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뉴턴 팩,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 (낭송 임홍식, 김영선)

 
반응형

로버트 뉴턴 팩,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 (낭송 임홍식, 김영선)
 
 

로버트 뉴턴 팩,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

 

그때 부엌문 앞에 서 있던 엄마가 불렀다. 나는 핑키를 그대로 놔두고 엄마를 향해 언덕배기를 뛰어올랐다. 엄마는 젖은 손을 앞치마에 닦고 있었다.

“가서 다람쥐 한 마리만 잡아 오너라.”

엄마가 웃는 얼굴로 말했다.

나는 집으로 들어가서 난로 위에 걸려 있는 22구경 소총을 꺼내고 총알을 주머니에 넣은 다음 밖으로 나왔다. 보통 때 같으면 아주 좋아했겠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했다.

폐광을 지나 산등성이 서쪽 끝으로 가면 호두나무가 많았다. 가을이라서 호두가 먹음직스럽게 열려 있을 터였다. 나는 산등성이 위로 올라가 나무 사이를 살펴보면서 뱃살이 통통하게 오른 회색 다람쥐를 찾았다.

근 처의 떡갈나무 높은 곳에 마른 잎과 가지로 지은 둥근 갈색 둥지가 있었다. 그 주위로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지만 나는 군인처럼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서서 기다렸다. 눈동자를 돌려 다른 나무 꼭대기도 살펴봤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회색 다람쥐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숲 속으로 좀더 들어가 그루터기에 걸터앉았다. 계곡을 내려다보니, 사방에 노란 단풍이 흠뻑 들어 있었다. 누군가가 달걀을 깨뜨려 온통 흩뿌린 것 같았다.

바 로 그때 다람쥐 소리가 들렸다. 한 놈이 머리 위 나뭇가지에 앉아 기다란 꼬리를 흔들면서 칙칙칙 소리를 내고 있었다. 소금 뿌리는 소리와 비슷했다. 총은 벌써 장전되어 있었다. 나는 총을 들어 앞쪽 가늠쇠를 뒤쪽에 V자 모양으로 새겨진 부분에 갖다 댔다. 가늠쇠가 다람쥐를 정확히 겨누자 방아쇠를 당겼다.

발 목에 매여 있는 밧줄을 확 잡아채기라도 한 것처럼, 다람쥐가 가지에서 떨어져 수북이 쌓여 있는 낙엽 위로 나뒹굴었다. 가까이 다가갔을 때도 다람쥐는 여전히 몸을 비비 틀며 경련하고 있었다. 나는 다람쥐 뒷다리를 움켜쥐고 몸체를 흔들어 나무 밑동에 세게 내리쳤다. 그러자 다람쥐는 등뼈가 으스러지면서 죽었다.

나 는 집으로 돌아가, 부엌문 앞에서 위장을 다치지 않게 하려고 조심하면서 다람쥐 배를 칼로 쨌다. 아직 따뜻한 위장을 꺼내 부엌 싱크대로 가져가 물로 깨끗이 씻었다. 엄마는 깨끗한 하얀색 손수건을 미리 준비해 두고 있었다. 나는 위장을 찢어 잘게 부서진 호두 알맹이들을 손수건 위에 쏟아낸 다음, 잘 마르도록 펼쳐 놓았다. 엄마가 손수건을 난로 위에 있는 따뜻한 오븐에 올려놓았다.

초 콜릿 케이크는 아직 눈에 띄지 않았다. 하지만 어딘가에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만약 케이크를 만들지 않았다면 다람쥐를 잡아 오라고 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밖으로 나가 나머지 다람쥐 고기를 조각내서 닭들에게 던져 주었다. 그러자 닭들이 커다란 조각을 둘러싸고 싸움질을 벌였다. 커다란 놈이 조그만 놈을 사정없이 밀어붙였다. 가장 힘이 없는 놈들은 조그만 조각도 먹을 수 없었다. 한참 생각에 잠겨 있는데, 아빠가 등 뒤로 다가왔다. 우리는 커다란 닭이 커다란 고깃점을 먹고, 아주 조그만 놈은 입도 못 대고 구경만 하는 모습을 같이 지켜보았다.

“저건 불공평해요. 그렇지 않아요, 아빠?”

“로버트, 어차피 이 세상은 공평한 곳이 아니야.”

  

출처 : 로버트 뉴턴 펙,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 사계절)

원작 : 로버트 뉴턴 펙

1928년 미국 버몬트에서 태어나 자전적인 어린 시절을 그린 첫 작품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작품활동 시작. 지은 책으로 『밀리의 소년』『토끼들과 빨간 코트』『수프』 등이 있음.

낭독 :

임홍식

배우. 연극 ‘맥베드’ ‘아마데우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로미오20’ 등에 출연.

김용선

배우. 연극 ‘덧치맨’ ‘1月 16日에 생긴 일’ ‘메디아’ ‘나비’ 등에 출연.

음악 : 배기수

 
 
 

엄 마가 웃는 얼굴로 소년 로버트에게 다람쥐를 잡아오라고 말하네요. 소년은 다람쥐에게 총을 쏘고, 경련을 일으키고 있는 다람쥐의 뒷다리를 잡고는 나무 밑동에 내리쳐 죽입니다. 그런 다음 배를 갈라 다람쥐 위장 속에 들었던 호두를 꺼냈어요. 그걸 손수건 위에 부어서 말리고 있군요. 이제 곧 호두가 든 초콜릿 케이크를 먹을 수 있겠지요? 죽은 다람쥐는 조각내서 닭에게 던져주고 말이에요.

멋진 동화 아닌가요? 과장된 잔인함도 그리고 위선적인 감상도 없어요. 순수한 소년의 세계와도 아무런 모순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단지, 있는 그대로의 엄중하고 자연스러운 삶이 있을 뿐이지요.

왜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은 날이냐구요? 아빠는 돼지 잡는 사람인데, 그날은 아빠가 죽은 날이니까요. 소년 로버트라면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라고 수긍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저는 그렇지 못해요. 이런 동화를 읽으면서 성장하지 못했고, 또 무엇보다 그것이 죽음이 아니라 죽임일 때는 말이죠.

 

2009. 7. 9 문학집배원 은희경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