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방송 /다큐, 시사 '에 해당되는 글 1100건

  1. MBC 스페셜-추신수, 마침내 메이저리그를 치다, 그가 MLB에 오르기까지의 여정
  2. 공부의 왕도 - 시간의 주인이 되어라, 이호준 (사진보기)
  3. 느리게 행복하게 걷고 싶은 길-한강, 자전거는 바람을 타고
  4. SBS 스페셜 다큐 -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GDP를 넘어서 4
  5. MBC W - 꿈꾸는 아빠와 도전하는 아들 -패트릭 부자 이야기 (사진, 동영상보기)
  6. SBS 스페셜 다큐 -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거기에 있는 이유가 있었다 2
  7. 그것이 알고 싶다 - 2012년, 지구의 종말은 오는가? (사진보기)

MBC 스페셜-추신수, 마침내 메이저리그를 치다, 그가 MLB에 오르기까지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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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고 어려운 오랜기간의 마이너리그를 거쳐서 이제는 우뚝선 추신수선수의 스토리...
한때는 포기하고도 싶었지만, 이전의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가 아니라, 가족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며 최고의 자리에 우뚝선 그...



그 힘든 과정에 오르기까지 꾸준히 노력하고, 힘들었던 시기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미래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특히나 부산고 시절에 지금의 그를 만들어준 감독님이 돌아가시고 그날 하루에 홈런 2방을 때리는 등 정말 눈물겨운 스토리부터... 하루에 새벽 5시부터 밤 11시까지 훈련을 하면서 토하고, 또 훈련을 하던 시절을 떠올리면 지금의 그가 그저 우연이나 천재적인 능력으로만 지금의 그가 만들어진것이 아니라는것을 아주 잘 보여준 방송...



추신수선수가 메이저리그가 되고, 많은 연봉을 받는것이 부럽기는 하지만, 과연 그처럼 노력하고, 그처럼 어려운 과정을 참고 견딜 자신이 있는지 나 자신에게 물어보았던 방송...

올해 메이저리그를 강타한 한국인 스타!
아시아 선수 최초로 홈런 20개, 도루 20회라는 대기록을 달성한 추신수.
고교 야구를 주름잡는 투수였던 그가 미국으로 건너가 겪었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5년 6개월의 마이너리그 생활,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오려 했던 그 때 힘이 되었던 가족, 故조성옥 감독에게 바친 슬픈 홈런 등 메이저리그 진출 후 20-20을 달성하기까지... 추신수의 모든 것을 공개한다. 



1. 추신수를 만든 아버지

 

2. 新 내조의 여왕

3. 슬픈 홈런- 감독님의 마지막 선물 

4. Nobody but CHOO!(추, 너 아니면 안 돼!)

 


MLB 클리블랜드 추신수, 9회말 끝내기 3점 홈런 동영상 보기


류현진의 메이저리그 완봉승과 운동선수의 담배 흡연문제에 대한 우려와 국민영웅으로써 금연 기원


메이저리그 LA 다저스와 애리조나전에서 투수 빈볼로 벤치클리어링 몸싸움 동영상


너클볼(Knuckleball)-팀웨이크필드, RA 디키의 이야기를 그린 EIDF 2012 스포츠 다큐멘터리 방송


LA다저스, 탬파베이 끝내기 에러로 기적같은 역전승 장면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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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왕도 - 시간의 주인이 되어라, 이호준 (사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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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계획의 중요성을 강조한 학생들은 많았지만, 이렇게 계획에 집중해서 시간의 주인이 되고, 그것을 철저히 지키는 노력을 보여준 이호준 군...
보통보면 하나의 계획안을 만들어서 그것을 밀어붙이는데, 이 학생은 자신이 말하듯이 자신의 계획은 하나도 같은것이 없다고... 어제보다 조금 다르게, 조금 나에게 맞도록 만드는 새로운 계획들...
그런 꾸준한 계획이 대입으로 끝나는것이 아니라, 평생 살아가는데도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 그의 철저한 계획을 보면서 역시나 뭐든지 정답을 찾기 보다는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것을 찾아 꾸준히 노력하며 도전하는것이 가장 중요한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시간을 정해놓고 일이나 공부를 하는 마감효과가 좀 긴장이 되지만, 구체적이고 일하는데도 많은 도움이 된다는 개인적인 느낌도...


 
<공부의 왕도> 제 9회
 
시간의 주인이 되어라
-이호준 (서울대학교)
 
방송 일시: 2009년 10월 27일 화요일 저녁 10:40 ~ 11:10
채 널: EBS
프로듀서 : 류재호
제작 연출: 미디어 소풍/ 연출: 강태연 글.구성: 정영미
 
 
앉아 있는 시간에 비해
 
실속은 없기 쉬운 수험생활!
 
 
시간을 완벽하게 활용하기 위해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는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이호준 군!
 
 
시간에 쫓기는 수험생들과 달리
 
시간의 주인이 된 이호준 군의
 
특별한 시간 관리법은 무엇일까?
 
 
고등학교 3학년, 시간의 노예가 되기로 결심하다!
 
철저하게 시간을 관리해 공부한 끝에 서울대 물리학과에 진학한 이호준 군. 그 역시 고등학교 2학년 겨울 방학 이전까지는 시간 관리와 무관한 학생이었다. 다른 사람들을 따라 몇 번 계획을 세워봤지만 번번이 실패였고 결국 시간 관리를 포기했었다. 그러나 예비 고3이 되자 그동안 의미 없이 흘려보낸 시간들이 후회되었다고. 그래서 남은 마지막 1년을 단 1분 1초도 허투루 쓰지 않기로, 시간의 노예가 되기로 결심했다.
 
철저한 시간 관리로 시간의 주인이 되다!
 
이전까지의 계획들은 ‘자신’이라는 변수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계획이었다는 이호준 군. 문제점을 보완하고자 자신의 성적, 생활 습관, 기본 일정을 모두 고려해 계획을 세우고 수정해 나갔다. 그 결과 자신에게 꼭 맞는 계획을 세우고 실천할 수 있었고 성적도 전교 50등에서 1등으로 올라설 수 있었다고. 그렇다면 이호준 군은 어떻게 계획을 세웠을까? 네 명의 상산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과 함께 이호준 군의 시간 관리법을 체험해 보자!
 
 
 
이호준 군이 전하는 공부 Tip!
 
자기분석 : 가장 큰 변수는 나 자신이다!
 
자신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 시간 관리의 첫 단추라는 이호준 군. 그래서 우선 자신의 성적을 분석해 과목별로 공부 목표를 설정했다. 그리고 자신의 생활습관을 분석하면서 시간대별 집중력을 파악해 각 과목들을 적당한 시간대에 배치했다. 이때 각 과목의 공부량은 단원 단위가 아니라 자신이 문제 푸는 데 걸리는 시간을 고려해 문제 단위로 세세하게 정했다. 그리고 그 외에 개인적인 일정들을 추가해 맞춤형 계획을 세우기 위한 초석을 마련했다.
 
시간의 분석 : 시간의 조각들을 기우다!
 
자신을 분석한 후 이호준 군은 자신이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의 총량을 구했다. 수업 시간과 자습시간 등 고정적인 공부시간은 물론 자투리 시간까지 모두 분 단위로 기록했다. 하지만 자투리 시간은 갑작스레 생기는 경우가 많아 의미 없이 보내게 되곤 했다. 그래서 그 시간에 무엇을 할지 미리 정해 두었다는 이호준 군. 5분의 시간이 생기면 스트레칭을 하고, 10분은 영단어 암기, 15분은 신문 사설을 읽는 식이었다. 이렇게 고정된 공부 시간은 물론 자투리 시간까지 효율적으로 활용하게 되자 전보다 훨씬 많은 공부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보상시간과 조정기간 :‘나’와 ‘시간’의 퍼즐을 맞추다!
 
자신과 시간을 철저히 분석해서 계획을 세운 이호준 군. 그러나 계획이 항상 완벽하게 지켜질 수는 없는 법. 그래서 마련한 것이 바로 보상시간이었다. 이는 예상치 못한 변수로 인해 주중에 끝내지 못한 공부를 보충하는 시간으로 계획을 다 지켰다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었다. 이 시간은 공부가 다음 주로 미뤄지지 않게 하고, 적절한 휴식을 취할 수 있게 해 주어 자칫 계획에 치여 지칠 수 있는 수험생활의 완충재가 되어 줬다. 또한 2주간의 조정기간을 통해 계획을 수정해 나감으로써 ‘나’와 ‘시간’을 일치시켰다.
 
자기 평가 : 마침내 시간의 주인이 되다!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는 것만큼 얼마나 충실하게 공부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확인하고 반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호준 군은 자기 평가를 위해 자신이 완벽히 집중해서 공부한 시간만을 기록했고 집중한 정도를 기호로 표시했다. 그리고 자기 전에는 하루 공부량의 총 합계를 냈다. 그 합이 최고 기록을 갱신할 때면 뿌듯한 마음에 더 열심히 공부할 수 있었고 평소보다 적으면 반성을 하고 계획의 수정에 참조했다. 이와 같은 평가와 반성의 과정까지 거치면서 이호준 군은 시간의 노예가 아닌 주인이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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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행복하게 걷고 싶은 길-한강, 자전거는 바람을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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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에 MBC에서 한 다큐...
자전거를 타고 한강자전거 고수부지와 인근 지역을 돌아보는 내용의 방송으로...
자전거를 타고서만 느낄수 있는 독특한 느낌과 풍경을 잘 보여주고,
한강자전거 도로 부근의 명소들도 잘 소개를...

난지캠핑장 - 월드컵 상암경기장 주변 한강공원내

특히나 마포 농수산물센터에서 조개와 회 등을 사다가 위의 난지 캠핑장에서 텐트를 빌려서 구워먹는 것은 오~ 이런 멋진 방법이 있었구나라는것을 알게되었다는...

암튼 자전거만이 능사는 아니지만, 자전거를 타야만 또 볼수 있고, 느낄수 있는것들이 있고...
그것은 또 그만큼 부지런히 찾고, 노력해야 맛볼수 있다는것을 알수 있었던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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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스페셜 다큐 -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GDP를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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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돈많이 버는 나라야 미국, 일본 등이 있지만, 미국인들중에서 의료보험 혜택을 못받는 이들이 수술을 받기 위해서 쿠바, 캐나다로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나라의 부와 개인의 행복이 연결되지 않는다면 그 사람에게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러한 면에서 GDP, GNP를 떠나서 새로운 행복지수를 통해서 가장 행복한 나라와 그들은 어떻게 사는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아본 방송...

가장 행복한 나라로 꼽힌 행복지수 1위의 코스타리카... 우리나라는 150여국중에 68위라고...-_-;;
암튼 중남미 국가로써, 중립국이고, 군대를 폐지하고, 그 비용을 의료, 교육, 복지에 사용을 한다... 물론 세금부담도 꽤 높지만, 높은만큼 모두들 혜택을 받고, 행복해하는 모습들이 너무나도 아름답고, 부러워 보였다는...

미국의 근처에 있지만, 미국에 대항하고, 유럽식 복지를 따르는 모습이 우리나라가 당장 따라할수는 없지만, 꼭 배워봐야할 나라가 아닌가 싶다...


이외에 중국과 인도사이에 있는 부탄의 모습과 다양한 행복지수 점검 요소들을 보여주고, 국내에도 새로운 행복지수 도입 및 정책으로 어떻게 연결할지에 대해서도 고민을 하는듯...
다만 인권이나 복지에는 거의 관심이 없는 이정권에서 아무래도 이러한 정책은 공염불에 끝나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든다...-_-;;

암튼 왜 과외를 받고, 왜 좋은 대학을 가서 무엇을 할지도 모르는 학생들...
그저 미래를 위해서 청춘과 젊은 시절을 열심히 살지만, 아무것도 보장할수 없는 노후시절...
돈이 없으면 배우지고, 아프지도, 제대로 살수 없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더이상 물질적인것만이 우리의 삶을 측정하거나 보여주는것이 아니라,
물질적인것보다 그 위의 정신적인것을 좀 더 소중하게 생각하고, 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던 멋진 다큐멘터리 방송이였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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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W - 꿈꾸는 아빠와 도전하는 아들 -패트릭 부자 이야기 (사진, 동영상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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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능성이다 상세보기

요즘 보고 있는 나는 가능성이다를 예전에 W에서 해준적이 있다고 해서 찾아 봄...
눈도 없고, 척추도 제대로 있지 않고, 사지가 짧게 태어나서 혼자서 움직일수도 없는 패트릭...
처음에는 좌절하고, 신을 원망도 했지만, 어쩔수 없는 일은 내가 어쩔수 없고, 내가 할수 있는 일만 하겠다는 신념으로 아이를 키우기 시작하고, 아이의 음악적인 재능을 알게되어서 피아노, 트럼펫을 연주하고, 현재는 대학에 다니면서 높은 성적을 받고, 마칭(행진)밴드에서 연주를 하는 그...
우리는 그를 보면서 할수 없는것이 너무 많을것이다라고 측은하게 보지만,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것에 최선을 다하면서 살고, 또 그만큼의 성취와 남들에게 감동을 주면서 사는데... 그저 내 자신이 부끄럽고, 챙피하다는 생각이 들뿐이였던 방송...
지금 책도 정말 감동적으로 보고 있는데, 정말 사람이라는것이 마음하나만 달리, 제대로 먹으면 이 세상에 못해낼것이 없다라는 위대한 존재라는것을 느끼게 해준 방송...





꿈꾸는 아빠와 도전하는 아들 -패트릭 부자 이야기
평범한 사람들이 가진 것들이 그에게는 없다. 태어날 때부터 양쪽 눈이 없었 고, 골반과 척추도 온전치 못했다. 척추 장애 때문에 온몸은 겨우 90도 정도 밖에 구 부릴 수 없다. 그런 그가 지금, 220여 명의 응원단원 중 한 명이 되어 미식축구 경기 장 한 가운데 있다. 관중들의 환호가 패트릭을 향하고 있는 순간, 그 뒤에서 패트릭 을 더욱 빛나게 해주는 이가 있다. 언제나 그랬듯 패트릭의 뒤에 든든히 서 있는 그 의 아버지다. 행진 밴드가 음악소리에 맞추어 숨 가쁘게 움직일 때마다 아버지는 쉴 새 없이 휠체어를 대열에 맞추어 움직인다. 잔디밭에서도 휠체어가 잘 굴러갈 수 있 도록 매 번 바퀴를 바꿔주는 아버지는, 행진밴드 안에서 휠체어의 또 다른 바퀴가 되 어 패트릭을 위해 뛰어다닌다. 응원단 대열뿐만이 아니었다. 패트릭의 인생에서 아 버지는 그의 모든 가능성을 열어준 열쇠였다. 눈에 보이는 부족함이 아닌, 눈에 보이 지 않는 잠재력과 가능성을 맘껏 펼쳐가는 그의 이야기를 [W]에서 취재했다.


어둠의 지배자 카모라
한국방송사상 최초! 이탈리아 마피아를 만나다! 검은 복면을 쓴 그는 지금도 생 명의 위협을 받고 있다며 두려움에 떠는 모습으로 인터뷰를 했다. 그는 바로 카모라 보스의 오른팔로 활동했던 조직원. 카모라는 이탈리아 4대 마피아 중 하나로, 영화 [대부]로 잘 알려진 시칠리아의 마피아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잔인한 방법으로 나폴 리를 지배하고 있다. 이들은 마약 밀매로 시작해 점차 명품 패션과 쓰레기처리, 유 통, 건설 등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카모라의 실체를 고발한 [고모라]의 작가 로 베르토 사비아노는 “나폴리 인구의 44%는 카모라 조직원, 나머지는 그들의 친구 혹 은 친척으로 나폴리 사람들 모두가 카모라나 다름없다”면서 “나폴리는 이미 카모라 에게 잠식당했다”고 분노했다. 특히 카모라는 배신자나 그들을 방해하는 사람들에 게 잔인한 복수를 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은데, 취재진이 만난 한 조직원은 “염산을 뿌려 죽이거나 혀를 자르고 십자가를 입에 꽂아 비밀 누설을 막는다”며 “배신자를 사 라지게 하는 방법은 수도 없이 많다”고 증언했다. [W]가 [고모라]의 작가 사비아노 와 카모라 조직원을 직접 만나 이탈리아의 수치이자 골칫거리인 ‘카모라’의 충격적 인 실체를 파헤친다.




쿵푸 잉글리쉬
쿵푸 교수 중국청년의 기상천외한 영어 학습법, “아뵤오~!” 시끄러운 기합소리 를 시작으로 한 남자가 초등학교 교실 안을 마구 뛰어다닌다. 머리는 무스를 잔뜩 발 라 꼿꼿이 세우고, 얼굴에는 장난기가 가득하다. 요란한 쿵푸동작을 하며 학생들 사 이를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다가 책상 위로 훌쩍 올라가기도 한다. 정신없는 쿵푸동 작에 맞추어 그가 외치고 있는 것은 바로 영어단어들! 이백 여명의 초등학생들이 눈 을 떼지 못하고 있는 사람, 바로 ‘쿵푸영어’로 중국 전역을 휩쓸고 있는 용창(勇强)씨 이다. “대학 첫 영어강의 시간에 나온 600여 개의 단어 중 550개는 모르는 것이었어 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영어엔 까막눈이었다는 스물여덟 살의 청년, 지금은 국제회의 동시통역을 할 정도의 실력이 되었다. 신기한 쿵푸영어의 비밀을 [W]가 취 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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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스페셜 다큐 -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거기에 있는 이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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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풍수에 관해서 관심이 있거나 믿는 입장은 아니지만, 참 흥미롭게 본 방송...
뭐 방송에서도 풍수가 중요하다, 거짓이다라는 취지를 떠나서, 풍수를 통해서 그 당시 시대적 정황이나, 조정과 권력과의 관계 이런것들을 보여주고 설명해주었는데, 또 방송을 보다보니 세종대왕 때 풍수때문에 말이 많다가... 문종과 단종, 세조로 이어지는 정황이 또 풍수로써 공감이 되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암튼 순리를 역행하면 다친다라는 말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는데...
과연 풍수란 정말 근거가 있는 이야기일까?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_ 거기에 있는 이유가 있었다
방송날짜 : 2009년 11월 8일 밤 11시 20분
연출, 구성 : 서유정


■ 기획 의도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지난 2009년 6월 26일, 스페인 세비야에서 열린 제33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조선왕릉’ 40기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 조선왕릉, 그러나 우리는 500년 역사가 이토록 우리 곁에 가까이 숨 쉬고 있는지 의식하지 못했다.

1,756만 9,000평방미터 면적의 조선시대판 그린벨트, 왕릉공원은 오로지 한국에만 있는 가장 한국적인 공원으로 인공과 자연의 조화로움 속에 역사를 품고 있었다.

우리는 잠든 왕릉을 깨워, 왕릉에 숨겨진 풍수와 500년 권력의 역사를 만날 수 있었다.


■ 주요 내용

왕릉풍수와 권력의 역사


풍수에 대한 절대적 믿음, 왕릉 풍수


잠든 왕은 커다란 사초지 위에 있다.
사초지는 커다란 생기(生氣) 저장탱크이다. 용맥이라는 능선을 타고 내려와 사초지에 저장된 생기는, 그 위 능침에 영면한 왕들에게 생기(生氣)를 준다.
이 생기는 바람을 타면 흩어진다고 하였으니(氣乘風則散), 이 기운을 흩어지지 않게 안아주는 산이 있어야 하며, 다른 한편 생기는 또한 물을 만나면 머문다고 하여(界水則止), 왕릉 앞으로는 반드시 물이 흐르는 계곡수가 있어야 했다.
이렇게 귀중하게 모아진 생기는 숲을 넘고 넘어 살아있는 후손, 구중궁궐 깊은 곳의 동기감응, 즉 같은 유전자를 가진 혈육의 왕에게 전달이 된다. 그래서 왕과 왕의 자손들의 발복을 이루고, 축복이 된다. 이것이 조선조 왕릉 풍수였다.

조선왕조는 유교 국가이면서 동시에 풍수를 신봉하는 국가였다.
저 왕릉은 왜 그 자리에 있어야 했고, 왜 그렇게 조성되었을까?


거기에 그렇게 있는 이유가 있었다

경국대전 기록에는 조선의 왕릉은 도성 4대문으로부터 80리 안에 두어야 한다는 입지조건이 명시되어있다. 그 이유는 나라에 변고가 생겼을 때, 왕은 가장 먼저 왕궁을 장악하여야 했기 때문에 능제를 지낸 왕들이 서둘러 출발할 경우 하루면 도착할 수 있는 왕궁과의 거리를 계산하여 80리가 정해졌던 것이다.

물론 예외적인 경우도 있다. 거기엔 그럴 수밖에 없는 역사가 또한 있었다.

가장 남쪽에 있는 왕릉은 수원에 있는 사도세자와 정조이다. 그런데 수원은 당시 궁궐에서 88리에 해당되었기에 대신들이 반대했다. 그러자 정조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제부터는 수원을 80리라고 명하노라.” 그래서 그때부터 수원은 한양에서 80리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온다.


역풍수(逆風水) : 풍수를 거슬러 뜻을 이루다

풍수는, 믿는 사람에게는 실현 가능한 미래였다. 그런데 이 풍수를 역으로 이용할 수도 있었다. 말하자면 순리의 천명을 거슬러 목적을 달성하는 일이었다. 당시 풍수 정서로는, 그러한 것이 가능했다고 여겼다.

세종 23년, 그러한 비극의 역사가 시작된다.

세종 23년(1441년) 7월 23일, 조선 왕실에는 경사가 있었다. 세종임금의 며느리인 왕세자빈 권씨가 손자 단종을 낳은 것이다. 그러나 조정의 기쁨도 잠시, 다음날 단종 출산 하루 만에 권씨가 숨을 거둔다.
장례 절차가 진행되던 와중에, 전농시에 소속된 종 목효지는 감히 노비의 신분으로 상소문을 올린다.
빈궁의 능소인 안산 고읍 땅은 ‘낳은 아이(兒)가 녹아버리며(生兒銷鑠). 사내를 죽이고 어른을 죽이고(犯之則殺男殺長), 장자·장손이 일찍 죽는(長子長孫須夭壽) 흉악한 땅’ 이라는 것.
또한 세종실록은 전한다. [임금이 말하길, “목효지의 말은 나도 역시 믿지 아니하나, 다만 그 땅이 바다에 가까워서 파도(波濤) 소리가 있을까 염려되고...”]
결국 풍수 초보자도 아는 ‘바닷가에 명당 없다’는 금기사항을 깬 특이한 장지 선정이었다.

그로부터 불과 1년 반 후인 1443년 1월 30일.
조정에서는 아버지 태종 곁에 묻히고 싶어 한 세종이 신후지지로 미리 정해놓은 수릉(壽陵) 자리가 흉지라는 주장이 흘러나온다. 그러한 주장을 한 사람은 바로 최양선, 그의 주장은 이렇다. “세종의 수릉(壽陵) 자리에 그대로 왕릉을 쓸 경우, (세종의) 자손이 끊어지고 맏아들을 잃는다 (絶嗣損長子:절사손장자)”, 무시무시한 예언이었다. 그러나 세종은 승하 후 예정대로 태종의 옆에 묻혔다.

현재 세종임금의 능은 경기도 여주의 영능. 그러나 이곳은 후일 천장하여 옮겨간 곳이고 당시 세종의 초장지는 지금의 태종릉 즉 헌릉의 옆에 있는 인릉 자리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세종에 이어 재위에 오른 조선 제5대왕 문종이 2년 3개월이라는 짧은 재위기간을 끝으로 승하하였다. 앞서 문종의 왕비였던 현덕왕후 권씨의 능에 대해 논란을 벌였던 노비 목효지가 이번에 다시 문종왕릉이 나쁘다는 주장을 한다.
그 주장인즉슨, 헌릉의 내맥(來脈)이 좋지 않아, 주인은 약하고 객은 강하여, 정룡(正龍)·정혈(正穴)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정룡(正龍)·정혈(正穴)이 아니라면...? 방룡(傍龍) 자리! 말하자면 적자, 적손자로 이어지는 직계가 아닌 방룡(傍龍), 즉 방계(傍系)가 잘되는 자리라는 것이다. 이번에도 목효지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결국 먼 변방, 안성참(安城站) 아전
소속 노비로 쫓겨 간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문종릉 예정지 남혈에서 물이 솟아오르고 돌이 나왔다.

장지에 대한 지관들의 문제점 언급에도 불구하고, 그 반대의 논지로 애초에 정해진 왕릉들을 그대로 강행하려 한 세력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언급된 지관들의 주장은 초장지 모두 문제가 있다는 것, 한결같이 장자 즉, 맏아들에게는 불리한 자리였다는 점이다. 이 말은 반대로 유리한 쪽이 있었다는 말. 그들이 누구인가? 장자, 장손이 잘못되는 자리로, 방룡, 즉 방계가 잘되는 자리로 강행하려 한 세력들, 이정녕, 정인지를 비롯한 일단의 세력들 배후는 수양대군이었다. 수양대군은 이후 조선 제7대 세조로 재위에 오르지만, 그는 당시 정상적으로는 왕위에 오를 수 없었던, 세종의 ‘둘째 아들’, 즉 방계, 여기서는 방룡(傍龍)이었던 것이다.


역풍수에서 정풍수로

“그런데 이 역사라는 것이 희한하게도 그 말대로 됩니다. 세종 이후에 문종, 단종, 세조, 예종까지... 약 20년 동안에 거의 자손이 없습니다. 세조만 빼놓고.”
_ 김연호 문학박사 전통지리학자


세조가 계유정난을 통해 왕권을 틀어쥐면서 이제 모든 것이 해결된 듯이 보였다. 그러나 이 무렵 조선왕실 주변을 떠도는 소문들이 있었으니, 조선 왕실에서는 진작부터 ‘장남 왕통 불길이라는 소문’이 떠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세조에게 첫 번째 타격은 장남이었던 왕세자 의경세자의 돌연한 죽음이었다. 의경세자의 이때 나이 스무 살. 이때가 세조 3년 (1457년) 9월 2일이었다.
풍수가들이 말한 ‘절사손장자’라는 비극적 예언이 당대로 끝나지 않고 세조의 맏아들에게까지 그 여파를 미친 것인가?
이에 세조는 죽은 의경세자의 묘자리 선정에 대단한 정성을 기울였다. 경릉, 지금도 관련 전문가들이 인정하는 명당 중의 명당으로 실측 결과, 능침의 규모가 조선왕릉 40여기 중에서 가장 크다고 한다.


제7대 세조의 왕릉, 광릉. 처음 광릉이 조성될 즈음, 이곳은 몇 만평의 광대한 영역을 자랑했다. 떨어진 낙엽 하나 함부로 주워갈 수 없는 금역이었다. 5백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광릉 숲이 천혜의 자연공원으로 유지되고 있는 것은 이 광릉 조성에 힘입은 바가 컸다.
세조릉의 풍수관련 변화들은 의미심장한 부분이 많다. 광릉은 여타의 왕릉, 특히 개국시조 이성계의 건원릉보다 상윗자리에 매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좌우 산들이 가깝게 있으면 빨리 영향을 받게 되겠고, 그 분명한 기운이 빨리 후손에 영향을 준다. 그렇게 해서 그런 속성발복이다 이런 얘기 나올 수 있다고 봅니다.”
김두규-우석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이것을 풍수적 관점에서 해석해보면, 건원릉보다 더 위쪽 산줄기에 위치해 있기에 풍수 발복을 먼저 받게 된다는 주장이다.

세조의 장례가 끝나자 예종에게는 시급히 서둘러야 할 하나의 책무가 남아 있었다. 그것은 이미 왕실 내에 불길한 소문으로 떠돌고 있던 ‘장자 불길론’. 세조의 장례가 끝나자 세종의 영릉을 옮기는 일에 착수한다.


순리를 역행하면 자신이 다친다

중종의 왕비는 세 명, 원비 단경왕후 신씨는 경기 양주 온릉, 장경왕후는 고양시 서삼릉, 문정왕후는 노원구 태릉에 있고 자신은 강남 삼성동에 있어 사방에 흩어진 이산가족이다. 세 왕비는 강북에 있고, 자신은 한강 건너 혼자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제11대 중종이 승하한 당시만 해도 원당동의 서삼릉에는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아들 왕릉이 다정하게 영면하고 있었다. 그런데 17년 후, 질투심 많은 포악한 여자가 등장했다. 문정왕후였다. 그녀는 풍수를 내세워 9대 성종이 묻힌 선릉 옆에 중종을 천장했다.

사신은 논한다. 이번 천릉한 일은 상의 뜻이 아니고 문정 왕후의 생각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을 백성이 모두 알고 있다
_명종 17년 (1562년) 8월 22일


문정왕후는 시부모 무덤 옆에다가 남편 무덤을 이장시켜서 선산을 만들고 여기에 며느리인 자신의 무덤도 쓸려는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그러나...
문정왕후가 명당 터라고 부득부득 우기면서 천장했던 중종왕릉은 정작 흉지 중에 흉지였다. 장마철이면 정자각까지 물이 차고 해마다 물난리로 인한 보수공사로 국고를 탕진해야 했다.
질투 때문에 죽은 지아비를 옮긴 문정왕후 본인은 현재 중종의 곁에 묻히지도 못하고 태릉에 잠들어 있다.



독살과 예언 : 효종릉의 이장

조선 제17대 효종은 북벌 준비에 박차를 가하다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고 만다. 독살설에 휘말린 여러 왕들처럼 효종의 죽음도 예견치 못한 일이었다.
효종의 초장지는 동구릉의 태조 건원릉 옆자리였다. 이곳을 적극 천거한 이는 송시열이고 그는 서인이었다. 반풍수라고 공격을 받았던 고산 윤선도는 반대로 남인이다. 당파싸움이 치열하던 시절 효종 왕릉은 풍수 명당을 찾아간 것이 아니라 남인, 서인 당파의 논쟁 중 승리한 서인의 전리품 전시장에 안치된 것이다.
이 일로 파직·추고된 후, 윤선도는 친분이 있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10년이 채 안가 (효종)능에 큰 변고가 있어 반드시 이장을 할 것이요. 나는 이 일을 보지 못하고 죽겠지만 제공들은 보게 될 것이오. 그때 내 말이 생각날 것이오.”
_ 답황서산도명서 [고산유고 권6, 부록]


과연 효종 임금이 승하(1619~1659, 춘추 41세)한 후 1년이 지나자 능침에는 석물에 균열이 생기고 정자각의 석회가 떨어져 나가는 등의 변고가 생겼다.
결국 현종 14년, 우여곡절을 뒤로 하고 효종릉이 천장을 하게 되니, 윤선도의 예언이 있고나서 14년만의 일이었다.


정조 독살설과 풍수

어렵게 왕위에 오른 정조는 즉위 당일, 빈전(殯殿)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嗚呼! 寡人思悼世子之子也. : 아!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 정조 즉위년 (1776년) 3월 10일


즉위 열흘 후, 정조는 사도세자의 숭모 사업을 단행했다. 그리고 사도세자의 죽음과 관련이 있는 인물들에 대한 전격적인 숙청작업을 개시했으며 영조가 생전에 직접 정해 놓았던 신후지지 서오릉 홍릉 자리를 전격 철회하고 다른 자리를 물색하게 한다.
정조 즉위 한 달 후 영조의 능은 103년 전 효종왕릉이 있다가 석물 틈이 벌어지는 등 여러 가지 문제로 옮겨간 파묘 자리인 태조 건원릉의 서쪽으로 정해진다. 일반 민가에서도 일단 파묘된 자리에는 다시 무덤을 쓰지 않는데 천하의 영조 왕릉의 천거지가 파묘 자리라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사건이었다. 과연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를 죽인 영조에 대한 복수를 한 것인가?

역대 왕 중에 풍수에 가장 해박했던 정조는 흉지였던 사도세자의 초장지를 즉위하자 바로 천장하려고 하였고 13년을 지난 후에 막대한 비용을 들여서 명당중의 명당인 수원 융건릉으로 이장하였다.
명당터 발복 탓이런가... 사도세자의 천장이 있고난 후 9개월 만인 1790년 6월에 왕자가
탄생한다. 이가 바로 11세의 나이로 재위에 올라 34년을 다스린 순조이다.

정조 재위 24년 (1800년) 5월 30일, 정조는 급서한다. 독살설에 맞물린 다른 왕들과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한결같이 반대 세력과 정치적 긴장이 극대화됐을 때 급서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정조가 독살을 당했는지 어떤지를 심증은 있지만 당시의 정황으로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고 본다. 다만 이러한 판단에 중요한 역할을 할 하나의 단서가 있다. 정조가 묻힌 초장지 문제이다.
정조의 초장지는 융릉(사도세자) 두 번째 좌청룡 발치 아래였다. 이 결정에는 영조의 계비며 당시 대왕대비였던 정순왕후가 주도권을 쥐고 있었는데, 그녀가 정조 왕릉을 끌고 간 곳은 ‘흉지!’였다.
한 번 파묘했던 옛 무덤 자리, 신불(神佛) 등 요사한 푸닥거리 사당터, 처형장과 감옥 등 칼과 창을 휘두르던 병영 텃 자리는 무덤 풍수상 금기시하던 것으로 산서(山書)에서도 밝히고 있을 정도로 상식에 속한다.
정조 왕릉의 천장은 정순왕후가 죽은 후, 정조 왕릉의 흉당설이 불거져 나온 다음의 일이었다.


정조 이후...

정조 이후 조선 왕릉은 별 볼일 없어졌고 조선의 역사 또한 망실되어 갔다. 아울러 이 이후의 시기에는 풍수논란 다운 풍수 또한 없었다. 우리가 세종대의 치열한 풍수논란을 보았듯이 역사의 부침과 풍수논쟁이 그 맥을 같이 하였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조선 왕릉은 22대 정조 이후로는 왕릉 특유의 기풍은 사라져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조선 후기 대신들은 그랬다. 왕이 승하하면 택지를 하는 척 하면서 이 핑계 저 핑계를 대고서 결국에는 왕릉들을 선대 왕릉의 화소 지역으로 끌고 갔었다. 왕권이 실종되자 왕릉택지도 이상해졌고, 왕릉배치와 석물들도 이상해졌다.

순조의 초장지는 파주의 장릉(인조 왕릉) 화소 지역이었으나 후일 풍수상 문제가 거론되자 철종 7년 천장을 하였지만 그 역시 헌릉(태종 왕릉)의 화소 지역이긴 마찬가지였다.
당당한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순조의 인릉은 더부살이 왕릉으로 얹혀 있다가 흉당을 만나 또다시 태종 왕릉 한 곁에 더부살이 하고 있는 것이다.

병권을 놓친 헌종의 경릉은 ‘왕따 당한 조선 왕릉’이다. 원래 목릉(선조릉)을 천장했던 파묘 자리인데다 이미 왕비 효현왕후의 경릉이 있던 자리였다. 이미 쓰여진 왕비릉에 왕릉이 들어가는 쌍릉은 선례가 없었다. 이는 지엄한 조선 왕릉이 안동 김씨 여식의 무덤을 따라간 것이었다. 혈 깊이도 4자 6치로 일반 무덤의 깊이. 경릉은 조선 왕릉 중 실세인 신하가 왕실을 능멸한 하극상의 왕릉이었다.


홍유릉의 슬픔

조선 제26대 임금인 고종은 생전에 황제 즉위식을 가진 바 있다. 황제의 프라이드를 지키려했던 고종. 그래서 이곳 홍릉도 황제능으로 조성되었다. 참도를 비롯한 석물들도 이전의 조선 왕릉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인다.

의역군과 목수, 석수, 미장이들이 매일 일을 했고 그 역비로 매일 경성으로부터 백통전을 세 바리식 네 바리식 실어 내려왔다.
_매일신보, 1919년 1월 28일, 신홍릉완정, 양주군 금곡리로


생전에 정성을 다하였지만, 망국의 기운 속에 자금 부족 등의 이유로 홍릉 조성사업이 사실상 중단된다.

조선 마지막 임금 순종이 승하하자 어디에 모실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그러나 비용 절감 등의 이유로 이곳 금곡, 홍릉 옆으로 결정된다. 순종의 능은 확실히 식민풍수 농간에 걸려든 흉지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사초지의 비틀리고 움푹 파인 모습이 전형적인 조선 왕릉과는 거리가 멀다. 이를 두고 과혈, 즉 생기가 머물지 않고 흘러가버리는 형국이라고 한다.

이렇게 조선의 27대 왕들이 각각의 사연을 안고 서울, 경기권 일원에 잠들어 있다.


왕릉으로 가는 길

왕릉으로 가는 길,
우리는 이 길에서 ‘왕의 죽음과 역사’, 왕릉을 둘러싼 ‘권력과 풍수’라는 화두를 만났다.
조선왕릉이 거기에 그처럼 있었기에, 우리는 그 역사를 기념하고 즐기며, 더불어 자연의 공간 속에서 우리의 문화를 이어가고 있다.

우리가 다가가는 만큼 느낌을 주는 것이 우리의 문화유산이다. 그동안 우리만의 정원이었던 조선왕릉은 이제 그 이상의 가치와 생기를 가지고 우리와 함께 숨 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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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알고 싶다 - 2012년, 지구의 종말은 오는가? (사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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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행성 X가 다가온다는 이야기도 있고,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을 재해석 하는 것도 있는 등 2012년에 지구에 종말이 오던가, 커다란 재앙에 닥칠수 있고, 그에 대해서 준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 방송...
예전에는 종교적으로 종말론에 접근을 했는데, 이제는 종말론도 과학적으로 접근을 해서 더욱 신빙성이 있어 보이는 모습들...
하지만 그 뒤에는 이런 불안감을 조성해서 커다란 이익을 챙기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취지의 방송...
혹시나 했다가 역시나 한 내용이지만, 안타깝고, 답답한 느낌이 들었던 방송이라는....
아마 그들은 2012년에 종말이나 위기가 오지 않는다고 해도, 또 다른 이야기, 다른 근거를 들어서 위기를 조장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2012년, 지구의 종말은 오는가?
방송 : 2009년 11월7일(토) 밤 11시 20분

지난 10월 15일, 미국 콜로라도주 상공에 은색 비행체가 떠올랐다. 그리고 곧이어 오후 3시경, 실수로 끈이 풀려 날아오른 열기구에 자신의 6살 난 아들이 타고 있다는 신고가 접수되었다. 콜로라도 주 당국은 긴급히 지역 경찰과 공무원을 총 동원해 기구를 쫓았고, 이 과정에서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주 방위공군 헬리콥터 2대, 그리고 미공군과 연방항공청의 정찰기까지 동원되었다. CNN 등의 방송사도 정규방송을 멈추고 생방송으로 상황을 전했고 사람들은 숨죽이며 아이의 안전을 기도했다. 그러나 약 한시간 여 후, 벌판에 착륙한 열기구 안에는 아이가 없었다. 경찰은 곧 수색에 나섰지만 아이를 찾을 수 없었고, 어처구니없게도 사건 발생 5시간여 만에 아이가 발견된 곳은 자신의 집 다락방이었다. 부모는 아이가 다락방에 있었던 것을 몰랐던 것일까?

부모의 자작극으로 끝난 미국 콜로라도 열기구 소년 사건
아버지,“2012년 지구의 종말에 대비해 지하벙커를 만들 돈이 필요했다!”


사건의 전말은 공교롭게도 아이의 돌발 고백을 통해 밝혀지게 되었다.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엄마 아빠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도 왜 나오지 않았냐는 질문에, 6살난 아이는 “엄마 아빠가 그랬잖아요... 우리는 이거를 쇼를 위해 한 거라고...” 라는 대답을 한 것이다. 결국 콜로라도 인근 덴버공항을 통과하는 비행기 항로까지 변경하게 했던 이 대소동은 TV 프로그램 리얼리티 쇼에 출연해 돈을 벌고자 했던 아이의 아빠의 자작극으로 밝혀졌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아이의 아빠가 돈을 벌고 싶었던 이유였다. 그는 2012년에 세상의 종말이 올 것이라 생각하여, 지구 종말에 대비해 자신의 가족을 지키기 위한 지하 벙커를 짓기 위해 큰 돈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더 강력하게 돌아온 "2012년 신(新)지구종말론"

2012년 지구 종말을 주장하고, 이를 대비하고 있는 사람은 열기구소년의 아버지 뿐이 아니다. 미국 전역에서는 2012년 지구 종말을 대비하기 위한 각종 컨퍼런스와 행사가 끊이지 않고, 한국에서도 지구에 닥칠 대재앙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다. 1999년 세기말을 앞두고 전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종말론. 그러나 사람들이 우려했던 종말은 오지 않았고, 더 이상의 종말론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2009년, 사람들은 다시금 “종말” 혹은 “대재앙”을 준비하고 있다. 더구나 사람들은 2012년을 가리키는 종말론은 이전의 종말론과는 다르다고 한다. 1999년 종말론은 믿지 않았지만 2012년 지구 대재앙설은 믿을 수밖에 없다는 이유는 무엇일까?

행성X... 2012 지구종말론은 종교가 아니라 과학(Science)...

새로운 종말론의 가장 큰 특징은 “과학적”이라는 것이다. 이른바 <행성 X>에 의한 <지축의 이동(Pole Shift)>, 그리고 <자기 역전(Polar Shift) 현상>으로 인한 <지구 자기장>의 약화, 그리고 이로 인한 <태양풍>의 공격 등이 인류의 90%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대격변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신 종말론자들의 주장은 무척 과학적으로 보이며, 우리가 이미 신문이나 뉴스를 통해 접했던 많은 사실들을 그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실제로 2008년초 일본 고베대학교의 무카이 다다시교수가 '행성X'를 발견했다는 보도가 있었으며, 자기 역전 현상은 실제로 발견되는 화석을 통해 발생 가능한 일이라고 한다. 태양풍의 공격과 지구 자기장에 발생한 균열에 대한 기사도 2007년 이후 주요 언론보도를 통해 발표된 사실이 있다.


마야력의 예언 -‘2012년 12월 21일, 하늘에서 파괴의 신이 내려올 것이다.’

신종말론이 지목하는 대재앙의 날짜는 2012년 12월 21일. 이 날짜는 어디에서 유래한 것일까? 2012년 종말론의 날짜는 기존의 종말론과 달리 성경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다.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으나 중세 기독교에 의해 철저하게 말살되어 우리에겐 ‘신비한 고대문명’으로 남아있는 마야문명에 그 근거를 둔다. 고대 마야문명은 수학, 천문학, 그리고 역학(달력)에 무척 뛰어났다고 한다. 현대의 달력보다도 더 정확하게 태양의 공전주기와 일식과 월식, 그리고 금성의 공전주기까지 계산했던 마야의 달력이 지금의 달력으로 2012년 12월 21일에 끝나버린다는 것. 게다가 이는 공교롭게도 중국의 주역을 재해석한 그래프인 ‘타임웨이브’, 그리고 중세의 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의 새로운 예언서에서 지목하는 시점, 그리고 성경 속 숨겨진 예언을 찾아내는 ‘바이블 코드’에서 지목하는 시점과도 일치한다는 것이다. 또한 멕시코 고속도로 공사 현장에서 발견된 한 비석에는 “2012년 12월 21일, 파괴의 신이 지구에 내려온다”는 예언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어떤 문명보다 앞선 천문학적 지식과 우주에 대한 통찰이 있었던 마야문명이 예고하는 지구 종말의 시간은 과연 2012년 12월 21일인가?

2012년 12월 21일, 과연 지구에 대재앙은 올 것인가?

과연 2012년 12월 21일, 지구는 운명을 다할 것인가? 우리가 그동안 겪어보지 못한 대재앙이 올 것인가? 과거의 수많은 종말론들이 나타났다 그 예언의 시점이 지나면 사라지곤 했다. 더 이상은 사람들에게 종말론이 먹히지 않을 법도 한데 여전히 다시 ‘지구 대격변’, ‘대재앙’의 이름을 건 “新종말론”이 오히려 이전의 종말론보다 더 진화된 모습으로 널리 퍼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이 알고싶다> "2012년 지구의 종말은 오는가?'편에서는 2012년 12월 21일을 지구 대재앙으로 예견하는 주장의 근거들을 하나씩 추적해 보고자 한다. 2012년 지구 대재앙의 근거가 되는 마야력의 예언의 실체는 무엇인지, 그리고 지구에 벌어질 일들을 예견하는 여러 과학 이론들은 어떤 것인지 꼼꼼히 살펴봄으로써 보다 과학적이고 학술적인 기반을 다지고 진화한 신종말론의 실체를 철저히 검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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