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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BC 황금어장 무릎팍도사 - 대한민국 축구대표 스트라이커, 황선홍
  2. tvN 화성인바이러스 - 보양식 중독 얼짱 여대생 장서희 4
  3. SBS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일이 - 가위손 교통정리맨, 머리 쪼는 새, 나홀로 만든 잠수함, 양손 없는 심마니
  4. SBS 생활의 달인 - 도전 최강 수박,비빔면,세차,수화상담의 달인 4
  5. 서래 갈매기살, 부속고기 - 저렴하고, 푸짐한 고기집
  6. 티스토리 페이지 이동 단축키
  7. KBS 특별기획 6.25 한국전쟁 - 분단, 전쟁, 북진, 후퇴, 정전

MBC 황금어장 무릎팍도사 - 대한민국 축구대표 스트라이커, 황선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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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놀러와 등 각종 예능토크쇼에 많이 출연을 하시던데, 무릎팍에 출연을 해서 국가대표에 발탁되어서 14년간을 회상하면서 이야기를 한 시간...
국가대표 통산 103경기에서 50골을 넣었고, 14년동안 한국 부동의 간판스트라이크 였고, 두번의 처절한 월드컵 실패후에 도망치듯 일본에 넘어가 J리그 득점왕에 오르고, 2002년 월드컵에서 정말 멋진 활약을 보여주고, 이제는 감독으로써 활약을 하고 있는 그...
지나고나면 웃으면서 할수 있는 이야기지만, 당시에는 너무 힘들고 아프기도 했고, 때로는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 아니였나 싶은데... 어려운 시기를 어떻게 겪고 헤쳐나가는가에 따라서 그 지난 시절의 이야기는 아름다운 추억이 될수도, 또는 잊고 싶은 악몽같은 기억이 될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MC : 강호동, 유세윤, 올라이즈 밴드, 신정환, 윤종신, 김구라, 김국진
게스트 : 황선홍,f(x)

무릎 팍 도사 : 강호동 / 건방진 도사 : 유세윤 / 밴드 동자 : 올라이즈 밴드
<무릎 팍 도사- 황선홍>
대한민국 대표 스트라이커~ 황선홍의 고민!
“월드컵에서 후배들이 긴장할까봐 고민 이애요.”

롤러코스터 같았던 4번의 월드컵 출전 뒷이야기!!
황선홍의 축구인생이 팍팍!!!
채.널.집.중!!!

긴장을 너무 많이 해서 월드컵에서 사고 친 적 있다!?
황선홍이 뽑은 최악이 경기!
경기 후 쏟아졌던 비난들, 슬럼프를 극복하기까지!!!

안티를 없앤, 2002 월드컵의 추억!!
생생하게 기억하는 첫 골 넣던 순간!!
잊지 못할 세리모니까지!!

황선홍의 열정적인 축구이야기가 펼쳐집니다~!!

DJ: 신정환, 윤종신, 김구라, 김국진
<라디오 스타: f(x) 두 번째 이야기
f(x)의 삼촌 팬들을 위해 준비한 고품격 음악토크!!
<삼촌 팬을 위한 f(x) 콘서트!!!>

실력파 아이돌의 멋진 무대!
라디오 스타에서 만나요!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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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화성인바이러스 - 보양식 중독 얼짱 여대생 장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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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살의 대학생인데, 어릴적에는 부모님이 먹였다지만, 이제는 스스로 보양식을 찾아서 먹는다고...
뱀탕, 산삼, 메뚜기, 붕어, 악어, 흑염소, 개, 고래, 개구리, 오골계, 잉어, 우설, 소피, 지네, 자라, 달팽이 등등 참 다양한 보양식을 섭렵하는데, 이런 보양식을 먹으면서 살이 찌지는 않았지만, 젊은 나이에 너무 많은 보양식에 의존을 하는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이경규 복불복쇼 - 징징 파니, 구토 정민
이경규씨는 예전에 복불복방송에서 이런것을 많이 먹어봐서 이야기가 잘 통하던데, 암튼 참 화성인답다~


제65회 2010.06.22 (화)

보양식 중독 얼짱 여대생
20년째 몸에 좋다는 것은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먹어 온 보양식 중독 얼짱 여대생이 출몰했다 !
개구리, 지네, 뱀탕은 기본! 악어, 소피, 자라에 우설까지.. 그녀가 못 먹는 보양식이란 없다!
화성인이 5살 때부터 먹어왔다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바로 뱀탕!!
그녀의 보양식 무한사랑 풀 스토리부터 3MC를 경악시킨 상상초월 엽기 보양식 퍼레이드까지!
여기서 끝이 아니다! 3MC를 위한 맞춤 특별 보양식 대 공개!
욱하는 경규에게는 혈액순환에 좋은 00!
땀 줄줄 구라에게는 원기회복에 으뜸인 000!
성주에게는 스태미너의 명작! 000
과연 이 보양식들의 정체는?!
3mc의 처절한 엽기 보양식 고군분투기! 20년 보양식 중독 얼짱 여대생의 정체가 밝혀집니다

tvN 화성인바이러스 특이식성 새콤달콤 토마토 케첩 편, 모든 음식에 캐첩을 뿌리는 김두현 (설탕중독?)

tvN 화성인바이러스 - 생레몬, 식초 신맛 마니아, 한수란

tvN 화성인 바이러스 - 공포의 매운맛, 매운맛 마니아 신예지

tvN 화성인바이러스 - 매일 약 50알을 먹어야 산다!, 약 신봉녀 이현진

tvN 화성인바이러스 코라아갓탤런트 특집 - 3단콤보 호피소녀 박혜원, 웃음요가 전도사

tvN 화성인바이러스 - 2년동안 쓰레기 집에 살고 있는 난장판녀 이경은의 변화 이야기

tvN 화성인바이러스 - 핀업걸을 꿈꾸는 조순연, 16년동안 한번도 목욕을 안한 화성인 설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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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일이 - 가위손 교통정리맨, 머리 쪼는 새, 나홀로 만든 잠수함, 양손 없는 심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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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때문에 몇주쉬더니 오래간만에 방송을...
탱크톱복장에 동물들을 매달고 초등학교 앞에서 교통정리를 하는 엿장사아저씨... 지체부자유의 9살아들과 사는데, 아들이 많이 좋아져서 행복하게 사시기를...
머리쪼는 새는 물까치라는 까마귀과의 새인데 새끼를 보호하기위한 모성본능이라고...
뉴질랜드의 잠수함을 만드는 아저씨는 무료한 생활속에 목표를 가지고 도전을 하기 위해서 잠수함이라는 거창한 프로젝트에 도전을 했다는데, 어찌보면 무모하지만 참 대단한 성과를 이룬듯... 난 뭐하고 사나 싶기도...-_-;;
마지막분은 사고로 양팔을 잃었지만, 부인의 내조로 마음을 잡고, 농사를 짓고, 휴계소를 운영하면서 열심히 노력하면서 살아가시는 분의 이야기...
아무리 어려운 환경이라도 자신이 어떻게 마음을 잡고 사는지에 따라서 세상은 참 멋진 세상이 될수도, 지옥이 될수도 있다는것을 잘 느끼게해준 방송

MBC 시사매거진 2580 - 칸으로 간 0점 영화, 과학심리수사 혈흔 분석, 산삼을 찾아서
SBS 스페셜 다큐 - 150일간의 현장추적 산삼의 두 얼굴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597회) 방영일 : 2010-06-24     

[가위손 교통정리맨] 강원도 원주시
꽉 막한 도로, 위험하게 쌩쌩 달리는 차들은 내가 해결한다~
독특한 옷을 입고 신명나게 가위를 흔드는 교통정리맨이 떴다!!

강원도 원주시, 아침마다 도로에 나타나는 의문의 남자가 있다는 제보~
초등학교 앞 도로에서 순간포착 제작진 레이더망에 한 남자가 포착됐는데
빨간 민소매 셔츠에 빨간 반바지... 게다가 알록달록 스타킹을 입은 남자!
양손에는 큼지막한 엿가위를 들고 호루라기를 불고 있는데~
도로위의 가위손이라 불리는 남자. 교통정리맨 손영민씨(43세)
혼잡한 도로, 위험하게 쌩쌩 달리는 차들을 해결하겠다고 나섰는데...
흥겨운 음악에 맞추어 엿가위를 흔들고 씰룩쌜룩 춤도 추며 수신호를 하는데
독특한 복장과 움직임에 운전자, 보행자들 시선집중!!
참새가 방앗간을 못 지나치듯 위험한 도로는 눈뜨고는 못 지나간다는 영민씨
그는 어쩌다 독특한 복장과 행동으로 교통정리를 하는 걸까?
오늘도 어김없이 꽉꽉 막힌 도로를 뻥뻥 뚫기 위해 나선
교통정리맨 영민씨의 사연을 순간포착에서 전해드립니다.

[머리 쪼는 새] 충청북도 영동군
사람만 보면 뒤통수치는 배은망덕한 새들이 있다?!
은혜를 원수로 갚은 까치 부부와의 소리 없는 전쟁 속으로~

집밖에 나가고 싶어도 편히 나오지 못하는 가족이 있다?!
제작진의 방문에도 고개만 빠끔히 내밀 수밖에 없는 웃지 못 할 사연~
마당으로 들어서는 순간~ 제작진의 뒤통수를 치고 지나가는 것은?!
남녀노소 불문! 마당에 사람만 보이면 머리를 치고 도망치는 까치 부부였다!
하루에도 수십 번 친 데 또 치는 터에~ 머릿속에 피가 날 지경~
머리를 치고 빠지는 그들의 폭행은 한집 사는 누렁이도 예외는 아니라고.
특히 꽃넝쿨 한 쪽이 위험 지역! 부부 새의 횡포를 피할 수 없다~
마당에서 일을 하기 위해서는 상자를 뒤집어쓰는 정도의 자체방어는 필수!
집 앞에 둥지를 튼 까치 부부를 환영해준 가족들의 뒤통수를 친 어이없는 상황.
배은망덕한 부부 새~ 은혜를 원수로 갚은 그들과의 소리 없는 전쟁 속으로!!

[나홀로 만든 잠수함] 뉴질랜드 웰링턴
세상에서 딱 하나뿐인 잠수함이 뉴질랜드에 있다?!
5년 간 손수 제작했다~ 드라이 다이브호의 항해 속으로~!!

순간포착 제작진, 놀라운 제보가 있다는 소식에 뉴질랜드로 달려갔는데~
산 넘고 바다 건너, 머나먼 이국에 세상에서 딱 하나뿐인 배가 있다?!
햇빛에 비친 물결이 반짝반짝 넘실거리는 바다 한 폭 판에...
고개를 쏙 내밀고 점...점... 가라앉는 배 한 척을 발견~!!
내려갔다 올라왔다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이 배의 정체는?!
가로 4.3m, 높이 1.3m에 무게는 2.1톤인 드라이 다이브 잠수함.
날씨가 좋으면 수심 20미터 까지도 가라앉는 잠수함의 제작 기간만 무려 5년~!!
신문사에 근무하는 브렌트(47세)씨는 무료한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족의 반대에도 무릎 쓰고 직접 잠수함 만들기에 도전했는데
과~연 드라이 다이브호 잠수함을 타고 넓고 깊은 바다를 항해할 수 있을 것인가?
바다를 누비는 드라이 다이브호의 항해에 순간포착이 함께 합니다

[양손 없는 심마니] 강원도 양구군
약초 캐기부터 양봉까지 두 손 없이도 척척!
23년 산사나이 인생~ 못 하는 게 없는 만능인 김태홍씨를 소개합니다.

사람들이 입을 모아 칭찬하는 강원도 최고의 일꾼~
험난한 산중을 오르고 올라 칡을 캐고 있는 주인공 김태홍씨(55세)를 발견했는데.
삽으로 흙을 파는 모습을 보니 놀랍게도 양팔 아래 부분이 없는 상태!
깊은 산중을 다니며 오직 두 팔로만 산나물과 약초를 캔 지도 무려 23년째~
상처 없이 약초를 캐고 적당한 크기로 자르는 섬세한 작업도 문제없는 베테랑 심마니다.
뿐만 아니라 불편한 몸으로도 토종벌 작업이나 농사, 집안일까지 척척~
30년 전, 전기감전사고를 당해 양손을 잃고 방황하던 아저씨를 붙잡아 준 아내.
주위의 반대에도 지금까지 함께해 준 아내가 있었기에 불가능은 없다고~
가려운 등을 긁는 일만 빼면~ 가족을 위해서라면 양손으로 무엇이든 해내고,
양손으로 하기 어려운 일이면 도구를 만들어서라도 한다는 의지의 사나이.
양손이 없어도 못 하는 게 없는 만능인, 김태홍씨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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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생활의 달인 - 도전 최강 수박,비빔면,세차,수화상담의 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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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 최강 수박의 달인은 조금 어설픈 방식이 아쉽기는 했지만, 대단하신 분들...
비빔면의 달인은 국수맛에 자존심과 인생을 걸은 한분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사람에게 음식으로 감동과 추억을 주겠다고 하시는데, 정말 멋진 마인드에 열정과 노력이 보이는데, 만화 식객에서나 나오는 감동적인 음식점인듯...
수분을 쫙뺀 국수에 더덕을 가지고 만든 비빔냉면을 보는것만으로도 입에 침이 도는데, 비빔장에 비벼먹는 꽁보리밥까지.. 나중에 꼭 가봐야겠다~
세차의 달인은 아픈몸에도 불구하고, 차들을 자신의 차라고 생각하는 프로정신으로 놀라운 세차실력을 보여주시는 분...
마지막의 수화상담의 달인은 말을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다산콜센터에서 일하는 분인데, 남편이 말을 못해서 수화를 배운듯한데, 앞으로도 오래오래 아름다운 가정 꾸미시기를...
음식점 정보는 아래에...


생활의 달인(242회) 방영일 : 2010-06-23     

1. 도전! 최강 달인 - 수박 편
오용호 (35세/ 경력 5년)
경기도 고양시 대화동 <농협 고양유통센터>
한선재 (25세/ 경력 4년)
서울시 강서구 외발산동 <서부청과>
이성대 (30세/ 경력 8년)
서울시 동대문구 제기동 <대농상회>

2. 비빔면의 달인
이재남 (54세/ 경력 12년)
경기도 파주시 <고구려 교하 문발 국수>

다른 블로그의 리뷰

3. 아주 특별한 세차의 달인
김문길 (40세/ 경력 20년)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시화손세차장>

4. 수화 상담의 달인
남상미 (38세/ 경력 13년)
서울시 동대문구 <120 다산콜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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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래 갈매기살, 부속고기 - 저렴하고, 푸짐한 고기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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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녀석이 한번 들려보고 괜찮다고 함께 찾아간 서래갈매기 낙원점입니다.
지하철 5호선 종로3가역 5번출구로 나오면 바로 보입니다.

7시가 조금 넘었는데, 벌써 손님들로 꽉차서 예약을 하고, 기다려야 하더군요...




손님을 위한다는 일념 하나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진정 박리다매로 판매하왼 이점 어여삐 여기시어 맛있게 드시고 세상 만천하에 널리 알려주십시오
서래가족올림 창업문의 010-7605-3450
서래스터라는 회사인데 홈페이지는 아직 없는듯 합니다.




보통 일반 고기집을 200g, 300g 단위로 판매를 하는데, 이곳은 500g, 600g 한근 단위로 판매를 하더군요.
가장 비싼 소갈매기살이 18,000원, 소모듬이 17,000원, 소막창이 16,000원입니다.




먹을거리 메뉴판.. 갈매기살, 부속고기, 모듬, 갈껍이, 껍데기 등의 고기가 있고,
모든 메뉴는 반씩도 판매를 합니다~
냉면, 된장찌개, 공기밥의 식사도 됩니다.


고기 맛있게 먹는 방법에 대한 다양한 방법의 소개도...


부속고기는 염통, 유통, 막창, 껍데기, 오소리감투, 항정살이며
모듬은 부속고기에 갈매기살, 갈껍이는 갈매기살에 껍데기를 합친것으로
국내산, 미국산, 캐나다산 등 국제적인 고기들입니다.


기본 세팅...


갈막이,, 갈항이는 또 뭐지?


주방의 모습...


저희가 시킨 소갈매기살 18,000원짜리입니다.
남자 두명이서 먹기에는 충분하고, 세명이서 먹기에는 조금 모자른듯...




실내홀 내부의 모습...




조금 부족한듯해서 부속고기 1/2을 시켰습니다~






고기에 소주 한잔을 아주 저렴하게 먹기에 좋은듯 합니다.
부속고기는 뭐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갈매기살은 상당히 저렴하고, 맛도 좋더군요...


새마을식당 - 저렴한 가격과 푸짐한 양의 고기집 체인점
KBS 스펀지 천원로드 - 대구 1000원 고기, 대전 천원음악회, 서울 천원 미용실

** 직영매장은 점장과 매니저가 자율경영을 하는 시스템으로 서래갈매기 가맹본부의
직영매장은 <회기점,경희대점,고대점,고대2호점>을 운영중에 있으며,
직원들 스스로 화합하며 운영하는 체제 입니다.
** 석촌호수점도 점장과 매니저는 확정되어 있으며, 시간제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를
모집중에 있사오니 많은 지원 바랍니다.


서래갈매기
인천광역시 계양구 용종동 212-5  032-549-8295 

서래갈매기
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3동 324-72  02-823-5133 

서래갈매기(목동점)
서울특별시 양천구 신정4동 902-1  02-2606-3056 

서래갈매기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관양동 1380-9  031-384-1817 

서래갈매기노량진점
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동 211-47  070-8828-9292 

서래갈매기
서울특별시 강남구 논현동 183-4  02-514-1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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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회기동 60-63  02-967-3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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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화서동 135-17  031-252-5849 

서래갈매기(성신여대점)
서울특별시 성북구 동선동1가 4-5  02-927-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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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의정부시 신곡동 707-10  031-855-0942 

서래갈매기부 속고기
서울특별시 성동구 행당동 317-74  02-2299-0852 

서래갈매기아주대점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원천동 79-20  031-211-8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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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휘경동 191-5  02-967-3451 

서래갈매기(남문점)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교동 3-11  031-253-0340 

서래갈매기
경기도 양주시 덕정동 240-27  031-859-9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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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스토리 페이지 이동 단축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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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 이전 페이지
S : 다음 페이지
Q : 관리자 모드

뭐 다른 단축키도 있는데, 잘 안먹거나, 쓸일이 거의 없다는...
위 3개의 단축키는 상당히 유용한데,
사용할때마다 검색을 해서 자꾸 찾아보게 되서 포스팅을...

특히나 저작권관련해서 블로그의 글을 전반적으로 수정할경우 시간을 상당히 단축할수 있는 유용한 키
암튼 빨랑 외우자...-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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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특별기획 6.25 한국전쟁 - 분단, 전쟁, 북진, 후퇴, 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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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에 대한 10부작 다큐멘터리로 기록필름과 관련 인사들의 증언, 숨겨졌던 진실등을 보여주는 방송
동족상잔의 비극이라는 625에 대해서 다시금 돌이보게 되고, 과연 이 전쟁이 왜 일어났나라는 의미보다, 이 전쟁이 무슨 의미가 있었는지를 생각해보게 된다...
극소수 몇명의 결정으로 수십, 수백만명이 죽어나가고, 머나먼 외국에 파병을 나와서 죽어간 수많은 외국인들..
그들이 죽어간 이유가 자유민주주의 수호나, 공산주의의 승리를 위해서 싸운것인지, 그저 해야만했고, 우리와 자신이 죽지 않기위해서 상대를 죽여야만 했던것은 아닌지 하는 아픔이 느껴진다.
어째꺼나 이런 방송을 통해 역사를 되돌아보고, 다시는 이 땅에 이러한 아픔과 고통은 다시 없었으면 할뿐이다.

꽤 충격적인 사실들도 방송중에 나오는데, 미국이 수세에 몰리자 전쟁에서 빠지려고 했다는 이야기는 알았지만, 인해전술의 중공군이 개입하면서 후퇴를 거듭하고, 피해가 크자 완전히 전쟁을 포기하고, 남한주민 30여만명을 뉴질랜드의 서사모아라는 섬에 정착시키려는 계획도 있었다고...-_-;;


프로그램 홈페이지 - http://www.kbs.co.kr/1tv/sisa/war/program/index.html



1. 분단
한국전쟁은 왜 일어났는가?
美蘇 국제적 세력분할 구도에서 한반도의 운명은 어떻게 결정지어지는가.

희망의 20세기. 그러나 전쟁의 20세기. 제 2 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일본이 물러간 한반도는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강대국 세력 분할의 장이 된다. 스스로 제 운명을 결정할 힘을 가지지 못했던 한반도에 불어온 미소대결이라는 국제양상은 한반도를 역사의 회오리 속으로 몰아넣는다.

긴장이 흐르는 미국과 소련의 점령경계선. 38선. 소련은 일제강점기에도 자유로웠던 한국인의 남북간 통행을 차단했다.

1945년 겨울. 미국은 한반도에 4개국 신탁통치를 제안했다. 해방 이후 독립국가 수립을 염원하던 한반도는 큰 충격을 받는다. 토지개혁 등 체제정비에 박차를 가하던 북과 탁치 논쟁에 이어진 대규모 반탁운동에 휘말린 남. 유혈사태로 번진 38선 이남의 좌우대립과 격렬한 갈등. 1946년, 미군정이던 남한 내의 좌익세력은 이미 크게 공격받고 있었다.

주요 인터뷰
박갑동 (前 남로당 박헌영 비서)
백선엽 (前 육군참모총장)
정상진 (前 북한 문화성부상)
리차드 알렌 (前 백악관 안보보좌관)


2. 전쟁의 시그널
서울을 수도로 한 두 개의 정부 수립.
38선을 두고 마주한 남과 북,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다!

1949년, 38선에선 이미 작은 전쟁이 시작되고 있었다. 미소군의 철수로 남북의 대결 무대가 된 38선. 1949년부터 1년 반 동안 38선 부근에선 무려 750건이 넘는 전투가 벌어졌다. 전쟁의 신호였다.

1950년 1월, 북한, 소련, 중국의 공산주의 삼각동맹이 형성됐다. 김일성은 스탈린과 마오쩌둥과 함께 은밀히 전쟁을 준비한다. 전쟁은 카운트다운만을 남긴 상황. 당시 북한의 남침 정보는 무수히 쏟아졌다. 한국전쟁은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왜 한국정부와 미국은 그 어떤 대비도 하지 않았던 것일까.

한반도에 들어선 두 개의 정부는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지 않았다. 분단된 영토와 대립된 이데올로기로 파국으로 치닫는 한반도. 전쟁의 먹구름이 짙게 드리워지고 있었다.

주요 인터뷰
박명림 (연세대학 교수)
박태균 (서울대학 교수)
정병준 (이화여자대학 교수)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학 교수)
센즈화 (상해화동사범대학 교수)
와다 하루키 (도쿄대학 명예교수)
윌리엄 스툭 (조지아대학 교수)
제임스 퍼슨 (우드로윌슨센터)


3. 폭풍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암호명 '폭풍'. 한국군은 제대로 방어할 새도 없이 무너졌다. 북한의 기습, 미아리 방어선의 붕괴, 한강교 폭파. 6월 28일 새벽 5시, 인민군의 서울 입성. 개전 3일만이었다. 이어진 북한의 공격은 약 1달 만에 경상도의 일부를 제외한 전 남한을 장악했고 1950년 한반도의 여름은 '폭풍'처럼 몰아친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든다.

인민군은 어떻게 그렇게 빨리 남하할 수 있었는가. 개전 직후 미국과 소련의 반응은 어떠했으며 전쟁을 대하는 한국 정부의 자세는 어떠했는가. 국군은 인민군에 밀려 일방적인 후퇴만을 거듭했는가. 국군은 인민군에 어떻게 맞섰는가.

영천 수복과 함께 전쟁의 위기는 한차례 물러가는 듯 했다. 6월 25일 개전부터 치열했던 50년 여름에 대한 역사적 기록. 그러나 전쟁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주요 인터뷰
김재식 (한강교 폭파 지휘관, 전 전남지사)
김종면 (예비역 준장)
김종필 (前 국무총리)
박정인 (前 3 사단장)
오치성 (前 내무장관)
유재흥 (前 국방장관)
이대용 (前 주월공사)

4. 북진
인천방어지구사령부: 북한은 인천상륙작전을 알고 있었다!
인천에서 서울까지 13일, 서울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질풍 같은 북진: 38선을 넘느냐 마느냐의 딜레마에서 압록강 점령까지

D-DAY, 1950년 9월 15일. 작전명 '크로마이트'. 인천상륙작전. 한국전쟁의 새로운 반전이었다.

인천에 상륙한 UN군이 서울을 수복하는 데 걸린 시간은 13일. 인민군은 강렬하게 저항했고, 이로 인해 UN군은 인천에서 서울까지 가는 데 13일이 걸렸다. 이 기간 동안 인민군은 남한 내 주요 병력을 철수하고 주요 인사들을 비롯한 각종 서적과 문서들을 북으로 이송시켰다.

9월 28일 처음의 전선을 회복한 UN군과 국군은 38선 이북으로 진격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미국국가안전보장회의의 북진 결정과 함께 UN군과 국군은 평양을 탈환하고 압록강까지 진격한다. 서울을 잃은 지 불과 넉달 만에 평양에 입성한 그들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남한은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가 북한으로 행정권을 확대한다는 입장이었지만, 38선 이북지역은 군정을 해야 한다는 UN의 입장은 강경했다. UN군과 국군의 입장 차이로 생겨난 행정의 공백에서 북한 주민들은 갖가지 혼란 속에 방치됐다.

질풍 같은 진격이었다. 압록강을 점령하고 만주 땅을 바라보며 승리의 감격에 도취되어 있던 UN군과 국군. 그러나 그것은 전쟁의 끝이 아니었다.

인천상륙작전 이후 다시 38선에 선 UN군과 국군이 압록강까지 숨가쁘게 몰아쳤던 북진 시기의 전쟁 양상을 살펴본다.

주요 인터뷰
공병식 (前 해병대 사령관)
유재흥 (前 국방장관)
이대용 (前 주월공사)
스탠리 와인롭 (펜실베니아대학 교수)
워렌 위드한 (미 해병 예비역 대령)


5. 후퇴
미국은 중국의 참전을 예상했나: 맥아더와 트루먼의 웨이크회담
소련은 왜 참전 사실을 은폐하려 했는가
한국전 당시 핵무기 투하에 관한 미극동사령부 문서가 존재한다!

10월 19일. 중국군이 드디어 압록강을 넘었다. 미 국가안전보장회의의 결정으로 UN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하자 위협을 느낀 중국은 한국전 참전을 결정한다. 이로써 한국전쟁은 또 다른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뒤이은 소련 공군의 비밀스러운 참전. 중국군은 UN군이 이제껏 싸워왔던 적과는 전혀 다른 군대였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미국은 결국 원폭투하라는 극단적 처방을 심각하게 고려한다.

이제 더 이상 한국전쟁은 한반도 남북간의 싸움이 아니었다. 동족상잔의 국내 전쟁에서 동서 진영의 여러 국가가 참전한 국제전으로 완벽하게 변모해갔다. 수많은 나라들의 이해관계가 얽혀있었다.

1951년 4월, 중국군의 춘계 대공세로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지며 전선은 고착화됐다. 중국군의 병력과 UN군의 대규모 화력전은 어느 쪽도 상대를 쉽게 무너뜨릴 수 없었다. 더 이상 군사적 승리를 기대할 수 있는 싸움이 아니었다. 한국전쟁은 어느 일방의 의지로는 해결할 수 없는 싸움이 된 것이다.

주요 인터뷰
백남권 (예비역 소장)
백 선엽 (前 육군참모총장)
머레이 케이어 (미 10군단 소령)
센즈화 (상해화동사범대학 교수)
아라 다카시 (나가노 단키대학 교수)
아카기 간지 (게이오대학 교수)
예브기니 바자노프 (러시아 국립외교아카데미 부원장)
와다 하루키 (도쿄대학 명예교수)
주지안롱 (가쿠슈인대학 교수)


6. 또다른 전쟁
전쟁을 끝내기 위한 휴전협상,
그러나 전쟁의 망령은 끈질겼다.

휴 전협상은
승리의 명분을 찾기 위한 또 다른 전쟁이었다.

1951년 6월, 전쟁이 시작된 지 꼭 1년 만에 유엔군과 공산군은 38선 부근에서 다시 만났다. 양측은 더 이상 무력으로는 상대를 굴복시킬 수 없음을 깨달았다. 휴전협상의 신호였다. 협상이 시작되기만 하면 전쟁은 곧 끝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협상은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포로 협상은 휴전회담의 최대 걸림돌로 떠올랐다. 전쟁은 수많은 포로들을 배출했고, 그들의 처리가 가장 큰 문제였다. 먼저, 공산측은 전원송환을 주장했고 유엔 측은 포로들의 자유의사에 따르자는 자유송환으로 맞섰다. 군사적 승리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도덕적 승리는 체제 우위를 증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한편 거제도에서는 포로수용소장이 친공 포로들에게 납치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수용소의 최고 책임자가 포로들의 포로가 된 사건. 이 사건으로 미국의 위신은 땅에 떨어졌고, 포로수용소는 순식간에 친공 포로와 유엔군의 전장으로 변했다.

유엔 측은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군사적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북한에 대규모의 폭격이 가해졌다. 그러나 포로송환 방법을 둘러싸고 양측은 끝내 타협점을 찾지 못 했다. 1952년 10월 8일, 유엔 측은 무기한 휴회를 선언했다. 휴전회담은 또 다시 긴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다.

주요 인터뷰
백선엽 (前 육군참모총장, 휴전협상 초대 한국대표)
이상조 (휴전협상 공산측 대표)
알레이 버크 (휴전협상 UN측 대표)


7. 전쟁의 그늘
전쟁은 삶을 한순간에 바꿔놓았다.
부 모 사랑 듬뿍 받던 아이가 고아가 되었고
농사를 천직이라 여기던 농부는 좌판 상인이 되었다.
피부색이 검고, 흰 아이들이 태어나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남한 정부의 임시수도, 부산. 가장 안전한 곳을 찾아 밀려드는 피난민들로, 47만이던 부산인구가 순식간에 100만으로 늘어났다. 당시엔 갖춰진 집을 가진 사람보다 시레이션 상자로 만든 임시 집을 가진 사람이 더 많았다. 집이 없는 설움보다 더 큰 고통은 배고픔이었다. 종교단체에서 식량을 배급할 때면 으레 아귀다툼이 일어났다. 내가 먼저 살고 볼 일이었다. 굶는 날이 많아지자, 미군부대 음식쓰레기로 끓인 꿀꿀이죽도 먹을 만 했다. 사람들은 점차 피난살이에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오랜 피난살이는 고달팠다. 그러나 배움터에서만큼은 늘 웃음이 가득했다. 산, 개천, 묘지, 약탈당한 건물 안, 남녘땅 어디를 가든 그곳엔 학교가 있었다. 모든 것이 파괴되고 약탈당할 수 있지만, 학력은 사라지지 않는 재산이었다. 교육은 한 줄기 희망이었고, 그것이 사람들을 살게 했다.


8. 정전
2년 여 동안의 휴전협상,
그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서야 전쟁은 끝이 났다.

1953년 3월 5일, 스탈린이 사망했다.
휴전을 서두르지 말라고 지시하던 공산권 최고 통치자의 죽음. 중국과 북한은 이제 그만 전쟁이 끝나기를 바랐다. 공산 측이 먼저 움직였다. 겨우내 교착상태였던 휴전회담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치열하게 대립한 포로협상. 포로협상은 무려 18개월 동안 계속됐다. 결국 포로송환방법은 포로들의 의사에 따른 자유송환으로 결정됐다. 그러나 포로협상 과정에서 배제된 ‘또 다른 포로들(한국군 포로, 신 빨치산)’이 미제로 남게 됐다.

1953년 7월 27일, 전 전선에서 포성이 멈췄다. 미국, 북한, 중국 대표들이 휴전협정문에 서명했다. 그러나 전쟁 당사국인 남한의 이승만 대통령은 끝내 협정문에 서명하지 않았다.

자그마치 1년 4개월을 끈 포로협상. 이승만의 ‘반공포로 석방’. 미국에 의해 계획됐으나 불발된 에버레디 계획(이승만 제거 계획). 남과 북 어느 쪽으로도 돌아가기를 거부하고 제 3국행을 택한 88명의 포로들. 그리고 북한에 억류돼 아직까지 돌아오지 못 한 약 5만 여명의 한국군 포로들의 삶을 통해 휴전협정 조인까지의 과정을 조명해본다.

전쟁은 끝이 났지만, 정전이 온전한 평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9. 끝나지 않은 전쟁
남북 간의 충돌에서 시작해, 미소 대리전의 양상으로 전개됐던 한국전쟁,
1953년의 휴전은 완전한 평화를 의미하지 않았다. 지금도 전쟁의 그림자가
드리 워진 이 땅에서, 한국전쟁은 끝나지 않은 전쟁이다.

마침내 한국전쟁은 끝났다. 남과 북은 저마다 자기가 승리한 전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해방직후 38선으로 분단됐던 한반도는 그 이름만 휴전선으로 바뀐 채 세계 유일의 분단국으로 남겨졌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결말이었다.

경제 . 사회 . 문화등 모든 측면에서 개방화의 길을 선택한 남한과 폐쇄적인 독자노선을 걸으며 주체사상에 입각한 사회주의 체제를 형성한 북한, 두 정권은 서로에 대한 강한 부정과 대립을 통해 자신들의 정권 안정을 도모한다.

80년대 말 동서냉전이 끝났다. 남북 분단의 근원이자 한국전쟁으로 공고화되었던 냉전 해체의 흐름 속에서 남한은 이른바 북방외교에 성공하며 러시아, 중국과의 국교 정상화를 실현한다. 이어서 남북한이 동시에 UN에 가입함으로써 남북 관계에 대한 변화의 기대가 커진다.

그러나 93년 북한 핵개발 의혹은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려놓았다.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미국의 초강수 속에 한반도는 한국전쟁이후 최대의 위기에 놓인다. 평화와 전쟁을 사이에 두고 위태로운 줄타기가 계속되는 한반도, 한국전쟁 60년을 맞이하는 지금도 우리에게 한국전쟁은 '끝나지 않은 전쟁'이다. 우리는 이 전쟁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주요 인터뷰
고르바초프 (前 러시아 대통령)
최호중 (前 외무장관)


10. 에필로그 반성
전쟁을 경험한 이들의 기억속에서
한국전쟁 은 어떤 모습으로 각인되었나?
그들에게 한국전쟁은 무엇이었나?

전쟁세대의 목소리를 통해
한국전쟁이 우리에게 남긴 교훈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전쟁이후 60년의 세월이 흘렀다.
총을 들고 전쟁터를 누볐던 청년은 백발 성성한 노인이 되었다.
피난길에 부모를 잃고 떠돌던 소녀는 그 또래의 손녀를 가진 할머니가 되었다.

전쟁 세대들의 기억속에서
한국전쟁은 어떤 모습으로 각인되었나? 그들에게 한국전쟁은 무엇이었나?

낯선 이국땅에서 처음 마주친 고지전투의 기억은
파란 눈의 노병의 꿈에서 지금도 ?고 ?기는 악몽으로 되살아난다
살기위해 떠나온 고향땅, 다시는 가볼 수조차 없게 된 그 곳을 생각하면
가슴부터 먹먹해져오는 사람들이 들려주는 전쟁의 기억들...

그들의 사연들을 통해
한국전쟁이 우리에게 남긴 교훈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6.25전쟁 60주년 기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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