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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도쿄타워 (Tokyo Tower) [東京タワー]
  2. 찰리와 초콜릿 공장
  3. 역전의 명수
  4. 천군
  5. 모래시계
  6. 간 큰 가족
  7. 김기덕 - 활

도쿄타워 (Tokyo Tower) [東京タワ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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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번쯤은 꿈꾸어 봤을 아름다운 불륜 이야기...-_-;;
뭐라고 할지는 모르겠지만... 세상에 나 오늘부터 불륜을 시작할꺼야라고 하고 시작하는 사람은 없을껍니다...
이 영화에 대사로 나왔듣이... 사랑은 하는게 아니라... 빠지는 거라고...

두 친구가 각각 18세의 나이에 연상의 아줌마들과 사랑에 빠져서 서로간에...
아니 본인들을 비롯해서 주위 사람들 모두가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잘 보여준것 같습니다...

도쿄타워를 보면서 "나의 지구를 지켜줘.."라는 애니도 생각나고...
프랑스로 떠난 남자를 찾아서 이혼을 하고 쫓아간 모습을 보면서... "냉정과 열정사이..."의 아오이와 준세이의 모습이 떠오르더군요...

암튼... 사랑이란... 참... 내... 젠장...

유부녀와의 사랑이라... 음... 냐...

근데... 드라마나 영화에서 이런 연상녀와의 사랑을 보다보면 여자쪽이 나이를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 배우를 내보내는데...
참... 이런 영화에서 배나오고, 주름살 팍팍 생긴 유부녀를 내보낸다면... 과연... 나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만약 나에게도... 이런 일이 닥친다면... 어떨까... 어떻게 했을까라는 생각도...



▷ 장 르 : 드라마
▷ 출 연 : 구로키 히토미(黑木瞳), 오카다 준이치(岡田准一)
▷ 출 연 : 마츠모토 준(松本潤), 테라지마 시노부(寺島しのぶ)
▷ 출 연 : 미야사코 히로유키(宮迫博之), 히로야마 아야(平山あや)
▷ 출 연 : 가토 로사(加藤ロ-サ), 요 키미코(余貴美子)
▷ 출 연 : 키시타니 고로(岸谷五朗), 한다 겐토(半田健人)
▷ 감 독 : 미나모토 다카시(源孝志)
▷ 원 작 : 에쿠니 카오리(江國香織)
▷ 각 본 : 나카조노 미호(中園ミホ)
▷ 촬 영 : 하카자 카즈키(袴一喜)
▷ 편 집 : 쿠사카베 모토다카(日下部元孝)
▷ 미 술 : 코이케 히로시(小池寬)
▷ 음 악 : 미조구치 하지메(溝口肇), 노라 존스
▷ 음 악 : 야마시타 타츠로우(山下達郞)
▷ 제 작 : 도호, 니혼TV, 덴츠, J Storm, 도쿄FM, 뱁, 일본출판판매
▷ 배 급 : 도호(東寶)
▷ 프로듀서 : 사토 아츠히로(佐藤敦)
▷ 상영시간 : 126분
▷ 개봉일자 : (일) 2005년 1월 15일
▷ 제작년도 : 2004


<!------- 리 뷰 -------->

사랑은 하는 게 아니라 빠지는 거야?!"

어느 겨울의 오후 5시. 도쿄타워가 건너다 보이는 맨션의 한 방에서 사랑을 나누는 남녀가 있다. 남자는 코지마 토오루(小島透, 오카다 준이치), 21세. 여자는 아사노 시후미(淺野詩史, 구로키 히토미), 41세. 두 사람의 만남은 3년 전. 토오루의 어머니 코지마 요코(小島陽子, 요 키미코)가 친구인 시후미의 가게에 토오루를 데리고 나타나면서 시작되었다. 유명한 광고 기획자 아사노(淺野, 키시타니 고로)의 아내인 시후미는 아오야마의 고급 상가에서 셀렉트샵을 운영하고 있었다. 서로가 뿜어내는 분위기에 이끌린 토오루와 시후미는 나이와 처지를 뛰어넘어 만나는 순간 사랑에 빠져버렸던 것이다.

그때부터 토오루는 시후미가 이끄는 대로, 그러나 마음깊이 그녀의 존재를 느끼면서 열정적인 사랑을 쌓아간다. 토오루는 언제나 도쿄타워가 보이는 자기 집 거실에서 시후미에게 오는 전화를 기다렸다. 그녀는 언제나 오후 4시경에 전화했다. 그레이엄 그린의 소설과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곡... 그녀가 가르쳐 준 아름다운 것들에 둘러싸여 토오루는 그녀에게서 오는 전화를 기다리고 있다. 마치 그것 밖에는 모르는 생물처럼...

그런 토오루의 모습을 보면서 걱정하는 청년이 있었다. 토오루의 친구인 오하라 코지(大原耕二, 마츠모토 준), 21세. 고등학교 시절, 장난처럼 여자 동창 요시다(吉田, 히라야마 아야)의 어머니와 관계를 가졌던 그는 최근에도 유부녀와 사랑을 시작했다. 아르바이트로 경비를 하고 있는 주차장에서 주차에 어려움을 겪는 35세 주부 가와노 키미코(川野喜美子, 테라지마 시노부)의 차를 그녀 대신 주차시켜준 것이 계기였다. 그 이후 무덤덤한 남편 가와노(川野, 미야사코 히로유키)와 냉정한 시어머니 때문에 폭발 직전이었던 키미코와 그런 그녀를 따뜻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코지는 저녁식사 때까지의 짦은 데이트를 즐기고 있다. 하지만 코지에게 애인 유리(由利, 가토 로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토오루는 코지의 데이트를 반대한다.

언젠가는 끝나게 될 두 사람의 사랑. 토오루는 늘 함께 하고 싶어하지만 그런 그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으려는 시후미의 태도에 마음 아프고, 코지는 모든 것을 걸고 덤비는 키미코와의 관계가 부담스럽다고 느낀다. 바로 그때 코지는 엄마가 아니라 요시다 본인으로부터 사랑 고백을 받고는 급격히 마음이 기운다. 이런 문제가 겹치면서 도망가고 싶은 심정에 빠진 코지에게 최악의 사건이 발생한다. 토오루와 코지, 코지의 연인 유리와 요시다가 모인 바에 코지에 대한 사랑에 활활 타오른 키미코가 앞치마를 두른 채로 뛰어든 것이었다.

한편 토오루는 자신의 강한 마음이 상대를 힘들게 하는 관계에 괴롭다. 또 억제하려고 해도 억제할 수 없는 자기 감정 때문에 시후미도 괴롭기는 마찬가지. 결국 그녀는 토오루를 자신의 별장으로 데려가는 과감한 결정을 내린다. 시간을 잊고 둘이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은 처음. 함께 자고 뒹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두 사람. 그러나 달콤한 순간은 예기치 못한 방문객으로 인해 종말을 맞게 되는데...



작 품 소 개

"여성들의 마음을 녹일 달콤한 러브스토리!"

원작은 젊은 여성들을 중심으로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나오키상(直木賞) 수상작가 에쿠니 카오리(江國香織)의 동명소설. 오감을 자극하는 섬세한 연애 묘사로 평가가 높은 에쿠니인데 이번 작품은 에쿠니 작품으로서는 드물게 21살짜리 남자 대학생의 시점으로 그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투명하고 아름다운 필치로 사랑의 순수함과 고통을 절절하게, 그러나 단아하게 그리는 에쿠니의 작품 세계. 청년과 유부녀의 사랑을 그린 이 작품도 남녀 사랑의 본질을 그리면서 스스로도 통제불능한 사랑의 순수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세계를 연기하는 것은 나이가 들수록 깊이를 더하는 가련한 아름다움으로 남성들 뿐만 아니라 여성들에게도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구로키 히토미(黑木瞳). 잘 나가는 광고기획자의 아내이자 아오야마의 고급 상점가에 가게를 가지고 있고 고급 맨션에 사는 부러울 게 없는 존재이면서도 어딘가 허전한 마음을 안은 채 살고 있는 41살의 여성 시후미(詩史)를 연기한다. 그리고 시후미와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는 21살의 청년 토오루(透)에는 수려한 이목구비에 남성적인 섹시함까지 겸비한 오카다 준이치(岡田准一). 어머니의 친구와 사랑에 빠진다는, 나이도 처지도 뛰어넘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세계가 관객을 매료한다.

주인공 두 사람의 숨막힐 것같은 아름다운 사랑과는 반대로 어딘가 친근함을 주는 한 쌍의 청년과 유부녀인 코지(耕二)와 키미코(喜美子)를 연기하는 것은 드라마 <너는 애완동물(きみはペット)>에서 이미 연상녀의 마음을 빼앗은 바 있는 마츠모토 준(松本潤)과 작년 모든 영화상의 여우주연상을 휩쓴 테라지마 시노부(寺島しのぶ)이다. 이밖에 토오루의 어머니로 요 키미코(余貴美子), 시후미의 남편에 키시타니 고로(岸谷五朗), 코지와 관련이 있는 고교 동창생에 히라야마 아야(平山あや), 그리고 코지의 현재 애인에 가토 로사(加藤ロ-サ), 키미코의 남편에 미야사코 히로유키(宮迫博之) 등 개성파 배우들이 총출동했다.

또한 원작에는 없는 영화만의 오리지날 클라이맥스가 준비되어 있다. 파리 시가지에서의 촬영에는 뤽 베송이 이끄는 제작 프로덕션 유로파가 참여해 인상적인 시퀀스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도회적인 사랑을 이야기하는 영화 음악에는 그래미상 8관왕에 빛나는 노라 존스와 이 작품을 위해 오리지날 신곡을 작사한 야마시타 타츠로우(山下達郞) 등 톱 아티스트들이 대거 참여, 방황하는 성인들의 사랑을 조용히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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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와 초콜릿 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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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했던가... 아니면 너무 좋은 영화(신데렐라 맨)과 드라마(전차남)을 봐서 효과가 좀 떨어졌나...

암튼 기대에는 많이 못 미친 가족의 소중함을 그린 애들 취향같은 영화...

이 영화의 주연은 정말 조디 뎁 말고는 할 사람이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뭐 그동안 봤던 네버랜드를 찾아서, 캐리비안의 해적, 가위손, 베니와 준 처럼...

영화 내용자체보다는 음악이나 그래픽효과에 더욱 더 눈이 갔던 영화... 였음...



제 목 : 찰리와 초콜릿 공장
별 점 : ★★★★ 8.37(1122명 참여)
원 제 : Charlie and the Chocolate Factory
감 독 : 팀 버튼
주 연 : 조니 뎁 , 헬레나 본햄 카터 , 프레디 하이모어 , 제임스 폭스 , 딥 로이 , 크리스토퍼 리 , 노아 테일러 , 데이비드 켈리
장 르 : 판타지
개 봉 : 2005년 09월 16일
등 급 : 전체 관람가
시 간 : 115 분
제작/배급 :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
제작년도 : 2005년
홈페이지 : -

영화일기
- http://diary.maxmovie.com/*charlie*


로알드 달의 소설이 영상이 되어 나타난다.
신비한 수수께끼를 간직한 웡카의 초콜릿 공장

전 세계 누구에게나 사랑 받는 세계 최고의 초콜릿 공장인 ‘윌리 웡카 초콜릿 공장’.
매일 엄청난 양의 초콜릿을 생산해 세계 각국으로 운반하고 있지만 그 누구도 공장을 드나 드는 사람을 본 적이 없는 비밀의 공간이다. 공장보다 더 신비로운 수수께끼는 초콜릿 공장의 공장장인 윌리 웡카(조니 뎁)라는 인물.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웡카는 몇 년 동안 공장 밖으로 나가본 적도 없다고 한다. 그가 어떤 사람이고, 왜 초콜릿 만드는 일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지 모두들 궁금해 할 뿐이다. 어느 날, 윌리 웡카가 5개의 웡카 초콜릿에 감춰진 행운의 '황금티켓'을 찾은 어린이 다섯 명에게 자신의 공장을 공개하고 그 모든 제작과정의 비밀을 보여주겠다는 선언을 한다. 이제 전 세계 어린이들은 황금티켓을 찾기 위한 노력을 시작한다.

윌리 웡카의 황금티켓을 찾아라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함께 초콜릿 공장 바로 옆, 다 쓰러져 갈듯한 작은 오두막집에서 살고 있는 찰리(프레디 하이모어) 역시 초콜릿 공장에 가고 싶은 건 마찬가지. 찰리는 매일 밤 잠들기 전 공장 안이 어떻게 생겼을 지를 상상하며 잠이 들곤 했다. 하지만 찰리는 1년에 단 한번, 자신의 생일에 딱 한 개의 웡카 초콜릿을 먹을 수 있기 때문에 당첨될 확률은 거의 희박했다. 한편, 세계 각국에서 행운의 당첨자들이 속속 나타나기 시작했다. 첫 번째 당첨자는 독일의 먹보 소년 아우구스투스. 언제나 초콜릿을 입에 달고 사는 소년이다. 두 번째 행운은 뭐든지 원하는 건 손에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부잣집 딸 버루카에게, 세 번째는 껌 씹기 대회 챔피언인 바이올렛에게 돌아간다. 네 번째 주인공인 마이크는 자신이 얼마나 똑똑한지를 세상에 과시하기 위해 도전에 응해 목적을 달성한 집념의 소유자다. 그리고 마지막!! 눈 쌓인 거리에서 우연히 돈을 주워 웡카 초콜릿을 산 찰리가 다섯 번째 황금 티켓을 발견한 주인공이 되었다!!

초콜릿 강이 흐르고 사탕이 익어가는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환상의 세계

웡카의 초콜릿 공장에 들어간 찰리는 눈앞에 펼쳐지는 놀라운 광경들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한쪽엔 초콜릿 폭포가 흐르고 그 옆에선 쾌활한 움파 룸파 족들이 거대한 초콜릿 과자 산에 삽질을 하거나, 용머리 모양을 한 설탕 보트를 타고 초콜릿 강을 건너간다. 초콜릿 강가에는 꽈배기 사탕이 열리는 나무와 민트 설탕 풀이 자라고 있고 덤불 속에선 머쉬멜로우 체리크림이 익어간다. 한편, 찰리를 제외한 다른 네 명은 웡카의 놀라운 발명품들에는 관심도 없고 한결같이 욕심과 이기심, 승부욕과 과시욕에 눈이 멀어 자꾸만 문제를 일으키는데…



영화 '찰리와 쵸콜릿 공장'에서
윌리 웡카(조니뎁)가 처음으로 다섯 아이들을 만날 때
불타는 인형들이 무대에서 윙카를 소개하며 불렀던 중독성 짙은(?) 노래입니다.
 
(움파룸파족이 귀여운 율동과 함께 부른 노래처럼 절로 흥겹게 따라부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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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의 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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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나오는 영화... 시간때우기도 아깝다는...-_-;;

영화시작전에 그런 생각을 했다... 역전의 명수라... 혹시 역앞에 박명수 같은거 아냐... 라고 생각을 했는데... 정말 역앞의 명수...

그리고 이어지는 말도 안되는 스토리에 유치함... 그리고 전혀 감동스럽지도 않고, 반전같지도 않은 결말...

한마디로 젠장...-_-;;


제 목 : 역전의 명수
별 점 : ★★★☆ 7.03(707명 참여)
감 독 : 박흥식
주 연 : 정준호 , 윤소이 , 김혜나
장 르 : 드라마,코미디
개 봉 : 2005년 04월 15일
등 급 : 15세 이상 관람가
시 간 : 122 분
제작/배급 : ㈜태원엔터테인먼트투자/시네마서비스
제작년도 : 2005년
홈페이지 : http://www.myungsoo.co.kr


같지만 다른 두 남자와 다르지만 같은 두 여자가 하나되는 이야기
같은 물에서 태어난 두 녀석! 노는 물이 달랐다!!

군산역 앞을 주름잡는 1등 건달 명수와 군산의 자랑인 1등 모범생 현수는 닮은 구석 하나 없는 일란성 쌍둥이다. 이미 중학교 때 학교와 깨끗이 정리한 명수는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는 현수와 비교되며 갖은 구박에 시달리지만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의리파 청년. 중학교 시절 퇴학을 당한 것도 알고 보면 동생 현수를 위해 싸우다 그렇게 된 것인데도 엄마는 늘 명수가 못마땅하다. 서울대 법대에 수석 입학을 하게 되는 현수, 반면 명수의 신세는 엄마의 국밥 집에서 배달 일을 하며 군산 폭력배들로부터 역 앞 사창가의 창녀들과 상인들을 지켜주며 살아가는 밑바닥 인생일 뿐이다.

같지만 다른 두 남자... 그들이 슬쩍 섞이기 시작했다!

대학 입학을 위해 서울로 상경한 현수는 같은 학교에 다니는 오순희라는 기업 총수의 딸과 사랑하게 된다. 한편 명수는 여전히 군산을 벗어나지 못하고 사창가 여인인 이순희와 사랑을 나누며 행복하게 지낸다. 그러던 어느 날, 오순희의 아버지 오동만 회장이 누명을 쓰고 자살을 하면서 오순희의 집안은 몰락하게 되고, 오순희의 배경만을 눈 여겨 봤던 현수는 오순희와의 관계를 냉정하게 정리한다. 그 후 현수의 군입대 통지서가 날라오자 엄마와 현수는 현수를 대신해 명수를 해병대에 보내고 명수가 군 생활을 하는 중 현수는 사법고시에 수석 합격하게 된다. 본의 아니게 현수의 뒤치다꺼리를 도맡아 하게 된 명수는 자신을 순희라고 소개하는 한 여자를 만나면서 전혀 새로운 인생 국면을 맞이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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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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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이런 쓰레기 같은 작품을 만들면서 스크린퀘터제를 반대를 하고 있으니 답답할뿐입니다...
물론 영화를 보고 재미있다고 하거나 감동 깊게 본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인 생각에는 욕밖에 안나옵니다...
무슨 혜성이 나타나서 과거로 돌아가서 이순신 장군을 돕게 된다는 가끔 우리가 상상을 해봅직한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영화로 만드는데는 실패한듯한 작품인것 같습니다...

그리고 더욱더 마음에 안드는 부분은 영화전체의 부정적인 시각입니다... 과거는 바꾸면 안된다... 과거는 바뀌지 않는다...

내가 과거로 돌아가던 미래로 돌아가던 하루하루 숨쉬면서 살고 있는 것이 현재이고.. 그것을 바탕으로 과거가 생기는것이고,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것 아닐까요?

아님 말고요!


감 독 : 민준기
주 연 : 박중훈 , 김승우 , 황정민 , 공효진
각 본 : 민준기
촬 영 : 박재형
음 악 : 황상준
편 집 : 박곡지
미 술 : 조근현
장 르 : SF,액션,전쟁
개 봉 : 2005년 07월 15일
등 급 : 15세 이상 관람가
시 간 : 106 분
제작/배급 : (주)싸이더스
제작국가 : 한국
제작년도 : 2004 년



28살 삐딱한 청년 이순신, 그의 일생을 뒤바꿀 누군가가 온다!

남북한 군인들, 핵탄두와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남북한 공동으로 극비리에 개발한 핵무기 비격진천뢰가 미국측에 양도되기로 결정된다. 이에 불만을 품은 북한장교 강민길은 핵물리학자 김수연을 납치, 비격진천뢰를 연구소에서 빼내 탈출을 시도한다. 그때, 433년 만에 지구를 지나는 엄청난 혜성이 한반도 상공을 통과하는데… 강민길 일행과 그를 추적하던 남한장교 박정우 일행은 압록강에서 대치중, 갑작스런 회오리 돌풍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훗날 영웅이 되기엔, 너무도 허랑방탕한 청년 이순신을 만난다. 돌풍이 사라진 후 정신을 차린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여진족들의 도끼와 화살이 허공을 가르는 무자비한 살육의 현장이다. 일행은 본능적으로 총을 들게 된다. 최첨단 현대무기의 위력에 놀란 여진족은 물러가고 일행은 동굴로 숨어든다. 그날 밤, 동굴로 잠입해 무기들을 훔쳐가는 괴사내가 있었으니… 그의 이름 이.순.신. 그들이 만난 이순신은 그해 무과에 응시했다 낙방한 채 허랑방탕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사이, 저자 거리엔 조정이 버린 양민들을 구하러 천군이 내려왔다고 소문이 번진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1572년 조선 변방마을 이었던 것이다.

미래로 돌아갈 것인가? 이순신을 구할 것인가? 여진족과의 전투에서 핵무기 비격진천뢰를 분실한 북측 군인들은 이를 찾아 나선다. 한편 이순신을 동경했던 박정우는 한량에 가까운 그의 모습에 실망한다. 자신이 무과에 급제시켜주겠다며 이순신을 훈련시키려 하지만 그는 무과시험을 다시 보지 않겠다며 버틴다. 그 와중에 이순신이 아끼던 마을 소녀가 여진족에게 죽임을 당하고 그 사건을 계기로 숨겨져있던 이순신의 영웅적인 면모가 서서히 드러난다. 여진족 본거지에서 숨겨져있던 핵무기를 다시 강민길이 다시 탈취해오자 여진족은 마을을 공격하려 하고, 이순신은 이들과 맞서 싸우겠다고 한다. 마침내 김수연이 다시 미래로 돌아갈 방법을 찾았지만, 이제 그들은 목숨을 건 선택을 해야만 한다. 이순신과 함께 맞서 싸울 것인가, 미래로 돌아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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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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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서 누워있던 몇일간 동생이 받아놓은 24부작 모래시계를 다시 봤습니다... 1995년 작품이니까... 무려 10년만에 다시 보게 됬지만... 다시 보아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 당시에는 아마도 고현정이 이쁘다.. 이정재가 멋지다... 최민수 카리스마 죽인다... 등등 이런 생각을 가지고 봤던것 같은데...
좀 나이를 먹고나서 다시 봐서 그런지.. 그 시대의 상황에 대해서 분개하게 되네요... 고현정도 그다지 이쁘다는 생각은 안들고요...^^;;
과연 그런 기회가 다시 올지 모르겠지만... 10년후에 모래시계를 다시 한번 또 보게 된다면 어떤 생각을 가지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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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및 6.25 이후 최대의 격동기였던 7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까지의 현대사를 무대로 하여 한국의 정치, 경제를 운영하는 실세들과 주먹계에 대항하는 젊고 소신있는 청년검사의 좌절과 승리. 그리고 암흑가의 한 청년이 헤쳐가는 인생의 여정을 통해 한국사회의 단면을 심도있게 그려가는 동시에, 두 청년을 사이에 둔 야심있는 여인을 통해 사랑의 방식과 삶의 선택 방식을 제시한 최고의 화제작.

광주항쟁, 삼청교육대, 정치깡패, 정보기관의 정치공작 등 암울했던 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진 태수, 혜린, 우석의 우정과 운명적 사랑, 그리고 보디가드 재희의 지고지순한 사랑.

드라마에서는 볼 수 없었던 박진감과 긴장감 넘치는 화면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아 평균 45.3%라는 놀라운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 <모래시계>는 과도한 난투극 장면으로 폭력과 폭력배를 미화했다는 비판 속에서도 시청자들의 귀가시간을 앞당겨 "귀가시계"라고 불리우며 전국적으로 "모래시계"의 사회적 현상을 만들어 냈던 한국 초유의 드라마다.


배 역 박태수
연기자 최민수
등장인물성격 건달세계에 몸담고 있었지만, 광주, 삼청교육대,
정치테러 사건 등을 통해 격동의 시대를 살아가는 인물.
배 역 윤혜린
연기자 고현정
등장인물성격 윤재필 회장의 외동딸. 카지노 대부의 후계자로
비운의 인생여정을 겪어간다.
배 역 강우석
연기자 박상원
등장인물성격 검사. 태수의 고향친구이며 혜린의 대학동창이다.
사회의 불의에 맞서나가는 인물.
배 역 백재희
연기자 이정재
등장인물성격 윤회장의 측근. 혜린을 그림자처럼 보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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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큰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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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도 안되는 황당한 이야기의 영화...

하지만... 아버지가 죽으면서 한 마지막 유언을 들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정말 평생을 염원해 오던것을 잠시 나마 이룬줄 알고 기뻐했던 그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그런 날이 올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왜 하필이면 그런 순간이 죽는 날이 다 와서 그런 순간이 올까라는 생각이...

몇일전에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데 지하철을 타고 어디를 가면서 신문에서 읽었던 시 구절이 생각나서 한참을 찾다가 이제야 찾았습니다...


스물 몇 살 시절 봄이 와서 잎들이 피고 꽃이 질 때마다 그 여자는 엘리엇의 시구를 떠올렸다.
사월은 잔인한 달이었다. 사람의 손가락은, 그 여자가 아무리 물뿌리개로 물을 뿌려준다해도 다시는 돋아나지 않는데 그렇게 제 청춘이 가고 있어서, 지금 돌아보니 바로 그 때가 청춘이었는데도, 그 여자는 봄이 오면 슬펐던 것 같았다.

언젠가 읽은 책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인간에게 늙음이 맨 마지막에 온다는 것은 얼마나 저주인가, 그 저자는 말했다.
신은 실수를 했다. 기어다니는 벌레였다가 스스로 자기를 가두어두는 번데기였다가 드디어 천상으로 날아오르는 나비처럼 인간의 절정도 생의 맨 마지막에 와야 한다고.
인간은 푸르른 청춘을 너무 일찍 겪어버린다고.

- 공지영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中 '고독'


오늘 같이 왠지 슬픈날... 고독을 느끼며... 눈물을 떠올리며...


제 목 : 간큰가족
별 점 : ★★★☆ 7.64(995명 참여)
원 제 : superfamily
감 독 : 조명남
주 연 : 감우성 , 김수로 , 신구 , 김수미 , 성지루 , 신이 , 이칸희
장 르 : 코미디
개 봉 : 2005년 06월 09일
등 급 : 12세 이상 관람가
시 간 : 102 분
제작/배급 : 두사부필름
제작년도 : 2004년
홈페이지 : http://www.superfam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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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 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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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노인이 어린아이를 줏어다가 10년을 키워서 자신과 결혼을 하려고 한다....
이 소녀는 세상과 격리되어서 아무것도 모르지만... 노인에 대한 감정이 없지는 않은듯 하다...
하지만... 어느날 나타난 대학생에게 마음을 빼앗겨서 갈등이 일어나게 된다...

무슨 미저리같은 내용이냐라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근데 솔직히 말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뭐 어때...-_-;;

얼마전에도 신문에서 이런 기사를 본적이 있습니다. 나이든 40대 노총각이 고등학생을 납치해서 집에 가두어 두고, 평생 살려고 했는데, 여학생이 기지를 발휘해서 탈출했다는...

누구나 사람의 마음속에는 저런 바램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쁜 여자를 잡아다가 집에 가두어 두고, 나만 밖에 다니면서... 집에 와서 귀여워해주고...
뭐 간혹 영화의 소재로도 이용되고, 간혹 엽기적인 사고라고 방송에 나오기도 하지 않습니까?

그냥... 도덕과 양심사이의 문제일것 같습니다...
물론 제가 저런 짓을 하지는 않겠지만... 간혹 그런 공상은 하면서 살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회가 규정한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고, 내 자신의 양심도 허락하지 않으니까요....
얼마전에 읽었던 앗살람 아라비아라는 이슬람여행기를 읽다가 보니까... 그쪽에는 아직 이러한 비슷한 풍습이 남아있는것 같더군요... 뭐.. 우리나라에서도 이런것이 합법이라면...^^;;
 
암튼 세상이란 그 사회에서 규정한 도덕과 내 자신이 결정한 양심속에서 살아가는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냥 저런 비인간적인 노인의 행동에 대해서 약간의 변병을 해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나중에 소녀와 결혼날짜를 혼자 잡아 놓았는데, 그 날을 기다리지 못하겠고, 소녀가 점점 다른곳에 신경을 쓰자...
하루에 하나씩 표시를 하던 달력에 하루에 일주일치... 나중에는 달력을 뜯어버리는 노인의 눈에 보이는 욕정에 씁쓸한 생각도...

암튼 잔잔하면서도 많은 생각을 해주었던 괜찮은 영화입니다...
예전의 봄여름가을겨울의 촬영지만은 못하지만, 을왕리쪽에서 배 한척을 뛰어놓고 찍었다고 하네요...
그리고 자주 흐르는 해금 음악은 제가 좋아하는 강은일씨의 연주라고... 영화끝나고 찾아보면서 그럴줄 알았읍니다...^^;;

마지막으로 엔딩에 멋진 말이 나오더군요... 마치 연어의 일생이 생각나는 엔딩으로 잡설을 마칩니다.

팽팽함에는 강인함과 아름다운 소리가 있다. 죽을 때까지 팽팽한 활처럼 살고 싶다


   

다시 태어나려는 김기덕 감독의 다짐, <활>

아버지, 왜 저를 버리시나이까?

김기덕의 열두 번째 영화 <활>을 보았다. 처음에는 좀 어리둥절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이상한 대목은 마지막 자막에 있다. 물론 김기덕이 마지막에 자막을 처음 쓴 것은 아니다. 이미 <해안선>부터 그는 무언가 영화가 끝난 다음 거기에 서명을 넣고 싶어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의미가 다르다. 그 말은 “팽팽함에는 강인함과 아름다운 소리가 있다. 죽을 때까지 팽팽한 활처럼 살고 싶다”라고 쓰여 있다. 이 말은 <빈 집>의 마지막 대목에서 우리가 읽었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가 없다”와 다르게 읽힐 수밖에 없다. 혹은 <해안선>의 마지막에 쓰여진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기원합니다”와 같은 호소가 아니다. 왜냐하면 이 말은 성어나 경구 혹은 테마나 주제, 아무리 양보해도 이 영화에 대한 해설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말은 김기덕이 그 자신에게 하는 다짐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게 읽힌)다.

우리를 증인으로 내세운 고통스런 자작극

그는 여기서 무언가 자기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재귀(再歸)의 영화 혹은 재귀대명사로서의 김기덕.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배 위에서 시작한 다음, 거기서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한 채 내내 거기 머물다가, 결국 배를 떠나면서, 심지어 그런 다음 그 배를 바닷속으로 가라앉히면서, 김기덕은 무언가 다짐을 한다. 활은 하늘로 쏘아올려진 다음 다시 돌아온다. 그건 바다에 던져져 결국에는 목적지에 도착하는 병을 던지려는 시도가 아니다. 차리리 <활>은 정확하게 그 정반대의 시도이다. 여기에는 억압된 것의 귀환이라는 이면계약서 대신 차라리 부메랑처럼 메시지를 보내고 스스로 보충한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자기 자신에게 하는 다짐인데도 불구하고 증인을 요구한다는 사실이다. 김기덕은 이 말을 자신의 일기에 쓰는 대신 영화의 마지막에 우리를 향해서 보충하고 있다. 그러니까 <활>은 우리를 증인으로 내세워 그 자신을 위해서 상연하는 고통스러운 자작극이다. <활>은 기본적으로 비극적이지만, 근본적으로 화해의 제스처이다. 같은 말이지만 이 이야기가 결국에는 욕망의 좌절로 끝나지만, 이 이야기의 욕망은, 혹은 이 이야기가 그러니까 결국에 요구하는 것은, 그 좌절의 이야기를 우리가 본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자기의 시도가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대신 긍정해달라는 요구이다. 그 안에서 김기덕이 비극을 화해로 발전시키려는 노력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여기에 증인으로 내세워진 이들이 자신의 친구들인 것은 중요하다. 김기덕은 자신의 다짐을 맹세하는 자리에 적을 초대할 생각이 없다. 그러므로 그에게 <활>을 위해서 시사회가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적극적 능동성이다. 그는 이 수줍은 맹세를 몇명의 친구들 앞에서, 우정의 뜻으로, 자기 자신을 새로운 힘으로 다시 태어나게 만들기 위해, 기꺼이 돈을 내고(자본주의의 최대의 실천!) 정해진 단 하나의 영화관에 자기의 영화를 찾아온 그 우정의 의지 앞에서만, 기쁘게 다짐한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은 <활>을 보는 내내 이 열두 번째 영화가 열한편의 김기덕 영화들의 컴필레이션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제까지 자신이 만들어낸 모든 영화들을 여기저기서 발췌하듯이 반복하고 있다. 이 말의 방점은 반복이다. <활>의 첫 시작은 이미지가 아니라 소리이다. 활로 켜는 자장가가 우리를 바다 위에 뜬 배로 인도한다. 자장가는 잠을 청하기 위해서 부르는 노래이다. 그 자장가는 영화를 보는 우리를 위해서 연주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김기덕이라는 꿈을 꾸어야 한다. 그 꿈에 여러 장면들이 떠오른다. 물 위에 떠 있는 배에서 노인과 소녀는 단 한번도 뭍으로 나가지 않고(<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하 <봄…그리고 봄>의 호수 위에 떠 있는 절) 살아간다(혹은 <파란 대문> <나쁜 남자> <해안선>으로 이어지는 바다). 그 배에는 탱화가 그려져 있고(<봄…그리고 봄>), 절반쯤 찢어진 태극기가 걸려 있다(<야생동물 보호구역>). 그들은 이 배에 와서 낚시하는 사람들에게 낚시터로 배를 제공하면서 먹고산다(<섬>에서의 낚시터). 매번 이 배에 탄 낚시꾼 사내들 중의 누군가는 소녀를 건드리려고 하는데 그때마다 노인은 활을 꺼내든다(<수취인불명>의 지흠). 그러나 그 활은 동시에 노인이 켜는 악기이기도 하다. 그 활을 소녀도 악기로 켜거나 자신과 노인을 지키기 위해 쏜다(영화를 함께 본 허문영씨는 제목이 ‘활’인데 활의 내력이 없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는데, 나는 그 말에 공감한다. 이 영화는 끝내 그 활의 내력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또한 그 활은 소녀가 배에 매달린 그네를 타면 노인이 그 뒤에 걸려 있는 탱화를 쏘면서 점괘의 예언을 말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노인과 소녀는 손님들의 요구에 따라 점괘를 전할 때에만 귓속말로 이야기하지만 그 말이 무엇이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들은 영화를 보는 우리를 위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빈 집>의 여자와 소년). 노인은 낚시꾼들의 말에 의하면 소녀를 7살에 데리고 와서 10년 동안 키웠으며, 이제 그녀가 17살이 되는 5월12일에 결혼할 것이라고 한다. 그건 정말이다. 달력에는 5월12일에 ‘結婚’이라고 쓰여 있으며, 그날을 위해 노인은 한껏 준비한다.

노인의 결혼식을 5월12일로 정한 까닭은?

영화는 2005년 2월16일에 시작해서 (그런 다음 노인 마음대로 달력을 찢어버리고 나서 그가 정한 날짜인) 5월12일에 끝난다. 5월12일은 세 가지 의미를 갖게 되었는데, 하나는 이 영화의 개봉일이고, 다른 하나는 칸영화제에서 이 영화가 보여진 날이고(그러므로 사후적인 우연의 결정인 그 둘은 별 의미가 없지만), 세 번째는 이 영화가 김기덕의 열두 번째 영화라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한 가지 더. 올해는 김기덕이 영화를 만든 지 10년째 되는 해이다. 그런데 이 배를 우연히 찾아온 소년이 다시 뭍으로 가서 알아낸 바에 의하면(<섬>와 <봄…그리고 봄>의 변주) 노인은 소녀를 유괴한 다음 배에 감금하여(<나쁜 남자>의 한기와 선화) 키운 것이다. 소녀는 낚싯바늘을 엮어 만든 실을 입에 문 다음(<섬>, 그러나 다행히도 이번에는 그냥) 실을 퉁겨서 악기처럼 소리를 낸다. 혹은 소녀는 소년이 준 엠피3 카세트로 음악을 함께 들은 다음 소년이 떠나가자 그걸 혼자 듣는다(<사마리아>, 그런데 여기서는 살아남은 여진 대신 자살한 재영이 나온다). 이러한 예는 수도 없이 더 들 수 있다. 반복은 여기저기서 출몰하고, 그 반복을 통해서 <활>은 일관성을 부여받는다. 그 일관성 안에서 활은 화살을 날리는 무기가 되고, 혹은 연주하는 악기가 되고, 때로는 활 점을 치는 예언의 언어가 된다. 여기서 활은 우리의 주의를 끌기 위한 맥거핀(이거나 또는 발췌한 대목들을 하나로 묶어내는 고정점)이다. 활이 보는 우리를 끌어들이기 위해서 유혹하지만 그 활이 그 무언가를 상징하지는 않는다(어쩌면 그것이 활에 대한 내력을 설명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은 이유일지도 모른다). 이 맥거핀을 놓고 늘어놓을 수 있는 가장 지루한 해석은 활을 남근에 비유하는 것이다. 그것이 다른 남자들에게서 소녀를 보호하는 (수컷의) 무기가 되고, 자기가 외롭게 활을 악기로 켜는 것이 자위행위로 읽히는 것은, 소녀가 활을 집어드는 순간 난처해진다. 그러나 더 난처해지는 것은 김기덕이 활의 연주와 이 영화의 음악 싱크를 전혀 맞추지 않고 매번 활로 연주하는 순간 마치 장면의 행위와 분리된 배경처럼 음악을 흘려보낼 때이다. 그렇게 읽으려 들 때 이 남근은 그 아쿠마스틱한 의미가 매번 사정의 순간을 서둘러 찾은 조루이거나, 혹은 결국 사정에 실패한 지루처럼 들린다. 혹은 매번 소녀를 맞추지 못함으로써 예언의 언어를 들을 수 있는 노인의 활 점은 또 무엇인가? 그 활을 남근으로 이해하려고 들 때 <활>은 사실상 김기덕의 의도와 거의 반대 방향으로 읽힌다. 왜냐하면 활을 남근으로 읽으려 할 때 정작 김기덕이 죽이려고 하는 대상을 살려내기 위해 노력하는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활>은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던 노인(-아버지의 이름-nom de Pere)이 아버지가 되지 못하는 대상(-아버지의 부정-non de Pere)이 되는 이야기이다. 존재로부터 대상에로의 이행, 그 사이에 놓여 있는 아버지. 이것이 이 이야기의 ‘욕망의 비극성’이자 이 ‘이야기의 욕망’이다(방점은 괄호에 있다). 여기서 죽어가는 아버지를 다시 살려내려는 것은 해석의 외설성에 다름 아니다. 오히려 나는 소녀의 남자가 노인이라는 사실이 더 이상하게 보인다. 김기덕은 롤리타에 이끌린 적이 없다. 노인이 소녀와 결혼하려는 이 엉뚱한 노력을 시작하자마자 알려주는 그 친절한 노력에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노인과 소녀가 등장하면 낚시꾼은 우리를 염두에 두고 그의 동료에게 노인의 소망을 설명해준다). 김기덕은 (아버지의 아버지와 같은) 노인이 (딸의 딸과 같은) 소녀에게 성적 욕망을 품을 것인지 아닌지를 놓고 보는 우리와 게임을 벌일 생각이 없다. 두 사람은 늙은 신랑과 어린 신부로 시작한다. 결국 모든 비극이 그런 것처럼 이 이야기는 처음부터 실패를 전제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보는 우리는 그 실패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보기만 하면 된다. 이건 처음부터 비극을 향해서 활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날아가는 이야기이다. 다만 활의 목표를 우리는 알지 못한다. 오직 그것만이 이 영화의 유일한 긴장이다. 김기덕의 표현을 빌리면 그것이 이 영화의 “팽팽함”이다.

오직 바다만이 유일한 실재

내가 이상하게 생각한 것은 차라리 활이 아니라 오히려 바다이다. 이 영화에서 바다는 그저 거기에 있는 장소이다. 말하자면 이 영화에서 바다는 커다란 물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그 바다 위에 떠 있는 배, 그 배에 살고 있는 노인과 소녀라는 거의 비정상적이거나 비일상적인, 혹은 사실상 불가능한 이 설정에서 오직 바다만이 유일한 실재라는 사실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아버지가 존재하기를 포기하고 대상이 되어 죽었을 때, 소멸되었을 때, 부정되었을 때, 이 환상에 침입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여전히 커다란 물이 거기서 어떤 심연처럼 배를 집어삼킨다. 마치 허기진 것처럼 그 배를 먹어치운다. 그런 다음 다시 고요해진다. 구름도 없는 하늘과 파도가 없는 바다(오직 단 한번의 비바람에 의한 출렁거림이 있지만 그 장면이 밤이라는 사실을 구태여 지적할 필요가 있을까?). 그 평면적 공간은 모든 이미지의 제로이다. 제로의 실재. 김기덕이 점점 더 침묵에 빠져들면서(<나쁜 남자>에서 <봄…그리고 봄>을 거쳐서 <사마리아>와 <빈 집>에 이르는 화면의 벙어리 효과) 이미지에 매달린 것을 생각할 때 이 평면의 제로 공간 위에 떠 있다는 것은 그 자신에게 미학이 아니라 실존의 문제이다. <활>이 내게 신기하게 보인 가장 큰 이유는 김기덕이 모든 이미지를 버리고 좁은 배 안에서 (이제까지의 그 자신의 영화에서의) 행위(의 반복)에 집중하기 위해서 바다를 선택했다는 사실이다. 이 영화에는 종종 김기덕이 만들어낸 명상하는 듯한 이미지가 없다. 다만 행위(의 반복)만이 있다. 그 행위에 대해서 바다는 아무것도 대답하지 않는다. 바다는 은유나 상징이 아니라 거기에 있는 상황의 절대성이다. 말 그대로 절대적인 실재의 공허. 혹은 이 영화에서 공허 위에 세워진 설정을 채우기 위해서 왜 발췌라는 반복이 중요해졌는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김기덕은 여기서 이제까지 자기가 보여준 것을 보여주고 또 보여준다. 그리고 그 반복을 다한 끝에 노인은 그 스스로의 의지로 죽는다. 그런데 (김기덕의 다른 영화들을 끌어들이고 있는) 다른 반복과 달리 노인의 죽음은 (<활> 안에서) 자살의 몸짓을 한번 연출한 다음 정말 자살한다. 물론 반복과 죽음이 새로운 주제는 아니다. 하지만 반복이 하나의 선택이라는 사실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수많은 선택 중에서 반복을 택할 때 그것은 근본적인 선택이다. 왜냐하면 그것을 첫 번째 선택했을 때 그 선택은 그것의 긍정이지만, 같은 것을 두 번째 선택할 때 그것은 같은 것의 부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죽음의 과정을 꼼꼼하게 다시 따라가 볼 필요가 있다. <활>은 처음에는 그 균형을 상실한 것처럼 보였다. 소녀가 소년과 함께 떠나려고 할 때, 이미 점괘는 소년과 함께 떠나야 한다는 예언을 한 다음, 노인은 떠나가는 배에 매달린 줄을 자기 목에 걸고 기꺼이 죽음을 맞이할 생각으로 떠나가는 배를 본다. 그런 다음 배가 떠나가고, 자기 목에 걸린 그 줄이 “팽팽하게” 노인의 목을 잡아당기기 시작하자 노인은 허둥지둥 더듬거리면서 칼을 찾아 그 줄을 끊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 시작한다. 그 장면은 물론 <악어>의 용패가 보여준 그 마지막 장면의 반복이다. 나는 사실 영화가 여기서 끝났다고 생각했다. 김기덕 그 자신의 첫 번째 영화의 마지막 장면의 반복. 이 발췌의 반복에 어울리는 결말. 그런데 좀 놀랍게도 그걸 알고 소녀는 배를 돌려 노인이 남겨진 배로 돌아온다. 여기서부터 영화는 갑자기 다시 시작한다. 그리고 난 다음 김기덕은 길고 느리게 노인과 소녀의 혼례장면을 세세하게 보여준다. 그러니까 <활>은 이 장면의 앞과 뒤,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말이지만 노인이 소녀의 떠나가는 배에 목을 매다는 순간 반복은 끝나고 사실상 이 영화에서 가장 지루하지만 동시에 <활>에서 정말 보여주고 싶은 이야기는 (너무 늦게,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반복의 중단과 새로운 기회의 프로젝트. 그런데 그 과정에서 노인과 소녀 사이의 중재자로 등장한 소년이 문제가 된다.

김기덕 영화에서 가장 이상한 등장인물, 소년

이 소년은 (내가 알기로) 김기덕의 모든 영화 중에서 가장 이상한 등장인물이다. 소녀에게는 소년을 위한 자리가 처음부터 열려 있었다. 이 배를 찾아온 세 번째 손님들 중에 이 소년이 배에 올라타는 순간 이미 소년은 소녀의 구원자이다. 소녀에게 등록된 소년, 혹은 그 역. 그러나 소녀에게서 노인의 자리가 쫓겨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질문을 바꿔보자. 그 자리가 처음부터 단지 하나의 자리였다면, 그래서 그 자리에 있어야 할 대상이 바뀌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면 그 자리는 무엇인가? <활>은 김기덕의 영화 중에서 가장 수다스러운 영화이다. 소년은 말하지 않는 (혹은 그들끼리만 귓속말을 하는) 노인과 소녀를 대신해서 (우리를 위해) 쉴 사이 없이 설명한다. 그런데 그 설명은 너무나 계몽적이어서 하나마나한 말이다. 그 말은 비밀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이미 다 생각하고 있는 외설스러운 상황에 대한 외재화이다. 혹은 그렇다 하더라도 해서는 안 되는 말이다. 소년은 이 영화의 유일한 화자이지만 소년과 노인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애를 쓰다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외설스러운 상상에 지나치게 다가간다. 그래서 소년이 우리의 윤리를 위해 애를 쓰면 쓸수록 점점 더 소년은 우리의 상상에 적대적이 되어간다. 그 말은 이 소년이야말로 <활>에서 유일한 얼룩이라는 뜻이다. 소년이 반사하는 것은 노인과 소녀의 관계가 아니라 정확하게 영화를 보는 우리이다. 그러므로 소년이라는 거울은 자기의 대상을 영화 안에서 찾지 못하는 텅 빈 거울이다. 소년의 행위가 진지해질수록 점점 더 우스꽝스러워지는 것은 영화 바깥에서 영화 안으로 들어서려는 노력의 무기력함 때문이다. 그러나 이상한 상황은 헤드폰에서 음악을 들을 때 벌어진다. 소녀는 소년이 주고 간 헤드폰만으로도 음악을 듣는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헤드폰으로 소녀가 듣는 것은 뭍의 음악이 아니라 노인이 연주했던 그 선율이다. 기계적인 해석. 소녀가 이제까지 들었던 음악은 노인의 연주였으므로 MP3 없이 떠올릴 수 있는 유일한 선율이기 때문이다. 즉각적인 반론. 그렇다면 소녀가 소년과 MP3를 함께 들었던 장면은 무엇인가? 오히려 그 이상한 상황은 왜 소년의 헤드폰으로 소녀는 노인의 선율을 떠올리겠는가, 라는 데 있다. 여기서 음악이 제자리를 찾아가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선율의 주인에 대한 분열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것은 잘못된 동일시가 아니다. 그런 다음 소년의 자리와 노인의 자리 사이의 내기가 벌어진다. 소년은 계속 말하고 노인은 그 말을 계속 듣는다. 소년은 쉴 사이 없이 질문하고, 비밀을 밝히고, 그런 다음 요구한다. 사실 소년에게는 그런 권리가 없다. 그것은 윤리적 의무이다. 그러므로 소년의 질문에 대해서, 폭로에 대해서, 요구에 대해서 노인은 단 한번의 대답, 단 한번의 부정, 단 한번의 거절도 하지 못한다. 혹은 하지 않는다. 그런 다음 소년은 소녀를 태우고 이 배를 떠난다, 라고 말해야 한다. 노인은 거기서 죽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 내기는 노인의 패배와 소년의 승리로 끝나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를 대신한 소년의 질문이, 폭로가, 요구가 무슨 의미가 있었단 말인가? 그것이 설혹 정념의 행위에 대한 윤리적 판단이라는 따분한 결론일지라도 그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끝나야 하는 대목에서 이야기는 지연되고, 다시 시작한다. 떠나가는 배를 붙들려는 노인의 자살적 몸짓이 불가능으로 끝나야 할 혼례의 실패를 성공의 지연으로 바꾸어놓는다. 그러니까 배를 멈춰 세운 다음, 그래서 소녀가 다시 배로 돌아온 다음, 갑자기 혼례가 시작될 때, 소년이 더이상 이 행위에 대해서 질문하지 않고, 요구하지 않고, 그것을 막지 않는다는 사실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같은 말이지만 배로 돌아오고 난 다음 소년은 더이상 말하지 않는다. 숏의 벙어리 효과, 혹은 귓속말의 동맹. 소녀를 놓고 노인과 (우리를 대신 한) 소년 사이에 벌어진 내기는 갑자기 중단된다. 더 간단하게 배에서 떠나가려는 대목까지와 그런 다음 돌아와서 혼례를 시작하는 대목부터는 서로 다른 두편의 영화이다. 혹은 두명의 소년이 있다. 영화 안에 있던 우리는 바깥으로 나가야 하고, 이제 부정하고, 질문하고, 요구하는 소년은 더이상 우리를 위해서 그 자리에 있는 자가 아니다. 그 반대로 소년은 긍정하고, 더 나아가 이 모든 것을 긍정하기 위해서 (이중의 긍정) 증인의 자격으로 남는다. 소년은 더이상 우리를 대신해서 노인에게 말하지 않는다. 김기덕은 정념에서 윤리에로의 이행을 거꾸로 세운다. 노인이 소녀의 뺨을 때리는 장면이, 노인과 소녀의 혼례에 초대받은 유일한 손님인 두 마리의 닭 중에서 암탉의 머리를 소년이 때리는 장면으로 반복될 때, 여기서 우리가 보는 것은 분열되었던 소리의 주인으로부터 그 자리의 전이이다. 거기에는 소녀를 매개로 한 노인과 소년 사이의 긍정, 혹은 화해의 제스처가 있다. 노인은 혼례를 마치고 소녀를 향해 쏘려던 활시위를 멈춘 다음 하늘 높이 활을 쏘아올리고, 그런 다음 바다에 뛰어든다. 소녀가 탄 작은 배는 마치 홀린 듯이 소년의 배로 끌려온다. 이 순서를 바꾸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때 소년의 눈앞에서 하늘 높이 날아간 활은 작은 배에 탄 소녀의 다리 사이에 꽂힌다. 섹스와 처녀막, 혹은 오르가슴과 순결한 피. 여기서 내가 보는 것은 하늘로 쏘아올려진 그 활이 주인에게로 돌아가지 못하고, 혹은 하나의 원을 그리지 못하고, 그래서 소녀의 그 자리에서 멈출 때, 그 활의 운동이 완료되는 것을 방해할 때, 그 활이 주인을 찾아가지 못하고 거기서 멈출 때, 그것을 보는 사람의 자리, 증인의 자리에 소년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미 노인은 바닷속으로 뛰어들어 더이상 존재하지 않을 때, 소녀가 섹스라기보다는 차라리 출산에 가까운 몸짓으로 이 완성되지 않은 활의 운동을 완료시키려 들 때, 소년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이다. 여기에는 죽음에 대한 슬픔 대신 노인으로부터 소년에로의 전이, 차라리 부활이라고 부르고 싶은 긍정이 있다. 이 긍정은 정념으로부터 윤리에로, 바다로부터 뭍으로, 추상적인 저 텅 빈 평면의 제로 공간으로부터 온갖 삼라만상의 세상에로 나아가, 다시 시작하려는 말 그대로의 다시 한번이다. 그러므로 그의 모든 몸짓을 여기 다시 한번 텅 빈 바다 위의 무대 위에 올리고 거기서 두번의 자살을 반복한다. 김기덕의 끈질기게 반복된 주제.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이 간절한 열망. 그 과정을 통해서 죽기를 원하고, 그 죽음을 통해서 다시 태어나려는 부정과 긍정의 놀이. 그에게 무겁고 추레하게 여겨진 그 육신의 겉옷이 여기서 늙고 지쳤을 때 그 앞에 나타난 소년에게 기꺼이 그 자리를 내주는 깨달음의 이 지난한 과정 속에서 김기덕은 다시 한번 부활의 테마를 반복한다. 그는 허물을 벗고, 또 다시 벗는다. 그는 자신의 자리를 물려주는 대신 차라리 육신을 맞바꾸는 쪽을 택한다. 노인은 소년이고, 소년은 노인이다.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이 약속이 노인으로 하여금 죽음을 두렵지 않게 만들 수 있다. 그는 기꺼이 다시 태어나기 위하여 바다로 뛰어들고, 저 하늘 위의 정오를 가리키는 활은 다시 되돌아와 소녀의 그 자리에 도착한다. 그리고 아비없이, 마치 마리아에게 주어진 기회처럼, 노인은 소년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러나 소년은 노인이 아니다. 혹은 같은 말이지만 노인은 소년이 아니다. 이 말은 역설이 아니다. 더 나은 인간으로, 더 훌륭한 인간으로, 더 긍정적인 인간으로, 더 윤리적인 인간으로, 더 죄없는 인간으로, 더 많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인간으로, 세상을 긍정하기 위해,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출산을 약속하는 처녀의 피를 대가로 치러야 한다. 그러므로 소년은 증인이자, 동시에 다시 태어난, 새로운 인간이다. 혹은 김기덕의 다짐이다. 그러나 그 새로운 인간은 더 많은 부채 위에서 더 많은 약속, 더 많은 책임, 더 많은 맹세를 해야 한다.

이제 소년, 소녀는 다시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비로소 (혹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여기서 발췌의 반복이 갖는 의미를 생각한다. 더도 덜도 없이 노인은 나이 든 용패(<악어>), 혹은 현식(<섬>), 늙어버린 지흠(<수취인불명>), 지쳐버린 한기(<나쁜 남자>)의 그 누군가이다(여기에 더 많은 이름을 채울 수 있다. 그러나 그건 김기덕의 몫이다). 혹은 그 모두이다. 그 노인에게 스스로 바다에 뛰어들어 죽음을 청하게 할 때, 더이상 어찌할 도리가 없을 때, 그래서 결국 유령연습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유령과 싸우는 <해안선>, 하지만 무엇보다도 <빈 집> ‘이후’), 그 자리에 구원의 약속으로 소년을 불러낸 다음, 그에게 기꺼이 그 다음을 맡긴다. 그것은 부채를 떠넘기려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는 다시 태어나고 싶은 소망, 혹은 다시 시작하려는 다짐이 있다. 나는 이 영화의 마지막 자막에서 읽은 다짐에서 그 소망을 본다. 김기덕은 그렇게 살고 싶다고 우리에게 다짐한다. 좀더 유머를 가질 수 있다면 <활>은 <사마리아>의 소년 버전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제 소년, 소녀는 다시 살아가야 한다. 아버지는 딸을 위해서 세상을 살아가는 운전을 가르쳐주었고(<사마리아>), 소년은 노인으로부터 소녀를 책임져야 하는 임무를 떠맡았다(<활>). 이제부터 이 소년, 소녀들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보아야 한다. 소년, 소녀들의 신세기. 혹은 세상 안으로의 악순환의 반복. 소년, 소녀들은 다시 한번 지옥으로 내던져질 것이다. 그 안에서 소녀는 아버지 없이 세상 안으로 운전해야 한다. 혹은 소년은 노인의 도움없이 소녀를 돌보아야 한다. 이제 소년이 노인에게 질문했던, 폭로했던, 요구했던 그 모든 말은 고스란히 그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다. 마태복음 27장 46절. 엘리 엘리 라마 사박디니. 혹은 아버지, 아버지, 왜 저를 버리시나이까? 두번의 간절한 거듭된 부름. 그리고 질문. 여기에 대한 침묵. 예루살렘의 저 오래된 비밀.
글: 정성일



원 제 : The Bow
감 독 : 김기덕
주 연 : 전성환 , 한여름 , 서지석
각 본 : 김기덕
촬 영 : 장성백
음 악 : 강은일
편 집 : 김기덕
미 술 : -
장 르 : 드라마
개 봉 : 2005년 05월 12일
등 급 : 15세 이상 관람가
시 간 : 90 분
제작/배급 : 김기덕 필름
제작국가 : 한국
제작년도 : 2005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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