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빵꿉는 타자기의 폴 오스터의 책인데.. 그때의 느낌과 비슷한 분위기의 우울하고, 암울한듯한 느낌의 책...
처음에는 갑자기 죽은 아버지를 회상하면서 그 아버지의 과거와 감정이입이 조금은 색다르면서 묘한 느낌이 들었다.
뒷부분의 기억의 서는 무슨 이야기인지 몽환적인 느낌이 들기도 하면서, 왜 이리도 이해가 안가고, 귀에 안들어 오던지...
고독의 발명이라는 제목은 기억의 서중에 한부분이고, 아라비안나이트의 천일야화이야기도 색다른 느낌으로 나온다는...
<도서 정보>제 목 : 고독의 발명
저 자 : 폴 오스터 저/황보석 역
출판사 : 열린책들
출판일 : 2001년 7월
책정보 : 페이지 307 / 400g ISBN-10 : 8932903905
구매일 :
일 독 : 2008/2/1
재 독 :
정 리 :
<이것만은 꼭>
<책 읽은 계기>
<미디어 리뷰>
『고독의 발명』(1982)은 작가가 30대 초반에 쓴 초기작으로 그의 실험정신이 강하게 투영되어 있다. 이 작품은 <보이지 않는 남자의 초상화>와 <기억의 서>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자는 가족사에 대한 전기라고 할 수 있고, 후자는 작가의 자유로운 사색이 담긴 글이다.
작가는 어느날 갑자기 아버지의 죽음을 맞으면서 그의 뇌리 속에 투명 인간 같은 존재로 남아있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정리해서 붙들어 두어야 한다는 의무감과 그것을 언어로 표현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보이지 않는 남자의 초상화>에서 그는 아버지의 행동들과 괴벽들을 회상하고 이런 기억의 파편과 인상들을 재구성한다.
두 번째 <기억의 서>는 작가가 고독, 기억, 현재, 운명, 아버지, 아들, 글쓰기, 침묵 등에 대해 자유로이 사색한 글이다. 현대 프랑스 문학의 실험적인 경향이 느껴지는 이 글을 읽다보면 작가의 연상이 자유롭게 펼쳐지는 일기를 훔쳐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
yes24서평 |
yes24서평 - 감추기
나는 며칠 후면 휴가를 내어 시골로 내려갈 예정이다. 행정 관료로 한평생을 보내고 정년 퇴직하여 그후 7년여 동안 한적한 시골에서 늙어가시는 아버지를 만날 것이다. 나는 어머니와의 관계보다 아버지와의 관계가 더 문학적인 들끓음을 내포하고 있다고 믿는다. 어찌 그러지 않을까? 태생적으로(우리 모두 어머니의 자궁을 빌려 태어난다는 자명한 이치!) 어머니보다 한 걸음 뒤에 서 있는 모습이 자연스런 아버지의 모습들일 것이고, 바로 그 한 걸음이라는 거리가 꿈꾸기가 가능한 문학이라는 예술일 테니까. 며칠 전에 읽은 <고독의 발명>은 이런 나의 상념을 더 복잡하게 만든 작품이었다. 천재 작가로 밖에 달리 표현할 길 없는, 현대적이라고 하기에는 온갖 문화적 장르(시, 평론, 영화, 시나리오, 소설, 에세이)에서 전방위적으로 그 천재를 발휘해서 포스트모던한 작가라고 부르고픈 폴 오스터의 신작(우리나라 출간에 기준하여. 원서는 1982년 출간)인 <고독의 발명>은 '아버지'와 '글쓰기'에 대한 놀라운 기록이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그의 가장 뛰어난 소설인 <뉴욕 삼부작>을 이 난에 소개하려 했는데 조회를 해보니 아쉽게도 절판중이었다. 독자 분들은 <뉴욕 삼부작>을 한번 구해보기 바란다. 그 대가가 반드시 있을 것이다. 그 대가란 다름아닌 폴 오스터의 언어와 내러티브에 관한 뛰어난 알레고리의 발견이겠지만. 이런 다방면의 재능을 지닌 작가이니만큼 그의 소설들은 독특한 개성과 향취를 내 폴 오스터라는 작가의 존재는 미국 내에서도 유니크하다. 그 때문인지 미국은 이 작가는 알아주지 않았고 결국 그는 미국을 떠나 주로 유럽(프랑스)에서 살고 있다. 그의 소설 <빵굽는 타자기>에는 젊은 시절의 프랑스에서의 방황이 잘 그려져 있다. 프랑스어 번역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했던 작가는 프랑스 체제가 큰 문학적 자양분이 되었음을 솔직히 고백하고 있다. 사실은 이런 허두 없이 바로 <고독의 발명>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이런 전술한 사실들에 대한 이해 없이는 그에게 잘 접근하기 어렵다는 점을 변명 삼고 싶다. 사실 이 책은 어느 작품보다도 폴 오스터 개인의 삶의 기록이 투명하게 드러난다. 그 개인의 삶이라 함은 바로 아버지에 투영된 자신의 모습(그 아들은 한 명의 자식을 둔 아버지가 되어 있다). 이혼한 후 혼자 살고 있던 아버지가 죽었다. 작가가 표현한 대로 "서른넷에 결혼, 쉰둘에 이혼한 남자. 기혼남도 아닌 또 이혼남도 아닌 어쩌면 막간극에 결혼 생활을 한 평생 독신 남자" 같았던 남자였기에 가족 그 누구에게도 따뜻한 사랑과 이해를 표현하지 못한 무뚝뚝한 아버지였다. 그 아버지의 어머니인 '나'의 할머니는 그 옛날 광기에 사로잡혀 할아버지를 총으로 쏴서 죽인 이력이 있다. 이런 어두운 집안 내력은 아버지의 뇌에 어떤 충격을 가한 것은 아닐까? 사랑을 잘 베풀지 못하고 언제나 부자연스러웠던 그 아버지는 어느 날 나에게 어디서 읽은 것인지 아니면 지어낸 것인지 모를 이야기를 신명 나서 다정하게 들려준다. 그때 나는 이 책을 통해 가장 중요한 전언인, '정말로 중요한 것은 증거에 관계없이 인간이 느끼는 감정의 핵심에 도달하는 것'에 이른다. "… 아버지가 죽으면 그 아들은 자신의 아버지이자 아들이 된다. 그는 자기의 아들을 보고 그 아이의 얼굴에서 자신을 본다. 그리고 아이가 자기를 볼 때 무엇을 보는지 상상하면서 자신이 그 자신의 아버지가 되는 것을 알게 된다. …그를 감동시키는 것은 단지 그 아이의 모습도 아니고, 또 심지어는 자기 아버지 안에 서 있다는 생각도 아니다. 그것은 아이를 통해 보는 자신의 사라져 버린 과거이다." 이 책은 한 사람의 인간됨의 기록이다. 그 과정은 지난한 자기 갱생의 서(書)가 필요한 시간이면서, 또 '아버지 그늘 벗기'의 시도가 완성되는 기간이기도 하다. 자신의 불효에 대한 인식은 이처럼 긴 터널을 통해 어둠의 시절을 관통해온 다음에나 가능하다는 것을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이 언어의 천재는 몇 가지 난수표만을 던져줄 뿐 그 해답은 잘 보여주지 않는다. 사족으로 한 마디. 전철 안에서 폴 오스터의 책을 들고 있는 사람을 만나면 왠지 그와 몇 마디 말을 이어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작가는 이처럼 위대한 존재이다. 이런 작가가 이 지구상에 함께 있다는 사실이 어두운 밤 천둥, 번개가 들이치는 속에서도 얼마나 큰 위안을 던져주는 것인지. |
정혜윤 PD의 그들은? | 임순례 - 어떤 인물도 딱히 무엇이 될 필요는 없다는 것
<줄거리>
<책속으로>
보이지 않는 남자의 초상화
기억의 서
한 무더기의 흩어진 사진들로부터 1940년대에 애틀래틱 시티의 어느 스튜디오에서 찍은 속임수를 쓴 사진 한장. 그 사진에는 테이블 주위로 그가 서넛 앉아 있는데, 하나하나의 모습이 다른 각도로 찍혀서 처음에는 몇사람의 다른 남자들로 이루어진 집단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어둠과 완전히 멎은 듯한 포즈때문에 그 사진은 마치 강신회를 하려고 거기에 모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다음에는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 보는 동안 그 남자들이 모두 같은 남자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시작한다. 그 강신회는 진짜 강신회가 되고 그는 단지 자신을 불러내기 휘애 죽은자들로부터 자신을 도로데려오기 위해 거기로 온 것처럼. 그리고 자신을 복제함으로써 뜻하지 않게도 자신을 사라지게 한 것처럼 보인다. 거기에는 다섯명의 그가 있고 속임수를 쓴 사진술의 특성상 여러 자신 사이에 눈길이 마주칠 가능성을 배제되어 있다. 그 하나하나의 모습은 계속해서 허공을 응시하도록 운명 지워져 있지만 마치 다른 사람들의 눈길아래에 있는 것처럼,. 아무것도 보지 않고 있고 절대로 어느것도 볼수 없다. 그것은 죽음의 사진 , 보이지 않는 남자의 초상화이다--- p. |
이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 나는 글이 저절로, 무아지경 같은 감정의 분출로 떠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쓰겠다는 욕망이 너무 강해서 글이 저절로 씌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단어들이 아주 천천히 떠올라서 일이 아주 잘 풀리는 날에도 한두페이지 이상은 쓸수 없었다.---p.63 상처가 있었고 이제 나는 그 상처가 매우 깊다는 것을 실감한다.내가 그러리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글을 쓰는 행위는 나를 치유해 주는 대신 그 상처를 계속 벌려 놓았다.때때로 나는 그 상처의 고통이 내 오른손에 집중되어 있는 것을 느끼기까지 했다.--- p. |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