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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전 질량을 삶에 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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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센터에서 주차 일을 하면서 지내다 마지막으로 스스로 물어보았지요. 여태까지 진정으로 노력하면서 살아왔는가? 죽을 힘을 다해 산거는 아닌 것 같았어요. 앞으로 얼마나 살지 모르겠는데, 돈에 연연하지 않고 평소에 꿈꾸었던 삶을 딱 3년만 죽을 각오로 살아보자, 이렇게 작심한 거지요. 그래서 태평소를 배웠어요. 시켜만 주면 열심히 하겠다고 부탁해 친구 사물놀이패에 들어가 정말 죽을 둥 살 둥 열심히 했어요. 그렇게 살다 보니 어디선가 감춰져 있던 노래가 터져 나오는 겁니다. 어느 날 골목길에 장미가 피어있는데, 그 화려한 장미에게서가 아니라 장미 밑에 감춰진 하얀 찔레꽃에서 향기가 퍼져 나옵디다. 그 향기에 울어버렸어요. 아, 이게 나구나, 늘 세상의 주변에서 쭈뼛쭈뼛 눈치나 보면서 사는 가련한 사람들이 저 찔레꽃이구나, 그들이 세상에 향기를 주는 구나…”

- 소리꾼 장 사익, 2007. 5. 24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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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심에는 작은 결심이 있고 큰 결심이 있습니다. 작은 결심은 자신의 에너지의 일부를 걸고 삶의 일부를 개선하겠다는 다짐입니다. 부분적인 헌신입니다. 예를 들면, ‘체중을 5kg 줄이겠어.’ ‘담배를 끊겠어.’ ‘일주일에 한권씩 책을 보겠어.’와 같은 결심을 말합니다. 그에 비해 큰 결심은 에너지의 전부를 걸고 삶의 전체(구조)를 바꾸겠다는 다짐입니다. 최선의 삶을 살겠다는 전적인 헌신을 의미합니다.
흔히 큰 결심이 동반되지 않은 작은 결심은 지속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하나의 시도’에 그치고 마는 경우가 많습니다. 많은 알코올 중독환자들의 회복과정을 보면서 제가 깨달은 교훈 중의 하나는 ‘술을 끊겠다.’는 작은 결심으로는 단주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회복하는 사람들은 ‘최선의 삶을 살아가겠다.’는 큰 결심을 가지고 삶 전체를 바꾸겠다는 사람들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오프라 윈프리 역시 권투선수 타이슨보다 더 나가는 체중 때문에 고민에 빠져 온갖 다이어트프로그램에 매달려왔습니다. 하지만 번번이 실패하면서 좌절에 빠집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인생의 목표가 더 이상 다이어트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깨달았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토크쇼를 세계 최고의 것으로 만들겠다는 큰 결심을 하게 됨으로써 다이어트라는 작은 결심을 성공시킬 수 있었습니다.
개선이든 혁명이든 삶을 바꾸려면 큰 결심이 필요합니다. 큰 결심은 존재의 전 질량과 전 에너지를 필요로합니다. 큰 결심을 가질 때 비로소 우리는 작은 일에 안달하지 않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의 한마디에 일희일비하는 소모적인 마음이 사라지게 됩니다. 삶은 단순화되고 자신에게 집중되어 정말 중요한 일에 관심과 에너지가 모이게 됩니다. 
당신은 존재의 전 질량을 삶에 실어본 적이 있습니까? 


- 2008. 6. 12 週 2회 '당신의 삶을 깨우는' 문요한의 Energy Plus [207호]-



소리꾼 장사익 

서울 신사동 카센터에서 주차관리하던 장사익은
딱 3년만 노래에 인생을 바치기로 작정하고
집을 나섰다. 마흔 다섯,
무엇인가 새로 시작하기에는 두렵고 난감한 나이였다.

그러나 3년만이라도 평생 그리워 해온 일을 하고 싶었다.
1993년 공주농악에서 새납(태평소)으로 장원한 사람,
사물 놀이패를 따라다니며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새납 불던 사람,
무대 한쪽에 서 있다가 수줍게 웃던 사람,
주연들의 공연 끝나고 뒤풀이 자리에서 한 곡 구슬프게 불던 사람,
그가 소리꾼 장사익이다.

◇ "내게 노래는 팔자고 운명이다"

지나온 세월은 고단하고 못마땅했다. 노래 없이 살 수 없었고
노래만으로 살 수도 없었다.
뿌리내릴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발길이 닿으면 가슴이 떠날 것을 재촉했고,

가슴이 닿는다 싶으면 회사가 문을 닫았다.
무역회사, 보험회사, 제지회사, 가구회사, 카센터….
30년 사회생활 동안 열 대여섯 곳을 떠돌았다.
노래말고는 재주도 기술도 없었다. 그는 어디서든 몸으로 때우는 일을 했다.
요령 없이 장롱을 나르다가 허리를 다쳐 고생도 했다.
3년 동안 카센터에서 그가 했던 일은 주차관리와 배터리 교환이었다.
노래…. 노래는 세상에 날 때부터 하고 싶었다. 충남 홍성군 광천의 농악대에서
장구 잘 치던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초`중학교 시절 5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뒷산에 올라가 고함을 질렀고
노을지는 강둑에 서서 태평소도 불었다.
당시 농악대에서 태평소 불던 김관섭 아저씨가 평생 마음의 우상이었다.
마음에는 언제나 노래가 있었고, 방 한구석에는 늘 기타가 있었다.
고교 졸업 후 직장생활 3년 동안 저녁마다 음악학원엘 다녔다.
군대시절엔 광주 문선대에서 싱어도 했다. 좋은 시절이었다.
기타 치며 노래하던 좋은 세월은 짧았다.
세상사에 민첩하지 못한 농부의 아들이었고, 음악은 밥벌이가 되지 않았다.
그는 자기 이상을 위해 처자의 호구를 외면할 위인은 못됐다.

노래와 생활 사이에서 장사익은 고통스러웠다.
생활인으로 그는 노래할 수 없었고, 노래할 수 없는 소리꾼으로 그는 슬펐다.
가슴에서는 언제나 어린 귀로 들었던 김관섭의 태평소 소리가 울렸다.
본격적으로 노래를 시작하기 전에 찍은 사진은
대부분 찡그리고 풀죽은 얼굴이다.
노래를 시작한 후 찍은 사진 속 얼굴은 언제나 웃고 있다.
장사익, 그도 몰랐던 표정의 변화였다.
"내게 노래는 엄마의 탯줄 같아요. 노래 없이 살 수 없었어요.
그렇다고 가수가 되겠다는 생각은 못했어요. 먹고살아야 했으니까."

◇ 공연 끝에 유행가를 부르는 이유

장사익의 공연을 본 사람들은 묻는다.
어째서 공연의 마지막은 늘 유행가냐고.
소리꾼 장사익은 이벤트 회사가 키운 '기획 스타'가 아니다.
공연의 조역으로, 공짜 혹은 매우 싼값에 불러 다녔다.
그저 따라 다닐 뿐 무대에 서지 못하는 날도 있었다.

그가 주인공인 무대는 언제나 뒤풀이 장이었다.
유명인들의 공연이 끝난 후,
출연진들의 노고를 격려하는 뒤풀이 자리가 장사익의 무대였다.
자기노래가 없었고, 유행가를 장사익 식으로 불렀다.
요즘도 공연마다 유행가를 부르는 것은 그랬던 시절을 기억하기 위해서다.

이유는 또 있다.
"내 노래의 가사는 모두 시에서 나왔어요. 내가 쓰지 않았을 뿐 인생철학이고
내밀한 일기인 셈이죠. 그래서 주관적입니다.
게다가 낯선 가사, 낯선 음, 낯선 방식이에요.
주관적으로 쓴 일기는 진지하고 어렵기까지 해요.
노래는 관객과 나 사이의 소통채널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너무 진진한 대화는 어렵고 지루하기 십상입니다.
대화에는 유머가 필요합니다.
마지막을 장식하는 유행가는 관객과 나 사이에 존재하는 유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노랫말을 찾기 위해 시집을 읽는다고 했다.
서점에서 시집을 읽거나 신문과 잡지에 나온 시도 찾아서 읽는다.
내 마음과 통하는 시를 만나면 노래로 바꾼다.
누군가 좋다고 추천한 시라고 노래로 만들지 않는다.
자기 마음과 통하지 않는 시는 노래로 만들지 않는다.
장사익의 노래는 독백이자 내면의 일기이기 때문이다.

◇ "직접 작곡, 그러나 악보는 안 써"

그는 마음에 닿은 시를 찾으면 열 번이고 백 번이고 흥얼거린다.
호흡에 따라, 또 불현듯 왔다가 사라지는 감정에 충실하며,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달이 뜨고 별이 질 때까지 읊조린다.
그 속에서 음은 자연스럽게 자라난다. 그래서 그의 노래는 무정형이다.
국악, 재즈, 가요풍, 재즈풍이 구별 없이 섞여 든다.
그래서 처음 들으면 황당하다.
그러나 곧 그것이 가장 자연스럽다는 것을 알게된다.
그의 노래, '섬' '국밥집에서' '허허바다'
'파도' '기침' 등을 들으면 확연해진다.
"시를 찾는 일이 노래 만드는 작업의 90%에요. 마음 통하는 시를 찾아
자꾸 읊조리는 동안 저절로 음이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장사익을 두고 '노래를 작곡하는 사람이 아니라
빚는 사람'이라고 혹자는 말한다.
음이 만들어지면 여러 사람들 앞에서 읊조린다.
누군가는 악보로 만들고, 또 누군가는 끼여들고 물러선다.
다양한 악기와 화음이 장사익의 노래 속으로 들어왔다가 나가기를 거듭한다.
그리고 비로소 노래가 탄생한다.
장사익의 노래에는 음 없이 '아니리'처럼 혹은 '
대사'처럼 읊조리는 부분이 종종 등장한다.

"내 노래는 흥얼거리는 동안 저절로 자라난 것입니다.
노래는 박자가 아니라 호흡이지요.
자연스럽게 자라나지 않는 부분에 억지로 음을 달지는 않습니다."
그는 봄이 와서 꽃이 피는 게 아니라,
봄비 내리고 꽃이 피니 봄이라고 했다.
가을이 와서 낙엽 지고 서리 내리는 게 아니라,
낙엽 지고 서리 내리니 가을이라고 했다.

계절도 노래도 자연스러운 호흡이라고 했다.
장사익은 거의 두 시간에 이르는 공연 동안 잠시도 쉬지 않는다.
저 작은 체구에서 어떻게 저런 힘이 솟아날까 싶을 만큼 쏟아낸다.
무대 위에서 그는 혼신을 쏟고, 공연히 끝나면 무너진다.
"기진맥진할 정도로 쏟아내야 개운해요. 있는 대로 다 쏟아내는 거지요."
그는 공연이 끝나면 며칠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쉰다고 했다.

◇ 초로의 나이에 소리꾼 데뷔

장사익은 올해 쉰 여덟이다.
서른만 넘어도 '늙은이' 취급받는 한국 연예계에
그는 마흔 여섯, 수염 희끗희끗한 얼굴로 데뷔했다.
이미 30년 가까운 세월 직장생활을 한 후였다.
장사익은 지금이 가장 노래하기 좋은 나이라고 했다.
40대에는 사십 먹은 남자의 노래를 했고,
50대에는 오십 먹은 남자의 노래를 했다.
60, 70이 넘으면 지팡이 짚고 그 노인의 노래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나이가 들어서도 배우기를 멈추지 않는다.
요즘은 혼자 붓글씨를 배우고 있다고 했다.
너무 늦은 나이는 없으며 언제든 출발선에 설 수 있다고 했다.
출발선에 선 자는 행복하다고 했다.
무대 위에서 장사익은 전부를 건다. 모두를 걸고,
최선을 다하면 그만이다. 관객이 한 명이든 1천 명이든 마찬가지이다.



"많을 때는 3천800명의 관객과 마주 서서 노래한 적이 있었어요.
내가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관객은 나와 소통하지 않아요.
한 사람이 듣고 만족하지 않으면 백 사람이 들어도 만족할 수 없어요."
그는 무대에서 최선을 다 하지 않거나, 진정성을 잃은 적은 한번도 없다고 했다.
무대뿐만 아니라 생활에서도 그런 듯 했다.

집안 청소를 하고, 손님을 맞고, 차상과 다과상을 내오고, 치우기까지 했다.
인터뷰 중 택배 배달원의 전화를 받자 맨발에 고무신 꿰차고 제비처럼 달려나갔다.
손에는 어느새 주스 한 병까지 챙겨 들었다.
"내가 재발라요. 일 빨리 해야 마누라한테 욕 안 먹어유."
그는 시종일관 끝이 모호한 충청도 사투리로 이야기했고,

걸려온 전화를 큰 목소리로 받았다.
"그래, 그리혀어, 알았어어, 전화 줘."

내놓은 다과를 남기지 말고 먹으라고 했다.
함께 점심을 먹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숟가락을 놓고 기다리는 동안 그는 남은 음식을 꾸역꾸역 먹었다.
'아까운 음식을….' 인터뷰를 마치고 자신의 집 근처 서울 평창동 골목골목을
자동차로 돌며 전시관`문학관`박물관을 구경시켜주었다.
헤어질 때는 택시보다 버스가 재미있고 값도 싸다며
굳이 버스 정류장 근처에 내려주었다.
버스 편을 챙겨주고 친정 온 딸 배웅하듯 '어여 가라'고 여러 번 손을 흔들었다.

△장사익=1949년 충청남도 홍성군 출생. 1996년 KBS 국악대상,
음반으로 1집 '하늘가는 길', 2집 '기침', 3집 '허허바다',
4집 '꿈꾸는 세상'을 냈다.
5집을 준비 중이다.
악보도 없이 흥얼거리던 그의 노래 대부분은 나중에 발굴돼 세상에 나왔다.





깊게 패인 입가의 주름, 희끗희끗한 턱수염, 손을 쓸어 넘긴듯한 머리칼...
북한산 자락의 집에서 만난 소리꾼 장사익의 너털 웃음은 여전했다.


2층 응접실 겸 작업실의 한쪽은 벽면 전체가 통유리로
북한산이 시원하게 내려다 보인다.


장사익이 손님 접대를 위해 다기에 손수 끓인 중국 보이차를 내놓았다.


찻잔 테이블을 겸한 응접실 나무 탁자.


슬프디 슬픈 꽃망울로 툭 터진 ‘하얀 노래’


[시대의 소리꾼 장사익] ① 욕심도 사랑도 죽음도 엮어.
마흔세 살 카센타 더부살이 삶에 불어온 찔레꽃향기.

왜 찔레꽃 향기가 너무 슬프다고 했을까?

그는 찔레꽃 향기가 너무 슬퍼서 목놓아,
그것도 모자라 밤새워 울었다고 노래했다.
아니 노래를 불렀다기보다 울부짖었다.

이 시대 최고의 소리꾼으로 불리는 장사익(59).
가슴이 떨렸다.
보름전 인터뷰 약속을 하고,
막상 그를 만난다고 생각하니 진한 흥분이 온 몸을 감쌌다.
지난 26일 그와의 인터뷰는 그의 노래가 너무 좋아서,
마치 광(狂)팬의 마음가짐으로 진행됐다.
자하문 너머 보이는 북한산 자락에 자라잡은 그의 자택 2층.

한쪽 벽면을 통유리로 만들어
북한산 기슭이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그의 응접실이자 작업실에서
그가 끓여주는 중국 보이차를 마시는 호사를 누렸다.

전날 예술의 전당에서 펼친 ‘노래판’의 피곤이 가시지 않은 얼굴.
그러나 깊은 주름과 적당히 자란 희끗희끗한 턱수염이 잘 어울린다.


응접실 한쪽에 있는 징.


우리 가요 악보책과 기타가 놓여 있고
창밖을 바라보며 장사익이 노래를 연습하는 곳.
악보책엔 ‘목포의 눈물’이 펼쳐져 있다.



♬ 목포의 눈물 악보책.♪


‘이건 아니다’
생각에 새납(태평소) 딱 3년 배워 인생 바꾸기로.

데뷔작이자, 대표작으로 꼽히는 <찔레꽃>의 가사에 대한 궁금함으로
실타래를 풀었다.

“왜 찔레꽃 향기가 슬프다고 했죠?”

(사실 이 노래를 늘 즐겨 들으며 궁금했다.
찔레꽃 향기에 대해 별다른 선입견은 없지만,
꽃 향기에 진한 슬픔을 이입시키는 것은 예사롭지 않았다.)

“아마 1992년 말께었죠.
내가 43살 때였을 것입니다.
그때 변변한 직업도 없이 친척이 하는 강남의 카센타에서
수리하러 온 차를 주차시키며 살아가던 때였죠.
바닥이었습니다.
생의 바닥이라고 느껴졌어요.
‘이건 아니다’라고 울분을 토하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새납(태평소)를 배우기로 했어요.
더늦기 전에 하고 싶은 것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는 40대 초반 자신 인생의 역전을 꿈꿨단다.
그럼 인생 역전과 찔레꽃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그는 자신이 작사 작곡한 <찔레꽃>에서
찔레꽃을 ‘별처럼 슬프고, 달처럼 서럽다’고 표현했다.

“봄이면 배 고파 들판에서 따먹던 그 꽃에 내 모습이…”
찔레꽃이 그의 입을 통해 피어나기 시작한다.

“그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어요.
그때는 잠실 고층 5단지에 살았어요.
5월 어느날 아파트 단지를 나오는데 어디선가 진한 꽃 향기가 느껴졌어요.
불어오는 따뜻한 바람에 실려온 꽃 향기였어요.
주변을 보니까 붉은 장미만 눈에 띄었어요.
분명 장미냄새는 아니었어요.
장미덩쿨를 살피고 있는데
흰 꽃잎의 찔레꽃이 수줍게 피어 있는 것이 보였어요.
순간 어릴 때 기억이 났어요.
봄이면 들판에 핀 찔레꽃을 따 먹곤 했어요.
찔레꽃은 회충을 죽인다고 어른들이 말하곤 했어요.
장미덩쿨 뒷쪽에 나지막히 옹기종기 피어 있는 찔레꽃이 너무 아름답게 느껴졌어요.
그리고 그 찔레꽃이 내 모습처럼 보였어요.
당당히 나서지 못하고, 폼잡지 못하고, 쭈삣쭈삣 눈치나 보고 있는,
그런 모습과 나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슬퍼졌어요, 그냥 슬펐어요.”

장사익은 그 감정으로 <찔레꽃> 노래를 만들어냈다.
“막 울었어요.
그리고 막 토해냈어요.
슬픔을 쏟아내니 개운해졌어요.
슬픔이 씻겨나가고 마침내 기쁨으로 승화되는 느낌이었어요.”

피아노의 조용한 반주 속에 나지막하게 시작되는 그의 <찔레꽃>을
다시 한번 음미해 본다.
“하얀 꽃 찔레꽃/
순박한 꽃 찔레꽃/
별처럼 슬픈 찔레꽃/
달처럼 서러운 찔레꽃/
(나지막하게 읊조리듯 시작한 이 노래는 점차 톤이 올라간다).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목놓아 울었지/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밤새워 울었지/
(이제 중창단과 함께 반복한다).

· · · 후 렴 · · ·

아! 노래하며 울었지/
아! 춤추며 울었지/
아! 당신은 찔레꽃”

비록 가사에서는 ‘당신은 찔레꽃’이라고 했으나 사실은 그 자신이었다.
그리고 중년의 남자가 꽃향기에 취해 울었다.
어느날 바람에 실려 온 꽃향기를 취해 만든 <찔레꽃>.

이 노래는 장사익 본인뿐 아니라
이 노래를 듣는 많은 이들의 감정샘과 눈물 샘을 오늘도 진하게 자극한다.


장사익이 서툴게 잘라온 사과와
외출했다가 뒤늦게 귀가한 부인이 내놓은 딸기.


소리꾼 장사익에게 풍경소리는 어떻게 들릴까.

술집 벽지에 휘갈겨 쓴 시, 쓰레기통에서 찾아서 거침없이.


이번엔 그의 자유롭고 거침없는 노래풍을 그대로 보여주는
<국밥집에서>의 가사를 물었다.

노래 중간에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니 희망이 족할까”라는
익숙한 ‘희망가’가 삽입된 이 노래의 후반부에는
장사익이 비장한 톤으로 외친다.
“그렇다/
저 노인은 가는 길을 안다/
끝내 흙으로 돌아가는 길을 안다”

노인의 죽음을 초월한,
인생을 달관한 경지를 한 줄로 표현한 이 노래를 들으면
속세의 부질없는 욕심이 부끄럽기만 하다.

“이 노래의 가사는 누가 만든 것이죠?”

“최 산이라는 친구가 있어요.
그 최 산이 강남의 어떤 술집벽에 휘갈려 놓은 시죠.
항상 이 시가 좋다고 생각하며,
언제나 저 시로 노래를 만들어야지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마음먹고 그 술집을 갔는데
벽지를 새로 한다고 모두 쓰레기통에 버린거예요.
그래서 쓰레기통을 뒤져서 그 시를 찾아 냈어요.
그리고 노래를 엮었죠.”

엮는다.
그는 노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엮는다’고 표현했다.
그러고 보니 그는 삶을, 노래를, 인생을, 고뇌를, 욕심을, 죽음을,
사랑을 줄줄이 엮는다.
그리고 그가 엮은 노랫 가락은 그의 입을 통해,
누에고치가 비단실을 풀어내듯 줄줄이 내 뿜는다.

그의 흥얼거림과 온 몸을 감싸는 끈끈함은 듣는 이의 감각을 마비시킨다.
과연 어디서 그의 노래가 품고 있는 마력과 괴력이 생겨난 것일까?
(계속)

기사등록 : 2007-01-30 오전 11:43:42



꽃을 사랑한다면...
꽃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꽃에 물주는 것을 잊어버린 여자를 본다면
우리는 그녀가 꽃을 사랑한다고 믿지 않을 것이다.
사랑은 사랑하고 있는 자의 생명과 성장에 대한
우리들의 적극적 관심인 것이다.
이러한 적극적 관심이 없으면 사랑도 없다.


-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에서




적극적 관심은 실천의 다른 표현입니다.
긍정과 낙관주의 역시 실천이 뒤 따를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를 갖게 됩니다.


실천은 계획과, 관심과, 긍정과 열정이라는 인풋(in-put)을
탁월한 성과라는 결실로 이어주는 징검다리입니다.


나는 내 삶을 사랑하는가... 내 삶을 위해서 무엇을 걸고, 무엇에 미쳤보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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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오공 최신규, 여의봉을 얻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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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중퇴에 어머님은 시장에서 행상을 하시고, 어렸을때부터 공장에 취직해서 일을하다가
자신의 길을 찾아서 열심히 노력한 끝에 코스닥에 상장까지 시킨 손오공이라는 완구사업 및 최근에는 엔터테이먼트 사업까지 확장하고 있는 최신규씨의 성공 스토리...

처음에 사업을 시작했을때의 기존 업체이 군림하는곳에 본인만의 마케팅, 영업전략을 개발해서 뛰어드는 부분은 많이 본받아야 할것같고, 박리다매 방식으로 100원짜리 장난감을 팔아서 몇달만에 40억을 벌어들인 이야기 등.. 흥미진진하구만...
점점 출퇴근길에 엄길청의 성공시대에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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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을 터뜨린 사람들]④'여의봉을 든 손오공' 최신규 손오공 사장


가난ㆍ못배운 恨에 이 악물었다

19살에 밑바닥서 사업 시작… 요술 부리듯 무한한 상상력 발휘

아이들 눈높이 맞춘 '탑블레이드' 大히트… 한국 대표 완구社로

최신규는 손오공이다. 여의봉으로 요술을 자유자재로 부리고 구름을 타고 단숨에 10만리를 날아오르는 손오공. '81난(難)' 끝에 불전을 구하는 손오공. 최신규 사장(48)도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요술 같은 아이디어로 대박을 터뜨린다. 회사 이름도 손오공이다. 그는 여의봉을 '꿈'으로 읽는다.





'기업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 초등학교를 마치지 못하고 남의 집 고용살이에서 출발, 세계적인 가전왕국 마쓰시타를 일궈낸 신화적 인물. 그는 '가난, 허약한 몸, 못배운' 세 가지 은혜를 성공비결로 꼽았다. 가난은 부지런함으로, 허약한 몸은 건강의 중요성으로, 못배운 것은 세상 모든 이를 나의 스승으로 받아들이는 성공의 코드로 바꿨냈다. 마쓰시타 회장의 어법을 빌리면 최 사장은 '튼튼한 몸'을 빼곤 두 가지 '은혜'를 입은 셈이다.


열셋에 염산 냄새를 견뎌내며 금 세공일을 하고 고등학교도 마치지 못했던 소년이 거짓말처럼 1000억원 매출을 눈纜?둔 회사의 사장이 된 것이다.

지금까지 만든 제품만 1000여개, 특허 300여개, 탑블레이드로 대표되는 한국 완구업계의 대표적인 대박, 코스닥 입성을 눈앞에 둬 거부(巨富) 반열에 오르게 될 최 사장은 삶의 행로는 평균인의 궤적과 멀찌감치 떨어져 있지만 그는 여의봉으로 오늘도 꿈을 꾼다.



◆가진 것이 없어서 성공했다=최 사장은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밑바닥에서의 출발이 오히려 그를 오늘날 '손오공, 최신규 사장'을 만들어냈다.


세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행상을 하던 어머니는 가난을 못이겨 그를 시골 큰형님 집에 맡겼다. 파도처럼 밀려드는 외로움. 학교 다닐 형편이 안됐던 그는 폐건전지를 만지작거리며 장난감 삼아 놀았고 온갖 상상력을 통해 외로움을 달래곤 했다.

공부보다 기술에 뜻을 둔 그는 열셋부터 금은방에서 금 세공사로서 일했다. 매일 독한 염산 냄새를 맡아가며 18시간이 넘게 일하는 고된 일이었다. "힘들었지만 이때 배운 금 세공기술 덕분에 나중에 다른 기술을 익히는 데도 큰 도움이 됐습니다." 하지만 금 세공사로서의 일은 3년을 넘기지 못했다.


금도둑의 누명을 쓰고(나중에 아닌 것으로 밝혀짐) 금은방을 나온 그는 영등포 뒷골목을 헤매며 방황했다. 다행히 지금은 목사가 된 장애인 친구의 도움으로 정신을 차려 선반과 주물기술 등을 닥치는 대로 익혀갔다. "친구가 그러더군요. 팔다리 멀쩡한 네가 나보다 못한 게 뭐 있냐고요."

사실 최 사장의 어릴적 꿈은 판ㆍ검사였다. "텔레비전에서 박정희 대통령이나 이병철 회장 등을 보면서 큰 힘을 가질 수 있는 판ㆍ검사가 돼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독학으로 육법전서를 보면서 고시공부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한계에 봉착했고 결국 공부보다는 기술을 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학업에서 기술로 인생의 방향을 틀고 1974년 열아홉 나이에 셋째 형과 수도꼭지 만드는 협성공업사라는 회사를 세웠다. "가진 것 없는 제가 학교는 못다니니까 회사를 차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돈이 생기면 명예는 따라온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회사는 30년 뒤 손오공이라는 회사를 만드는 출발점이 됐다. 결국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는 열등감이 오히려 성공에 대한 열의를 불태우게 했고 30년이 지난 오늘, 손오공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가 던지는 한마디. "내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가 원하는 것만 만든다=그는 일찌감치 눈높이를 어린아이에게 맞췄다. 철저히 고객입장에 선 것이다. 항상 아이들이 무엇을 가지고 노는지 살펴보고 직접 만들어서 초등학생인 막내에게 보여주기도 한다. "완구는 어린아이의 시각에서 만들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어른의 시각에서 만든 것은 절대 안됩니다." 그래서 나이 50에 가까운 그이지만 만화책은 물론 TV 개그프로그램 보는 것을 즐긴다. "젊은 세대는 빠릅니다. 속도감 있는 젊은 세대의 빠른 감성코드를 읽어내지 못하면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최 사장은 '아이디어맨'이다. 수도꼭지에서 야외용 가스레인지, 그리고 각종 완구에 이르기까지 그가 지금까지 만들어낸 제품만 1000여가지가 넘는다. 따낸 특허만도 300여개. 끈끈이와 탑블레이드 등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완구는 모두 작은 아이디어와 피나는 노력으로 이뤄낸 결실이었다. 한마디로 아이디어는 사업을 지탱해주는 손오공의 여의봉인 셈.

그는 '항상 어떻게 하면 조금 더 낫게 만들 수 있을까' 고민했다. 사장 집무실에서도 항상 뭔가를 만지작거리며 아이디어 발굴에 힘썼다. "어린아이들이 컴퓨터만 한다고 야단치지 말고 밖에서 놀 수 있는 무엇인가를 만들어줘야 합니다. 제가 어릴 때 혼자 있으면서 무엇을 가지고 놀까 생각하던 것을 시대에 맞게 바꿔주면 훌륭한 완구 아이디어가 나왔습니다."


◆난 사업에 미쳤었다=최 사장은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고 일요일에도 회사에 나왔다. 사업하느라 신혼여행도 포기했고 가족간의 휴가도 없었다. 돈을 좀 벌어도 남들처럼 집을 사기는커녕 오히려 공장에 재투자했다. 사업자금이 부족해 전세금과 결혼반지 등 전 재산을 쏟아붓는 바람에 돌도 안 지난 어린딸을 업고 신혼 초 여관방을 전전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처가 친지로부터 원망도 많이 들었다.

"사실 전 사업에 미쳤었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사업기반부터 닦아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에 대한 열중은 그에겐 재미였고 그 때문에 더욱 빠져들 수 있었다. "겉으로 보면 편하게 보이는 일일지라도 고생아닌 것이 어디있겠습니까. 다만 전 제일을 고생이라기보다는 재미로 받았들였기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팽이로 꿈을 돌리다=손오공의 최대 히트상품 탑블레이드. 탑블레이드는 팽이의 21세기 버전이다. 팽이(top)에 칼날(blade)을 단 장난감. 최 사장의 아이디어는 단순했다. "어렸을 때 팽이를 돌리면서 놀았죠. 그걸 시대에 맞게 바꾼 것입니다." 어렸을 때 갖고 놀았던 팽이를 오늘로 가져온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축(軸)을 중심으로 둥근 동체가 회전운동을 하는 완구라는 팽이의 기본 틀은 변함이 없다. 여기에 회초리로 치는 게 아니라 줄로 당기면 팽이가 발사되고, 빠른 속도, 여러 가지 모양으로 곧바로 변신이 가능하다는 21세기를 덧붙인 것이다.


'팽이라니' 하며 처음 주위의 반응이 냉담한 것은 당연한 일. "지금 안 하면 내일이 없다"고 설득하면서 밀어붙였다.

이때 생각한 게 일본과 합작. 한국과 일본은 노는 문화가 비슷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애니메이션에도 생각이 미쳤다. 애니메이션, 완구, 게임을 함께하는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 Use)'를 생각한 것이다. 총 제작비 60억원 중 20억원을 손오공이 투자했다. 최 사장 입장에서는 '올인'이었다.


"일본에서 먼저 만화영화를 방영해본 뒤 반응을 보기로 했습니다." 2001년 2월 일본에서 먼저 '베이 블레이드'라는 이름으로 만화영화가 상영됐고 주인공들이 갖고 놀던 팽이완구도 출시했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한국에서 완구를 내놓자마자 사무실은 주문전화로 가득했고 인천 공장을 24시간 돌려도 주문량을 맞추지 못했다. 중국산 모조품이 들어올 정도였다.


만화 주인공이 'GO! GO! 탑블레이드'를 외치듯 손오공도 질주했다. 탑블레이드 한가지로 40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 여기에 컴퓨터 게임용 탑블레이드가 출시돼 3주 만에 5만장이 팔리는 빅히트를 기록했고 캐릭터를 이용한 '탑블레이드 빵'까지 나오는 등 팽이를 기반으로 한 '원 소스'로 1000억원대에 가까운 부가가치를 창출한 것이다. 2001년 출시 이후 52개국에서 대박을 터뜨리고 있는 중이다.



◆삼성전자가 망하지 않는 한 나도 잃지 않는다=그는 투자에 동물적인 감각이 있다. 기술자이기 때문이다. "돈만 갖고 있는 사람과 기술이 있는 사람의 눈은 다릅니다." 기술이 있는 사람은 투자하는 데 자신이 있지만 돈만 있으면 투기로 흐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삼성전자가 부도나지 않는 한 손오공도 부도가 날 이유가 없다"는 자신감으로 이어진다.

최 사장은 애니메이션 '오세암'에 투자했다. "사업가의 눈으로 보면 종교적으로 얘기가 흐르면 안되죠. 불교를 배경으로 한 오세암의 경우 교회에 다니는 부모들은 생각이 다를 수 있는 거죠. 창투조합에 들어 있어 6억원을 투자하기는 했지만 저는 반대했습니다. 결과는 예상대로 실패였습니다."

그렇다고 그는 돈만을 생각해 투자하지 않는다. '연지' 인형이 대표적인 예. '후배들이 이어갈 기반을 닦아주기 위해서 한국형 인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거죠." 그는 한국산 인형을 만들기 위해 전문가들을 동원한 철저한 고증을 했고, 하나 하나 다림질과 바느질을 해가면서 한국형 인형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적자였지만 지금은 흑자로 돌아섰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장난감 애프터서비스(AS)를 한 것도 당장은 손해지만 멀리 본 투자였다. 장난감이 망가지면 또 사준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절반도 안된다. 텔레비전처럼 AS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택배비로만 수억원이 나가지만 입소문이 나면서 오히려 매출이 오른다는 것이다.

정리=전창협ㆍ권남근 기자(jljj@heraldm.com)

사진=이존환 기자(nani@heraldm.com)

[내 인생의 한컷]강도에 부도설 등 시련

용기ㆍ자신감으로 극복





지금으로부터 4년 전인 2000년 3월 29일 아침이었습니다. '탑블레이드'의 성공에 들떠 있을 무렵 전혀 예상치 못한 불행이 닥쳤습니다. 집에 강도가 들었던 것입니다. 5명의 괴한이 집에 들이닥쳐 아내에게 흉기를 대고 돈을 요구했습니다. 운전기사가 차를 고치러 떠난 것을 보고 강도들이 제가 출근한 줄 알고 들어왔던 것이죠. 겁에 질린 아내의 비명. 몸이 오싹했지만 순간 내가 이 자리를 떠나면 '나중에 어떻게 집사람을 볼 것인가'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아내를 잃어버리면 아무리 많은 돈을 번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한판 붙어야겠다는 직감이 들더군요. 여전히 강도들은 계속 아내를 볼모로 잡고 협박했습니다. 바로 옆에 있던 야구방망이를 들고 무조건 덤벼들었죠. 순순히 포기할 줄 알았다가 내가 막상 싸우자고 달려드니 오히려 당황하더군요. 치열한 싸움이 전개됐습니다.

30분이나 지났을까요. 야구방망이는 부러졌고, 휘두르는 칼을 온몸으로 막는 과정에서 손과 얼굴은 온통 상처투성이가 됐습니다. 피는 철철 흘러 넘쳤고 전 정신을 잃고 쓰러졌죠. (손과 얼굴의 흉터자국을 가리키며) 이곳이 바로 그때 다친 상처입니다. 이 사건으로 아내는 1년 동안 정신적으로 매우 힘들어 했습니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할까요. 강도사건 이후 아무 문제 없던 회사엔 부도설이 나돌았습니다. 병원에 누워 있는데 얼마 후 회사에 도둑이 들어 금고를 털어가는 절도사건까지 났다고 하더군요. 강도, 부도, 절도로 이어지는 시련의 연속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아내와 회사를 위해서라도 강인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병원에서 이를 악물고 운동을 했고, 남몰래 마사지를 받으며 몸도 추스렸습니다. 몸은 으스러질 것 같았지만 정신력 하나로 버텼습니다. 학연도 돈도 없던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던 것은 용기와 자신감뿐이었습니다. 아내도 저의 이런 강인함을 보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사실 그때는 완전히 회사를 그만둘 생각도 있었습니다만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갈까봐 그러지 못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가 제 인생의 가장 힘든 시기였습니다.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10대: 1956년생이다. 3세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집이 가난해 어머니와 떨어져 살았다. 13세부터 금 세공사로 일하며 기술을 배웠다. 학교는 기술을 배우는 틈틈이 다녔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지는 못했다. 방황도 있었다. 꿈은 판ㆍ검사였지만 일찌감치 접고 19세에 형과 함께 수도꼭지 만드는 만드는 회사를 차렸다.

△20대: 주말도 없이 일했다. 79년 경기침체로 중소기업이 쓰러졌고 회사가 위기에 빠졌다. 가까스로 살아남아 83년 개봉동에 서울다이캐스팅을 차려 야외용 가스레인지와 녹즙기를 만들었다. 85년 서울화학이라는 장난감 공장을 차렸다. 끈끈이를 만들어 대히트를 쳤다.

△30대: 90년 서울양행을 만들어 장난감 자동판매기사업에 뛰어들었다. 92년 서울화학과 서울양향을 합병해 손오공을 설립하고 장난감 로봇에 집중했다. 끈질긴 노력 끝에 일본 2위 완구업체인 다카라와 기술제휴도 맺었다. 판로가 없어 위기에 봉착했으나 젊은 상인들을 모아 완구총판을 만들어 해결했다. 95년 '연지'라는 브랜드의 한복 인형도 출시했다.

△40대 오늘, 그리고: 완구시장 확대를 위해 애니메이션(만화영화) 사업에 착수했다. 하지만 96년 '영혼기병 라젠카'를 비롯해 5년간 160억원의 투자손실을 입었다. 이후 만화영화 '하얀마음 백구'를 성공시켰고 2001년 일본과 함께 팽이를 소재로 한 '탑블레이드'를 제작해 공전의 히트를 쳤다. 완구 탑블레이드도 날개 돗친 듯 팔려나갔다. 지난해 매출액 680억원을 기록했고 올해는 1000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해엔 정부가 인정하는 신지식인에 선정됐고, 올 3월엔 한양대에서 명예경영학 박사 학위도 받았다. 조만간 코스닥에도 등록할 계획이다. 앞으로 손오공을 게임, 캐릭터, 애니메이션 등을 총망라하는 종합엔터테인먼트 업체로 키울 생각이다.

최신규의 성공코드


◆팽이: 팽이처럼 쉬지 않고 일을 한다. 아침 5시면 일어나고 일요일에도 회사에 나온다. 스스로 일에 미쳤다고 할 정도로 열정적이다. 팽이를 돌리듯 일이 재미있다.


◆로봇: 94년 히트상품이었던 변신 로봇 '그레이트 다간'처럼 변신을 자주한다. 금 세공에서 출발해 수도꼭지, 장난감, 요즘 들어 애니메이션, 게임, 레저까지 젊은 세대에 맞춰 발빠르게 변화한다.


◆인형: 돈이 되지 않는다고 말리는 전통인형을 만들었다. 한국을 알리고 한국 인형의 맥을 잇겠다는 사명감에서 출발한 일이다. 한땀 한땀 인형을 만드는 정신으로 사업을 키워왔다.


◆만화: 인생이 드라마다. 가난, 배고픔의 유년시절을 보냈다. 열아홉에 회사를 만들었다. 잘 나갈 즈음 강도를 당하기도 했다.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많다.


◆끈끈: 생애 최초의 히트작이 '끈끈이'다. 일에 몰두하면 끝장을 본다. 8개월을 쏟아부어 끈끈이 개발에 성공했다. 내 인생도 끈끈하다.


◆백구: 애니메이션 투자의 성공은 '하얀마음 백구'부터다. 흰둥이처럼 순수하다. 항상 어린이에게 눈높이를 맞추고 어린이처럼 생각한다. 만화와 개그가 취미다.


◆요술:여의봉처럼 아이디어로 뚝딱 장난감을 만들어낸다. 그의 손만 거치면 옛날 팽이도 탑블레이드로 다시 태어난다. 이렇게 1000여개 제품을 만들었고 300개 특허를 따냈다.


◆동화='TV동화 행복한 세상'을 지원하고 있다. 동화처럼 가슴에 와닿는 일을 하고 있다. 따뜻하고 감동이 있는 세상을 꿈꾼다. 좌우명도 효(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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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보험왕, 조주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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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적일정도의 내성적인 성격으로 농사를 짓다가 실패하고 형의 권유로 죽지못해 시작한 보험으로 연봉 5억을 받는 조주환씨...
김포지역에서 자동차보험중에 10명중에 1명은 조주환씨의 고객이란다.
다른면보다 고객지원, 고객과의 약속에 대해서는 엄청나게 철저하다.
위의 만화와 같이 사람들은 처음에는 감언이설로 고객을 유혹해서 계약을 따놓고는 실제적으로는 그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다. 조주환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고객감동이라는것이 이런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약속을 지킨다는것... 참 쉬운 말이지만.. 참 지키기 어려운 말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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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석의 총각네 야채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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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평당 최고의 매출액을 올린다는 이영석의 총각네 야채가게.. 책도 읽었고, TV에서 강의하는것도 보고, 각종 기사도 많이 봤는데, 또 성공컨설팅에서도 만났다.
많이 들어도 대단하다는 생각밖에는 안들었다...-_-;;
사회자인 엄길청씨도 혀를 내두를정도이고, 대단한 인물로 평가한다. 이것저것 배울것이 많이만 그의 강한 정신력만큼은 누구 못지 않은 것같다.
최근에는 LG전자에서 마케팅의 일환으로 총각네 야채가게와 업무제휴를해서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고 한다.
암튼 살면서 언제라도 좋지만 나태해지거나 힘들어질때 힘을 주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자연의 모든 것’이라는 이름의 야채 가게에는 하루에 천 여 명의 손님이 온다.

겨우 18평 규모에 품목도 과일·야채·어물로 한정되어 있는데도 이토록 많은 사람이 들르는 것이다.

물건을 매장에 다 들여놓지도 못하고 앞에 쌓아 두었지만 그것도 모자라 다시 시장에서 들여와야 할 정도다. 10년 전 트럭 한 대로 무점포 행상을 시작했던 이영석은 이제 야채 장수로 백만장자가 되었다.

‘총각네 야채 가게’에는 도대체 무슨 비결이 숨어 있는 것일까.




레크리에이션을 전공한 이영석이 한 이벤트 회사에 들어갔을 때였다. 한번은 며칠 밤을 새우며 작성한 기획안을 선배가 가로채는 일이 벌어졌다.

이벤트 업계에서는 원래 기획안 표절, 뒷거래 등이 많았다. 일에 환멸을 느낀 그는 직장을 그만두고 ‘정말 정직한 일’이 없을까 고민했다. 어느 날 한강 둔치로 바람을 쐬러 나갔는데, 오징어를 실은 트럭이 눈에 들어왔다.

문득 그 오징어를 팔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오징어 행상에게 부탁해서 원가로 오징어 2만 원어치를 샀다. 그리고 “오징어 사세요!”를 외치며 돌아다녀 30분 만에 다 팔았다.

다시 오징어를 떼다가 팔자 8만 원이 수중에 떨어졌다. ‘장사야말로 정직한 것이다’라고 생각한 이영석은 그 오징어 행상을 무작정 1년 여 동안 따라다니면서 장사를 배웠다.

1994년 그는 독립하여 1톤 트럭을 몰고 전국을 돌아다녔다. 또 좋은 야채와 과일을 고르는 법, 보관하는 법, 팔다 남은 물건을 처리하는 법 등을 배우기 위해 상인들을 부지런히 따라다녔다.

상인들이 귀찮다며 뿌리치고 때리기도 했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어느 지방의 무슨 과일이 좋다고 하면 밤을 새워서라도 찾아갔다. 눈으로 직접 보고 만져 보기 전까지는 누구의 말도 믿지 않았다.




■ 가락시장에서 ‘칼잡이’로 불리다
그가 처음 트럭 행상을 다닌 곳은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 주변이었다. 이영석의 트럭이 자리잡고 손님을 모으자, 근처 노점상에서 몇 명이 와서 시비를 걸었다.

트럭에 실린 야채와 과일을 바닥에 내동댕이친 것이었다. 다음날은 아예 이영석을 두들겨 팼다. 그래도 이영석은 꾹 참고 다음날도 그 자리로 트럭을 몰고 나갔다.

그러자 이번에는 주위 노점상에서 구청 단속반에 이영석을 고발했다. 다른 노점상들은 단속이 시작되는 걸 미리 알고 자리를 떴지만, 이영석은 야채와 과일을 빼앗기고 그걸 찾아오는 데 벌금 20만 원을 물어야 했다.

그런 일이 몇 차례 반복되었지만 이영석은 포기하지 않고 악착같이 그 자리를 지켰다. 결국 근처 노점상들과 구청 직원들이 두 손을 들고 말았다.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에서 이영석은 일명 ‘칼잡이’로 통한다. 이 별명을 얻게 된 과정에는 오늘날 이영석이 야채 장수로 성공하게 된 이유가 담겨 있다.

이영석은 초창기에 과일이나 채소를 모양만 보고 샀다가, 나중에 알고 보니 품질이 많이 떨어져 속이 상하곤 했다. 과일을 사면 박스 밑바닥에는 썩고 상한 과일들이 깔려 있기도 했다.

팔지도 못하고 바로 갖다 버려야 할 때도 있었다. 그래서 이영석은 자신이 직접 맛을 보고, 상자를 뒤집어 밑바닥의 과일을 확인하기로 마음먹었다.

새벽에 과도 하나 달랑 들고 가락시장으로 간 이영석은 1500개의 과일 도매 가게를 차례로 방문해 과일을 쪼개 맛을 보았다. 대량으로 물건을 파는 도매상에서는 원래 맛을 보고 사는 법이 없었다.

사든지 아니면 그냥 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영석은 멋대로 맛을 보고, 과일 박스를 뒤집어서 바닥에 있는 과일의 상태를 살폈다.

맛이 없으면 과일 값도 안 치르고 그냥 가 버렸다. 산전수전 다 겪은 도매상인들이 그를 가만 놔둘 리가 없었다. 그들은 이영석을 흠씬 패 주었다.

이영석은 대들지도 않고 그냥 맞기만 했다. 그리고 다음날 다시 나가서 같은 일을 반복했다. 하도 맞다 보니 집에 가면 온 몸이 뻐근했다.

새벽 2시에 자명종 소리가 들려오면, 몸이 아프고 잠이 부족한 건 둘째치고, 다시 시장에 나가서 두들겨 맞을 걸 생각하니 그대로 주저앉아 자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하지만 3년이 지나자 마침내 상인들이 그를 인정했다. 이제는 과도를 휘날리며 시장을 돌아다녀도 그를 제지하는 상인이 없다.

이영석은 한 번 구매하면 대량을 구매하며, 결제도 현장에서 바로 해주기 때문에, 상인들이 모셔야 할 고객이 되었다.

이제 상인들은 멀리서 이영석이 오는 것만 보아도 불안해지고, 그가 칼을 들어 과일 맛을 볼 때는 어떤 평가를 내릴지 조마조마하다고 한다. 맛이 없으면 도매 상인이 맛이 없다고 먼저 털어놓는다.




■ 재고율 0퍼센트에 도전한다
이영석이 과일을 고르는 기준은 무척 까다롭다. 확실히 맛있지 않으면 구입하지 않는다.

다른 상인들은 겉모양만 봐도 70~80퍼센트는 과일 상태를 알 수 있다고 하지만, 이영석은 모양으로는 50퍼센트밖에 판단할 수 없고, 맛을 보아야만 확실하게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가게를 찾는 손님을 대표해 시장에 왔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입맛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어차피 팔지도 못할 터, 구매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일곱 시간 동안이나 과일을 이것저것 맛보다 보면 화장실도 여러 차례 들락거리게 된다. 또 여러 가지 과일을 맛보기 위해서는 종종 생수로 입을 헹구어야 한다.

입맛을 지키기 위해 담배나 술은 결코 입에 대지 않는다. 청량 음료를 비롯해 자극적인 음료수나 음식은 되도록 삼간다.

또 아침에 배고픈 상태에서 과일을 먹으면 다 맛있게 느껴지기 때문에 반드시 배를 채우고 나간다. 새벽에 하도 과일을 많이 먹다 보니 다른 데서는 과일을 먹고 싶은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고 한다. 간혹 술집에서 과일 안주가 나오면 바로 마른 안주로 바꾼다.

이영석은 하루에 열 여덟 시간을 일한다. 새벽 2시면 잠자리에서 일어나 시장에 나갈 채비를 차린다. 3시에 가락시장에 도착하면 일이 바로 시작된다.

일곱 시간 가량 발품을 팔아 과일과 야채, 생선을 고르고 구매를 결정한다. 구매가 다 끝나면 가게로 돌아가 직원들과 장사를 시작한다. 6시면 영업이 끝난다. 그러면 간단한 회의를 하고 그 날을 마감한다. 서두르면 8시, 늦으면 10시에나 잠자리에 들 수 있다.

한편 총각네 야채 가게에는 재고가 없다. 그렇다면 그 날 들여올 분량을 어떻게 알아내는 것일까. 거기에는 나름대로의 노하우가 있다. 주변 학교에서 소풍을 간다고 하면 시금치·단무지·김 등을 많이 들여놓는다.

주변 아파트에서 바자회가 열린다고 하면, 거기에서 취급하는 품목들에 대해서는 구매 수량을 줄인다. 비가 온다고 하면 부추나 파를 더 많이 구매한다. 파전을 많이 먹기 때문이다.

재고를 만들지 않기 위해 이 가게에서는 그 날 팔 수 있다고 생각한 양의 90퍼센트만을 구매한다. 예기치 못한 변수로 팔리지 못할 경우를 대비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고가 있으면 주변 식당에 저렴하게 판다. 그렇게 모든 상품은 재고 없이 완전히 그 날로 소진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가게는 생선을 취급하지만 그 흔한 냉장고가 없다. 모든 생선은 그 날을 넘기지 않는다는 의미다.




■ 입원하면 병원에서 출퇴근한다
손님들은 다른 행상이나 가게에 가면 더 싼 과일이나 야채를 살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이영석은 다른 가게에서 팔지 못하는 것을 팔고 있다.

그것은 바로 ‘신뢰’다. 총각네 야채 가게에서 사면 뭘 사도 품질이 확실하다는 인식을 심어 주었기에, 가격 때문에 다른 데서 물건을 사지는 않는 것이다.

그래서 이 곳을 찾는 손님은 품목은 고르지만 품질은 고르지 않는다. 과일이나 야채의 상태를 잘 묻지 않는다. 살 것을 선택하면 가격을 치르고 가 버리는 식이다.

여기서는 가격을 깎아 주는 일이 없다. 다른 가게에서는 깎아 달라는 흥정이 자연스럽지만, 이 곳에서는 처음 오는 손님이나 가격 흥정을 벌인다.

고정 고객은 이 가게가 마진을 특별히 많이 남기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흥정을 아예 하지 않는다. 가격을 깎아 달라고 하면, 덤을 얹어 줄지언정 깎아 주지는 않는다.

늘 최상의 품질을 우선하지만 고객 항의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손님이 제품을 잘 보관하지 못하여 벌어진 일인 경우가 많지만, 그런 경우에도 100퍼센트 교환·환불 처리를 해준다. 먼저 환불을 해주고 나서, 어떻게 보관해야 하는지 설명해 준다.

‘총각네 야채 가게’라는 이름은 이 가게 직원들이 다들 총각이라고 해서 고객들이 붙여 준 애칭이다. 이처럼 손님과는 가족처럼 친밀하게 지낸다.

대부분 주부들이 이 곳을 찾는데, 직원들은 ‘어머니’라는 호칭으로 친근하게 대한다. 그냥 가게 앞을 지나는 동네 주민에게도 인사를 건넨다. 직원들은 고객 카드를 작성하지 않고도 수백 명의 손님을 기억하고 있다.






총각네 야채 가게가 유명해지면서 1년에 200여 명이 일하겠다며 찾아온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별로 버티지도 못하고 돌아간다. 즐겁게 일하는 겉모습과는 달리 일이 쉽지 않음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만큼 할 일이 많다. 그런데 일 외에도 어렵게 하는 요소가 있다면 야채 가게에 대한 낮은 인식이다. 이영석은 야채 장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높이고 싶다고 말했다. 야채를 파는 일도 인정받을 수 있는 전문직으로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그는 직원들에게 여러 가지 혜택을 주고 있다. 일정한 경력이 쌓인 직원에게는 새로운 점포를 차려 주고 운영할 수 있도록 해주고, 해외 연수도 보내 준다. 현재 여덟 개의 야채 가게가 ‘자연의 모든 것’이라는 상호를 쓰고 있다.

힘들어하는 직원에게는 과감하게 휴가를 준다. 하지만 이영석은 일요일을 빼고 하루도 쉰 적이 없다. 그렇다고 몸이 강철 같아서 결근이 없는 것이 아니다.

한번은 위염을 심하게 앓은 적이 있었다. 입원해야 할 정도였는데, 병원에 누워 있다가도 새벽에는 가락시장으로 나가서 물건을 고르고 사들였다.

그리고 다시 병원에 가서 누웠다. 그렇게 15일 동안 병원에서 출퇴근하니까 나중에는 병원에서 그만 나가라고 했다고 한다.

맹장 수술을 받았을 때도, 일주일은 누워 있어야 하는 것을 이틀도 채 안 돼서 퇴원하기도 했다. 그만큼 일에 대한 프로 근성이 강하다.




■ 쉽게 성공하려 하면 쉽게 포기하게 된다
그 동안 다른 상인들에게 숱하게 맞으면서도 남다른 승부욕으로 버텼던 이영석.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속으로는 ‘이젠 정말 그만두어야겠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했다.

‘내가 왜 이런 일 하면서 고생하고 있는 걸까’라는 회의가 들 때면 아무 것도 하기가 싫어졌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여기서 성공하지 못하면 다른 데 가서도 마찬가지일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이영석은 원래 장사 기질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 쓰던 전자 제품이나 자전거 등을 샀다가 가격을 얹어서 팔곤 했다. 동아리에서 티셔츠를 맞출 때는 자신이 나서서 동대문 시장에 가서 싸게 맞추고 마진을 남기기도 했다.

장사하는 게 재미있다고 말하는 이영석은, 어떤 일을 선택하는 기준이 ‘그 일을 즐길 수 있는가’ 하는 것이라고 했다. 즐길 수 없는 일은 오래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하겠다고 찾아오는 사람이 있으면, 이 일을 즐길 수 있는지 먼저 알아보라고 조언한다.

즐길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다면 과감하게 바꿔야 한다는 것이 이영석의 생각이다. 하지만 ‘하던 일을 어떻게 쉽게 바꾸겠는가’라는 의문이 든다.

여기에 대해 이영석은 명쾌한 해답을 내놓았다.
“그건 용기가 없기 때문에 못하는 것일 뿐입니다. 전 각종 레포츠를 즐기는데, 스쿠버다이빙을 10년 동안 해왔습니다. 그런데 10년 전에 시작할 때만 해도 스쿠버다이빙을 할 여력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스쿠버다이빙 장비를 판매하는 가게를 찾아가서, 일하겠다고 했습니다. 거기서 일을 해주고 대신 스쿠버다이빙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골프가 돈이 많이 든다고 하지만, 전 하고 싶으면 어떻게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용기입니다. 돈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영석은 교육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삼성전자 대리점주들을 모아놓고 강연을 하고, 다른 몇몇 회사에도 강연을 나가고 있다.

하지만 그는 많은 교육이나 좋은 강연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사실 길은 이미 다 드러나 있다는 것이다. 서점에만 가도 온갖 길을 알려 주는 좋은 책이 넘쳐난다고 했다.

다만 한 번 듣고 실행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이영석 자신도 배움에 그치지 않고 뭔가 자꾸 해보려고 하다 보니까 오늘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지금은 어떤 분야든지 과포화 상태입니다. 도화지에 비유하자면, 예전에는 흰색 도화지여서 점을 찍으면 점이 나타나지만, 지금은 검정색 도화지라서 검정색을 찍어도 표가 나지 않습니다.

‘나’라는 색을 드러내려면 자신만의 색깔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좀더 많은 노력과 색다른 아이템으로 승부해야 합니다. 검정색 속에 묻히면 안 됩니다. 세상에 쉽게 얻을 수 있는 건 없습니다. 쉽게 얻으려고 하니까 쉽게 포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글_조원기(wk@successpartner.co.kr)


LG전자와 '총각네 야채가게' 업무 제휴 효과 만점
'즐거움'과 '선진 경영기법'의 접목, 공동 마케팅 전략으로 윈윈 효과 거둬










대한민국 굴지의 가전업체가 채소, 과일 등을 파는 야채가게와 전략적 업무 제휴를 했다. 사람들은 이 소식에 언뜻 의아함을 떨칠 수 없었다. ‘대기업이 뭐 아쉬울 게 있다고 조그만 야채가게와 손을 잡을까?’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선택에는 역시 뭔가가 있었다. 양측은 요즘 찰떡 궁합을 과시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14일 세간에 화제를 뿌리며 마케팅ㆍ유통 부문의 포괄적 업무 제휴를 맺었던 LG전자(대표이사 김쌍수 부회장)와 총각네 야채가게(대표이사 이영석 사장ㆍ이하 총각네)의 동거 실험이 성공적인 결과를 낳고 있다. 두 회사가 최근 밝힌 그 동안의 제휴 실적을 보면 양측의 선택은 절묘한 윈윈 전략이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당초 두 회사의 제휴는 LG전자의 적극적인 구애로 이뤄졌다. 야채가게로 대박 신화를 쓴 총각네의 독특한 기업 문화에 LG전자 측이 깊은 인상을 받았던 것. 특히 총각네를 직접 방문한 김쌍수 부회장은 신선한 야채뿐 아니라 ‘즐거움’을 함께 판다는 이들의 발상에 크게 매료돼 “우리 가전 매장도 전부 총각네처럼 만들어라”며 특별 지시를 내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이프라자 대방점 공동 매장으로 개조
두 회사는 제휴를 맺은 직후 우선 LG전자의 직영점인 하이프라자 서울 대방점을 공동 매장으로 개조해 문을 열었다. 양측 모두 주부가 주고객층이라는 점에 착안, 서로 손님을 주고 받는 등 시너지 효과를 노리자는 공동 마케팅 전략의 일환이었다. LG전자로서는 매장 직원들이 자연스럽게 총각네 직원들의 남다른 고객 응대 방식을 배울 수 있도록 한다는 또 다른 기대감도 있었다.

결과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공동 매장을 운영한 지 두 달여가 지난 2월말까지 성적표가 이를 말해준다. LG전자에 따르면 하이프라자 대방점은 지난 1~2월 두 달간 약 4억원 정도의 매출을 올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30% 이상의 판매 신장을 달성했다. 올 들어 내수 경기가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총각네와의 동거가 매출 증가에 상당히 기여한 것으로 추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여기에는 물론 대방점 직원들의 고객 응대 방식이 바뀐 게 큰 몫을 했다는 평가다. 직원들은 처음엔 왁자지껄하고 활기찬 총각네 야채가게의 분위기에 다소 적응하기 어려웠으나, 이내 그들에게 동화됐다. 아침 조회 때 매장 안을 속보로 몇 바퀴 돌며 활력을 충전한다든지, 매장 밖으로 나가 출근길의 행인들에게 우렁찬 목소리로 인사를 하는 등 많은 부분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미소 짓기 운동, 제품 특성 알아맞히기 릴레이 등도 근무 방식에 불어온 새 바람이다.

하이프라자 대방점 강영준 주임은 “가장 달라진 점은 직원들의 마인드 변화”라며 “그 결과로서 고객들에게 먼저 다가가 인사를 하고 제품 설명도 더욱 친절하게 하는 등 적극적인 영업 방식이 몸에 익게 됐다”고 최근 매장 분위기를 전했다. 이번 제휴에 깊숙이 관여 중인 LG전자 정호선 부장도 “총각네는 주부 고객들을 어머니로 부르며 살갑게 대하거나 늘 즐겁고 활기찬 매장 분위기를 연출한다”며 “이런 영업 컨셉트를 받아 들인 우리 직원들의 행동 양식과 마인드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총각네도 만만치 않은 소득을 얻고 있는 중이다. 당초 총각네는 비(非)강남권에 처음 점포를 연다는 사실에 대해 적잖이 부담을 느꼈다. 신선함과 즐거움을 무기로 강남권 주부들을 공략하는 데 성공한 바 있지만, 다소 비싼 가격이 비강남권 주부들에게는 먹히기 힘들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었다.

하지만 두 달여 영업을 한 결과, 이는 기우로 드러났다. 처음에 하루 100명을 밑돌던 손님 숫자가 최근 평균 300명을 웃돌 정도로 급증했기 때문이다. 총각네 대방점 한일용 팀장은 이와 관련해 “대방동 지역의 시장성을 불투명하게 봤던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우리 특유의 서비스 정신을 꾸준히 실천한 덕분인지 손님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주부가 주고객층, 매출 증가로 이어져
총각네는 비강남권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한 것 외에도 또 다른 과실을 얻었다. LG전자의 선진화된 경영 노하우 등을 접할 수 있?기회를 얻은 것이다. 이영석 사장은 “우리 직원들이 LG전자의 직원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할 수 있게 된 것 등은 적지 않은 소득”이라며 “앞으로도 여러 분야에서 제휴의 범위를 확대시켜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LG전자는 총각네를 공동 매장에 입점시키면서 비용적인 부담도 크게 덜어준 것으로 전해졌다.

두 달여 만에 짭짤한 성과를 낸 두 회사의 공조는 한 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LG전자는 공동 매장을 5~6개까지 늘려 나간다는 계획인데, 우선 공동 매장 2호점이 3월 19일 서울 가양동에 들어설 예정이다. LG전자는 나아가 직영점과 대리점을 합쳐 700개를 훌쩍 넘는 전국의 가전 매장 전체에 총각네의 근무 방식과 기업 문화를 이식한다는 목표다. 이를 위해 LG전자는 각 매장의 직원들이 총각네를 자연스레 벤치마킹 하도록 공동 판촉 행사를 벌이고 있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가전과 야채의 동행’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총각네 야채가게
연 매출액 200억원의 유통기업






총각네 야채가게 이영석 사장은 새벽 농산물 시장에서 손수 고른 물건을 그 날 모두 판매, 재고율을 0%로 유지하는 영업 원칙을 고집스럽게 지켜 왔다. 언제나 신선하고 질 좋은 야채와 과일만 고객에게 팔겠다는 것이다. 또한 이 사장은 직원들이 즐겁게 일하면 고객도 즐거워하고 결국 장사가 잘돼 직원들이 다시 즐거워진다는 이른바 ‘펀 사이클’(Fun Cycle) 철학에 따라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1998년 보잘것없는 5평짜리 야채가게로 사업을 시작했던 그가 불과 6년 만에 10개 점포를 거느린 연 매출액 200억원의 유통 기업을 일군 비결이다.

이 사장의 경영 방침은 총각네 야채가게 매장 어디를 가봐도 쉽사리 확인할 수 있다. LG전자와 공동으로 영업 중인 대방점도 마찬가지다. 보기에도 싱싱하고 먹음직스러운 야채와 과일이 가지런히 진열돼 있는 것은 물론, 이를 판매하는 직원들의 입담과 제스처가 고객들의 웃음을 절로 자아낸다.

“어머니, 많이 팔아주세요. 미나리 팔아 총각들 장가 밑천 마련하려고 합니다.” “야채와 과일을 사시면 총각들의 열정과 마음도 드립니다.” “신이 인간에게 내린, 아니 원숭이에게 내린 마지막 선물이 뭐죠? 바로 바나나죠.” 총각 직원들이 쏟아내는 이 같은 친근한 유머 세례에 한 번 왔던 주부 고객들은 단골이 되기 십상이다. 한 40대 주부는 “처음엔 우연히 들렀는데 직원들의 친절한 서비스와 활기찬 분위기가 너무 좋아 자주 오고 있다”며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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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먹고 잘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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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 깨버리는 SBS의 다큐멘터리...
물론 논란거리가 다분히 있지만, 이 다큐를 보고 나서 육식을 한다는것은 자학의 행위이며.. 동물 학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나는 건강이라는것은 운동으로 해결할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 다큐를 보고나니까.. 예전에 고승덕변호사가 쓴책에서 사람의 건강은 먹는것으로 대부분 해결할수 있다라는 말이 새삼스럽게 떠올랐고.. 히포크라테스가 말한 "음식으로 고치지 못하는 병은 약으로도 못고친다"는 말이 절실하게 느껴졌다.
1부에서는 육식, 유류제춤의 악영향과 동물학대의 모습이
2부에서는 고혈압, 당뇨, 아토피 등 병으로 고통받고 절망하는 이들이 몇달간의 채식위주의 식사만으로 눈에 보일정도로 상당히 호전된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3부에서는 아이들의 식습관 개선과 모유수유 등 자녀들의 식생활에 많은 도움을 주는 내용이였다...
부모님께도 꼭 한번 보여드리고, 나와 가족의 건강.. 그리고 행복을 위해서... 인생에서 먹는 즐거움을 약간 줄여야 겠다.. 아니.. 올바른 식생활로 개선을 하도록 노력해야겠다!



인터뷰 - SBS <잘 먹고 잘 사는 법>박정훈
“우리 먹거리에 작은 혁명이 들린다” 진부한 소재 딛고 설득력있는 사례로 시청자들에게 다가가


“잘 먹고 잘 살자!” 평이한 이 말 속에는 우리 식생활 문화를 바꿔놓을 중요한 열쇠를 가지고 있었다. 낙농관련단체들의 방영금지가처분 신청까지 받은 SBS <잘 먹고 잘 사는 법>은 방송이 나간 3일 동안 평균 17%대의 시청률을 기록하는 한편 방송이 나간 후 대형할인매장 채소 판매량이 20% 정도 증가하는 등 음식문화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21세기 화두인 생명존중과 건강 그리고 환경 보호라는 큰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태어난 후 먹게 되는 모유에서부터 노년의 식사에 이르기까지 제대로 먹고, 먹을거리에 제대로 된 생산방식이 도입돼야 가능하다”며 제작이유를 밝힌 <잘 먹고 잘 사는 법>의 박정훈 PD를 만나 프로그램에 대한 이모저모를 들어봤다.

소재가 진부한 감이 있다
잡곡밥을 먹고 음식을 통해 비타민을 섭취하자는 얘기는 진부한 소리다. 하지만 내용은 결코 진부하지 않다. 평범한 한식을 통해 불치병이라고 얘기하는 아토피 피부염이 치유되는 과정을 보여준 프로그램은 세계 어디에도 없었다. 또 중금속 배출기능을 돕는 섬유질 섭취가 부족한 고교생들을 대상으로 3개월 동안 하루 세끼 잡곡밥과 평범한 한식을 섭취해 알루미늄, 은과 같은 중금속 수치가 눈에 띄게 줄어드는 것을 확인했었다.

병이 치유되는 과정을 수개월 동안 지켜봤는데 모험이라고 여기지는 않았나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늘을 향해 총을 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도 있었고 정보의 홍수 속에 중심을 잡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음식을 통해 아토피 피부염과 같은 질병을 고칠 수 있다고 확신은 했었지만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장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결과는 만족할 만했다. 아토피 피부염이 일부 치유된 여학생은 이를 통해 인생자체에 변화가 온 셈이었다.

낙농단체들에게 가처분을 받기도 했는데
항의서한에, 시위에, 가처분신청까지 들어왔었지만 결과적으로 법원이 우리 쪽으로 손을 들어주었다. 공익을 위한 방송이고 유제품 판매격감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는 게 법원의 기각이유였다. 프로그램에서 육류와 우유를 먹지 말자고 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다만, 우리 나라 축산물 사육에 문제를 제기한 것 뿐이다.

음식문화에 변화를 가져왔다는 반향에 대한 생각은
채소판매량이 증가한 것은 일시적으로 한쪽으로 쏠린 현상일 뿐이다. 곧 정리가 될 것이다. 일부 먹거리에 대한 유용한 정보마저 특정 계층에게 독점돼 있는 현실에서 구체적이고 설득력 있는 정보를 얻은 주부들이 음식문화에서 작은 변화의 계기를 마련하게 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선민 기자




육식의 종말 (저자 : 제레미 리프킨)


동아일보의 서평은 다음과 같았다.



    가축 살찌울 때 수천만명 기아 시달려


    『노동의 종말』『소유의 종말』 등 ‘종말’이라는 키워드로 현대 정보화 사회의 이면을 치열하게 파고 들고 있는 미국의 문화비평가겸 미래학자인 저자가 이번에는 육식문화의 종말에 대해 천착해 들어갔다. 마침, ‘잘 먹고 잘 사는 법’(SBS)이라는 텔레비전 프로가 반향을 불러 일으키고 있어서인지 남다르게 읽힌다.

    책에서는 인간이 고기를 먹는다는 것에 어떤 문제들이 있는지 사회 경제 환경 건강 정치등 여러 측면에서 고찰하고 있다.

    책에 따르면 선진국 사람들에게 쇠고기를 제공하기 위한 축우산업은 우선 남반구의 기아 문제와 직결된다. 저자는 “지구에서 생산되는 전체 곡식의 3분의 1이 축우와 다른 가축들 사료로 소비되는 반면 수천만명의 인간이 곡식 부족으로 기아에 시달리고 있는 실정”이라고 고발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북반구의 선진국 사람들은 육류 과잉 섭취로 심장발작, 암, 당뇨병 등으로 목숨을 잃는 사람의 수가 기아에 시달리는 사람의 수보다 더 많다면서 풍요병을 지적한다.

    지구의 환경도 위협받고 있다. 중남미의 수백만 에이커에 달하는 열대 우림 지역이 이미 소 방목용 목초지로 개간 중이며 사하라 이남과 미국, 호주 남부 목장지대에서 진행 중인 사막화의 주된 요인은 소 방목이라고 한다. 일례로 사육장에서 흘러 나오는 축산폐기물의 양을 살펴보면, ‘소 1만마리를 사육하고 있는 비육장에서 배출되는 유기폐기물은 11만 인구의 도시에서 발생하는 쓰레기 양과 맞먹는다’는 것이다.

    육식문화를 정치적 측면에서 검토한 것도 흥미롭다. 육식이 역사적으로 남성 지배를 존속시키고 성별과 계급조직을 구축하는 데 이용되었으며 현대에는 국가 정체성을 다지고 식민정책을 발전시키며 심지어 인종이론의 개발을 위한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Beyond Beef coalition"이라는 단체를 이끌고 있는 제레미 리프킨의 저서이다. 이 단체는 소고기를 줄이는 것이 환경을 보호하고 세계의 기아문제를 해결한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런지 하나 하나 살펴보자.


사막화


소는 목장이나 방목장에서 풀을 뜯어 먹고 산다. 위의 저서는 미국에서 이 메뚜기를 닮은 발굽동물들이 매년 수백만 에이커를 파괴한다고 주장한다. 사실, 소들이 아무렇게나 풀을 뜯어 먹게 놔둔다면 초지를 파괴한다. 그러나 풀을 뜯어 먹는 것을 적절하게 관리한다면, 파괴적이지 않다. 사실은 그들의 배설물로 인하여 땅을 거름을 주기 때문에, 파괴하기 보다는 오히려 기름지게 한다.


미국에서 6억 에이커의 땅의 목장이나 방목장의 대부분은 곡식의 재배에는 적합하지 않은 땅들이다. 이러한 땅을 이용하는 농업으로 이용하는 유일한 방법은 반추동물들을 키우는 것이다. 이것은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소는 일반적으로 곡식을 생산할 수 없는 땅에서 목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전세계적으로 볼 때 인간을 위해서 곡식을 생산할 수 있는 지역보다는 단지 가축만을 키울 수 있는 지역이 약 2배정도 더 많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반추동물의 육류 생산품이 소비되지 않는다면 다만, 이러한 광대한 공간이 전세계의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소가 가난한 사람들의 식량을 빼앗는가?


육식의 종말에서 말하는 것중 가장 충격적인 것은 육식을 하는 것이 전세계를 굶주리게 한다는 주장이다. 이 책은 수십억명의 사람들이 "소중한" 곡식을 가축에게 먹이기 때문에 굶주리게 된다고 주장한다. 또한 만약 우리가 소고綬? 먹는 것을 중단한다면 이 곡식들은 전세계의 굶주린 사람들을 먹이는데 사용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제레미 리프킨은 전세계의 굶주림의 문제가 단지 소비될 수 있는 식량의 생산이 증가함으로써 간단히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이것은 지나치게 단순화시킨 것이고, 오래전 이야기다. 현재의 증거들은 전세계가 굶주리는 것은 단지 식량이 모자라서가 아니다. 전문가들은 굶주림을 경제적, 그리고 정치적인 문제와 분배의 문제로 생각하지 식량이 모자라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를들어 우리나라에는 미국의 농산물이 들어오지만 쌀을 비롯하여 몇가지 농산물은 오히려 수입을 막고 있는 실정이며, 소말리아와 같이 대규모 기아가 발생하는 나라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가뭄이나 홍수 혹은 질병이 아니라, 전쟁, 정치적, 경제적 불안정한 상태, 혹은 현명하지 못한 정치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나라들의 주민에게 식량 원조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도 식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러한 식량에 접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례는 얼마든지 들 수 있다. 소말리아가 굶주리는데 우리가 과연 축산농가들이 축산을 그만둔다고 해서 소말리아가 굶주리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전혀 아니라고 본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결식아동조차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쌀이 부족해서 결식아동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가? 그것도 아니다. 그것은 정부의 정책 문제이다. 물론 전혀 줄 것이 없다면 해결의 가능성이 없을 수도 있지만 지금도 우리나라는 쌀이 남아돌아가지만 이러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결식아동을 위해서 과연 농부들이 더 많은 농사를 지어야만 하는가? 그것도 아니라고 본다. 현재도 농사를 짓는 면적이 줄어들거나 혹은 더 많이 생산할 수 있는 품종대신 밥맛을 높이는 쪽으로 선회하고 있다. 더군다나 우리나라 결식아동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서 미국의 농산물을 개방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축산업자들이 육류를 판매하지 못한다면 그들은 업종을 바꿀 것이다. 그들은 농업이 아닌 다른 일에 종사하게 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 농산물이 시장에 나와서 총판매되는 가격이 크게 변하지 않는다면 결국 조그만 파이를 서로 나누어 먹는 것보다는 다른 일에 종사하는 것이 현명하기 때문이다.


소는 오래전 우리나라의 농촌에서와 마찬가지로 완전히 풀(여물)로만 먹여 살릴 수 있다. 하지만 종종 우리가 먹는 콩을 주기도 한다. 왜 우리는 풀만 먹여도 되는데 콩을 주는 것인가? 그것은 콩을 먹이는 것이 그다지 손해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경제적인 문제이지 정치적인 문제는 아니다. 물론 콩이 비싸다면 결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고, 같은 이유로 결코 쌀은 먹이지 않을 것이다. 소는 여물을 먹고 자라며, 셀룰로스를 분해할 수 있는 몇 안되는 가축이다. 우리가 셀룰로스를 이용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 소를 키우는 방법이다. 미국에서는 여물만을 먹이는 것이 아니라 곡식도 먹인다. 그 이유는 그것이 훨씬 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소를 먹인다고 해서 농산물의 가격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만약 농산물의 가격이 올라간다면 누가 소에게 먹이겠는가? 소중한 곡식이라고 하지만 미국의 입장에서 본다면 잉여 농산물이고, 그 잉여 농산물이 가난한 나라에 이동되지 못하는 것은 우선 가난한 나라가 그것을 가져갈 만큼의 돈도 없는 것이다. 그러면 그것까지 갖다가 그냥 줘야한다면 그 농사꾼은 도대체 뭘 먹고 살 수 있겠는가? 아마 일부는 기부할지 모르지만 곧 농사를 포기할 것이고 다시 미국에서 소비될 만큼만 적정선으로 생산이 제한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소에게 곡식을 먹이는 기간은 사실은 매우 짧다. 소의 일생을 볼 때 먹이의 단지 15-20%만이 곡식이고 고기 1 kg을 생산하는데 드는 곡식은 5 kg 이다. 그리고 그 나머지는 모두 우리가 어차피 먹을 수 없는 것들을 먹고 있다.




오염원


육식의 종말에서는 가축들의 유기 배설물이 커다란 오염원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초지에 대해서만 본다면 이것은 관리의 문제이지 피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가축의 분뇨는 아무데나 버려지면 오염원이지만, 적절하게 관리하면 오히려 비료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가축의 분뇨는토양에서 식물에 의해서 분해된다. 미국의 대부분의 가축목장에서 발생하는 분뇨는 제거되어 비료로 사용된다. 이러한 방식으로 가축의 분뇨가 소모된다면 오히려 비료로 토양을 기름지게 하여 식물의 성장을 촉진시킨다. 미국 연방법과 주법은 동물의 분료를 지표에 그냥 버리거나 혹은 지하수를 오염시키지 못하게 하고 있다.


이 책은 반추동물의 첫 번째 위에서 살고 있는 미생물로 인하여 메탄가스가 발생하고 이것이 환경오염이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말은 사실이지만 그 양은 매우 미미하다. 한 전문가는 햄버거를 사 먹기 위해서 자동차로 10km 정도를 운전하는 것이 소의 메탄가스보다 100배는 더 온실효과를 증가시킨다고 계산했다. 소 한 마리가 발생하는 메탄가스가 온실효과에 비치는 양은 75와트 전구를 사용하기 위해서 발전소를 운전하는데 나오는 것과 같은 수준이라고 계산되기도 한다. 메탄가스를 생산하는 박테리아는 혐기성 미생물이기 때문에 소택지, 늪지, 논의 박테리아, 그리고 유기물과 쓰레기를 분해하는 과정과 이외 광산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주로 생산되는 것이지 소에서 발생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적은 양이다. 미국의 국립 과학 아카데미에서는 모든 반추동물(미국의 가축으로서의 소만이 아니라, 전체 생물계의 반추동물 그러므로 양, 염소, 사슴, 버팔로, 기린, 낙타까지 포함된다.)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에 의한 효과는 전체의 5%라고 계산했다.  




자연의 파괴


자연의 파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논과 밭은 자연의 파괴가 아닌가? 사실상 인간이 자연계에서 살기 위해서는 자연의 일부는 변형시켜야만 하는 것이다. 만약 인간이 이러한 것은 전혀 변형시키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 쌀이나 채소 마져도.




열대우림의 파괴


열대우림의 파괴는 분명히 심각한 문제이다. 육식의 종말에서는 고기를 먹지 않음(특히 햄버거)으로서 열대 우림을 보호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말은 현실적인 것 같지는 않다. 우선 미국에서 소비되는 육류는 대부분이 미국자체에서 생산한 것이다. 미국에서 소비되는 고기는 94%가 국내에서 생산된 것이고 6%가 해외에서 수입하는 것이며, 그들중 중미지역이나 브라질에서 수입하는 것은 전체 수입의 10% 정도이다. 더군다나 브라질에서 수출하는 육류는 햄버거에 쓰이지 않는 깡통제품들이다. 중미에서 수출하는 제품은 햄버거에 쓰일 수 있지만 전체의 양으로 본다면 0.35%에 불과하다. 사실상, 미국에서 수입되는 육류의 대부분은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오는 것들이다.


리프킨이 답변해야 하는 중요한 관점 한가지는 과연 정말로 미국에서 햄버거를 줄이면 열대우림의 파괴가 중단되는가하는 점이다. 이점에 대해서 나는 부정적이다. 이미 미국에서는 1976년 일인당 90파운드의 햄버거를 소비했으나 1991년에는 63파운드로 30%가 줄어들었으나 햄버거의 소비가 줄어들어서 열대우림의 파괴에 대한 긍정적인 효과를 나타냈다는 보고는 없다.


 


고기의 중요성


채식만 했을 경우에 대한 문제점을 이미 다루었기 때문에 더 상세히 말할 필요는 없지만 간략히 정리한다면 채식만 하는 것보다는 육식을 균형있게 하는 것이 건강한 균형잡힌 식단을 짜기가 쉽다. 기름기를 어느정도 제거한 소고기의 1 serving(미국에서의 식사의 단위 serving으로 정하는데, 각각의 양이 정해져 있다. 소고기는 3온스의 양이다. 대부분은 한 접시나 한 컵분에 해당하지만 종류마다 양이 다르다.)는 미국의 식사에 대한 지침서의 기준을 충분히 지킬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소고기는 채식에서는 얻기 힘든 아연과 철분을 다량 함유하고 있다. 그러므로 매우 훌륭한 식사가 될 수 있다. 다만 조리법은 조심할 필요성이 있는 부분이 몇가지 있는데, 우선 태우지 말아야 하고, 기름기를 될 수 있으면 많이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지방이 이미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튀기는 것은 좋지 않으며 기름기를 국이나 찌개등의 기름기를 완전히 제거하려면 한번 끓인 후 식혀서 기름기를 걷어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리고 분명히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권장 식단을 기준으로 식단을 짜는 정도의 육류 섭취만을 건강할 뿐, 육류과잉은 분명히 문제가 된다는 점이다. 이점을 생각하면 현대의 육류 섭취량이 많기 때문에 가축을 줄이는 것이 어느정도는 합당할 수는 있다. 그리고 그 정도는 과학계에서 합리적으로 받아들인다.




육류가 대장암을 일으키는가?


지방을 많이 섭취하는 것이 일부 사람들에게서 대장암(결장암)을 일으키는 위험인자와 관련이 있다. 이 관련이 인과 관계라는 것이 증명된다면 고기를 포함한 모든 종류의 지방의 과다한 섭취는 암의 발생에 기여할 것이다. 이것은 논란중인 것도 아니고 놀랄 것도 아니다. 하지만 육식의 종말에서 말하는 것은 이것과 다른 것이다. 즉 소고기의 지방이 특히 대장암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육류가 대장암을 일으킨다는 주장은 Nurses' Health Study에서 발견된 것이다. 90,000명의 등록된 간호사를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하루에 한번 이상 소고기, 돼지고기, 양고기를 주식으로 먹는 간호사들이 한달에 한번 이하로 먹는 간호사에 비해서 결장암이 걸릴 확률이 2.5배가 높았다. 이 연관관계는 간호사들의 식사에 관한 질문서중에서 가장 높은 것이었다. 이 연구의 저자중의 한명은 "자료를 잘 살펴보면, 붉은 육류의 최적 섭취량은 제로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들의 자료를 보면 이러한 극단적인 주장을 지지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육류를 하루에 한번 이상 먹는 것 보다 한달에 한번 먹는 것이 결장암에 걸릴 확률을 줄인다고 해서 전혀 먹지 않으면 결장암이 덜 걸린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자료를 분석하여 보면 간호사를 5개의 동일한 크기의 그룹으로 나눈 경우 가장 육류를 많이 먹는 그룹은 분명히 결장암에 걸릴 확률이 높지만 나머지 4개 그룹간에는 유효한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가장 많이 먹는 그룹은 매일 4.5 온스 이상의 육류를 소비했다.)


그러므로 전문가들은 이 연구에서 발견된 내용은 육류의 소비를 적당하게 하라는 것이지 완전히 제거하라는 것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미국 암연구소의 암예방 및 조절부서의 책임자인 Peter Greenwald 박사는 "이것은 훌륭하고 중요한 연구이다. 하지만 자료는 채식주의자가 되라고 말하지는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미국 심장협회에서 권장하는 만큼 육류를 섭취하는 것이 안전하게 철분을 얻고 결장암을 최소화하는 길이라는 것을 이 연구가 보여주었다고 이 저널에 어떤 사람이 편지를 보냈다.




 철분과 심장병


육류에 포함된 철분이 심장병을 일으키기 때문에 해롭다는 주장이 있다. 이 주장은 동부 핀란드의 남자들 중에서 혈액중의 철분의 함량이 높은 사람이 적은 사람보다 심장마비의 확률이 높다는 것에 근거한다.


이 연구를 근거로 철분을 적게 섭취하라고 권장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우선 과학자들은 동부 핀란드의 남성에게서 보인 혈중 철분의 양과 심장병과의 관계가 다른 인구집단에서도 재현성이 있는지를 아직 모르고 있다. 동부 핀란드의 남자들은 유난히 심장질환이 높다는 특징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 독특한 면이 있다. 그러므로 다른 인구집단에서 같은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아직 뭐라고 말할 단계가 아니다.


두 번째로, 혈중 철분이 높은 것이 식사 때문이라는 증거가 부족하다. 핀란드인들의 일부는 hemochromatosis라는 혈액의 철분이 높아지는 유전병이 많다. 심장질환을 앓는 사람들의 철분농도가 높은 것이 이 질병때문일 수도 있다. 만약 철분함량이 높은 것이 이 때문이라고 한다면 식사를 조절하여 철분을 적게 섭취하는 것은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다.


세 번째로, 식사를 조절하는데 있어서는 잇점과 위험요소를 모두 고려해야 한다. 철분 결핍으로 행동장애, 학습 및 수행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 미국내 일부 집단은 철분이 부족하기 때문에 오히려 철분을 더 섭취해야한다. 그러 대중을 향해서 철분섭취를 줄이라고 한다면 막연한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 진짜 건강의 위험에 빠질 수 있다.




화학 오염물질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은 육류가 온갖 합성 화학 독소의 농도가 매우 높다고 한다. 이러한 것들에는 농약, 항생제, 호르몬이 있다. 그러나 사실은, 이러한 물질들의 잔류량은 극히 적어서 인체에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다.


농약


FDA와 농무성 (Department of Agriculture) 및 다른 기관들의 연구 조사에 의하면, 미국의 식품에 잔류한 농약의 양은 허용치 이내이다. 더군다나 많은 시료들은 농약이 검출되지도 않았다.


항생제


소에게 항생제를 먹이는 기간은 방목장에 도착한 후 매우 짧은 기간동안이다. 이러한 항생제는 도살시기에 사용되는 것은 이례적인 것이며, 정부의 모니터 시스템은 항생제 잔류로 인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일반인들의 생각과는 달리 동물의 잔류 항생제가 인간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결정적인 증거는 없으며, 미국 과학 아카데미가 여러논문을 리뷰한 결과 가축에 들어있는 항생제의 양으로는 인간에게 위해가 된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을 지적했다. 특히 이 리뷰는 소가 아니라 항생제를 상대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닭과 같은 가금류에 대해서도 적용이 된다.


호르몬


빠르게 성장시키기 위한 성장호르몬의 투여는 미국 정부에 의해서 엄격히 제한을 받고 있다. 거세한 소에 투여한 성장 호르몬의 양은 정상적인 암소와 숫소에 비해서 실제로는 더 낮다. 특히 식탁에서 에스트로젠은 소에서 유래한 것 보다는 식물에서 유래한 것이 훨씬 양이 많다. 더군다나, 많은 사람들이 식물에는 에스트로젠과 유사 성분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진짜 위험한 것들은 미생물 오염이다.


육류의 경우 사람들에게 가장 큰 위협을 가하는 것은 화학물질의 오염이 아니라 미생물의 오염이다. 이를 억제하기 위해서는 항상 신선한 것을 완전히 익혀 먹어야 한다. 미국에서 햄버거의 고기를 60도에서 익히도록 연방정부가 규정하였으나 이 경우 O157 균이 죽지 않아서 질병을 일으켰었다. 그러므로 현재는 약 68.3도 이상에서 익히도록 규정을 바꾸었다. 그러므로 육류를 조리할 때는 완전히 익혀 먹어야 한다.




결론


Beyond Beef coalition에서는 소고기 소비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을 정당화할 노력을 충분히 기울이지 않고 있다. 과학적인 증거들은 소고기 소비가 환경을 파괴하고 세계의 기아를 해결한다는 이들의 관점을 지지하는 것이 않는다. 오히려 이와는 달리 소고기는 심장병과 암을 예방하기 위한 지침서에 따른 미국의 건강한 식사의 한 부분이 되어 있다. 육류의 소비의 위험성은 적절한 양을 소비하는 경우 유일한 위험성은 미생물의 오염이며 이는 적절한 조리로 충분히 예방이 가능하다.


Beyond Beef coalition은 다양한 목적을 가진 단체가 연합한 것이다. 이들 중에는 채식주의자, 동물권리를 주장하는 사람, 열대우림의 보존을 주장하는사람, 야생보호주의자, 소규모 농업을 주장하는 사람등등의 다양한 집단이 있다. 이들 단체들 중 어느누구도 균형잡힌 과학적인 정보를 제공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 같다. 제레미 리프킨은 육식의 종말 이외에도 여러 가지책을 쓴 저자이며 특히 유전공학을 반대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졌으나 그외에도 여러권의 다양한 내용의 저서를 가지고 있다. 특히 제레미 리프킨의 저서 "Who Should Play God?"(오래전에 삼성 출판사 혹은 유사한 이름의 출판사에서 문고판으로 번역이 되었었다.)"를 비롯하여, 특히 국내에서 널리 알려진 "엔트로피(Entropy)" 및 "엔트로피 II(Algeny)", "소유의 종말", "노동의 종말", "바이오테크 시대", "생명권 정치학"의 저자로 명성이 자자하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본다면 엔트로피는 매우 훌륭한 책임이 분명하였으나, 그 다음에 엔트로피 II로 번역된 그의 저서 "Algeny"는 사이비과학인 창조과학을 거의 그대로 자기 맘대로 취사선택해서 만든 책으로 과학적인 내용을 다루는 책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과학적이지 않은 오히려 건전한 상식을 파괴하는 내용 때문에 진화론자인 '스티븐 제이 굴드'의 비판을 혹독하게 받았다. 개인적으로 볼 때 창조과학에 관한 책중 가장 처음으로 읽은 책이 이것이었으며 그가 창조론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잘 쓴 책도 아니었다. 그가 이 책을 쓴 이유는 현대과학의 맹점을 지적하고 현대과학이 매우 잘못된 길을 간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고 생각한다. 그의 책 Who Should Play God?는 국내에 언제 번역이 되었는지 기억이 정확하지 않지만 원래는 엔트로피 보다 먼저 쓴 책이다. 그 책에서도 이미 유전공학에 대한 비평을 가하고 인간이 신의 역확을 대신해서는 안된다고 역설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의 주관적인 신념에 의해서 Algeny를 쓸 때 자기 주장에 맞도록 취사선택을 하고 과학에 대해서 냉소적인 태도를 취한 것이 아닌가 싶다.


리프킨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강준만님의 글이 우리모두에 올라와 있다. 안타까운 것은 리프킨에 대해서 그의 운동가적인 능력에 대해서만 칭찬을 하고 그가 쓴 글의 내용 자체는 그다지 모르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 그 내용을 모르고 그의 운동가적인 모습만을 가지고 그를 평가하는 것은 허망한 것임을 그가 왜 모르고 있는지 모르겠다.


과학자들 사이에서 제레미 리프킨의 평가는 매우 나쁘다. 그는 운동만을 신경쓰고 과학적인 사실의 검증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점이다. 엔트로피 II로 번역된 그의 저서 Algeny가 그랬고 이 책도 그러한 대표적인 서적의 하나이다.




참고서적


The Beef Controversy : A Special Report by the American Council on Science and Health (본 글은 위의 글에서 거의 발췌했음, 완전한 레퍼런스를 원하는 분은 이 문서를 읽어보기 바람)





'잘 먹고 잘 사는 법'이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방영된 무렵을 전후하여 몇몇 신문에 '음식으로 못 고치는 병은 약으로도 못 고친다고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가 말했다'거나 '음식으로 못 고치는 병은 의사도 못 고친다고 히포크라테스가 말했다'는 글이 실렸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히포크라테스는 그런 말을 남긴 적이 없기 때문에 어떤 근거로 그런 글을 썼는지 궁금하여 글을 쓴 기자들에게 연락을 취해보았습니다.

A 기자

어떤 산부인과 의사가 쓴 음식으로 영재를 기른다는 식의 책자를 소개하는 '건강혁명 음식으로 이룬다'는 제목의 글에서 '음식으로 고치지 못하는 병은 약으로도 고치지 못한다...(는) 히포크라테스의 명언'이라 적었습니다. ' '의 부분은 책의 저자가 보내준 책 소개문에 들어있는 것을 그대로 옮겨썼다고 합니다.

책을 낸 분의 홈페이지에 글을 남기고 email을 보냈지만 아직 답장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B 기자

'잘 먹고 잘 사는 법'이라는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잘 먹어야 잘 산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음식으로 못 고치는 병은 약으로도 못 고친다라는 히포크라테스의 말'이라고 썼습니다. '잘 먹고 잘 사는 법'이라는 프로그램을 제작한 PD가 보내준 자료에 있는 내용을 그대로 옮겼다고 합니다. 자세한 것을 알고 싶으면 그 PD에게 연락해보라고 합니다.

C 기자

어떤 약사에 대한 인터뷰 기사를 쓰면서 '그리스 의학자 히포크라테스는 음식으로 고치지 못하는 병은 의사도 고치지 못한다고 했는데'라고 썼습니다. 그 약사가 쓴 책에 있는 내용을 옮겼다고 하고 책을 쓴 약사에게 확인하니 '대학교에서 수업시간에 그렇게 들었다'고 들었다 합니다.

히포크라테스가 정말 그렇게 말했는지 확인하기 위하여 신문사의 자료를 찾았으나 찾지 못하였고 외부에서 자료를 찾는 중이라고 합니다. 자료를 확인하면 꼭 알려주기로 하였으나 3주가 지나도 아무 연락이 없습니다.

D기자

'암 전문가 5인이 처방하는 抗癌 식이요법'이라는 기사를 쓰면서 '서양의학의 시조로 받들어지는 히포크라테스는 “음식물을 당신의 의사 또는 약으로 삼으라. 음식물로 고치지 못하는 병은 의사도 고치지 못한다”고 말했다.'고 썼습니다.

히포크라테스에 대한 책을 제대로 구하지 못한 상태에서 마감에 쫓기느라 어느 의사가 신문에 발표한 기사를 그대로 인용했다고 합니다. 히포크라테스가 정말 그런 말을 했는지 확인해보겠다고 하였지만, 의사가 썼다는 그 기사에 대하여 자세히 알려달라는 저의 email에 대해서는 답장을 주지 않았습니다.

E 기자

'잘 먹고 잘 사는 법'이라는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음식의 건강방정식 과학·실증적 풀이'라는 기사를 쓰면서2천5백년 전 의성(醫聖) 히포크라테스는 음식으로 못 고치는 병은 약으로도 못 고친다고 했다'고 썼습니다. 프로그램을 만든 PD가 믿을만한 책에 그렇게 쓰여있다고 해서 썼다고 하면서 자료를 더 찾아보겠다고 하더니 (자료를 더 찾아본 것 같지는 않고) 결국 PD에게 연락해보라고 연락처를 가르쳐 줬습니다.

프로그램을 만든 PD에게 연락했더니 '그런 내용이 방송되어 기분이 나쁘냐?'고 물으시더군요. 기분 때문에 연락한 것이 아니라 사실을 확인하기 위하여 연락했다고 했더니 email을 보냈는데 '이 말의 원류를 추적해 과연 히포크라테스가 이 말을 했는가 안했는가는 저한테 그다지 중요한 이슈가 아니(라면서) 그 말은 각종 학자, 의사 타이틀을 가지고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책에 인용한 말이고 이 말의 진위를 따지기 전에 상식적으로도 상당히 신뢰가 가는 말'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인터넷에서 검색한 몇몇 글을 보내주셨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 2천3백여년전 현대의학의 시조인 히포크라테스가 "음식물을 의사로 삼으시오. 음식물로 고치지 못하는 병은 의사도 고치지 못하오."라고 한 말은(김영문 약학박사 선린대 교수 한동대 객원교수)

- 나는 현대의학을 창시한 히포크라테스의 건강진리에 따라 건강지도를 합니다. 히포크라테스는 현대의학을 창시하였기 때문에 전세계의 의학박사님들의 왕초 스승이십니다. 음식물을 당신의 의사 또는 약으로 삼으시오. 음식물로 고치지 못하는 병은 의사도 고치지 못하오.(안현필 * 아시죠? 예전에 영어참고서 쓴 사람 그 뒤로는 무슨 건강법을 설파하고 다녔습니다.)

- 의학의 거성 히포크라테스는 음식만으로도 만병을 고칠수 있다고 말했다.(한국섭생연구원장 * 이름은 나와있지 않고 전화번호만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조사한 바로는 인터넷에서 검색할 수 있는 글 중에서 의학와 의료의 역사를 전공한 사람이 쓴 글에 위 '음식만으로 만병을 고칠 수 있다', '음식물로 고치지 못하는 병은 의사도 고치지 못한다', '음식물로 의사를 삼아라', '음식으로 못 고치는 병은 약으로도 못 고친다'고 쓰인 부분은 하나도 없습니다.

영어로 된 외국의 홈페이지를 검색해도 그와 비슷한 내용은 없습니다. 단지 '음식으로 환자를 치료할 수 있으면 약은 약탕기에 그대로 두어라'고 말한 부분은 여러 건강식품 홈페이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가 알기로 히포크라테스의 저작에 대한 유일한 한글번역서인 '의학이야기(1998 히포크라테스 지음 윤임중 옮김 도서출판 서해문집)'을 샅샅이 훑어보아도 그런 내용은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가지고 있는 영문판 히포크라테스 저작물에서도 그런 내용은 찾을 수가 없습니다.

어쨌든 제가 여섯 사람과 연락하면서 알게 된 것은 여섯 사람 중 한 사람은 아예 그 말의 진위 여부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이 그냥 다른 사람들에게 퍼뜨렸고 나머지 다섯 기자들은 기사를 쓰기 전에 말의 진위를 확인하지 않고 옮겼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내용이 잘못된 것이라는 저의 지적에 대해 한명은 여전히 진위를 따질 이유가 없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고 세명은 그것은 내 책임이 아니라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고 단 두 명만이 진위 여부를 확인하고 잘못된 것이 있으면 바로잡겠다고 합니다.

이것이 사실전달을 제일로 여긴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대한민국 기자들이 글쓰는 방법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의 제목 '흉내내기 - 대한민국 기자들이 글쓰는 법'은 어떤 의사의 글 제목을 표절한 것임을 밝힙니다.

그 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저도 그 글을 그대로 베껴 쓰면서 글을 맺습니다.

'실제로 이 글의 제목은 아주 잘못된 것이며 절대 붙여서는 안될 제목입니다. 한명의 기자가 벌인 도용사건을 가지고, 마치 대한민국의 전체 기자가 이런 것처럼 부풀려서 매도하는 식의 제목은 논리적으로도 잘못된 것(지나친 일반화의 오류라고 합니다)이며, 도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이 잘못된 제목을 고의적으로 뽑은 데 대한 변명을 늘여놓는 것으로 글을 맺겠습니다. 대한민국의 기자들이 애용하는 "선정적인 제목뽑기"를 흉내내본 것 뿐입니다. (이 글에 대한 언론인들의 반론은 환영합니다. 리플을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원문을 모두 읽기 원하시면 다음 주소를 방문하십시오.
http://drchoi.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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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 심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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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군사 심리전이지...
실제 생활과 크게 다를바없는 다큐였다...

사람간에 심리를 이용할때나.. 전쟁중에 심리를 이용할때나 마찬가지 인것같다...

몇가지 군사심리전의 기본지침은... 적을 조롱하지말라, 적의 문화를 파악하라...

흔히 친구들과 싸울때 심리적으로 상대방을 조롱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지 말아야 하면서도 그 사람의 약점을 알기때문에..
하지만 그런것이 얼마나 잘못된것인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것이다... 다시 안볼 사람이면 몰라도...^^;;

적의 문화를 파악하라는 업무적 사업적인 부분에서 많이 도움이 될것이다...
다른 회사를 공격하거나 특히 내가 생소한 부분에 대해서 영업을 하고, 고객을 새로 만들기 위해서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 주는 다큐였다...


전쟁과 역사
20세기 전쟁 비사
17편 - 심리전

심리전 하면, 우리는 세뇌공작을 연상한다. 일찍이 손자(孫子)가 말한 대로, 전쟁은 싸워서 이기는 것보다 적의 의지를 꺾어서 이기는 게 더 낫다. 심리전이 바로 그 영역에 속한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에 따라, 심리전은 전단(삐라), 확성기, 라디오 방송 따위가 그 무기이다. 이런 조직적인 심리전은 1차대전 때부터 등장하였다. 1차대전 때 독일 장군 에리히 폰 루덴돌프는 "뱀에 홀린 토끼처럼 적의 선전에 당해서 졌다" 고 말했다. 심리전은 그만큼 전쟁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여기서 선전선동의 위력을 깨달은 1차대전 참전 독일군 하사 아돌프 히틀러는 훗날 선전선동을 통해 집권하고 2차대전을 일으킨다.

선전선동 심리전이라 해서 거짓말만 늘어놓는 것은 아니다. 진실을 말하되, "전체적"인 진실이 아니라, 내게 유리한 "선택적"인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도 심리전이며 이것은 BBC 방송이 2차대전에서 쓴 방식이다. 미국은 2차대전 때부터 심리전 부대를 별도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미군은 독일군이 명령에 약하다는 점을 이용하여, 아이젠하워가 서명한 명령서 모양의 전단을 살포하였다. "안전행동 패스"가 그것이다. 일본군은 항복이라는 단어에 저항을 느끼기 때문에, 미국은 공습 때마다 예고 전단을 뿌리고 공습을 가해, 일본군의 미군에 대한 공포심을 가중시켰다. 이는 매우 효과적인 심리전이었다. 천황이 황궁에 떨어진 이런 전단을 보고 항복을 맘먹었다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이다.
한국전 때 미군은 "백 구두 장군" 전단으로 효과를 거두었다. 휴전협상에 임하는 북한의 남일 장군의 흰 부츠와 중공군의 넝마 같은 군화를 비교하는 그림을 실은 전단은 다수의 투항자를 만들어 냈다. 한편 "양키 제국주의자의 주구" 따위의 적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전단은 역효과이다. 그러나 "한국문제를 한국인끼리 해결하게 놔둬라. 뭐 하러 이역만리에 와서 아무 상관도 없는 우리에게 총을 쏘느냐?" 라는 북측의 심리전도 상당한 효과를 거두었다. 심리전 전담 부대를 운영하는 미군은 월남전, 걸프전, 미군의 파나마 침공 때도 미군은 어김없이 심리전을 실시하여 효과를 거두었다.

총이 없는 전쟁이기 때문에 심리전은 쌍방의 인명과 재산 피해를 줄인다. 손자 병법에 써 있는 대로, 백전 백승이 최고가 아니다. 정말 최고는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심리전은 싸우지 않고 적을 설득하여 굴복시키는 방법이므로 진정한 "최고의 전쟁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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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생로병사의 비밀-사랑, 과학으로 보는 Love,섹스,장수의 비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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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책에서 봐왔던 사랑한 대한 현실적인 이야기를 과학적으로 다시 한번 확인해보았다...
"아직도 가야 할 길", "나는 정말 너를 사랑하는 걸까"를 읽으면서 느꼈던 사랑에 대한 진실을 과학적으로 분석해놓은것을 보니까.. 더욱더 흥미진진...^^;;

그리고 한가지 더 짚어준것이 있다면... 사람들은 살면서 상대에 대해서 잘 안다고 생각을 한다... 물론 나도...

그러나 상대방에 대해서 묻고,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상대가 이걸 좋아하겠지... 좋아할꺼야... 라고 지래짐작으로 맞추어가는듯하다...

암튼 사랑에 대해서 좀 더 많은것을 배우게되었고, 좀더 생각하게 해 주었다... 이제 실전으로 옮기기만 하면된다...

알면 알수록 모르겠고... 배우면 배울수록 아리송한 사랑...

하지만 아름다운 사랑...

사랑에 대해서 카더라 통신이 아니라 과학적 접근을 통해서 이야기한 방송으로 첨단과학을 통해서 사랑에 빠지면 우리의 정신과 신체가 왜 변하는지 보여주는데, 사랑이 우리의 삶에 얼마나 위대한 선물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사랑의 속성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고...

재미있는 과학적 상식, 사실도 보여주는데, 사랑의 유효기간에 대한 이야기는 뇌안에서 발생하는 러브칵테일이라는 화학물질때문이라는데, 이것이 900일정도가 지나면 사라진다고...

섹스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는데, 일주일에 한두번정도 성관계를 가지는것이 면역력이나 스트레스, 노화방지 등에 좋다고...^^

뭐 이런 내용의 방송, 책, 다큐 등은 수업이 많지만, 감성적이고 감정적인 사랑을 이성적인 과학으로 해석하면서도 사랑의 근본적인 내용은 놓치지 않는 방송인듯...

1부 <900일간의 폭풍-사랑하면 예뻐진다>(3월15일 밤 10시)

사랑의 열정을 뇌과학으로 분석한다. 사랑에 빠지는 시간과 사랑의 유효기간 등을 통해 진정한 사랑의 순간을 분석한다.

2부 <SEX 37.2°-사랑하면 건강해진다>(3월22일 밤 10시)

성에 대한 갈망을 의학적, 진화론적으로 풀어본다. 신체적 접촉, 키스, 성관계가 즐거운 이유 등 성에 대한 갈망을 의학적, 진화론적으로 풀어본다.

3부 <사랑의 방정식 5 대 1-사랑하면 오래 산다>(3월29일 밤 10시)

오랜 세월을 함께한 부부가 닮는 이유, 생리적 의존도는 얼마나 높인지 등을 뇌의학과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살핀다.


방송일: 2005년 3월 22일 밤 10:00~11:00 (KBS 1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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