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전에 29세의 젊은 나이에 극장에서 돌아가신 기형도 시인...
나는 그를 잘 모르다가, 아는 형이 선물로 준 그의 시집을 읽었고, 그의 질투는 나의 힘을 토대로 만들어진 영화도 보았고, 그의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라는 시 제목을 패러디해서 희망을 보고, 나는 쓰네라는 이 블로그의 제목도 만들었다는...
이 방송에서는 기형도시인의 시인친구와 어린시절 친구와 애독자들이 나와서 그의 유작을 낭독하고, 헌정시를 읽어주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시에서는 좀 암울하고, 고독, 어두움이 나타나 보이지만, 실제의 기형도 시인의 모습은 상당히 밝고, 어찌보면 그는 그의 검은색풍의 시 작품속에서 희망을 말한것으로 볼수도 있다고...
그의 시를 가지고 작곡을 해서 멋진 노래를 부리기도 하면서, 그의 시를 음미할수 있었던 멋진 시간이였다.
그는 사랑을 잃고, 시를 썼지만, 이제 나는 희망을 보고, 꿈을 써보도록 하자!
- 출연자 : 이문재 (시인), 이자람 (소리꾼) / 박지환, 이미란(기형도 시 애독자)
1989년 3월, 스물아홉 눈부신 나이에 세상을 떠난 詩人. 치열하게 시대의 우울을 앓았던, 영원한 청년 시인 기형도. 그의 20주기를 보내며 좀 더 가깝게, 그리고 새롭게 시인 기형도를 만난다.
시인의 시에서 청춘의 불안을 삭이며 위로받았던 애독자들이 낭독무대의 문을 연다. “그의 시는 어두운 절망이 아니라 나에겐 일종의 송가였다”고 말하는 29세 청년 박지환씨. 누렇게 빛바랜 기형도 시집을 펼쳐들고 <질투는 나의 힘>을 읽어 내려간다. 이어서 무대에 오른 주부 이미란씨는 오랫동안 문학의 꿈을 간직해온 동시대의 추억을 안고있는 애독자. 직접 써내려간 자작시 <기형도를 읽는 밤>을 낭독한다.
80년대 동인지활동을 통해 기형도 시인과 교류했던 이문재 시인은 작품 속 검은 ‘절망’의 이미지와는 달리 시인은 타인에 대한 섬세한 배려가 남달랐던, 낭만적이고 유쾌한 성품이었다고 추억한다. 객석에 앉아있던 기형도 시인의 초등학교 동창생 여행작가 송일봉씨도 만화그리기를 즐겼던 소년 기형도의 어릴적 사진과 함께 생생한 추억담을 전한다.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는 푸른색이다./
어떤 먼지도 그것의 색깔을 바꾸지 못한다’
이문재 시인이 낭독 무대에 골라온 작품은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
시집 ‘입속의 검은 잎’에는 우울한 작품만 담겨있는 것이 아니었다며 희망에 대한 믿음을 담고있는 대표적인 시를 들려주고 싶었다고. 20년이란 시간의 더께 속에 이미지화 돼버린 기형도 신화를 털어내고 이제는 작가와 작품을 분리해서 읽어보자며, 때로는 새롭게! 문자의 의미를 거꾸로 뒤집어 읽는 것도 한 방법이라 귀띔한다.
소리꾼 이자람이 기형도 시인의 대표시 <빈 집>을 통기타 반주로 노래하고, 이문재 시인이 시를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띄우는 산문 <기형도에서 중얼거리다>로 피날레를 장식한다.
시인 기형도의 작품을 통해 스물아홉 청춘의 시절로 돌아가보는 <낭독의 발견> ‘영원한 청년, 시인 기형도를 읽다’는 13일(금)밤12시 KBS-1TV를 통해 방송된다.
낭독 1]
질투는 나의 힘
詩 기형도
낭독 박지환
기타 고의석
♪ <Aquarelle 中 2악장 ' Valseana'>... S.Assad 曲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낭독 2]
기형도를 읽는 밤
詩․낭독 이미란
피아노 이 경
♬ <He was a friend of Mine> ... Bob Dylan 曲
뜨거운 이마가 타이레놀 두 알을 삼킨다
타이레놀 두 알이 성모 마리아다
엘리베이터를 끌어올리며 그가 오고 있다
그의 어깨에 걸쳐진 중년의 저녁
의자에 앉아있던 나는
기형도를 읽다 말고
그의 텅 빈 이마를 바라본다
비닐하우스가 바람에 떨고 있다
문풍지처럼 사진 속의 기형도가
들판의 작은 집에서 떨고 있다
사랑을 잃고 나는 무엇을 쓰리
기형도를 닮은 그가
괴로운 새벽을 차고 일어나
밤을 새운 내게 인사를 한다
이제 나는 잠들어야 한다
시를 접고 책갈피를 접고
우울한 기형도를 접고
타이레놀 속 성모 마리아를 접고
열쇠 구멍이 돌아가는 소리
엘리베이터의 어깨를 끌어내리는 소리
산다는 건 시를 쓴다는 건
그와 나의 엇갈린 세계처럼 멀다
낭독 3]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
詩 기형도
낭독 이문재
♬ <Amapola> ... Joseph M. Lacalle 曲
나 에게는 낡은 악기가 하나 있다. 여섯 개의 줄이 모두 끊어져 나는 오래 전부터 그 기타를 사용하지 않는다. (한때 나의 슬픔과 격정들을 오선지 위로 데리고 가 부드러운 음자리로 배열해주던) 알 수 없는 일이 있다. 가끔씩 어둡고 텅 빈 방에 홀로 있을 때 그 기타에서 아름다운 소리가 난다. 나는 경악한다. 그러나 나의 감각들은 힘센 기억들을 품고 있다. 기타 소리가 멎으면 더듬더듬 나는 양초를 찾는다. 그렇다. 나에게는 낡은 악기가 하나 있는 것이다. 그렇다. 나는 가끔씩 어둡고 텅 빈 희망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 이상한 연주를 들으면서 어떨 때는 내 몸의 전부가 어둠 속에서 가볍게 튕겨지는 때도 있다.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는 푸른색이다.
어떤 먼지도 그것의 색깔을 바꾸지 못한다.
노래 1]
빈 집
詩 기형도
작곡 김남훈
노래 이자람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는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 집에 갇혔네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 집에 갇혔네
가엾은 내 사랑
빈 집에 갇혔네
낭독 4]
산문「기형도에서 중얼거리다」중에서
글․낭독 이문재
♬ <I better be quiet Now> ... Eliott smith 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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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글서글한 눈매, 살가운 말투, 그리고 때로 조금 지나쳐 보이는 자상한 바디 랭귀지가 떠오른다. 그가 살아 있을 때는 그 눈매를 자세히 들여다볼 기회가 없었다. 그가 떠나고 나서 사진을 보고 알았다. 서글서글한 눈매는 깊어서 그윽한 눈매였고, 깊고 그윽해서 젖어 있는 눈매였다. 그의 살가움과 자상함은 타자에 대한 이해와 배려에서 나오는 것이었는데, 나중에 알았지만, 타자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깊은 사람은 자기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살아 있는 모든 시인은 적어도 둘 이상의 삶을 산다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그 중 적어도 하나 이상은 죽은 시인의 삶이다. 그러니 우리가 쓰는 시 가운데 일부는 추모시이다. 추모시를 써보지 않았다면, 아직 시인이 아니다. 시에 추모의 성격이 배어 있지 않다면, 아직 진정한 시가 아니다. 우리의 그는 저 ‘강철’의 시대였던 1980년대를 20대로 통과해온 우리에게 추모시를 쓰게 했다. ‘사랑’을 잃은 우리에게 ‘사랑’을 쓰게 했다. 우리가 선명하게 인식했든, 아니면 무의식의 차원이어서 희미했든, 1989년 3월 7일 이후 우리는 추모시를 썼다. 진정한 삶을 살고자 애쓰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삶에는 죽은 사람의 삶이 반드시 들어가 있다. 우리의 삶은 죽은 삶과 더불어 사는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