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노인이 주변의 지인들과 보낸 편지등을 엮은 책인데.. 대단한 경지에 오르신분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을 사랑하고, 아낄줄 알고.. 문학, 사상등에서도 대단한 자신만의 식견을 가지고 계신듯하다...
전원생활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탐독해도 될듯하고.. 자연을 사랑하면서 그 자연속에서도 이렇게 많은 생각과 느낌을 가지고 산다는것이 부럽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냥 막연하게 도시에 살면서 농촌에 가고싶다라는 생각을 가진 나로서는 그런 생활을 조금이나마 간접적으로 체엄을 하면서 느끼게 되었던 책이였다.
<도서 정보>제 목 :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저 자 : 전우익 저
출판사 : 현암사
출판일 : 1993년 5월
책정보 : ISBN : 8932308675 | 페이지 : 130 | 248g
구매처 : 오디오북
구매일 :
일 독 : 2006/6/17
재 독 :
정 리 :
<이것만은 꼭>
<미디어 리뷰>
저자 : 전우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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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경북 봉화에서 대지주의 손자로 태어남. 일제 시대에 서울로 유학 와 중학을 마치고 대학까지 다님. 당시 대학을 함께 다니던 친구들이 해방 후 정국을 쥐고 흔드는 와중에 참자유인의 꿈을 안고 낙향. '민청'에서 청년운동을 하다가 사회안전법에 연루되어 6년 남짓 수형 생활을 하고, 출소 이후 한동안 주거제한을 당하는 보호관찰자 신세를 지내다가 이제까지 줄곧 고향인 봉화 구천 마을에서 홀로 농사짓고 나무 기르며 살고 있음. 아호는 무명씨라는 뜻의 '언눔'. 소일거리-부들로 자리 엮기. 죽은 나무나 썩은 나무, 집 뜯은 나무의 쓰임새를 곱게 되살려 필통, 연필꽂이, 차받침, 책상, 향꽂이 등을 만들기. 자기가 만든 모든 것을 情人들에게 노나주기. 좋아하는 것-나무, 도연명과 노신, 김용준 선생의 『근원수필』,『체 게바라』에 나오는 아르티아 등. |
관념의 과장이나 감상의 치기 없이 되새기면 되새길수록 맛이 나는 편지글 형식의 수필집. 많지 않은 분량의 글 속에서 품위와 세상사는 지혜를 느낄 수 있다.
<책속으로>
1. 편집자에게 보내는 편지
2. 깊은 산속의 약초 같은 사람/신경림
3. 삶이란 그 무엇인가에, 그 누구엔가에 정성을 쏟는 일
4. 꽁꽁 얼어붙은 겨울 추위가 봄꽃을 한결 아름답게 피운다
5. 물이 갈라지듯 흙덩이가 곡선을 그으며
6. 엄동설한 눈 속에 삿갓 하나 받치고
7. 구경꾼과 구경거리
8. 다양한 개인이 힘을 합쳐 이룬 민주주의
9. 실패를 거울삼고
10. 뿌리 없는 것이 뿌리 박은 것을 이긴다
11. 삶이란 아픔이다
12. 맞고 보내는 게 인생
13. 스님과 노신
14. 한해를 보내면서
잎을 훌훌 털어버리고 엄동을 맞을 비장한 차비로 의연하게 버티고 서 있는 모습이 스님의 모습과 겹쳐 든든하고도 선합니다. 고난의 길을 뚫고 가려면 간편한 몸차림을 하라는 가르침인가요? 해마다 낙엽을 보며 또 엄동에 까맣게 언 솔잎을 보며 느끼는 일입니다. 참 삶이란 부단히 버리고 끝끝내 지키는 일의 통일처럼 느껴집니다. 신진대사가 순조롭게 이루어져야 생명의 운행이 제대로 이루어지는 이치와 같습니다. 가을의 낙엽에서는 버림, 청산을 결행하고, 겨울의 얼어붙은 솔잎에서는 극한의 역경에서도 끝내 지켜야 할 것은 지키라는 것을 온몸으로 가르침을 배운다고 여기면서도, 그게 쉽지 않고 버리기도 지키기도 힘들다는 점만을 알 따름입니다. 그러다 보니 어정쩡하게 목숨만 이어 갑니다. 버릴 줄 알아야 지킬 줄 알겠는데 버리지 못하니까 지키지 못합니다. 느티나무는 가을에 낙엽 진 다음 해마다 봄이 되면 새 잎을 피울 뿐만 아니라 껍질도 벗습니다. 누에를 쳐보니 다섯 번 잠을 자고 다섯 번 허물을 벗은 다음 고치를 짓습니다. 탈피탈각이 없이는 생명의 성장과 성취는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탈피 탈각을 하지 못하면 주검이겠지요. 단풍과 지는 해가 산천을 아름답게 물들이는 것을 보면서 때때로 인생의 마지막을 저렇게 멋지게 마치진 못할망정 추접게 마치지는 말아야 하는데 하고 느낍니다. 사실 마지막이란 일상이 쌓여서 이루어지는 거지 어디서 느닷없이 나타나는 게 아닐진대 삶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끝마침도 제대로 이루어지겠지요. 제대로 이루어진다는 건 자연의 운행과 역사의 과제에 충실한 삶을 사는 건데, 세상의 흐름은 자연과 멀어지고 역사보다는 순간과 개인적인 삶으로 오르라드는 것 같습니다.--- p.20-21 |
스님,종교 교리와 민족 해방, 인간 해방이란 이론도 무슨 씨 비슷한 데가 있지 않습니까? 그 씨를 사람들의 마음속에 심을 때 심어졌는지도 모르게 심어 그 사람이 씨를 싹틔워 키우고 꽃피워 열매 맺게 한다고 느끼곤 합니다. 그러한 것이 진짜 같은데, 요사이 논의들은 큰 나무를 옮겨 심는 것처럼 어마어마하게 커서 가슴에 심기보다는 짊어지고 다녀야 할 판입니다. 그것을 짊어지고 다니느라 사람은 지치고, 이론은 사람들의 등과 다리에서 시들어 버리는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가슴에 심어 기르고 키울 수 있을 만큼 작고 작은 교리와 이론이어야 사람 사이에 씨로 뿌려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씨가 땅에 묻혀 싹을 틔우듯, 사람의 인격과 삶의 일부도 딴 사람에게 묻혀야 한다고 여깁니다.--- pp.65-66 |
사람도 착하기만 해서는 안됩니다. 착함을 지킬 독한 것을 가질 필요가 있어요. 마치 덜 익은 과실이 자길 따 먹는 사람에게 무서운 병을 안기듯이, 착함이 자기 방어 수단을 갖지 못하면 못된 놈들의 살만 찌우는 먹이가 될 뿐이지요. 착함을 지키기 위해서 억세고 독한 외피를 걸쳐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요즘 이런 생각을 했어요.
삶이란 그 무엇(일)엔가에 그 누구(사람)엔가에 정성을 쏟는 일이라고.
그 누구도 참답게 사는 길을 처음부터 단번에 알지는 못한대요.
한평생 그 길을 찾아 걸음을 멈추지 않는 것이 참답게 사는 길이라고 합니다.
인생이란 각자가 평생을 바쳐 스스로의 자화상을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고요.
사람이란 별 것 아닌 것 같아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물건을 어떻게 만나고 다루는지에 따라서 그 사람됨이 이루어지겠지요.
삶이란 그 무엇엔가 그 누구엔가에 정성을 쏟는 일이라고....
사람은 노동을 통해서 사람이 된다고 하는데, 고역은 사람을 삐뚜러지고 잔인하게 만들어 왔다고 생각해요. 노동의 고역에 오랫동안 시달려 온 사람들은 일 자체를 부정합니다. 그래서 고들은 자식들은 일을 시키지 않겠다고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자식들은 사무원,공무원을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일을 변화시켜 노동의 고역(비지깜 흘리며 하는 일)에서 벗어나게 하자는 게 아니고 나와 내 자식만은 일을 시키지 않겠다는 것은 극히 이기주의적인 발상입니다. 일을 변화시키는 일이 생활을 변화시키고 삶의 방식과 태도를 변화시켜 결국은 자신과 세상도 변화시키는 기초가 될 수 있지 않느냐 하고 생각해 봅니다
스님, 봄이 되자 동리 앞 신작로로 관광버스가 뻔질나게 지나 다닙니다. 화사하게 차려입으신 구경군들이 마냥 즐거운 표정으로 주마 대신 고속버스로 간간촌하시며 지나갑니다. 그런데 스님, 이하늘 밑 어디에 과연 구경거리가 있습니까? 그러나 구경꾼에게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과 몸뚱이도 구경거리가 되는가 봅니다. 이리 다듬고 저리 다듬어 좀더 많은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으니까요. 구경꾼이 바로 구경거리 질을 하는 샘입니다
사람이란 별 것 아닌 것 같아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물건을 어떻게 만나고 다루는지에 따라서 그 사람됨이 이루어지겠지요.
때때로 말뚝을 박으며 생각해 봅니다. 나를 어디에 박아야 하냐고. 어떤 땐 환하고 어떤 땐 흔들거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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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겨울도 춥겠지요. 우리는 통계 숫자로 사는 게 아니라, 그해 여름 그해 겨울을 살기에 언제나 그해 겨울과 그해 여름이 가장 춥고 더워요. 덥지 않은 여름이 없고, 춥지 않은 겨울이 없듯이 역사도 수월할 때가 없었을 겁니다.
모두가 함께 저지르고 있으니 그것이 참된것인지 그른것인지
잊을때가 많다. 나이가 들면 초연해지는 것일까? 아니면 유난히
농촌과 자연을 사랑해서 이런 생각을 할수 있었을까?
삼라만상의 축제이고 조상에게 인사 드리는 날이 온갖 말못할
미물과 동물의 제사날이라니...
이것이 한평생 살아가는 데 있어 생겨나는 부조화인가 아이러니인가?
미물을 동물을 아끼고 사랑하고 애써 키워 결국 조상에게 잘
보이려 그 하룻날 모두가 제사날이 되는것이 내가 남에게
잘 보이려하고 잘 살려 하는것이 하루 아침에 죽음으로 물거품
되는거야 매 한가지인것 만 같다.
상차리는데 힘을 쓴 나머지 지쳐서 설거지를 못하는지,
설거지를 시시하게 여겨서 그런지,
저도 설거지를 며칠만에 한 번 합니다만,
그때그때 하는 것이 좋은데도 잘 안돼요.
그런데 음식솜씨는 상차림에 나타나지만
인간의 됨됨이는 설거지에 나타나는것 같습니다.
도장을 새기는데 음각 양각이 있듯,
책을 읽을때도 노상 그럴 수는 없지만
때로는 도장처럼 마음에 새기게 됩니다.
그럴때는 아파서 좀 읽다 덮고
그 통증이 사라져야 다시 읽기 시작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