몌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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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정보>
제   목 : 몌별 - 차마 스쳐 지날 수 없는 사랑의 운명
저   자 : 구효서
출판사 : 세계사
출판일 : 2001년 01월
구매처 : 오디오북
구매일 :
일   독 : 2004/11/4
재   독 :
정   리 :


<정호의 생각>
몌별이라.. 언뜻 뜻이 명확히 다가오지 않는 제목 몌별은 소매 몌(袂)자에 나눌 별(別)자를 쓴 한자어로 ‘소매를 붙잡고 놓지 못하는 안타까운 이별’이란 뜻.
작가는 책 서두에 ‘소매만 스치듯 섭섭히 작별하는 것’이라 주석을 달아놓았다.
아주 오래간만에 읽어본 소설책...
읽는 내내 선생님과 나의 모습을 매치되었다.
과연 지금 내가 선생님처럼 한낮 스쳐지나간 인연에 집착하고 있지는 않은지...
또는 그 지나간 인연으로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는것은 아닌지,
지나간 일들은 앞으로 다가올 날들에 좀 더 발전적인 일이 되면 좋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 지나간 인연에 폐인이 되어 망가진 사람, 발분망식하여 그것을 승화시키는 사람...
암튼 다시 한번 나를 돌이켜보고, 여자...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든다..
꼭 이런 여자들이 있다... 희망만 주고, 쫓아가면 도망가고, 포기하면 따라오고...
난 좀 뭐라고 할까... 여자들을 쫓아다니거나 꼬시거나 이런거에는 쨈병이다...
그냥 다가오면 잘해주고, 좋아해주고...
이런 방식에 나 자신 스스로에게 많은 상처를 입히고 있다는 생각을...
몌별을 보면서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인연... 이년...

언젠가.. 인연이 오리라... 믿는다...



<미디어 리뷰>
사랑의 다른쪽은 이별인가요

지난해부터 이별 연작을 써온 작가 구효서가 그 연작의 하나인 짧은 장편소설 『몌별』(세계사·8,000원)을 내놓았다. 몌별이라∼. 언뜻 뜻이 명확히 다가오지 않는 제목 몌별은 소매 몌(袂)자에 나눌 별(別)자를 쓴 한자어로 ‘소매를 붙잡고 놓지 못하는 안타까운 이별’이란 뜻. 작가는 책 서두에 ‘소매만 스치듯 섭섭히 작별하는 것’이라 주석을 달아놓았다.

그렇다면 소설의 주제는 사랑 아니면 이별? “오른편 것은 왼편에서 바라보아야 하듯 사랑은 숙명적으로 이별의 자리에서 바라보게 되어 있다”고 말하는 작가는 사랑이 이미 저만치 아득해진 시점에서 과거의 사랑이야기를 ‘몌별’이 주는 어감처럼 아련하게 건져올린다.

‘그간의 일을 아룁니다’라는 여주인공 ‘서현’의 편지글로 『몌별』은 시작된다. 7년 만에 대학시절 농촌 봉사활동을 갔다가 만난 초등학교 교사 ‘강선생’을 찾아가는 ‘서현’. 갑자기 왜 찾아가는지 알 수 없지만 해마다 여름만 되면 무언가 주먹만한 것이 가슴 한쪽에서 숨을 쉬어온 것도 같다. ‘서현’과 ‘강선생’?농활기간의 만남과 그 이듬해 한 번 더 보았을 뿐이다. 그러나 7년 만의 방문에서 ‘강선생’이 익사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죽음에는 ‘서현’에 대한 사랑과 그녀의 결혼으로 인한 상심이 주된 원인이었음을 알게 되는데….

분명히 남녀의 사랑이야기지만 사랑의 사연이 그다지 강렬해보이지는 않는다. 요즘처럼 ‘클릭’ 한 번만으로도 연결되는 사랑풍속도를 떠올리면 심지어 너무 ‘구닥다리’ 이야기로도 느껴진다. 또 한편으로는 이별이야기지만 그다지 아쉬운 이별 장면 하나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데도 왜 작가는 『몌별』에서 간절한 사랑을,그리고 아쉬운 이별을 고집했을까.

문학평론가 박진의 말처럼 결국 작가는 인연에 대한 소박하고도 간절한 믿음을 마음 속에 둔 듯하다. 어찌보면 기막힌 이별이야기고 어찌보면 너무나 단순하고 통속적인 이야기고. 그런데도 ‘몌별’이 마음에 와닿는 것은 바로 그러한 ‘진부함’ 속에 담긴 타인에 대한 깊고도 따뜻한 눈길 때문이 아닐까.

“소매를 스칠 듯한 작은 인연 속에서도 사랑은 얼마든지 우주만한 싹을 틔운다”고 기대를 꺾지 않는 작가는 이 작품 속에서도 고아였던 ‘강선생’을 대신해 ‘서현??아이를 입양하는 결말로 그 사랑을 잇는다.

한편 ‘몌별’에는 작가 구효서가 쓰는 ‘나의 소설론’과 문학평론가 김수이의 ‘작가론’ 등이 함께 수록돼 있어 작가의 삶과 문학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도록 했다.




<정호의 정리>
처음 선생님을 뵙던 날 말입니다. 어쩌면 제가 선생님을 처음 뵌 날과 선생님이 저를 처음 보신 날이 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저와 선생님은 1992년 여름 어느날(7월이었던 건 분명합니다) 처음 뵙게 되었습니다. 저희들이 선생님이 근무하시던 용동초등학교에 도착했을 때 그때 선생님은 분명 교장 선생님과 이장님과 그곳 농민 후계자 되시는 분들과 함께 계셨었으니까요.

그런데 그때 전 선생님이 선생님이 아닌 줄만 알았어요. 그냥 그곳 마을 주민 중 한 분인 줄만 알았지요. 그건 저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저희들 모두 그렇게 생각했더랬습니다.

선생님 같지 않았으니까요.

교사라고 뭐 특별히 명찰이라도 달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교사라고 언제 어디서나 유달리 교사라는 태가 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교사인지 아닌지 구별할 어떤 기준도 표지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건 그냥 알 수 있는 거잖아요. 특히 그곳은 시골이고 농촌이었던 것입니다. 기준이나 표지가 없어도 어렵지 않게 교사인지 아닌지를 구분할 수는 있는 거라고 저는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그해 그곳으로 농활을 갔던 학생들 모두.---pp.34~35


저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인연이란, 스치듯 지나치는 순간 바람처럼 이는 것이라는 걸 말입니다. 그러나 결코 스치듯 지나쳐버리고 말 수는 없는 것이라는 걸 말입니다. 그냥 스쳐 지나버림으로써 초래되는 결과가 얼마나 가혹한 것인지를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p.167


... 그냥 하나의 예를 든 것 뿐이지요. 사람들은 때로 지나칠 만큼 충분한 준비와 연습을 하고도 정작 싫애에 옮기지 못한다고 하셨어요. 심지어는 실행에 대한 두려움때문에 준비와 연습에만 몰두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셨지요. 준비와 연습 자체가 목적이 되고 마는 경우 말이예요...--- p.150


... 그냥 하나의 예를 든 것 뿐이지요. 사람들은 때로 지나칠 만큼 충분한 준비와 연습을 하고도 정작 싫애에 옮기지 못한다고 하셨어요. 심지어는 실행에 대한 두려움때문에 준비와 연습에만 몰두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셨지요. 준비와 연습 자체가 목적이 되고 마는 경우 말이예요...--- p.150


http://kr.blog.yahoo.com/salttear/archive/2004/10/24


정현이형이 써준 피천득의 인연...
가만 보니.. 은근히 피천득의 인연이 이 소설과 매치가 된다...

지난 사월, 춘천(春川)에 가려고 하다가 못 가고 말았다. 나는 성심(聖心) 여자 대학에 가 보고 싶었다. 그 학교에, 어느 가을 학기, 매주 한 번씩 출강(出講)한 일이 있었다. 힘드는 출강을 한 학기 하게 된 것은, 주 수녀님과 김 수녀님이 내 집에 오신 것에 대한 예의(禮儀)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사연(事緣)이 있었다.


수십 년 전, 내가 열 일곱 되던 봄, 나는 처음 도표(동경, 東京)에 간 일이 있다. 어떤 분의 소개(紹介)로 사회 교육가(社會敎育家) M 선생 댁에 유숙(留宿)을 하게 되었다. 시바쿠(지구, 芝區)에 있는 그 집에는 주인 내외와 어린 딸, 세 식구가 살고 있었다. 하녀도 서생(書生)도 없었다. 눈이 예쁘고 웃는 얼굴을 하는 아사코(조자, 朝子)는 처음부터 나를 오빠같이 따랐다. 아침에 낳았다고 아사코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고 하였다. 그 집 뜰에는 큰 나무들이 있었고, 일년초(一年草) 꽃도 많았다. 내가 간 이튿날 아침, 아사코는 스위이트 피이를 따다가 화병에 담아, 내가 쓰게 된 책상 위에 놓아 주었다. 스위이트 피이는 아사코같이 어리고 귀여운 꽃이라고 생각하였다.


성심 여학원 소학교 일 학년인 아사코는 어느 토요일 오후, 나와 같이 저희 학교에까지 산보(散步)를 갔었다. 유치원(幼稚園)부터 학부(學部)까지 있는 카톨릭 교육 기관으로 유명한 이 여학원은, 시내에 있으면서 큰 목장(牧場)까지 가지고 있었다. 아사코는 자기 신장을 열고, 교실에서 신는 하얀 운동화를 보여 주었다.


내가 도쿄를 떠나던 날 아침, 아사코는 내 목을 안고 내 빰에 입을 맞추고, 제가 쓰던 작은 손수건과 제가 끼던 작은 반지를 이별(離別)의 선물(膳物)로 주었다.


그 후, 십 년이 지나고 삼사 년이 더 지났다. 그 동안 나는, 국민 학교 일 학년 같은 예쁜 여자 아이를 보면 아사코 생각을 하였다.


내가 두 번째 도쿄에 갔던 것도 사월이었다. 도쿄역 가까운 데 여관(旅館)을 정하고 즉시 M 선생 댁을 찾아갔다. 아사코는 어느덧 청순(淸純)하고 세련(洗練)되어 보이는 영양(令孃)이 되어 있었다. 그 집 마당에 피어 있는 목련(木蓮)꽃과도 같이. 그 때, 그는 성심 여학원 영문과 3학년이었다. 나는 좀 서먹서먹했으나, 아사코는 나와의 재회(再會)를 기뻐하는 것 같았다. 아버지, 어머니가 가끔 내 말을 해서 나의 존재(存在)를 기억(記憶)하고 있었나 보다.


그 날도 토요일이었다. 저녁 먹기 전에 같이 산보를 나갔다. 그리고, 계획(計劃)하지 않은 발걸음은 성심 여학원 쪽으로 옮겨져 갔다. 캠퍼스를 두루 거닐다가 돌아올 무렵, 나는 아사코 신장은 어디 있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는 무슨 말인가 하고 나를 쳐다보다가, 교실에는 구두를 벗지 않고 그냥 들어간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갑자기 뛰어가서 그 날 잊어버리고 교실에 두고 온 우산을 가지고 왔다. 지금도 나는 여자 우산을 볼 때면, 연두색이 고왔던 그 우산을 연상(聯想)한다. '셸부르의 우산'이라는 영화를 내가 그렇게 좋아한 것도 아사코의 우산 때문인가 한다. 아사코와 나는 밤 늦게까지 문학 이야기를 하다가 가벼운 악수(握手)를 하고 헤어졌다. 새로 출판(出版)된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세월(歲月)'에 대해서도 이야기한 것 같다.


그 후 또 십여 년이 지났다. 그 동안 제 2차 세계 대전이 있었고, 우리 나라가 해방(解放)이 되고, 또 한국 전쟁이 있었다. 나는 어쩌다 아사코 생각을 하곤 했다. 결혼(結婚)은 하였을 것이요, 전쟁통에 어찌 되지나 았았나, 남편이 전사(戰死)하지나 않았나 하고 별별 생각을 다 하였다. 1954년, 처음 미국 가던 길에 나는 도쿄에 들러 M 선생 댁을 찾아갔다. 뜻밖에 그 동네가 고스란히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M 선생네는 아직도 그 집에 살고 있었다. 선생 내외분은 흥분(興奮)된 얼굴로 나를 맞이하였다. 그리고, 한국(韓國)이 독립(獨立)이 되어서 무엇보다고 잘 됐다고 치하(致賀)하였다. 아사코는 전쟁이 끝난 후, 맥아더 사령부(司令部)에서 번역(飜譯) 일을 하고 있다가, 거기서 만난 일본인 2세와 결혼을 하고 따로 나서 산다는 것이었다. 아사코가 전쟁 미망인(未亡人)이 되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다. 그러나, 2세와 결혼하였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만나고 싶다고 그랬더니, 어머니가 아사코의 집으로 안내(案內)해 주었다.


뽀족 지붕에 뽀족 창문들이 있는 작은 집이었다. 이십여 년 전 내가 아사코에게 준 동화책 겉장에 있는 집도 이런 집이었다.


"아! 이쁜 집! 우리, 이담에 이런 집에서 같이 살아요."


아사코의 어린 목소리가 지금도 들린다.
십 년쯤 미리 전쟁이 나고 그만큼 일찍 한국이 독립되었더라면, 아사코의 말대로 우리는 같은 집에서 살 수 있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뾰족 창문들이 있는 집이 아니라도. 이런 부질없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 집에 들어서자 마주친 것은 백합(百合)같이 시들어 가는 아사코의 얼굴이었다. '세월'이란 소설 이야기를 한 지 십 년이 더 지났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 싱싱하여야 할 젊은 나이다. 남편은 내가 상상한 것과 같이 일본 사람도 아니고 미국 사람도 아닌, 그리고 진주군(進駐軍) 장교(將校)라는 것을 뽐내는 사나이였다. 아사코와 나는 절을 몇 번씩 하고 악수도 없이 헤어졌다.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오는 주말(週末)에는 춘천에 갔다 오려 한다. 소양강 가을 경치(景致)가 아름다울 것이다.

인생은 만남입니다. 만남은 축복입니다. 만남은 변화의 기회입니다. 좋은 만남은 우리를 변하게 해줍니다. 너와 나의 만남을 통해 깨달음이 옵니다. 만남을 통해 우리는 내면을 보게 됩니다. 자신을 깊이 보게 됩니다. 우리 안에 엄청난 가능성을 발견하도록 도와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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