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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머니 콜렉터 FILA 휠라코리아 윤윤수, 고래를 삼킨 새우가 되다!
  3. 신빈곤층 실태보고 추락하는 사람들
  4. 돈이 보인다 - 20대에 돈벼락? 대학생 사장님들
  5. 불멸의 이순신 - 23전 23승 이겨놓고 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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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환, 나사왕국을 세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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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보이는 그림이 직렬나사라는것인데 보통 볼트, 너트라는 개념을 깨버린 나사라고 한다.
이 나사 하나만으로 하루에 매출이 1억이란다..
거기에 최초로 옛날에 콜라나 소주병 두껑을 막는 기계를 만든 사람도 임정환사장이라고 한다.
지금 나이가 칠순인데도 그의 열정은 변함없이 여전하다.

돈을 번것도 번것이지만 성실함과 일에 대한 집중력, 빠르게 시제품을 만들어 내는 모습에서 존경심을 표하게되고,
그가 골프를 치지 않거나, 회사를 상장하지 않는등의 회사를 경영하는 원칙들을 보면서 다시 한번 존경심을 표하게 된다.
이외에도 파트너를 대하는 자세, 필요한 물건은 꼭 팔린다는 자부심등 배울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왠지 모르게 미래산업의 정문술회장이 생각나는 사람이였다.

지금 당장 내가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즉각적이고 머리로도 많이 생각하지만 , 빨리 실행에 옮기는 모습을 배워야겠다.

다만 너무 일에 바쪄서 다른부분에는 신경을 못쓰는부분이 좀 걸리기는 하지만 보기 좋은 모범사례인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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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간 오직 나사만 만들었다

임정환 명화금속 사장(66)은 지난 50년간 오직 나사만 만들어왔다.

한가지 품목으로 5년을 버티기가 어려운 것이 지금의 현실인데 무려 반세기를 단일 아이템으로 견뎌왔다는 건 수수께끼중 수수께끼다.

그러나 이 수수께끼는 뜻밖에도 쉽게 풀린다.

그는 처음엔 건축용 나사를 생산했다.

그 다음엔 자전거용 나사를 만들었다.

환경이 바뀌자 이번엔 자동차용 나사를 만들었고 또 컴퓨터용 나사를 개발해냈다.

현재는 항공기용 나사까지 만든다.

누구라도 경기 시화공단에 있는 명화금속 공장안에 들어가서 첫번째 놓여있는 나사생산기계를 보면 입을 다물지 못할 것이다.

이 자그마한 기계가 1분에 7백개의 직결나사를 쏟아낸다.

1초당 10개 이상의 나사가 쏟아지는 셈이다.

선진국 나사생산기보다 분당 5백개를 더 산출해낸다고 한다.

이 기계는 임 사장이 직접 개발한 것이다.

이 '직결나사 전용생산기' 외에도 임 사장은 지난 50년간 나사기계분야에서만 1백56개의 특허를 개발,획득했다.

그래서 임 사장을 두고 흔히 '나사박사'라고 부른다.

그렇지만 그가 나사박사로 성공하기까지의 역정은 기막힌 드라마다.

1952년 중학교 1학년이던 그는 서울 영등포 상의용사회관 뒤에 있는 고주파라는 엔진공장에 취업했다.

집안이 가난했던 그는 이곳에서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10년간 각종 나사를 만들며 살았다.

일본사람이 경영했던 이 회사는 기계분야에서 높은 기술수준을 갖추고 있었으나 1백여명의 종업원 가운데 학교를 다니는 사람은 임 사장 뿐이었다.

그는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2시간을 걸어 학교를 다녀야 했기 때문에 잠잘 틈이 없었다.

이때부터 잠을 4시간 이하로 자기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하루 4시간 이상 잔적이 한번도 없다고 얘기한다.

그는 요즘도 잠을 자다가도 꿈에 독특한 나사를 개발할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순간적으로 벌떡 일어나 메모하고 도면을 그린다.

이처럼 그의 머릿속은 항상 제품개발에 쏠려있다.

얼마전 임 사장은 안산에 있는 저수지에 낚시를 하러가서 낚시찌를 보다가 갑자기 참신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낚시찌처럼 쉽게 박히면서 절대 빠지지 않는 그런 나사를 만들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난 것이다.

그는 당장 낚시도구를 접어들고 공장으로 향했다.

이 아이디어를 기초로 그는 떨어져 있는 두 개의 물체를 나사 하나로 고정시킬 수 있는 나사를 개발해냈다.

50년간 쌓아온 노하우로 개발해낸 '블라인드 리벳'이란 이 나사는 현재 시화공장에서 연간 4억개씩 생산되고 있다.

이 제품은 성능과 정교성이 뛰어나 독일의 에조트,영국의 에코파스트 등으로부터 주문이 계속 밀려오는 중이다.

또 중국에서 건축붐이 일어나면서 건축용 나사에 대한 주문도 쇄도해 이 회사 2천8백평 규모의 공장은 하루 24시간 나사를 쏟아내는 소리로 가득하다.

이치구 전문기자
 
자료원:한국경제

꿈속에서도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 명화금속, 임정환 사장

역경이 클수록 강해지지요. 지금과 같은 불황기가 바로 강해질 수 있는 좋은 기회일 수 있습니다.” 평생 나사만 만들고, 나사만 생각하며 살아온 임정환(67) 명화금속 사장에게는 ‘나사 공화국 대통령’이라는 별칭이 따라다닌다.

“강한 기업은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남는다”고 강조하는 그에게 “회사가 어려운 이유는 경기가 나빠서가 아니라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경기가 어려울 때 깊이 생각하면 그런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는 “기업은 환경이 어려운 곳, 어려운 시기에 해야 한다”고까지 말한다.

다 른 기업들은 경기가 나쁘다며 울상을 짓지만 명화금속은 수출도 내수도 좋다. 9월 현재 내수는 1백29억원으로 목표치의 99%를 달성했고, 수출 역시 2백34억원으로 목표치의 94%에 이른다. 외환위기 직후인 98년을 빼면 환경이 어렵거나 좋거나 관계없이 연 평균 15∼20%의 고성장을 지속적으로 달성해 왔다. 그야말로 ‘강한 기업’이 아닐 수 없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

“오직 ‘나사’라는 한가지에만 몰두했습니다. 자나깨나 어떻게 하면 더 좋은 나사를 많이 만들까만 생각했지요. ‘집중력’, 그것이 강해질 수 있는 첫걸음입니다.”

인 생역정을 들여다보면 임사장의 말에 전혀 과장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었던 그가 공장 직공에서 ‘나사 공화국 대통령’의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오직 하나, 나사만 생각하며 평생을 살았기 때문이다.

그 는 1936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났다.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남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인 16세가 돼서야 간신히 초등학교를 졸업했고, 그런 이력을 가진 대부분의 젊은이가 그렇듯 그 역시 다음 해 서울로 올라와 작은 공장의 말단 직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바로 이 ‘첫 직장’이 나사와 관련된 기계 공장이었으니 이 정도 한우물을 판 사람도 흔치 않다. 그가 “나사 인생 50년”이라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말 단 공원에서 ‘나사 대통령’까지. 이 표현 하나가 그의 50년 인생살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이때부터 최고의 자리까지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기 시작했다. 첫 계단은 학교였다. 거칠고 고단한 공장 생활을 하면서도 그는 무려 8년이란 긴 시간을 중·고등학교와 전문대학을 졸업하는 데 바쳤다. 물론 야간이었다. 공장직원 1백명 가운데 야간 학교를 다닌 것은 물론 졸업한 학생은 임사장이 유일했다.

잠을 덜 자는 것 이외는 방법이 없었어요. 누구에게나 똑같은 24시간이었으니까요. 새벽에 보리밥 한 덩어리를 물에 말아 먹고 공장에 가면 기계만이 날 반겼지요. 그때 기계가 따뜻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공장을 마치면 학교로, 그리고 집으로…. 세 시간 이상 잠을 자지 말자고 맹세했지요.”

25세 때인 61년 그는 학교와 공원을 마치고 마침내 젊은 기업인의 생활을 시작했다. 범양금속을 설립해 자신만의 ‘나사인생’을 시작했던 것이다. “돈도 학력도 없던 시절”이었다고 당시를 기억하는 임사장은 “살길은 오직 나사를 잘 만드는 일뿐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도 가난을 물리칠 길은 멀어 보였다. “남이 만들지 못하는 나사를 만들겠다”는 일념은 좋았지만 빛을 보기까지는 10년 이상의 세월이 필요했다. “어떻게 보면 하찮은 물건이라는 것을 잘 안다”고 말한 그는 “좀팽이처럼 자질구레한 짓 좀 그만하라”는 아내 말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는 73년 각종 전자제품 등에 나사를 박고 꼭지를 떼어내는 ‘블라인드 리벳’을 국내 최초로 개발하면서 ‘나사왕’ 등극의 길로 올라섰다. 나사 일을 시작한 지 거의 20년, 사업을 시작한 지 12년이 지난 뒤였다.

이 제품으로 그는 이후 10년 동안 리벳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했다. 이후 경제적으로 상황이 좋아지자 연구 성과도 커졌고 숱한 신제품으로 시장을 섭렵했다.

‘뒤틀린 나사’… 세계 최고

임사장에게 ‘나사왕’ ‘나사 대통령’이라는 별칭이 따라다니는 것도 그가 늘 나사와 함께 살았기 때문이다. 그가 개발해 낸 나사 종류가 8백여종, 나사 관련 특허가 1백80종에 이른다.

언제나 메모지와 펜을 끼고 다니며 이미지가 떠오르면 바로 메모지로 옮긴다. 많은 경우 그 아이디어는 새로운 나사로 드러난다. 심지어 “꿈도 나사꿈만 꾼다”는 그다. 잠자리에서 떠오른 아이디어가 제품화된 적도 여러 번이다.

‘직 결나사’는 그 많은 나사 중에서도 임사장이 자랑하는 최고의 제품이다. 나사의 기능은 본래 두 개의 서로 다른 물건을 하나로 묶는 것이다. ‘볼트·너트형’이 1세대라면 드릴로 구멍을 뚫고 나사를 밖는 ‘일체형’이 2세대, 드릴처럼 직접 물건을 파고 들어가는 ‘직결나사’가 3세대다. 직결나사 시장에 관한 한 그의 회사는 이미 세계 최고다.

“철판을 직접 뚫고 들어가 스스로 두 물체를 하나로 결합시키기 위해서는 나사의 끝이 뒤틀려 있어야 합니다. 미국에서 처음 개발된 이 ‘뒤틀림 나사’는 장인들이 거의 손으로 깎아 만드는 식이어서 만들기도 어려웠지만 만들어도 값이 여간 비싸지 않았지요. 이것을 명화금속이 자동화시켜 처음으로 기계로 찍어내기 시작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게 있다. 나사를 잘 만들고 싶은 생각에 급기야 나사를 만드는 기계까지 직접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의 ‘일생의 자랑거리’로 삼는 공장을 들어가 보자. 무엇보다 1천평에 이르는 공장 부지에 4열 횡대로 늘어선 나사 기계에 기가 질린다. 하루 5천만개의 나사를 쏟아내는 기계들은 한 시대를 웅변하며 명화금속의 역사를 대변한다. 맨 안쪽 기계들은 80년대 만들어진 것으로 이를테면 임사장이 만든 첫번째 ‘자식’들이다. 이들은 분당 평균 1백50개의 나사를 생산해 낸다. 90년대 만들어진 두번째 줄의 기계들은 분당 2백50개의 나사를 토해내고, 최근 만들어진 맨 앞쪽 기계들은 분당 4백개의 나사를 찍어낸다.

명화금속의 역사는 한마디로 ‘생산성 향상의 역사’와 같다. 임사장은 “향후 분당 7백개까지 생산해 내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아 무도 만들지 못하는 제품을 만들어내는 기술력, 그 제품을 만들기 위해 기계까지 만들어내는 집념, 그 제품을 만들어내자 이번에는 생산성을 높여야겠다는 경영능력…. 명화금속은 임사장이 있는 한 그의 말대로 “어떤 불황도 이겨낼 수밖에 없는 강한 기업”일 것 같다.


누구라도 한 우물을 팔수 있다. 대신 먼저 파라.


출처: 이코노미스트 2003.10.10


   (주) 명  화  금  속  

                어떤 회사인가?

1961년 설립, 8백여 종의 나사를 생산 중인 (주)명화금속은 독자개발한 직결나사로 세계 무역장벽을 뚫은 중소기업. 세계일류상품으로 선정된 이 직결나사는 말 그대로 철판을 스스로 뚫고 들어가는 나사로, 기존의 철판에 홈을 파고 나사를 끼워넣어야 했던 방식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특히 나사 자체에 곡선 비틀림각을 주어 스스로 드릴처럼 철판을 뚫고 들어가면서 나사밥이 바로 배출되는 방법을 개발, 현재 독일, 미국, 일본 등 세계 30여 개국에서 명화금속의 직결나사를 수입하고 있으며 상암월드컵경기장과 인천공항에도 사용되는 등 건설시공에서 필수품으로 쓰이고 있다.  

 열일곱 소년공 시절부터 나사를 만들어온 임정환 회장은 자다가도 나사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일어나 메모를 하는 자타가 공인하는 ‘나사박사’. 그가 평생 기록해온 수십권의 노트는 (주)명화금속을 180종의 특허를 보유한 나사왕국으로 자리매김시켰으며, 지난 2002년 중소기업청으로부터 ‘신지식인’ 에 선정된 바 있다.  50여 년 산업현장에서 기계와 씨름해 온 그의 목소리에는 국내 중소기업에 대한 애정과 기업은행에 대한 신뢰가 깊게 스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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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 콜렉터 FILA 휠라코리아 윤윤수, 고래를 삼킨 새우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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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한푼 없는 그가 서울대 치대에 합격했지만 적성에 안맞는다고 중퇴하고, 외대에 들어갔다가 친구때문에 퇴학을 당하고 군대에 들어가서 백으로 카투사에 들어가서 영어실력을 쌓고 제대를 하지만 30세에 그가 들어갈곳은 마땅치 않았다.
하지만 어렵게 들어간 한진의 밑바닥부터 시작해서 아내를 만나서 자리를 잡고, 미국 대기업 구매담당자, 화승 이사, 신발 무역업 등으로 기반을 잡은게 겨우 10년이였다. 그러다가 FILA에서 스카웃제의를 받고 한때 우리나라에서 가장 연봉을 많이 받는 셀러리맨중에 한명이 되었던 그가 이제는 경영부실이였던 본사 FILA를 역으로 사버려서 고래를 삼킨 새우간 되어버렸다.
혹자는 운이 좋았다라고 말할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방송중간중간 들리는 이야기를 듣다보면 정말 성실과 노력으로 이만큼 이루어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성실, 노력했다고 다 성공하는것은 아니지만, 성공한 사람은 모두 노력하고 성실한 사람이라는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나도 한번 해보자... 10년안으로 한국에서 가장 세금 많이 내는 사람...

KBS 글로벌 성공시대-400만 마일의 사나이, FILA 휠라코리아 윤윤수, 밑바닥부터 고난속에서 성공한 그의 성공비결은?

휠라 코리아 윤윤수(52)사장이 세간에 화제가 된 것은 지난 95년 1백대 종합소득세 납세자의 의료보험료 납부액 순위에서 그가 국내 굴지의 재벌그룹 회장들 사이에서 3위를 차지한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다. ―올해는 연봉이 정확히 얼마나 됩니까. 『지난해 18억원보다 약 1억원 늘어나 19억원 정도입니다』 어림해서 따져보니 한 달에 약 1억6천만원, 하루에 약 5백20만원씩 벌어들인다. 약 1억원 안팎인 국내 시중은행장이나 대기업 사장의 연봉도 윤사장의 월급에는 미치지 못하는 셈이다.

세금만 10억원

―소득세다 주민세다 해서 국가에 내는 세금만 해도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 세금을 제하고 나면 얼마나 남습니까.

『작년 한해만 약 10억원을 냈습니다』

많이 버는 만큼 많이 낸다.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일수록 자기 소득 밝히길 꺼리는데 사장님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 의외입니다.

『저라고 밝히고 싶어서 밝히겠습니까. 돈 많이 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그만큼 도와달라고 손 내미는 사람도 많아지는 법이니 누구든 골치아프지 않겠어요. 하지만 이왕 알려진 이상 굳이 숨기려 하지도 않습니다』

―앞으로는 연봉을 적당히 줄여서 얘기해야 되겠네요.

『국내에서 활동하는 외국투자법인은 뭘 숨기고 감추고 할 수 없도록 돼 있습니다. 세무공무원들이 가만 놔두질 않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깨끗하고 투명한 돈이라는 사실도 증명되는 셈이죠』

정말 중요한 것은 연봉이 얼마냐는 것보다 연봉이 얼마인지 밝힐 수 있다는 것일지 모른다.

『지금 와서는 공부를 많이 한 것도 아니고 가정 환경이 좋은 것도 아닌 나 같은 사람이 이렇게 많은 돈을 벌고 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 돈도 없고 빽도 없는 처지의 젊은이들이 절 보고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윤사장 자신 결혼 당시만 하더라도 서울 은평구 응암동에 30만원짜리 단칸셋방을 구해 신혼살림을 시작했을 정도로 가난했다.

『지금까지 이사만 무려 9번을 다녔어요.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천양지차지요. 돈도 많이 벌고 해서 지난 봄에 서초동 우성아파트 50평짜리에서 90평짜리로 옮겼습니다. 복층으로 된 아파트인데 컴퓨터를 전공하는 아들녀석이 미국 UC데이비스에 유학가 있어 우리 두 부부와 피아노를 전공하는 대학생 딸 하나가 살기에는 과분할 정도로 큽니다』

윤사장은 광복되던 해인 지난 45년 경기도 화성군 비봉면의 가난한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윤사장이 태어나면서 돌아가셨고 아버지마저 고등학교 2학년때 폐암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형님이 한분 계시지만 초등학교 선생으로 계셨기에 윤사장에게 경제적으로 큰 도움을 줄 처지는 되지 못했다.

물론 아무리 어려운 환경이라 하더라도 주변에 좋은 사람이나 우연히 좋은 기회를 만나 빠르게 자수성가한 인물들도 있다. 하지만 윤사장은 이런 경우에 속하지도 않는다.

KBS 글로벌 성공시대-400만 마일의 사나이, FILA 휠라코리아 윤윤수, 밑바닥부터 고난속에서 성공한 그의 성공비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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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빈곤층 실태보고 추락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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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빈곤층 실태보고 추락하는 사람들
2 그늘속의 아이들 가난이 대물림된다
3 대기업과 중소기업 동반성장의 조건
4 6%의 눈물 비정규직 노동자

현재 우리나라의 빈곤층, 추락하는 사람들, 비정규직에 대해서 잘 보여준 다큐...
다만 아쉬운점은 적절한 대응책이 거의 보여주지 못한다. 물론 적절한 대응책이 있다면 왜 실현하지 않았겠는가...
대응책이 없으니 문제이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고, 그 욕심들을 채우기 위한 양은 일정하니...
누구는 많이 가져가고, 누구는 가져가지 못하고... 하지만 못가진 자들은 더 가져가려고 데모와 농성을 하고, 이런 프로그램으로 하소연을 하고, 가진자들은 가진자데로 자신의 입장을 피력하고...
이러다가 예전에 공산주의혁명이 일어난게 아닌지..하는 공감대도 느끼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의 해결책은 위와 같은 문제제기만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더욱더 양극화현상으로 계층간의 갈등만 심화되지 않을까하는 생각만 든다. 그렇다고 문제가 뭔지는 정확하게 알지도 못하면서 시위를 하는 철없는 대학생들처럼 누가 들어도 맞는 말만 하거나 그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자는 이상주의식 발상은 안될것이다.

위 프로에서도 간혹 언급한것처럼 서로 양보해야 할것이다.
단적으로 비정규직노동자만 하더라도 정규직으로 바꾸어서 회사가 이익이 난다면 누가 그러지 않겠는가?
왜 그런지 파악을 하고 회사도 어느정도 양보를 해야하고, 기존의 노조도 상당히 많은 부분을 양보해야 할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 미국의 자동차회사나 파산신청에 이른 델파이처럼 되고 말것이다.
공생이냐.. 공멸이냐..

신라말, 고려말등의 역사를 봐도 그렇지만 자신의 가진 기득권만을 지키려고 하다가 세상이 망한후에
빈손으로부터 다시 시작하는 그런 우를 넘해서는 안될것이다.
함께 사는 사회...

하지만 힘들것이다... 누군가가 어느정도 강제적으로 집행을 하기도 해야겠지만.. 서로 양보를 하지 않는이상...

우선 나부터 잘되고.. 잘 배풀고.. 서로 양보하고 아끼지 않는 이상.. 나라탓을 하면 어쩌고... 세상탓을 하면 어찌하리...

2005 부산 APEC의 성공적 개최, 세계 경제대국 12위, 국민소득 2만달러... 대한민국의 화려한 경제성장 이면엔 지하철 사물함에 보관해온 생필품을 어깨에 지고 잘 곳을 찾아 헤매는 노숙자들과 세계화의 볼모돼 쌀 시장 개방으로 속이 타들어가는 농민들, 차가운 바닥에 앉아 차별철폐를 외치며 농성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다.

KBS는 `특별기획 양극화 사회-희망의 로드맵`을 테마로 다큐멘터리 4부작과 토론 3부작을 편성, 대한민국 사회 양극화의 단면을 심도 있게 분석한다.

6일 방송된 1편 <新 빈곤층 실태보고 - 추락하는 사람들>편에서는 빈곤은 결코 남의 얘기가 아니며 지금 사회에 등장하고 있는 신빈곤층은 자신의 실수나 무능력의 결과가 아니라 외부의 환경변화 때문임을 역설한다. 다시 말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이슈라는 것.

박모씨네 4식구는 1톤 트럭 안에서 추위와 맨 몸으로 맞서고 있다. 라면으로 겨우 끼니를 때우고 공원 내 화장실에서 세수해 온 지 100일이 넘었다. 난방도 되지 않는 트럭 안에서 5mm 차창을 바람막이로 의지해 잠을 청하며 가족들은 혹독한 겨울을 나야만 한다. 불과 1년 전 까지만 해도 이들은 번듯한 수퍼마켓을 운영하면서 40평도 넘는 아파트에서 살았던 당당한 중산층이었다. 그러나 작년 5월, 박씨가 갑자기 쓰러지면서 결국 수퍼마켓도 문을 닫게 됐고 대출금을 갚지 못해 모든 것을 잃게 됐다.

아이들이 학원이나 과외로 바쁘게 보내고 있을 시간, 세 명의 아이들이 거리를 배회하고 있다. 바로 재활용품과 빈병을 주우러 다니는 것. 차곡차곡 모아놓은 빈 병을 팔아 번 돈은 고작 950원이 전부다. 이렇게 해서라도 자신들의 용돈을 벌지 않으면 안되는 아이들은 형편이 어려운 모자가정의 대표적 사례다.

고경순(35)씨는 남편의 사업실패로 이혼을 해야 했고 덤으로 신용불량자라는 멍에까지 져야했다. 시에서 나오는 지원금과 자활기관에서 일하는 것으로 근근이 생활해나가고 있지만 양육과 생계를 책임지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방송에 출연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노대명 박사에 따르면, 이러한 신빈곤층의 등장 원인으로 IMF외환위기 이후 산업구조 개편에 따른 노동시장의 변화를 꼽았다. 특히 노동시장의 유연화로 임금노동자의 상당수가 저임금근로노동자로 전락했고, 임금부문의 고용이 감소하면서 자영업의 공급과잉과 미취업자의 증가로 이어졌다는 것. 이같은 노동시장의 변화 외에도 질병과 가족해체로 인한 여성가장의 증가 등 다양한 요인들이 신빈곤층을 등장시키는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방송은 가장의 질병으로 인한 막막한 생계, 구조조정에 따른 실직, 모자가정 등 다양한 신빈곤층 사례를 통해 의료와 주거, 교육과 자활 부문에서 부실한 사회복지의 현실을 꼬집는다. 개인의 탓이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생긴 일이라면 미연에 방지하는 것도 마땅히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 특히 미약한 사회안전망은 개인의 불행을 넘어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위험요소로 작용할 것임을 강조한다.

방송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해법으로 사회 각 분야에서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는 움직임을 조심스럽게 조명한다. 특히 경기 고양시의 희망지킴이 천사운동본부나, 서울 중구청의 1직원 1가정 보살피기 시스템과 최소생계비 200%까지 버는 세대까지 철저히 관리되고 있는 전산망은 막무가내식의 지원을 넘어 보다 체계적이고 차별화된 사회안전망의 가능성을 가늠하게 한다.

방송은 계속해서 2편(7일밤 10시) ‘그늘 속의 아이들-가난이 되물림 된다’, 3편(8일밤 10시) ‘56%의 눈물-비정규직 노동자’, 4편(9일밤 10시) ‘대기업과 중소기업-동반성장의 조건’ 을 방영하며, 이어 12월9∼11일까지 사흘 동안 밤 10시20분부터 다음날 오전 1시20분 동안 3시간에 걸친 토론 프로그램을 끝으로 `KBS 특별기획 양극화사회-희망의 로드맵` 대장정의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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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보인다 - 20대에 돈벼락? 대학생 사장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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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자가 하던 해결 돈이 보인다가 말이 많더니 결국에는 폐지가 되고 새롭게 신설... 훨씬 좋다..

다양한 마케팅 기법을 소개해 주었는데 배울점이 많다.

특히 개인사업으로 장사를 시작하는 사람들이라면 관심깊게 보면 좋을듯...

시작한지 얼마되지도 않아서 월매출 1억이 넘은 대학생부터 탁월하고 기막히고 기발한 마케팅으로 손님을 이끄는 마케팅들...

국민대앞의 꼬치집과 정읍의 고기집은 정말 기발하면서도 실소를 금치 못할정도지만 정말 잊을수 없는 마케팅들이다...^^


1. 몸값 상승~ 디저트 전성시대

▶ APEC 정상 디저트
부산 파라다이스 호텔 051-749-2007
: 63-3661-4841

▶ 라면강정 후식
맛 좀 볼래(인천광역시 남동구 구월동) 032-428-5777
: 37-0552-5662

▶ 커피전문점 후식
찹앤드 산삼갈비(서대문구 창천동) 322-0444
: 37-3770-2847

▶ 한식 디저트 카페
티 로프트(중구 소공동) 772-3996
: 37-4732-6120

▶ 아이스크림 카페
하겐다즈(강남역점) 3481-5828
: 37-4691-3063

▶ 디저트 아카데미
라퀴진 디저트 아카데미(강남구 신사동) 518-7592
: 37-5604-3741

▶ 단팥죽 후식
한국교자(로데오점) 515-9020
: 37-5605-6880

 

2. 금의환향! 금의 별난변신

▶ 식용 금가루 판매
골드 코리아 02-564-0557
www.goldkorea.net
: 37-5630-7541

▶ 황금 커피 서비스 
이레 골드 (인천광역시 계양구) 032-553-0055
37-1618-1076

▶ 황금 불판, 금테 두른 누드 묵은지
황금 애 묵은지 (서울 장암동 바우하우스 지정점) 02-2115-1088
: 37-5753-5281
www.kimchi365.co.kr

▶ 황금치킨
골드 킨(경기도 성남시) 031-758-7605

▶ 금박 감자찜
조마루 뼈다귀 감자탕 (인천 부평구 산곡점) 032-507-6777
37-0662-8833

▶ 금 찜질방
금샘금은옥 불가마 찜질방(부산광역시 금정구) 051-518-4757
63-2850-2740

▶ 금 마사지
헬스 앤 슬림(청담점) 02-540-7677
: 37-5615-8375

▶ 황금 그릇, 황금 욕실
유정 하이테크 전시장 (서울시 강남구) 02-3445-0115
: 37-4693-9360

▶ 황금 수의
금향 (서울 종로구) 02-2273-2281
www.au79.co.kr
: 37-4752-9819

 

3. 어머나~ 트로트가 대박이네!

▶ 트로트 음반 녹음
OK 뮤직 02-2252-8432

37-4762-1954

▶ 섹시 트로트
삼성음반 02-742-4681

: 37-4763-1770

▶ 제작비 0원 뮤직비디오
강달님 팬카페
http://cafe.daum.net/wsj8149

▶ 트로트학과
서울종합예술전문학교 02-3453-5566 
http://www.sac.ac.kr

 

4. 20대에 돈벼락~ 잘나가는 대학생 사장님들

▶ 1억 소녀 의류쇼핑몰
아이러브핑크 010-3098-0963, 02-962-1477
www.ilovepink.co.kr

▶ 마술도구 쇼핑몰 
와우매직 055-288-4031
www.wowmagicshop.co.kr 

▶ 꼬치대학 (닭꼬치&어묵)
국민대 정문 앞

▶ 도로시 드레스카페
02-876-6080
www.yescall.com/dorothy



생활 밀착 정보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돈이 보인다’ !!

‘풍성한 볼거리’와 ‘정보력 강화’로 한층 업그레이드 된
SBS <돈이 보인다>
돈이 되는 알짜 정보와 돈이 보이는 따끈한 현장,
황금알을 낳는 아이디어는 물론 감동의 인생역전 성공 스토리까지...
매주 수요일 7시 5분
만인의 관심사인 돈 버는 비법을 안방까지 전해 드리겠습니다!!

▶ 몸 값 상승! 디저트 전성시대!

라면을 먹어도 디저트는 꼭 챙기는 것이 최신 유행~~
단순한 입가심에서 벗어나 주 메뉴를 능가하는 관심의 대상, 디저트!
디저트 라면강정 덕에 문전성시를 이루는 라면집, 단 돈 8천원에 갈비에 디저트까지 세트로 즐길 수 있는 돼지갈비집은 특별 디저트 서비스에 매출이 3배나 껑충 올랐다고. 엄동설한 겨울을 겨냥한 디저트와 우리 입맛에 착착 감기는 신토불이 한식 디저트까지...
디저트를 공략하면 돈이 보인다!
조연에서 주연으로... 화려하고 맛깔난 디저트로 신분 상승, 더불어 몸 값까지 상승한 디저트의 화려한 변신 속으로 들어가 보자!

▶ 금의환향, 金의 별난 변신!!

현대 생활백서 하나!! 돈이 되는 유행이라면 따르라~
새롭게 시작된 금의 무한변신, 금에 주목하면 없던 돈도 생긴다고 하는데~
2005년 겨울, 평범하기 그지없던 황금의 대 반란이 시작되면서, 장롱 속에 꽁꽁 숨겨 놓았던 금이 세상 빛 보기 시작했다!
황금으로 만든 욕조를 비롯해 욕실 풀세트는 중동 부호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으며 나날이 수출 고공 행진 펼치기 시작했고, 내년 윤칠월 윤달을 겨냥한 황금 수의는 벌써부터 주문이 폭주한 상태라고~ 거기에 황금 찜질방에서 몸 풀고, 금가루로 얼굴과 몸을 마사지 하고 나면, 피부미인 탄생은 시간문제!!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제 황금도 먹는 시대!! 금가루 뿌린 치킨, 감자탕, 묵은 지. 거기에 황금 불판으로 구운 삼겹살까지~ 평범한 음식이 금가루 성은 입고, 업그레이드 했다는데~ 황금의 무궁무진한 변신!! 그 세계에 함께 빠져보자!!!

▶ 어머나~ 트로트가 대박이네

4천 8백만 남녀노소의 심금을 울리는 트로~트.
2004년 장윤정의 '어머나‘ 열풍 이후, 트로트 시장이 후끈 달아올랐다!
음반시장을 불황, 그러나 트로트 시장은 호황!!
트로트계의 대박 가수 장윤정과 박상철, 트로트 메들리로 월 1000만원을 버는 에로쏭의 주인공 주부 정희라 씨와 초저예산 뮤직 비디오로 대박의 꿈을 키우는 가수 강달님, 각종 무대를 누비는 트로트 신동, 진욱이의 이야기도 소개한다.

▶ 20대에 돈벼락? 대학생 사장님들
요즘 대학가의 새 트렌드는 돈! 돈! 돈!
20대 부자되기 열풍이 거세지며 화제로 떠오르는 대학생 사장님들이 있었으니!
한달 매출 무려 1억을 올리고 있는 당찬 여대생부터,
벌써 대표직 명함만 세 개나 된다는 스물 두 살 청년, 대학 앞에 꼬치대학을 차린 학생들까지~
잘~나가는 대학생 사장님들의 성공비법을 들여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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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이순신 - 23전 23승 이겨놓고 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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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에서 방영한 불멸의 이순신 스페셜판...
대단하다가 알고 있지만, 언제봐도 대단하신... 이순신 장군...
이편에서는 이순신 리더십에 대해서도 분석해주고, 그 동안의 행적을 둘러보며, 역사적, 문학적인 이야기 및 일본에서 바라본 시각 등도 자세하게 소개해준다.
리더십의 기본은 바로 원칙이고, 솔선수범하는 단순하면서도 만고불변의 진리를 다시한번 알려준다.


장군, 길을 가르쳐 주세요(완결)
이순신 장군은 오늘을 살아 가고 있는 우리에게 과거의 인물에 머물러 있지 않다. 포연이 자욱한 전쟁터 보다 더 지독한 전쟁을 치루고 있는 지금, 400년이라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장군은 우리의 가슴 속에 의연히 살아 있다.

▲ 장군은 임진년 개전 이후 노량에서 최후의 결전을 치룰 때까지 23전 23승이라는 세계해전사에 길이 남을 불멸의 기록을 남겼다.
장군은 분한 마음을 삭이지 못하고 적을 타격했다. 포화를 퍼부었고, 화시를 날려 배와 적을 불태우고 수장시켰다. 때로는 좁은 해협으로 달아난 적을 큰 바다로 끌어내 학의 날개 모양으로 포위한 뒤 집중포격을 가했고, 때로는 좁은 해로를 막고 일렬종대로 밀려오는 적을 차례로 쳐부수었다.

매 전투마다 쉬운 전투가 없었지만, 장군은 신출귀몰했다. 적들은 공포에 떨었다. 장군은 오직 눈앞에 나타난 적을 상대로 싸웠다. 그리하여 임진년 개전 이후 노량에서 최후의 결전을 치룰 때까지 23전 23승이라는 세계해전사에 길이 남을 불멸의 기록을 남겼다.

우리는 지금 장군의 불패신화가 그립다. 장군이라면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을 의연하게 대처하면서 기적과 같은 성과를 이루어낼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장군을 알고 싶다. 우리는 400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 장군이 호령하던 바다로 가본다. 장군에게 우리가 가야할 길을 묻는다. 장군이시여, 길을 가르쳐 주세요. 창업투데이는 장군의 가르침을 좇아 [특별기획] 장군, 길을 가르쳐 주세요를 7회에 걸쳐 연재한다.[편집자주]


옥포해전, 첫 번째 전쟁, 이겨야 한다
[특별기획] 장군, 길을 가르쳐 주세요(1)


장군은 장검을 높이 들었다. 장수와 군졸들도 창칼을 높이 들고 함성을 올렸다. 출전의 북소리가 크게 울렸다. 천지신명께 원하노니 적들을 크게 무찌르게 해주옵소서.

1592년 5월 7일, 장군은 28척의 전선을 이끌고 옥포를 향해 나아갔다. 적은 선발부대가 옥포까지 진출하고 있었다. 남해로 바닷길을 임무를 맡은 최선봉 부대의 적장은 도도 다카도라였다. 적은 부산진, 김해, 율포를 유린한 후 바로 전날 옥포에 도착해 있었다. 옥포만에는 50여척이 정박해 있었지만, 뒤에는 700여척의 대함대가 서해를 거쳐 한성까지 올라가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장군은 함대를 적선 앞으로 출전시켰다. 적들도 전투태세를 취하고 나섰다. 실전 경험이 전무한 병사들이 눈앞에 적을 두고 흥분하고 허둥됐다. 장군은 미리 준비한 깃발을 올렸다. '경거망동하지 말고 산처럼 장중하게 움직여라'(輕擧妄動 靜重如山)라고 쓰여 있었다.

▲ 장군은 달려드는 적선을 향해 함대를 횡으로 돌려 일자형태로 진형을 만들어 적의 뱃머리와 함대의 측면이 맞서게 했다. 적이 전방의 포 한발을 날릴 때 아군은 측면의 포 10발을 작렬시킨다. 정(丁)자 타법이다.

낮 12시경 운명의 전쟁은 시작되었다. 적들은 호기있게 밀고 나왔다. 장군은 달려드는 적선을 향해 함대를 횡으로 돌려 일자형태로 진형을 만들어 적의 뱃머리와 함대의 측면이 맞서게 했다. 적이 전방의 포 한발을 날릴 때 아군은 측면의 포 10발을 작렬시킨다. 정(丁)자 타법이다.

적선은 불타오르고 격침됐다. 불타는 적선에서 적병들이 낙엽처럼 바닷속으로 뛰어들었다. 아귀비환이 따로 없었다. 적장은 물에 뛰어들어 인근의 섬으로 피했다가 수일만에 뗏목을 타고 간신히 도망갔다. 50척의 적선 가운데 26척이 격침되고 적군 4080명이 도살됐다. 장군의 함대는 전선 피해나 전사자가 전무하고 부상자가 단 2명 뿐이었다.

포격중지! 장군은 명령했다. 순간 죽음의 전쟁터는 정적에 휩싸였다. 이게 진정 현실인가? 우리가 승리한 것인가? 곧 승리의 함성이 온 바다를 가득 메웠다. 장수와 병사들이 서로 부등켜 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창업Tips> 창업의 목적을 분명히 하라

장군의 장검에는 유명한 명문이 새겨져 있다. "석자 되는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과 물이 떨고, 한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산하를 물들인다"라고. 원문은 三尺誓天 山河洞色 一揮掃蕩 血染山河(삼척서천 산하동색 일휘소탕 혈염산하)이다. 장군에게 전쟁이란 무엇이었던가? 침략자를 무찌르고 나라와 백성을 구하는 것이다. 내가 창업을 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경제전쟁시대에 국가경쟁력을 키우는 일에 동참할 뜻이 내게 있는가?


사천포해전, 거북선 돌진하다
[특별기획] 장군, 길을 가르쳐 주세요(2)


옥포해전의 대승으로 조선 수군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일본 수군은 옥포에서 큰 타격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수륙병진책의 야욕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장군은 적의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출전을 서둘렀다.

사천포에 적선 12척이 정박해 있다는 첩보가 들어왔다. 5월 29일 장군은 23척의 함대를 이끌고 사천포 앞바다에 도착했다. 함대가 접근하자 적들은 완강히 저항하고 맞섰다. 마침 썰물 때라 전선을 포구에 댈 수 없어 적을 먼 바다로 유인하기로 했다.

▲ 창업을 전쟁에 비유한다면 거북선급 신무기가 필요성은 절실하다. 사업에서도 경쟁에서 이기면 생존하고 패배하면 사멸하기 때문이다.

적선이 전투를 치루기 유리한 해역까지 따라 나오자, 장군은 갑자기 뱃머리를 돌려 총공세를 펼쳤다. 이때 거북모양을 한 이상한 배가 빠르게 뛰어나와 머리에서는 연기를 피우고 사방으로 화포를 쏘아대기 시작했다.

세계최초의 철갑 돌격선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거북선은 적진 깊숙이 들어가 적의 대장선을 박살내 버렸다. 적은 완전히 전의를 상실하고 배를 버리고 산 위로 도주하기에 바빴다. 순식간에 적선 13척을 격파하고 적 2,600명이 배와 함께 불에 타죽거나 목이 베어졌다.

아군측은 거북선 건조의 책임자인 군관 나대용이 적의 총탄에 맞았고, 장군도 왼쪽 어깨에 탄환을 맞았다. 장군을 부하를 시켜 칼끝으로 총탄을 파내게 했다.

<창업Tips> 신무기로 무장하라

장군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바로 하루전에 세계최초의 철갑선인 거북선을 완성했다. 그리고 사천포해전에서 그 위용을 선보였다. 적들은 거북선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눈먼 배'(盲船)라고 했다. 진영 깊숙이 들어와서 좌충우돌 배들을 깨부수니 공포 그 자체였을 것이다. 창업을 전쟁에 비유한다면 거북선급 신무기가 필요성은 절실하다. 사업에서도 경쟁에서 이기면 생존하고 패배하면 사멸하기 때문이다.


당포해전, 적의 핵심을 부수다
[특별기획] 장군, 길을 가르쳐 주세요(3)


1592년 6월 2일 장군은 적선이 당포에 정박 중이라는 보고를 받고 곧 그곳으로 출진했다. 적장 가메이 고레노리가 인솔하는 적선 21척이 정박하고 있었다.

오전 10시경 장군은 학인진의 깃발을 올리고 거북선을 앞세워 진격해 들어갔다. 돌격대장 이언량은 맹렬히 돌격해 적의 대장선을 노렸다. 거북선을 적선의 밑을 치고 들어가 거북머리의 현자포로 적장이 서 있던 층루를 무너뜨렸다. 우리 장수들이 적선에 뛰어들어 적장의 목을 베었다.

▲ 당포해전은 창업자들에게는 한정된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장군은 거북선을 내세워 수십척의 적선으로 둘러싸인 적의 대장선을 격파, 기선을 잡았다.

장군의 함대는 대장선을 잃고 허둥대는 적 함대를 철저하게 격파했다. 이 전투에서 장군은 적선 21척을 모두 격파하고 적 2,820명을 도살하였다.

6월 4일 이억기 장군의 전라우수영 함대가 도착해 52척의 연합함대를 구성하고 도망가는 적을 추격했다. 6월 5일 연합함대는 당항포로 향하였다. 당항포에는 적선 26척이 정박중이었다. 조선수군의 내습에 놀라 일본수군은 먼저 공격해왔다. 장군을 적선을 포위하고 먼저 거북선을 돌입시켜 맹공을 가했다. 적선을 모두 격침시키고, 적 2,700명을 도살하였다. 율포에서는 3척의 적선을 격침시키고 3척을 나포했다.

<창업Tips> 핵심을 파고 들어가라

당포해전은 창업자들에게는 한정된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장군은 거북선을 내세워 수십척의 적선으로 둘러싸인 적의 대장선을 격파, 기선을 잡았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때 적의 가장 견고한 곳을 공격해 큰 승리를 거둔 것이다.



한산대첩, 적을 사지로 보내다
[특별기획] 장군, 길을 가르쳐 주세요(4)


장군은 연전연승했다. 1592년 7월 7일 장군은 한산도 앞바다에서 좀더 강한 적군과 조우했다. 제1진으로 나선 적장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73척을 이끌고 왔다. 2진에 구키 요시타카, 3진에 가토 요시아키 등이 호응하고 있었다.

장군은 와키자카의 일본수군이 견내량으로 들어갔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그리고 견내량에 정박해 있는 적선을 한산도 앞바다로 유인한 뒤 적을 모조리 잡을 계획을 세웠다. 견내량은 거제도와 통영만 사이에 있는 좁은 해협이라 전투하기에 적당하지 않았다.

▲장군은 연전연승했다. 1592년 7월 7일 장군은 한산도 앞바다에서 좀더 강한 적군과 조우했다.

장군은 13척의 배를 보내 적을 유인했다. 적장은 전공을 올릴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앞으로 밀고 나왔다. 유인작전으로 조선 수군은 조금씩 후퇴하고 적선들은 한산도 앞 바다까지 뒤쫓아 왔다.

적선이 한산도 앞바다에 이르렀을 때, 조선 수군은 뱃길을 돌려 학익진(鶴翼陣)을 펴고 일제히 적선을 향하여 진격하였다. 모든 화포를 한꺼번에 쏘아 적선을 격파하고 불살랐다. 적선 73척 중 59척이 격파되거나 불태워졌고 적장 와키자카는 도망쳤다.

전투에 참가한 1만여 명의 적병 가운데 8980명이 도살되었고, 400여 명이 한산도로 도망쳤다가 210명이 잡혀 죽고 190명만이 겨우 탈출했다. 한산대첩으로 적의 수륙병진작전에 제동을 걸렸고, 조선 수군은 남해의 제해권을 확실하게 장악했다.

▲모든 화포를 한꺼번에 쏘아 적선을 격파하고 불살랐다. 적선 73척 중 59척이 격파되거나 불태워졌고 적장 와키자카는 도망쳤다.

한산대첩 후 장군은 다시 전진하여 안골포의 적선을 격파하였다. 와키자카와 합동작전을 하려던 구키, 가토 등 적장은 와키자카의 수군이 전멸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안골포에 숨어 있었다. 장군은 수심이 얕은 포구에서 밖으로 나오지 않자, 교대로 종일토록 적선을 공격하여 파괴했다.

<창업Tips> 내게 유리한 곳에서 싸워라

한산대첩이 장군에게 맞선 적장은 용인전투에서 단지 1,500명의 군사로 조선 육군 5만명을 패퇴시킨 장본인이었다. 장군은 전공에 눈이 먼 적장을 넓은 바다 한 가운데로 이끌어내 전멸시키는 인출전포지계(引出全捕之計)를 썼다. 한산도 앞바다로 이끌려 나온 적은 학인진으로 공격하는 조선 수군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다. 내게 유리한 곳에서 나의 장점을 발휘하라.


부산해전, 적 소굴을 두들기다
[특별기획] 장군, 길을 가르쳐 주세요(5)


적의 소굴 부산포에는 약 470척의 적선이 정박해 있었다. 장군은 이들을 찾아내어 격파하여 우환을 근본적으로 없애려 하였다.

9월 1일, 장군은 부산포를 향하여 총공격 명령을 내렸다. 수적으로는 3배 가량 많았고, 지리조건도 적군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을 향하여 공격하고 조선 수군은 해상에서 완전히 노출되어 불리한 형국이었지만, 적들은 이미 장군과 싸우지 말라는 명령을 받고 있었다.

▲임진년 한 해동안 장군은 17번의 크고 작은 해전에서 392척의 적선을 격파, 3만 4,000명의 적을 몰살시켰다.

조선수군의 기습공격에 응전을 해온 적선은 4척에 불과했다. 4척을 격파하고 불태웠다. 적들은 아군의 위용에 눌려 바다로 나오지 못하고 방파제 안에서 종일도록 포격을 당하고도 꼼짝도 하지 않은 세계해전사상 유례를 없는 치욕을 감수해야만 했다.

장군은 날이 어두워지기까지 분한 마음을 삭이지 못하고 적선을 두들겼다. 적선 100여척이 격침되었고,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적들이 살상되었다. 이 전투에서 장군은 아끼던 녹도만호 정운을 잃었다. 장군은 이후에도 남해안 일대에 출몰하는 적을 궤멸시키고 제해권을 완전히 장악했다.

<창업Tips> 이길 수 있는 조건을 조성하라

임진년 한 해동안 장군은 17번의 크고 작은 해전에서 392척의 적선을 격파, 3만 4,000명의 적을 몰살시켰다. 반면의 조선 함대는 한척의 배도 잃지 않았고, 전사자와 부상자를 합해 약 240명의 피해를 그쳤다. 세계해전 사상 불가사의한 이런 전과는 어떻게 이루어낸 것일까? 장군은 손자병법에 있는 선승이후구전(先勝而後求戰), 즉 이겨놓고 나가 싸운다는 병법에 충실했던 것이다.


명량해전, 바다는 울고 있었다
[특별기획] 장군, 길을 가르쳐 주세요(6)


1597년 일본은 정유재란 일으켰다. 적장 고니시 유키나가를 다시 선봉에 세우고 14만 7500명이 투입되었다. 침략군의 기본전략은 수진병진책이었다. 서해안을 통해 한성으로 쳐올라간다는 전략이었다.

7월 15일 새벽 4시경, 일본 수군은 칠천량에서 삼도수군통제사가 바뀐 조선 수군을 격파했다. 7월 17일 일본군은 이미 북진중인 우군을 제외하고 좌군과 중군의 10만 대병이 서해를 돌아 한강으로 상륙시켜 한성을 점령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에 따라 일본의 좌군과 중군은 일제히 서해를 향하여 출발하였다. 총사령관 우키다 히데이에는 부산에서 출발하였고, 고니시 유키나가는 웅천에서, 시마즈 요시히로는 거제도에서, 모리 요시나리와 이토 우헤이는 안골포에서 출발하였다. 사천에 집결한 적군의 일부는 섬진강을 따라 올라가 구례와 남원성을 함락시킨 다음 마음껏 유린하고, 다시 바다로 내려와 전라우수영을 목표로 진군하였다.

▲ 바다는 울고 있었다. 그 바다에 장군은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어 다시 섰다. 장군은 남아 있던 13척 전선을 이끌고 최후의 전쟁터로 명량해협을 선택했다.

바다는 울고 있었다. 그 바다에 장군은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어 다시 섰다. 장군은 남아 있던 13척 전선을 이끌고 최후의 전쟁터로 명량해협을 선택했다. 명량 해협은 폭이 평균 500m 밖에 안되고 물살이 빠른 진도와 화원반도 사이의 좁은 해협이다.

일본 수군의 연합함대는 구루시마 미치후사를 선봉으로 하여 도도 다카도라와 가토 요시아키 등이 합세하고 있었다. 미치후사는 1592년 6월 5일 벌어진 당항포 해전에서 전사한 친형의 대한 복수심에 불타 선봉을 자원하고 있었다.

9월 16일 미치후사는 133척의 정예 함대를 이끌고 명량 해협으로 접근했다. 70여척의 제2 함대가 그 뒤를 따랐다. 일본 수군이 명량 해협의 남쪽 입구에 도착한 것은 12시경이었다. 그러나 해협의 폭이 좁아 함대는 종대로 전진해야 했다.

해협 끝에는 조선 수군이 일자진으로 치고 기다리고 있다가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온 적선에 집중포화를 날렸다. 적의 대장선이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였고, 적장은 바다에 떨어지고 말았다. 장군은 적장 미치후사의 목을 대장선 돛대 꼭대기에 매달았다.

12시경부터 시작된 해전이 3시간 가량 지났을 무렵, 물살이 뒤바꿨다. 이 때를 기다려온 장군은 전함대에 총공격 명령을 내렸다. 적선은 혼비백산하여 도망가려 하였다. 적선들은 서로 먼저 빠져나가려다 연쇄적으로 충돌하였고 빠른 속도로 흐르는 물살을 타고 추격해 온 조선 수군의 화포에 맞아 침몰되어 갔다.

장군은 불과 13척의 배로 200여 척의 일본 함대 중 무려 133척을 쳐부쉈다. 명량 해협은 일본수군의 시체들로 뒤덮였다. 명량해전에서의 패배로 일본군의 수륙병진책은 무너졌고, 한성 침공을 눈앞에 두고 있던 일본군 우군도 남해안으로 총퇴각할 수 밖에 없었다.

<창업Tips>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산다

장군은 한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능히 천사람을 두렵게 한다고 했다. 또 싸움에 있어 죽고자 하면 반드시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必生卽死 死必卽生)고 했다. 명량해전을 앞두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휘하 장수와 병졸들에게 전투의지를 불태우기 위한 한말이다.


한척의 배도 돌려 보내지 마라
[특별기획] 장군, 길을 가르쳐 주세요(7)


장군은 순천 왜교성에서 농성중인 적장 고니시가 바다를 통해 도망가지 못하도록 단단히 해상을 봉쇄하고 있었다. 무기와 식량이 바닥난 적은 다시 제 나라로 되돌아가기 위해 몸부림치는 독안에 든 쥐꼴이 되어 있었다.

1598년 11월 18일 저녁 6시경 적선이 노량으로 집결하고 있다는 첩보가 들어왔다. 장군은 적을 격멸하기 위해 출전명령을 내렸다. 그리하여 11월 19일 새벽 2시경, 사천, 고성, 부산, 남해 등지에서 몰려온 500여척의 적 함대와 불꽃튀는 난투전이 시작됐다.

▲ 해전은 춥고 달 밝은 밤의 전투였다. 화포가 쉴새없이 발사되고 화시를 어지럽게 날아다니는 치열한 전투는 동이 틀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렇게 전투를 계속하는 동안, 200여척의 적선이 격파되고, 수장시킨 적은 4만명을 헤아렸다..

해전은 춥고 달 밝은 밤의 전투였다. 화포가 쉴새없이 발사되고 화시를 어지럽게 날아다니는 치열한 전투는 동이 틀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렇게 전투를 계속하는 동안, 200여척의 적선이 격파되고, 수장시킨 적은 4만명을 헤아렸다. 전란 이래 최대 규모의 격전이었다.

최후의 해전이 막마지에 이른 19일 새벽 장군은 지휘독전 중에 적의 탄환을 왼쪽 가슴에 맞고 쓰러졌다. 장군은 "싸움이 한창 급하니,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고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조선 수군의 가리포첨사 이영남, 낙안군수 방덕룡, 흥양현감 고득장 등이 전사하였고, 임진년에 거북선 돌격장으로 활약한 군관 이언량도 이 싸움에서 최후를 맞았다.

<창업Tips> 오직 한 마음으로 정진한다면...

"이 원수를 무찌른다면,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겠습니다." 장군은 최후의 결전을 앞둔 1598년 11월 18일 밤 함상에서 손을 씻고 향불을 피우면서 하늘에 빌었다. 장군은 19일 새벽 마지막 싸움터에서 죽음을 맞았다. 장군과 위대한 조선 수군의 장수들은 한척의 배도 돌려 보낼 수 없다는 오직 한 생각으로 죽음을 불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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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특종 놀라운 세상 - 최면으로 헤어진 가족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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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의 주 관심사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주저없이 사람의 마음이고,
그 마음을 어떻게 바꿀것인가라는 과학적인 접근을 찾아보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당연히 KBS 다큐 마음때문이고, 거기에서 최면에 대해서 다시 알게되고, 요즘은 마인드 파워나 마인드 컨트롤에 대한 책도 보고 있다... 나의 마음을 바꾸기 위해서...

그러던중 얼마전부터 그냥 흥미위주로 간혹 보던 TV특종 놀라운 세상에서 최면으로 어릴적에 부모를 잊어버린후에 고아로 살아가고 있는 두 청년의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냥 아무생각없이 이거 사기 아냐.. 이런 생각으로 봤다...

근데 본인의 이름이나 어디에 살았는지도 모르던 두 청년이 최면에 걸린후에 자신이 어릴적에 불렸던 이름, 부모의 이름, 동네의 모습등을 기억해내는것이 아닌가...-_-;;
처음에는 뻥치는거 아니야.. 라고 의심을 하면서 봤고, 역시나 계속 헛발질만 해데면서 엉뚱한 곳에 가고, 엉뚱한 사람을 부모로 오인을 하고 있었다...
근데.. 몇번의 최면이 계속되면서 기억이 조금씩 보강되고, 제보가 들어오면서 결국에는 두명중에 한명이 30년만에 부모님은 안계시지만 누나를 만났다... 정말 눈물이 핑돌았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을까라는 연민이 들었다...

암튼 최면으로 기억해낸 기억을 들은 누나 조차도 어떻게 어렸던 네가 그것을 기억하냐고 깜짝 놀라는데 전율같은것이 느껴졌다.
내 머리속에 어디엔가 그동안 살아오면서 격었던 봤던, 지나쳐온것들이 거의 대부분 기억이 되있고, 잘 찾아만 낸다면 그것을 찾아낼수 있다는 생각에 놀라지 않을수가 없다...

암튼 30년만에 가족을 찾은 김영대씨 축하하고, 마음, 최면.. 연구에 정진해야 겠다...



2006년 01월 24일(화) / 제0272회

최면으로 가족 찾기 프로젝트!.
최면으로 가족 찾기 프로젝트 첫 번째 주인공이었던 김영대씨!!
이후 전화 제보로 가족이라고 추정되는 사람을 만났지만,
결국 검사 결과 가족이 아니라는 통보를 받았다!! 그렇게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다시 가슴에 뭍은 영대씨. 하지만!! 이번엔 진짜
가족을 찾았다!! 아버지의 이름이 김석권이 아닌, 김석현이라고
하는 가족!! 그들이 말하는 내용 역시 영대씨가 최면 속에서
기억해낸 내용과 너무나 일치하는 상황. 다시 마산을 향해 달려간
제작진과 영대씨. 마산에서 영대씨는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
들었다. 바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 현재 유일한 혈육으로는
누나 한 분만 있는 상황!! 이제 영대씨는 오랜 세월 떨어져 지냈던
가족! 누나를 만나는데.. 그 감격의 순간을 함께 한다.
그리고, 지난주! 한광국씨 역시 가족으로 추정되는 사람과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는데, 지난주 만났던 가족은 광국씨가 본인의
아들이라고 확신을 하고! 광국씨 역시 가족이길 간절히 바라고
있는 상황! 그래서, 현재 유전자 검사를 의뢰한 상태!
과연 그 결과는?

최면으로 찾는 기억.지난주 출연자 한광국씨 친자확인 결과
20여 년을 부모님과 헤어져 살았던 헤어디자이너 한광국씨의
친자확인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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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스페셜 마음 - 생각하는대로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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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편 생각하는대로 이루어진다

생각하고 상상하면 우리 뇌에는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

마음을 만들기 위해 뇌 속에서 벌어지는 여러 현상들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희망과 긍정적 마음 그리고 플라시보로 불리는 기대심리가

우리의 몸과 마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탐구해본다.


도입부분에 역도선수가 출연해서 금메달을 따기 위해 벽을 보면서 면벽참선을 하면서 자신이 우승하는 모습을 그려보면서 이미지트레이닝을 한다. 그리고 실제로 금메달을 따넨다...
유도의 이원희 선수... 이미지 트레이닝으로 순간순간에 대처방안을 상상해서 실제로 적용했고, 실제 연습에 비해서 이미지트레이닝은 힘들지도 않고, 한계도 없다고 한다. 이외에도 일본의 마라톤 여자선수가 실제 자신의 경험을 소상히 이야기해준다.
운동말고도 상상임신을 한 여자들을 보여주는데 정말 임신과 증상이 똑같고, 반대의 경우도 있다고 한다...-_-;;
이런 현상을 보면서 신기하다라고만 생각하지 말고, 뇌의 착각을 이용해서 우리의 현실을 바꾼다면?

실험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을 데려다가 놓고, 우유시음회를 하는데 짜고한 몇사람이 우유를 마신후에 오바이트를 하고, 아프다고 이야기를 하니까.. 멀쩡한 사람들도 식중독 증상을 일으켰다...-_-;;
이외에도 성형에 들어가는 물질이 몸에 않좋다는 기사가 나간후에 사람들이 부작용을 호소한다고 하는데, 지금와서는 괜찮은 물질이라고...

그리고 생각만으로 상상만으로 운동효과를 일으켜서 근육의 힘을 키우는 모습, 진통제대신에 비타민을 투여하는 실험인 플라시보효과를 보여주면서 마음의 힘을 보여준다.

미국의 저명한 박사가 나와서 희망도 믿음이나 기대와 같이 뇌의 작용이라고 말해준다.

암도 불치병이지만 불확실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생존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가능성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희망을 가지라고 조언해준다.
간암 4기에서 치료률 1-5%의 의사가 완치된 모습을 보여주는데, 역시 인생뿐아니라 인간의 병도 긍정적인 생각과 희망을 가져야 할것이다.

결론적으로 살아가는데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평가하는것이 중요하며, 진정으로 행복, 건겅, 성공을 상상하고 느끼면서 살라는것이다!
그리고 기쁨, 만족감을 주는 의미있는 일에 집중하며, 지금 이순간에 집중하고, 나를 위해 미소를 지으라는 멋진 말로 이 편을 맺는다.

정말 뇌의 효과, 마음의 효과는 어디까지 일지... 놀랍다...
하지만 놀랍다. 신가하다라는 말로 끝내지 말고, 나에게 좋은쪽으로 적용해서 내가 나를 지배하는 그날이 오기를 바라며...


저희 가족들에게도 관련 상담치료가 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방송에 등장했던 기관이나, 전문 상담사분, 혹은 관련기관에 대한 정보를 얻고 싶습니다.

3부 방송을 말씀하시는 것이라면
진광진씨 치료를 하신 선생님은
서울정신분석상담연구소의 윤순임 선생님이십니다.
인터넷에서 서울정신분석연구소나 서울정신분석상담연구소를 검색해보세요
전화번호는 592-4530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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