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무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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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히 유명한 여류작가라고 하는데.. 얼마나 내가 이쪽분야에 무심했으면 처음 들어보는 이름일까...
암튼 그녀의 일상, 인생에 대한 독백, 고뇌를 담아놓았고, 편지에 대한 답장, 지난간 고인에 대한 그리움 등을 엮어 놓은 책이다.
그녀가 삶에 인생에 일에 대해서 생각하고, 고민하고, 번뇌하는 구절들을 읽으면서 가슴이 져며온다. 아.. 내가 막연하게 느끼고 있던것들을 이렇게 표현되는구나.. 그 고민이 바로 이것이였구나.. 하고.. 막연했던 나의 고뇌들이 그녀의 글로 표현되어 있었다. 방황하는 20대의 이야기와 소설을 쓰지못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바로 내 모습이 아닐가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멋지게 질문, 화두를 던져놓았지만... 야속하게도 그 답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아니.. 그녀도 답을 모르고 있을것이다... 아마 그게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이 아닐까싶다... 정답이 있다면.. 그 누군가가 벌써 알지 않았을까?
우리는 오늘도 그 질문속에서 헤메인다. 그리고 그 질문과 고민, 생각, 번뇌속에서 우리들 마음속에 무늬가 새겨지는것이 아닐까?

질문을 가지고 살면, 언젠가 그 답 속에 들어가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릴케

<도서 정보>제   목 : 내 마음의 무늬
저   자 : 오정희
출판사 : 황금부엉이
출판일 : 2006년 1월
책정보 : ISBN : 8990729815 | 페이지 : 246 | 430g
구매처 : 오디오북
구매일 :
일   독 : 2006/8/7
재   독 :
정   리 :

<이것만은 꼭>



<미디어 리뷰>
저자 : 오정희
1947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대학 2학년 때인 196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완구점 여인>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1979년 <저녁의 게임>으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이래 동인문학상, 동서문학상, 오영수문학상 등 주요 문학상을 수상하며 박완서 등과 더불어 한국 최고의 여성 소설가로 군림했다. 2003년에는 독일에서 번역 출간된 『새』로 독일의 주요 문학상 중 하나인 리베라투르상을 수상했는데, 이는 해외에서 한국인이 문학상을 받은 최초의 사례로서 한국문학의 해외 진출사에서 매우 의미 깊은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다.

1990년대 말 모 일간지에서 문학평론가 33인을 대상으로 ‘한국문학 50년 최고의 작품 50’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황순원, 이문열 등과 함께 가장 많은 3개의 작품(<유년의 뜰><동경><저녁의 게임>)이 선정될 만큼 그의 문학사적 위치는 독보적이다. 특히 그는 내면 지향적인 주제의식과 문체미학으로 신경숙, 전경린, 조경란, 하성란, 윤성희 등 수많은 후배 소설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지금도 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그의 글은 소설 미학의 전범을 따라 배울 수 있는 ‘교과서’ 그 자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창작집 『불의 강』『유년의 뜰』『바람의 넋』『불꽃놀이』, 장편소설 『새』, 동화 『송이야 문을 열면 아침이란다』 등이 있다.
『유년의 뜰』 등의 작품으로 한국 문학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 작가 오정희가 오랜만에 산문집을 펴냈다. 공지영, 최영미, 신경숙 등 수많은 후배 작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쳐온 그녀가 이제 자신의 문학인생을 돌아보며 '글쓰기의 행복'을 말한다.

이 책에는 소설가이자 한 남자의 아내, 두 아이의 엄마로 살아온 그녀의 치열한 삶이 오롯이 담겨 있다. 글쓰기만이 자신의 남루한 삶을 구원해주리라는 기대와 희망에 한껏 들떠 있었던 문학소녀 시절, 남편과 아이들 뒷바라지하느라 정신없으면서도 시간을 쪼개 창작에 매달렸던 삼십대 시절, 아이들이 성장함에 따라 다시 얻게 된 자유와 고독 사이에서 방황한 중년 이후의 삶을 섬세하고도 담백하게 풀어낸다. 아홉 살 때 고아가 되고 싶어서 가출했던 이야기, 커피보다 우유를 좋아하는 남자가 싫어 결혼을 포기했던 이야기, 밥 짓기 싫어 남몰래 눈물 흘렸던 이야기, 10년 가까이 절필 상태에 있었던 말 못할 속사정 등이 그녀의 치열했던 지난 날들을 느낄 수 있게 한다.


“한국 여성이 빚어낼 수 있는 가장 슬프면서도 가장 아름다운 언어의 비창”이라는 찬사 속에 박완서와 함께 한국 최고의 여성 소설가로 군림해온 오정희가 오랜 침묵을 깨고 펴낸 신작 산문집.

한국 현대소설사에서 ‘오정희’라는 이름 석 자가 갖는 의미는 아주 특별하다. 오정희는 내면 지향적 주제의식과 문체미학으로 신경숙, 전경린, 조경란, 하성란, 윤성희 등 수많은 후배 소설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쳐왔다. 신경숙은 자전적 소설인 『외딴방』에서 자신이 오정희로부터 많은 것을 빚지고 있음을 솔직히 털어놓은 바 있다. 공지영은 고등학생 시절 오정희를 만나기 위해 무작정 춘천행 버스를 탈 만큼 그의 열렬한 팬이었다. 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오정희는 반드시 거쳐야 할 통과의례이자, 넘어야 할 높은 고개였다.

그러나 그도 흘러가는 세월, 들어가는 나이의 무게를 어쩔 수 없었던 것일까. 언제부터인가 그는 깊은 침묵을 지켜왔다. 1998년 《작가세계》에 단편소설 <얼굴>을 발표한 이후, 6년 만인 2004년 《문학과사회》에 장편소설 <목련꽃 피는 날> 연재를 시작하며 기대를 모았지만, 2회 만에 중단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차츰 주위에서 그를 걱정하는 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스스로 ‘소설노동자’임을 자처해온 그로서는 당연하게도 그 와중에 극심한 내적 갈등과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내 마음의 무늬』는 작가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책이다. 그는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밝혔다. “이제 ‘즐거움’이나 ‘행복’이라는 단어를 덧붙이려 한다. 글쓰기의 즐거움! 글쓰기의 행복! 글쓰기의 황홀!” 즉 지난날의 문학과 삶을 총결산하는 회고록이자 제2의 문학인생을 시작하겠다는 재기 선언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책속으로>
1장_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이 드는 일 / 귀로 / 시간의 얼굴 / 봄이 오면 산에 들에

2장_ 봄내에서 보내는 편지
깃들면서, 길들여지지 않으면서 / 밤의 순례 / 어느 날의 저녁 풍경 / 낙엽을 태우며 / 부엌 이야기 / 커피 이야기

3장_ 바람과의 대화
<바람의 넋>의 은수 씨에게 / 필담 1 / 필담 2 / 필담 3 / 옛 시인을 기리며

4장_ 내게 글을 쓴다는 것은
소설 쓰기, 소설 짓기 / 나의 문학과 생활 / 내 안에 드리운 전쟁의 그림자 / 한국문학의 번역에 대해

5장_ 그리운 사람들
김동리 선생님 / 이문구 선생님 / 김병익 선생님 / 시는 말씀의 절 / 어린 날의 스승께


커피를 물 마시듯 하던 친구들이 이제는 전처럼 마셔대지를 못한다. 불면증이 무서워 오전 11시 이후에는 안 마신다느니 오후 3시까지는 괜찮다느니 하며 건강과 노화의 정도를 가늠한다. 이제 좋은 시절은 다 지나갔다고 씁쓸히 웃으면서 늙어가면서까지 그렇게 진하고 자극적인 맛을 좇는 것이 야만적이지 않은가, 이제는 미각도 생활도 마음도 좀 담백하고 은근하고 우아해져야 하는 게 아닌가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 말이 그럴싸하기도 하고 녹차나 홍차 등을 즐기는 사람들의, 차에 대한 예찬을 들을 때 그 즐김과 여유가 부러워 몇 차례 시도해보기도 했으나 아직껏 나는 커피보다 맛있는 기호품을, 매혹시키는 향기를 알지 못한다.
아침잠에서 깨어나 맨 처음 떠오르는 사람이 연인이고 맨 처음 하게 되는 생각이 진정한 욕망이고 문제라는 말들을 한다. 그 이론에 따른다면 몹시 배가 고플 때 당연히 밥이 절실해지는 것처럼 육신이 피곤하거나 정신이 산란할 때, 우울할 때 묘약처럼 그리워지는 것이 커피 향기와 그 뜨겁고 달고 쓴 맛인 나는 애호가를 넘어 커피중독자인 모양이다.---

그 책은 제가 작가로서 살아가는 삶에 대한 불투명한 환상을 벗겨주고, 인간에 대한 끈질긴 흥미와 탐구의 중요성, 사물의 이면을 바라보는 독특한 시각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편견과 감상을 배결할 것, 착실하게 인생을 보고 또 전체를 볼 것, 많이 쓰지 않으면 좋은 글을 쓸 수 없다는 것, 개인적인 입장에서 세계를 볼 줄 아는 개성, 모든 사람에게 공감을 줄 수 있는 보편성을 가져야 하며 무엇보다도 인간 존재라는 이 기괴한 사건에 깊이 참여할 것 등을 가르쳤습니다.

일본의 작가 소노 아야코는 “교도소에서 출소하는 날, 아무것도 묻지 않고 조용히 맞이하며 목욕을 하게 해주고 좋아하는 음식을 준비해주는 것, 그것이 부모이고 가정” 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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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자면 집은 우리가 등 뒤에 쳐놓은 배수진이고 적진에서의 퇴로이며 우리를 지켜주는 최후의 보루이다

집이란 어쩌면 떠남과 돌아옴, 안주하려는 욕망과 벗어나려고 하는 우리 내부의 욕망
이 팽팽히 길항하는, 원심력과 구심력의 물리적 표상인지도 모른다

궁리가 서지 않는다. 볼펜을 놓고 뚫어지게 바라보는 노트의, 희고 텅 빈 공간이 한없이 확장된다. 한자도 쓰지 못했는데 벌써 여덟 시를 지나 아홉 시가 다 되어간다. … 어느새 열시가 넘었다. 책상 위에는 여전히 텅 빈 백지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생각은 원점에서 조금도 진전되지 않는다.

일상의 덫은 그리도 튼튼하고 완강하여 어디에도 소설이라는 허구가 끼어들 자리는 없었지요. … 어렵게 어렵게 한단어, 한 문장씩을 써갈 때의 고독감과 충만한 존재감 또한 그와는 다른,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행복감입니다.

나는 현실과 이상의 괴리, 자신의 꿈과 불확실한 미래에의 불안과 힘겨운 싸움을 치르고 있는 20대 초반의 내 아이들을 보며 역시 다를 바 없었던 나의 20대를 뒤늦게 이해한다. 그들은 그 고통과 방황이, 어쩌면 권대까지도 생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사랑이고 열정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까. 하루하루를 생의 첫날이나 마지막 날처럼 새롭게 티열하게 살고 싶다는 열망과 높은 목쵸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내일을 담보로 한 유예일 뿐인 남루하고 권태로운 일상의 뒤풀이에 절망하며 방만하고 무위한 공상으로 날밤을 새우는 날들, 지혜와 지식을 구하는 마음에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하룻밤에 일생의 계획을 거창하게 세우지만 정작 하루의 계획은 실행하지 못 하고 창조적인 삶, 불꽃처럼 치열한 삶을 원하면서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젊음을 주체할 수 없는 한편 준비 없이 맞을 미래에의 두려움, 중요한 시기에 시간을 낭비하고 소모하고 있다는 초조감에 쫓긴다. 그 나이를 지난 사람들은 '희망과 가능성의 아름다운 푸르름'이라 의심 없이 말하지만 삶의 실체는 잡히지 않는 채로 안팎으로부터 점차 생활인, 사회인으로서의 책무, 존재 의미를 찾고자 하는 내적 요구에 시달리는 20대의 생과 사랑은 얼마나 외로운가.

마흔 살이란 앞만 보고 달려온 걸음 앞의 커다란 걸림돌이다. 설혹 잘못 들어선 길이라는 것을 깨달아도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 있다는 것, 인생의 성패는 이미 판가름 난 것이 아닌가라는 성급한 판단에 초조해지기도 하고 잘못 끼워진 첫 단추가 이제야 확연히 보이는가 하면 여념 없이 살아온 날들에의 반성과 검토, 게다가 한 인간으로서의 내가 무엇이며 어디에 서 있는가라는 실존적인 물음 앞에 피할 도리 없이 맞서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 앞에 복병처럼 기다리고 있는 질병과 외로움과 종내 어느 날엔가 틀림없이 맞게 될 죽음 - 낯익고 친근한 모든 것과의 이별 - 역시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40대가 되면 찾아올 거라고 기대했던 평화도 안도감도 앎도 없이 막다른 골목에 맞닥뜨린 듯 어리둥절하고 당황스럽다.

글쓰기란 결국 빤히 보이는 자기 한계, 재능 없음, 포기하고 싶은 유혹과의 싸움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한숨을 내쉬지만 그래도 이제야 아주 조금씩 소설 속으로 배밀이하여 들어가는 모양이 보인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지만 그래도 굼뜬 벌레들이 맨몸으로 땅을 기며 낸 흔적이 미미하게 남았다.

어느 민족이든 그 나라의 언어로만 표현되는 독특한 맛이 있고 어느 작가이든 자신의 모국어가 갖는 다양하고 풍부한 구사법, 섬헤함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한 민족의 언어는 그 민족의 토양과 정서와 전통과 의식의 산물이다. 그러기에 문학이란 바로 모국어에의 충실성이라는 극단적인 정의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언어는 흐르는 물과 같아 사회와 세태의 변천에 따라 변화하며 없어지거나 새로이 생겨나기도 한다. 따라서 생활과 정서와 풍습이 다르고 언어의 구조조차 다른 외국어로 옮길 때 태생적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때문에 반역자들은 번역은 반역 이라거나 시의 경우, 번역이 불가능하다는 말로 그 어려움을 토로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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