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된 농담

 


기대가 커서 실망이 컷는지.. 아니면 제목을 보고 처음부분에 나온 현빈의 아주 오래된 농담 한마디가 이 소설에 미치는 영향을 너무 집착을 해서 그런지 왠지 좀 산만한 생각이 들었다.
다 읽고난후에 보니 이 책은 연애나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환자는 자기 몸에서 일어나고 있는일-생명의 시한까지도-에 대한 주치의가 알고 있는 것만큼은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의사와, 가족애를 빙자하여 진실을 은폐하려는 가족과, 그것을 옹호하는 사회적 통념과의 갈등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소설을 통해 작가가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자본주의에 대해서이다> 여기까지 읽다가 피식 웃음이 나면서 뭘 자본주의씩이나 적나라하게 그냥 돈으로 했으면 좋았을 것을 - 작가의 말 中에서

책 후반에 쓰여진 위의 글을 진작에 읽어보고 봤으면 좋았을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암튼 자본주의라는것.. 돈이라는것에 대한 위대함이라고 해야하나.. 무서움이라고 해야하나... 약간은 그런 생각과 서글픈 생각도 들었다.. 살기위해 돈이 필요한것이 아니라.. 돈때문에 서로 죽이고, 싸우면서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왠지 여자작가들이 소설을 쓰면 가부장적인 사회에 대한 비판이 많고, 남자가 쓰면 개방적인 여자들에 대한 비판에 대한 글이 은연중에 보이는것이.. 얼마전에 본 아내가 결혼했다라는 소설이 떠오르면서 스쳐지나간다...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고 해도.. 자신의 입장에서 자신을 대변하는 입장에서 살아가는것이 아니겠어...:)

<도서 정보>제   목 : 아주 오래된 농담
저   자 : 박완서
출판사 : 실천문학사
출판일 : 2000년 10월
책정보 : ISBN : 8939203976 | 페이지 : 323 | 488g

구매일 :
일   독 : 2006/5/24
재   독 :
정   리 :

<이것만은 꼭>



<미디어 리뷰>
저 : 박완서
개성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서울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박완서 씨에게 한국전쟁은 평생 잊을 수 없을 없는 기억으로 남는다. 의용군으로 나갔다가 부상을 입고 거의 폐인이 되어 돌아온 `똑똑했던` 오빠가 `이제는 배부른 돼지로 살겠다`던 다짐을 뒤로 하고 여덟 달 만에 죽음을 맞이하고, 그후 그의 가족은 남의 물건에까지 손을 대게 되는 등 심각한 가난을 겪는다. 결국 대학을 중퇴하고 미군 PX에서 일하다가 훗날의 남편을 만나게 된다.
한국 전쟁과 분단의 아픔을 다룬 데뷔작 <나목>과 <목마른 계절>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틀니> <아저씨의 훈장> <겨울 나들이>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등을 비롯하여 70년대 당시의 사회적 풍경을 그린 <도둑맞은 가난> <도시의 흉년> <휘청거리는 오후> 등까지 저자는 사회적 아픔에 주목하여 글을 썼다. <살아있는 날의 시작>으로부터 여성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작가는 <서 있는 여자>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등 점점 독특한 시각으로 여성문제를 조명하기 시작한다. 또 장편 <미망><그 많던 싱아를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등에서는 개인사와 가족사를 치밀하게 조명하여 사회를 재조명하기도 한다.

올해로 작가 나이 일흔, 등단 30년을 맞은 그녀가 5년 만에 내놓은 장편소설 『아주 오래된 농담』. 한국 현대소설의 어머니라는 수식어가 전혀 어색하지 않은 그녀는 전쟁과 분단의 상처, 소시민의 일상, 여성문제 그리고 죽음과의 대면까지 다양한 현실의 풍경을 담아냈었다. 일흔의 나이에도 식을 줄 모르는 창작력과 오히려 풍성해진 젊은 감각은 작가 특유의 재담과 필력으로 우리에게 다시 한번 삶의 내면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만들어준다

박완서 소설의 오랜 축은 자본주의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이다. 허위와 위선을 꼬집어냈던 그는 이 소설에서 돈과 결탁한 인성 속에서의 권력과 눈가림, 그 속에서 태어나는 상처와 고통을 더욱 극단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중심을 잃지 않는 필체로 그려내고 있다.

<환자는 자기 몸에서 일어나고 있는일-생명의 시한까지도-에 대한 주치의가 알고 있는 것만큼은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의사와, 가족애를 빙자하여 진실을 은폐하려는 가족과, 그것을 옹호하는 사회적 통념과의 갈등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소설을 통해 작가가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자본주의에 대해서이다> 여기까지 읽다가 피식 웃음이 나면서 뭘 자본주의씩이나 적나라하게 그냥 돈으로 했으면 좋았을 것을 - 작가의 말 中에서
자본주의 속에서 인간의 사랑과 애정이 얼마나 변형되고 왜곡될 수 있는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이 주인공들은, 자본화의 극치를 달리고 잇는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바로 우리의 모습일 수도 잇다.

출판사리뷰

어디에서고 박완서 선생의 글이 보이면 무턱대고 읽기 먼저 한다. 짧은 글은 짧은 글대로 긴 글은 긴 글대로 아직 젊은 나를 긴장시키기 때문이다. 정곡을 찌르는 필력으로 감춰져 있는 생의 허위의식을 적나라하게 들춰내 보일 때면 글귀신을 본 듯하여 몸과 마음이 소롯해진다. 굳은 살이 베어나가고 새살이 차오르는 느낌이랄까. 세상의 시시한 이야기들은 선생이 있어 행복할 것이다. 흘려듣고 말 이야기가 선생의 손을 타고 나면 쫀득하기 이를 데 없는 진경을 이루며 아프고 구성짐이 깊디깊다. 웃으며 읽기 시작한 마음이 어느덧 저릿거리다가 종내엔 엄숙해진다. 그때마다 새로운 마디처럼 지니게 되는 감동, 그것이 선생으로 대표되는 우리 현대소설의 연륜일 것이다. - 신경숙(소설가)

이 작품은 크게 두 가지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송경호의 죽음을 둘러싼 이야기를 한 축으로 하고, 다른 한 축은 화자 심영빈의 결혼생활과 일탈, 현금과의 불륜에 대한 이야기로 엮어져 있다. 여기에는 자본주의 제도 안에서의 죽음과 탄생이라는 대비가 숨겨져 있다. 동전의 앞뒷면처럼 죽음과 탄생은 모두 돈의 속물성이나 가부장적 이념의 강고함으로 뒤틀려 있고, 죽음도 탄생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니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임을 깨닫게 한다. - 이선옥(문학평론가)


<줄거리>
자칭 재벌인 Y건업의 장남 송경호 죽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가족들의 이기적인 행태와 돈을 둘러싼 암투, 죽음의 소외와 맞물려 탄생의 불모성에 대한 이야기가 겹쳐지면서 자본주의와 가부장적 이념에 대한 비판이 배여 있다. 이 작품은 크게 두 가지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화자 심영빈의 매제인 송경호의 죽음을 둘러싼 이야기가 그 하나이다. 그리고 다른 한 축은 심영빈의 결혼생활과 일탈, 현금과의 불륜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영빈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자란 누이동생 영묘는 "오빠, 그 집은 좀 이상해. 우리 집하고 많이 달라. 그렇지만 우리 집이 옳고 그 집이 틀린 건 아닐 거야. 서로 다를 뿐이지."(82쪽)라며 시집의 질서에 순응해 보려 하지만, 그의 노력은 남편 경호의 발병으로 인해 끝없이 허물어지고 만다. 암인지도 모르고 죽어가는 경호와 속수무책인 아내 영묘. 경호의 죽음은 송씨 일가 전체의 기획에 짜맞추어진 듯이 무지막지한 자본의 논리에 맞추어 착착 진행(?)될 뿐이었다. 즉, 송 회장 일가는 아들의 치료에서도 돈과 권력의 과시가 앞선다. 아들의 장례식을 찍은 장편의 비디오를 보며 뭐뭐한 인사가 참석했으며, 장례식이 얼마나 화려하고 성공적으로 치러졌는가를 과시하는 송 회장. 결국 아들에게 병명을 숨? 것도 아들의 여린 마음에 대한 배려가 아니라 실상은 유산에 대한 그의 결정권을 배제하기 위한 의도였음이 드러난다.

작가는 송씨 일가가 지배하는 우리 문명의 질서 이면에 또 다른 죽음의 의미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암시적으로 보여준다. "이 세상의 하나밖에 없는 가장 확실한 나의 것이기도 하고 내가 일생 받들어 모신 나의 주인"(134쪽)이기도 한 그 몸에 대해 마지막으로 선택할 권리를 갖는다는 것. 그리고 그 선택이 남겨진 사람들을 위한 배려와 사랑이 된다는 것. 그런 죽음도 존재한다는 사실은 아주 진부하지만 또한 우리가 잊고 사는 진실임을 말하고자 한다. 의사로서 명성있는 심영빈은 초등학교 동창인 현금을 우연히 만나면서 새로운 변화를 맞는다. 영빈에게 순수했던 한 순간으로 기억되던 현금과 자연스럽게 불륜의 관계를 맺게 된다. 둘 사이가 깊어지다가 이혼녀로서 충족하고 자유분방하게 살던 현금은 처음으로 아이를 갖고 싶다는 열망을 품는다. 그러나 한광이라는 초등학교 동창이 하는 산부인과를 다니던 현금은 불임임을 확인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영빈의 아내 수경을 만나 자신의 위치를 개닫게 된다. 반면에 영빈의 아내 수경은 두 딸을 가졌지만 아들에 대한 욕심으로 계획된 출산을 준비한다. 아들 낳기를 강행하는 아내에 대해 영빈은 혐오의 감정을 느낀다. 자신의 친구와 그 앞에서 가랑이를 벌리고 누운 아내가 공모해서 만들어낸 착품이기 때문이다. 아내의 감동에 모르는 척 속아주지만 결코 감동할 수 없는 그의 감정은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와 장삿속이 결합된 탄생에 대한 강한 비난을 담고 있다. 그러나 수경의 아들 낳기는 어머니로서의 지위가 아들을 통해 확보되는 것이라는 굳은 믿음이, 생명에 대한 신성함도 무력하게 만들 뿐이었다. 몸은 살아 있지만 정신이 먼저 소멸한 수경의 출산과, 열망은 살아 있지만 이미 몸이 쇠퇴한 현금의 불임은 이 작품이 말하는 개와 늑대의 시간 그 양쪽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은 죽음의 뒤틀림만큼 탄생의 뒤틀림도 극에 달해 있음을 말하고 있다. 결국 고아원의 아이들에게 밥 먹이는 일을 시작하는 현금과 큰오빠의 도움을 받아 송씨 일가로부터 분리되어 홀로 아이들을 데리고 떠나는 영묘의 새출발로 끝을 맺고 있다.

동전의 앞뒷면처럼 죽음과 탄생은 모두 돈의 속물성이나 가부장적 이념의 강고함으로 뒤틀려 있고, 죽음도 탄생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니지 못하는 현실이 박완서의 독특한 필체로 그려져 있다


<책속으로>
1. 허무의 예감
2. 일탈의 예감
3. 떨어지는 가면
4. 개와 늑대의 시간
5. 오래된 농담
6. 전망 좋은 병실
7. 눈뜬 죽음
8. 고여 있는 시간 속의 뱀눈
9. 다섯 통의 E메일
10. 마흔여섯 송이 장미
11. 이 세상엔 없는 곳

"넌 참 좋겠다. 넌 아마 하고 싶은 말을 참은 적도, 생각에 없는 말을 꾸며댄 적도 없을 거야. 너한테 하나 묻고 싶은게 있는데 의사가 환자한테 바른말을 못하는 고민에 대해서 넌 어떻게 생각하니? 이를테면 조기 발견 못한 암으로 시한부인 환자에게 외국 같으면 당연히 당사자에게 알릴 것을 우리는 보호자에게 먼저 통고를 하고 보호자는 거의가 다 환자에게 알리지 말아달라고 부탁을 하고....다들 왜 그렇게 속이려 드는지 모르겠어. 그것도 사랑의 이름으로, 생각해 봐. 사람이란 거의 다 속아 사는 거 아니니? 사랑에 속고, 이상에 속고....일생 속아 산 것도 분한테 죽을 때까지 기만을 당해야 옳겠냐? 이런 거짓말을 강요당할 때처럼 의사라는 직업에 환멸을 느낀 적도 없다니까."
"얘는, 그게 어떻게 거짓말이냐, 농담이지."
"농담?"
"그래 농담이지 듣는 사람이나 하는 사람이나 다 거짓말인줄 알면서도 들어서 즐거운 거, 그거 농담 아니니? 의사라고 농담하지 말란 법 있냐? 특히 너처럼 꽉 막힌 애는 농담 좀 할 줄 알아야 돼."

이렇게 사람은 각각 제 나름데로 죽는다. 이 세상에 안죽는 사람 없다는 걸 알면서도 죽을 때는 자기만 죽는 것처럼 억울해 하는건 이런 불공평 때문일까. 육신의 사멸은 의학이 예측할 수 있는 경과를 밝지만 정신의 사멸을 아니다. 무도 없는 무, 호김심조차 거부하는 미지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까. 육신의 사멸은 의학이 예측할 수 있는 경과를 밝지만 정신의 사멸은 전혀 아니다.

영묘는 망자가 그녀를 보고 싶어 눈을 못 감고 피눈물을 흘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뒤늦게지만 눈가림을 당하고 살아왔다는 걸 깨닫고 비로소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똑바로 보려했음이 아니었을까. 그는 한번도 죽음과 맞서보지 못했다. 막판에 그가 격렬한 적의를 나타낸것도 고작 땡추이지 죽음은 아니었다. 헛것만 보았지 한 번도 진실을 보지 못했다. 최후의 순간에야 자신에게 다가오는 죽음을 똑바로 보았을 것이다.

'얘좀 봐. 왜 못해. 나무는 자살할수 없다고 누가 그래? 나무 우습게 보지 말아 너. 나무도 사랑을 잃으면 자살할수도 있다는걸 우리집 능소화가 확실하게 보여줬잖아? 그래도 못 믿겠어?' 못 믿겠다면 무슨일 낼 것처럼 눈을 똑바로 뜨고 다그쳤다.입가엔 튀긴 빵가루 부스러기가 묻어있고, 포크에는 돈가스 조각이 꽃힌 채였다. 영빈은 어이가 없어 그냥 픽 웃고 말았다. 현금도 따라 웃으면서 나머지 고기 조각을 입에 넣고 오물거리며 말했다. '능소화가 만발했을 때 베란다에 서면 마치 내가 마녀가 된 것 같았어. 발 밑에서 장작더미가 활활 타오르면서 불꽃이 온 몸을 핥는 것 같아서 황홀해지곤 했지.'

어젠 비디오로 영화를 하나 봤는데 친구는 선택할 수 있어도 가족은 선택할 수 없나는 대사가 인상적이었어. 별것도 아닌 소리지. 그까짓 게 무슨 명언은 고사하고 명대사 속에나 들겠어. 그렇지만 정신이 궁지에 몰리면 어디서든지 아전인수할 건덕지를 찾게 되는 것 같아. 계속해서 그 생각만 하느라고 영화 줄거리는 놓쳐버리고 말았으니까. 아아, 그래서 어머니를 떨쳐버림으로써 영묘 문제도 떨쳐버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안 되는구나, 형이 아무리 가족을 외면하고 싶어도 아우의 편지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걸, 따위 생각 말이유.

혀가 풀렸나봐. 답장도 안해주는 형한테 또 쓰고 싶어진 걸 보면 혀가 풀려도 제어 할수 없이 풀린게 아닌가 슬그머니 걱정이 되네. 매일매일 컴퓨터를 켤때마다 편지부터 열어보게 돼. 그 기대감이 나쁘지 않아. 하소연만 하고 싶은게 아니라 위로 받고 싶나봐. 쓰잘데 없는 편지함의 잡동사니들을 다 지워버리고 나면 오늘도 아무것도 못 건졌다는게 그렇게 처량 할 수가 없네..
아우가 멀리 타국땅에 있는 형에게 보낸 E메일 주로 가족의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고 형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담긴, 답장도 받지 못하는 형에게 보낸 메일에서 아! 가족이란 이런거지 마음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의지가 되는... 다소 혼란하고 골치아픈 이야기에서 가장 위로를 받을 수 있었던 부분이었던것같다. 딱딱하고 현실에서 피하고 싶어하던 영빈이 어린애처럼 투정을 부리는 부분에서 미소를 자아냈던. 아니, 나를 한숨 돌리게 했던......

사람이란 거의 다 속아 사는거 아니니? 사랑에 속고, 시대에 속고, 이상에 속고... 일생 속아 산 것도 분한데 죽을 때까지 기만을 당해야 옳겠냐? 이런 거짓말을 강요당할 때처럼 의사라는 직업에 환멸을 느낀 적도 없다니까.'
'얘는, 그게 어떻게 거짓말이냐, 농담이지'.
'농담?'
' 그래 농담이지 듣는 사람이나 하는 사람이나 다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들어서 즐거운 거, 그거 농담 아니니?

그러다가도 문득 할머니를 위해서라는 건 자기 기만일 뿐,이 고여 있는 시간속에 뱀눈처럼 숨어 있는 건, 이 저택과 조 단위의 재산을 노리는 욕망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영묘는 아직도 그 욕망을 자기 것으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그걸 간단히 포기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을 뿐이었다.

송회장이 못박았듯이 그걸 포기하는 건 바보 짓이다. 그러나 바보 짓을 안 하려니까 자신이 서서히 박제가 되어가고 있다는 게 확실하게 느껴지는 건 또 어떡하나. 살아있는 채로 생기는 야금야금 증발하고 꺼풀만 반듯하게 보존되는 과정이, 영묘가 느끼는 오늘이 어제와 다른 유일한 변화였다. 이 젊은 나이에 자신이 박제가 돼버리도록 내버려두는거야말로 정말 바보짓이 아닐까. 어떤 게 진짜 바보 짓인지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