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두 크리슈나무르티 -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반응형

영풍문고 수필 스테디셀러부분의 책을 보다가 푹빠져서 반정도보고, 집에 사가지고 왔던 기억이 난다. 저자는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의 헬렌 니어링의 옛남자친구이기도 하다...^^;;
아무튼 인생을 살아가는데 생각해보지 못했던 일들, 문제들을 다시 한번 돌이켜 생각하고, 고민하게 해준다...
숨가쁘게 살아가는 현대에 잠시 나를 멈추게 하고, 다시 한번 인생을 돌이켜보게 해주었던 책...
인생은 참 살기 힘들고, 어렵다... 하지만 그래도 살아야 하고, 살아볼만한것일 것이다.


<도서 정보>
제   목 :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저   자 :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저/정현종 역
출판사 : 물병자리
출판일 : 2002년 04월
구매처 : 영풍문고


<미디어 리뷰>
"과거기억에 머물지말고 미래희망에 속지마라"
동아일보 책의향기 구본형 (변화경영전문가) | 2002-06-15

책이란 묘한 것이다, 책방에 널린 즐비한 책들 속에서 이 책을 골라 쥐는 순간 내게 어떤 떨림이 있었다. 이 책을 옮긴 정현종씨가 30년 전, 외국의 한 책방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물 같고 숨같은’ 책임을 감지했을 때와 모름지기 비슷한 떨림일 것이다. 좋은 책은 발견하는 순간 느끼게 된다. 지나가는 사람들 속에 눈에 띄는 얼굴이 있듯, 좋은 책은 죽은 책들과 달리 살아서 숨쉬고 있는 자신을 감출 수 없다.

이 책을 열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마음과 만나게 된다… 오랜 세월 우리들은 선생에 의해, 권위자들에 의해, 책과 성인들에 의해 마치 숟가락으로 떠 먹여지듯 양육되었다. 그리하여 원래의 모습 그대로, 그 명징함으로 남지 못했다. 우리 각자는 ‘과거로 채워진 창고’다. 우리가 어제의 죽은 권위로 자신을 바라 볼 때, 우리는 살아있는 순간의 아름다움을 알 수 없게 된다. 권위에서 자유롭다는 것은 어제의 모든 것이 죽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유란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마음이 사회로부터 자유로울 때 고독은 놀랄 만큼 아름다운 것이 된다. 우리는 내적으로 가난해야한다. 가난이란 사회적 고독이다. 사회로부터의 자유를 위하여 자기의 둘레에 벽을 쌓고 스스로를 봉쇄하는 것은 고립이다. 이것은 고독이 아니다. 고립은 우리를 구할 수 없다. 그러나 고독은 다른 것이다. 고독은 과거에 대한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이다,

또한 미래는 우리가 즐겨 숨는 도피처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평화롭게 안주할 내일은 없다. 내일은 내일의 고뇌로 가득할 것이다. 시간은 우리 마음 속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막는 사기꾼이다. 시간은 ‘생각과 행동 사이의 간격’이다. 우리는 생각하고 있으나 아직 행동하지 못할 때 갈등을 겪게 된다. 그래서 시간은 슬픈 것이다.

그리고 또 이렇게 말한다. 배운다는 것은 과거가 없는 끊임없는 운동이다. 과거의 것임에도 끊임없이 현재를 지배하는 관념과 기억으로 부터 자유로워질 때, 우리는 참 잘 배우고 있는 것이다, 배고플 때, 우리는 이 배고픔을 어제의 배고픔과 비교하지 않는다. 어제의 배고픔은 기억일 뿐이다. 비교하지 마라. 만일 내가 나를 다른 사람과 저울질하고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해 몸부림친다면 나는 내 자신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나는 하나의 환영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해 자신을 파괴한다.

이 책은 천천히 읽어야 한다. 비가 나뭇잎에 오래 쌓인 먼지를 씻어내듯 그렇게 비와 나뭇잎으로 만나야한다. 이 책은 아름다운 책이다. 그러나 시시한 명상 책이 아니다. 과격하고 무자비한 책이다. 과거와 미래를 죽임으로써 오늘을 오늘답게 만들라고 선동한다. 매순간 죽어야 매순간 새롭게 살아날 수 있다고 말한다. 혁명은 거듭됨으로 비로소 혁명이 될 수 있다.




<정호의 정리>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사회 속에서 어떤 지위를 갖고 싶어한다. 사회란 원래 그렇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존경할 만한 지위에 있는 사람은 아주 정중하게 대접받고 반면에 아무 지위도 없는 사람은 천대받는다. 세상 사람은 누구나 사회에서든 가정에서든 어떤 지위를 원하고 또는 신의 오른팔 위에 앉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 지위라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그건 아무 지위도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나 단상에 앉지 않으면 안 된다. 사실 우리는 불행과 비참의 소용돌이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겉으로 보기에 대단한 인물로 영겨지는 것은 매우 만족스러운 일이다. 지위 · 위세 · 권력을 얻으려는 갈망, 사회로부터 뛰어난 존재로 인정받고 싶어하는 갈망은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고 싶은 바람이며, 이 지배에 대한 욕구는 공격의 한 형태다. 자기의 성자다움에 비추어 어떤 지위를 찾는 성자는, 농가의 마당에서 부리로 모이를 쪼고 있는 닭처럼 매우 공격적이다. 그러면 이 공격성의 원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공포다. 그렇지 않은가?

공포는 삶에서 가장 커다란 문제 가운데 하나다. 공포에 사로잡힌 마음은 혼란 속에, 갈등 속에 살며, 따라서 난폭하고 뒤틀리고 공격적이다. 그것은 그것 자체의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으며, 위선을 키운다. 공포에서 자유롭지 않는 한, 가장 높은 산에 올라가고 모든 종류의 신을 만들어내는 일에서 자유롭지 않는 한, 우리는 언제나 어둠 속에 있게 될 것이다.

지금처럼 두려움을 낳는 경쟁적 교육을 받으며 부패하고 우매한 사회에서 살 때 우리는 어떤 공포에 눌리게 되는데, 이러한 공포는 우리의 나날을 비뚤어지고 뒤틀리고 무디게 만드는 무서운 것이다.

육체적 공포가 있지만, 그것은 우리가 동물들로부터 물려받은 반응이다. 하지만 우리가 여기서 생각하고자 하는 것은 심리적 공포다. 뿌리깊은 심리적 공포를 이해하면 동물적 공포와 맞설 수 있는 데 비해, 동물적 공포를 먼저 생각하는 것은 심리적 공포를 이해하는 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p.63~64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