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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추억이 서린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약간 소심한 57년생인 저자와 나와 시간차이가 좀 나기는 하지만 많이 공감을 하게 되고... 많은 추억을 되찾게 되었다...
사소한것들을 어떻게 바라보냐에 따라서 받아들여지는 감정이 이렇게 달라지다니...
어릴적의 추억들이 새록새록떠오른다.. 그리고 아련한 추억에 가슴이 짠해질뿐이다...
<도서 정보>제 목 : 인생은 지나간다
저 자 : 구효서
출판사 : 마음산책
출판일 : 2002년 9월
책정보 : ISBN : 8989351022 | 페이지 : 222 | 405g
구매처 : 오디오북
구매일 :
일 독 : 2006/6/8
재 독 :
정 리 :
<이것만은 꼭>
<미디어 리뷰>
저자 : 구효서 |
198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마디』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1994년에는 『깡통따개가 없는 마을』로 제27회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했고, 『낯선 여름』(1994. 중앙일보. 장편소설) 『오남리 이야기』(1998. 열림원. 장편소설) 『도라지꽃 누님』(1999. 세계사. 단편집)등에서 다양한 소재를 서정적이고 독특한 문체로 흥미롭게 전개하고 있다. 2000년 9월 국내 최초의 신작 소설 eBook 시리즈인 장편소설 『정별(情別)』을 yes24에서 발표했다. |
서정적 이야기를 담아낸 소설들로 사랑받는 구효서의 추억이 깃든 산문집. 이제껏 지나온 삶의 여정 속에서 잊혀지지 않는 옛 기억의 편린들을 모아 마음 한 켠 따뜻해지는 흑백 사진과 함께 차분히 엮어내었다. 물동이, 세고비아 음반, 젓가락, 전화, 종이, 주걱, 이름만 들어도 정겨운 사물들에 시선을 주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의 마음도 부드러워짐을 느낀다.
『인생은 지나간다』는 어릴 적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흑백 사진과 작가 구효서의 구수한 입담이 투박한 그릇에 밥과 갖가지 봄나물을 넣고 고추장에 잘 비벼낸 것처럼 맛깔스럽게 버무려진 책이다.
강화도 시골 마을 가난한 집에서 막둥이쯤으로 태어난 작가는 어린 시절 그와 함께 했던 사물들을 징검다리 삼아 그 시절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야기 중간 중간 약간은 생소한 쓰임새에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굳이 설명을 듣지 않아도 그 의미를 어림잡을 수 있는 우리말을 보노라면 친한 옛 친구를 간만에 만난 듯 반갑다.
전쟁통에 끼니도 제대로 잇지 못하는 친정집에 풀죽 한 그릇이라도 보내주려고 큰 딸을 시켜 물동이에 몰래 날라내던 어머니(「물동이」 중에서), 움푹한 자기에 맑은 물이 들어있고 게다가 뚜껑까지 있는 것을 보고는 시지 않도록 김치를 띄워 놓았던 가겟집 할머니(「양변기」 중에서), 텔레비전 전원을 켜려고 논에 물을 대던 발동기를 집 앞마당까지 날라오던 동네 사람들(「텔레비전」 중에서), 등록금을 낼 형편이 안돼 대학에 입학하고도 망설이는 아들에게 말없이 입학선물을 사주시던 아버지(「시계」 중에서), 희고 깨끗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그 위에 그림을 그리다 그 허기를 채우지 못해 집을 나가 떠돌던 누나(「종이」 중에서), 김치 대신 싸온 오징어포 반찬을 뺏어먹겠다고 싸우던 친구들(「도시락」 중에서)……
작가가 들려주는 오랜 기억 속 이야기들이 그 시절 누구에게나 일어났을 법한 것인데다, 이야기 속 사람들은 오랜만에 만나도 밤새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는 이들이어서 더욱 구수한 뒷맛을 남긴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늘 종이에 '허기졌던' 작가가 이제 '사이버라는 종이는 정말 무궁무진'하다고 자랑하듯 얘기한 것처럼, 기억이라는 것도 마치 인터넷과 같은 것이어서 일렬로 이어지기보다는 이것에서 저것으로 갑자기 튀어 넘어가 버리는 것이 아니던가.
연못 위에 던진 작은 돌맹이 하나가 많은 파문을 일으키며 퍼져가는 것처럼 작가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어느새 책을 덮고 주위를 둘러보며 생각에 잠기게 된다. 추운 겨울날 겉옷에 품고 온 군고구마 봉지를 내미시던 아버지, 투정 부리느라 놓고 간 도시락을 챙겨 들고 오셔서는 교실 문 앞에서 손짓하시던 어머니, 내 품에서 파르르 떨며 죽어가던 노란 병아리, 뒷산에 모여 해질 때까지 구슬치기며, 딱지치기 놀이를 하던 친구들, 소풍날 수줍게 팔짱 끼고 사진을 찍는 내게 환한 웃음을 보여주시던 선생님……
오래된 앨범을 꺼내 정리하듯 내 지난 인생을 떠올리며 머금는 미소, 이것이 『인생은 지나간다』가 선사하는 즐거움이다.
강화도 시골 마을 가난한 집에서 막둥이쯤으로 태어난 작가는 어린 시절 그와 함께 했던 사물들을 징검다리 삼아 그 시절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야기 중간 중간 약간은 생소한 쓰임새에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굳이 설명을 듣지 않아도 그 의미를 어림잡을 수 있는 우리말을 보노라면 친한 옛 친구를 간만에 만난 듯 반갑다.
전쟁통에 끼니도 제대로 잇지 못하는 친정집에 풀죽 한 그릇이라도 보내주려고 큰 딸을 시켜 물동이에 몰래 날라내던 어머니(「물동이」 중에서), 움푹한 자기에 맑은 물이 들어있고 게다가 뚜껑까지 있는 것을 보고는 시지 않도록 김치를 띄워 놓았던 가겟집 할머니(「양변기」 중에서), 텔레비전 전원을 켜려고 논에 물을 대던 발동기를 집 앞마당까지 날라오던 동네 사람들(「텔레비전」 중에서), 등록금을 낼 형편이 안돼 대학에 입학하고도 망설이는 아들에게 말없이 입학선물을 사주시던 아버지(「시계」 중에서), 희고 깨끗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그 위에 그림을 그리다 그 허기를 채우지 못해 집을 나가 떠돌던 누나(「종이」 중에서), 김치 대신 싸온 오징어포 반찬을 뺏어먹겠다고 싸우던 친구들(「도시락」 중에서)……
작가가 들려주는 오랜 기억 속 이야기들이 그 시절 누구에게나 일어났을 법한 것인데다, 이야기 속 사람들은 오랜만에 만나도 밤새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는 이들이어서 더욱 구수한 뒷맛을 남긴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늘 종이에 '허기졌던' 작가가 이제 '사이버라는 종이는 정말 무궁무진'하다고 자랑하듯 얘기한 것처럼, 기억이라는 것도 마치 인터넷과 같은 것이어서 일렬로 이어지기보다는 이것에서 저것으로 갑자기 튀어 넘어가 버리는 것이 아니던가.
연못 위에 던진 작은 돌맹이 하나가 많은 파문을 일으키며 퍼져가는 것처럼 작가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어느새 책을 덮고 주위를 둘러보며 생각에 잠기게 된다. 추운 겨울날 겉옷에 품고 온 군고구마 봉지를 내미시던 아버지, 투정 부리느라 놓고 간 도시락을 챙겨 들고 오셔서는 교실 문 앞에서 손짓하시던 어머니, 내 품에서 파르르 떨며 죽어가던 노란 병아리, 뒷산에 모여 해질 때까지 구슬치기며, 딱지치기 놀이를 하던 친구들, 소풍날 수줍게 팔짱 끼고 사진을 찍는 내게 환한 웃음을 보여주시던 선생님……
오래된 앨범을 꺼내 정리하듯 내 지난 인생을 떠올리며 머금는 미소, 이것이 『인생은 지나간다』가 선사하는 즐거움이다.
주변의 사소한 많은 사물들은 우리가 건너는 인생이라는 물살 위에 놓인 징검다리다. 그것에 의지해 우리는 또 다른 피안의 세계로 건너가고 말지만 우리의발자국이 찍힌 그것들은 여전히 남아 건너간 자의 꿈과 사랑과 눈물을, 쓸쓸하지만 정답게 추억할 것이다. 이번에 출간된 『인생은 지나간다』는 사물을 통해 인생을 이야기하는 구효서의 자전 이야기이다.
자기와 항상 함께 있으면서도 별로 기억하지 않으면서 살다가 불현듯 친근한 존재로 다가오는 사물들. 때로는 유년의 아스라한 기억이 새겨져 있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을 담고 있기도 한 인생의 징검다리들. 이 책은 바로 그 징검다리를 하나하나 밟으며 모아 두었던 소중한 기억들과 만나는 이야기 묶음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우리 삶의 구석구석에 자리한 친근한 사물들을 주인공으로 초대한다. 그가 주목하는 것은 어린 시절의 손때와 추억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작은 사물들이다. 그들은 우리의 기억만큼 나이를 먹고 우리가 떠나간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린다. 테레비, 전화 라디오등 저마다 다른 얼굴을 하고 있는 소중한 기억의 보따리들. 그들의 표정은 우리의 옛 모습이기도 하고 우리 기억 속의 한 장면이기도 하다. 그들을 보며 우리는 지나간 인생의 물살을 연어처럼 거슬러 올라간다.
<책속으로>
1. 물동이
2. 양변기
3. 테레비
4. 세고비아 음반
5. 거울
6. 의자
7. 자동차
8. 주전자
9. 연필
10. 시계
11. 책
12. 젓가락
13. 전화
14. 종이
15. 라디오
16. 책상
17. 담배
18. 도시락
19. 사진
20. 주걱
햇살이 천천히 천천히 방 문턱 위로 숨가쁘게 내려앉으면서 장독대 주변의 자줏빛 과꽃과 맨드라미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각각의 나이를 가진 여럿의 어린 내가 방안 이곳저곳을 휘젓고 다녔던 것처럼, 장독대 주변엔 어느새 계절과는 상관없이 어린 날 내가 보았던 모든 꽃들이 아우성치며 피어나기 시작했다. 이윽고 장독대는 빨갛고 노랗고 흰꽃들로 가득 들어찼다. 온통 꽃천지였다. 꽃잎에 매달린 이슬들이 아침 햇살을 받아 보석처럼 빛나기 시작했다. 숨이 막혔다. 아침볕이 내 이마와 어깨 위에 떨어져 내렸다. 눈이 부셨고 어깨가 따뜻해졌다. 순간, 어디선가 뎅, 하는 괘종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시계소리는 그치지 않고 열 번을 쳤다. 눈이 부셔선지는 몰라도 내 눈에선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p.114 |
완벽한 반사를 가져왔을 놀라움과 충격은 사람의 심장을 멎게 했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거울인것이다.흔해졌지만 거울은 여전히 '나'를 완벽하게 반사해 '타자화'시킨다.이것이 거울의 본질이요 가치이다. 거울을 들여다보며 싯귀라도 읊어 보는 게 어떨까. '아.누구인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닯은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 안 그는'이 아니라, '아.누구인가 수은을 맨 처음 평면유리에 칠할 줄 안 그는'이라고.--- pp.62-63 |
아, 그곳은 아직 내 흔적들로 가득한 곳이었다. 이제는 떠났으니, 내 집이 아니니 새삼 미련을 가질 필요 있나 싶어 명절에 고향엘 들러도 그냥 먼발치서나마 바라보던 집이었다. 하지만 비록 다낡아 삭막해진 집이었을망정 아직도 내 흔적들은 구석구석에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p.179 첫 소절 |
심지어 사랑에 빠진 사람 중에는 사랑하는 상대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그 상대를 사랑하는 자신을 사랑하는 경우도 있다. 사랑하는 상대라고 믿고 있었던 사람은 거울에 불과한 것이다. 하지만 그 거울에 비친 자신마저 자신이 아닐 때 우리가 거울을 통해 볼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닐지도 모른다. 아무 것도 아니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우리는 유래와 종족을 알 수 없는 숱한 왕자나 숱한 공주만을 보고 사는 건 아닌지.--- p.68-69 |
술을 빼고 주전자를 떠올릴순 없었다. 요즘은 주전자에다 물이나 끓여 먹는다. 분명히 말하건대,주전자는 술을 데워 먹는 물건이다.--- p.86 |
셋째 누님은 내가 열세살쯤 되었을 때 이미 고향집을 떠났다. 그때 누님 나이가 열여덟이었을 것이다. 큰누님이나 둘째 누님이 열여덟이었을 때는 서울이란 게 없었을 것이다. 말로만 듣는 곳이었지 여자 혼자 '다녀올 수 있는' 곳이거나 '가서 살 곳'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다 알다시피 도시에서 셋째 누나 정도쯤 되는 처녀들을 필요로 할 때였다. 하나둘 고향을 떠나 서울로 갔다. 서울로 간 동네 누나들은 명절 때면 두 팔 가득 뭔가를 싸들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그들의 머리 모양이며 옷차림이 큰 구경거리였다. 하지만 누나는 서울로 갔으되 공단으로 가지 않았다. '그림 그리는 집'으로 갔다. 누나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했다. 만화 그리는 집에 기거하며 나중엔 진짜로 누님 이름의 만화책이 나오기까지 했었다. 그렇게 떠난 누나는 좀처럼 고향에 돌아오지 않았다. 우리가 서울로 올라갔을 때는 옆집 남자와 이미 연애 중이었다. 그런데 그 옆집 남자가 갑자기 부산으로 내려가는 바람에 누나는 부산에서 결혼해 거기서 살아야만 했다. 결혼생활이 원만치 못했다. 누나는 부산을 뛰쳐 나왔지만 친정엔 오지 않고 혼자서 바람처럼 살았다. 내 소설 <도라지꽃 누님>에도 썼지만 그 누님은 이제 저 횡성의 농가 하나를 얻어 잘 꾸며 놓고 산다. 도라지를 심고 거둔다. 이처럼 그 누나는 내게서 가장 멀고 아득한 존재였다. 그런데 어째서 언제나 가까이 있었던 것처럼 여겨지는 걸까. 종이 때문일지도 모른다.---p. 154-155 |
볼 게 많고 들을 게 많고 할 게 많은 세상이다. 그러나 텔레비전도 라디오도 없었던 시절이라 하여 영 삭막하고 재미없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고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머리 속으로 그리는 세상이 더 아름답고 신기하고 행복했던 것은 아닌지.--- p.175 |
내 팔에 힘이 빠져 나간 틈을 타 기춘이가 오징어포 한 조각을 매처럼 낚아챘다. 번개같이 빠른 동작이었다. 빼앗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머리 속에 일기도 전에 기춘이의 손이 먼저 반사적으로 움직인 것만 같았다. 걔도 그게 그토록 먹고 싶었던 거고 그래서 그렇게 빨랐을 것이다. 멀어지는 오징어포를 따라잡는 내 시선도 만만찮게 빨랐다. 그러나 내 눈은 기춘이의 입과 그 입 속으로 사라지는 오징어포를 절망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한 조각의 오징어포가 볏섬 만하게 커 보였다.--- p.200 |
나는 어렸을 때 교과서 이외의 책을 읽은 기억이 별로 없다. 학교에도 도서실이라는 게 따로 없었다. 복도를 막아 만든 자료실이라는 데에 동화책이 70권쯤 있었을 것이다. 읽으려고 맘만 먹었다면 그거나마 읽었겠지만 도무지 책을 읽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분위기를 탓할 것도 없이, 솔직히 말해 나는 책 읽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랬는데도 나는 책이 많은 내 아이들보다 더 많은 걸 안다. 아이들은 작약과 모란과 양귀비를 구분할 줄 모른다. 그런데 나는 제비꽃 중에도 서울제비꽃과 낚시제비꽃과 콩제비꽃, 아욱제비꽃, 왜주걱제비꽃, 남산제비꽃, 호접제비꽃, 동근잎제비꽃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잘도 구분한다… 책은 보지 않았지만 내게는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는 게 다 책이 아니었던가 싶다. 사실 책에 등장하는 게 다 뭐란 말인가. 세상의 것들이 책에 실리는 것 아니던가. 책을 통해 세상을 보든 세상을 통해 책의 것을 이해하든 그게 그거 아닐는지.---p.117-118 |
글머리에 다 알다시피 영화는 원래 소리가 없던, 움직이는 그림이었거나 사진이었다. 편집이 없던 시절에는 그나마도 무언극을 그림으로 옮겨 놓은 것에 불과했다. 소리는 물로니고 장면변화와 클로즈업도 없었다. 색깔이 생기고 서라운딩 사운드가 생기고 공간비약과 세부확대가 가능해진 것이 요즘의 영화다. 장차는 바람과 구름과 비를 맞을 수 있고, 기온을 느낄수 있으며, 냄새가지 맡게 된단다. 기억이라는 것도 그렇다. 기억은 색깔과 소리와 냄새도 없이 깊고 어두운 두뇌 한 귀퉁이에 한 장의 흑백사진처럼 저장되어 있을 뿐이다. 그것을 밝은 빛 아래 꺼내어 놓아야만 비로소 새깔과 소리와 냄새가 서서히 재생되는데, 이처럼 어떤 기억을 떠올리는 행위를 추억이라 한다. 일단 추억이 발동되면 정지되었던 그림이 움직이고 거기에 천연의 숨결들이 마구 되살아나기 시작하는데, 그 속도는 시네마스코프에 걸린 1백년 이상의 시간을 단 1분으로 압축한 것만큼이나 빠르다. 그래서 사람들은 과거를 추억할 때, '파노라마처럼'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하지만 영화를 보기 위해서는 표를 사서 영화관 문엘 들어서야 하듯, 과거를 추억하려 무언가를 통과해야만 한다. 책이며 거울이며 주전자들이 다 과거로 들어가는 통로인 셈이다. 똑같은 광화문일지라도 바깥 세상의 그것과 영화속의 그것이 다르듯, 지금 내 책상위에 놓여진 시계와 펜은 기억속의 시게와 펜과는 다르다. 현실속의 사물들은 기억속 사룸릉 헤집어 내는 도구요 계기요 통로일 뿐이다. 우리들의 시각이라는 것. 그밖의 오감이라는 것. 그것은 아주 작긴 해도 분명한 물적 입자이다. 몸에서 발사된 그것이 책과 재떨이와 담배에 부딪쳐 돌아올 때는 나름대로의 색깔과 냄새와 음향들을 묻혀 오게 되고, 그것은 시신경과 청신경과 후신경에 접수되면서 전기/화학적 신호로 바뀌며, 대뇌피질은 이것을 저장한다. 몸에서 생명이 다 빠져 나가 뇌가 아주 죽기 전에는 기억은 이 처럼 수많은 작은 알갱이들로 살아 비축되어 있다. 그것들은 지금 이 시각 , 여전히 쏘아 내는 시각입자와 기타 오감의 입자들에 자극되어 언제라도 재생하려 꿈틀거리고 있다. 동일한 크기와 모양과 기능의 현재 사물은 영락없이 과거의 유사한 사물을 환기시키기 마련이다. 이토록 현재의 사물들은 과거의 사물들과 끝없이 대조 대비되며 기억을 이끌어내고 새로운 정보를 교환/저장하는 숨가뿐 교류를 반복한다. 도처에 과거로 들어가는 문들 투성이다. 공짜로 들어갈 수 있는 영화관들이 도처에 놓인 셈이다. 눈 앞에 보이는 라디오, 젓가락, 사진 ,도시락,의자, 물동이들은 과거로 들어가는 현재의 활성창인 셈이다. 그것들은 또 미래에도 있을 것이다. 먼 미래에, 오늘을 기억할, '백 투더 퓨쳐'인 것이다. 우리곁에 널려있는, 많은 사소한 사물들, 그러나 그것들은 결코 만만치가 않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포괄하는 중층적 정보로 가득차 있을뿐더러, 생명과 존재가 연출하는 '삶'의 충실한 반영자며 증거물이다. 사물들에서 느껴지는 어머니의 숨결은 결코 옛것이거나 흔적으로서가 아니다. 그것은 현재의 내 삶을 여전히 충동하고 위로하며 고양하는 실재다. 모든 게 귀하고, 소중할 뿐이다.--- p.글머리 |
그렇게 떠난 누나는 좀처럼 고향에 돌아오지 않았다. 우리가 서울로 올라갔을 때는 옆집 남자와 이미 연애 중이었다. 그런데 그 옆집 남자가 갑자기 부산으로 내려가는 바람에 누나는 부산에서 결혼해 거기서 살아야만 했다. 결혼생활이 원만치 못했다. 누나는 부산을 뛰쳐 나왔지만 친정엔 오지 않고 혼자서 바람처럼 살았다.--- p.154 |
그날 나는 현관 옆에 있는 화장실이란 곳에서 양변기를 보았는데 결국 오줌을 누지 못하고 누님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꾹꾹 참았다. 누님 집에 오자마자 변소로 달려갔다 온 나를 보고 누님이 물었다. '왜 거기서 누지 않고?' '그 속에 뭔가가 있었어.' 내가 말했다. '누가 물을 내리지 않았었나 보지?' 누님이 말했다. 그러나 그런 게 아니었다. 똥이 아니었다.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는 나도 알지 못했다. 나중에 누님으로부터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들어 알게 되었다. 누님이 웃으며 말했다. '가겟집 할머니가 갖다 놓은 김치였댄다. 김치가 맛있다고 했더니 그 할머니가 당신네집 김치를 덜어 살짝 갖다 놓은 거래. 시지말라고 물에 띄워 놓은 거지...'--- p.33-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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