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촌 한옥마을은 예로부터 경복궁과 창덕궁, 종묘의 사이에 위치한 지역으로 서울 600년 역사와 함께 해온 한국의 전통 거주
지역이다. 조선 왕조의 자연관과 세계관을 보여주는 조선성리학에 기초하여 배치된 궁궐사이에 위치한 이 지역은 뛰어난 자연경치를
배경으로 거대한 두 궁궐 사이에 밀접하여 전통 한옥군이 위치하고 있으며, 수많은 가지모양의 골목길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600년
역사도시의 풍경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예로부터 원서동, 재동, 계동, 가회동, 인사동으로 구성된 이 지역은 청계천과 종로의
윗동네라는 이름에서 ‘북촌’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으며, 당시로서는 왕실의 고위관직에 있거나 왕족이 거주하는 고급 주거지구로
유명하였다. 곳곳에 아직까지 남아있는 몇 채의 한옥들은 이때의 명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북촌은 경복궁과 창덕궁, 종묘 사이에 위치한 곳으로
전통한옥이 밀집되어 있는 서울의 대표적인 전통 주거지역이다. 그리고 많은 사적들과 문화재, 민속자료가 있어 도심 속의 거리
박물관이라 불리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청계천과 종로의 윗동네라는 이름에서 '북촌(North
Village)'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어진 이곳은, 이름도 정겨운 가회동과 송현동, 안국동 그리고 삼청동이 있다. 사간동, 계동과
소격동 그리고 재동에는 역사의 흔적이 동네이름으로 남아 수백년을 지켜온 곳이기도 하다.
조선 말기에 이르러 사회, 경제상의
이유로 대규모의 토지가 소규모의 택지로 분할되었으며, 지금 볼 수 있는 어깨를 맞댄 한옥은 1930년도를 전후하여 변형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한옥형식의 변화는 도심으로 밀려드는 인구들로 인해 고밀도화 되어가는 사회상을 반영한 것이었다. 조선시대로부터
근대까지 이어지는 유적과 문화재들은 이 지역을 찾는 이들에게 이 지역의 역사를 이야기해주고 있다.
북촌지역의 가장 큰 특성은 지형과 물길이라 할 수 있다. 북촌의 지형은 남쪽이 낮고 북쪽으로 갈수록 경사가 심해지면 네 곳의
골짜기가 형성되어 있다. 물길은 계곡을 따라 흐르며 길들은 물길과 나란히 형성되어 있다. 따라서 길의 형태는 물길을 따라
자연스럽게 남쪽으로 향하고 있으며 이는 오늘날까지도 북촌의 주요 남북가로를 이루고 있는 삼청동길, 가회로, 계동길, 원서동길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한양의 중심부,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자리잡고 있고 북악과 응봉을 잇는 산줄기의 남사면에 위치하고 있어
지리적으로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는 북촌은 예로부터 권문세가들의 주거리로 자리매김 해왔다. 1906년 호적자료에 따르면 북촌
전체인구 10,241명(1,932호) 중 호주의 신분에 따른 구분에서 양반과 관료가 43.6%를 차지하고 있어 권문세가들의
주거지로 양반들의 주택들과 관료들의 집들이 중심을 이루는 지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권문세가들의 주거지로서의 북촌의 위상은
개화기와 일제강점기 시절에도 이어져 박영효와 김옥균 등 개화파들과 민대식(민영휘의 아들) 등 여흥민씨 세력들이 북촌에 많이
거주하였다. 또한 일제강점기 때 많은 독립운동가들의 거주지이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때 도시로의 인구집중 현상은 서울의 주택난을 가중시켰고 이러한 주택난에 따라
민간에 의해 진행되는 구획형 개발이 나타났다. 주택의 매매를 통해 이윤을 얻고자 하는 주택경영회사들이 등장하면서 1912년 이후
주택난으로 인해 중대형 필지의 분할을 통해 이전과는 다른 형태의 한옥들이 급속하게 건설되었다. 현재 북촌의 대표적 한옥밀집지역인
가회동 31번지, 11번지, 삼청동 35번지 일대 등도 모두 이때 주택경영회사에 의해 집단적으로 건설된 한옥주거지들로서 대규모로
건설된 후 분양되는 방식으로 공급되었다. 이 시기 건설된 한옥들에는 유리와 타일 등 이전에 쓰이지 않던 새로운 재료가 사용되었고
평면이 일정부분 표준화되었으며 가로체계 등과 함께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이전의 한옥과는 차이가 있다.
이러한 한옥 주거지는 해방이후 1960년대 초반까지 지속적으로 건설되어 학교 및 공공시설로 남은 몇 개의 대형부지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지역이 한옥들로 채워졌다.
조
선시대의 상류주거지에서 1930년대 한옥주거지, 그리고 1980년대까지의 한옥보존지구를 거쳐 2000년대 북촌은 현대와 전통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발전하고 있다.
기존의 전통한옥 공간에 현대적인 건축요소를 가미하여 모던한 세련미를 살리는 한편, 한식집, 한복집, 전통공방 등 기존의 정형화된
내용을 벗어나 카페, 레스토랑, 부티크, 갤러리 등이 한옥의 껍질을 입고 들어서기 시작했다.
삼청동을 중심으로 시작된
이 변화의 물결은 점차 북촌 전체로 퍼지고 있다. 북촌 특유의 고즈넉한 공간에 스틸과 유리 등을 이용하여 재해석된 전통한옥 등과
초현대적인 미니멀 건물들이 미묘한 긴장을 이루며 서울의 가장 앞서가는 문화 공간 중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한옥레스토랑에서 데이트를 즐기는 젊은 커플, 아기자기한 한옥카페와 액세서리 상점을 담기 위해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젊은
아마추어 사진작가들의 모습은 이제 북촌에서 낯선 풍경이 아니다.
1970년대 :
학교이전과 북촌경관의 변화
1960년대 후반기부터 1970년대 전반기에 걸쳐서 시행된 영동지구 개발사업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강남개발이 이루어짐에 따라
강북지역의 인구가 강남으로 대거 이동하면서 강북지역의 학교들도 강남지역으로 이전하게 되었다.
1976년 경기고가 이전하자 그 건물은 정독도서관으로 이용되었고, 1978년 휘문고가 이전하면서 1983년 그 자리에 15층의
현대건설사옥이 신축되었으며, 창덕여고가 1989년 이전한 뒤에는 헌법재판소가 들어섰다. 학교가 이전하면서 신축된 대규모 시설들은
북촌지역의 경관을 크게 바꾸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1980년대 : 경직된 한옥보존, 북촌길 개설
학교 이전지 개발에 따른 변화가 확산되면서 한옥의 보존필요성이 대두되었다. 1976년 민속경관지역 지정 논의 이후 1983년
제4종미관지구 지정으로 본격적인 한옥보존정책이 시행되었다. 그러나 이 시기의 한옥보존정책은 주민들과의 논의나 합의없이 행정주도로
시행된 것이며, 한옥을 문화재와 같이 엄격하게 규제하는 방식이었고, 또한 북촌길을 확폭하면서 많은 한옥들을 철거하는 등 이중적인
행정운영으로 주민들의 불만을 가져왔다.
1990년대 : 한옥멸실 및 다세대 건축 확산
주민들의 계속되는 건축기준 완화요구에 따라 서울시는 1991년 5월 주택의 경우 1층으로 규제하던 건물높이를 10미터 이하(또는
3층 이하)로 완화하였는데, 이를계기로 다세대 주택의 신축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후 1994년에는 경복궁 주변의
10미터 고도제한을 16미터로 완화하고 최대 5층까지 건축을 허용하면서 원서동을 비롯한 북촌 전역에서 한옥철거 후 다세대
주택건설이 확산되어 북촌경관이 급속히 훼손되기 시작하였다.
2000년대 : 북촌 가꾸기를 위한 새로운 시도
급속도로 진행되는 한옥멸실과 다세대주택의 신축 등으로 북촌경관이 변해가고 주거환경도 악화되어가자 1999년 주민조직인
'(사)종로북촌가꾸기회'의 요구로 서울시정개발연구원에서는 주민들과 전문가, 서울시와 더불어 새로운 북촌 가꾸기 정책을 수립하였다.
북촌의 보전과 관리를 위해 기존의 일방적 규제와는 달리 주민들의 자발적 의사에 기초하는 한옥등록제를 근간으로하고, 현대적
생활요구를 수용하면서도 한옥 고유의 아름다움이 유지되도록 한옥수선을 유도, 지원하고 관리하고자 하였다. 또한 주민들의 적극적
참여와 활동으로 마을의 환경을 개선해가고, 거주지로서의 매력을 증진시켜가는 과정을 통해 북촌을 가꾸어 가고자 하는 것으로
2001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북촌은 백악과 응봉을 연결하는 산줄기의 남쪽 기슭에 자리하고 있어 예로부터 풍수지리적으로 가장
좋은 곳이었다. 그리고 북쪽으로 삼청공원과 백악산이 펼쳐져 있어 도심에서는 보기 드문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또
한 북촌은 북쪽이 남쪽보다 높아 겨울에 따뜻하고 배수가 잘 될 뿐만 아니라 남쪽은 넓게 트여 있어 남산이 보이는 좋은 전망을
갖추고 있다.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계곡의 깊이가 깊어지고, 남쪽은 북쪽보다는 비교적 완만한 지형을 유지하고 있다.
북촌은 경복궁과 창덕궁의 율곡로와 삼청공원으로 둘러싸인 가회동, 계동, 삼청동, 원서동,
재동, 팔판동 일대(1,076,302㎡)를 말하며 현재 역사문화미관지구로서 제1종 일반주거지역 도시계획을 수립 중에 있다.
북촌주변은 후면에 해발 463미터의 백악산과 삼청공원이 위치하고 있으며, 서쪽에는 조선시대 정궁인 경복궁(사적 제117호)이
있고 동쪽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창덕궁(사적 제122호)이 있다.
북촌 지역이 모두 한옥으로 이루어져 있던 1960년대와 달리, 1990년대 이후 급속하게 들어선 다세대가구 주택 때문에 많은
수의 한옥이 사라졌지만, 일부지역은 양호한 한옥들이 군집을 이룬 채 많이 남아 있다. 그 중에서도 가회동 31번지와, 33번지
일대 그리고 가회동 11번지 일대는 대표적인 한옥밀집지역이다.
북촌은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위치한 조선시대 양반들의 거주지가 형성되어 있었던 유서 깊은
지역이다.
북촌지역의 역사적 자료는 사적5곳, 서울시 민속자료 4곳, 유형문화재 3곳, 문화재자료 1곳 이외에 계동길, 석정보름우물과
광혜원터 등이 있고 우리나라 최초의 목욕탕인 중앙탕 등 흥미로운 장소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조선시대부터 형성되었던 옛길과 물길의 흔적이 남아 있고, 1900년 이후부터 급속하게 형성된 한옥군 등 많은 자원들이
분포되어 있다.
1750년 도성도, 1892년 수전전도, 1927년 경성시가도, 그리고 2000년 이후인 현재 지도까지를 살펴보면 계동길,
가회로, 삼청동길, 창덕궁길 등이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많은 역사유적들과 더불어 매우 중요한 자원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외에도 경복궁과 마주하고 있는 삼청동길 주변에는 많은 갤러리가 늘어서 있고, 화동길과 더불어 각종 먹거리 자원과 특색 있는
카페가 자리잡고 있으며, 원서동에는 전통 기능의 보유자 및 예술인들이 모여 살고 있다. 최근에는 건축가, 미술가들이 북촌의 역사성
속에 함께 하고자 북촌 내부에 작업실과 사무실 등을 개설하고 있으며 이러한 현상들은 북촌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와 내용을
발전시키는 하나의 현상이기도 하다.
골목풍경을 찍는 외국인과 블로거들이 꽤 많이 보이는듯....
가회동 성당.. 인근에 가회박물관, 통림매듭박물관들이 있다는....
친구의 회사... 회사도 건물이 폼나게 생겼다는...
이 정도면 많이 개량화된 상태로... 80,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많이 보이던 집의 대문들.... 그립구만...
패밀리마트
정말 놀라웠던것은 부동산까지도 일반부동산과는 차원이 다르다...
종로부동산인데, 처음에 앞을 지나가면서는 무슨 컨설팅 회사나 고급 사무실인줄 알았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