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iN'에 해당되는 글 2495건

  1. 체인지업 가계부 - 중간점검
  2. EBS 특별기획 - 칭기즈칸, 그는 누구인가
  3. 양복 짓는 남자, 정근호의 명동 부르스
  4. 랜스 암스트롱 자서전 요약발췌본.그에겐 자전거 이상의 그 무엇이 있습니다...
  5. 침대연구가 이경복의 성공스토리, 돌을 빚어 구름을 만들다
  6. 한계에 도전하는 스포츠맨 (ULTIMATE ATHLETE : PUSING THE LIMIT
  7. 프랜차이즈계의 신화 윤홍근 토종브랜드를 수출하다

체인지업 가계부 - 중간점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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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본 방송인데 아주 좋았다.
이런 방송이 몇개가 있기는 했었는데 다들 단명을 했는데, 이 프로는 꽤 오래하고 있는듯하다.
암튼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가정을 진단하고, 문제점을 해결해주기 보다는 어떻게 하면 해결될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방송...
이 세상을 합리화하면서... 오늘만.. 이번만 하면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상태가 지금 얼마나 안좋은지를 지적해주고, 바꾸도록 동기유발을 시켜주는듯하다.
중간점검으로 보여준 3집의 이야기...

한집은 엄청나게 먹는것에 돈을 소비하면서 낭비를 하고, 돈으로 살을 빼려고 마음만 먹는 가정의 이야기...
온가족이 마음을 바꾸고, 특히 아줌마가 개과천선을 한다. 먹는것을 싹 바꾸고, 소비고 줄이고, 운동을 시작해서 두달여만에 엄청나게 살을 빼고, 가계도 흑자로 돌려놓았다.

두번째는 꼭 내동생을 보는것 같았는데, 자칭 의리파라는 사람의 친구들과 유흥비로 엄청난 돈을 써대고, 뒷주머니를 차고 있지만, 부인은 나름대로 엄청나게 절약하고 사는등.. 참 언발런스한 가정의 이야기...
본인은 의리이고 우정이라고 생각하지만 맨날 똑같은 놈들과 똑같은 이야기로 희희덕거리는것이 무슨 의리인지... 암튼 본인도 반성을 하지만, 친구들도 그런것을 느끼고 새롭게 조금씩 변해가는 남편...

세번째는 강남에서 세탁소를 하면서 돈은 꽤벌지만 도박, 술, 유흥등에 엄청난 돈을 써대는 부부... 분명 많이 벌기는 한것같은데.. 남은 돈은 없고...-_-;;
기록의 중요성과 절약의 미덕을 깨우치고, 매상을 꼬박꼬박 기록하고, 세나가는돈을 체크를 하고 나서 새롭게 바뀐 가정을 보여준다.

예전에 나도 한참을 가계부를 썼었다. 통계를 내보면 어디에 얼마가 돈이 나갔고, 어디서 얼마가 들어온지를 잘 알수 있도록...
귀찮기도 하고, 허무한 마음에 그만두었는데... 다시 가계부를 써야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피터드러커의 말따라.. 어디에 사용되었는지를 알아야, 고칠수 있다라는 말을 다시 한번 절감한다.

마이너스 가계부를 플러스 가계부로~!!
엄청난 과소비와 마이너스 생활로 허덕이던 16명의 출연자들!
체인지 업 가계부 출연 후,
과연 그들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긴급점검!
체인지업 가계부 중간점검!

[체인지업! 가계부] 인터넷 투표를 실시한 결과
다시 보고 싶은 출연자로 뽑힌 3명의 기습점검에 나섰다~!!!

1위 - 1300만 원어치 먹고 1000만 원 들여 살도 못 빼고
체중 75.2kg, 체지방 28.5kg의 고도비만 춘화씨~


외식, 야식, 배달음식 포함 식비 110만원
각종 다이어트 용품 사는데 월 100만원 쓰던 그녀.
열흘간의 도전동안 식비 절반 이상 줄이고
체중 5.5kg, 체지방 3kg 감량에 성공했었는데..
과연 지금은 어떤 모습일런지?

쑥쑥 벗겨지는 청바지
날씬해진 냉장고
야식이 먹고 싶을 때마다 그 돈을 가계부 유리병에 차곡차곡 보관,
그 돈으로 4살 아들의 유치원 비용으로 썼다는데...

출연 2달 후,
과연 그녀의 가계부는 어떻게 체인지 업 됐을런지...
보너스로... 그녀는 몇 키로 더 감량에 성공했을지...
스타주치의 정다연씨와 남희석의 기습방문...
달라진 춘화씨를 만나보자!!

그 사람이 궁금하다~!!
2위 - 친구에게 월 100만원 쓰는 의리파 남편

모임이 많아야 남자다!
월 평균 모임 20회.
친구에게 한 달 평균 100만원 쓰던 도균씨~
출퇴근체크기로 귀가 시간도 앞당기고
친구도 집으로 초대해서 만나는 등
가정적인 남편으로 변해갔었는데...
과연 어떻게 달라졌을지?

여전히 작동되고 있는 도균씨네 출퇴근기
방송 후 한 달 동안 귀가 시간을 어긴 건 단 2번
도균씨를 봤다는 친구 찾기가 힘들 정도!!
열흘 도전비로 구입했던 가계부는 여전히 빽빽하기만 한데..
아내의 눈물까지 글썽이게 했던
가족의 첫 나들이 이야기까지
도균씨의 달라진 24시를 쫓아가보자~

그 사람이 궁금하다~!!
3위 - 5년 간 유흥비 2억 원 꼴찌아빠를 1등 가장으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바다이야기!
그 무지막지한 피해자였던 세탁소집 아버지!
5년간 지출한 술값만 8천 만원
술과 도박에 쓴 돈 2천 만원!
촬영 열흘간 성인오락실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4만 8천원의 마이너스 금액으로
유일하게 도전에 실패했던 현철씨!!!
과연 지금은 어떻게 바뀌었을지?

세탁소에는 여전히 아내만 있다?
신 고자질 토크를 통해 낱낱이 밝혀지는 사실들
싱글벙글 현철씨가 문지방 닳도록 드나드는 곳은 과연 어디??

9월 20일 저녁 7시 5분
이들의 달라진 가계부가 공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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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특별기획 - 칭기즈칸, 그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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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칭기즈칸

이름만 많이 들어본 칭기즈칸... 처음으로 그의 관한 다큐를 접했다.
대단한 사람임에는 틀림없다. 어렵게 자란 어린시절후에 점차 성장하여서 몽고를 하나로 통합하고, 중국을 필두로 고려, 러시아, 캄보디아, 중동, 유럽에까지 영토를 넓힌 지배자... 역사상 가장 큰 제국이였다고 하니...-_-;;;
물론 자신의 세대에서 모두 이룬것이 아니기는 하지만, 그가 키운 군대와 사람들로 이룬것이니 그의 역사라고 해도 될것이다.
칭기즈칸 리더십이라는 책들도 많이 보이던데, 배울점도 꽤많다... 남들처럼.. 남들이 하는데로 하지않고, 자신들의 장점을 이용하고, 더욱 발전시켰고, 적을 대할때는 최대한 잔인하게 밟아버렸다. 다시는 찍소리를 못하게... 배신을 하면 한나라를 멸망시킬정도였다고 하니...-_-;;
그리고 자신만 잘먹고 잘살려고 하는것이 아니라.. 자신과 함께하면 잘살게 만들어주니 세상에서 훌륭한 인재들이 모여드는것은 당연한 일인듯...
정확한 역사는 남아있지 않지만, 그의 자손중에 한명이 그가 사망한 직후에 작성한 글위주로 만든 역사라고 하는데, 업적을 칭찬하기 바쁘것이 아니라.. 어두운면까지 상세하게 잘보여주는듯하다.
과연 나에게 칭기즈칸처럼 살것인가?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살것인가? 네가 원한다면 그대로 해준다고 한다면... 과연 나는 어떤 삶을 선택하게될까?
칭기즈칸을 보면서 다시 한번 삶의 앞날을 바라보게 되고, 다짐을 해본다...
난 그저 그렇게 살다고 죽으려고 태어난것은 아니라고...
방송에서 나온 말처럼 열심히 치열하게 살아보다가 능력이 안되면 그대로 그렇게 죽으면 되는 일...


추석특집 특별기획 '칭기즈칸,그는 누구인가'(EBS 8일 오후 1시30분)=칭기즈칸에 대한 가장 객관적인 사료들을 바탕으로 그의 삶과 업적을 재조명할 시간을 마련했다. 잔인한 정복자,위대한 영웅,현명한 대 제국의 경영자로 다양하게 알려져 있는 칭기즈칸의 실체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줄 것이다. 사실 칭기즈칸의 생애를 알려주는 기록은 그리 많지 않다. 그 드문 기록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그의 양자 시키 쿠두쿠가 칭기즈칸의 죽음 직후에 쓴 '몽골비사'다. 칭기즈칸의 영웅적 면모와 생애의 어두운 면까지 엿볼 수 있는 이 책의 기록을 바탕으로 생생한 드라마 재연 방식을 통해 칭기즈칸의 삶에 접근해본다.
잔인한 정복자, 위대한 영웅, 현명한 대제국의 경영자 등으로 알려져 있는 칭기즈칸의 실체를 파헤친 다큐멘터리.

방송은 칭기즈칸의 양자 시키-쿠두쿠가 칭기즈칸의 죽음 직후 쓴 '몽골비사'를 바탕으로 드라마 재연 방식을 통해 칭기즈칸의 삶에 접근해 본다.

본명이 테무친인 칭기즈칸은 유명한 몽골 장군 예수게이의 아들로 태어났다. 오른손에 핏덩이를 쥐고 태어나 무당이 위대한 전사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는 말도 전해진다. 그러나 칭기즈칸의 가족은 부족에게 버림받고 테무친 역시 노예생활을 해야 했다.

하지만 테무친은 각고의 노력 끝에 몽골을 통일하고 최고 지휘관에 오른다. 그는 군대와 행정제도를 정비하고, 성문법을 공포했으며, 사방으로 영토를 확장하기 시작했다. 방송은 그의 위대한 업적을 따라가면서 대제국의 통치자로서 그가 느낀 여러 가지 고뇌들도 들춰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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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복 짓는 남자, 정근호의 명동 부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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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부유했지만 공부하기가 싫어서 양복집에 들어가서 일을 배우기 시작한 정근호씨...
단순히 기술을 배우기보다는 사업을 해보고 싶어서 많은 선배들을 만나면서 기술은 물론, 장사수완, 영업등에 대해서 배우게 된다. 20대에 처음으로 시작한 와이셔츠장사.. 3명의 직원으로 시작했는데 6개월만에 빌린돈을 전부 갚고, 처음에는 돈세는 재미에 정신이 없었는데, 나중에는 돈세는것도 지겨워서 못했을 정도라고... 그런 그가 양복까지 진출을 하게되고, 기성복의 등장으로 맞춤양장이 거의 사라져가자. 맞춤형 기성복이라는 틈새시장을 만들어서 28만원에 맞춤양복을 제공해서 성공을 거두고 있고, 지금도 발전해 나가고 있다.
맞춤형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나로서는 솔깃한 방송이였다. 막상 들어보니 커다란 노하우를 배우기는 힘들었지만 기술자가 기술로 승부하는것이 아니라.. 영업력으로 시장을 뚤고, 마당발로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는 사실에 짐직 놀라게 되고, 내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막상 나도 알고는 있지만.. 귀찮아서.. 힘들어서라는 핑계로 미루었던 일들을 그는 최우선으로 잡고 실행한것이다. 역시 사람은 자신이 아는 바로 그것을 바로 실행하는 사람이 성공하는것일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기술은 등한시하는것은 절대아니다. 기술은 당연히 기본으로 하고, 그후에 영업력을 발휘하고, 독특한 마케팅을 펼치는 것이다. 물론 회사가 갑자기 커지면서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지만, 시행착오없이 일사천리로 사업에 성공하는 사람이 어디있을까!

1. 내가 아는것, 내가 해야 되는것.. 바로 그것을 지금 해라!
2. 기술력도 중요하지만, 매출을 늘리는것은 영업이다!
3. 무엇이든지 한번에 성공하는것은 없다. 실패도 하고, 시행착오도 거쳐가면서 커가는것이다!
이외에도 배울점은 많지만 위의 것은 지금의 나로서 아주 절실한것들이다. 피하지 말고, 지금 당장 실천하고, 마음속 깊이 세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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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스 암스트롱 자서전 요약발췌본.그에겐 자전거 이상의 그 무엇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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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스 암스트롱(Lance Armstrongㆍ29)은 프랑스를 일주하는

유명한 국제 사이클 경기인 ‘뚜르 드 프랑스’에서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우승, 2연패를 거둔 미국 사이클 선수다.

미국 사이클링 매거진은 그의 승리를

"20세기 스포츠 역사상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라고 평했다.

불치의 암을 극복하고 우승하는 감동의 인생 드라마를 연출했기

때문이다. 그는 강인한 정신력과 각고의 노력으로 고환암, 폐암,

뇌암 등으로 이어지는 죽음의 고통을 극복하는 위대함을 보여준

것이다.


최근 국내에도 번역 출간된 그의 저서 ‘그대 향해 달려가리라’의 내용을 요약해서 싣는다.
 
자전거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릴 때면 대형 트럭이 지나가며 나를 진흙탕 속으로

내동댕이칩니다. 암도 내게 그렇게 찾아왔습니다. 나는 25세에 고환암에 걸렸고

그것 때문에 거의 죽을 뻔했습니다. 이후 나는 내가 어떻게 살아있는지 잘 모릅니다.
나는 강인한 체력을 지녔고, 직업상 긴 싸움과 극심한 장애를 헤쳐나가며

고통과 싸우는 법을 배웠습니다.

열심히 연습하는 것도 좋아하고, 열심히 경기하는 것도 좋아합니다.

그게 암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었지만 결정적인 요인은 아닙니다.

텍사스주 플레이노 출신인 나는 1996년 사이클 선수로서 고지에 도달했다고 느꼈습니다.

플래시 왈론느대회에서 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우승했고, 또 뚜르 드 뽕에서 우승,

리에지-바스또뉴-리에지에서 2등….

처음으로 세계 톱 파이브(top 5)에 돌입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바로 그때 고작 25세인 내게 고환암이 찾아왔습니다.
전국적으로 1년에 7000건밖에 생기지 않는 그 병에 걸렸던 것이죠.
두통, 기침을 하면 나오는 피, 목의 통증, 눕기만 하면 곯아떨어지는 등등….

나는 고통받았습니다.
죽음이 눈앞에 와 있었고 결혼도 물 건너갈 차례였습니다.

더욱 절망스러운 것은 경기를 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나의 세계, 나의 직업, 나 자신….
암은 나의 삶과 내가 누구인가 하는 정체성마저도 빼앗아 갈 것 같았습니다.

내가 암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습니다.

두려움이 엄습해 왔습니다. 운동선수들은 자신의 두려움을 함부로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는 마음이 약해졌습니다.

나의 암은 고환에서 폐까지 전이된 3기에 해당되었습니다.

아이를 낳지 못할 수도 있었습니다. 나는 정말이지 훌륭한 아빠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저장해둘 수 있는 나의 정자는 이미 필요한 양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정말 훌륭한 아빠가 되고 싶었는데”

하지만 내 인생의 출발점도 그리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17세에 나를 임신한 채 결혼했고, 내가 두 살 때 이혼했습니다.

나는 아버지의 존재를 모릅니다.

나의 이름은 양아버지 테리 암스트롱에게서 얻은 것입니다.

그는 나를 두들겨 패곤했는데 육체적으로 아픈 것은 잘 몰랐지만 마음만은 아팠습니다.

그러나 운동선수들은 어린 시절에 대해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경기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정적인 것을 긍적적인 기회로 삼아라.”

내가 좋아하는 어머니의 말씀이었습니다.
나를 끈기 있는 운동선수로 만들어준 것은 당황스러운 상황을 무시해 버리는 능력과

불평하지 않고 고통을 견디어 내는 능력이었습니다.

양아버지 테리 암스트롱의 매조차도. 암 진단을 받은 후 어머니와 나는 마치 사이클 경기를

위해 훈련할 때처럼 열심히 계획을 세워서 실천하면 될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어머니는 내가 결코 혼자 있지 않도록 ‘공동체 달력’을 만들었습니다.
나의 항암치료는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계속 움직여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했습니다.

산책도 하고 활보도 하면서 매일 아침 사이클을 탔지요.

암에 걸렸는데 왜 사이클을 타냐구요? 아주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정화시켜 주는 힘이 있습니다.

세상 걱정을 다 짊어진 듯한 심정으로 떠나지만 전속력으로 다섯시간 정도 달리고 나면

마음이 평화로워집니다. 모든 것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어머니는 내게 힘을 불러일으켜 주는 발전기와도 같았습니다.

학창 시절 비서 일을 하는 어머니는일을 마치고 나면 나를 헌신적으로 도와주었습니다.

그 덕분에 나는 얼마나 열심히 사이클 연습을 했는지 모릅니다.

교차로에서 차에 받쳐 뇌진탕을 일으킨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3종경기에 참가하기 위해 하루가 지난 후 병원에서 나왔습니다.

어머니는 그때도 찬성이었습니다. 결과는 3등이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내 목표는 이미 세계적인 선수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반

2학기였을 때 전미 사이클 연맹에서 주니어 미국 전국 팀과 함께 훈련을 하는 콜로라도

스프링스에 초대를 받았고, 1990년 세계청소년 챔피언십을 위해 모스크바에 가게 되기도

했습니다. 20세에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US 프로 챔피언십에서 나는 우승했습니다.
다음해에 나는 뚜르 드 프랑스의 스테이지에서도 21세로 최연소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꿈 같은 일이었죠. 그리고 노르웨이에서 열린 세계 챔피언십에서도 이겼습니다.
스물한 살 난 선수가 사이클 경기에서 세계적인 타이틀을 얻은 적은 없었습니다.

사이클은 인생에 대한 은유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긴 경기일 뿐 아니라 가장 즐겁고 가슴이 미어지는 체험과 비극이

담겨 있습니다. 추위와 더위 산과 평원 깊게 팬 자동차 바퀴 자국, 사이클 타이어 펑크,

세찬 바람, 극도의 악운,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 하품날 정도의 무감각,

그리고 깊은 자기 성찰…. 나는 암을 경기처럼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목적지만이 달라졌을 뿐 사람을 녹초로 만들고 시간에 의존하며 일정 시기마다 얼마나

진전되었는지알아보고, 숫자와 혈액검사에 매달리는 것 그리고 체크 포인트가 있다는 점이

사이클과 비슷했습니다.  다만 사이클보다 더 집중해야 한다는 것.

조바심을 내도 안되고 한눈을 팔아도 안 된다는 것.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매순간 거기에 집중해야 했습니다.
삶을 되찾는 것이 가장 큰 승리라는 생각을 하면 기운이 났습니다.

의료보험도 되지 않아 나는 이것저것 팔고 검소한 생활을 시작해야 했습니다.
암을 공부하는 학생이 되기 시작했죠. 환자는 그저 의사의 지시만 따르면 되는 것이 아니라

환자 역시 노력하는 것이 의사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슬프게도 암은 뇌에까지 전이돼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내가 살아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내 머리 속에 불청객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암과의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넌 사람을 잘못 골랐어.”

나는 고환암에 관한 책을 쓴 아인 혼 박사를 찾아 인디애나 대학병원으로 갔습니다.
그 병원에서 니콜스 박사와 샤피로 박사, 그리고 아인 혼 박사의 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내 생명이 달린 치료를 담당할 의사와 병원을 찾는 일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뇌 수술까지 받아야 했거든요. 뇌 수술이 있기 전날 밤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만일 죽게 된다면, 죽음에 맞서 싸울 것인지 평화롭게 받아들일 것인지.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해 물어보기 시작했습니다.

아쉬운 점은 있지만 나는 본질적으로 선한 사람이다.
그리고 암이 별거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훨씬 강합니다. 신념은 용감하고 영원한 인간의 특성입니다. 스스로를 믿고, 의사들을 믿고, 치료를 믿고, 내가 믿겠다고 선택한 것을 믿는 것도 중요합니다.
암에 걸리기 전에는 소름끼치는 세상의 부정에 대항하여 어떻게 매일 싸워야 하는지,

서서히 스며드는 냉소주의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두려움은 사람을 서서히 죽게 만들고, 냉소주의 그 자체이며, 영혼의 상실입니다.

6시간 동안 수술대에 누워 있어야 했던 뇌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나이키, 지로, 오클리로, 밀튼-브레들리…. 치료비를 지원해줄 회사도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계약을 끝낼 권리가 있었는데도 계약금을 모두 지불해 주었고,

내가 다시 사이클을 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묻지 않았습니다.


"내가 죽느냐, 암이 죽느냐"

항암치료는 내가 죽느냐 암이 죽느냐의 문제였습니다. 그것은 특별한 공포였습니다.
탈모, 창백한 안색, 황폐화같은 것들은 암의 증세가 아니라 치료에서 나오는 부작용입니다.
항암치료는 암만 죽이는 게 아니라 건강한 세포도 함께 죽입니다. 외로운 치료입니다.
항암치료는 살아 있는 죽음 같았습니다.

약물은 내 조직을 구석구석 태우고 내 몸에 얼룩까지 남겨 놓았습니다.

그러나 나의 항암치료 결과는 날로 좋아졌습니다. 내가 암과의 전쟁에서 이기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고 사이클 선수의 본능이 다시 생겨났습니다.

나는 암이 뒤쫓아오지 못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사이클을 타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건강한 혈액세포를 파괴해서 헤모글로빈 수치를 끌어내려 산소 공급이 원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천사같은 간호사 라트리스는 내가 다른 환자들과 대화를 나누도록 주선해 주었습니다.
처음에는 순전히 나 자신에 관한 것, 내 치료, 내 투여량, 내 문제점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졌는데 내가 점점 다른 사람들에게도 관심을 갖게 된 것입니다.

800만명의 미국인들이 온갖 형태의 암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회복기는 훨씬 힘이 들었습니다. 적어도 항암치료를 할 때는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기다리고 있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직도 사이클 선수라고 생각할 때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나의 병상을 지켜 주었던 연인 리사와도 헤어졌고, 진로에 대해서도 고민이었습니다.
대학에서 암 연구를 하거나 경제학 공부를 할까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때 매력 있는 여인, 나의 아내 크리스틴이 나타났습니다.
강인하고 독립적이고 민감하고 또 때가 묻지 않은 여자였습니다.
크리스틴은 눈썹도 없고 머리도 박박 민 나를 좋아했습니다.

우리는 함께 유럽으로 가서 투르 드 프랑스를 구경했고

사랑을 고백했죠.

마침내 나는 다시 경기를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1994년 9월 4일 나는 1998년 시즌에 사이클 경기로 복귀하겠다는

선언을 하러 인터팍 엑스포에 갔습니다.

기자회견을 열고 신문기자들과 사이클 전문가들을 방안 가득히 모아놓고 경기 계획을 알려주었지만 아무도 내게 계약을 제안하지 않았습니다.

크리스틴은 나의 청혼을 받았들였습니다.

크리스틴 어머니의 친구가 “어떻게 딸을 암 환자와 결혼시킬 수 있어?” 라고 했다고 합니다.
“나는 그럭저럭 70년 살기보다는 1년이라도 멋지게 살고 싶어요.
인생은 알 수 없는 거잖아요. 아무도 알 수 없어요.” 크리스틴의 생각이었죠.
나는 공식적으로 암 생존자가 되었습니다.


의사들은 병이 재발할 확률은 1%도 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제부터 어떻게 일상세계로 복귀할 것인가? 그것은 내가 암을 앓고 난 후 직면하게 된 문제였습니다. 마음 속 깊이에서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내가 다시 사이클을 시작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여기저기서 문을 두드려올 거라고 예상했지만 그런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18개월 만에 내가 참가한 경기는 5일간 스페인 전역을 통과하는 하이킹인 루타 델 솔이었습니다. 14등을 했는데 사람들은 놀랐지만 저는 괴로웠습니다. 2주일 후 힘든 구간 경기인 파리-니스 경기에 참가 19등. 이기는 데 익숙해 있던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어느날 나는 아내에게 은퇴 의사를 밝혔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침착했습니다.
직업도 버리고 프랑스에 이사를 오고 모든 것을 희생했는데 거의 하룻밤 사이에 다시 은퇴를 하자는데도 말입니다. 아내 덕분에 은퇴 선언을 미뤘지만 나는 룸펜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즐겁지가 않았습니다. 마음이 가볍지도 않았고 자유롭거나 행복하지도 않았습니다.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습니다. 나는 나답지 않게 행동하고 있었는데 암을 앓고 나서 생존자들이 느끼는 전형적인 태도였습니다.
신체가 회복되었다 해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신체와 더불어 영혼도 회복되어야 했습니다. 정말 나는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몰랐습니다. 뒹굴뒹굴 지내고 있었지요.

크리스틴과 친구들은 나 없는 데서 어떻게 하면 내가 선수생활을 다시 할 수 있을까 끊임없이 대화하며 방법을 모색했습니다. 은퇴를 하겠다는 내 마음도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1998년 5월 크리스틴과 샌터 바바라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나는 완전히 복귀했고 1998년 10월1일 내가 암선고를 받은 지 거의 2년이 되는 날 부엘타를 완주했습니다. 거기서 4위를 했는데 내가 한 경기 중 가장 중요한 성취였습니다.
그 경기는 너무나 힘들어서 반 이상의 선수들이 포기를 했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23일 동안 2348마일을 달리는 부엘타에서 4위를 한 것은 복귀 그 이상의 것을 의미했습니다.

 

경기 내내 괴롭혔던 마약 구설수

뚜르 드 프랑스는 이 세상에서 가장 긴 경기입니다.
고속도로 가드레일처럼 길게 이어지고 여름 짚단을 말리는 들판처럼 넓게 펼쳐집니다.
피레네 산맥의 얼음 덮인 봉우리에서 내려다보이는 세 나라의 전경만큼이나 길게 계속됩니다. 이제 나는 옛날처럼 무모하고 불안정한 선수가 아니었습니다.
기술과 방법 면에서 세련되었고 공격적인 면이 줄어들었습니다.
무언가 나를 심리적으로나 신체적으로 그리고 정서적으로 밀어대고 있었는데,

다름 아닌 뚜르 드 프랑스였습니다. 나는 거기에 내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쉴 때도 나는 혼자 훈련했습니다. 뚜르 드 프랑스에서 승리하는 것과 체외수정으로 어렵게 얻은 아이를 건강하게 낳는 것, 그 즈음 크리스틴과 나는 이 두 가지 목적만 마음에 품고 살았습니다.
크리스틴은 진지하게 헌신해 주었습니다.
아내가 지루해하거나 불만을 표시했다면 살아가기가 아주 힘들었을 겁니다.

뚜르 드 프랑스에서 내가 우승하리라고 점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내게는 단지 미국의 감동적인 암 생존자라는 각주만 붙어 있었습니다.
르 퓌 뒤 푸에서 열린 시작 경기에서 나는 승리했고 나는 미국 팀을 위해 미국산 사이클을 타고 뚜르 드 프랑스에서 선두로 달리는 최초의 미국 선수가 되었습니다.

“암스트롱에게 무언가 있을 거야”라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프랑스 언론이 마약 의혹을 나타낸 것입니다.

항암치료가 경주하는 데 득이 되었다고 말한 기자가 있었던 것입니다.

암 치료가 경기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1초라도 할 수가 있다니!

암 환자가 받는 치료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모르고 하는 소리였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달리고, 약물검사를 하고, 내 결백을 강조하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국제사이클연맹은 내 약물 검사가 사실상 깨끗하다고 발표했습니다.

경기조직위원장인 장 마리 르블랑은

“병을 이겨낸 암스트롱이 투어를 달린다는 자체가 상징이다.” 라고 했습니다.

파리에 들어가 샹젤리제 거리에 들어설 때 감정이 복받쳐 올랐습니다.

수십만명의 관중들이 거리에 둘러서 있었습니다. 마침내 결승선을 지났습니다.

내가 우승한 것입니다.

뚜르 드 프랑스에서의 승리와 암 극복 중에서 어떤 걸 선택하겠냐고 물으면 나는 암을 택할 것입니다. 암이 인간으로서, 남성으로서, 남편으로서, 아들로서, 그리고 아버지로서 나에게 해준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불가능은 없습니다. 당신은 살 확률이 90%라든지 50% 혹은 1%라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습니다. 싸워야 합니다.

암이 재발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여전히 싸우라고 할 겁니다.
 



랜스의 글중에....

랜스 암스트롱

99,00,01,02,03,04 Tour de France 우승자 - 사상초유의 6연패 달성자

#1.
암이 내 육신을 바꾸어 놓은 것은 아니다.
다만 내 정신을 바꿔놓았을 뿐이다.
암이란 진단을 받기 전의 나는 대단한 게으름뱅이였다.
100%의 노력을 다하지 않고도 상당한 액수의 월급을 받았다.
그것만으로도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나 자신에게 말했다.
내게 다시 한 번만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번에는 정말 올바르게 살겠다고.
그리고 나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이상의 어떤 것을 위해 열심히 일하겠다고.

#2.
죽음의 문턱까지 다가가 보면
주변의 모든 것들이 깨끗하게 정리가 되면서
그 다음에 찾아오는 것은 찬란하게 빛나는 깨달음이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을 실감하고 나면, 매일 아침
신선한 기분으로 깨어나 내게 특별한 또 하루의 기회가 주어졌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활기차고 목적 의식이 뚜렷한 하루하루를 이어가자고
다짐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누가 내게 오로지 사이클에만 매달려 장대비 속에서도 여섯 시간씩
높은 산을 오르내리는 이유가 뭐냐고 묻는다면, 그게 바로 내 대답이다.

#3.
누가 내게 묻는다면 인생이란 거짓된 한계의 연속이라고 말하고 싶다.
운동선수로서 내게 던져진 도전의 과제는
사이클을 타고 그 한계를 시험해 보는 것이었다.
병상에서 그 한계를 시험해보는 것은 한 자연인으로서의
내게 주어진 도전의 과제였다.
암은 누구도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도전 과제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나의 도전 과제였다.
내가 아는 것은 무엇이건 나로 하여금 높이 뛰어올라
그 장애물을 넘고 싶게 만든다는 것이다.

#4.
내가 삶을 살아가는 방식,세상을 보는 관점은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내가 하는 선택이다.
결정은 바로 내가 하는 것이다.

#5.
세상에는 자신감을 사거나 조작하려는 사람,
또는 그런 체하려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러나 자신감을 거짓으로 꾸며낼 수가 없다.
스스로 노력해서 얻어야 한다. 내게 그 방법을 묻는다면,
노력하는 방법 밖에 없다고 말하겠다.
자신감을 얻기 위해서는 온몸으로 노력해야 한다.
2003년 뚜르 드 프랑스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온몸을 부숴버릴 듯한 노력과 함께...

#6.
1999년 내가 뚜르 드 프랑스에서 우승할 수 있었던 것은
전혀 미스터리도 아니었고 기적의 약물 때문도 아니었다.
다른 선수보다 치밀한 훈련과 테크닉의 힘이었고,
투병 경험과 그에 버금가는 희생의 대가였다.
내가 우승할 수 있었던 이유가 뭐나고 묻는다면, 그렇게 답할 수 밖에 없다.
누구든 큰 일을 이루겠다는 야망이 있다면,
강한 의지와 사소한 부분도 가볍게 여기지 않는 주의력이 필요하다.
세상에서 큰 일을 이룬 위인들을 쭉 살펴보라.
어떤 이들은 카리스마가 있었고, 어떤 이들은 없다.
어떤 이들은 키가 크지만 어떤 이들은 작다.
어떤 이들은 뚱뚱하지만 어떤 이들은 호리호리하다.

그러나 그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징은
어떤 어떤 한 가지 일에 지속적으로 집중하는 집중력이다.
1999년 이후로 나는 오직 하나, 뚜르 드 프랑스에만 전념했다.
개인적은 도전의 의지이기도 했지만 우리 팀 전체를 위한 객관적인
목표이기도 했다. 레이스는 나 아닌 타인을 물리치는것이라기 보다는
나 자신을 경쟁의 상대로 삼는 일이다.

" 나는 점점 더 나와의 경쟁에 익숙해졌고 전보다, 작년보다,
지난달보다, 아니 어제보다 오늘이 더 나은 레이스를 하게 되었다.

#7.
고통이 주는 진짜 대가는 이런 것이다. 바로 자기 인식, 자각이다.
그러나 고통 앞에서 포기한다면 고통은 영원히 나를 떠나지 않는다.
아무리 작은 항복이라도 그 고통은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된다.
포기하고 싶을 땐 자신에게 먼저 물어보아야 한다.
고통과 평생함께 살고 싶은지 고통 아닌 다른 것과 함께 살고 싶은지





This is L'Alpe d'Huez.    알프듀에즈


Average gradient(평균경사도) 7.9%,

13 kilometres long(거리),

21 hairpins,

elevation(고도) 1860 metres


유명한 스키장 올라가는 길이라고 합니다. 뒷편에 스키활강장이 있다네요.


2004년 TdF 에선 (또) 암스트롱이 39.41 (23.44 km/h) 으로 기록으로 이긴 개인 산악 TT 코스였습니다. (율리히에 1분 01초차)


역대 최고기록은 37'35 - Marco Pantani, 1997.


이렇게나 가파르게 보이는데 경사도가 8도정도밖에 안된다는 데 놀라고  여길 평속 24의 속도로 올라간 암스트롱에 또한번 놀라고...

더빨랐던 사람이 산악왕이라 불렸던 판타니라는 사실에 좀 마음이 거시기해집니다(판티니는 요절했습니다).


 


뚜르드프랑스의 코스중 하나입니다. 2004tdf에서는  16번째 스테이지의 무대였습니다.
스위스하고 경계지역에 위치한 산이고 알프스산맥중 하나인걸로 알고 있습니다.



랜스암스트롱이나 얀 율리히 급의 도로사이클경기 선수들은 평지위주의 짧은 거리는 평소 50대 초반. 단체주행이라면 50대 중반, 200키로 정도의 도로에선 40대중반, 그리고
7도 정도 경사(미시령보다 높은 언덕)의 13키로 이상 긴 언덕을 20대초중반 스피드로 오르더군요


[ 남자 ] 2004. 7. 16 현재
종목
기록
선수명 소속 수립일 대회명 장소
1km 독주 1'03"895 지성환 대표팀 1999.06.06 제19회 아시아선수권 일 본
200m 스프린트 10"407 양희천 대표팀 2004.02.13 트랙월드컵 1차전 러시아
4km 개인추발 4'37"799 장선재 서울시청 2003.08.12 제23회 아시아선수권 창원
4km 단체추발 4'15"620 조호성 전대홍 장일남 최순영 대표팀 2001.07.08 제21회 아시아선수권 대 만
도로독주 45Km 54'47"77 최희동 강원도 1996.10.07 제77회 전국체육대회 춘 천



[ 여자 ] 2004. 7. 16 현재
종목
기록
선수명 소속 수립일 대회명 장소
1km 독주 1'15"256 김진영 동남은행 1989.07.02 제18회 회장기쟁탈전국사이클경기대회 서 울
200m 스프린트 11"413 류진아 주니어대표 2003. 8. 20 2003 세계주니어선수권 러시아
3km 개인추발 3'51"431 김용미 대표팀 2001.07.08 제21회 아시아선수권 대 만
3km 단체추발 3'38"058 임향준 최혜경 한송희 구성은 대표팀 2003. 8. 10 제23회 아시아선수권 창 원
500m 독주 36"262 김선이 대표팀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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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연구가 이경복의 성공스토리, 돌을 빚어 구름을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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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에는 일각연이 있어서 문방구, 슈퍼, 음식점 등 남들이 안되는 사업들도 잘이끌어가던 이경복씨... 남들과 다르게, 남들보다 더 부지런하게.. 머리와 몸을 같이 써가면서 승승장구하지만 막판 사업이 잘안되어서 집에서 놀다가... 스님이 치질때문에 돌을 전기장판과 같이 깔고 앉아있는것을 보고 연구를 해서 현재 우리나라 최초이자 최고의 제품을 가지고 있는 그의 성공스토리... 돌침대가 어느정도 인정을 받자, 유사상품이 계속 나오고.. 그와중에 전자파와 수맥파차단장치등 수많은 기능을 추가해가면서 독보적인 위치에 오른 그... 역시 성공이란것은 한큐, 한방에 이루는것이 아니다... 계속 지속적으로 꾸준히 발전해나가야 할것이다.
예전에 현대자바학원에서 프로젝트를 내준적이 있었다. 한좌표를 가지고 커서를 가지고 이동을 하고, 방해물이 있으면 움직이지 못하게 만드는 프로그램... 사람들은 죄다 어떻게 그걸 하냐고 어렵다고 투정을 부릴때.. 나는 printf로 우선 점을 하나 찍었다. 그리고 그 점을 좌우, 상하로 움직이게 하고, 방해물을 만들고, 그 방해물의 코드를 검사해서 못움직이게 막고.. 이렇게 하나씩 해나갔다. 아마 기한이 일주일정도였었는데, 대략 하루만에 거의 만들어서 강사와 사람들이 놀랐던적이 있었다. 내가 잘났다는 자랑이기도 하지만...:) 뭐든지 일을 이루어 나갈때는 하나씩 한발자국씩 나가는것이다. 한방, 한큐는 없다. 한발씩 빨리 움직이자. 지금이 비록 늦었다고 하더라도 한발자국씩 빨리 움직이면 언젠가 늦은 만큼 쫓아가서 내 자리를 반드시 찾고 말것이다.!
자! 그럼 이제 한발자국을 뛰어보자.. 성큼.. 빨리..



돌침대 사업가, 수맥 전문가로 성공한 이경복 사장. 내로라하는 직장을 그만두고 고달픈 사업가의 길을 걸었다. 잇단 사업 실패로 도망자 신세가 되기도 했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은 그의 눈에 어느 날 문득 돌침대가 들어왔다. 우여곡절 끝에 작은 성공을 거뒀지만, 또다시 커다란 시련이 닥쳐왔다. 그러나 이번엔 물러서지 않았다.


‘돈 찍는 일’에서 ‘돈 버는 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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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에 도전하는 스포츠맨 (ULTIMATE ATHLETE : PUSING THE LIM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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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 최고, 정상에 도전하는 스포츠맨들의 모습을 담은 멋진 다큐...
한때는 운동선수들을 보면서 나이를 먹고도 유니폼을 입게 저게 뭐하는 짓이야라는 생각을 가졌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한계, 정상에 도전하면서 자기 자신과 싸워가는 그들이야말로.. 진정 멋진 삶을 살고 있는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다이빙, 테니스, 육상, 싸이클, 하키 등등 다양한 분야의 종목의 치열한 모습을 보여주고, 겉보기와 달리 마냥 즐겁고 재미있는 그들의 삶이 아니라는것을 보여준다. 몇몇 유명한 선수들이 삶도 보여주지만 최고를 향해 도전해가는 신예들의 모습이 멋지고, 부럽고, 부끄럽다...
대략 2시간 분량의 다큐...


디스커버리: 한계에 도전하는 스포츠맨

다우리엔터테인먼트 | 2005년 9월 | 1만 1,900원

이 작품은 세계적으로 가장 공통적인 주제 중 하나인 스포츠에 대한 흥미로운 탐구를 통해 관객을 사로잡는다. <한계에 도전하는 스포츠맨>은 세계적인 운동 선수 하면 떠오르는 속도와 힘, 그리고 민첩성에 관해 조사하고 기술과 약물, 그리고 변화되어온 선수 사회의 깊은 영향력을 면밀히 관찰해본다

제약과 규칙이 많을수록 게임은 재미있어지는 법이다.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기록과 한계에 도전하는 선수들이 있기에 그들의 경기는 더욱 더 박진감과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마라톤과 100m달리기, 다이빙을 포함한 수영과 역도 등 인간의 극한에 도전하는 스포츠 미학은 찬탄과 경외를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한계에 도전하는 스포츠맨>은 그런 인간의 노력들을 보다 과학적이고 논리적으로 접근한 시선이 돋보이는 다큐멘터리다. 스피드와 파워, 민첩성과 인간 육체에 대한 미적 감각에 대해 탐구하고, 풍부한 예시와 인터뷰를 통해 스포츠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갖게 만든다.


경기를 정말 좋아해요
전 강하고
뭐든지 잘 해낼 수 있죠
이거야말로 제 천직이에요
최고를 위해서는 고난을 참을 수 있어야 해요
나와 상대방 사이의 전쟁과도 같은 거에요
진다고 포기해버리면 모든게 끝이에요
실수를 통해 교훈을 얻죠
스포츠 역사의 세계 최고로
영원히 남고 싶어요
그랜드슬램 달성은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죠


인간의 한계는 어디까지 일까요?
고통을 얼마나 참아낼 수 있을까요?
최고가 되고 싶다면 오로지 승리를 향해 모든 걸 걸고 달려야 해요
다른 건 신경 쓸 여유가 없어요


한계에 도전하는 스포츠맨


훈련은 아주 힘들어요
식당, 기숙사 훈련장만을 맴도는 생활이에요
그러다보면 지루해질 수 도 있죠
체력을 아껴야 하기 때문에 함부로 나가 돌아 다닐 수도 없어요
아주 힘든 생활이에요

선수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은 역시 정신력이에요
제가 데리고 있던 선수 중 성공한 선수들은 다 공통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어요
모두 똑똑하고 안정되고 노력하고 충고를 귀담아 듣는 선수들이죠
사람들은 딱 하나의 특성을 집어내 이게 바로 성공의 열쇠다 라고 말하고 싶어해요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각도에서 이 현상을 조사했어요
어떤 사람들은 케냐 선수들의 먹는 음식에 주목했고
또 다른 사람들은 생활습관에 주목했어요
고도가 원인이라는 사람도 있었죠
이런 뛰어난 운동 능력을 연구하고 싶다면
운동 경험의 야심, 동기 고통을 견디는 힘 또는 유사한 인간적 면에 영향을 끼치는 문화적 요소를 고려해야 해요
사람들은 선수들이 얼마나 힘들게 훈련하는지 잘 몰라요
누구나 선수들처럼 하루에도 두 세번씩 나가 힘들게 훈련하는 게 아니잖아요
어떤 사람들은 유전으로 모든게 결정된다고 믿죠
태어날때부터 이 선수들은 육상에 재능을 가졌다는 식으로요. 전 그렇게 생각 안해요
어떤 운동 결과에 대해서 이해하려면 특정 종목에 뛰어난 일정 그룹이 가진 문화적 배경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피부색이 운동과 어떤 생물학적 연관이 있을 거라고 믿을만한 근거는 전혀 없어요
스키만 봐도 스위스나 오스트리아 선수들이 대부분의 세계 대회를 휩쓰는데 사람들이 그걸 보고 역시 백인이라 스키를 잘 타는 구나 하고 생각하지는 않잖아요
하지만 케냐인이 예를 들어 육상 경기에서 재능을 보이면 사람들은 케냐 고유의 환경을 고려 하기 전에 벌써 인종적 특성에서 역시 흑인이 유전적으로 육상에 뛰어나다고 자동적으로 믿어 버리게 되는 걸요
이기는 법을 알아야 해요
맥 엔로도 그렇고 뛰어난 선수들이야 많지만
다 이기는 법을 아는 건 아니야
이제 모두 준비하자
정신력, 움직임, 태도,
모든 걸 살펴보죠


화려하고, 잽싼 아가시 바로 그 아가시가 있었죠
머리는 오렌지색에 빨간색에 난리였지만 한 번 경기를 시작하면
적당히 넘어가는 법없이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선수였어요
90%정도만 힘써도 '대충 이 경기는 이기겠지' 이런 계산이 전혀 없는
항상 최선을 다하는 타입의 선수였죠
아가시가 윔블던을 석권하고 했던 말은 절대 잊지 못할거에요
그는 "닉, 우리는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했어요"라고 말했어요
그가 그랜드슬램에 얼마나 많은 것을 쏟아 부었는지 알 수 있었죠
아무나 그랜드슬램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이제부터가 시작이에요


절대 부정적인 생각을 해선 안돼
만일
왜 이렇게 안되지?
볼이 너무 안 맞아
이런 말을 입 밖으로 내기라도 하면
경기에 바로 나쁜 영향을 끼치게 돼


강해져야 해 닉
또한 네가 강해지길 원하고
닉은 네가 싸우길 원하고 온 몸을 던지길 원해
온 정신을 오직 공과 상대방과
경기에 승리하겠다는 데만 집중하라고
좋아, 재미있게 가자고
좋아, 좋아!


경기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반칙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어요
겁먹은 상대방 선수를 제압해서  정신을 못차리게 만들어야 해요
위협하고 겁을 주는 것도 게임의 한 부분이고
상대방 선수를 무력화시키는 하나의 기술이죠
전쟁이나 마찬가지죠
상대팀과 우리가 맞붙는거에요

결정를 빨리 내려야 해요
어느 선수를 방어해야 할지 순간적으로 결정해야 해요
계속 해 매트, 생각하지 말고 그냥 계속 움직여


일단 선수가 최우선입니다
아무리 최고의 자전거를 가졌다고 해도
선수가 신체적이나 정신적으로
완전 무장이 되어 있지 않다면 결국 시간낭비인 거죠
좋은 선수가 되려면 적합한 체력적 조건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가능성이 없어요
즉 상대는 V-8 엔진을 장착했고 저에겐 4 실린더밖에 없다면
아주 간단하죠
저는 그걸로 끝난거에요

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인내와 탁월한 폐활량을 가져야 해요
그런 장점을 갖추지 못했다면 선수로서 어려움을 겪게 될거고
또 피로를 쉽게 이겨낼 수 있는 능력도 갖춰야 해요


우리는 이렇게 빠르고 강하고 적극적이고 자존심도 강한 선수들을 페라리라고 부르죠
경기에서 뭔가 보여줄 수 있는 선수라야 해요
경주는 고통스러울 수 밖에 없어요
하지만 막상 경주는 훈련과정만큼 고통스럽지는 않고
훈련하면서 그만큼 고생했다면
오히려 경주 자체는 쉽게 즐길수도 있죠
고통은 경기의 한 부분이에요
선수는 이 고통을 자신의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 들이고 발전해 나가는 방법을 배워야만 해요


무엇보다도 승리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해요
최고의 기량을 갖췄느냐 아니냐는 사실 중요한 게 아니에요
결국 이런 성과를 일구어낸건 선수가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경기에 나가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죠


팀 경기나 개인 경기나 결국 경기의 승패는 선수의 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잠재의식 속에서는 현실과 상상을 구별할 수 없죠
자기최면이라고 할까요
하루에도 몇번씩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어요
그리고 나서 이 운동일기를 썼어요
이제 나는 세계 최고의 선수고 동경에서 우승할 수 있다라고 확신에 차서 썼지요
다만 그의 최고 기록에서 무려 2분을 단축해야한다는 문제가 있었을 뿐입니다
2분을 어떻게 단축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간단한 것부터 시작했어요

걱정하고 있어 버티기만 하면 이길 수 있을거야하고 생각했어요

마지막 바퀴를 돌 때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어요
실제로 맥이 뛰고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렸어요
짜릿한 느낌이 팔을 타고 흘렀어요
시야는 좁아졌다 넓어졌다 했지만
머리 속은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나는 이길 수 있어
이길 수 있어하는 생각 뿐이었어요
결승선의 테이프가 보였어요
30야드를 남겨 놓고도 여전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저는 여전히 3위에 머물러 있었죠

빌 밀스!
놀랍기 그지 없습니다
미국의 빌 밀스가
천미터 경주에서 우승합니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4년동안 원하는 것을 생각하면 이길 수 있습니다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세계 최고라는 느낌을 받는 겁니다


대표팀을 목표로 삼았어요
집에 가는 길에 국가대표팀 본부가 있었는데
베이징 팀에서 훈련을 하고 돌아 가는 길에
매일 본부 문을 바라보며 페이에게 "언제 저기 들어 갈 수 있을까?" 라고 묻곤 했죠
잊을 수 없는 추억이에요


체조선수는 순발력, 균형성, 근력뿐 아니라
강한 의지와 성실성도 필요하죠
하지만 이 학생들은 사실 성인의 이성을 아직 갖지 못했지만 성인처럼 생각해야만 하는 아주 어린 선수들이라는 걸 잊지 마세요
학생들에게는 정말 힘든 생활이에요
체조 챔피언이 되려면 먼저 강한 의지가 있어야 해요
강한 의지와 성격이 꼭 필요하죠
또 훈련이 아주 힘들기 때문에 보통 학생들보다
훨씬 힘들게 지낼 것을 각오해야만 해요
체조 산업에서 어린 선수들이 겪는 스트레스와
살인적인 훈련은 아동학대와 다름없다고 생각해요
훈련을 얼마나 견뎌내야 하는 걸까요?
정상적인 사람이 견뎌낼 수 있는 한계는 어디까지 일까요?


"성취를 먼저 보고 고난을 나중에 가질 수는 없나요?"라고 물었어요
그래서 제가 "너는 노력없이 목에 두를 수 있니?"라고 그랬어요
오랜 시간 지나 이해했을 거예요
이제 제가 "성취를 먼저 보고 고난을 나중에 가질 수는 없나요?"라고 물으면
그녀는 그냥 웃어요


사랑과 간섭의 경계선은 사실 불투명하죠
부모가 운동에 관련되면 보통 좋은 점보다 부정적인 면이 더 많다고 생각해요
물론 대부분의 경우 부모들은 자식을 진정으로 아끼지만
중독처럼 자식 일에 빠져드는 경우도 있어요


거대한 국제적 규모의 기업이 어린 선수들과 계약할 때 신경쓰는 건 단 한가지죠
과연 수익이 창출될 것인가 하는 문제요
기업은 수익과 연관되지 않은 다른 스포츠 문제에 신경쓰지 않고 또 어린 선수들의 전체적인 성장에도 별 관심이 없습니다


열한 살짜리가 "바비인형 따위와 노는 건 내 인생이 아니야,
내 인생의 전부는 테니스야"하는 굳은 의지를 보인다는 건 정말 놀라운 일이에요


일단 사업이 끼어들면 운동의 목적이
인기와 수익으로 변하게 되고 결국 모든 것이 변하게 되요
단순히 즐거워서 운동을 하는 게 아니라
액션, 드라마, 위험이 훨씬 더 강조되게 되죠
상대팀의 성향을 파악해서 대비해야 해요
상대방을 잘 알수록 약점을 찾아내기 쉽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을 파악하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의 강점을 찾아내고 약점을 어떻게 방어할 것인가도 철저히 분석해야해요
어떤 면에서는 전쟁 전술과도 비슷하죠


그게 세상의 끝은 아니잖아요
함께 땀 흘리고 함께 일하고 원칙대로 움직이다 보면 다시 우리가 원하던 승리를 손에 넣을 수 있어
바로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시작하는 거야 알겠지!
가자!


사람들은 항상 운동은 95 %의 정신력이고 5% 만 체력에서 나온다고 하는데 웃기는 소리죠
전 한 번도 그런 소릴 믿은 적이 없어요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얘기에요
95%의 정신력을 가졌지만
속도가 느리면 결국 지는 거에요


저는 모든 경기에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아주 정확히 알고 나가요
그래야 부담을 느끼지 않죠 많은 선수들은 막연히 '시작이 좋았으면 좋겠다' 라고 말하면서 출발선에 서는데
저는 '자, 내가 이러 이러한 점들을 지키면 당연히 잘 되겠지'하고  생각하면서 출발하죠
이런 식으로 집중해야 해요
누구라도 스타트할 때 더 빠르게 나오게 만들 수는 있지만
그렇게 하면 최고 속력에 너무 빨리 도달해서
유지가 안되기 때문에 결국 뒤처지게 되요
몸에 힘을 빼, 억지로 하지 마
항상 자연스럽게 움직여
억지로 힘을 주면 속도가 떨어져
온 정신을 집중해서 한꺼번에 폭발하는 거야
몸 전체가 하나가 되어 움직여야 해


우리는 아직도 선수에게 "이게 정확한 폼이야"하고 강요하기 보다는 자연스럽게 놔두는 편을 좋아해요
저는 선수 스타일을 바꾸는데 많이 치중하지 않아요
자기가 편한 데로 달리는 게 좋아요
자신이 몇 년 동안 자연스럽게 계발한 달리기 스타일이 있는 법이니까요
대부분의 코치는 쟈니가 달리는 모습이 잘못됐다고 지적할 겁니다
하지만 그를 제칠만한 선수는 아무도 없어요


저는 제 선수들과 아주 친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어요
시즌이 시작할 때 프로그램을 짜서 이게 훈련일정이다하고 던져주는 건 제 스타일이 아니에요
시즌이 끝나고 다음 시즌이 시작하기 전에 선수들이 훈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충분히 상의하죠
어떤 면에서는 그들 스스로가 코치가 되는 거죠
일단 학교나 제 프로그램을 졸업한 후에도 운동을 계속해야하니까요
자율적으로 훈련할 줄 알아야 합니다


만일 우승하지 못했다면 또 무슨 상관이겠어요
우리 선수들은 이렇게 실패를 위로해 줄 안식처와 기쁨을 함께 나눌 친구들을 모두 가지고 있어요
우리 선수들은 자부심이 가득해요
왜냐하면 약물 없이 이런 놀라운 기록을 세웠고 앞으로도 건강한 삶을 꾸릴것이고
먼 훗날 자식들이나 누구라도 함께 앉아 옛 얘기를 할 때
상대방의 눈을 당당하게 바라보며  '저게 바로 나야'하고 말할 수 있으니까요
물론 내 딸의 최종 목표는 금메달리스트가 되는 거죠


산을 오르는 유일한 방법은 위로 올라가는 것이라는 표현이 있죠
위로 올라가지 않으면 미끄러지기 마련이죠
내 딸이 미끄러지는 걸 보고 싶지는 않아요


저는 90세가 되도 테니스를 할 거에요
라켓을 잡을 힘만 있다면 언제까지라도 계속 할거에요
큰 경기던 작은 경기던 모든 경기에서 우승하고 싶어요
모니크는 세계 최고로 등극하는 것 뿐 아니라 테니스 역사에 영원히 기억되는 존재가 되고 싶어해요
그렇기 때문에 그녀가 어떤 부담도 느끼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세상엔 많은 희생들이 있지만 칼은 그런 희생을 이겨냈습니다
그의 인생에는 단 하나 달리기뿐이었어요
최고가 되고 싶다면 오로지 승리를 향해 모든 걸 걸고 달려야 해요
선수들은 보통 최고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운동을 하죠
그들은 팬들의 함성과 선수로서 누리는 명성을 원해요
선수라면 최고가 되려는 욕망을 가져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사람과 다를 바가 없죠


전사는 겸손한 자세로 다른 모든 생명체를 존중하고 작디 작은 풀잎 하나보다도 더 나을 것이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 해요
하지만 한번 겸손의 균형을 찾으면 최상을 추구하는 감각을 결코 잊어 버리지 않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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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계의 신화 윤홍근 토종브랜드를 수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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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원에 입사해서 승승장구하다며 죽어가는 회사에 영업부장으로 들어가서 회사를 살려놓고 새로운 사업아이템을 내놓았으나 대기업인 미원에서 프렌차이즈닭집을 하기는 힘들어서 미원의 협력회사로 창업한 제너시스로 BBQ를 일류브랜드로 만들고, 이제는 외국에 브랜드까지 수출을 하며 맥도날드를 누르고 이쪽 분야에서 1위를 하겠다는 그...
그의 사업방식을 보면서 부끄러워 질뿐이다. 직장인 시절부터 엄청나게 노력을 해오며 올인을 하는 스타일.. 이런 사람이 사장을 하면서 얼마나 더 열심히 일을 했을까... 거기에다가 회사의 역량은 모두 영업에서 나온다는 마인드에서 발로 뛰고, 지원해주며 지금의 회사를 일구었다. 초기설립시 가맹점미흡, IMF 등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위기를 위기로 보지않고, 그 속에서 기회를 찾아내서 그 기회를 살려내는 그... 조류독감파동속에서도 죽는 소리보다는 돌파구를 찾아내는 마인드... 배울점이 한둘이 아닌 대단한 마인드를 가진 BBQ의 윤홍근 사장.. 성공하는 사람은 역시다라는 말이 나온다...
세상은 창의력을 가진 사람들이 만들어 낸 창조물과 의지력을 가진 경영자에 의해서 돌아간다는 엄길청씨의 말이 실감난다.
무엇보다 강한 의지를 가지고, 나의 일에 올인을 한다는 각오로 특히 영업부분에 신경을 최대한으로 써야 나도 살아날수 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1995년 9월1일 설립된 (주)제너시스는 "그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나중은 창대하리라"라는 성경의 한 구절처럼 설립 5년만에 국내 최고의 프랜차이즈 회사로 자리매김 하였다. 그리고 그 뒤에는 (주)제너시스 임직원들의 피땀과 윤홍근 대표이사의 성실함과 정직함이 물씬 배어 있다.


   현재 1300여개의 B.B.Q 점포를 운영하고 있는 (주)제너시스는 골리앗 같은 외국업체들이 독점하고 있는 국내 치킨 시장에 토종 브랜드를 가지고 당당히 맞선 다윗과도 같은 존재. 그리고 이를 위해 (주)제너시스는 외식업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맛을 차별화해 한국인의 입맛에 맞도록 닭고기의 맛을 설계하였고 순수 국내산 닭고기만을 사용하는 등 고급화된 원재료로 외국업체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인 결과 해외 대형 브랜드를 물리치고 국내 최고의 업체로 성장할 수 있게 되었다.



성공전략

   그러나 (주)제너시스의 성공전략은 닭고기 맛의 토착화와 고급 원재료의 적용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 기업의 성공은 그 기업의 조직원들과 오너인 경영자의 인식이 하나로 결집될 때 가능하다. 일심동체라는 말처럼 조직원과 경영자의 조화로움이 최적의 성공조건을 조성하며, 성공가도를 달릴 수 있는 추진력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점을 (주)제너시스는 완벽히 갖추고 있다. 즉, 윤홍근 대표이사의 "가맹점이 살아야 본사가 산다"는 경영이념과 '더불어 잘살자'는 경영철학을 윤 대표는 물론 임직원들 모두 몸소 실천하는 일체감을 가지고 있으며, 이런 일체감이 가맹점 사장들은 물론 소비자들에게 널리 확산되면서 최단시간내에 1300여개의 가맹점을 운영할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윤홍근 대표의 경영이념은 그가 회장으로 있는 한국 프랜차이즈협회를 통해 프랜차이즈 업계의 새로운 성공 패러다임으로 정립되었다.

임직원과 일심동체

   "남다른 것이 있어야 성공한다"는 말이 있다. 이러한 점에서 (주)제너시스의 B.B.Q 성공전략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며, 프랜차이즈 업계 성공의 모범사례라 평가할 수 있을 정도로 독특한 차별화 전략이 눈길을 끈다.

   우선 (주)제너시스는 다른 치킨점과의 차별성을 두기 위해 청결과 위생을 철저하게 챙기고 대형 해외 브랜드와 같은 서비스와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그리고 아무리 맛있고 뛰어난 서비스를 갖추고 있어도 소비자가 원하는 곳에 있어야 하기 때문에 대로변 상권보다는 동네 골목상권을 주타깃으로 설정, 주택가 주변에 점포가 위치하도록 하였다.

경영지도

   이와 함께 가맹점 경영지도요원 50여명을 통해 전국의 점포에서 통일된 맛을 낼 수 있도록 지속적인 점검과 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작은 정성이 고객을 만족시킨다'는 전략하에 초등학교 근처에 있는 점포의 경우에는 비가 오는 날 가맹점 사장이 초등학생들에게 우산을 씌워주게 하는 등 별도의 단골 고객화 전략을 진행하도록 하였다.

   바로 이러한 (주)제너시스만의 독특한 차별화 전략과 판매전략, 영업전략이 하나로 뭉쳐 B.B.Q 성공신화를 창조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국내에서 자체 개발한 치킨요리의 품질을 유지,관리하기 위해 설립된 '치킨대학' 역시 국내는 물론 세계시장 진출을 위한 차별화 전략의 일환이며, 전진기지라 할 수 있다.



BBQ 등 외식 브랜드 8개, 가맹점 총 2800여개, 매출액 5600억원(2005년 기준)을 자랑하는 국내 최대 프랜차이즈기업인 제너시스 윤홍근 회장(51) 집무실에 걸려 있는 서예 휘호다.

“창업 11년의 제너시스를 오는 2020년까지 국내외 5만개 가맹점을 가진 세계 1위 외식 프랜차이즈기업으로 만들어 천년 지속가능한 경영을 펼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특유의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천년기업의 뜻을 설명한 윤회장은 “천년경영은 고객 만족이 있어야 가능하기에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절대 안주하지 말라’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 문정동 제너시스 본사 7층 회장실엔 세계 각국의 닭 관련 인형, 공예품, 그림들이 즐비하다. 윤회장을 비롯해 임직원들이 해외 출장을 다녀올 때마다 사온 기념품들이다. 치킨 메뉴를 기반으로 급성장한 제너시스의 정체성과 위상을 상징적으로 대변해 주고 있다. 동시에 치킨에 대한 윤회장의 강한 애착심을 한 눈에 느끼게 해준다.

“올해는 또다른 치킨 브랜드 BHC를 ‘제2의 BBQ’로 키워 BBQ에 이은 업계 2위 브랜드로 안착시켜 놓겠다.”

윤회장은 BHC 사업에 전력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가장 먼저 밝혔다. 지난 2004년 BBQ 가맹점들을 설득해 맥주전문점 Q’s와 함께 인수한 BHC를 현재 650여개점에서 올 연말까지 1000개점으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BBQ 가맹점은 1800개로 이미 포화상태다. 아직도 매월 300명가량이 신규 가맹을 요청해 오고 있지만 BHC로 할 것을 권유한다.”

윤회장의 의지를 반영하듯 현재 BHC는 매월 30∼35개점씩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다.

BHC에 이어 제너시스가 심혈을 기울이는 브랜드는 참숯닭불구이 브랜드 ‘닭익는 마을’.

“올해부터 닭익는 마을의 규모와 내용을 업그레이드한다. 중소형 위주의 매장을 50∼80평의 대형점으로 전환하고 맛도 세계인이 즐길 수 있도록 향상시키겠다.” 한국식 닭요리를 글로벌 메뉴로 키우겠다는 포부다.
BBQ, BHC, 닭익는마을 등 치킨 브랜드를 앞세워 국내외 육고기 시장을 닭고기로 석권하고 ‘천년기업’을 실현하겠다는 윤회장의 열망이 짙게 배어있다.

윤회장은 업계에서 강력한 리더십과 공격적인 승부욕을 가진 최고경영자(CEO)로 평가받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치킨’(Best Believable Quality)이란 뜻의 BBQ를 창업 4년 만에 가맹점 1000개로 늘려놨다. 지난 98년 외환위기, 2003년 이후 조류인플루엔자(AI) 위기 때는 전국을 발로 뛰며 가맹점의 동요와 이탈을 잠재웠다. 지난해 안팎의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튀김용 기름을 올리브유로 교체를 강행한 것도 오직 고객만을 바라본다는 윤회장의 일념을 단적으로 드러낸 사례로 결과는 윤회장의 결단이 옳았음을 입증했다.

이같은 경영 스타일은 ‘가맹점이 살야야 본사가 산다’, ‘고객이 원하시면 무조건 하겠습니다’는 제너시스의 2대 경영이념에 대한 CEO로서의 사명의식에서 나온 것이다.

윤회장은 그룹의 비전을 언급할 때마다 세계 1위 외식 프랜차이즈 그룹인 맥도널드와 비교한다.

“한국기업인으로서 가장 자존심 상했던 게 우리 업종에서 세계 1위 기업이 없다는 사실”이라고 밝힌 그는 “BBQ의 성장속도는 맥도널드의 2배 이상이다.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강조한다.

BBQ는 2003년 중국, 2005년 스페인에 진출한 데 이어 현재 일본, 사우디아라비아와도 본계약을 체결하고 시장 진입을 앞두고 있다.

“현재 전세계 27개국에서 BBQ의 브랜드와 경영시스템을 도입하고 싶다는 마스터프랜차이즈 사업 요청이 오고 있다. 올해 10여개국을 포함해 내년까지 25∼30개국에 진출할 것으로 기대한다.”

윤회장은 오는 2020년까지 가맹점 5만개가 달성될 경우 제너시스 총매출이 60조원, 연간 해외 로열티 수입은 2조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본다.

제너시스는 현재 BBQ, BHC, 닭익는마을 등 치킨 브랜드 외에도 유나인(u9·우동돈가스), 아찌(스시), 큐즈(Q’s·맥주), 찹스(chops·한식), 구슬김밥 등 전문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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