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세미나 - 글로벌 경제의 패러다임과 한국의 대응, 조순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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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 제목이 좀 거창한만큼 좀 방대한 분야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경제전반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돕는 강연...
이번 경제위기는 그저 금융위기로 인한 결과로 보는것이 아니라, 선진국들의 경제가 성숙(노화)되어 가면서 일어나는 현상이자, 경제 자체의 위기로 볼수 있다고...
선진국, 개발도상국, 후진국의 경제 성장 페러다임을 통해서 선진국의 고용문제나 성장둔화를 후진국과 비교해서 왜 그러할수 밖에 없는가를 기차를 이용해서 설명을 해주신것은 쏙쏙 들어온다...
점점 경제가 발전해 가지만, 기계화, 자동화 등으로 지하철에는 이제는 직원을 찾아볼수 없는 현상은 전산업분야로 퍼져나갈것이고, 경제가 발전해 갈지라도, 고용문제는 점점 더 심해질것이고, 선진국일수록 더욱더 대책이 없고, 현재와 같이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입장에서는 더 큰 문제가 생길수 밖에 없다고...
경제고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는 GDP, GNP, 국가경제 성장을 위해서 있는것이 아니라, 결국에는 사람이 잘 살기 위해서 존재하는것인데, 이런 상황에서 성장촉진보다는 사람을 위해 고용을 위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바뀌어야 한다는 말씀...
그리고 경제를 살린다고 무조건 돈만을 기업들에게 퍼주는것은 어찌보면 접어야 할 사업을 접지못하고 질질끌면서 기업을 더 악화시킬수도 있으니 잘 고려해야 한다는 말씀, 출구전략이나 다양한 분야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해볼수 있게 해준 멋진 강연인듯 하다.

경제세미나 홈페이지 - http://www.kbs.co.kr/radio/1radio/sunseminar/notice/notice.html


▷ 주 제 : ‘글로벌 경제의 패러다임과 한국의 대응’
- 주요 내용 브리핑 (주최: 사단법인 도산 아카데미)

강연자: 조순 서울대 명예교수(전 부총리)

현장녹취: 이덕우 경제전문 리포터(011-9135-2151)

<주요내용>

각국 정부는 모두 재정 금융을 총동원해서 무너져 내리는 경제를 구제했다. 그 결과 지금은 금융이 소생하고 실물경제도 어느 정도 되살아 났다.

위기가 일단 끝난 지금, 나라마다 출구(出口)의 시기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 출구의 시기를 정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어 느 나라를 막론하고 출구를 하면, 당장은 약간이나마 경제 침체를 면할 수 없고, 그것이 심하면 침체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출구 시기를 무작정 늦추면, 출구의 충격은 그만큼 커질 것이며 침체의 가능성 역시 높아질 것이다.

글로벌 경제는 마냥 출구를 망설이면서 재정.금융의 확대를 계속할 수도 없다. 돈을 계속 풀면 실물 부문이 좋아지기 전에 자산 가격의 거품이 일어나서, 인플레, 경우에 따라서는 디플레를 유발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미국을 비롯한 선국에서는 곧 출구 전략을 집행하라는 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거기에선 이미 부분적으로 재정 적자를 줄이고 금리의 일부를 올리는 등, 알게 모르게 출구 전략을 쓰기 시작했다.

우 리나라는 지난해 금융위기를 잘 극복했다. 금년 2010년엔 성장률이 5% 이상일 것으로 정부는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 경제가 그렇다시피 우리 경제의 경제 위기 극복도 재정 금융의 출동에 의한 것이었고, 경제의 펀더멘탈의 개선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우리나라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GDP 성장이 아니라 고용에 있다. 재정지출로 유지되는 고용은 오래갈 수 없다.
머지 않은 장래에 고용 대책도 출구를 나와야 한다.

이러한 국내외 경제 정세 변화에 비추어, 나는 앞으로는 경제 운영의 중점을 GDP보다는 ‘사람’에 두어야 한다고 본다.

성장 촉진 보다는 고용 증가를 중요시 하고 1인당 소득보다도 국민 생활을 중요시 해야 한다.

경제의 패러다임뿐 아니라 사회,교육,행정 등의 패러다임도 바뀌어져야 한다. < 이하생략 >



출생     1928년 2월 1일
한국 강원도 강릉군
국적     대한민국의 국기 대한민국
학력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직업     경제학자, 정치인

강원도 강릉 출신으로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고, 미국 보든 대학에서 석사,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54년 육군사관학교에서 교관으로서 영어를 강의했고, 미국 유학을 마치고 1968년부터 1988년까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 교수로 재직했다. 케인즈 학파의 일원으로서 많은 학문적 업적과 제자를 남겨 한국의 경제학계에서 "조순학파"라고 일컬어질 정도의 인맥을 구축하였다.

육군사관학교 교관 시절 노태우 대통령을 가르쳤던 인연으로 1988년 노태우 정부에 입각하여 1990년까지 부총리겸 경제기획원 장관을 지냈다. 이후 1992년부터는 한국은행 총재를 지냈고, 한문고전에도 능했기 때문에 1993년부터 1994년까지 도산서원 원장을 지냈다.

1995년 정계에 입문하여 야당인 민주당에 입당, 초대 민선 서울시장에 당선되었다. 김대중의 정계복귀 이후, 민주당을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지내다 1997년 다시 잔류 민주당의 대선후보로 영입되어 대선레이스에 나섰다. 그러나 군소정당의 세불리를 느끼고 신한국당의 이회창과 연합하여 합당, 한나라당의 대표가 되었다.

2000년 제15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에서 공천을 받지 못한 김윤환, 이기택 등과 함께 민주국민당을 구성했으나 당선되지 못하고 정계를 은퇴했다. 이후 명지대학교 석좌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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