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이 가장 좋고 중요하다라고 생각하시는 할머니... 70세의 나이지만, 40대의 체력을 가졌다고...
자신이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일에 몰두하는 모습이, 일의 경중을 떠나서 멋지신 할머니...
[70세 괴력할머니의 파워프로그램] - 대구
이소룡도 울고 갈 70세 할머니의 파워 건강법!
운동은 내 인생~ 괴력의 운동 할머니가 펼치는 유쾌한 건강일기~!!
땅 끝마을 해남에 사시는 점례 고모... 점이 점점 커져서 얼굴을 다 덮고, 커져서 눈앞도 안보인다고...
기존에 선풍기 아줌마나 강화도 화석할머니에 못지 않지만.. 그의 곁에는 가족하나 없고, 동네 사람들 뿐...
이제 병원에 입원을 해서 치료를 받는다고 하는데, 앞으로 좋은 소식, 좋은 날이 있기를...
하루가 다르게 점점 부어오르는 얼굴...
그리고 그 얼굴조차 볼 수 없는 한 여인의 안타까운 이야기.
제보를 받고 찾아간 곳은 땅 끝 마을 해남. 그 곳에서 남들과 다른 얼굴
때문에 평생을 방안에서 살고 있다는 서광자(56세)씨를 만났다.
[지붕 위의 개] - 태백
온 동네 지붕은 내가 접수했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지붕 위의 무법자, “짜루”를 소개 합니다~!
[순간포착 500회 맞이, 특별한 초대장]
10년 전, 첫 방송을 시작으로 올해 500회를 맞이하는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
순간포착 10년 역사를 빛내준 영광의 주인공들을 초대합니다!!
SBS 순간포착 세상에이런일이 - 100Kg 다이어트 감량에 성공한 사나이, 두발의 강아지 알록이.
SBS 순간포착 세상에이런일이-죽은 개를 따라하는 개,산속 야생 할머니,냄비 보며 응가 베이비,24시간 산소호흡기 착용하는 할아버지
SBS 순간포착 세상에이런일이-고무줄 체중의 사나이(하루에 10kg 다이어트 감량도전),생고기 먹는 남자,딱새의 대리부가 된 트럭기사,24년째 화장실에 사는 할머니 두번째 이야기
SBS 순간포착 세상에이런일이-색깔 맞춤 공주 선생님, 두친구의 동행, 나무로 뭐든 뚝딱 만드는 아저씨, 어부바 효자 휠체어 효자 되다
SBS 순간포착 세상에이런일이-벌레 먹는 남자, 혹을 업고 사는 여인, 오토바이 타는 닭, 화상할머니의 조막손
SBS 순간포착 세상에이런일이-할머니와 제주도 돼지, 반짝 반짝 튀어야 사는 남자, 쌓기 본능, 발달장애 천재 피아니스트 민수의 특별한 도전
MBC 불만제로 - 횟집, 활어시장 저울의 비밀, 돌잔치 업체의 횡포에 대한 방송
활어시장에서 저울을 속이는 방법들을 보여주는데, 바구니 여러개를 묶어서 바구니 하나가 1Kg이 넘고,
또는 저울을 속여서 두배로 부풀리는 업체들... 방송 취재를 하고, 일주일후에 다시 찾아갔는데, 전혀 개선의 여지가 없는 업체와 지자체... 그저 욕이 나올뿐이다...
대포항쪽인데.. 방송으로 몇번을 때린후에는 많이 개선이 된듯
강원도 동해 속초 대포항 - 횟집, 어시장, 민박 사진보기
소라엄마튀김, 대포항 19년 전통의 유명한 새우튀김 맛집
겹쳐 놓은 소쿠리로 중량을 잰다? 테이프로 돌돌 감은 박스의 정체는? 점입가경. 요상한 요술 저울의 실체를 밝혀라!
사시사철 소비자들의 입맛을 유혹하는 수산물. 이러한 수산물들의 정량을 의심하는 소비자들이 꽤 많은데... 불만제로 활어시장 수산물의 정량체크에 나섰다.
돌잔치업체, 부페업체의 횡포는 돌잔치상을 무조건 계약을 해야 한다고하는데, 그가격의 대부분은 부페업체에 커미션으로 넘겨준다고.. 그리고 입장하는 사람들에게 스티커를 여러개붙이거나, 아무도 안볼때 스티커를 조작해서 손님수를 부풀리는 업체들... 완전히 배째라구만...
■ 소비자가 기가 막혀 - 돌잔치 업체의 횡포!
아기가 무병장수할 것을 기원하는 의식인 우리나라 전통 문화 돌잔치! 황금돼지해 에 태어난 수많은 아기들로 인해 2008년 돌잔치 업계는 호황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업체들의 횡포로 축복받는 아기들의 돌잔치 자리에 불만만 가득 차 있었는데... 발 달린 스티커 넌 어디에서 왔니? 불만제로 게시판에 접수된 이상한 제보. 실제 돌잔치에 참석한 인원수와 업체 측에 서 계산한 인원수가 다르다?
KBS 소비자고발 - 온라인게임도박의 문제점, 어린이음료, 스마트폰보호필름 고가와 저가제품간의 차이점과 폭리
MBC 불만제로 - 리베이트 뒷돈의 장례식장 폭리와 상조회사의 두 얼굴 - 리베이트 쌍벌제를 적용하라!
MBC 불만제로 - 가짜 제주 흑돼지, 병원 종합검진 암 조기진단의 허와 실
MBC 불만제로 - 수상한 막걸리와 동동주의 구별 차이점, 인터넷 강의(인강)의 비밀
KBS 소비자 고발 - 가정용 전기요금 폭탄 전열기, 중구난방 의류 사이즈, 대머리 탈모 관리센터의 함정 그 후
SBS 그것이알고싶다-인간의 조건, 간통죄는 유효한가? 에 대한 방송
형법 제241조로 배우자가 있는 자가 간통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그와 상간한 자도 같다라는 법률... 그저 당연한거 아니야라고 생각을 했지만, 바람을 피우고 싶어서 그러는것이 아니고.. 국가가 개인의 사생활에 어디까지 간섭을 해야하고, 처벌을 할수 있는것일까?
방송을 보다보니 처벌도 어렵고, 실효성도 거의 없어보이는데, 그렇다고 폐지를 해버릴수도 없고..
참.. 어렵고 복잡한 문제...
하지만 반드시 짚고 넘어가면서 법을 재정비를 해야할것만 같은 문제인듯 하다.
현실적으로는 존치하기보다는 새롭게 개편을 하거나, 새롭게 접근을 해야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시대의 변화에 따라서 법의 제정비도 필요한듯 하다.
뭐 간통죄뿐이랴...
방송 : 2008년 4월 5일 (토) 밤 11:05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조건은 무엇일까.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간통죄 존폐 논란’과 ‘해외 고려장’이라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사안을 통해 한국사회 윤리 문제의 현주소를 짚어본다. ‘인간이 인간이기 때문에 보호받아야 할 조건’은 무엇이고 ‘인간이 인간이기 때문에 지켜야 할 조건’은 무엇인지 고민하는 시간을 마련하고자 한다.
▶ 이불 속으로 들어온 법 - 간통은 게임이다?
증거 채취를 위해 침실로 공권력이 동원되고 개인의 가장 은밀한 사생활이 발가벗겨진다.
▶ 비인간적인 너무나 비인간적인...
간통 게임이 시작되면 ‘인간’은 사라진다
▶ 간통 고소의 늪에 빠진 사람들
▶ 인간의 조건 - 간통죄는 유효한가?
지난해 간통죄의 기소율은 14.8%, 실형율은 4.1%에 불과
SBS 그것이 알고 싶다-죽음의 거래 청부 살인, 폭행, 납치, 협박의 불법 심부름센터, 흥신소에 대한 방송
SBS 그것이 알고싶다 - 4001의 진실, 신정아를 만나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인간을 위한 한 평생,동물의 삶에 관한 보고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 사라진 약혼자, 김명철 실종사건의 진실은?
EBS 마이클 샌델의 하버드 특강 정의, Justice with Michael Sandel : What's the Right Thing To Do
일본 애니메이션 후르츠 바스켓(Fruits Basket)의 멋진 음악-다시 태어날수는 없어도, 변해 갈수는 있으니...
난 끝까지 그 추억을 짊어지고 살아가고 싶다고...
설사 그게 슬픈 추억이라고 해도...
날 아프게 만들 뿐인 추억이라고 해도...
차라리 잊어버리고 싶다고 바라는 추억이라도...
끝까지 짊어지고, 도망치지않는다면,
언젠가는...
언젠가는 그런 추억에 힘들어하지 않는 내가 될 수 있을거라고...
믿고 있으니까...
믿고 싶으니까...
잊어도 좋은 추억같은 건...
하나도 없다고 믿고 싶으니까...
그래서...
사실은 그녀가 날 잊지않았으면 했어... 사실은...
그렇지만, 이건 내... 어리광일뿐이니까...
어떤 추억이라도, 끝까지 이 가슴에 안고서...
믿으며 살아가고 싶어...
잊어도 좋은 추억같은 건...
하나도 없다고... 믿고 싶으니까...
언젠가, 언젠가 힘들어 하지않는 내가 될 수 있도록...
그리고 언젠가, 그것마저도 극복해서,
소중한 기억이 될 수 있도록...
믿어...
마음속 깊숙히 나를 따뜻하게 해주는 애니메이션...
역시 사람은 서로간에 아껴주고, 사랑하고, 사랑받으면서 사는것만 한것이 없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행복할수 있을까...
오프닝 곡인 "For フル-ツバスケット"는 그 자체만으로 감동이지만, 중간중간에 삽입되어서 나올때는 따뜻함과 슬픔이...T_T;;
정말 기뻐었어
君が笑いかけてた 키미가와라이카케테타
네가 웃어 주어서
すべてを溶かすほほえみで 스베테오카카스호호에미데
모든 걸 녹이는 미소로
春はまだ遠くて 하루와마다토오쿠테
봄은 아직 멀어서
冷たい土の中で 츠메타이츠치노나카데
차가운 땅 위에서
芽吹くときをまってたんだ 메부쿠토키오맛테탄다
풀들이 돋아나기를 기다렸어
たとえば苦しい今日だとしても 타토에바쿠루시이쿄우다토시테모
설령 괴로운 오늘이라 해도
昨日の傷をのこしていても 키노우노키즈오노코시테이테모
어제의 상처를 남겨놓고 있어도
信じたい心ほどいてゆけると 신지타이코코로호도이테유케루토
믿고 싶은 마음을 풀어간다면
生まれかわることはできないよ 우마레카와루코토와데키나이요
다시 태어날 수는 없어도
だけどかわってはゆけるから 다케도카왓테와 유케루카라
변해 갈 수는 있을 테니
Let's stay together いつも Let's stay together 이츠모
Let's stay together 언제나
ボクだけに笑って 보쿠다케니와라앗테
나만을 보며 웃고
その指でねさわって 소노유비데네사와앗테
그 손가락을 걸고
望みばかりか果てしなく 노소미바카리카하테시나쿠
바라는 일만 끝없이
やさしくしたいよ 야사시쿠시타이요
상냥하게 해주고 싶어
奧山のように 우무쿠야마노요우니
깊은 산처럼
嘆きの海を越えてゆこう 나게키노우미오코에테유코우
근심의 바다를 뛰어 넘자
*たとえば苦しい今日だとしても 타토에바쿠루시이쿄우다토시테모
설령 괴로운 오늘이라 해도
いつか暖かな思い出になる 이츠카아타타카나오모이데니나루
언젠간 따뜻한 추억이 될 거야
心ごと全て投げ出せたなら 코코로고토스베테나게다세타나라
마음 걸리는 모두 내던진다면
ここに生きてる意味が分かるよ 코코니이키테루이미가와카루요
여기서 사는 의미를 알게 될 거야
生まれおちた喜びをしる 우마레오치타요로코비오시루
태어난 즐거움도 느낄 거야
Let's stay together いつも Let's stay together 이츠모
Let's stay together 언제나
삶의 의미를 찾아서(죽음의 수용소에서), 왜사는지 아는 사람은 어떤 고난도 이겨낼 수 있다 도서 서평 리뷰
삶의 의미라는 것은 무엇일까?
옛날부터 많은 사람들을 불면의 밤을 보내게 했던 질문이다.
빅토르 프랑클은 극단적인 수용소의 삶에 처해있는 본인과 타인의 모습을 통해 진정으로 인간이 찾아가야할 목적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그리고 진정한 삶의 의미란 일률적인 보편타당한 정의로 내려질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운명이라는 화두를 사용한다.
자기 삶의 목적을 발견한 사람은 아무리 굴욕스러운 상황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이겨내고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왜'사는지 아는 사람은 '어떤' 고난도 이겨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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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다른 제목의 책인데, 번역자만 다른듯한 책인듯 합니다.
<미디어 리뷰>
저자 : 빅토르 프랑클 |
오스트리아 빈 대학 정신의학 교수를 지냈으며, 실존분석적 정신요법인 로고테라피를 창안하여 정신의학의 새 장을 연 학자이다. 그는 모두 32권의 책을 썼고, 전 세계 대학으로부터 29개의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프랑클 박사는 2차대전 당시 나치의 강제 수용소에 수년 동안 수감되었었는데, 이 때의 체험으로 인해 인간의 내면세계에 대한 깊은 성찰을 얻을 수 있었다. 그의 수용소 체험과 거기서 비롯된 성찰을 담고 있는 이 책은 전 세계의 지성을 감동시켰으며, 26개 국어로 번역되어 9백만 부 이상이 팔렸다. 프랑클 박사는 1997년에 92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
<정호의 정리>
사람이 무의미하게만 보이는 자신의 고통 자체에서 더 큰 의미를 찾아내지 못한다면 삶의 의지를 북돋우지는 못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삶은 고통이며 살아갈 수 있기 위해서는 고통 속에서 의미를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는 실존주의의 핵심 명제와 만나게 된다. 삶에 목적이라는 것이 있다면 고통과 죽음에도 틀림없이 목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목적이 무엇이라고 남에게 말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목적은 스스로의 힘으로 발견해야 하는 것이며, 사람은 그 목적이 요구하는 책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자기 삶의 목적을 발견한 사람은 아무리 굴욕스러운 상황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이겨내고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왜 사는지를 아는 사람은 어떤 고난도 이겨낼 수 있다." - 니체
아무리 가진 것 없는 자라 할지라도, 그가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가슴 깊이 간직할 수만 있다면, 비록 짧은 순간에 그칠지라도 구원의 빛이 찾아든다는 걸 뼈저리게 이해한다. 고립무원의 상황에서도, 수용소에 갇혀 아무 뜻도 펼칠 수 없는 처지에서도, 올곧게 고통을 견뎌내는 일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전무한 상황에서도, 사람은 가슴속에 간직된 사랑하는 이의 모습을 그윽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만함을 느낄 수 있다.
텅 빈 공간에 가스를 주입하면 가스는 공간이 크든 작든 그 공간을 구석까지 균일하게 채운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고통도 크건 작건 간에 사람의 의식을 가득 채우고 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겪는 고통의 크기는 어디까지나 상대적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인간은 얼마든지 무력감을 이겨낼 수 있고 좌절감을 딛고 일어설 수 있다는 사실, 안팎으로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도 인간은 자신의 태도를 결정할 수 있는 내적 자유를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강제수용소가 다른 건 다 강탈할 수 있어도 인간이 가진 마지막 자유, 즉 어떤 주어진 상황 하에서 또 다른 태도를 가질 수 있는 자유만큼은 건드릴 수 없다.
결국 한 수감자가 어떤 종류의 인간이 되는가 하는 것은 그 자신이 내린 내면적 결정의 결과이지, 수용소 생활에서 받은 영향만으로 이루어진 결과는 아니었다. 그러므로 기본적으로 모든 인간은, 아무리 열악한 수용소 안에서조차도 전형적인 수감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인간성을 지켜나가는 수감자가 될 것인가를 결정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두려워하는 건 오직 하나, 내가 고통을 겪을만한 가치조차 없는 존재가 되지나 않을까 하는 점이다.
인간의 정신적 자유는 마지막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결코 빼앗을 수 없는 것이며, 그러므로 인간이 자신의 삶을 의미 있게 엮어나갈 수 있는 기회는 마지막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사라지지 않는다.
무릇 삶에 의미가 있는 것이라면 고통에도 의미가 없을 수 없다. 운명과 죽음이 삶의 일부분이듯 고통도 반드시 거쳐야 할 삶의 한 과정이다. 고통과 죽음은 인간을 한 차원 높은 단계로 성숙시킨다.
나를 짓누른 고민은, 우리를 둘러싼 그 고통과 죽음 자체에서 과연 어떤 의미를 찾아낼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겪은 고통과 죽음 자체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면 수용소에서 살아남는 것도 헛된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요행히 빠져나오느냐 못 나오느냐에 의미의 존폐가 걸려 있는 그런 삶, 우연히 베풀어지는 은총에 기대는 그런 삶은 살만한 값어치가 없다는 것이, 나의 변하지 않는 생각이다.
수용소에 갇혀 지내는 사람이 심리적으로 허물어지게 되는 결정적인 이유는, 전문가들이 열거하는 심리적인 원인보다는 본인의 자의적 선택에 따른 것이다. 수용소 세계의 영향력을 정신적으로 극복하지 못한 사람, 자신의 내면을 단단히 장악하지 못한 사람이 가장 먼저 희생자가 된다.
현실을 외면하면 그만큼 공포도 줄어든다고 했었다. 그러나 주위를 둘러싼 현실을 외면하는 태도는 그 자체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현실을 깡그리 외면한 사람은 너무나 쉽게 포기하고 무너졌다. 그의 눈에는 모든 게 헛수고로만 보였다. 이루 말 할 수 없이 참담한 상황이 도리어 내적으로 자신을 극복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는 알지 못했다. 수용소 생활이라는 외부적 난관을 내부 단련의 기회로 삼은 것이 아니라, 눈앞의 현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그 앞에서 눈을 감아 버리는 게 상책이라고 여기고, 과거의 삶 속으로만 자꾸 숨으려 했다. 그런 사람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처절했던 수감자 생활을 오히려 절정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로 삼지 못했다.
인생은 이빨 치료와도 같다. 사람들은 가장 아픈 순간이 이제 오려나 저제 오려나 가슴을 졸이지만, 그 순간은 어느새 지나가 버린다.
고통스러운 감정은 우리가 그것을 명확하고 뚜렷한 개념으로 파악하는 순간, 더 이상 고통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 스피노자
사람은 모진 현실 속에서도 미래를 향한 목표 의식을 잃지 않을 때에는 정신적으로 꼿꼿이 버틸 수 있다는 대전제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본능적으로 이런 시도를 한 수감자는 꽤 있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버팀목이 있었기 때문이었고, 그 버팀목은 주로 미래에 대한 희망에서 나왔다.
반면에 미래가 없는 사람, 자신의 미래를 신뢰하지 않는 사람은 수용소에서 낙오자가 되었다. 미래를 잃는다는 건 정신적 장악력의 상실을 뜻했고, 그런 사람은 몸과 마음이 한순간에 허물어지고 말았다. 대개 그런 일은 갑작스럽게 벌어졌다.
왜 사는지, 삶의 목표가 무엇인지 틈나는 대로 자꾸 강조하여 깨닫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눈앞의 현실이 아무리 견디기 어렵고, 어떤 고난이 닥치더라도 정신적으로 이겨 낼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삶의 목표가 없고, 삶에서 아무런 내용도 기대하지 않는 사람은 고통을 견뎌내야 할 하등의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된다. 그런 사람들은 자제력을 완전히 상실하고 이내 허물어진다.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에서 무엇을 기대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느냐 하는 점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깊이 깨달아야 한다. 삶의 의미가 무엇인가에 관한 질문을 지금까지의 자세에서 벗어나 오히려 우리 자신을 매일같이 아니 매 시간마다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는 존재로 인식해야 한다는 말이다. 삶이 던지는 질문 앞에서 우리는 고민이나 말장난이 아니라 행동으로 답을 해야 한다. 삶이 요구하는 올바른 답은 올바른 처신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삶은 두루뭉실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을 뜻한다. 따라서 삶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내용도 아주 구체적일 수밖에 없다. 바로 이런 구체성의 요구 때문에, 누구에게나 단 하나밖에 없고 어느 누구와도 같을 수 없는 중요한 주제, 곧 운명이라는 화두가 등장한다. 어떤 인간도, 어떤 운명도, 다른 인간 혹은 다른 운명과 비교될 수 없다. 동일한 상황이란 건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 상황이 바뀌면 행동도 달라져야 한다. 구체적 상황이 요구하는 것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엮어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 가치를 구현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자세, 운명을 흔쾌히 받아들이는 자세다.
삶의 의미에 눈뜬 사람은 이제 수용소 생활의 처절한 고통을 자기 내부에서 억누르거나 지우려 하지 않았고, 과소 평가하거나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치부하려 들지도 않게 되었다. 그는 근거 없는 싸구려 낙관주의에도 빠져들지 않았다. 시련 앞에서 그는 의무감을 느끼게 되었고, 시련에 깃들인 깊은 뜻을 외면하지 않게 되었다. 시련은 곧 성취의 기회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우리에게는 해치워야 할 시련이 많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고통스러운 현실을 애써 외면하려 하지말고 똑바로 응시할 수 있어야 했다. 설령 감정이 북받쳐 올라 남몰래 눈물을 흘려야 했을지라도...
그러나 눈물 흘리는걸 부끄러워할 이유는 없었다. 눈물은 그가 시련을 견딜 수 잇는 용기를 가졌다는 걸 역설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눈물로 씻어 내렸지 뭐..."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고, 또 이 세상 모든 삶에 의미를 부여해 주는 이 유일무이성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랑에 적용이 되며, 창조적인 작업에도 적용이 된다. 그 누구도 내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게 될 때, 사람은 자기 인생에 대해서 다시 한번 강한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자기를 기다리는 저술 활동 혹은 자기를 기다리는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해 이런 책임감을 느끼는 사람은 인생을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그는 존재의 이유를 알고 있기 때문에 어떤 시련도 감내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긴장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가치 있는 목표, 스스로 선택한 과업을 갈망하고 추구하는 자세이다.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긴장을 무작정 쏟아버리는 것이 아니라 아직 실현되지 않은 자기 삶의 잠재적 의미를 묻고 깨닫는 것이다.
당신의 인생을 두 번째로 살고 있는 것처럼 살아라. 당신은 첫 번째 인생을, 형편없이 행동함으로써 망쳐버렸는데, 이제 두 번째 인생을 살면서 지난번의 과오를 지금 막 다시 되풀이하려 하고 있다는 위기의식을 가지고 행동하라.
고통은 그 고통에서 어떤 의미를 가령 자기 희생과 같은 어떤 의미를 찾아내게 되는 순간 어떤 면에서는 더 이상 아픔으로 다가오지 않게 된다.
정말로 중요한 건 머리 속의 생각을 종이에 그냥 적어놓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에 옮기는 것이다.
그들의 고민은 우리가 수용소에서 살아 나갈 수 있을까? 살아나가지 못한다면 지금의 고통은 아무 의미가 없지 않은가? 하는 점이었다.
그렇지만 나의 고민은 이런 것이었다.
이 모든 고통, 바로 코앞에서 사람이 죽어 가는 이 고통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지금의 고통스러운 현실 자체에 의미가 없다면 살아 나간다고 해서 의미가 생기는 것일까. 누구는 요행히 달아나서 의미 있게 살아가고 누구는 재수 없이 붙들려서 무의미하게 죽는 게 삶이라면, 그렇게 삶의 의미가 완전히 우연에 농락 당하는 것이라면 그런 삶이란 전혀 살 만한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닐까?
인간은 상황의 노예도 아니고 운명의 허수아비도 아니라고 나는 믿는다. 상황에 굴복할지 상황에 맞설지를 결정하는 주체는 어디까지나 인간이다. 인간은 결국 스스로 결정하는 존재이다.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무엇이 되어야 할지 언제나 결정을 내리며 살아간다.
모든 인간은 어느 순간에든 전과는 다르게 살 수 있는 자유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금과옥조로 삼아야 할 말은 자유가 아니다. 자유는 전체의 일부분이며 진리의 절반일 뿐이다. 나머지 절반은 책임이다. 책임이 수반되지 않은 자유는 방종으로 치달을 위험성이 있다.
상자 안에 있는 사람 상자 밖에 있는 사람(리더십과 자기기만) 도서 서평과 정리
제목만 보고는 도대체 무슨 책인지 파악하기 어려운 책인데, 그래서 원래 제목은 상자안에 있는 사람, 상자밖에 있는 사람이였다가 개정판이 나오면서 리더십과 자기기만이라는 이름으로 변경을 했는데, 읽고나면 원래의 제목이 더 괜찮은듯 하지만, 판매를 위해서 그런듯...
책 내용은 새로 입사하는 사람이 그 조직에 들어가는 중에 임원인가 하는 사람하고 대화를 통해서 그 동안 본인이 가족, 개인, 직장 생활중에 얼마나 자기를 기만했는지 파악하고, 어떻게 하면 그 곳에서 빠져 나오는지에 대해서 배운다...
쉽게 말해 자기기만에 빠져있는 사람이 상자 안에 있는 사람이고,
거기서 빠져나오는 것이 상자 밖에 있는 사람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얼굴이 붉어지는 일이 많았던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그동안 사회생활, 직장생활, 친구, 가족 간의 대화, 생활중에 얼마나 많이 상자안에 들어가서 살아왔는지...
그 상자안에서 빠져 나왔을때의 느낌...
예를 들어 내가 어떤 상대방과 토론을 하다가 결국에는 감정적이 싸움을 벌인다고 치자... 이때는 논리보다는 자기기만에 빠져서 핵심에서 떨어져서 싸우기 바쁘다.
그러나 제삼자가 볼때는 우수운 모습일수 밖에 없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 격어 보았을것이다...
요즘 주말 밤마다 재미있게 보는 각종 토론프로그램이나 한토마 등을 보면서 내가 흥분해서 감정적으로 그것을 바라보기보다, 제삼자의 입장에서 냉철하게 바라볼때가 상자밖의 시각이고 옳은 시각이라고 할것이다.
하지만 항상 상자밖에 있을수는 없는 일이지만, 항상 염두에 두고,
상자안에 들어갔을때 그것을 인식하고, 인정하고, 그곳에서 빠져나와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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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의 정리>
사람들이 길을 잃는 것은 그들 마음의 어둠 속에서이다.이제 막 기기를 배우고 있는 한 아기를 생각해 보자. 이 아기는 뒤쪽으로 자기 몸을 밀면서 집안을 돌아다니고 있다. 뒤로 몸을 밀면서 돌아다니다가 그만 가구 밑으로 들어가고 만다. 아기는 울기도 하고 가구의 옆면과 밑면에 머리를 부딪치기도 하면서 몸부림을 치고 있다. 꼼짝 못하게 되자 아기는 가구를 증오한다. 그러고는 빠져나오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이라고 생각되는 동작을 한다. 즉 더 열심히 자신을 뒤로 미는 것이다. 그런데 이 동작은 문제를 악화시킬 따름이어서 아기는 더더욱 꼼짝달싹 못하게 된다.
만약 이 아기가 말을 할 수 있다면, 가구 때문에 괴로워 죽겠다고 말할 것이다. 아기 입장에서는 아무튼 자신에게 가능하다고 생각되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기 때문에 결코 자신에게 문제가 있을 리 없다. 하지만 아기가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문제는 당연히 아기 자신에게 있다. 자신에게 가능하다고 생각되는 모든 수단을 아기가 동원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문제는 어떻게 자기 자신이 문제가 되고 있는지를 아이가 알 수 없다는 바로 그 점에 있다. 이 상황에서는 문제의 성격상, 아기가 생각할 수 있는 어떤 방법도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자기 기만은 이와 같다. 자기 기만은 문제의 진정한 원인에 눈이 멀도록 만들며, 자기 기만으로 일단 눈에 멀면 생각해낼 수 있는 모든 '해결책'은 상황을 실제로 악화시킬 따름이다. 자기 기만이 리더십에 극히 핵심적인 이유는 바로 리더십이야말로 상황을 개선시키는 능력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리더십은 우리가 스스로를 기만하는 그 정도만큼 항상 손상되는 것이지 가구 때문에 손상되지는 않는다.
더 큰 문제란 나에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내가 몰랐다는 것입니다.
조직에서 자기 기만보다 더 흔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 예로서 당신의 직장경험에서 정말로 큰 문제를 가졌던 사람, 그러니까 팀워크에 주요 장애 요인이었던 사람을 생각해보세요.
예, 그런 인간을 알죠
그럼, 문제를 하나 드리죠. 당신이 염두에 두고 있는 그 사람은 당신이 그를 문제라고 믿는 것과 같이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고 있을까요?
아니요, 절대 그렇지 않을 겁니다.
대개의 경우가 그렇죠. 문제가 있는 어떤 사람을 당신이 알아봤다면, 당신은 그 사람이 자기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지적에 저항하는 사람이라는 것도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자기 기만입니다.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없는 무능력 말입니다.
조직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 가운데 이 자기 기만이 가장 흔한 문제이자 또한 가장 해로운 문제입니다.
당신이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레온이 라 수 있도록 당신의 평소 습관을 벗어나 그런 모든 배려를 할 때, 당신이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그 사람입니까 아니면 당신에 대한 그의 견해입니까? 아마 레온은 당신이 진정으로 그에게 관심을 갖고 있지는 않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 이유는 당신이 사실은 자신에게 더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상자 밖에서는 내 자신과 타인들을 있는 그대로, 즉 사람으로 본다.
상자 안에서는 내 자신과 타인들을 체계적으로 왜곡된 방식으로, 즉 단지 대상물에 불과한 것으로 본다.
그들이 서로를 인간으로 볼 때 영리한 사람들이 얼마나 더 영리할 수 있는지, 숙련된 사람들이 얼마나 더 숙련될 수 있는지, 그리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더 열심히 일할 수 있는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나는 다른 사람의 이름을 익히려고 전혀 노력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다른 사람의 이름처럼 기본적인 것에 내가 관심이 없었다는 것은 내가 그들을 사람으로 보고 있지 않았다는 꽤 명백한 표시였다.
엄격한 메시지를 전달하면서도 그 행동을 할 때 여전히 상자밖에 있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당신의 메시지를 전달받는 사람이 당신에게서 한 인격체로 보여야만 상자 밖에서 그 행동이 이루어 질 수 있습니다. 상자밖에 있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자기배반
1. 다른 사람을 위해 내가 해줘야 한다고 느끼는 것에 반하는 행위를 자기배반이라고 부른다
2. 내가 나 자신을 배반했을 때, 나는 세상을 나의 자기 배반을 정당화시키는 방식으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3. 내가 스스로 정당화시킨 세상을 바로 볼 때, 나의 현실 감각은 왜곡된다
4. 그래서 내가 내 자신을 배반할 때, 나는 상자에 들어간다
5.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상자들은 나의 특성이 된다. 그리고 나는 그 특성들을 항상 지니고 다닌다
6. 상자 안에 있음으로써 나는 다른 사람들이 상자 안에 들어가도록 한다
7. 상자 안에서, 우리는 상호 학대를 초래하고 상호 정당화를 획득한다. 우리는 상자 안에 계속 머무를 이유를 서로에게 제공하는 일에 공모한다.
자기 정당화의 이미지는 나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미지는 내가 어떤 것에, 이 경우엔 타인들에게 관심을 두고 있다고 말합니다만, 그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나는 실제로 나 자신에게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아들이 좀 더 책임감 있게 되고, 문제를 덜 일으키고, 뭐 그런 것이겠죠.
하지만 그녀가 상자 안에 있으면서 하는 행동의 결과는 뭐죠? 그녀는 자신이 원한다고 말하는 결과를 더 유발하고 있습니까?
아니요. 사실상 그녀는 자신이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결과를 더 유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답은 바로 그녀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그녀 자신이 알 수 없기 때문이죠. 그리고 상자 안에서는 상황을 명확하게 보지 못해요. 상자 안에서 나는 내 자신과 타인에 관한 진실에 눈이 멀어 있어요. 심지어 내가 한 행동의 동기에 대해서도 눈이 멀어 있어요. 그녀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내가 정당하다고 느끼는 것이에요. 그래서 만약 그녀가 아들을 비판하면서 저녁을 보냈다면, 나는 정당하다고 느끼기 위해서 또 나는 옳다고 느끼기 위해서 아들에게서 무엇을 필요로 할까요?
그녀는 아들이 잘못하는 걸 필요로 하겠죠. 아들을 비난하는 것이 정당하려면, 당신은 그가 비난받을 만할 사람일 것을 필요로 합니다.
그렇습니다. 상자 안에 있을 때 그녀는 그녀에게 근심을 끼칠 사람들을 필요로 합니다. 즉 그녀에게는 문제들이 필요합니다. 그건 마치 서로가 '보세요, 만약 내 잘못된 행동의 책임을 당신에게 돌릴 수 있도록 나를 학대한다면 당신의 나쁜 행동의 책임을 나에게 돌릴 수 있도록 나도 당신을 학대할 겁니다'라는 식으로 서로 공모를 합니다. 기묘한 아이러니는 나에 대한 누군가의 나쁜 행위와 그것이 나에게 끼치는 고통에 관하여 내가 아무리 심하게 불평을 하더라도, 나는 그것이 이상하게도 달콤하다는 걸 알게 됩니다.
[상자 밖으로]
내가 애리조나에서 배운 것은 바로 내가 엉망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나는 상자 안에 있었지 때문에, 내가 불평하던 바로 그 문제들을 야기하고 있었어요.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최고의 사람들을 쫓아냈지요. 상자 안에서 나는 그들이 그렇게 우수하지는 않다고 확신했기 때문에 그들을 쫓아낸 행동이 정당했다고 내내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상자 안에서 소용없는 일
1. 다른 사람들을 변화시키려고 하는 것
2. 다른 사람들에게 대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
3. 떠나기
4. 의사소통
5. 새로운 기술이나 기법을 동원하기
6. 내 행동을 변화시키기
상대방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당신에게 계속 요구하는 것과 결합되어, 상대방에 대해 상자 밖으로 나오는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그 경험은 당신이 당신 삶의 다른 영역에서 스스로 추측하고 있는 만큼 실제로 상자 밖에 있는지를 의심하게 했고, 당신이 배운 것이 상대방에 대한 당신의 관점을 변화시켰습니다.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상자밖에 있을 때 우리가 인식하는 것 때문에, 갑자기 다른 사람들의 인간성이 우리의 상자를 꿰뚫어 버립니다. 우리는 그 순간 우리가 무슨 행동을 할 필요가 있는지 압니다. 우리는 그들을 인간으로서 존중할 필요가 있는 거죠. 그리고 그 순간에 - 다른 사람을 내 자신의 욕구만큼이나 현실적이고 정당한 필요와 희망과 근심거리를 가진 인격체로 보는 순간 - 나는 상자 밖에 있습니다.
나는 이제 다른 방식으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나는 그 느낌을 배반하기보다는 존중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상자밖에 계속 머무르는 비결입니다.
당신이 가족들과의 저녁시간이 근사했던 것은 당신이 해야 한다고 느낀 것을 그들을 위해 해줌으로써 당신이 상자밖에 머물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부담을 느끼고 있을 때, 우리를 질리게 만드는 것은 대개 타인들에 대한 의무가 아니라 자신에 관하여 뭔가를 입증해 보려는 우리의 필사적인 상자 안 몸부림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에 대한 반응으로 상자 안에 일단 들어가면, 그 사람이 얼간이라는 내 비난이 계속 정당하다고 느끼기 위해 내게는 그 사람이 계속 얼간이로 남이 있을 필요가 생깁니다. 그리고 나는 상자 안엣 있는 것만으로도 그가 얼간이로 남도록 계속 유도하는 셈이 됩니다. 내 비난은 내가 그를 비난하게 되는 바로 그 요인을 계속 유발합니다. 왜냐하면 상자 안에서는 내가 문제들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상자 안에 있을 때는 사람들이 당신을 따르더라도 단지 힘이나 힘의 위협을 통해서만 따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리더십이 아닙니다. 그것은 강압입니다. 사람들이 따르기를 원하는 리더는 상자밖에 있는 리더입니다.
내가 실수를 저질렀어도 그녀 자신이 상자 안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는 나를 비난할 필요가 없었다는 점입니다. 상자 밖에서 그녀는 정당화의 필요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녀가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했을 때 나는 내 실수에 대한 책임을 더 많이 느끼게 되었을까요. 아니면 덜 느꼈을까요?
그렇습니다. 백배는 더 많이 느꼈을 겁니다. 그녀가 실수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지 않음으로써, 내가 내 자신의 큰 실수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이끌었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그녀를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도 있는 충성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자기 기만은 이해하기
- 자기 배반은 자기 기만과 상자에 이르게 된다
- 상자 안에 있을 때, 당신은 결과에 초점을 맞출 수 없다
- 당신의 영향력과 성공은 상자 밖에 있는 것에 달려있다
- 다른 사람들에게 저항하는 것을 멈출 때 상자에서 벗어난다
자기 기만에 대한 이해를 실천하기
- 완벽 하려고 애쓰지 말라. 더 좋아지려고 노력하라
- 아직 자기 기만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상자 같은 단어를 사용하지 말라. 당신 자신의 삶 속에서 그 원리를 이용하라
- 다른 사람들의 상자를 찾지 말라. 당신 자신의 것을 찾으라
- 다른 사람들이 상자 안에 있다고 비난하지 말라
- 당신 자신이 상자 밖에 머물도록 노력하라
- 상자 안에 있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 스스로를 포기하지 말라. 계속 노력하라
- 당신이 상자 안에 있었을 때, 그 사실을 부인하지 말라. 사과하라. 그리고 나서 장래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더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면서 다만 앞으로 계속 전진하라
- 다른 사람들이 잘못하고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지 말라. 그들을 돕기 위해 당신이 올바르게 할 수 있는 일에 초점을 맞춰라
-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돕고 있는지를 걱정하지 말라. 당신이 다른 사람들을 돕고 있는지를 걱정하라
꼭 기억해 주세요. 우리는 누구와 함께 일하고 누구와 함께 살아가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상자를 떠나 그들과 하나가 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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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결정의 원칙, 나의 책임을 깨달을때 우리는 비로소 새롭게 시작할수 있다! 도서 서평 정리
우리는 항상 삶 속에서 일어나는 어떤 문제들을 자신의 정면에서 바로보는 연습을 필요로 한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내가 선택한 것들이 하나하나 모여 지금의 나를 형성하고 있다.
지금의 내가 선 상황은 순전히 내 스스로 그렇게 만들어 온 것이다.
다소 비정하고 냉정한 말 같지만 "자기 책임의 원칙, 자기 결정의 원칙"은
그래서 항상 옳아 보이고, 옳다.
그러므로 애초에 모든 책임은 자기 스스로가 지는게 맞을것이다.
그것 뿐입니다.
다른 누구의 탓도 아닌 것이지다.
항상 누군가를 겨누는 공격의 화살을 준비하고 있다면,
우리는 아마도 그 방향을 조금 수정해서 밖이 아닌 나 자신 안으로 향하게 해야할것이다.
아무튼 강심장이 아닌 이상 얼굴빨개질 생각하고 읽어야 할것이고,
내가 그동안 나를 위해서, 혹은 남을 위해서 해왔다고
스스로 생각했던 모든 생각, 모든 행동들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
구본형(변화경영 전문가)
출판사 리뷰
위기에 처한 우리 시대의 모든 사람들이 읽어야 할 필독서
이제 국가도 기업도 사회도 그 어느 누구도 우리의 미래를 보장해 줄 수 없는 시대가 왔다. 그렇다면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가? 수동적으로 그저 진행되는 불안한 상황을 지켜보아야만 하는가? 이러한 암울한 상황은 우리 자신에게 더욱 절실한 자기 계발을 요구한다. 어느 누구도 나를 위해 도와 주지 않는다. 오직 나만이 나 스스로를 책임질 뿐이다. 이 책 『자기 결정의 원칙』은 위기에 처한 우리 모두에게 자신의 현실과 미래를 스스로가 거머쥘 수 있는 길을 제시하는 이 시대에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이다.
삶이란.....좋은것 같다.
세상에 살면서 한번씩 이런 생각들을 해보았을 것이다.
'지금 내가 사는 방식이 과연 내가 원하는 것인가?'
'이렇게 사는 것이 나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 던지는 이런 질문들에 대한 궁금증들을 조금씩 풀어나갈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아 나가는 방식에 불만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무언가 더 나은 삶의 방식이 있을텐데.. 지금 만나는 짝보다 더 좋은 인연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등등.. 더 나은 인생을 갈망하는 마음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온다. 항상 살아나가면서 지금의 삶에 만족하기 보다는 불만족스러워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이 책의 저자는 바로 그런 우리의 모습이 외부에 끊임없이 의존하는 상황에 기인한다고 지적한다. 계속 남들과 비교하고 남들에게 잘 보일려고 노력하는 등과 같은 삶의 방식을 고수하는 한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고 저자는 단언한다.
저자는 이러한 예의 하나로 "칭찬"을 꼽는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칭찬이란 많이 하면 할수록 좋은 것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 칭찬은 남에게 의존해서 자신의 의지를 나약하게 하는 부정적인 것으로 묘사된다. 즉 칭찬을 얻었을 때에는 독립성을 잃고, 칭찬을 얻지 못 했을 때에는 자기 존중심을 잃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외부에 의해 자신을 내맡기면 내맡길수록 더욱 자신의 인생이 불행해지고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방책은 없는가?
저자는 명쾌하게 답변한다. 자유는 선택하는 자의 몫이다. 모든 선택은 책임을 수반한다. 행복은 미래를 위해 자신의 자유를 스스로 챙기는 자만이 누릴 수 있다라고,,
물론 이 책을 읽으면서 기존의 내 생각들과 상충되는 면도 없지 않아 있었다. 칭찬이나 보상을 너무 부정적인 것으로 매도한다던가, 개인주의적인 측면을 약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강조해서 우리나라 정서에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그리고 철학적인 어구를 많이 사용해서 현실의 삶과 거리가 멀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모든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책을 강하게 추천하고픈 이유는 지금 내 삶이 어떠한지 돌아볼 기회를 제공해 주었기 때문이다. 혹시 여러분이 지금까지 앞만 보고 달려왔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리고 행복한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한번쯤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정호의 요약
지금의 모든 것은 당신이 결정하여 선택한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이 모든 것을 다시 자유롭게 선택하여 버릴 수도 있다.
문제는 우리들 대부분이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는 데 있다. 더구나 매일매일 그럴 수 있다는 사실을. 자신의 생활 여건을 날마다 새롭게 결정할 수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한마디로 잊고 있다.
이 순간에 존재하고 발생하는 모든 것은 과거 어느 땐가 당신의 인생에서 내린 결정의 산물이다. 지금 그것이 마음에 들든 그렇지 않든 간에...
당신이 원치 않고 지금껏 그래 왔던 것처럼 살기를 원한다면, 이러한 상태를 스스로 선택했다는 사실을 뚜렷이 의식하면서 살아가라. 거기에는 어떤 이유나 책임 회피도 있을 수 없다. "그럴 수는 없어, 왜냐하면..."과 같은 어떤 변명도 있을 수 없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내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의 가능성은 어디까지인가? 와 같이 스스로 질문 해보라. 한탄하는 대신 행동하라!
하지만 그렇게 쉽지마는 않다. 나 역시 동의한다. 그것이 쉬운 일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에게 선택권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잘 생각해 보라. 사실 당신의 고용주는 언제나 당신이다.
나는 더 이상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고 한껏 과시하는 흡연가는 모든 건 의지에 달렸다고 말한다. 그러나 몇 주일이 지난 뒤 중독된 흡연에의 욕구가 마침내 자신을 이겨 다시 담배를 피우지 않을 수 없노라고 말한다. 사실 공감이 하는 것처럼 들린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신이 만든 이야기에 너무도 익숙해져서 결국 스스로도 믿어 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유혹 당하고 싶은 간절한 욕구를 가슴속에 품지 않은 사람은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유혹할 수 없다.
다른 사람들이 우월감을 가지고 당신에게 함부로 하는 데는 당신은 얼마만큼 기여했는가? 당신이 "나를 찔러도 된다는 신호"를 보냈기 때문에 그가 당신을 찌른 건 아닌가? 아마도 당신은 그의 태도를 사실상 한번, 두 번, 세 번쯤 묵인했을 것이고 그렇다면 그가 이제 완전히 확신하고 행동한다 해도 놀랄 일은 아니다.
당신은 묵인했다. 묵인한 것에 대해 비용을 치르는 것이다. 사람들은 당신을 통해 배운대로 당신을 대할 것이다.
마음속으로 다짐할 필요가 없다. 지금 그렇게 실천하면 된다. 드물게 예외가 있긴 하지만, 금연이나 체중감량에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 지금 그 일을 시작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매일 행동한다.
당신은 부자가 되고 싶은가? 당신은 그것을 꿈꾸는가, 아니면 당신의 소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일하고 있는가? 당신은 다만 당신의 계획에 대해서 말하는가, 아니면 구체적인 발전을 이루고 있는가?
아무도 당신의 계획에 관심이 없음을 잊지 말아라. 그것은 당신이 어떻게 행하느냐에 달려 있을 뿐이다. 아무도 당신의 소망을 충족시킬 책임이 없다.
다른 사람의 협력이 필요할 때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건 당신의 능력 여하에 달린 모든 것을 당신 스스로 행하느냐 하지 않느냐이다.
엄밀히 말하면 당신의 행하는 모든 일은 당신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그것이 당신에게 중요하기 때문에, 그것이 옳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그것이 당신의 규범과 가치관에 부합되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당시에게 용이했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당신은 아마도 마음이 편치 못했을 것이다.
당신은 결코 다른 누군가를 위해 무엇인가를 행한 적이 없다.
유의할 것은 당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예를 들면, 당신의 자녀에게 유익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것이 당신을 분발하게 하고 강화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당신은 당신의 선택에 책임이 있다. 다른 행동 방식이 아닌 그렇게 행동하기로 당신 스스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행동은 언제나 필요를 충족시킨다. 그것은 항상 이기적인 속성을 갖는다. 다른 사람들을 돕는 사람을 깎아 내리려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항상 자비심이 넘치는 행동을 해 온 테레사 수녀도 자신의 행동에 뿌듯함을 느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녀도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도움은 그 힘을 외부로부터. 즉 무엇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부로부터, 즉 무엇인가로부터 끌어 낸 것이라는 점이다.
사람은 가장 위선적인 동기에서 타인의 안녕을 위해 전력 투구할 수도 있는 존재다. 이를테면 당신의 자녀를 위해서 무엇인가를 행한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옳지 않으며 효력이 없는 말이다. 당신은 자신이 선택, 결정한 결과에 대한 책임을 인식하기 때문에 자녀를 위해 전력을 다하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가치 있는 것이다! 감사를 기대하고 착취로 이어질 '너를 위해서'라는 가면이 아닌 바로 그 점이...
다른 하나의 목적을 위해 스스로 취한 모든 수단이 사실상 가치가 없다는 점이다. 무언가가 다만 또 다른 무언가를 위한 전제 조건일 뿐이라면 그것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될 수 없다.
"이것을 행하라. 그러면 그것을 얻을 것이다"라는 것은 자동적으로 "이것"의 가치를 저하시킨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렇게 해서는 결코 행복하지 않다는 점이다.
보상은 우리의 자연스런 관심과 스스로의 의지로 행하려는 마음을 파묻어 버린다. 또한 단지 우리가 즐겁기 때문에 무언가에 참여하고자 하는 것을 저해한다.
장기적인 시각에서 성공적인 사람은 오직 부차적인 자극 없이도 자신이 하려는 것을 행하는 사람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의미 있는 것은 일의 성과이지 다음에 이어질 수도 있는 보상이 아니다. 그것이 자신의 일이기 때문에 행할 뿐이다.
칭찬을 추구하는 것은 자신의 가치판단 기준이 아닌 타인의 기준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남들이 말하는 것이 당신의 인생을 결정짓는 셈이다. 다른 사람이 당신의 인생을 조종하는 운전대에 앉는 것이다. 그가 운전하는 대로 내맡기고, 커브를 돌 때마다 뒷좌석에서 이쪽 저쪽으로 쏠리며 곤두박힌다.
주변의 갈채를 열망하는 상태에서는 나이를 먹더라도 결코 성숙하지 못한다.
너 자신이 되라.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유일 무이한. 네가 첫 번째일 수 있는, 너의 재능이 태양처럼 빛을 발할 수 있는 일을 하라. 네가 단지 두 번째로 머물러야 되는 그런 일은 하지 마라. 주류에서 벗어나라! 나도 역시와 같은 인간형은 어디에든 넘쳐난다. 성공은 언제나 그것을 열망하는 인간이 그러하듯 유일한 것이다.
하나의 작은 동그라미는 - 큰 동그라미가 동그라미 이상이 아니듯 - 동그라미 이하가 아니다.
더 이상 비교하지 말라! 유일한 비교는 자기 자신과의 비교뿐이다. 내가 무엇을 배웠는지, 나 자신의 요구가 옳다고 인정되었는지, 스스로 선택한 척도가 충분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성취와 관련된 것이라면 나 자신이 개선되었는지, 전보다 오늘이 나았는지, 타인에게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승리를 거두었는지 비교할 수 있다.
이러한 것은 더 나아가 실질적인 이점을 갖는다. 내 자신이 하나의 안정된, 미리 계산 할 수 있는 좌표가 되므로 다른 척도를 찾아야 할 필요가 없다. 나는 언제나 내 곁에 있기 때문이다.
나쁜 것도 마찬가지지만 좋은 것 또한 운명적으로 자신에게 닥치는 것이 아니다. 복권에 당첨되듯 그에게 굴러 들어오는 것도 아니며, 우연히 맞닥뜨리게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두가 그 자신에 의해 야기된 것이다. 중요한 것은 행복의 실질적인 원천이 생활 환경이 아니라 그 자신에 있다는 사실이다.
상황을 변화시켜라.
당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생활 여건을 수용하지 말라. 스스로 만족하지 말라. 스스로를 납득시키려 들지 말라. '아니오' 라고 말하고 싶을 때 예라고 답하지 말라. 당신이 자신에게 할 수 있는 가장 나쁜 행동은 익히 알고 있듯 분노를 억누르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변하도록 기다리지 말라. 그것은 당신의 인생이며, 당신이 당신의 가치와 관심사 저변에 뭔가가 결여되어 있다고 느끼고 있는 것이다. 오직 당신만이 당신이 체험하는 대로 체험한다. 다른 아무도 당신처럼 체험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도 당신이다. 기적을 기다리지 말라. 지연은 시작 도둑일 뿐이다.
자신에 대한 사랑이 가득한 행동만이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이 가득한 행동의 전제조건이 된다. 자신을 소중히 여겨야만이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도 소중한 존재가 된다. 자신을 스스로 존중해야만이 누군가 다른 사람을 존중해 줄 수도 있다.
자존심을 보호하라! 결연히 처신하며, 자신을 과소평가 하도록 내버려두지 말라. 그는 당신의 단호한 태도를 계산에 넣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다. 명료하고 분명하게 무언가 다른 분위기를 불러일으키는 태도를 취하라. 조기에 분명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다툼이 있는 후에 당신의 자매가 먼저 한 걸음을 내딛도록 기다리지 말라. 당신이 그녀를 불러라. 당신을 구속하는 문젯거리에 너무 많은 권한을 넘겨주지 말라. 그리고 당신이 무언가 잘못을 저질렀다면 그것을 어물쩍 얼버무리지 말라! 당신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고 그 대가를 지불하라. 찜찜한 기분을 지속시키는 것은 당신이 스스로에게 행하는 가장 어리석은 짓이다.
당신은 바람이 방향을 결정하지 못할지라도 요트의 방향을 결정할 수는 있는 것이다.
그것을 사랑하라!
당신이 달갑지 않은 상황을 변화시킬 수 없다면, 최소한 당신의 입장을 바꿔라. 모든 결과를 포함하여 있는 그래도 상황을 인정하는 것이다! 현재의 상황에 100% 예라고 수긍하는 것이다. 투쟁을 중단하라. 인정함으로써 시작하라.
목적, 그러니까 의미는 자신의 행위 속에 있는 것이지 행위의 결말에 있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당신이 목적만을 주장하여 현재의 방법에서 더는 아무런 즐거움도 느끼지 못할 때 비로소 발생한다. 당신이 고집스럽게 특정한 한 가지 결과만을 응시할 때, 오늘이 아닌 내일로만 에너지를 쏠릴 때 문제가 발생한다.
목적은 알 수 없다 할지라도 인생이라는 여행을 즐기는 것이다.
인생에서 행복의 전제 조건은 우리가 바로 지금 행하고 있는 것에 대한 즐거움이지 결말의 성공에 대한 즐거움이 아니다. 직접적인 경험에 대한 즐거움은 각 개인에게 놀라운 성취를 이루도록 촉진한다. 그리고 이러한 즐거움은 에너지의 집중도에 달려있다.
나는 결코 하나의 시합에서 이기려고 애쓰지 않는다. 한 세트를 혹은 한 게임을 이기려고 시도하지도 않는다. 나는 다만 한 점을 얻고 싶다고 생각한다.
행복의 비밀은 매순간을 마지막인 것처럼 살기보다는 오히려 처음인 것처럼 사는 것에 있다. 행복한 사람은 행복을 하나의 소망으로 인식하지 않고 지금 할 수 있는 어떤 것, 내가 능동적인 행동을 취함으로써 무언가 기여할 수 있는 어떤 것으로 파악한다.
기본적으로는 모두가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는지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역풍이 불거나 반동이 거세도 굴하지 않는 끈기로 뜻을 관철시키는 사람은 드물다.
내가 스스로 규율을 결정해야 하며, 내가 나를 위해 규율을 선택해야 한다.
좋은 결말이 있을지 어떨지는 내가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고 자책하는 일은 결코 없도록 하라.
먼저 대안이 되는 것의 가치를 존중하고 신중히 고려한 가능성 중의 한가지 방법을 명료한 의식 하에 선택할 때만이 그 결정이 힘과 품위를 갖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두 가지 대란의 가치를 모두 인정할 때만이 선택은 힘을 갖는다. 그 밖의 경우는 선택이 아니라 도주이다.
당신이 무언가를 행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당신에게 다른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임을 당신은 알고 있다. 당신이 그것을 하지 않기로 선택한 것이다. 상황의 압력이라는 것을 더는 인정하지 않는다. 당신에게 강요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는 바로 당신 자신이다.
당신이 최선을 기울인다면, 그것이 당신 자신을 위해 최선이다. 당신이 행하는 것을 온 마음을 다해 행하라. 그러지 않으려거든 그만둬라. 오직 그 행동이 당신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이유로 예라는 결의에 찬 대답을 하라. 반쯤의 성심을 기울이는 태도를 삼가라. 우유부단함과 작별하라.
행복해지기 위해 더 이상 강제적으로 어떤 목적에 도달할 필요가 없다. 지금 당신이 행하는 일에 모든 에너지를 투입하라. 인생은 내일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진행되고 있다. 어떤 목적을 달성했을 때뿐만 아니라 매순간 만족을 체험하라. 준비하는 것으로 당신의 인생의 시간을 헛되이 낭비하지 말라.
무엇을 위하여라는 목적을 위한 수단의 정당화에 치우치는 우를 범하지 말라. 지금은 아직 아니지만 훗날 언젠가는 하는 태도는 당신의 현존에 적합하지 않다. 인생은 오늘 진해오디고 있다. 이 순간도 인생에 속한다.
당신의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활력이지 안락함이 아니다. 당신은 모든 것에 그리고 각각에 한가지 생각을 가질 필요는 없다. 이따금 한가지 테마를 숙고하는 것에 만족하라. 소위 놓쳐버린 기회를 생각하며 눈물짓지 말라. 그것은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당신을 아래로 끌어내리기만 할 것이다.
자신의 인생을 자신의 손안에 움켜쥐고 관리하는 법을 배운 자만이, 인생을 자신을 위해 결정하는 것을 배운 자만이 승자가 될 것이다. 오직 용기만이 필요한 때이다!
결정은 당신의 손에 달려 있다!
[자기 결정의 원칙]-나에 대한 최상의 조언자는 바로 나 자신이다.
지금 당신의 인생은 당신이 자유롭게 선택한 것이다.
문제는, 우리들 대부분이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는데 있다.
증오하면서도 그 일터를 떠나지 못한다면, 당신은 아직 그 곳을 떠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모든 안락함은 대가를 요구한다.
'내가 ... ... 했더라면'하고 말하는 사람 치고 무언가를 실제로 하는 사람은 없다.
'시간이 없다'고 하는 것은 그 일이 당신에게 중요치 않다는 의미다.
스트레스는 '아니오'라고 하고 싶으면서도 '얘'라고 말할 때에 발생한다.
마음 속으로 다짐할 필요가 없다. '지금' 그렇게 실천하면 된다.
당신 자신을 위해 행하라!
보상에 대한 기대는 일에 대한 기쁨과 열정을 일에 대한 의무로 바꾼다.
칭찬 받기를 좋아하는 것은 당신 자신을 하찮은 존재로 만드는 것이다.
참고 견딘다고 얻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인생의 시간만 낭비할 뿐이다.
익숙한 것과 남들이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에 자신의 인생을 맡기는 것은 자기 기만이다.
우리의 진정한 삶은 내일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진행되고 있다.
행복은 극복한 자에게 주어지는 보너스이다.
[자기 책임의 원칙]-핑계대지 말고 자신을 먼저 존중하라.
행하는 자가 힘을 갖는다.
당신이 행하거나 내버려두는 모든 일의 책임은 당신에게서 비롯되고 당신에게서 끝난다.
'나는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그렇게 하기를 원치 않는다는 뜻이다.
당신은 매순간 스스로 전력 투구한 것을 인생에서 돌려 받는다.
모든 일은 당신이 그린 자화상 중의 하나이다.
당신의 현재 모습은 바로 당신 회사의 모습니다.
자기 자신에 머무는 사람이 가장 멀리 갈 수 있다.
항상 다른 사람의 발자국을 따라 밟는 사람은 자신의 자취를 남기지 않는다.
경영의 권한은 당신이 가진 것이 아니라. 당신에게 주어진 것이다.
자기 책임은 일종의 자세를 의미한다. 따라서 양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직원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을 당신이 대신 하지 말라.
불평하지 말라. 행동으로 반응하라.
보상과 처벌을 삼가라. 비판은 효력이 없다.
누군가를 평가절하 하거나 경멸하는 문제 해결에는 진보가 없다.
자기를 존경할 줄 아는 사람이 다른 사람도 존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