서 작성법
저   자 : 카네꼬 노리히꼬/민경훈
출판사 : 비.북스
출판일 : 1995년 6월
구매처 : 교보문고
구매일 : 2000년
일   독 :
재   독 :
정   리 : 2005/8/17

<이것만은 꼭>



<정호의 정리>
거절당한 때부터 영업은 시작된다.

기록에 남는 선수(제안서)보다 기억에 남는 선수(제안서)가 되어라!

할 수 없다라는 말이 입에서 나올려고 하면 ... 라면 할 수 있습니다.로,
잘 모르겠습니다라는 말은 조사해서 연락드리겠습니다로 말하는 습관을 바꾸자

문장을 작성하는 수순
-쓰려고 하는 문장의 목차를 작성한다
-쓰려고 하는 문장에 관한 키워드를 가능한한 많이 끄집어낸다
-생각해 낸 키워드를 목차의 중심에 넣는다. 목차에 들어가지 않는 키워드는 버리거나 목차를 수정해서 넣도록 한다.
-키워드를 부풀려서 문장을 만든다. 전체적인 균형을 생각해서 수정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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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머 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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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아이의 관점에서 바라 본 알수 없는 신비감에 싸인 좀머씨를 바라보는 이야기...
꼬마가 좀머씨를 본적은 많지만 특별한 추억을 가지게 된것은 세번이다. 비오는 날 차안에서, 자살하려고 나무위에 올라가서, 호수속으로 들어가 버리는 마지막의 좀머씨의 모습...
인터넷을 찾아보니... 뭐.. 이 이야기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들도 있는것 같은데... 난 그냥 재미있게.. 어떤 한 아이의 이야기를 들은것 같습니다. 그리고 내 주위에 좀머씨가 누구였는지도 생각해보게 됩니다...
어릴때 거지차림으로 돌아다니는 미친아저씨... 지금도 동네를 지나가다보면 계속 마주치는 정체불명의 할머니, 할아버지들...
아무튼 어떻게 살든지간에 좀머씨처럼 살다가 간다는것은 너무 서글픈 일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드는 이야기였습니다만...
철부지 꼬마아이의 행동이 너무 귀엽다는 쪽으로 자꾸 생각이 드네요...^^;;

『좀머 씨 이야기』 장 자끄 상뻬 그림/파트리크 쥐스킨트 저 | 열린책들 | 1999년 12월
텅 빈 배낭을 짊어지고, 길다랗고 이상하게 생긴 지팡이를 손에 쥐고 뭔가 시간에 쫒기는 사람처럼 잰 걸음으로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묵묵히 걸어다니기만 하던 좀머 씨는 어린 소년의 마음속에 깊이 각인되며 꿈속에까지 나타나 궁금증을 잔뜩 불어넣어 주는데..... 그 어린 소년이 더 이상 나무를 탈 수 없게 되었을 때, 수수께끼 같은 좀머 씨는 사라져 버린다. 한 소년의 눈에 비친 이웃 사람 좀머 씨의 기이한 인생을 담담하면서도 섬세한 필치로 그려 나간 한 편의 동화와도 같은 소설.

<도서 정보>제   목 : 좀머 씨 이야기
저   자 : 장 자끄 상뻬 그림/파트리크 쥐스킨트 저
출판사 : 열린책들
출판일 : 1999년 12월
구매일 :
일   독 : 2005/8/22
재   독 :
정   리 :

<이것만은 꼭>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순 없잖아.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 둬야지.
한줄기 연기처럼 가뭇없이 사라져도 빛나는 불꽃으로 타올라야지
묻지마라 왜냐고 왜 그렇게 높은 곳까지 오르려 애쓰는지 묻지를 마라.
고독한 남자의 불타는 영혼을 아는 이 없으면 또 어떠리.



<미디어 리뷰>
텅 빈 배낭을 짊어지고, 길다랗고 이상하게 생긴 지팡이를 손에 쥐고 뭔가 시간에 쫒기는 사람처럼 잰 걸음으로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묵묵히 걸어다니기만 하던 좀머 씨는 어린 소년의 마음속에 깊이 각인되며 꿈속에까지 나타나 궁금증을 잔뜩 불어넣어 주는데..... 그 어린 소년이 더 이상 나무를 탈 수 없게 되었을 때, 수수께끼 같은 좀머 씨는 사라져 버린다. 한 소년의 눈에 비친 이웃 사람 좀머 씨의 기이한 인생을 담담하면서도 섬세한 필치로 그려 나간 한 편의 동화와도 같은 소설.


파트리크 쥐스킨트
단 한 장의 사진으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여린 얼굴. 가느다란 금발에다 유행에 한참이나 뒤떨어진 낡은 스웨터 차림의 남자. 사람 만나기를 싫어해 상 받는 것도 마다하고, 인터뷰도 거절해 버리는 기이한 은둔자.
이 사람이 바로 전세계 매스컴의 추적을 받으면서도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이다

젊은 시절부터 여러 편의 단편을 썼으나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한 예술가의 고뇌를 그린 남성 모노드라마 『콘트라베이스』가 〈희곡이자 문학 작품으로서 우리 시대 최고의 작품〉이라는 극찬을 받으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후 냄새에 관한 천재적인 능력을 타고난 주인공 그르누이가 향기로 세상을 지배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 『향수』, 조나단 노엘이라는 한 경비원의 내면 세계를 심도 있게 묘사한 『비둘기』, 평생을 죽음 앞에서 도망치는 별난 인물을 그린 『좀머 씨 이야기』 등의 중·장편 소설과, 단편집 『깊이에의 강요』 등을 발표하면서 전세계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이러한 대대적인 성공에도 아랑곳없이 쥐스킨트는 모든 문학상 수상도 거부하고 사진 찍히는 일조차 피하고 있다.

그러나 천성적으로 우울하고 소심한 이 언어의 연금술사도 친구들 사이에 있을 때는 아이러니컬한 유머도 구사하고 적절하게 요점을 지적하는 실력을 발휘하기도 하며, 포도주를 몇 잔 마시거나 하면 피아노를 연주하기도 한다.

그의 근작인 『로시니 혹은 누가 누구와 잤는가 하는 잔인한 문제』는 레스토랑 〈로시니〉에서 하룻밤 사이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해프닝을 비극적이고도 코믹하게 다루고 있다.

이 작품은 독일의 영화 감독 헬무트 디틀과 함께 작업한 시나리오로, 영화화되어 1996년 독일 시나리오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책속으로>
처음에 나는 아저씨가 신발을 신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물이 아저씨의 장화 위까지 차 있었다. 둑에서 몇 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등은 나를 향하고, 산 너머에 여전히 남아 있던 마지막 노르스름한 햇빛이 한 줄기 비치고 있는 반대편 둑이 있는 곳을 바라다보고 있었다. 아저씨는 그곳에 박아 놓은 말뚝 같았으며, 약간 구부러진 지팡이는 오른 손에 들고 밀짚모자는 머리에 쓰고 있는 모습이 호수의 환한 수면에 검은색 실루엣처럼 보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아저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발씩 한 발씩 발걸음을 떠어놓으며 세 번째 발걸음을 떼어 놓을 때마다 지팡이를 앞으로 옮겨 찍고, 뒤쪽을 단호히 물리치면서 호수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마치 땅 위를 걷고 있는 것처럼 목적지를 향한 아저씨 특유의 고집스러운 성급함으로 호수 한가운데를 향하여 서쪽으로 반듯하게 걸어 나갔다.--- pp. 111-112
올림 바 건반을 쳐다보던 내 얼굴이 하얗게 질려 버렸다. 그 건반의 앞쪽 끄트머리에 미스 풍켈 선생님이 재채기를 할 대 콧털에 붙었다가 그 곳을 훔쳐낼 때 둘째 손가락으로 옮겨 붙어 크기가 손톱만하고, 굵기는 거의 연필 굵기만하며 벌레처럼 휘어진데댜가 녹황생으로 영롱하게 빛나기조차 하는 끈적끈적한 코딱지가 붙어 있었던 것이었다.

단 한 장의 사진으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여린 얼굴. 가느다란 금발에다 유행에 한참이나 뒤떨어진 낡은 스웨터 차림의 남자.사람 만나기를 싫어해 상 받는 것도 마다하고, 인터뷰도 거절해 저리는 기이한 은둔자. 이 사람이 바로 전세게 매스컴의 추적을 받으면서도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이다.--- p.77, 작가소개
오래 전, 수년, 수십 년 전의 아주 오랜 옛날, 아직 나무타기를 좋아하던 시절에 내 키는 겨우 1미터를 빠듯이 넘겼고, 내 신발은 28호였으며, 나는 훨훨 날아다닐 수 있을 만큼 몸이 가벼웠다. 정말 거짓말이 아니었다. 나는 그 무렵 정말로 날 수 있었다. 적어도 거의 그렇게까지 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나니 좀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 당시 내가 진짜로 그럴 각오를 하고 제대로 실행에만 옮겼었더라면 실제로 몸을 날릴 수 있는 능력이 내게 있었던 것처럼 생각되었다…….
--- p.7
'어서 타시라니까요,글쎄! 몸이 흠뻑 젖으셨잖아요! 그러다가 죽겠어요!'

그 말에 아저씨가 우뚝 섰다. 내가 보기에 그는 바로 '죽겠어요'라는 말에서 빳빳하게 굳어지며 멈춰 서는 것 같았다.(중략)

'그러니..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 p.35
사람들이 좀머 아저씨네에 대해서 특히 <좀머 씨>에 대해서 거의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지만, 사실은 근방에서 제일 많은 사람들이 <좀머 씨>를 알고 있으리라는 주장에는 충분한 근거가 있었다. 호수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적어도 60킬로미터 내에서는 남자든 여자든 아이든 심지어 개까지도 늘 걸어다니기만 했던 좀머 아저씨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이른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좀머 아저씨는 그 근방을 걸어다녔다. 걸어다니지 않고 지나는 날이 1년에 단 하루도 없었다. 눈이 오거나, 진눈깨비가 내리거나, 폭풍이 휘몰아치거나, 비가 억수로 오거나, 햇빛이 너무 뜨겁거나, 태풍이 몰아치더라도 좀머 아저씨는 줄기차게 걸어다녔다. 바다에 쳐놓은 그물을 거두려고 새벽 4시에 배를 타고 일을 나가던 어부들이 해가 뜨기도 전에 집을 나서던 그를 만나기가 일쑤였다고 한다. 그렇게 나간 그는 달이 하늘 높이 떠 있는 늦은 밤에야 집으로 돌아오곤 하였다. 그가 돌아올 때쯤 그가 하루 종일 걸어다닌 길은 엄청난 거리가 되었다.호수의 주변을 한 바퀴 돌면 약 40킬로미터쯤 되었는데 그 거리를 하루에 걷는 것은 그에게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루에 두세 번 군청 소재지까지 갔다 오기도 하였는데 그러면 갈 때 10킬로미터, 올 때 10킬로미터나 되는 거리가 좀머 아저씨에게는 아무 문젯거리도 되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가 아침 8시에 여전히 잠에서 덜 깬 모습으로 학교에 갈 때면 벌써 몇 시간 전부터 걸어다니고 있는 기운찬 모습의 그와 종종 마주칠 수 있었다. 점심때쯤 지친 발걸음으로 집을 향해 갈 때면 어느새 그가 나타나 활발한 걸음으로 우리들을 앞서서 걸어가곤 하였다. 그리고 저녁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 창문 밖을 쳐다보면 호숫가에 그의 깡마른 모습이 그림자처럼 나타나 서둘러 앞으로 걸어가고 있는 것을 나는 볼 수 있었다.

그는 쉽게 식별이 되는 사람이었다. 거리가 아무리 멀어도 다른 사람과 전혀 혼동이 되지 않았다. 겨울이면 그는 검은색에 폭이 지나치게 넓고 길며 이상하게 뻣뻣해서 걸음을 옮길 때마다 너무 큰 무슨 껍질처럼 그의 몸을 감싸던 외투를 입고 지냈다. 그리고 신발은 고무 장화를 신었고, 대머리 위로는 빨간색 털모자를 쓰고 다녔다. 여름에는 -- 좀머 아저씨의 여름은 3월 초부터 10월 말까지여서 1년 가운데 가장 긴 기간이었는데 -- 까만색 천으로 띠를 두른 납작한 밀짚모자를 쓰고 다녔고, 캐러맬색 린네르 셔츠와 캐러맬색 반바지를 입고 다녔다. 그럴 때면 바지 밑으로 힘줄과 울퉁불퉁한 혈관만이 드러나 보이는 억세고 긴 다리가, 우악스러운 등산화 속으로 가려진 부위를 제외하고는, 우스꽝스럽도록 가는 모습을 드러내 보이곤 하였다. 3월에 다리는 눈이 부시도록 흰빛이었고, 울퉁불퉁한 혈관들은 사잇길이 많은 푸른색 강줄기의 모습처럼 그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하지만 불과 몇주일만 지나면 다리는 꿀과 같은 색으로 변하여 빛을 발하였다. 그리고 가을에는 피부가 햇빛과 바람과 일기 변화로 인해 짙은 밤색으로 변해서 혈관이나 힘줄이나 근육질이 전혀 구별되지 않았고, 다리는 마치 껍질이 벗겨진 호두나무의 울퉁불퉁한 나뭇가지처럼 보였다. 그러다가 그것들은 11월이 되면 긴 바지와 긴 검은색 외투로 가려져서 사람들의 시선을 멀리한 채 이듬해 봄까지 원래의 색깔인 치즈빛 흰색으로 탈색되어 가곤 했다.--- p.16~
사람들은 좀머 아저씨네에 대해서 특히 <좀머 씨>에 대해서 거의 아는 것이 없었지만, 사실 근방에서 제일 많은 사람들이 <좀머 씨>를 알고 있으리라는 주장에는 충분한 근거가 있었다. 호수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적어도 60킬로미터 내에서는 남자든 여자든 아이든 심지어 개까지도 늘 걸어다니기만 했던 좀머 아저씨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이른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좀머 아저씨는 그 근방을 걸어다녔다. 걸어다니지 않고 지나는 일이 1년에 단 하루도 없었다. 눈이 오거나, 진눈깨비가 내리거나, 폭풍이 휘몰아치거나, 비가 억수로 오거나, 햇빛이 너무 뜨겁거나, 태풍이 휘몰아치더라도 좀머 아저씨는 줄기차게 걸어다녔다.--- p.16
내가 어째서 그렇게 오랫동안 또 그렇게 철저하게 침묵을 지킬 수 있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하지만 그것은 두려움이나 죄책감 혹은 양심의 가책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그것은 나무위에서 들었던 그 신음 소리와 빗속을 걸어갈 때 떨리던 입술과 간청하는 듯하던 아저씨의 말에 대한 기억 때문이었다.

『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

나를 침묵하게 만들었던 또 다른 기억은 좀머 아저씨가 물 속에 가라앉던 모습이었다.--- p.120
'그런 것들은 <차를 한 잔 마시세요. 그러는 게 몸에 좋을 거예요>라든가 <의사 선생님, 환자의 상태가 어떤가요? 환자가 이겨낼 수 있을까요?>등의 말들처럼 아무 의미도 없는 쓸데없는 말들이다. 그런 말들은 인간의 삶에서 만들어진 말들이 아니라, 질 나쁜 소설이나 터무니없는 미국영화에서 생겨난 말들이니까 그런 말들을 똑똑히 기억해 두거라!'--- p.36
그러다가 어느 한 순간에 아저씨의 모습은 사라졌다. 밀짚모자만이 동그마니 물 위에 떠 있었다. 그리고 무지하게 길게 느껴지던 30초 혹은 1분이 지난 다음 몇 개의 물방울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을 볼 수 있었을 뿐 더 이상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밀짚모자만이 아주 천천히 남서쪽을 향해 떠내려 가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어둑어둑한 원경으로 사라지기 전까지 오랫동안 그것을 쳐다보았다.--- p.115
<이게 올림바야. 이게 올림 바라고...! >그리고는 선생님이 옷 소매 끝에서 손수건을 꺼내들고 코를 풀었다.

올림 바 건반을 쳐다보던 내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그 건반의 앞쪽 끄트머리에 미스 풍켈 선생님의 재채기를 할 때 코털에 붙었다가 그 곳을 훔쳐낼때 둘째 손가락으로 옮겨 붙었다가, 둘째 손가락에서 올림 바 건반으로 옮겨 붙어 크기가 손톱만하고, 굵기는 거의 연필굵기만하며, 벌레처럼 휘어진 데다가 녹황색으로 영롱하게 빛나기조차 하는 끈적끈적한 코딱지가 붙어 있었던 것이다.--- 2002/06/08 (lyu630)
... 그것은 뭔가 고통스러운 신음에 가까웠고, 홀가분해지고 싶은 갈망과 절망이 엉켜서 가슴에서부터 배어 나오는 깊고 참담한 소리였다. 고통으로 괴로워 하는 중환자가 내는 끙끙 앓는 소리 같이 머리카락이 빳빳하게 서도록 만든 그 애절한 신음 소리는 아저씨를 홀가분하게 해준다든가, 아저씨에게 안식을 준다든가, 단 일 초라도 아저씨를 쉬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저씨는 금방 다시 몸을 추스리며 일어났다.

그리고 배낭 속을 뒤적이다가 허겁지겁 버터 빵을 꺼내 들더니 납작한 물병도 꺼내고, 빵을 한 입 베어 물 때마다 마치 적이 숲에 깔려 있기라도 하는 듯, 혹은 어떤 포악한 미행자가 있어서 그 사람과 아저씨가 떨어져 있는 거리가 얼마 되지 않으며, 그 간격이 점점 좁혀지는 상황이어서 언제라도 그 사람이 그 자리에 나타나기라도 할 듯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사방을 자꾸 살피며 빵을 먹었다. 아니 먹었다기 보다는 마구 구겨서 입 속으로 그것들을 밀어 넣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빵을 다 먹어치운 뒤 물병의 물도 한 번에 입 안으로 털어 넣었다. 그런 다음 몹시 허둥대며 허겁지겁 떠날 채비를 했다.--- pp.97-98
<이게 올림바야. 이게 올림 바라고...! >그리고는 선생님이 옷 소매 끝에서 손수건을 꺼내들고 코를 풀었다.

올림 바 건반을 쳐다보던 내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그 건반의 앞쪽 끄트머리에 미스 풍켈 선생님의 재채기를 할 때 코털에 붙었다가 그 곳을 훔쳐낼때 둘째 손가락으로 옮겨 붙었다가, 둘째 손가락에서 올림 바 건반으로 옮겨 붙어 크기가 손톱만하고, 굵기는 거의 연필굵기만하며, 벌레처럼 휘어진 데다가 녹황색으로 영롱하게 빛나기조차 하는 끈적끈적한 코딱지가 붙어 있었던 것이다.--- 2002/06/08 (lyu630)
... 그것은 뭔가 고통스러운 신음에 가까웠고, 홀가분해지고 싶은 갈망과 절망이 엉켜서 가슴에서부터 배어 나오는 깊고 참담한 소리였다. 고통으로 괴로워 하는 중환자가 내는 끙끙 앓는 소리 같이 머리카락이 빳빳하게 서도록 만든 그 애절한 신음 소리는 아저씨를 홀가분하게 해준다든가, 아저씨에게 안식을 준다든가, 단 일 초라도 아저씨를 쉬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저씨는 금방 다시 몸을 추스리며 일어났다.

그리고 배낭 속을 뒤적이다가 허겁지겁 버터 빵을 꺼내 들더니 납작한 물병도 꺼내고, 빵을 한 입 베어 물 때마다 마치 적이 숲에 깔려 있기라도 하는 듯, 혹은 어떤 포악한 미행자가 있어서 그 사람과 아저씨가 떨어져 있는 거리가 얼마 되지 않으며, 그 간격이 점점 좁혀지는 상황이어서 언제라도 그 사람이 그 자리에 나타나기라도 할 듯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사방을 자꾸 살피며 빵을 먹었다. 아니 먹었다기 보다는 마구 구겨서 입 속으로 그것들을 밀어 넣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빵을 다 먹어치운 뒤 물병의 물도 한 번에 입 안으로 털어 넣었다. 그런 다음 몹시 허둥대며 허겁지겁 떠날 채비를 했다.--- pp.9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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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권 - 술 권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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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모르는 아내의 입장에서 바라 본 세상을 원망하며 술을 마시는 남편을 바라 보며, 느끼는 심정과 대화하는 이야기...
결혼은 한지 오래됬지만 공부를 한다고 유학을 다니다가 돌아와서는 세상을 원망하며 술로 연명하는 남편을 바라보며... 남 얘기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본인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무슨 이유로 술을 마시던간에... 그것을 바라보는 제삼자의 입장에서는 술꾼으로 밖에 보일 수 밖에 없구나라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다른 예로... 어떤 사람이 무슨 사정이 있어서 허구한 날에 회사를 지각하게 되지만... 날마다 이런 저런 핑계를 댄다고 합시다... 물론 본인은 어쩔수 없다라고 생각하겠지만... 남들이 그 사람의 지각한 사정을 항상 기억해주고 이해해 줄수는 없을껍니다... 남들이 그에 대해서 생각하는것은 단지 하나... 그 인간은 항상 늦는다... 라는 기억만을 간직할뿐...

그리고 주인공이 처음 술을 마시고 머리가 아파서 밤에 흐느껴 우는 모습을 보면서... 재수할때 생각이 납니다... 그전까지는 거의 술을 먹지 않았던 제가 불광역 4거리에 있는 신대명 독서실에 다니고 있을땐데... 그때 장수생이던 원근이형과 다른 형들 몇명과 재수생 몇명 그리고 고3 몇명이서 근처 투다리에서 백일주를 마시고 독서실에 들어와서 자는데... 머리가 아파 죽는줄 알았던 기억이 납니다... 고3중에 한 놈은 내가 다시 술을 마시면 인간이 아니야라고 하던 놈도 있었는데... 아마.. 국민대 법대에 들어간것 같은데... 이름은 기억이 안나네요... 암튼 그때 그 사람들이 다시 기억에 떠오르면서... 예전에 우연히 지하철역에서 만나고 한번도 본적이 없는 원근이형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도서 정보>제   목 : 술 권하는 사회
저   자 : 현진권
출판사 :
출판일 : 1934년
구매일 :
일   독 : 2005/8/22
재   독 :
정   리 :

<이것만은 꼭>



<미디어 리뷰>
현진건作 '술권하는 사회'의 남편에게
-아직도 풍진 세상에서
 ◇현진건 가족. 사진 왼쪽이 현진건이다.
선생님, 오랜만입니다. 댁내 무고하시고, 기체후일향만강(氣體候一向萬康) 하시온지요. 80년 전의 조선에, 그것도 소설 속의 인물인 선생님께 편지를 쓰자니 이 후학은 그저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처음 선생님을 뵌 것이 1989년의 일이었습니다. 87년의 6월 항쟁과 88년의 올림픽을 치르고 지켜보며, 저는 다소 격앙된 기분으로 선생님을 만났었지요. 그해의 봄, 선생님은 식민지 조선의 고뇌하는 지식인이셨습니다.

공부가 무언지는 몰라도 그것이 도깨비 부자 방망이 같은 것이라 믿는 아내가 계셨고, 선생님은 도쿄에서 대학을 마치고 돌아온 직후셨지요. 제가 본 선생님은 늘 흐느끼거나 취해 계셨습니다.

삼경도 사경도, 선생님의 주사 앞에선 그저 백주대낮이 아니었던지요. 염려에 또 기우에 저는 늘 침이 마르는 듯 하였습니다. 누가 술을 권했나, 아내의 책망에 선생님은 말씀하셨지요. 이 사회가, 조선이란 사회가 술을 권한다고. 과연 식민지의 삶이란 그런 것이 아니었겠느냐며, 비틀대며 다시 집을 나서는 선생님의 모습을 보며 저는 오래 상념에 젖고는 했습니다.

그것이 15년 전의 일입니다. 물론 선생님이 집을 나서던 그날을 기준하면 세월의 강은 어느덧 80년을 흐르고 흘렀습니다. 선생님, 그만큼 이곳에는 또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선생님의 조선은 오래 전에 해방되었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그후 저희는 남과 북으로 갈라졌고, 개중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 또 자유진영 우방으로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했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란 것이 있습니다. 간략히 말씀드려 이 지구촌 선진국들의 모임입니다. 저희는 그 회원인 30개국의 일원이며, 그중 11위의 경제 순위를, 또 21위의 국가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마치 하느님의 보우처럼, 식민지였던 선생님의 조선은 이렇듯 눈부시게 성장하고 약진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저희는 지금도 술을 마시고 있습니다.

이 자주독립국가에서, 이 눈부신 선진과 경제 발전 속에서 저희는 오늘도 술잔을 기울입니다. 올해에는 29억병의 소주를 마셨습니다. 즐거워서 마신 게 아닙니다. 괴로워서, 이 삶이 팍팍하고 힘들어서 마시는 술입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사는 게 너무 힘듭니다. 독립을 하고 독재를 이겨내고, 혼신을 다 바쳐 경제를 일굴수록 삶은 더더욱 흔들리고 고단합니다. 이럴 수가, 내리막에선 브레이크도 듣지 않습니다. 얼마나 더 큰 부귀와 영화를 누려야, 이 희망이 족할까요.

이 풍진 세상에서, 그런 이유로 저는 오늘 선생님을 뵙고 싶습니다. 선생님, 술 한잔 어떠신지요. 이유야 물론 오늘도 여전히 이 사회가 술을 권하기 때문입니다. 마시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습니다. 다행히 청진동에는 몇 채의 해장옥들이 남아 있습니다. 그쪽으로 모시겠습니다. 두꺼운 외피를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바람이 찹니다. 식민지도 아니건만, 마치 80년 전의 식민지처럼 바람은 더욱 차고 서늘합니다. 오시다 본 건 농민집회고요, TV 속의 저 아인 효리입니다. 예쁘죠? 자, 한 잔 받으십시오. 술값은 제가 내겠습니다.

박민규 소설가



   바느질을 하던 아내는 바늘에 찔려 화를 낸다. 새벽 한 시가 되었는데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
7, 8년전 남편이 중학을 마치고 결혼하였고 결혼하자 곧 남편은 동경으로 가 대학을 마치고 돌아왔으니 같이 있을 시간은 거의 없었다. 괴로와도 남편이 돌아오면 공부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그것이 도깨비 부자 방망이 같은 것이어서 무엇이든지 다 얻고 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비단옷 입고 금지환 낀 친척들도 부러워하지 않았고 도리어 경멸하였다.
   남편이 돌아 왔으나 반대로 집안 돈을 가져다 쓰며 분주히 돌아다니기만 하였고 그렇지 않으면 책을 읽든지 밤새 글을 썼다. 때때로 한숨을 쉬고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 찾으며 몸은 나날이 축이 났다.
   어느 날 새벽 잠결에 눈을 떴을 때 흐느껴 우는 남편을 볼 수 있었고 두어 달 후에는 술냄새를 풍기며 밤늦게 돌아오기 일쑤였다. 오늘 밤에도 그런 남편을 기다리다 바늘에 찔린 것이다.
   별 환상을 다하며 기다리고 있을 때 남편이 문 열라는 것 같아 뛰어나가 보았더니 아무도 없었다. 바람소리였다. 새벽에 잠시 잠이 들었다가 함멈이 부르는 소리에 깨어보니 남편이 마루에 누워 있었다. 가까스로 방안으로 들어오게 하여 옷을 벗기다, 벗기지 못하고 "누가 술을 권했나"하고 짜증을 내는 소리를 들은 남편과 이야기를 하게 되고 부조리한 사회가 나에게 술을 권한다는 말을 해도 배우지 못한 아내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술 먹는 것에 대한 투정을 부리게 되자 남편은 말상대가 되지 않는 아내를 뿌리치며 비틀비틀 나가 버린다.
   아내는 모든 것을 잃었다는 듯이 "가버렸구먼, 가버렸어" 하며 밤안개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 몹쓸 사회가 왜 술을 권하는고"하며 절망적인 어조로 말한다.

● <술 권하는 사회> 내용 정리    
*
 갈래 : 단편소설
* 배경 : 시간 - 일제 시대(1920년대)
             공간 - 도심지
* 시점 : 3인칭 작가 관찰자 시점
* 경향 : 사실주의
* 주제 : 일제 치하의 부조리한 사회에 적응 하지 못하는 지식인의 좌절과 고뇌

● 등장인물
*
남편 : 경제적으로 몹시 무능한 지식인. 일제 치하의 사회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아내에게서도 이해 받지 못해 심한 갈등과 방황을 겪는 인물
*
아내 : 결혼 후 7-8년 간이나 늘 혼자서 가난을 참고 견디지만, 지식인인 남편을 이해하지 못해 괴로워하는 평범한 아내

● <술 권하는 사회> 이해하기
현진건의 데뷔작은 1920년에 발표된 <희생화>이지만, 그가 작가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된 것은 다음해에 발표한 <빈처>와 <술 권하는 사회>부터였다. <빈처>에서 남편인 '나'는 공부를 하러 중국, 일본으로 갔다가 방랑의 세월만 보낸 후 귀국한다. <술 권하는 사회>의 주인공 남편 역시 일본에서 공부하고 빈손으로 돌아온다. 작가 현진건은 상해 호강 대학에서 독문학을 공부하고 귀국한 다음 이 소설들을 지었는데, 작가의 직접적 체험이 짙게 배어 있는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겠다.
이 작품은 "그 몹쓸 사회가 왜 술을 권하는고!" 하는 아내의 말로 끝을 맺고 있다. 이 말은 남편이 아내를 버리고 나가는 이유를 압축적으로 표현해 낸 것이며, 아내의 절망과 지적 수준을 드러내고 있다. 남편은 그 무렵의 식민지 지식인의 대표적인 인물이라 하겠고, 그와 상대되는 아내는 그 무렵의 온순하기만하고 우직한 국민을 대표한 인물로 보여진다. 지식인 남편은 봉건적 사고를 지닌 무지한 아내를 이해시키는데도 실패하고 사회에도 적응해 나가지 못한다. 모순과 부조리를 인식하기는 하지만 무엇이 그 같은 부조리를 만드는 실질적 힘인지에 대해서는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저 모순과 부조리에 저항하는 방식으로 울분을 터뜨리거나 쉽게 좌절하고 마는 인물이다. 아내는 그러한 남편의 고통을 분담하려고 가난도 참고 견디지만, "사회가 술을 권한다."는 남편의 말에 '사회'를 '요리집 이름'으로 연상해 내는 무지한 여인이다. 어떤 면에서 이러한 아내의 무지가 남편에게 또 한차례 술을 권하는지도 모른다.
결국, 이 작품에서 작가가 표현하려고 한 것은
시대 환경 속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지식인의 고뇌이다. "조선 사회가 나에게 술을 권한다"는 주인공의 탄식은 바로 1920년대의 모든 지식인의 공통된 탄식이요, 우리 민족의 탄식이라 하겠다. <빈처>가 가정을 중심으로 해서 그 고뇌를 그려냈다면, 이 소설은 가정을 중심으로 하되 사회적인 것이 원인임을 간접적으로 나타냈다는 점에서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투시하려고 하는 작가 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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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헨리 - 마지막 잎새 소설 도서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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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마지막 잎새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우연히 접한 오디오북을 들으면서 그냥 시간때우는 생각으로 들으려고 했는데... 왠지 희망을 갖자는 기존의 마지막 잎새의 메세지와는 다르게 듣게 되었습니다...
여자주인공의 입장이 아니라... 마지막 잎새를 그린 노인의 입장에서...
노인은 화가이기는 하지만... 화가일은 거의 하지 않고, 매일 남의 모델을 서서 돈을 받아서 그 돈으로 술을 마시고... 취중에 불후의 명작을 남기겠다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합니다... 마치 저처럼이요..
오늘 이런 저런 생각에 머리가 아픈 하루였습니다... 그러던 중에 저에게 어떤 메세지를 남겨주는 짧은 단편이였습니다...
과연 제가 죽기전에 어떤 불후의 명작을 남길지... 지켜봐 주세요...^^;;


<도서 정보>제   목 : 마지막 잎새
저   자 : O.헨리
출판사 :
출판일 :
구매일 :
일   독 : 2005/8/22
재   독 :
정   리 :

<이것만은 꼭>
언젠가 죽더라도 뭔가 이루어 좋고 죽자!

마지막 잎새
국내도서
저자 : 오 헨리(O. Henry) / 강영길역
출판 : 일신서적출판사 1994.04.30
상세보기



<미디어 리뷰>
O.헨리 (O.Henry, 1862-1910)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그린스버러 출생으로, 본명은 윌리엄 시드니 포터이다. 의사였던 아버지와 문학적 재능이 뛰어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어려서 양친을 잃어 학교 교육을 거의 받지 못한 채 여러 직업을 전전하였다. 그 후 25세에 결혼을 하고 나서 아내의 내조로 주간지를 창간하고 지방 신문에 유머러스한 일화를 기고하는 등 저널리스트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몇 년 후 근무했던 은행의 공금 횡령 사건에 연루되어 3년 동안 감옥 생활을 하게 되었고, 이때부터 단편소설을 집필했다. 결국 교도소 복역이 O.헨리를 따뜻한 휴머니즘과 유머, 애수가 가득한 작품들을 써낸 훌륭한 작가로 탄생시킨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O.헨리는 첫 작품으로 『캐비지와 임금님』을 발표한 우 10년 남짓 작가 활동 기간 동안 대표작인 『마지막 잎새』『크리스마스 선물』등 300여 편의 단편소설을 발표했다.

<책속으로>
'너한테 할 얘기가 있어, 귀여운 아가씨'하고 그녀는 말했다. '베어먼 할아버지가 오늘 병원에서 폐렴으로 돌아가셨단다. 겨우 이틀을 앓으셨을 뿐이야. 첫날 아침, 관리인이 아래층에 있는 그분 방에 가 봤더니, 할아버지가 몹시 괴로워하고 계시더래. 신발과 옷은 흠뻑 젖어서 얼음처럼 차갑구, 날씨가 그렇게 험한 날 밤에 대체 어디를 갔다 오셨는지 아무도 짐작하지 못했어. 그러다가 아직도 불이 켜져 있는 램프와, 언제나 놓여 있는 자리에서 꺼내 온 사다리와 흩어진 화필, 초록과 노랑색 물감을 푼 팔레트를 발견한 거야. 그리구 얘, 창밖으로 저 벽에 있는 마지막 담쟁이 잎 좀 쳐다봐. 바람이 부는데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는 게 이상하지 않니? 아아, 존즈. 저건 베어먼 할아버지의 걸작이란다. 마지막 잎사귀가 떨어진 날 밤, 그분이 저 자리에 그려 놓으셨단다'--- p.

앤시 골리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무엇보다도 평이 나쁜 사람은 삐걱거리는 낡은 안락의자에 번듯이 앉아 있는 골리 자신의 모습이었다. 붉은 벽돌로 지은 곧 쓰러질 듯이 건들거리는 그 빈약한 사무실은 거리......말하자면 베델 읍의 중심가와 같은 평면에 서 있었다. 베델 읍은 블루리지 산맥 기슭의 언덕 위에 있었다. 그 맞은편에는 잇달은 산이 하늘 높이 솟아 있었다. 아득히 아래쪽에는 탁한 커토버 강의 물결이 음울한 골짜기를 따라 누렇게 빛나고 있었다.

6월의 낮은 한창 더웠다. 베델 읍은 후덥지근한 응달 속에서 졸고 있었다. 장사는 정지해 있었다. 너무나 조용해서 의자에 기대앉은 골리의 귀에, '법원의 불한당들'이 포커를 하고 있는 배심원실에서 점수를 계산하는 패조각 소리가 똑똑히 들려왔다. 사무실 뒤쪽의 열어젖힌 문에서 풀이 무성한 빈터를 가로질러 짓밟혀서 굳어진 오솔길이 꼬불꼬불 법원까지 뻗어나가 있었다. 이 오솔길을 밟고 오간 왕복은 골리로부터 그 일체의 소유물을 ㅡ 처음에는 몇천 달러의 유산을 다음에는 해묵은 저택을 그리고 최근에는 그 자신의 자존심과 사내다움의 마지막 한 조각까지 빼앗아버렸다.---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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