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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녀의 인생역경기라고 해야겠지요...
어려서 확실한 정조관념을 가지고 살아왔지만... 세상풍파를 격으면서 거추장한 정조개념을 버린다면 훨씬 편하게 돈을 많이 벌수 있다는 생각을... 아니... 현실을 알게 되고... 그렇게 살다가 질투심에 비참하게 죽어가는...
과연 정조가 뭐고... 사랑이 뭐고... 돈이 뭔지...
아무튼 사람이 타락한다는 기준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타락해서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은 한 순간 이라는 생각과...
삶을 살면서 기준은 자기 자신이 정해야 겠지만... 노력을 하거나, 뭔가를 이루기 위해서 열심히 하지 않고... 현실에 안주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이 지금 이순간에는 편할지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바닥에 떨어질 확률이 그 만큼 높을꺼라는 생각을 해보며...
우선 나 자신부터 반성해 봅니다...
<도서 정보>제 목 : 감자
저 자 : 김동인
구매일 :
일 독 : 2005/8/27
재 독 :
정 리 :
<이것만은 꼭>
삶의 의미를 제대로 찾기를...
<미디어 리뷰>
저자 : 김동인 |
1900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1912년 평양숭덕소학교를 졸업하고, 다음해 숭실중학교에 들어갔으나 곧 중퇴했다. 1914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학원 중학부에 입학했다가 메이지 학원에 편입했으며 그 무렵부터 문학에 열중했다. 1917년 부친의 별세로 잠시 귀국했다가 이듬해 4월 김혜인과 결혼하고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가와바타 미술학교에 입학하여 미학을 공부했다. 1919년 2월 주요한·전영택 등과 함께 우리나라 최초의 순문예 동인지 『창조』를 창간하고, 「약한 자의 슬픔」(1919), 「배따라기」(1921) 등을 발표하였다. 1921년 경영난으로 『창조』 제9호를 끝으로 폐간한 후 1926년 평양으로 돌아가 수리 사업을 시작했지만 실패했으며 1928년에는 아우 동평과 함께 영화 사업을 시작했으나 역시 실패했다. 1930년 김경애와 재혼하고, 생활고로 인해 신문·잡지에 많은 소설과 사담을 발표했다. 1935년 12월에는 『야담』을 창간하고 야담 작가로 나서기도 했으며 1938년에는 일본 천황에 대한 불경죄로 반년간 복역하기도 했다. 해방 전후로 계속 빈곤과 불면증, 정신 착란 증세로 고통받다가 1951년 1월 세상을 떠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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