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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마다가스카
  4. 주먹이 운다, 권투와 삶을 그린 최민식 류승범 주연의 한국영화
  5. Kaleido Star
  6. H2 - 너와 함께했던 날들 2
  7. 포레스트 검프 - 행복이란 어디에서 오는것일까

나스, 안달루시아의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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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다.. 감동적이다.. 그런거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보고 밖으로 나가서 자전거를 타고 한바퀴 돌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을 느꼈습니다.. 충동만...-_-;;

몇일전 30도가 넘는 기온에 대낮에 자전거를 타고 한강고수부지를 돌아다니던 기억이 납니다...

덮다라기 보다는 시원한 느낌이 그날의 느낌.. 이열치열이라고 할까요...

그런 느낌의 잛지만 강렬한 단편 애니였습니다...

ps.
고향땅을 달리는 주인공 페페... 지난 과거와의 단절... 기다림...

이제는 더이상 물러설곳이 없는 상황에서 폭주를 해서 현재의 위치에서 뛰쳐나가서 선두로 나서는 페페...

우승을 한 후에 산 정상에 올라 고향땅을 바라보는 페페...

시간이 흐른후에 과거를 회상하는 페페...

그리고 나...



"속도와 성찰, 인간 내면을 멋지게 잡아낸 작품!"

자전거 장거리 레이스는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유럽에서는 많은 이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인기 스포츠 중 하나이다. <나스 안달루시아의 여름(茄子アンダルシアの夏)>은 세계 3대 자전거 레이스로 알려진 스페인의 '벨타 아 에스파냐(Vuelta a Espana)'를 무대로 한 단편 애니메이션 영화이다.

열광적인 팬을 거느리고 있는 쿠로다 이오우(黑田硫黃) 작가의 만화 <나스(茄子)> 중 1편을 원작으로 미야자키 감독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風の谷のナウシカ)>의 원화, <원령공주(もののけ姬)>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千と千尋の神隱し)>의 작화감독으로 스튜디오 지브리(スタジオジブリ)에서 일해 온 애니메이터 코우사카 키타로(高坂希太郞)가 감독했다.

영화는 부진한 레이서 페페(ペペ)는 레이스 도중 해고 통보를 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골인 지점은 오래 전 페페가 버리고 왔던 안달루시아(アンダルシア)의 고향 마을이다. 게다가 그 곳에서는 형과 옛 연인의 결혼식이 열리고 있다. 페페는 어떤 의지를 느끼며 골인 지점을 향해 달려간다.

승패를 결정짓는 것은 실력이 아니라 의지와 팀 플레이라는 레이스에 대한 깊은 성찰과 뜨거운 태양빛을 받으며 골인을 향해 달려가는 선수들의 심리를 스피드감 있는 영상과 애니메이션 만의 리얼리티로 그리고 있다. 또한 페페가 안고 있는 자전거 경주와 고향에 대한 복잡한 심경까지도 그 위에 실어 밀도 높은 작품으로 완성하고 있는 것이다. 짧은 런닝타임 속에서 자전거 레이스가 보여주는 긴박감과 속도감, 주인공 페페의 형과 옛 애인의 관계를 분명하면서도 효과적으로 표현한 완성도 높은 작품임에 틀림없다.



뜨거운 태양아래에서 레이서로서의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인 주인공 페페.
이제는 자신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자전거와 지난 시절, 형인 앙헬과의 사연이 얽혀있는, 어쩌면 벗어나고 싶었던 고향, 안달루시아의 한 마을은 주인공 페페가 꼭 통과해야만 하는 결승점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페페가 자전거 위에서 되뇌는 '멀리 가고 싶다.'라는 말은 이뤄질 수 있을까?

쿠로다 이오우의 만화 <나스>중 1편인 '안달루시아의 여름'을 애니메이션화 한 이 작품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원화, <원령공주>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작화감독인 코우사카 키타로의 첫 작품이다.

사실, '1시간도 안 되는 런닝타임 안에서 싸이클 경기를 만족할만큼 보여줄 수 있을까'라는 의문으로 보기 시작하였지만 <나스 안달루시아의 여름>은 자전거 레이스가 보여줄 수 있는 속도감을 기존의 스포츠 장르 애니메이션과 달리 사실적인 움직임으로 보여주고, 주인공 페페의 상황에 대한 갈등 또한 압축적이면서도 효과적으로 그려낸 완성도 높은 작품이다.

<나스 안달루시아의 여름>. 이 더운 여름에 아무 때나 잘 나오는 에어컨 바람과 같은 시원함이 아니라 울창한 숲 속을 천천히 걸으면서 느낄 수 있는 따스하면서도 상쾌한 바람을 찾는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지브리 출신의 거장(후보)?

 "지브리 출신의 크리에이터 중에서 주목하고 있는 인물이 있다!"고 적었었습니다만, 그 주목하고 있는 인물이 대체 누구인지. 그리고, 그의 작품은 어떤 게 있는지 적어보겠습니다. (제목은 장난스럽게 적어 봤습니다만, 거장 후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제 생각일 뿐입니다(웃음))

 주목하고 있는 사람은 누군가 하니, 조금은, 아니 많이 생소한 이름이겠지만 "가지, 안달루시아의 여름"의 감독 코사카 키타로(高坂希太郞)씨입니다. 이제부터 그의 작품인 가지, 안달루시아의 여름에 대해 조금 적어 보겠습니다만,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작품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적어대는 이유가 뭐냐!"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군요. 이유가 없지는 않습니다(폭소). 그 이유는 글의 말미에.

     ("가지, 안달루시아의 여름" 작품소개)

     

나스(가지) 안달루시아의 여름茄子 アンダルシアの夏(2003)일본 / 47분

dramadirected by 코사카 키타로 (高坂希太郞)
original story by 쿠로다 이오 (黑田硫洋)
screenplay by 코사카 키타로 (高坂希太郞)
[CAST]오이즈 미요 (大泉洋), 코이케 에이코 (小池?子), 히라노 미노루 (平野稔)


 제가 이 작품을 보고 나서 받은 느낌은, 일본에선 이런 아니메도 만들 수 있구나..라는 것이었습니다. 감동이나 벅찬 감정, 뜨거운 느낌 같은 것은 없었지만, 일본 아니메에 대한 감탄이랄지, 동경이랄지. 그런 느낌을 간만에 느끼게 된 작품이었습니다.

 보면서 자꾸만 바람계곡의 나우시카가 생각나더니.. 감독의 경력을 보니 나우시카와 연결이 되어있긴 하더군요. 나우시카 작화진에 참여했었습니다.(작중 영감님이 수리공에게 빼앗아 쓴 고글을 보고 제국병사들의 그것을 떠올린 게 저만은 아닐 겁니다(웃음))

 "지브리 출신 중에 이름을 알리는 감독은 없는가?"라는 저의 의문에 멋진 대답을 보여 준 코사카 키타로(高坂希太郞) 감독은 "귀를 기울이면"이나 "모노노케히메(원령공주)",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으 작화감독으로 실력을 인정받은 감독으로, 가지, 안달루시아의 여름이 감독 데뷔작입니다. "가지, 안달루시아의 여름"의 홈페이지의 설명에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에게 이걸 아니메화하자고 끈질기게 졸랐으나 미야자키 감독이 "나는 만들 수 없는 작품이니 자네가 만들게"라는 말을 해 결국 직접 감독을 맡아 만들게 되었다고 합니다.(물론 액면 그대로 믿을 수야 없지만 말이죠(웃음))

 간단하게라도 스토리를 설명해 보자면, 주인공 페페는 프로 사이클 선수로. 고향인 안달루시아에서 열리는 대회에 참가합니다. 그리고 대회가 끝납니다. 끝.(어이;;)

 너무 간단했나요?(웃음). 물론, 대회만 보여주는 건 아니지요. 대회의 진행을 보여주며 페페의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나 그의 과거이야기를 보여줍니다. 놀라운 것은, 경기를 "완전히" 보여준다는 것이지만 말이죠.(알쏭달쏭한 말이군요. 명확하게 설명드릴 순 없습니다. 그 이유도 글의 말미에)

 원제목의 "나스"는 가지(먹는)를 뜻합니다. 페페의 고향인 안달루시아에선 가지요리가 명물이지요. 젊은 날의 쓰라린 기억을 안고 고향을 떠났던 주인공은 가지를 먹는 것으로(라고 하면 이상하지만) 고향과 화해합니다만, 과연 그게 중심이 되는 것인지는...(글쎄요?라고 해야겠습니다) 아무튼 1시간짜리 작품이 순식간에 지나가버리는 그런 작품이면서, 무겁게 뭔가 남기고 가는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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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병기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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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무슨 제목이 이래 하면서 보게되었는데... 아주 재미있고, 감동적이다라기 보다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만들어준 애니였습니다.
그리고 한가지 또... 총 13부작을 보는 내내 나의 지구를 지켜줘라는 애니가 생각이 났습니다.
초능력을 가진 주인공... 이루어 지지 못해서 애절한 사랑... 자신들의 별이 전쟁으로 사라지고... 동료들은 모두 죽고 혼자 달에 남겨져서 7년간 증오와 절망에 살아가는 주인공...
예전에 나의 지구를 지켜줘를 보면서도 많이 생각하게 됬지만...
과연 내가 치세의 남자친구인 슈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에 이래저래 머리가 복잡하네요...

그리고.. 누군가가 생각나는 애니이기도 합니다...



"이 세계에서의 마지막 러브 스토리"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다카하시 신의 작품

<최종병기 그녀>입니다.


예전에 다카하시 신의 대표작 <좋은 사람>을 읽을때, 무엇보다도 그의 예쁜 펜선, 그리고 그것이 그려내는 착한 사람들을 보면서 그저 행복해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다음 작품 <최종병기 그녀>는 '최종병기'라는 단어가 암시하듯 그렇게 행복하지만은 않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작품에서는 전쟁이 일어나고, 메카닉이 등장하는 등 SF적인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도 작가는 작품이 '러브 스토리'임을 강조합니다.


그렇다면 아주 슬픈 러브 스토리인건가요? 하지만 저는 작품을 읽으면서 슬프다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안타깝더군요.


정말 가슴이 답답할 정도로 안타까운 러브 스토리, 그것이 <최종병기 그녀>인 것 같습니다.


                     "지금부터 우리 서로 좋아하는 사이가 되지 않을래?"

일본 훗카이도의 고교생 '슈지'와 '치세'는 사귀기로 하였습니다. 육상부이고 공부를 잘하는 슈지는 무뚝뚝한 성격입니다. 스스로를 거칠게 표현하지만, 사실은 너무 여린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치세를 보면 안타깝습니다. 147cm의 작은키에 모든일에 자신감을 가지지 못하는 아이, 어딘지 모르게 다소 모자란 듯 보이는 마이, "미안해, 미안해..." 하루에도 10번이상 미안하다고 말하는 아이...

                       

"우린 서로 사랑하고 있다."

둘은 보기 좋은 사랑을 시작합니다. 그것은 보고 있으면 뿌듯하고 대견스럽다는 생각이 들게 될 정도로 정말 예쁜 사랑이었습니다. 하지만, 작품 초반부를 감싸고 있는 이렇게 깊게 사랑하고 있다는 분위기는 후반부의 슬픔을 더욱 안타깝게 만들어버립니다.

                     

                 ...미안해, 슈... 나... 이런 몸이 되고 말았어...


         


이유없는 전쟁속에서 적을 파괴하는 인간병기의 모습으로 성장해가는 치세, 그런 자신의 모습에 혼란스러워 하며 미안해하는 치세, 그리고 그것을 슬픈눈으로 지켜볼수 밖에 없는 슈의 모습을 작품 후반부에서는 그리고 있습니다. 서로의 교환일기, 그 안타까운 독백속에서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요? 슬픔에 눈물을 펑펑 흘렸다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저는 "왜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거지?" 하면서 답답해했던 기억이 납니다. " 미안해 사랑하고 싶어, 미안해 살고 싶어! "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 세상에 미안하다는 단어만큼 사람을 답답하게 만드는 단어도 없는 것 같습니다. -_-


 


오는 7월부터 드디어 <최종병기 그녀>의 TV 애니메이션 판이 일본에서 방영되기 시작합니다. 오늘 그것의 소개 프로를 보았는데, 정말 오랬만에 방영이 기다려지는 애니메이션이 하나 생긴 것 같습니다. 과연 애니메이션이 그렇게 작품속의 사랑하고, 사랑받는 느낌을 표현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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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다가스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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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렉을 만든 회사에서 만든 야심작이라고 하는데... 그다지 재미는 없는듯합니다...

이 영화를 변화의 관점에서 보겠습니다...

뉴욕의 동물원에서 슈퍼스타로 있는 4마리의 친한 주인공의 동물들중에

자신의 무늬가 검은바탕에 흰무니인지 흰바탕에 검은무늬인지 정체성에 고민하던 얼룩말이

뉴욕 동물원을 탈출해서 남극으로 가려는 팽귄들과 이야기를 나눈후에 자신도 야생으로 돌아가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 실천에 옮기려고 한다.

당연히 주위의 반응은 팽귄들은 사이코들이고, 그런 쓸데없고 미친 생각은 하지 말라는 친구들의 충고들...

하지만 자신의 꿈을 위해 동물원을 떠나는 얼룩말과 자신들이 남극으로 가겠다는 꿈을 위해 배를 납치해서 떠나는 팽귄들을 보면서...

과연 나는 어디에 속해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실에 안주하고 있을까... 변화를 위해서 싸이코라는 말을 들으면서 노력하고 있을까... 꿈만 꾸고 있을까라는...


센트럴파크 동물원의 인기절정 뉴요커 4인방

사자 알렉스(벤 스틸러)는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는 뉴욕 센트럴파크 동물원 최고의 인기 스타. 타고난 품종은 정글의 왕이지만 사실 알렉스는 동물원 인기 스타인 자신을 자랑스러워하고 정글 구경은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정통 뉴욕 토박이다. 알렉스의 친구들인 얼룩말 마티(크리스 록)와 기린 멜먼(데이비드 쉬머), 하마 글로리아(제이다 핀켓 스미스)도 온실 속 화초처럼 동물원의 안락한 생활이 익숙하기만 한데...

탈출은 꿈꾼 적도 없는 데 미지의 정글 마다가스카로?!

그러던 어느 날, 호기심 많은 마티가 그들의 고향 남극으로 탈출기회만을 노리는 정체불명 펭귄 특공대의 꾐에 빠져 야생에 대한 동경을 안고 외출을 시도한다. 알렉스와 친구들은 사라진 마티를 찾기 위해 동물원 밖으로 나가게 되고, 사람들에게 발견된 동물 4인방(사실은 뉴요커 4인방)은 갑갑한 동물원 탈출을 모의했다는 오해 아닌 오해를 받은 채 아프리카로 향하는 배에 오르게 되고...

정글보다 도시가 더 좋은 뉴요커 4인방의 정글 탈출기!

뉴요커 4인방이 포획된 배를 남극을 향한 배로 오인한 펭귄 특공대는 재빠르게 선박을 접수하고 항로를 바꾸는 사이, 4인방이 갇혀 있던 상자가 바다로 떨어지면서 알렉스와 친구들은 미지의 정글 마다가스카에 표류하게 된다.
지금까지 안락한 뉴요커의 삶을 살아온 이들이 과연 거친 야생의 정글 마다가스카에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다시 센트럴파크의 동물원으로 돌아갈 것인가?

정글보다 도시가 더 좋은 뉴요커 4인방의 험난한 정글 탈출기는 이제부터 시작된다!!

ps. 기린 목소리의 주인공은 프렌즈의 로스라고 하네요...^^;;


"도시 생활에 익숙한 현대인이 오지에 던져진다면 어떻게 될까?" 이 아이디어가 자연스레 애니메이션 프로젝트로 발전됨에 따라 이들은 현대인을 문명화된 동물로 바꾸었고, 그 이후 제작 과정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1950~60대 뉴욕의 실제 동물원을 무대로 네 캐릭터를 만들어 냈고, 문명의 도시인 뉴욕의 이미지와는 철저히 상반되는 비문명의 공간으로 아프리카 남동부에 있는 마다가스카를 찾아내기에 이른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마다가스카였을까? 처음 <마다가스카>의 제작진들은 마다가스카가 아닌, 이를테면 콩고나 수단같은 아프리카 내부로 이들을 보낼 것을 고려했었다. 하지만 과거 할리우드의 영화들에서 아프리카는 이미 너무 많이 배경으로 등장했었기 때문에, 다소 식상한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그 결과 이들은 ‘마다가스카’라는 이름의 섬을 떠올렸다. 실제로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마다가스카가 실제로 존재하는 섬인지조차 반신반의할 정도로, 미국인들에게 있어 마다가스카는 철저히 미지의 공간이다. 이 점은 <마다가스카>를 만들어낸 그 수많은 애니메이터들이 그들의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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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이 운다, 권투와 삶을 그린 최민식 류승범 주연의 한국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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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엄청난 기대를 하고 봐서 그런지 엄청난 실망을 했습니다.

인생의 바닥에 떨어진 두사람의 대결이라는 설정까지는 좋았지만... 거기까지 였습니다.

근데 혹시 이 장면을 보게 된다면 아래의 글을 읽고 마지막 시합장면을 다시 한번 보시면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올듯 합니다.

정문술씨의 왜 벌써 절망합니까의 한부분입니다.

자네 복싱 좋아하나?

나는 권투를 좋아한다. 프로권투 신인왕 전에 매번 참가한다는 어느 중년의 의사처럼 내가 직접 권투를 즐긴다는 뜻은 아니다. 이렇다 할 경기라면 그저 빼놓지 않고 시청하는 정도의 권투 팬 이라는 이야기이다. 요즘이야 농구다 야구다 해서 복싱 팬들이 많이 줄었지만 몇 년 전가지만 해도 문성길, 유명우 같은 유망주들의 경기가 제법 인기를 끌었다.
대기업에서 멀쩡하게 직장생활 잘하던 후배가 어느 날 갑자기 사무실로 찾아와서는 창업을 하겠다며 조언을 구했다. 반도체에 재활용 사업이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나름대로 시장조사도 자세하게 해보고 여기저기 견학도 꽤 다닌 모양이었다. 그러나 나는 엉뚱한 이야기부터 꺼냈다.
"자네 복싱 좋아하나?"
내가 조언을 해줘야 한다면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경영자라면 권투에 임하는 복서들의 마음가짐을 배워야 한다고 나는 생각해왔다. 복싱은 특히 기업경영과 닮아 있는 스포츠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때 가지게 되는 기대감이나 의욕은 모두가 똑같다. 다만 절망과 고독을 함께 준비하고 잇는 사람은 드물다. 내가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은 바로 그것이었다.
늦깎이 사업가가 성공할 수 있는 길은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고 틈새를 개척하는 '거꾸로 경영'이란 말 그대로 동지가 없는 외로운 실험이다. 모든 것은 나의 판단과 결정에 달려 있다. 결과에 대한 책임도 완전히 내 몫이다. 복서의 고독한 투혼을 배워야 버틸 수 있다. 거꾸로 경영이란 그런 것이다.
성공한 선배에게 그럴 듯한 경영 노하우라도 얻어들을까 싶어 찾아왔을 그 친구가 의아스런 표정을 짓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나는 권투 이야기를 계속했다.
"다른 스포츠라면 하는 것도 보는 것도 별로인데, 권투 하나는 무지 좋아하네."
"...."
사각 링은 복서들에게 천국이며 지옥이다.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승리하며 둘 중 하나는 반드시 패배해야만 하는 것이 바로 권투이다. 물론 무승부라는 것도 있긴 하지만, 여전히 선수들은 아무런 도움도 없이 오로지 혼자 힘으로 상대방과 싸우고 자신과 싸워야 함에는 변함이 없다. 사업을 하는 데 있어서도 항상 승리와 패배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중간한 생존에 만족하는 경영자라면 그는 이미 패배한 것이나 다름없다. 특히 기술개발을 생명처럼 여겨야 하는 벤처기업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기술개발에 차선은 없다. 벤처기업은 항상 남들보다 새로운 기술과 제품을 개발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권투에 임한 복서들처럼 오직 승리 아니면 패배만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시작부터 실패를 염두에 두는 경영자는 적다.
"코너에서 매니저가 아무리 약을 써보게. 매니저는 결국 아무 것도 몰라. 당장 나는 피 튀기며 싸우고 있는데 제까짓 것들이 아무리 떠들어봐야 귀에 들어오지도 않아. 그런 소리나 듣고 있다간 한 순간에 쓰러져. 언제나 혼자라는 걸 명심하게. 외롭고 고통스럽지. 더구나 자넨 늙은 복서 아닌가? 쓰러트릴 확률보다는 스러질 확률이 더 많겠지. 자네도 사업을 하려면 권투를 자주 보게."
내가 권투경기를 통해 지켜보고 있는 것은 복서들의 주먹질이 아니다. 복서들은 서로의 얼굴을 노려보며 주먹을 날리지만, 결국 그들은 스스로의 고독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중이다. 승세를 타고 있을지라도 복서들의 얼굴은 항상 절망과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다. 1라운드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둘 중 하나가 쓰러질 때까지 그들은 각각 혼자일 수밖에 없다. 그것도 행복한 혼자가 아니라 아주 고통스러운 혼자인 것이다. '거꾸로 경영'이란 말 그대로 동지가 없는 외로운 실험이다. 모든 것은 나의 판단과 결정에 달려 있다. 결과에 대한 책임도 완전히 내 몫이다. 복서의 고독과 투혼을 배워야 버틸 수 있다. 복서들은 서로의 얼굴을 노려보며 주먹을 날리지만, 결국 그들은 스스로의 고독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중이다.


벤처는 고독한 것

나는 평소에 과묵한 편이다. 특히 집에 있을 적에는 거의 말이 없는 편이다 그런데 아내와 아이들이 신기해하면서도 재미있어 하는 나의 모습이 있다. 권투경기를 시청할 대의 내 모습이다. 유독 권투경기를 볼 때만은 나도 모르게 흥분해서 헛손질을 하거나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게 된다. 경기가 끝나면 나는 제일 먼저 화장실을 찾는다. 가족들 얼굴 보기가 무안하기 때문이다.
내가 프로권투를 보면서 쉽게 흥분하는 것은 나의 일 같지 않기 때문이다. 한 판의 권투시합은 내가 걸어온 길고 걸어가야 할 길은 요약 판이다. 경영자들에게 가장 무서운 적은 외로움이다.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있을 때나 어떤 어려움이 닥쳐올 때, 경영자들은 세상에 오직 나 혼자밖에 없음을 깨닫게 된다. 어떠한 조언과 위로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고독을 참는 능력이라는 것은 새로운 희망과 용기를 찾아내는 능력과도 같은 말이다. 쓸모 없는 고난은 없는 법이다 .어떠한 고난을 통해서라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얻고 배우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것도 참고 견뎌낸 다음의 이야기이다. 나에게 경영자의 제1덕목을 꼽으라고 한다면 바로 고독을 참는 능력을 말하겠다.
창업과 관련해서 내게 조언을 구하는 사람들은 대개 벤처라는 것을 오해하고 있다. 벤처사업이라는 것을 아이디어와 순발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떼돈을 벌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 그런 조급한 생각으로 벤처사업에 뛰어들어서는 안 된다. 말 그대로 모험심만 가지고 이룰 수 있는 것은 적다. 정작 필요한 것은 진득한 지구력과 인내심이다. 앞으로 닥쳐올 엄청난 양의 환난과 고독을 참고 견디면서도 언제나 난간과 희망을 지켜낼 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벤처리더인 것이다.
권투는 또한 우리들에게 인내가 최선이라는 점을 가르쳐준다. 조급한 생각으로 어깨에 힘이 너무 들어가면 헛손질이 많아 힘이 빠지게 되고, 결국은 케이오(K.O.)는커녕 오히려 상대방의 기습에 당하기 십상이다. 다소 지루하더라도 정석대로 밀고 나가야 한다. 잽을 무시하고 큰 손짓만 좋아하는 권투선수들은 케이오 당할 확률이 높다. 욕심 때문에 허점이 생기는 것이다. 벤처사업을 한다는 친구들은 '대박 한번 터져야 할 텐데......'라는 말을 자주 한다. 반짝이는 아이디어만으로 '대박'을 만들 수는 없는 일이다. 꾸준한 기술축적과 인재양성에 진짜 대박이 나온다. 조급하고 욕심이 많을수록 제 스스로 쓰러질 확률이 높다.
"왜 돈 좀 벌었다고 외제차 굴리면서 룸살롱이나 다니는 젊은 친구들 있잖나. 소위 벤처사업 한다는 친구들이 재수 좋게 돈 좀 벌고 나면 다 그리 되는 거지. 언제 카운터 펀치가 날아올지 모르는 건데 말야. 사업을 그만두지 않는 이상 안도하면 안 되네. 권투나 사업이나 안정은 없는 거라고 생각하게."
그 친구는 나로부터 구체적인 창업정보라고는 눈곱만치도 얻어 가지 못했다. 그러나 내가 그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다 준 셈이었다. 그는 그로부터 얼마 후 실제로 회사를 차렸고 한동안은 제법 잘 나간다는 소문도 들렸다. 얼마 후 어느 강연장에 연사로 참가했다가 그를 우연히 마주칠 기회가 있었다. 반가운 인사를 주고받고 나자 그는 습관처럼 IMF타령을 쏟아내었다. 죽을 지경이라는 것이다.
"사실 그때 권투 얘기만 하시길래 좀 시큰둥했습니다. 이제야 사장님 말씀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장님께서 해주신 권투 얘기가 이런 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사업에 안정이란 없다. 긴장을 풀고 방심하는 순간 카운터 펀치는 예외 없이 날아든다. 끝없는 도전과 승부 욕만이 기업을 살게 한다. 상대를 케이오시키거나 마지막 공이 울릴 때까지 권투선수들은 안심할 수 없다. 케이오승이나 마지막 공은 기업인들에게 죽는 순간을 의미한다. 죽는 순간까지 기업인은 항상 위험하다. 눈앞의 알량한 성공을 부정하고 기꺼이 고난을 기다려라. 벤처란 늘 고독한 것이다. 정작 필요한 것은 진득한 지구력과 인내심이다. 앞으로 닥쳐올 엄청난 양의 환난과 고독을 참고 견디면서도 언제나 낙관과 희망을 지켜낼 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벤처리더인 것이다. 사업에 안정이란 없다. 긴장을 풀고 방심하는 순간 카운터 펀치는 예외 없이 날아든다. 끝없는 도전과 승부 욕만이 기업을 살게 한다. 벤처란 늘 고독한 것이다.


산다는것은 권투링에 올라 상대방과 싸우는것처럼 고독한것이 아닐까요?

제 목 : 주먹이 운다
별 점 : ★★★★ 8.36(3539명 참여)
원 제 : Crying Fist
감 독 : 류승완
주 연 : 최민식 , 류승범 , 임원희
장 르 : 드라마
개 봉 : 2005년 04월 01일
등 급 : 15세 이상 관람가
시 간 : 134 분
제작/배급 : 쇼이스트
제작년도 : 2005년

시놉시스  
두 남자의 눈물, 감동의 주먹 한방!
ROUND OF 강태식
왕년엔 복싱스타. 지금은 매맞는 남자. 이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한때 아시안 게임 은메달리스트로 잘 나가던 태식, 현재 그는 길거리 한복판에서 돈을 받고 사람들에게 매맞아 주는 일을 한다. 도박으로 진 빚과 공장의 화재로 인해, 가진 것을 모두 날린 후,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거리의 매맞는 복서로 나서게 된 것. 그에게 유일하게 남은 것은 아내와 사랑하는 아들뿐. 이제, 그를 찾는 것은 소문을 듣고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구경꾼들과 빚쟁이뿐인 처량한 신세다. 몸과 마음이 모두 피폐해진 그에게 설상가상으로 아내는 이혼을 요구해 오고, 삶의 유일한 희망인 아들 ‘서진’이와 함께 살 수 없게 되자 태식은 깊은 절망감에 빠지게 된다. 이제 더 이상 물러 설 곳도, 잃을 것도 없는 인생 막장의 늙은 복서 태식은 다시금 희망을 품고 신인왕 전 출전을 결심하게 되는데…

ROUND OF 유상환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것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 권투로 세상과 싸울 것이다

패싸움과 삥듣기가 하루 일과인 상환. 어느 날 큰 패싸움에 휘말려 합의금이 필요하자 동네 유지의 돈을 노린 강도 사고를 벌이게 되고 이 사건으로 상환은 소년원에 수감된다. 수감 첫날부터, 권투부 짱 ‘권록’과 한판 싸움을 벌이고 독방에 갇히고 순조롭지 않은 생활이 시작된다. 권록과의 싸움을 눈 여겨 본 교도 주임은 상환에게 권투부 가입을 권한다.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었던 것도 없던 19살의 상환에게 권투는 처음으로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의지와 기쁨을 깨달아 간다. 그러던 어느 날, 공사장에서 일 하던 아버지가 갑작스런 사고로 돌아가시고 할머니 마저 쓰려졌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져 온다. 쇼크에 쌓인 상환은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잊고 할머니가 하루빨리 깨어 날수 있도록 신인왕 전에 출전해 결승의 꿈을 이뤄보려는 전의를 불태우는데…

LAST ROUND
신인왕 전 결승! 드디어 두 남자의 피할 수 없는 대결이 시작 된다.

드디어 신인왕 전 예선이 치러진다. 예전의 노련했던 권투 실력을 회복해가며 상대를 이겨나가는 ‘태식’과 매 경기마다 KO로 승리하며 무섭게 질주하는 ‘상환, 두 남자는 각자의 상대들을 모두 굴복시키고 마침내 신인왕 전 결승에서 만나게 된다. 독특한 이력, 막상막하의 실력과 운명을 가진 두 남자. 더 이상 물러 설 곳 없는 인생 막장의 39세 거리의 복서 ‘태식’과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군가를 위해 싸우는 19세 소년원 복서 상환. 한치도 물러 설 수 없는 두 남자의 인생을 건 단 한번의 대결이 시작된다!




여기 한 남자가 있습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비루하고 걍팍한 길을 전전하는. 때론 위악스런 몸부림으로 그 무게를 덜어 보려고도 하는. 하지만, 소화하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자신처럼 살지 말라는 아버지의 말이 귓가에 가 닿습니다. 그리고 그는 우악스럽게 길을 찾으려 합니다. 그리곤... 삶을 의탁할 곳이라곤 맨주먹, 그 하나밖에 없어 보입니다. 그리고 어느새 그 주먹이란 생의 의지뿐만이 아닌 갚아야 할 빚처럼 자리 잡게 됩니다. 그리고 그 주먹을 움켜쥡니다.

여기 한 남자가 있습니다. 쓰러져 가는 가세 앞에 일말의 자존심을, 그 유일한 생존도구를 지켜가려 하는. 비열한 거리 속에 치여가며 경제적 불구란 낙인 속에서 남아있는, 믿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곤 주먹뿐입니다. 되돌릴 수 없는 현실 속에 그래도 버텨야 할 의지처란 주먹뿐입니다. 막다른 골목에서 돌아 나와 모든 것을 버린 채 외쳐댑니다. 나와 보라고 나에게 울분의 주먹을 날려 달라고. 그리고 승부를 띄웁니다. 사방이 막힌 링 안에서 다시 일어설 것이라고. 그리고 그 주먹을 움켜쥡니다.

누구를 응원할 수도 응원하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그 미묘한 긴장감 속에 숨을 죽입니다. 그들을 울어버리게 만들었던 주먹이 우리에겐 울 수밖에 없는 주먹으로 다가옵니다. 극한의 순간까지도 그들을 생동하게 만든 건 주먹이고, 분연히 다시 일어서게 만들고, 돌아볼 이에게 한줄기 위안의 미소를 건낼 것 또한 주먹입니다. 그리고 경기는 시작됩니다.

끊임없이 날려버리는 연기 속에 그 삶의 무게들이 온전히 전파되어 옵니다. 단순한 기호로서가 아닌 내압과 외압을 조금이나마 덜어내고자 하는 작은 몸부림으로 다가옵니다.

그 어떤 영화보다 치열한 삶의 모습을 오롯이 담아냅니다. 그들은 인간극장을 나와 극장 속에서 인간을 만나게끔 합니다. 막바지에 치닫는, 비상구조차도 없어 보이는 인생 속에서 삶의 의지를 다시 생각하게끔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엔 모두가 그들을 지켜봅니다. 울분을 삼키게 만들었던 이도, 토악질을 하며 나락으로 잠기게끔 만들었던 이도...

가감 없는 살아있는 모습들의 포착에 몸서리쳐집니다. 복받쳐 오는 감정의 뒤안길을 자신도 모르는 새에 따라가게 됩니다.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도 있을, 하지만 돌아보면 매일 같이 링 속을 돌며 연타를 당하고 있는 이 또한 나였음을 발견합니다.

물론 이 경기에 승부란 없습니다. 애초부터 둘의 경기는 내파되었던 자신과의 싸움이자 그 복원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주먹으로 울었던 이들을 위한 위안의 길이기도 합니다. 의지를 놓을 수 없는 것은 그래서겠지요...

하루하루를 타협해가며(주먹이 운다) 사는 이에게 그 어떤 것보다 무거운 주먹이 있음을 느끼게 합니다. 치열한 삶으로의 종용만을 말하는 것은 아닐 테지만. 어디서든 지켜 보아 줄 시선들과 돌아가 앉을 코너 속에서 움켜줘야 할 주먹을 느끼게끔 합니다. 거친 삶 속에서의 고된 움직임들을 외면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듯싶습니다.

물러설 수 없는 두 주먹에 운 영화. 주먹이 운다 였습니다. ;)





정성일의 영화세상 |「주먹이 운다」


스포츠 영화,

이 끔찍한

대중의 희망

 

 



   링 위에 두 남자가 있다. 두 사람 모두 여기 올라오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더 구구절절한 것은 두 사람 모두 여기서 더 이상 물러날 데가 없다는 것이다.

 

물러날 데 없는 두 남자

 

   42세 강태식(최민식)은 한때 북경 아마추어 복싱 은메달리스트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술에 쩔고, 후배에게 사기당하고, 사채업자가 된 다른 후배는 돈을 내놓으라고 악착같이 쫓아다닌다. 아내와는 이혼 직전이고, 아홉 살 된 아들은 이런 아버지가 한심해 죽을 지경이다. 게다가 집안 살림은 모두 차압이 들어온 지 오래이다. 강태식이 할 수 있는 건 이제 거리에 권투 글로브를 끼고 나서서 사람들에게 "스트레스 받으시는 분들, 심심하신 분들, 1분에 1만원 내고 마음 놓고 저를 때려 주세요" 라고 마이크로 호객 하는 거리 복서로 사는 것 뿐이다. 그렇게 살아가는 강태식에게 신인왕전은 그의 마지막 링이 될지도 모르는 도전이다. 떠나가는 아내와 아들을 붙들기 위해서 그는 여기에 모든 것을 건다.

 

   20세 유상환(류승범). 남의 자동차에서 카 오디오나 훔치고 뒷골목에서 '삥이나 뜯으며', 패싸움하러 돌아다니는 그는 미래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말하자면 개망나니이다. 홀아버지 밑에서 할머니와 함께 살아가는 그는 늘 인생이 안 풀린다고 생각한다. 패싸움의 합의금이 필요하자 동네 사채 영감 돈을 날치기하려다가 그만 경찰에 잡혀 소년원에 간다. 그래도 아들이라고 아버지는 사식을 넣으면서 그 안에 비타민도 몰래 넣어주고, 때마다 찾아온다. 그런 아버지가 그만 공사판에서 사고로 죽는다. 할머니도 손자만 바라보다가 쓰러진다. 감옥에서 아버지 영정 앞에 인사도 드리고, 할머니 병문안도 갈 수 있는 방법은 싸움밖에 모르는 유상환에게 하나뿐이다. 권투선수가 되어서 신인왕전을 치르기 위해 외출하는 것이다. 그 결승전을 보기 위해 할머니가 마지막 힘을 내 경기장에 온다. 이렇게 두 남자가 만난다.

 

   류승환의 네 번째 영화「주먹이 운다」는 두 편의 영화로 만들어도 될 두 주인공을 서로 맞붙인 영화이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는 상영시간이 2시간 14분에 이른다. 그렇게 맞붙은 두 사람은 자기의 자리에서 하여튼 버텨야 한다. 최민식은 여전히 놀라운 집중력을 보여주고, 류승범은 자신이 떠안은 인물의 이상한 리얼리티를 살려낸다. 그래서 최민식이 연기를 하는 동안 류승범은 마치 자서전을 재현해 내는 것처럼 느껴진다.

 

   서두르지 않고 영화는 두 인물 사이를 오가면서 진행되고, 처음에는 느슨했던 이야기가 마지막 신인왕전에 다가올수록 에피소드에서 장면별로 점점 빠르게 교차편집된다. 대부분 거리에서 세트 없이 찍혀졌고, 카메라는 거의 모든 장면을 들고 찍어서 쉴 사이 없이 흔들리면서 인물과 함께 달리고 걷고 멈춘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육체적으로 그 살과 뼈와 땀과 피의 육신으로 찍혀진 영화이다.

 

   그런 다음 마지막 6라운드가 벌어진다. 물론 류승완은 둘 중 어느 쪽 편도 들지 않는다. 영화는 마지막 6라운드를 생략 없이 모두 보여준다. 심지어 2라운드는 이 장면을 대역 없이 찍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한테이크로 편집 없이 링 위에서 보여준다. 땀이 배어 있고, 장면들은 정성껏 찍혀졌다. 가장 아쉬운 것은 그렇게 열심히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신파조에 빠져들어서 보는 이의 눈물을 쥐어짜려고 안간힘을 쓴다는 사실이다. 영화는 거리에서 시작해서 후반부에 이르면「록키 번외편」처럼 보일 지경으로 한껏 감상에 빠져든다. 여기에 개각도 촬영과 디지털 스캔으로 모든 장면을 '떡칠' 해 놓은 다음 프레임 속도를 이리저리 바꾸면서 정작 이 영화에 잡혀야 할 땀과 눈물로 이루어진 육신의 리얼리티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이 모든 악전고투가 게임 '스트리트 파이터' 의 영화 버전처럼 우스꽝스러운 아바타의 난투극처럼 보인다. 그냥 한 마디로 이 영화에는 라이브한 감각이 없다. 여기에 보틀 네크로 연주하는 우수에 가득 찬 슬라이드 기타 소리가 더해지고, 별 감흥도 없는 마지막 6라운드에 이르러서 음악으로 한껏 감정을 고조시키며 들 때 류승완은 무언가 억지를 부린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류승완은 거기에 감독이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지만 내가 보기에 두 사람은 처량해지고 있었다. 거기에 있는 것은 고작해야 두 사람에 대한 측은지심의 위로와 그래도 여기까지 최선을 다해서 왔으면 된 거 아니냐는 덧없는 희망의 메시지가 더해진다. 마지막에 이르러 거의 모든 등장인물이 눈물을 흘릴수록 보는 나는 점점 더 우스워진다. 물론 그것은 가짜 희망이며, 세상과의 공존으로 위장한 세상에 대한 자발적인 굴복이다. 그게 뻔한데도 거기 매달리려고 할 때 보는 사람은 안쓰러워진다.

 

한국 영화가 스포츠에 매달리는 이유

 

   그러다가 문득 지난 일년 동안 한국 영화가 스포츠에 매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사실 한국 영화에서 스포츠는 거의 다루어지지 않는 소재이다. 사람들은 영화와 스포츠를 서로 별개의 영역으로 생각했으며, 우리는 그렇게 축구와 야구를 좋아하면서도 그걸 스크린에서 보고 싶어하지는 않았다.

 

   이를테면 나는 아직 2002년 서울-나고야 월드컵에 관한 영화가 만들어진다는 그 어떤 뉴스도 들어본 적이 없다. 혹은 박찬호에 대한 영화화 기획은 어떤 자리에서도 거론된 적이 없다. 박세리에 대한 영화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지난 일 년간 갑자기 스포츠 영화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좀더 정확하게는 그 전해에 링에서 '죽은' 김득구를 다룬「챔피언」이 그 신호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반칙왕」도 넣어야 할까?) 그런 다음 일제 강점하 조선시대 최초의 야구단에 관한 (풍속도에 가까운)「YMCA 야구단」이 만들어졌고, 그러고나서 1980년대 프로야구 만년 꼴찌였던 삼미 슈퍼스타즈의 전설(?)적인 좌완투수 감사용을 그린「슈퍼스타 감사용」이 등장했다. 그리고 일본 땅에서 몸뚱이 하나로 국민영웅의 자리에 오른, 천황 다음으로 유명했던 사나이 '리키도잔' 의 프로레슬러로서의 삶을 담은「역도산」이 거의 1백억 원의 제작비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대중들이 좋아한 영화는 소품의 규모로 훨씬 소박하게 만들어진 자폐 증세의 마라토너였던 소년 배형진 군의 자서전적인「말아톤」이었다. 그런 의미에서「주먹이 운다」는 실화나 실존인물을 다루지 않은 첫 번째 스포츠영화이다.(그러나 이 말은 정확하지 않다. 이 영화에서 소재가 된 강태식의 모델은 실제로 일본의 동경 거리 한복판에 있었다고 한다. 류승완 감독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이다. 하지만 나는 그 이름을 알지 못한다.)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어느 영화가 성공했느냐가 아니다. 혹은 같은 말이지만 대중들이 어느 종목을 좋아하느냐는 것이 아니다. 일단 스포츠 영화 안으로 들어오면 피할 수 없는 구조가 생겨난다. 아무리 이야기를 피해가도 그 종목의 룰 안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모든 스포츠 영화는 클라이맥스를 자기의 종목 안에서 맞이한다. 하지만 그것은 그 경기의 클라이맥스가 아니라 그 주인공 인생의 결정적 순간이다. 모든 시합은 결국 승패가 갈리고, 아무리 연장을 하더라도 하여튼 끝나야 한다. 그 안에서 주인공이 무엇과 마주하는 것을 보고 싶은 것일까? 왜 대중들은 결국 어떻게 해도 같은 이야기를 스포츠라는 틀 안에서 보고 싶어하는 것일까? 이것이 지금 스포츠 영화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상투적 담론이다. 그러나 내 생각은 그 반대이다. 차라리 대중들이 보고 싶어하는 것이 그 룰 자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 룰 이면에 무엇인가 인간적인 휴머니즘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룰 자체가 세상에 대한 이상이라면 세속적인 휴머니즘은 룰 안에서 이성적인 휴머니즘과 겨뤄야 하는 것이다. 경기장 안으로 들어왔을 때, 그것이 복싱이건 마라톤이건, 혹은 야구이건 레슬링이건, 그 안에서 견디기 위해서는 룰을 따라야 한다. 그것은 상대적인 세상에서 절대적인 세상으로 들어오는 것이며, 그 안에서 예외 없는 일반의 질서를 긍정하는 것이다. 그것이 지금 보고 싶은 세상인 것이다.

 

   스포츠 경기장은 세상의 압축이거나 상징이 아니다. 그 반대로 서로 다른 두 개의 세상이 있다. 하나는 협잡과 불평등과 사기와 예외로 가득 찬 세상이다. 그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다. 정치는 원칙도 없고, 집값은 불평등으로 우리를 거리에서 떠돌게 만들고, 명예교수라는 분은 우리가 일제 강점하 식민지에 살았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마우냐고 자발적으로 기고를 하고, 10대들은 모여서 소돔과 고모라를 방물케 하는 파티를 하고, 조폭을 방불케 하는 일진회가 학교를 장악해도 학교는 수수방관하고 있다.

 

스포츠 영화와 끔찍한 희망

 

   이것이 한심해 보이는 까닭은 법도 질서도 없다는 탄식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 만일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무조건 경기장에서 나가야 한다. 이것이 냉정하게 보이는 까닭은 예외도, 사정도, 과정도, 그 어떤 노력도 인저오디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결과만 있다. 물론 두 세상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그 안에 참여할 때에만 룰의 적용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참여자들이 룰을 만들어냈지만 일단 참여하면 그 룰을 지켜야 한다. 그러나 한 쪽은 가진 자의 예외가 모두의 일반이 된다. 다른 한 쪽은 예외를 반칙이라고 부른다. 사람들이 지금 살고 있는 세상 대신에 스포츠를 보는 것은 경기장 안에서 원칙이 지켜지기 때문이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나보다 늦게 달리면 뒤에 들어와야 한다. 분하겠지만 그건 할 수 없다. 아무리 불쌍해도 열을 세도록 일어나지 못하면 실려나가야 한다. 동정이 가지만 그건 할 수 없다. 그걸 영화에서 보고 싶어하는 것은 주인공이 불평등한 세상 속에서 공정한 세상 속으로 들어가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내는 것을 보고 싶기 때문이다. 혹은 자기 자신이 불평등한 세상에서 반칙으로 인해 항상 손해를 보고 있다는 부란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세상의 불평등으로 인해 소외받고 있는 두 사람, 강태식과 유상환은 오직 링의 룰을 그들 자신의 세계로 인정한다. 그들의 정정당당함은 링 위에서만 존중받는다. 그러므로 스포츠 영화의 유행은 우리 사회가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공정한 룰의 세계를 소망하는 희망의 징표로 보아도 될까?

 

   만일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끔찍한 희망의 메시지이다. 그건 우리 사회를 약육강식의 정글로 만드는 것이다. 사회는 공존을 위한 만남이어야 한다. 경기장에 올라가면 결국 승패가 가려진다. 진 자는 침묵해야 하며, 이긴 자는 모든 권리를 갖는다. 그것이 룰이다. 여기에는 어떤 동정도 없으며, 어던 눈물도 없으며, 어떤 대화도 없다. 진 자와 이긴 자로 나뉠 뿐이다. 하지만 우리들이 사는 세상은 결코 그렇게 진 자와 이긴 자로 나뉘어서는 안 된다. 혹은 진 자와 이긴 자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 스포츠 영화를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마음의 절반은 이 세상을 단순하게 명확하게 보고 싶어한다. 거기에는 진 자와 이긴 자만이 있는 것이다. 그것이 경기장이 되어가는 우리들의 세상이다. 그 세상이 참혹한 것은 원칙도 없는 반칙이 난무하는 경기장이라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차라리 경기장이라면 원칙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고 비명을 지르는 것이다.

 

공존의 방법은 없는가

 

   그러므로 사람들이 스포츠 영화를 보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세상이라는 현실(이라는 반칙)의 경기장에서 보는 (온갑 사연에도 불구하고 룰을 지켜야 하는) 드라마의 경기장이다. 이렇게도 말할 수 있다. 당신은 매일 돈을 받고 매를 맞으러 거리에 서는 강태식일지도 모른다. 혹은 버림받아서 물러날 데 없는 유상환일 수도 있다. 그런 당신과 당신이 만나서 경기장에서 승패를 결정지어야 한다. 하지만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이란 결국 없는 것일까?「주먹이 운다」를 보는 나의 마음은 끝내 어떤 감동도 받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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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leido 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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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꿈을 향해서 성장해 나가는 한 소녀의 이야기...

감동이였습니다...

소라라는 여주인공의 피땀어린 노력, 끈기, 포기하지 않는 정신...

아래 글을 보니까.. 대상 연령이 7-12세라고 하는데...

30대중반의 내가 봐도 좋습니다...-_-;;

얼마전에 종료된 더파이팅과 맘먹을만한 대단한 애니를 간만에 본것 같습니다.

더빙판만 나오면 종종 틀어놓고 보기에 좋을듯 하네요...


 

★ 제목 ★
카레이도 스타 (Kaleidostar)

★ 기획/제작 ★
G&G Entertainment / G.D.H. (GonzoDigimation Holdin g) 한일 공동 애니메이션

★ 감독 ★
사토 준이치 (세일러문, 꼬마 마법사 레미, 프린세스 츄츄 등 다수)

★ 시나리오 ★
요시노 레이코 (극장판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디지몬 어드밴쳐 꿈의 크레용왕국, TV판 쿄로짱 등)

★ 장르 ★
TV 애니메이션 52화 x 30분

★ 타겟 ★
7세~ 12세

이런 애니메이션입니다=_=b;

저 밑에 타겟;; 솔직히 처음 알았습니다만, 7세에서 12세라는건 전혀몰랐습니다;;

무려 제가 고등학교 2학년때보고서 눈물을 흘릴정도로 좋아한 애니인데..--;;[저연령 타겟이었는가;;;] 스토리가 저연령 스토리치곤 좀 아닌데..-┏;;

쿨럭; 하여간 일본측에선 작년에 방송이 끝나고 OVA를 제작 중이지요. TV 시리즈가 또 나온다고도 합니다:)

일본 애니잡지에선 주인공 "소라"가 인기 캐릭터 순위에서 빠지지 않는 굉장함도 보여줍니다.

[인기를 실감하게 만들죠.]

 올해 나온 애니잡지를 봤는데 역시 안빠지고 순위를 유지해주더군요. 감탄할정도입니다;

 
 
카레이도 스타의 줄거리를 이야기드리자면
 
 "서커스 뮤지컬"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소라"[왼쪽]라는 소녀의 성장 드라마
 
 라고 간단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카레이도 스타의 주인공의 성장스토리는 정말 눈물과 감동없이 볼 수는 없는 것으로
 
최고의 찬사를 받을 만한 대작입니다:)
 
정말 명대사 명장면이 많은 애니메이션입니다[특히 울어버릴정도의 감동적인 곳이 많죠!]
 
카레이도스타는 직접 보고서는 그 감동을 느낄 수 없으므로, 간단 소개는 이정도로 끝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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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 - 너와 함께했던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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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으로 유명한 H2가 드라마로 만들어 졌습니다...

별로 기대를 하지 않고 그냥 한번 봐보지 뭐.. 했는데...

만화와는 다른 색다른 재미와 감동을 전해줍니다...

특히 초반부에 꿈과 희망을 잃어버리고 축구부에 들어가서 방황을 하던 히로가

야구에 대한 집념을 다시 불살르면서 성장해가는 모습이 너무 멋졌습니다.

꿈과 희망을 가지고 저 높은곳을 향해서 나아가는 사람들은 언제봐도 멋집니다...

원작과는 약간은 다른 내용이 재미있기도 하고, 여주인공도 이쁘고...

주인공들간의 심리문제나 애증관계도 흥미롭고,

정적인 만화와 동적인 영상물의 색다른 맛을 비교하면서 보니 더욱 재미있네요...

 

애니든 드라마든 완결이 되지 않으면 보지 않는 주의-_-;이기 때문에,
이제까지 미뤄두고 보지 않았던 H2를 이제(시험기간임에도 불구하고)
보기 시작했습니다-_-; 전 11화네요.

미스캐스팅이니 뭐니, 말들이 많습니다만, 뭐 그런데로 비교해서 보면
재미있네요. "쿠니미 히로"역을 맡은 배우가, 어디선가 많이 봤다 했더니...

바로 이친구더군요.

'런치의 여왕'에서 주방보조-_-;로 나왔던...그때는 프로필하고 이름 찾아보려 해도
그렇게 없더니만, 지금은 도리어 '런치의 여왕'에 나왔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게
어렵네요-_-; 여기저기 많이 눈에 띄는데, 프로필에 잘 나와있지 않아서,(동일인물입니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드라마판의 주연이었군요(그새 유명해진게지-_-;)
그리고 이 'H2'의 연출도 '세상의..'를 연출한 사람이네요.

만화에서 '히로'의 좋은 친구역인 '노다 아츠시'의 경우, 원작과 완전 다릅니다-_-;


안경을 썼다는 점-_-;을 제외하곤, 일단 체격이 너무나 다르니-_-;
이래서야, 듬직한 포수, 친구...라는 이미지하고는 영 다르잖아요...


히카리의 경우는 좀 더-_-;합니다. 원작에서의 히카리가 갖는 '아우라-_-;'를
생각한다면, 그것을 감당하기엔 조금 무리라고나 할까요(사실 실현하기가 무리인
역할이긴 합니다만).

거기에, '하루카'와 비교하기 시작하면 정말-_-;






예...다수의 스크린샷-_-;에서도 눈치채셨겠지만,
보자마자 갔습니다-_-; 드라마판 H2는 이 배우때문에 보게될듯-_-;
아참, 그리고 마지막 스크린 샷에 나오는 "K"는 우리나라 가수로,
H2의 주제가 "OVER"를 불렀다나요. 그러나 노래는 관심없으니 패스-_-;

만화가 비교적 히로, 하루카, 히카리, 히데오 4명이 비교적 균형을 맞춰
진행되었던 것을 비교하면, 드라마는 히로와 하루카 2인을 확실한 주인공으로
놓고 진행합니다.(11편이라는 짧은 시간을 고려하면 이건 당연할지도)
따라서, 히로와 히데오를 왔다갔다...하는 히카리의 모습은
드라마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더군요.(없지는 않습니다)
히데오는 완전 조연-_-;이라는 느낌이고...

뭐, 워낙에 원작이 장편인데다가 인물의 개성이 뚜렷한지라,
11편이라는 짧은 시간에 그것을 담기가 힘들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고려하지 않고 "그냥"즐긴다면, 그런대로 재미있는
드라마인 것은 확실하구요.




소년 선데이지에 1992년부터 현재까지 연재중
1995년 6월 1일부터 1996년 3월 중순까지 방영된 TV판 애니메이션이 있으나 아직 비디오나 LD등은 미발매 된 상태이다.
1991년 시작되어 2000년 5월경 연재가 끝났으며 6월경 단행본 34권이 나오면서 그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우리나라에는 1991년 H2라는 제목으로 현지의 잡지 연재분량을 무단으로 짜 맞춰서 해적판이 나오기 시작했으며 3권이후 한달만에 4권이 나왔으며 그후 대원에서 연재하기 전까지 단행본나오는 주기로 무려 19권까지 나오기도 했다.
19권까지 나오는 동안 여러회사에서 해적판으로 발행하다 망해서 회수하는 경우도 생겨 라이센스판이 나오기전까지 국내아다치팬이 마음을 졸인 일도 있다.







(Serialized on Shounen Sunday, 1992 -

Kunimi Hiro(히로), Amamiya Hikari(히까리), Tachibana Hideo(히데오), Koga Haruka(하루까). 네명의 인물이 엮어가는 이야기기.
중학시절 최고의 야구영웅이었던 히로와 히데오 그러나 돌팔이의 진단을 받아 서로 다른 학교로 향하게 되고... 히로는 센까와 고등학교에서 고교야구를 좋아하는 하루까를 만나게 되면서 다시 야구인생을 시작하는걸로 1권이 진행된다.


야구외에 진지함을 보이지 못하고 사소한데 목숨을거는 열혈소년 'Hiro' 남들보다 성장이 더뎠기때문에 자신의 소꿉친구인 히까리를 중학시절 최고의 친구인 히데오에게 소개시켜주고 .. 이후 중학시절을 보내면서 그리고 고등학교에 들어가게 되면서 히까리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확인하게 되지만 이미 때는 늦게 되었다. 하지만 돌팔이의 진단으로 포기하던 야구를 하루까라는 고교야구를 좋아하는 소녀를 만나게 되면서 학교 야구애호회의 일원이 된다. 그리던 어느날 신문에서 보게된 돌팔이 의사의 소식을 듣고 최고의 배터리였던 노다와 함께 다시 갑자원의 꿈을 꾸게된다. 이런 가운데 점점 하루까에게 자신의 마음이 기울어 가고 ..




어느것 하나 나무랄데 없는 아름다운 소녀 'Hikari' 얼굴도 이쁘고..(으흐..^^, 개인적으로 너무좋아하는 캐릭터입니다.) 공부도 잘하고.. 장래 스포츠기자를 꿈꾸는 캐리어우먼스타일의 소녀. 소꿉친구인 히로보단 성장이 빨랐기에 히로의 친구인 히데오와 중학교때부터 사귀게 된다. 그리고 메이와 고등학교에 히데오와 같이 입학 최고의 커플로 인정을 받게 되지만.. 아직까지 히로에 대한 마음이 정리되지 못하고.. 히데오와 히로의 사이에서 갈등을 하게 되는데....
( '히로는 바다와 같아..')


Kunimi Hiro(히로)


Amamiya Hikari(히까리)



Tachibana Hideo(히데오)
융통성 없고 고지식해 보이기 까지 하는 ' Hideo' 중학시절 친구인 히로에게서 그의 소꿉친구인 히까리를 소개 받아 히까리에게 순정을 바치고 있는 순정파 소년.. 엄청난 스윙을 가지고 고교야구무대를 휩쓸고 있는 스타 선수.. 1학년으로 명문 메이와고등학교 4번타자를 치면서 팀을 갑자원으로 이끌어 가고.. 히까리의 마음에 히로에 대한 마음이 더욱더 커져갈수록 히데오의 마음은 아파만 가는데.. 도중 뜻하지 않은 사고를 당해 잠시 주춤하게 되고.. 극복하는 과정에서 히까리의 존재에 대해 더욱 히까리의 사랑을 필요로 함을 알게 되고.. 고교 마지막 시절 드디어 히로와 엄청난 대결을 앞두고 있는데..

고교 야구를 좋아하는 평범한 소녀인 '하루까' 매사에 덜렁대지만 성격하나는 끝내준다.. 고교야구를 너무 좋아해서.. 야구애호회에 가입 히로를 만나게 되고 히로를 좋아하게 된다. 하지만 히로의 마음엔 히까리 뿐이고.. 그런 히로의 마음이 열리기 까지 기다리지만... 그러던 와중에 갑자원에 진출하게 되고.. 미국에서 이사온 소년에게 유혹당하려는 순간 히로가 나타나 구해주면서 히로와 하루까가 연결되나 싶지만..
히로어머니의 입원.. 히까리 어머니의 죽음으로 히로와 히까리의 관계는 더욱 진전되게 되고...

Koga Haruka(하루까)



이렇듯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서로의 마음들을 확인하고 또 두려워 하는 네사람.. 3년이라는 시간동안 히로의 학교인 센까와 고등학교에는 최고의 배터리를 자랑하는 노다. 히데오의 어릴적 친구인 슈우지와 시마 오다케 그리고 야나기, 엄청난 실력을 가진 키네등과 함께 갑자원을 꿈꾸게 되고 드디어 봄 갑자원에 우승을 하게 된다. 그리고 새로운 에이스를 영입하게된 메이와는 변함없는 타력을 자랑하는 히데오를 앞세워 여름에 다시 갑자원을 차지하려 하고.. 여기서 우정을 걸고 갑자원을 걸고 또한 히까리를 걸고 히로와 히데오의 대결은 피할수 없게 되는데..




지써이의 'H2' 소개..

크게는 히로와 히까리의 이야기에서 그의 친구인 히데오..하루까..노다..등의 이야기입니다. H2에서는 기존 아다치님이 가졌던 삼각관계에서 조그마한 탈피를 한듯한.. 느낌 머 그래봐야..-.-; 이제 34권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죠.. 히까리파의 선두주자에 있었던 저로서는 아쉬운 결말이지만 이작품이 대단하다는건 부인할수 없습니다. 밑에 다른분의 감상평이 있지만..
히로의 선택은 또 히까리의 선택은 왜인지 끝까지 마음을 뭉클하게 하는군요.. 제가 보기엔 이작품은 이때까지의 아다치님의 작품의 집대성한 완결판이라고 생각이 드네요.. 나이상으로 이제 엄청난 분량의 청춘물을 하기엔..힘들듯 싶고.. 하기에.. 여러 작품들을 모아서..집대성한 작품으로 보아도 충분할듯 싶네요.. 이때까지 썼던 여러가지 포멧들을 쓴데다.. 이때까지 등장했던 인물에 대한 감정들이 다 있는거 같습니다. 어쨌든 한번 보시죠..




하이텔 아다치동 '테일러' 군의 H2감상입니다...이감상평은 제가 너무나도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H2가 마침내 끝이났다.. 내청소년 시절의 한페이지를 장식했던 작품..
내가 만화책중 세 번째로 좋아하는 작품 내가 네 번째로 좋아하는 남성캐릭터와 세 번째로 좋아하는 여성캐릭터가 등장하는 작품.
(최소한 내가 생각하기엔) 아다치의 연출력이 가장 극대화된 작품이었음에도
터치라는 작품에 가려 그평가받기를 조금은 손해본 작품.. (물론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또 야구만화라는둥..또 소꿉친구 라는둥...이라는 이런 비난을 감수하기도 해야했던 작품..
하지만 나스스로는 이런생각을 한 번도 해본적이 없고 다시한번 말하지만 이건 오히려 터치라는 작품이 너무나 유명하고 아다치의 대표작으로 뿌리깊이 인식된돼서 비롯된 편견이라고 생각한다.
얘기가 처음부터 옆으로 새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여기서 한 번 되짚어 보기로하겠다

(일부독자들이) 소위아다치 작품의 공식이라고 여기는 야구와 소꿉친구 커플이 과연 아다치작품내에서 실제로는 얼마나 되는가? (단 아다치가 6-70년대에 그려냈던 무수한 열혈야구만화들은 논외로 하겠다..이당시의 작품들은 현재의 아다치작품들과는 너무나 현저한 차이가있고 어차피 독자들도 이때의작품들까지 염두에 두고 또 야구야?라고 비아냥거리는 것은 아니니까..)
아다치의 작품이 열혈야구만화를 벗어나서 '하이틴 드라마'혹은 스포츠를 매개체로한 '스포츠하이틴드라마'의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한 것은 아무래도 78년작인 '히아타리료코'부터라고 할수있으며 차기작이었던 (우리도 너무 잘아는) '미유키'에 이르러서부터 현재의 아다치스타일이 완전히 정착되었다라고 할수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다치스타일의 첫작품인 '미유키'부터 최근의 'H2"까지중에서 야구과 소재가 되면서 소꿉친구가 연인으로 등장하는 작품은 몇작품이나 되는가?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위의 두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는 작품은 아다치스타일의 두 번째작품으로 아다치의 대표작. 일본만화사상 최초로 5000만부의 판매량을 기록한 작품 (지금까지도 일본에서 5000만부 이상팔린만화는 드래곤볼 슬램덩크등..서너작품에 불과하다) 평균 판매부수 역대3위(이제 2위일지도..)라는 화려한 캐리어를 자랑하는 '터치'오직 한작품뿐이다 '미유키'에선 피가섞이지 않은 누이동생과의 사랑이야기에 스포츠는 등장하지않고(스포츠가 캐릭터냐? 등장하게..--) 아다치 작품중 가장 무난한 작품으로 평가받는 '러프'역시 수영이 소재에 커플인 케이스케와 아미역시 소꼽친구 관계는 아니다...(물론 어려서 같이지낸 추억이 아주 잠깐 있긴하지만 그건 4살 때 일이고..차라리 케이스케의 연적(인지 조력자인지 는 불분명하지만..--)이었던 히로끼와 아미의 관계를 소꼽친구 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슬로스탭'에선 주인공인 미나츠에게 슈우라는 소꿉친구가 있긴 하지만 슈우의 일방적인 짝사랑으로 결국 이루어지지못했고 (이거 보면서 본격 소프트볼만화라고 하는사람은 아마 없을테고..) '레인보우스토리'는 시대극에 역시 피안섞인 남매의 사랑... '진베'는 피안섞인..부녀..--(차라리..피안섞인 가족에 공통점이..) 의 사랑이야기다..
이상 종합해보면 아다치의 작품과 야구.소꿉친구의 함수관계는 고작 6분의1밖에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아다치하면 야구..소꿉친구를 의례히 떠올리는건 역시 터치라는 작품의 유명세에 기인한 우리의 편견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다치의 작품들이 공통점도 없고 늘 신선하고 색다름으로만 가득하다는 억지를 부리려는것은아니다 내가 이야기하고싶은건 아다치의 작품들이 비슷비슷한 느낌을 주는건 아다치가 그동안'하이틴로맨스'라는 제한된 장르의 작품만을 그려왔고 그러다보니 전형성이 강한 캐릭터들이 계속 등장하게되는데 기인하는것이지 야구라든지 소꿉친구라든지하는 제한된 소재에 의해 비롯된게 아니라는 것이다
흠 여담이 너무 길었는데 이제 다시 본론으로 들어와서.. 제길...왜...왜? 히로와 히까리가 아니고 히데오와 히까리인가?-- 얼마전 H2의 최종회를 감상한 나는 도저히 납득할수가없었다 좀더 정확히 얘기하자만 내가 납득하지 못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그 과정이었다(사실 난 결론은 꽤오래전부터 알고있었다고) 난 H2의 결말에 대해서 낙관하고있었다
이 낙관이라는 것이 히로와 히까리의 연결이라는 것은 아니다 물론 히로,.히까리의 지지파의 선두주자로서 이런결론을 누구보다 강력히 원했던건 사질이었지만 객관적으로보면 그외의 결론도 얼마든지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늘 염두에는 두고있었다 결국 내가 낙관했던 것은 그동안 아다치가 보여주었던 일종의 '공식'을 믿었기 때문이다 내가 믿었던 '공식'이란 남자주인공의 행복.. 실제로 그동안 아다치는 자신의 작품에 나오는 남자주인공들에게 언제나 최선의 행복을 안겨다 주었다 그것이 선택을 기다리는자의 입장이든(러프) 선택을하는자의 입장이든(미유키).자신의 마음을 확인하는 입장이든(터치) 남자주인공은 언제나 행복해졌다 그렇기에 난 이번에도 주인공 히로의 행복을 확신했던 것이다 히로가 선택을 기다리는자의 입장이 된다면 히까리의 선택을 받아 행복해질것이고 선택을 하는자의입장이 된다면 누구를 선택하던 자기가 진심으로 더 좋아하는 사람을 선택해 행복해 지리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의 예상의 여지없이 깨지고 히로는 너무나도 쓸쓸해진 주인공으로전락해버렸다..
준결승에서 승리후 애써 무리하며 즐거운척 노래부르는 히로의 모습과 다음알 아침 자신의 승리기사를 읽는 히로는 모습은 너무나 외로와 보였다(그나마 한가지 위안이라면 이결과는 히로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는점정도..) "애초부터 내게 선택할 권리같은건 없었어"라는 히까리의 대사처럼 선택의 몫은 그누구도아닌 히로에게 있었고 히로는 히데오와의 승부를 통해 히까리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히까리를 포기했던 것이다 히로는 자신이 사랑하는 히까리가 더 이상 마음아프기를 바라지않았고 그러기위해선 반드시 히데오와의 승부를 이겨야했다 만약 자신이 히데오와의 승부에서 져버린다면 히로는 히데오에게 또다시 도전해야하고 그렇게 되면 지금껏 계속해온 감정의 소모전을 계속 반복해야한다 자신이 히까리의 키를 따라잡으면서 부터 시작되었던 싸움을 끝내기 위해 그리고 히까리를 위해 던지는 마지막 시합을 승리를 위해 히로는 철저히 프로가 되어 궁극의 승리를 위한 투구를 하였다 하지만 이런 굳은 결심과는 반대로 히로는 최후의 순간까지 자기의 결심에 마음아파하고 흔들려했으며 마음한구석에선 이승부에서 자신이 지기를 바라고있었다 결심을 바꾸지 않기위해 히까리에게 '힘내지지마"라는 강력한 응원도 받았고 '난 히까리를 너무너무 좋아해'라며 스스로의 마음을 확인도 해보지만 순간순간 약해지는건 할수 없는일이었다 시합종반에 이르러 노다에게 '날 너무 믿지는마'라고 한 대사는 히까리에게 하고싶었던 말이었을거구 히데오와의 9회 마지막승부에서 자신의 2구를 통타한 히데오의 타구가 아슬하게 홈런이 아닌 파울이 되었을땐 아쉬워하며 "결국 내가 이길 수밖에 없는건가?"라는 체념을 하기도한다.
히데오를 삼구삼진으로 셧아웃시키며 완전한 승리를 일구어낸 히로의 두눈엔 결코 승리의 의미가 아닌 눈물이 흘러내리고 시합을 지켜보던 히까리역시 그런 히로의 마음을 받아들이듯 히로를 향한 마지막 눈물을 흘려준다. 히로의 마음을 알고 냉정히 히로의 결정을 기다려준 히까리 이렇게 서로를 잘알고 사랑하는 두사람이 이루어지지 못한건 정말 의외였다

어쩌면 H2의 결말은 그동안 남자주인공의 행복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사랑을 포기했던 이들에대한 아다치의 보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든다 '미유키'에서의 축구선수 선배(이름을 모르겠다--) '러프'에서의 히로끼와 오가따 그리고 자신의 생명조차 희생(?)당해야했던 카츠야에이르기까지.... 주인공의 행복에 묻혀버린 그들의 슬픔.. H2에선 이들의 느꼈을 아픔과 상실감을 주인공의 히로로하여금 느끼게 하고있는 것이다..
참이상한 일이다..다른작품에서 저들이 여주인공을 깨끗이 포기 할 때는 그리도 멋져보였건만..히로를 보면서는 '야이 바보같은 녀석아'라는 말이 하고싶은걸까? 그만큼 나는 히로란 녀석한테 몰입되어있던건가?
어찌됐든 아다치가 그동안에 고수해왔던 자신의 틀을 어느정도 벗어났다는 점에선 팬으로써 고맙고 반가운 일이지만 아다치의 팬이기 이전에 히로와 히까리를 너무나 좋아했던 나는 둘의 이루어지지 못한 감정이 어긋나버린 둘의 타이밍이 너무나 아쉽다...

TO. 아다치 선생님께 히로는 결국 타츠야였던겁니까? 성장이 2년늦어버린 타츠야..카츠야가 살아있었다면 미나미를 양보했을지도 모르는 타츠야,, 히로의 마음은 분명 마지막까지 히까리한테 있었는데.. 히로의 하루까에 대한 감정이 가볍다는 것은 결코아니지만 히까리를 향한 마음엔 아직 승부가 안돼는것..맞죠?
아직 그들의 관계는 히로의 마지막대사처럼.'아마도'의 관계일 뿐이잖아요.. 하지만 아직 결승이 남아있는것도 사실이겠죠.. 전 선생님이 히까리를 사이에둔 히로와 히데오의 승부를 준결승로로 설정한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히로에게 있어서 히까리는 결승이 아니라 준결승이었던거죠? 준결승의 상대가 워낙 벅찼던탓에 결승은 조금 시시해질지도 모르겠지만 결승은 결승..히로가 결승도 멋지게 이겨내길.. 그리고 꼬옥..꼬옥 행복해지길.. 결론은 아쉽지만 H2 정말 좋은작품이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아다치선생님.. H2는 저에게 있어서 가장 슬픈이야기로 오랫동안 기억될 것입니다..
00년 3월 12일 FROM TYL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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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레스트 검프 - 행복이란 어디에서 오는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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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대충 한번 봤었던 영화인데, 주말에 또 한번 보게 되었습니다.
뭐.. 상당히 철학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고, 말아톤과 비유하는 사람도 있고, 어쨌든 평이 참 좋은 영화입니다.
저는 몇일전에 보았던 열네살이라는 책의 영향으로, 무엇보다 인물들이 행복한지 어떤지에 초점을 두고 영화를 봤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행복은 완벽할때만 오는 것인가? 아니면 모든것이 완벽해야 행복한것인가? 혹은 현실속에서 행복을 찾아야 하는것인가?
포레스트는 자신을 떠나간 제니를 생각해하며 슬퍼합니다.
중위는 자신의 다리를 보면서 세상과 포레스트를 경멸합니다.
돈이 있는데 건강이 없으면 불행하고, 건강은 하지만 돈이 없어도 불행하고, 돈, 건강을 모두 가지고 있지만 사랑이 떠나면 불행하고...
글쎄요...
혹자는 사람은 그런 슬픔을 은근히 즐긴다는 이야기도 있기는 하지만, 행복이란것이 참 아이러니 한것 같습니다.
분명히 무엇이 있으면 행복한것이라기 보다는 무엇이 없거나, 부족하게 되면 불행을 느끼는것 같습니다.
물론 도를 딱는 도사나 고승같은 분은 욕심을 비우라고 하지만...
그 분들은 그것이 행복에 이르는 길이 아닐까요?

아무튼 뭔가 자신이 가지지 못한것이나 가지고 싶은것을 성취하기위해 열심히 살아가고,
하루하루 조금씩 발전해 나가고,
가족들 모두 건강하며, 하는 일 잘되고 서로 사랑하며,
자기가 가지지 못한것보다는 가지고 있는것에서 만족을 느끼다보면 진정한 행복을 느낄수 있지 않을까요?

암튼 행복해지고 싶은것만은 틀림없는것 같습니다...


감독: 로버트 저메키스 (Robert Zemeckis)
캐스트: 톰 행크스 (Tom Hanks) Forrest Gump 역/ 로빈 라이트 (Robin Wright) Jennifer Curan-Gump 역/ 게리 시니즈 (Gary Sinise) Lieutenant Daniel Taylor 역/ 샐리 필드 (Sally Field) Mrs. Gump 역
제작년도: 1994년(미국)
장르: 코미디/ 드라마
요약: 지능이 낮지만 순수한 영혼을 지닌 포레스트 검프를 통해 미국 역사를 조망


포레스트 검프(Young Forrest 마이클 코너 험프레이스)는 아이큐가 75이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Mrs. Gump 샐리 필드)는 아들의 교육에 대단히 열성적이며 다리마저 불편했던 포레스트에게 다른 아이들과 똑같은 교육의 기회를 주기위해 무엇이든 희생하는 남부의 여인이다. 포레스트는 보통 사람보다 좀 아둔한 자기에게 친절히 대해주고, 나중에 동반자까지 된 친구 제니(Jenny Curran 로빈 라이트)를 만나 학교를 무사히 다닌다.

어느날 악동들의 장난을 피해 도망치던 포레스트는 바람처럼 달릴 수 있는 소질을 보이게 된다. 그로 인해 고등학교도 미식축구 선수로 가게 되고 급기야 대학에까지 축구 선수로서 입학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아버지에게 학대를 받아온 제니는 언제나 자신의 꿈인 포크송 가수가 되기 위해 애쓰다가 대학까지 제적당하고 소위 히피 그룹에 끼어 여기저기를 떠돌아 다닌다.

한편 청년이 된 포레스트(Forrest Gump 톰 행크스)는 대학 졸업 후 군에 입대하여 베트남에서 빠른 다리 덕분에 전우들을 구하는 공로를 세운다. 그 공로로 훈장까지 받고 제대한 포레스트는 전장에서 죽은 동료의 꿈을 쫓아 새우잡이 어선의 선주가 되어 군대 상관이었던 댄 중위(Lieutenant Dan Taylor 게리 시나이즈 )와 함께 새우를 잡아 큰 돈을 모으게 된다.

그 즈음 어머니의 위독 사실을 알게 된 포레스트는 고향으로 돌아오고, 댄 중위가 애플사(포레스트 자신은 과일 회사로 알고 있음)에 투자해 큰 돈을 벌게 되자 병원과 교회 그리고 죽은 전우의 유가족에게 돈을 나눠주고 혼자 살며 제니를 기다린다. 오랜 기다림 끝에 그를 찾아온 제니, 그러나 제니는 다시 떠나고 과거를 청산하려는 듯 포레스트는 전국 방방곡곡을 3년동안 헤매다가 집으로 돌아온다.

TV에서 포레스트를 본 제니는 그에게 연락해 아들이 있다는 것과 자신이 에이즈에 걸렸다는 걸 알리고 둘은 결혼을 한다. 제니가 죽은 뒤 아들과 함께 사는 포레스트, 정상인 어느 남자보다 제니를 감싸주고 사랑했던 그는 각박한 세상에 사는 현대 사람들에게 순수한 눈으로 세상을 보게 하고 사랑이란 의미를 다시 찾게 한다.

영화 해설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과 톰 행크스가 만난 <포레스트 검프>는 오락성과 작품성을 갖춘 보기 드문 대중영화로서, 경쟁과 이기심의 혼돈 속에서 각박하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인간의 순수함이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가를 깨우쳐 준다.

포레스트 검프(Forrest Gump)는 어려운 영어 단어가 아니라 주인공의 이름이다. 위대한 인물이 아니라 평범한 인물의 이름이다. 옅은 푸른색 창살무늬 T셔츠 단추를 목까지 꼭 채우고 붉은 색 운동모자에 농구화를 신은 그 얌전하고 고지식한 청년 포레스트 검프 앞에서 수많은 관객들은 안심한다. 그리고 영악하고 똑똑한 사람들 앞에서 주눅들어 있던 이 세상의 모든 소시민들은 어리숙한 포레스트의 성공과 매혹이 이끌려 영화관으로 달음박질쳐 들어가면서 안도감과 해방감을 느낀다.

이 영화의 출발점이 된 윈스턴 그룸(Winston Groom)의 원작소설이 1986년에 처음으로 발표되었을 때는 베스트셀러에도 들지 못했었다. 이제 막 데뷔한 제작자 웬디 피너맨이 워너사를 설득하여, 판권을 사는 데까지는 성공했으나 시나리오 라이터, 배우들을 모아 토론해 본 결과 한결같이 영화로 제작하기에는 별로 상업적이지 못하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워너사는 판권을 파라마운트에 넘겼다. 결국 로버트 제메키스 감독과 톰 행크스가 행운을 걸어보기로 결정함으로써 7년 만에 웬디 피너맨의 꿈이 실현되었다. 영화 제작 이후 포켓북으로 나온 소설은 무려 85만부가 팔렸다. 물론 영화의 성공에는 예측 불허의 반전과 반전을 거듭하며 흥미 만점의 스토리 짜임새를 선보인 에릭 로드(Eric Roth)의 각색도 크게 한몫을 했다.

이제 바야흐로 검피즘, 검프 매니아의 물결을 탄 소설과 윈스턴 그룸은 포레스트와 그의 어린 아들 사이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 후편을 쓰기 시작했다는데.... 이토록 큰 성공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포레스트 검프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나면 더이상 세상은 옛날 같지 않을 것이다.

영화 광고의 카피는 이렇게 선전하고 있다. 어린애 같은 어른,약간 모자라는 것이 매력인 포레스트. 순진함은 동물이나 어린아이나 바보의 세계다. 수많은 어른들은 나이를 먹어도 손상되지 않은 채 고스란히 간직되어 연장된 어린 시절 우직함을 하나의 유토피아처럼 그리워한다. 순진함은 수수와는 다르다. 그것은 존재의 자연발생적인 사랑의 표출인지도 모른다. 참으로 순진한 사람은 순수와 비순수가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한다. 동물적 단순성과 성자의 투명함이 한데 합쳐진 세계다. 물론 자신이 성자인 줄도 모르는 성자 말이다. "포레스트 검프의 미덕은 순진함만이 아니다. 그는 정직하고 너그럽고 착하고 의리가 있다. 미국인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장점을 다 갖추었기 때문이다." 라고 감독은 말한다. 혹시 지금은 상실해버린 고지식함과 단순 위대한 순정에 대한 미국인들의 그리움이 이런 인기로 표현된 것은 아닐까?

이 영화는 평균 이하의 지능을 가지고 있는 저능아에 대한 이야기다. 뛰는 것은 자신있다. 바로 주인공인 포레스트 검프가 뛰는 사이에 관객은 지난 30년간의 미국 역사와 미국 국토의 풍경을 거쳐가게 된다.

<포레스트 검프>는 카메라와 컴퓨터를 동원하여 보여줄 수 있는 트릭의 극한까지 간다. Industrial Light & Magic회사의 시각효과 책임자인 켄 랄스튼(Ken Ralston)은 제메키스에게 없어서는 안 될 협력자다. <포레스트 검프>는 제메키스와 랄스튼의 여섯 번째 합작이며 랄스튼은 이미 특수 시각효과부문의 오스카상을 두 번이나 받았다. 그의 위력은 무려 2시간 20분 동안 우리 모두를 저 행복한 바보 포레스트 검프의 순진한 두 다리에 싣고 질주한다.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우리는 지루해질 틈이 없다. 그는 톰 행크스를 케네디, 존스, 닉슨, 존 레논, 엘비스 프레슬리와 실제로 만나게 한다. 그것은 리얼리즘과는 관계없이 컴퓨터의 트릭만이 가능하게 해준 의사현실이다. 원래 에릭 로드의 시나리오에는 미국의 축구영웅 포레스트가 백악관의 장미정원에서 케네디 대통령을 만나도록 되어 있었다. 수백 시간분의 대통령 기록자료 필름을 검토했으나 묘사된 장면에 적합한 장면을 찾아내지 못하자 케네디가 타원형 사무실에서 평화봉사단원들을 접견하는 기록영화로 대체하여 사용하게 되었다. 우선 분석을 통하여 자료 필름 속에서 사용한 카메라의 높이, 피사체와의 거리를 추정해낸 다음 동일한 상황을 조명, 카메라 이동 속도 등이 거의 같게 일치시켜 다시 촬영한다. 로버트 제메키스는 톰 행크스를 특수배경(푸른색 스크린)앞에 세워 놓고서 여러 각도로 찍는다. 이때 배우의 시선의 높이와 방향은 벽에 붙인 투명한 스카치 테이프가 리드한다. 그리고 이 두가지 필름을 나중에 컴퓨터로 합성한다. 이리하여 관객은 미국 최우수선수로 지명된 포레스트 검프가 백악관으로 초대되어 케네디 대통령을 만나게 되는데, 대통령이 악수를 하면서, "기분이 어떤가?" "싸겠어요" 급히 달려간 변소에 가도 대통령의 사진이 걸려 있다.

뒤이어 이번에는 월남전의 영웅이 된 검프 상등병이 존슨 대통령에게 명예훈장을 수여받는다. 검프는 그 자리에서 대통령에게 부상당한 엉덩이를 까고 보여준다. 대통령은 엉덩이를 들여다보며 껄껄대고 웃는다. 사정이 이쯤 되고 보면 이젠 어느 사진도, 어느 필름도 진실성과 현실성이 증명 될 수는 없게 되었다. 기술복제 시대는 트릭과 해학의 시대인 동시에 불신의 시대임을 말해준다. 그러나 이런 트릭은 고도의 기술 외에도 많은 인내와 시간을 요한다. 불과 몇 초에 불과한 케네디 대통령과의 악수 장면을 재구성하는 데 무려 8~9개월의 고된 작업이 소요되었다. 컴퓨터를 활용한 고도의 특수효과는 이 영화의 곳곳에 은밀히 삽입되어 있다. 가령 월남전 장면 중 하늘에 자욱한 헬리콥터들은 불과 몇대의 실물을 컴퓨터로 조작하여 그 숫자를 반복 증가시킨 것이며 반전 데모를 위하여 워싱턴에 운집한 수만 명의 군중은 전략적인 장소에 배치한 엑스트라들의 사진을 무한한 숫자로 불려놓은 것이다. 그러나 공상과학 영화들에서와는 달리 관객이 육안으로 식별할 수 없는 이런 트릭들은 극히 사실적인 환상을 자아낸다는 데 이 영화의 매혹적 힘이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성공적이고 아름다운 장면은 바로 영화의 시작과 끝에 위치시킨 하얀 깃털이다. 하늘에서 백조의 그것 같은 하얀 깃털 하나가 바람에 날리면서 교회 첨탑 위로, 광대한 숲 위로 춤을 추듯이 날아간다. 그러나 매우 천천히, 캐스트 소개가 끝날 때까지 줄곧 허공에 떠 있을 정도로 천천히 떨어져 내려온다. 깃털은 떨어지다가, 다시 떠오르다가, 낮게 떠서 도시의 자동차 위로, 거리의 사람들 어깨 위로 스치면서 마침내 한 켤레의 농구화 사이에 사뿐히 내려앉는다. 깃털에서 카메라가 위쪽으로 쓰다듬어 올라가면 버스를 기다리며 벤치에 앉아 있는 농구화의 청년이 그 깃털을 주워 푸른 하늘과 구름과 전봇대가 그려진 그림책의 페이지 사이에 정성스레 끼워넣은 다음 다시 그 책을 가방 속에 넣는다. 세월이 흘러 2시간 20분에 걸친 영화가 끝나갈 무렵 집 앞에서 어린 아들을 스쿨버스에 태워보내고 난 포레스트 검프의 발 밑에서 다시 그 하얀 깃털은 천천히, 그리고 가볍게 하늘로 날아오른다. 바람에 날리는 새의 깃털처럼...... 영화 포레스트 검프가 우리의 육안에 제공하는 것은 바로 이 가벼움의 아름다움이다. 영화 전체에 감도는 이 가벼움을 우리는 전신으로 느낀다. 제메키스 감독의 화두요 출발점인 흰 깃털의 이 느린 흔들림과 추락은 컴퓨터 합성이 만들어낸 한 편의 트릭이며 우화다.

카메라는 우선 하늘과 숲과 도시와 자동차와 사람들 같은 배경을 먼저 찍는다. 그리고 천천히 떨어지는 깃털만을 따로 촬영한 다음 가장 우아하고 서정적인 깃털의 몇가지 움직임들만을 정선 추출하여 연속동작으로 이어서 미리 준비한 배경과 합성한다. 이리하여 우리들은 한 번도 육안으로 본 일이 없는, 그러나 마치 언젠가 본 적이 있는 것만 같은 그 깃털의 떨어짐을, 그 아름다운 가벼움을 어둠 속에 앉아 그윽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우리는 차츰 그 느리게 춤추는 깃털의 가벼움이 된다. 그 가벼움이 마침내 포레스트를 거침없이 달리게 하고 새처럼 날아오르게 한다. 똑똑한 사람들, 지능지수가 높은 사람들은 가벼움을 모른다. 그들은 무겁다. 그래서 그들은 날아오르기는 커녕 달릴 줄도 모른다.

"우리들의 운명은 바람부는 대로 따라 흔들리는 것, 이것이 영화의 주제다."
라고 감독은 촬영 직전에 결론내리듯이 말했다. 이 깃털은 세상에서 가장 얌전하고 고지식한 인물 포레스트의 은유다. 집단의 역사는 백지와도 같은 그의 몸과 정신을 바람처럼 이리저리 불고 간다. 그는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왜 그렇게 돌아가는 것인지를 알지 못한다. 역사의 소용돌이, 혹은 역사의 천둥번개가 연약한 개인을 불행과 비극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몰아 넣는 이야기에 우리는 익숙하다. 그러나 포레스트 검프는 이같은 비극적 세계관에 허를 찔러버렸다. 역사가 연약한 개인을 꼭 비극 속으로만 몰아넣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개인은 꼭 심각한 얼굴로 심사숙고하여 실존적 결단을 내리지 않아도 때로 행복이나 의미있는 삶에 이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반드시 똑똑해야 착한 녀석이 되고 행복한 녀석이 되는 것은 아니다'
라는 본의 아닌 영웅의 윤리가 이 영화 속을 관통하고 있다. 포레스트 검프의 좌우명은 자신의 뚜렷한 주관의 표현이 아니라 '항상 모든 것을 알기 쉽게 설명해 주는' 그의 엄마가 머리속에 넣어준 것이었다. 그는 순진한 백지다. 엄마는 그 백지 위에 삶의 지침을 써 넣어준다. 그는 고지식하게 그 좌우명을 따라 무작정 달린다. 엄마는 그의 유일한 이데올로기의 원천이다.
"엄마가 그러는데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은 거래요. 속에 송로가 든 것을 입에 넣게 될지 리쾨르가 든 것이 걸릴지 어찌 알겠어요?"
그래서 포레스트 검프는 초콜릿 상자를 무릎 위에 올려 놓고 벤치에 앉아 애인의 집으로 자신을 실어다 줄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최고의 흥행 성적을 올린 포레스트 검프가 표방하는 낙관적 세계관에 의하면 '인생은 먹을 수 있고 달콤하며 속이 비어 있다'는 것이다.

영화는 마치 단막극처럼 시작된다. 막이 열리면 작은 연극무대처럼 반듯한 갈색의 대지 위에 설치된 시골마을 버스 정거장의 벤치 하나가 보인다. 등뒤에는 빛이 밝게 비쳐드는 잔디밭이 있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벤치의 옆자리에 와 앉는 아무에게나 포레스트는 묻지도 않는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젊은 흑인 여자가 옆자리에 앉는다. 독백처럼 그녀에게 초콜릿을 권하거나 말을 붙인다. 남북전쟁 영웅으로 후일 KKK단을 만든 장본인인 포레스트 검프 장군의 이름을 딴 자신의 이름을 소개하며 청년은 말한다.
"엄마가 그러는데 인생은 초콜릿 상자 같은 거래요... 편한 신발을 신으셨군요."
자연히 이야기는 신발에서 시작된다. 다리병신인 때문에 쇠붙이로 된 보조장치를 잔뜩 끼고서야 어렵사리 걸어다녔던 어린시절.
"사람은 가끔 말도 안 되는 일을 한댔어요."
그의 이야기와 생각은 언제나 어머니의 인용문으로 시작된다.

알라바마주의 그린 보우 근처의 큰 집에서 엄마와 다리병신 외아들은 남는 방들을 손님들에게 빌려주며 살아간다. 지능지수가 75밖에 되지 않는 지진아를 정상아들의 학교에 기어이 밀어놓기 위하여 어머니는 교장선생님을 집으로 모시고 와서 요란한 소리를 내며 정사를 하는 것도 불사한다. 아이는 저물어가는 문간에 혼자 앉아 똑똑한 어른들이 내는 그 신음소리를 듣는다. 저능아의 어머니와 함께 흘린 땀을 손수건으로 닦으며 돌아가는 교장선생님의 등뒤에 대고 아이는 그가 들은 신음소리를 재방송한다. 이 저능아는 이처럼 초장부터 우리의 허를 찔러 놀라키면서 약간 쓸쓸하게 웃긴다. 모자라는 사람은 눈치가 없다. 그래서 똑똑한 사람들은 난처하게 한다.

처음 학교에 입학하게 된 소년 포레스트는 집 앞에서 스쿨버스를 기다린다. 이 영화는 처음 학교에 입학하는 아버지 포레스트의 스쿨버스에서 시작하여 아들 포레스트의 스쿨버스로 끝난다. 한세대, 한 인간의 반생이 역사의 수레에 실려 흘러가는 것이다. 바람이 깃털을 허공 중에 싵고 어디론가 떠가듯이 우리의 인생은 늘 어떤 버스에 실려가게 마련이다. 어떤 버스는 학교로 데려가고 또 어떤 버스는 병영이나 전쟁으로 데려간다. 담배를 꼬나문 여자운전사를 쳐다보며 꼬마 포레스트는 말한다.
"엄마가 모르는 사람과는 상대를 하지 말래요. 내 이름은 포레스트 검프예요. 인사를 했으니 이제 아는 사람이 되었네요."
저능아의 이같은 삼단논법에는 순진함을 불러일으키는 웃음과 더불어 늘 5퍼센트 정도의 슬픔이 깔려 있다. 그러나 그 슬픔은 포레스트의 몫이 아니라 그를 바라보는 관객의 몫이다. 그리고 아이는 버스에 올라탄다. 그러나 미리 차에 타고 있던 아이들은 한결같이 그가 제 옆자리엔 앉지 못하게 한다. 적대적인 사회와의 첫만남이다.
"사람의 기억이란 웃겨요. 처음 태어났을 때 기억은 통 생각나지 않거든요."

포레스트는 백지다. 그런 백지 위에 최초의 사랑의 모습을 그려넣어준 존재,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아이인 제니를 버스 안에서 만난 것이야말로 포레스트의 행운이다. 그는 그녀의 옆자리에 앉아
"난 등뼈가 의문부호처럼 휘었대."
하고 설명해 준다. 이리하여 두 사람은 콩과 콩깍지 같은 사이가 된다. 함께 높은 나뭇가지 위에 나란히 올라가 앉기도 하고 가지 사이에 두 발을 끼우고 거꾸로 매달려 별을 바라보기도 한다. 제니는 특별한 사람, 하나밖에 없는 친구가 되었다. 버스는 박해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랑을 만나는 공간이기도 하다. 포레스트의 순애보는 이렇게 시작된다. 이제부터 그의 인생을 지배하는 여자는 오직 어머니와 제니 두 사람뿐이다. 이제 보호자와 적대자가 등장했으니 이야기의 문법은 가동되기 시작한다.

저능아요 다리병신인 포레스트를 못살게 구는 아이들이 "야, 이 쇠다리!" 하고 놀리며 돌팔매질을 하며 자전거를 타고 뒤쫓아온다. 소년은 절뚝거리며 절망적으로 도망친다. 제니는 뒤에서 "뛰어라 포레스트! 뛰어라!"하고 안타깝게 응원한다. 죽을 힘을 다하여 달리는 포레스트. 길은 멀고 다리를 조이는 보조장치 때문에 걸음은 불편하다. 그러나 그는 힘껏 달린다. 외곬으로 달린다. 그 길밖에 다른 길이 없기 때문이다. 마침내 기적처럼 다리에 붙은 보조장치가 떨어져 나간다. 궁즉통이라던가! 사실성과 관계없이 관객은 박수를 치고 싶어진다. 자유로워진 다리는 초고속 카메라의 응원을 받으며 질주한다. 먼지가 푸석푸석 이는 길 위로, 풀밭 위로, 아스팔트 위로, 제니가 사는 퇴락한 오막살이집으로 뚫린 밭 가운데 오솔길로.

"말해도 안 믿겠지만 난 바람같이 달렸어요. 그후 나는 어디를 가든 뛰어갔어요."
포레스트 검프의 인생은 이리하여 뒤도 돌아보지 않는 질주의 연속이다. 어느덧 두 아이가 고등학생으로 성장하자 또다시 적대적인 아이들은 조롱하며 따라오고 포레스트는 또 절망적으로 달린다. 이번에는 아이들이 트럭을 타고 쫓아온다. 그는 힘껏 달리고 제니는 뒤에서 안타깝게 소리친다. "포레스트 뛰어라, 포레스트!" 자전거와 싸워 이겼던 포레스트다. 이번엔 트럭보다도 더 빨리 달려간 포레스트가 어느 축구장 한복판으로 뛰어든다. 세계는 나의 도전! 나는 나의 적수만큼 강해진다. 적수여 억세어져라. 그리하여 나는 그만큼 더 강해지리니. 대학생이 된 포레스트는 그 절망적인 뜀박질의 훈련 덕분에 축구선수가 된다. 붉은 바탕의 유니폼에 백넘버 44번을 달고 대학축구팀에서 발군의 실력을 과시한다.

천재는 집중이다. 포레스트의 전인격은 달리기에 집중된 것이다. 그 길밖에는 길이 없기 때문이다. 우직한 사람의 질주는 아름답다. 때는 혼란스러운 시대. 두 사람의 흑인 학생이 앨라배마 대학에 입학하려 하자 주지사는 학교문을 막고, 케네디 대통령은 인종차별을 폐지시키고 두 학생을 입학시키도록 한다. 다시 벤치 장면. 젊은 흑인여자 옆에 아이 안은 여자가 앉아 이야기를 듣다가 자기도 당시에 대학을 다녔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옆에 있던 흑인여자는 버스를 타고 떠난다. 짐작했겠지만 이야기는 이처럼 버스정거장 벤치에 앉아 있는 포레스트의 현재와 그가 늘어놓은 이야기의 과거가 교차하도록 짜여져 있다. 매우 암시적으로, 이야기 속의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벤치에서 이야기를 듣는 인물의 연령도 점차 높아가고 인종과 성별과 인상이 차츰 바뀐다. 그뿐이 아니다. 매우 암시적으로 과거의 이야기 내용과 현재의 옆사람이 간접적으로 조응한다. 흑백문제와 관련된 과거의 이야기가 나올 때 벤치의 청중이 흑백의 2인에서 1인으로 바뀌고, 흑인에서 백인으로 교대되고 있지 않은가!

어느 비 오는 날 저녁, 당시 여자대학의 기숙사로 제니를 찾아갔던 포레스트는 자동차 안에서 어떤 남자가 제니를 포옹하려는 장면을 목격하자 달려가 그를 마구 때린다. 지능지수 75의 포레스트는 뭘 모른다. 테이트가 끝나고 여자를 집으로 다시 데려다주는 남학생은 으레 마지막 순간에 본심을 드러내는 법. 누구나 다 아는 그 통과의례를 포레스트만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엉뚱한 공격을 간신히 뜯어말린 제니는 비에 젖은 포레스트를 자신의 기숙사 방 안으로 잠시 데리고 들어간다. 포레스트의 그 서투르고 표현할 길 없는 사랑을 모를 리 없다. 제니는 존 바에즈 같은 유명가수가 되고 싶다면서 젖은 속옷을 갈아입는다.
"여자와 지내본 적 있니?"
"가정학 강의시간엔 항상 여자들이 옆에 있는 걸."
포레스트는 언제나 이처럼 약간 모자라다. 관객들은 웃지만 그의 편이 되어 있다. 제니가 브래지어를 벗고 포레스트의 손을 끌어 당겨 젖을 만지게 한다. 숨막히는 듯 신음소리를 내며 포레스트는 어지럽다고 한다. 그의 우스꽝스러운 관능 속에서 관객은 여전히 한 5퍼센트 정도의 슬픔이나 연민을 느낀다. 무언의 감동과 함께 말이다.

축구시합을 하는 사이에 대학시절은 쉬 흘러갔다. 미국 최우수선수로 지명되어 케네디 대통령의 초대도 받아보았다. 어느덧 대학 졸업식. 모자 쓴 장교가 다가와 훌륭한 군인이 되기를 바란다면서 광고지를 준다. 바람에 날리는 새의 깃털처럼... 우연한 광고지 한 장 때문에 이번에는 버스가 우리의 주인공을 군대로 인도한다. 그 버스 안에서도 옆자리에 앉지 못하게 하는 적대자들은 많다. 그러나 지난날 제니가 그랬듯이 버스 안에는 "새우잡이 어선 타봤어? 난 평생 거기서 일했지." 하고 빙긋이 웃으며 그를 환대하는 흑인친구 버바도 있는 법이다. 그 흑인의 온 가족은 새우잡이에 관한 한 도통했단다.

비가 쏟아지는 날의 골똘한 대화로 우정은 시작된다. 포레스트의 백지 같은 맹목의 일생에서 어머니와 제니, 그리고 흑인친구 버바와 뒤에 만나게 될 덴 중위는 네 개의 이정표다. 가장 단순한 대답을 우렁차게 고함치는 포레스트에게 상사는 최고의 답을 한 사병이라면서 지능지수가 160은 되겠다고 칭찬한다. 총기 조작에서도 가장 우수하다는 칭찬을 받는다. 바보들의 행진이다. 그러나 취침나팔 소리가 외롭게 들리는 밤은 그를 다시 어린아이로 만든다.

한편 대학교의 교복을 입은 채 선정적인 잡지에 사진이 났다는 이유 때문에 퇴학당한 제니는 쇼 무대에서 벌거벗은 몸을 기타로 가리고 노래를 부른다. 꿈에 그리던 가수가 되긴 된 것이다. 그 술집을 우연히 찾아갔던 포레스트는 그녀를 희롱하는 취객들을 밀어젖히고 무대로 뛰어올라가 그녀를 덥석안고 무대 뒤로 들어간다. 이 불청객에게 성을 내는 제니에게 청년 포레스트는 처음으로 고백한다. 사랑한다고... 제니는 다리 위에서 어디론가 떠나려다 말고 잠시 다시 돌아와서 월남전에 참전하러 떠난다는 포레스트에게 말한다.
"위험한 일을 당했을 때 영웅심을 내세우지 말고 조심한다고 약속해 줘."
매일같이 편지한다고 약속한 포레스트는 고향의 호숫가에서 어머니께 작별인사를 하고 전장으로 떠난다.

갑자기 터지는 포탄. 머리 위에 기관총이 불을 뿜는다. 후퇴명령이 떨어졌다. 너무 빨리 뛰어 후퇴하는 바람에 혼자가 된 포레스트는 뒤늦게서야 옆에 버바가 없음을 깨닫는다. 물론 그는 지체없이 불바다 속으로 되돌아간다. 우선 바닥에 쓰러진 다른 부상병을 보자 닥치는 대로 들쳐업고 바닷가로 데려온다. 또 다른 친구 또 다른 병사를 들쳐업어다 놓는다. 소대를 버릴 수 없으니 버려두고 가라는 중위까지도 억지로 들쳐업어다 놓는다. 맹목의 행진이다. 마침내 불바다를 배경으로 사경을 헤매며 쓰러져 있는 버바를 들쳐업고 왔으나 그것이 그와의 마지막 작별이 되고 만다.

벤치의 옆자리에는 어느새 얼굴이 동그란 중년사내가 넥타이를 매고 앉아 있다. 후송병원에서 포레스트는 엎드려서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엉덩이를 다쳐서 똑바로 누울수가 없기 때문이다. 옆에 누운 중위에게 아이스크림을 주자 그는 변기통에 아이스크림을 버린다. 중위는 오금장이께부터 두 다리가 잘려나간 불구자가 되었다. 전장에서 매일같이 제니에게 써보낸 편지들은 뒤늦게 꾸러미째 모두 반송되어 돌아왔다. 그의 고지식한 사랑이 다시 백지로 변한 것이다.

포레스트는 병원에서 처음으로 탁구를 배운다. 혼자서도 연습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기 때문에 선택한 종목이다. 탁구공을 변기에 쳐서 넣는 연습에 너무나 골몰한 나머지 자면서도 탁구시합하는 꿈을 꾼다. 천재는 집중이라고 했다. 외곬으로 집중하는 것이 바보의 미덕이다.

한편 테일러 중위는 폭발한다.
"사람에게는 운명이라는게 있다. 나는 다리 없는 괴물이 되었다. 내 운명은 그러므로 어서 죽는 거야. 장렬하게. 그런데 네가 그 기회를 뺏아가버렸어. 내겐 예정된 운명이 있었어. 난 덴 테일러 중위였었어."
자신의 비참한 운명을 견디지 못한 그가 어느날 병원에서 사라져버렸다.

검프 상등병은 존슨 대통령에게 명예훈장을 수여받는다. 검프는 그 자리에서 대통령에게 부상한 엉덩이를 까고 보여준다. 웃어젖히는 존슨 대통령. 워싱턴에 온 기회에 동상과 기념물들을 구경하며 사진찍는 데 여념이 없는 휴가 중의 검프 상등병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반전평화운동 집회에 끌려가게 된다. 앞사람만 보고 따라가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검프 상등병은 성조기로 옷을 해입은 청년에 이끌려 군복 정장 차림으로 반전집회의 연단에 올라가게 된다. 영문을 알 수가 없다. 바람에 날리는 새의 깃털처럼.. 직사각형의 연못을 중심으로 운집한 엄청난 수의 군중. "빌어먹을 베트남 전쟁!" 하고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 마침내 마이크에 대고 그는 즉흥 연설을 시작할 수밖에 없다. "글쎄요, 전쟁에 대해서 할말은 오직 하나뿐인데..."
이때 누군가가 마이크의 코드들을 빼버린다. 소리가 죽는다. 그는 무언가 말을 하지만 들리지 않는다. 마이크가 작동되었을 때 비로소 포레스트의 맺는 말소리가 들린다.
"제가 할 말은 이게 다예요."
언제나처럼 포레스트의 이 멍청한 행동을 바라보는 관객은 웃음을 터뜨리는 동시에 5퍼센트 자신의 마음은 백지와 같다. 바람부는 대로... 날리는 가벼운 백지. 이때 운집한 군중 속에서 포레스트를 부르면서 한가운데의 연못 물 속으로 걸어나오는 여자가 있다. 꿈에도 그리던 제니다. 포레스트도 물 속으로 달려간다. 연못 한가운데서 두 사람의 포옹이 이어진다. 군중이 박수를 친다.
"일생에서 제일 가는 순간이었죠. 우리는 다시 콩과 콩깍지 같은 사이가 되었어요."
그러나 제니의 곁에는 붉은 완장을 찬 안경 쓴 버클리 대학 민주학생단 단장이 있다. 블랙팬터즈이다. 학생단장이 제니를 때리는 것을 보자 달려들어 그를 마구 친다. 이리하여 반체제학생 그룹에서 쫓겨나는 포레스트와 제니. 제니가 그의 군복을 쓰다듬으면서 "근사해 보여." 두 사람은 밤새도록 이야기하며 걷는다. 그리고 제니는 학생단장과 버스를 타고 떠난다. 버스의 뒷유리창으로 내다보면서 V자를 그려 보이는 제니. 포레스트도 V자를 그려 보이며 답한다.
"제니는 또다시 그렇게 내 인생에서 떠났어요."

그는 베트남으로 돌려보내지는 대신 전국을 돌며 군인들에게 탁구 쇼를 하는 일을 맡았다. 세계평화를 위하여 중국에까지 가서 탁구시합을 했다. 유명인사가 된 그는 텔레비전 프로에 출연하여 존 레논과 대담한다. 물론 동문서답이고 주로 말을 하는 쪽은 존 레논이다. 그후 존 레논은 이유없이 총에 맞아 죽었다. 그러나 저능아 포레스트는 건재하다.

명예훈장을 받은 직후 그는 우연히 덴 테일러 중위를 다시 만난다. 포레스트는 뉴욕의 호텔에 기거한다는 중위와 텔레비전을 보며 함께 지낸다. 탁구팀이 백악관에 초대받아 닉슨 대통령을 만난다. 대통령은 포레스트에게 보다 좋은 호텔로 옮기라고 권한다. 그래서 그는 워터게이트 호텔로 옮긴다. 한밤중에 호텔에서 그는 문득 경비원에게 전화를 건다.
"길 건너 건물의 휴즈박스에서 불이 깜박여서 잠을 잘 수가 없어요."
이로 인하여 워터게이트 사건이 터지고 닉슨 대통령이 사임한다. 간혹 고지식한 바보들은 본의 아니게 똑똑한 사람들을 곤경에 빠뜨린다.

검프 중사는 탁구 연습 중에 명령서를 받고 군복무가 끝났음을 알게 된다. 뛰어서 문을 열고 고향집으로 돌아간다. 집 안에는 그 저명인사를 만나려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었다. 그러나 그는 죽은 버바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그의 집을 찾아가 가족을 만난다. 이것이 순진한 사람의 충실성이겠지만 버바의 가족들은 어이없어할 뿐이다. 이발하고 양복 사입고 엄마에게 멋진 저녁식사를 사드린 다음 포레스트는 결국 연료와 밧줄을 사서 배에 싣고 새우잡이를 떠난다. 물을 가르면서 개선장군처럼 떠나는 새우잡이배가 보인다. 그러나 그물에 걸려 올라오는 것은 고철과 깡통, 그리고 겨우 두마리의 새우뿐이다. 오랫동안 소식 모르는 제니의 이름을 배이름으로 정하고, 그녀를 그리며 행복을 빌지만 그녀는 마약중독자가 되어 있다. 절망에 빠진 그녀는 마침내 굽 높은 구두를 신고 고층 건물의 베란다 난간에 올라서서 자동차들이 불을 켜고 씽씽 달리는 저 아래 아스팔트 위로 투신하려고 한 발을 허공에 내민다. 그러나 결국 용기를 잃고 다시 내려와 의자에 주저앉아 시커먼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 채 머리 위에 높이 떠 있는 차가운 달을 바라본다. 같은 달을 바라보며 갑판에 누운 포레스트는 언제나 잊을 수 없는 제니 생각뿐. 문득 바닷가 승선대 위에 혼자 앉아 있는 덴 중위가 보인다. 포레스트는 돌연 바닷물 속에 뛰어들고 그에게로 정신없이 헤엄쳐 달려간다. 중위는 약속했던 대로 일등항해사로서 동업자가 된다. 그러나 여전히 그물에 걸려 올라오는 것은 빈 깡통과 쓰레기뿐이다. 포레스트는 흑인교회에서 매주 기도를 올린다. 그래도 그물에 걸려 올라오는 것은 철모와 구두짝 뿐이다. 폭풍으로 인하여 모든 새우잡이배가 다 파괴되고 오직 그들의 배 한척만이 남았다. 이리하여 그들은 새우를 쏟아지게 잡아들인다. 덕분에 12척의 배를 사고 버바 검프 회사의 사장이 된다.
"우리가 백만장자 옆에 앉아 있었군!"
하고 말하며 벤치에서 일어서는 얼굴 동그란 중년의 사내. 그 옆에 앉아 있던 할머니가 말한다.
"매우 아름다운 이야기로군요."
포레스트는 할머니에게 '포춘(Fortune)'지의 표지에 실린 자신과 중위의 사진을 보여준다.

어느 날 중위는 뱃전에서 몸을 던져 바닷물 속에 뛰어들어 편안하게 수영을 한다. 하나님과 화해를 한 모양이다. 그 무렵 몸져누운 어머니께 허둥지둥 달려간 포레스트는 언제나처럼 푸른색 체크무늬 셔츠 차림으로 병석의 어머니에게 묻는다.
"왜 죽어요, 어머니?"
"때가 된 것뿐이다. 죽음은 인생의 일부란다. 난 최선을 다했다. 신이 주신 능력으로 최선을 다해야 해.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은 것이야. 무엇이 걸릴지 우리는 모른단다."
벤치의 옆자리에 앉아 있던 할머니가 눈물짓는다. 어머니를 잃자 포레스트는 일생 처음으로 고독과 대면한다. 그러나 그는 고독이 무엇인지를 모른다. 그는 어머니가 여전히 어딘가에 있다고 믿는다.
"그후 시에서 제게 가장 좋은 일자리를 주셨죠. 잔디 깎는 일이었어요."
새우잡이로 벌어들인 거액의 재산을 일부는 교회에 바치고 또 일부는 검프 의료센터에 투자한 억만장자가 지금은 잔디를 깍으며 산다. 저 푸른 풀밭에 흰옷을 입고 걸어오다가 그만 푸른 잔디 속으로 녹아서 지워지는 제니의 영상이 떠오른다. 포레스트는 진종일 잔디를 깎는다. 바이얼린 음악이 가슴 저리게 울린다. 그런데 진짜 제니가 찾아온다. 흰옷 입고 옆에 노끈으로 짠 가방 하나 메고 가볍게 다가선다. 기쁨에 넘친 포레스트는 그녀를 향해 달려가다가 우뚝 선다. 해맑은 얼굴의 제니. 달려들어 껴안는다. 그 후 제니는 포레스트의 집에서 함께 살면서 밀린 잠만 며칠동안 줄기차게 잔다. 긴 세월의 피로로부터의 휴식을 취하는 것이다. 그들은 산보를 하다가 퇴락한 모습으로 서 있는 제니의 옛집을 마주한다. 앞으로는 페인트가 벗어진 흰 판자벽, 옆에는 현관, 텅 빈 폐가다. 제니는 아픈 기억 뿐인 그 집을 향하여 돌을 던지다 쓰러져 울음을 터뜨린다. 집 앞으로 나가 푸른 등을 보이는 포레스트가 보인다. 그 쓸쓸한 뒷모습에 저녁 그늘이 떨어진다. 잠옷 바람으로 침상으로 다가오는 제니가 "사랑해, 포레스트."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이 최초의 정사 장면은 연소자 관람 가능할 정도로 순정하다.

그러나 이틑날 이른 아침, 올 때 그대로의 복장에 조끼 하나만 더 걸쳐입고 택시를 불러 타고 소리없이 제니는 떠난다. 포레스트는 세상 모르고 잠만 자고 있다. 그녀가 남겨두고 간 탁구채와 훈장에 고요한 아침빛이 내려앉는다. 뒤늦게 깨어나 잠옷 바람으로 우유컵을 든 채 망연히 서 있는 포레스트와 텅빈 제니의 침대가 남아 있을 뿐이다. 그 길로 포레스트는 제니가 사주었던 농구화를 신고 붉은 챙이 달린 모자를 쓰고 집 앞의 풀밭 사이 곧은 길을 달려나가 다시 그린 보우까지 갔다가 알라바마 주를 건너질러 질주횡단한 다음 까닭 모르게 또 내처 달린다. 바다를 만나면 돌아서서 계속 뛰어 반대편 바다까지 가고, 또 다시 돌아서서 뛰고 또 뛰었다. 때는 카터 대통령 시절이다. 검프가 달릴 때 그 배경이 되는 광대한 미국 풍경은 미국영화사의 모든 배경이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눈 덮인 산, 전원, 가을의 단풍든 숲이 달리는 포레스트의 등 뒤로 무심하고 아름다운 역사가 지나간다. 황무지를 지나고 해 저물고 달 뜨는 대지를 지나 이렇게 3년 2개월을 달렸다. 그리고 그는 문득 멈추어 섰다. 자신도 알지 못하는 구도의 길이 끝난 것이다. 수염이 길게 자란 성자 아닌 성자 포레스트가 서있다.

레이건 대통령이 총격을 받는 뉴스가 텔레비전에 전해질 때 제니가 보낸 편지가 도착한다. 포레스트는 아이와 함께 나란히 앉는다. 약간 모자라는 아빠와 똑똑하다는 아들이 나란히 말이다. 순진함과 순진함의 만남은 정답고 아름답다. 제니는 불치의 병에 걸려 있다. 그래서 그녀는 혼자 떠났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두 사람은 결혼하기로 한다. 포레스트가 제니에게 앨라배마의 집으로 돌아가자고 권한다. 마침내 고향집에서의 결혼식. 화관을 쓴 흰옷의 신부. 알루미늄 다리를 달고 지팡이 짚고 걸어서 찾아온 덴 중위와 뚱뚱하고 순진해 보이는 그의 약혼녀. 집 앞의 풀밭에서 호수를 바라보며 늘어앉은 하객들. 행복한 순간이다. 어느덧 낙엽이 바람에 쓸리며 날리는 계절이다. 세 식구가 집 앞길을 걷는다. 아침상을 차려가지고 창가에 놓인 제니의 침대 옆으로 오는 포레스트. 마음속에 떠오르는 반생의 풍경들이 스쳐간다.
"너랑 같이 있었으면 좋았었을 것을.."
"같이 있었어. 사랑해."
그리고 제니는 갔다. 포레스트는 집 앞의 넓은 풀밭 큰 나무 밑에 하얀 무덤을 만들고, 제니의 헌집은 무너뜨리고, 꼬마 포레스트는 학교에 가고, 아빠는 꼬마와 호수가에 나란히 앉아서 낚시질을 하고, 포레스트는 언제나 한결같은 체크무늬 셔츠를 입고 눈물을 흘리고, 수레국화 꽃다발과 편지 한장을 무덤에 바친다. 집 앞 정거장에 노란 스쿨버스가 멈추면 붉은 색 모자와 푸른 반바지를 입은 꼬마 포레스트가 처음으로 스쿨버스에 오른다. 버스는 떠나고 포레스트는 다시 자리에 앉는다. 그의 발 밑에 내려앉았던 하얀 깃털 하나가 바람에 가볍게 날아오른다. 날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가벼움이다라고 대답하는 듯한 하얀 깃털.... 바람에 날아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어두운 방안에서 내다본 밝은 세상> 김화영 저서에서 발췌



1995년에 아카데미 최우수 남우주연상, 감독상, 편집상, 각본상, 작품상, 시각효과상을 수상했다. 또한 브리티시 아카데미 최우수 특수효과상과 골든 글로브 최우수 감독상, 작품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스쿨버스에 타고있던 학생들 중 저메스키 감독의 아들과 톰 행크스의 딸이 출연했다고 한다.
옥의 티. 포레스트 검프의 대사 중에 애인 제니가 토요일 아침에 떠났다는 말이 나온다. 그런데, 그가 찾은 제니의 묘비에는 사망일이 1982년 3월 22일이라고 씌어있는데, 이날은 월요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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