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굽는 타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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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서 돈에 신경을 안쓰고 살면서 글을 쓰면서 살겠다던 작가의 30대까지의 일대기를 써나간 글... 소설이라고 봐도 좋고, 그냥 사람 사는 이야기라고 봐도 좋을듯... 하지만 아무런 문단도 없이 번호표도 없이 그냥 써내려간 그의 글...
그리고 그의 어려움, 고난, 고뇌, 번뇌 등이 구구절절히 가슴에 스며든다. 물론 그도 지금에야 성공해서 잘살고 있겠지만.. 궁핍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거기에서 발버둥을 치는 모습을 보며.. 내 모습을 그대로 바라보게 된다...-_-;;
이제 나도 빵굽는 컴퓨터로 열심히 살아가야겠다.

<도서 정보>제   목 : 빵굽는 타자기 : 젊은 날 닥치는 대로 글쓰기
저   자 : 폴 오스터 저/폴 오스터
출판사 : 열린책들
출판일 : 2002년 1월
책정보 : ISBN 8932903220 / 페이지 300 / 492g
구매처 : Yes24
구매일 : 2006/12/12
일   독 : 2006/12/18
재   독 :
정   리 :

<이것만은 꼭>



<책 읽은 계기>
[김탁환의 책과 램프사이] 꿈을 요리하는 책

<미디어 리뷰>
이제는 미국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문학성과 대중적 인기를 인정받고 있는 작가 폴 오스터가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할 무렵의 일들을 담아낸 자전적 소설. 젊은 시절 그는 무엇이 든지 써야 했고, 생활을 위해 대본 각색, 허드렛 일, 비서 등 어떠한 일이든지 해야 했다. 그러나 고된 현실속에서 그가 경험했던 그러한 일들이 현재의 그를 만들어낸 자양분이 된 것을 그는 결코 간과하지 않는다. 여러 상황 가운데서도 순간의 느낌들과 기발한 상상들을 역시 신랄하고 코믹하게 풀어낸 그의 문체가 읽는 맛을 더해준다. 초기의 희곡 3편과 돈을 위해 만들어낸 카드게임 '액션 베이스볼' 규칙도 실려 있다.

편 : 폴 오스터
1947년 뉴저지의 중산층 가족에게서 태어났다. 콜럼비아 대학에 입학한 후 4년 동안 프랑스에서 살았다. 1974년에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다. 1970년대에는 주로 시와 번역을 통해 활동하다가 1980년대에 『스퀴즈 플레이』를 내면서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다른 작품으로는 『공중 곡예사』, 『거대한 괴물』, 『우연의 음악』, 『오기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동행』, 『굶기의 예술』, 『빵굽는 타자기』, 『고독의 발명』 등이 있다.

소외된 주변 인물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으면서도, 감정에 몰입되지 않고 그 의식 세계를 심오한 지성으로 그려 내는 폴 오스터는 그 마법과도 같은 문학적 기교로 <떠오르는 미국의 별>이라는 칭호를 부여 받은 바 있는 유대계 미국 작가로 미국에서 보기 드문 순문학 작가이다. 뉴욕의 한 담배가게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흔한 뉴요커들의 일상을 너무도 현실적으로 체감케 한 <스모크>의 시나리오를 담당하기도 했고, 블루 인 더 페이스>에서는 직접 연출을 담당하기도 했다.

독특한 소재의 이야기에 팽팽한 긴장이 느껴지는 현장감과 은은한 감동을 가미시키는 천부적 재능을 갖고 있는 그는 현대 작가로서는 보기 드문 재능과 문학적 깊이, 문학의 기인이라 불릴 만큼 개성 있는 독창성과 담대함을 소유한 작가이기도 하다. 미국 문학에서의 사실주의적인 경향과 신비주의적인 전통이 혼합되고, 동시에 멜로드라마적 요소와 명상적 요소가 한데 뒤섞여 있기도 한 그의 작품들은, 문학 장르의 모든 특징적 요소들이 혼성된 "아름답게 디자인된 예술품"이라는 극찬을 받은 바 있다. 이렇게 많은 비평가들의 호평 속에 발간된 그의 작품들은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 문단, 특히 프랑스에서 주목 받고 있으며, 그의 작품들은 현재 20여 개국에서 번역 출간되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기적과 상실, 고독과 열광의 이야기를 전광석화 같은 언어로 종횡 무진 전개해 나가고 있다. 또한 운명적인 만남과 그리고 상징적인 이미지들을 탄탄한 문장과 짜임새 있는 구성으로 결합시켜 독자들을 있을 법하지 않게 뒤얽힌 우연의 연속으로 이끌어 간다.

탐정 소설의 형식을 차용하고 있는 폴 오스터의 단편 모음 3편을 묶은 『뉴욕 3부작』은
'묻는다'는 것이 직업상의 주 활동인 탐정이라는 배치를 통해 폴 오스터의 변치 않는 주제 - 실제와 환상, 정체성 탐구, 몰두와 강박관념, 여기에 특별히 작가 자신의 글쓰기에 대한 여러 함의-를 들여다 보게 하는 작품이다. 각 작품에 등장하는 탐정들은 진실을 발견하기 위해 계속 사건을 추적하지만 사건은 점점 더 미궁에 빠지고, 탐정들은 정체성의 위기를 겪거나 짓궂은 우연의 장난에 휘말리던 끝에 결국 '자아'라는 거대한 괴물과 맞닥들이게 된다.

『뉴욕 3부작』의 또 다른 재미 중의 하나는 원문을 구성하는 난외주기 형식의 일화들에 있다. '자연언어'의 발견을 둘러싼 여러 제왕들의 실험과 늑대소년의 등장이 다니엘 디포우와 조나선 스위프트의 작품에 끼친 영향, 다리 설계자인 아버지가 미처 완성 못하고 사고로 죽자 그 아들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완성한 뉴욕의 브루클린 다리에 관한 일화, 어려서 잃은 아버지의 모습을 알프스의 얼음에 갇힌 채로 목격한 아들의 이야기, 창세기 신화와 바벨탑 신화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석,『돈키호테』의 진짜 저자에 대해 저자인 폴 오스터가 작중 인물과 벌이는 논란... 이외에도 고금의 무수한 일화들이 글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면서 자칫 건조해지기 쉬운 자아 탐색의 여행에 즐거운 동반자가 되어 준다. 카프카나 베케트의 주제 의식인 부조리의 현대적 변주이기도 하며 세르반테스의 『동키호테』처럼 글쓰기에 대한 글쓰기로도 해석될 수 있는 작품이다.
눅눅한 냄새가 배여 있는 골방에 묻혀 쉼 없이 전동 타자기 자판을 두들겨야만 하는 사람, 책을 읽는 행위 이외에는 그다지 일상사에 시선을 돌리려 하지 않는 사람, 답답할 때면 무작정 어딘가를 걷다 지쳐야 하는 사람, 가끔 낯선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지만 정작 자신을 드러내야 할 순간에는 은밀한 한 쪽 구석으로 도피해 버리는 사람. 이 답답한 인간이 바로 작가다.

웨인 왕 감독의 영화 <스모크>(1995년 작)에는 이러한 작가의 모습을 아주 담담하게 사실적으로 묘사한 폴 벤자민이라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영화적 장치에 의해 아내의 부당한 죽음이라는 상처를 안고 있긴 하지만 전형적인 가난한 작가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그. 윌리엄 하트가 열연한 이 캐릭터, 폴 벤자민은 바로 탁월한 이야기꾼으로 재평가 받고 있는 작가 폴 오스터 자신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 다름 아니다.

『빵굽는 타자기』는 젊은 시절 폴 벤자민이라는 필명으로 단지 돈을 벌기 위해 글을 쓸 수밖에 없었던 작가의 고단한 삶의 단면을 생생하게, 그러나 유쾌하게 펼쳐 보인다. 원제는 『Hand to Mouth : A Chronicle of Early Failure』.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간다는 의미에서의 초기 실패작(1,000달러가 채 못되는 돈에 판권이 넘어 갔다니 어쨌든 경제적으로는 대단한 실패작임에 틀림없다) 3편 중, 『스퀴즈 플레이』를 따로 분리한 후, 3편의 희곡과, 돈이 된다면 구슬이라도 꿰겠다는 심정으로 고안한 '액션 베이스볼'이라는 야구게임에 대한 상세한 안내문이 코믹하게 실려 있다.

"그는 얼마 전부터 포르노 전문 출판사에서 일하기 시작했다면서, 외설 소설 쓰는 솜씨를 시험해 보고 싶으면 작품 한 편 당 1500달러에 사줄 테니 한번 써보라고 말했다. 나는 기꺼이 그 일에 덤벼들었지만, 30장정도 쓰고 나자 영감이 차츰 사라졌다. 섹스라는 그 한 가지 일을 묘사하는 데에도 방법이 수없이 많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그래서 내 머리에 저장되어 있던 동의어는 금세 바닥이 나버렸다. 나는 포르노를 쓰는 대신, 겉만 요란한 학생용 잡지에 서평을 쓰기 시작했다. 내 기사에 필명을 사용했다. 폴 퀸. 고료는 서평 하나 당 25달러였다."

우리 돈으로 채 3만원이 되지 않는 짜디짠 원고료에 포르노까지 동원하여 해소해 보려 했던 가난. 하지만 작가는 그 신랄한 삶의 과정 속에서도 위트와 당당함을 잊지 않는다. 오히려 낙천적이기까지 한 젊은 감성으로 삶의 곳곳을 예리하고 날카롭게 해부한다. 어깨를 으쓱하며, "뭐, 어때요? 이 세상의 시간이 몽땅 내 것인데" 하는 식으로 자신의 걸음을 걷는다.

"작가가 되는 것은 다르다. 그것은 선택하는 것이기보다 선택되는 것이다. 글 쓰는 것말고는 어떤 일도 자기한테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며, 평생 동안 멀고도 험한 길을 걸어갈 각오를 해야 한다."

부유(浮游)하며 최저 생활만 유지될 수 있다면 그냥 그렇게 살아가고 싶을 뿐인 작가 지망생의 거침없는 한량 생활. 하지만 이 작품이 "글 쓰는 게 제일 쉬웠어요" 류의 믿지 못할 성공 스토리로 읽히지 않는 이유는 자명하다. 화자인 작가가 무엇보다도 돈의 악덕, 나아가서 돈의 미덕을 가장 치밀하게 연구했고, 스스로 체득했을 뿐만 아니라, 굶어 본 사람이 빵의 소중함을 알듯이 가난과 정면으로 맞서며 작가의 길을 선택한 폴 오스터의 삶 속에는 돈에 대한, 삶에 대한, 결론적으로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


<책속으로>

차라리 프라이팬에서 햄버거를 뒤집는 편이 더 수지맞는 일이었을지 모르나, 적어도 우리는 자유로왔다. 아니, 적어도 우리는 자유롭다고 생각했다. 나는 직장을 때려 치운 것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았다. 좋든 나쁘든 이것이 내가 선택한 생활 방식이었다. 돈벌이를 위해 번역을 하고 나 자신을 위해 글을 쓰느라, 그 몇 년 동안은 책상 앞을 떠난 순간이 거의 없었다. 거의 온종일 종이에 낱말을 적으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p.134
작가들은 대부분 이중 생활을 하고 있다. 생계에 필요한 돈은 본업으로 벌고, 남은 시간은 최대한 쪼개어 글을 쓴다. 이른 아침이나 밤늦게, 주말이나 휴가 때. 윌리엄 칼러스 윌리엄스와 루이 페르디낭 셀린은 의사였다. 월이스 스티븐스는 보험 회사에 다녔다. T.S. 엘리어트는 한때 은행원이었고, 나중에는 출판업에 종사하였다.

내가 아는 이들 프랑스 시인인 자크 뒤팽은 파리에서 미술관 부관장을 일하고 있었다. 미국 시인인 윌리엄 브롱크는 40년이 넘도록 뉴욕 북부에서 가업인 석탄과 목재상을 경영했다. 돈 드릴로, 피터 캐리, 샐먼 루시디, 엘모어 레너드는 광고업곙서 오랫동안 일했다. 교직에 몸담고 있는 작가도 많다. 교직은 오늘날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해결책일 것이다...--- p.6-7
의사나 정치인이 되는 것은 하나의 [진로 결정]이지만, 작가가 되는 것은 다르다. 그것은 선택하는 것이기보다 선택되는 것이다. 글쓰는 것말고는 어떤 일도 자기한테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평생 동안 멀고도 험한 길을 걸어갈 각오를 해야 한다. 신들의 호의를 얻지 못하면(거기에만 매달려 살아가는 자들에게 재앙이 있을진저), 글만 써서는 입에 풀칠하기도 어렵다. 비바람을 막아 줄 방 한칸 없이 떠돌다가 굶어 죽지 않으려면 일찌감치 작가가 되는 것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이해했고 각오도 되어 있었으니까 불만은 없었다. 그 점에서는 정말 운이 좋았다. 물질적으로 특별히 원하는 것도 없었고, 내 앞에 가난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겁먹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원한 것은 재능 - 나는 이것이 내 안에 있다고 느꼈다 -을 맘껏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 그것뿐이었다.

작가들은 대부분 이중 생활을 하고 있다. 생계에 필요한 돈은 본업으로 벌고, 남은 시간을 최대한 쪼개어 글을 쓴다.... 내 문제는 그런 이중 생활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는데 있었다. 일하기 싫은 것이 아니라,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직장에 묶여 있는 생활은 생각만 해도 나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당시 나는 20대 초반이었다. 취직해서 자리를 잡기에는 너무 젊다는 생각이 들었고 하고 싶은 일도 많은데 원치도 않는 필요 이상의 돈을 벌기 위해 시간 낭비하고 싶지도 않았다. 돈이 없으면 없는대로, 그럭저럭 견디면서 살아가고 싶었다.--- pp. 6-7
여자: 당신은 춥다고 했잖아요?
남자: 그래.
여자: 나는 그쪽으로 건너가소 당신을 안아 줄 수 없잖아요? 내몸으로 당신을 따뜻하게 해줄 수 없어요. (사이)그렇죠?
남자: 하지만 당신은 내 마음이 추운거라고 말했잖아.
여자: 무슨 말이든 해야 했으니까요. 그리고 당신을 따뜻하게 해주려면, 당신을 화나게 하는 것보다 더좋은 방법이 어디 있겠어요? 피가 다시 돌게 하려면 가벼운 말다툼을 하는게 최고라고요.
남자: 아아, 아주 잘했어.
여자: 여자가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어떤 희생을 감수하는지 아세요? 나는 기꺼이 당신의 미움을 자초했어요. 단지 내 사랑을 보여 주기 위해서.--- p. 265
여기까지 온 이상,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노력해서, 결말이 어떻게 나는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은 이미 <출판>되었기 때문에 하드커버로 다시 내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관심을 가져 줄 만한 페이퍼백 출판사는 아직 남아 있었다. 그런 출판사들에게 거절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내 소설을 버리고 떠날 마음은 나지 않았다. 나는 다시 에이전트를 찾기 시작했고, 이번에는 제대로 찾아냈다. 그녀는 내 소설을 <에이번 북스>의 편집자에게 보냈고, 사흘 뒤에 채택되었다. 그들은 선수금으로 2천 달러를 제시했고, 나는 거기에 동의했다. 실랑이도 없었고, 흥정도 없었고, 속셈을 감춘 협상도 없었다. 나는 자존심을 되찾은 기분이어서 시시콜콜한 것은 더 이상 개의치 않았다. 원래의 출판업자와 (계약대로)선수금을 나누자 내게는 1천달러가 남았다. 여기서 에이전트 수수료 10퍼센트를 빼고 나니 결국 내 손에 쥐어진 돈은 단돈 900달러였다. 돈을 벌기 위해 책을 쓴다는 건 그런 것이다. 헐값에 팔아 치운다는 건 그런 것이다.--- pp.171-172
누구를 탓할 수도 없었다. 모두가 내 불찰이었다. 나와 돈의 관계는 늘 삐걱거렸고, 애매모호했고, 모순된 충동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 그 문제에 대해 분명한 태도를 취하지 않은 대가를 치르고 있었다. 내 꿈은 처음부터 오직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나는 열예닐곱 살 때 이미 그것을 알았고, 글만 써ㅓ 먹고 살 수 있으리라는 허황한 생각에 빠진 적도 없었다. 의사나 경찰관이 되는 것은 하나의 <진로 결정>이지만, 작가가 되는 것은 다르다. 그것은 선택하는 것이기보다 선택되는 것이다. 글쓰는 것말고는 어떤 일도 자기한테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평생 동안 멀고도 험한 길을 걸아갈 각오를 해야 한다. 신들의 호의를 얻지 못하면(거기에 매달려 살아가는 자들에게 재앙이 있을진저), 글만 써서는 입에 풀칠하기도 어렵다. 비바람을 막아 줄 방 한캄 없이 떠돌다가 굶어 죽지 않으려면, 일찌감치 작가가 되기를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이해했고 각오도 되어 있었으니까, 불만은 없었다. 그 점에서는 정말 운이 좋았다. 물질적으로 특별히 원하는 것도 없었고, 내 앞에 가난이 기다기리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겁먹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원한 것은 재능 -- 나는 이것이 내 안에 있다고 느꼈다 -- 을 맘껏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 그것뿐이었다.--- pp.5-6
'내 산책은 다소 충동적이었다. 생면부지의 사람들 사이를 유령처럼 돌아다니고 싶은 충동이 나를 사로잡곤 했다.열흘쯤 지나자 더블린 시내의 거리를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히 알게 되었다. 마음속에 더블린 지도가 그려졌다. 그 후 몇 년 동안은 잠들기 전에 눈을 감을 때마다 더블린 시내가 눈앞에 떠오르곤 했다. 졸음이 밀려와 의식이 반쯤 흐릿해질때면 나는 다시 더블린으로 돌아가 그 시내의 거리를 지나고 했다. 왜 그랬는지,이유는 설명할 수 없다. 거기서 뭔가 중요한 일이 나한테 일어났지만,그게 무엇인지 정확히 설명할 수 없다. 아마 뭔가 굉장한 일, 내 깊은 내면과의 멋진 상봉이 일어나쓸 것이다. 그 고독한 시간속에서 나는 어둠을 들여다보고 ,난생 처음으로 나 자신을 본 것 같다.' 이 구절이 가장 인상깊었습니다. 제가 갈망하는 그 순간을 맛 본 폴 오스터가 부러웠습니다. 그럼 이만..--- p.31
'내 꿈은 처음부터 오직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나는 열예닐곱 살 때 이미 그것을 알았고, 글만 써서 먹고 살 수 있으리라는 허황된 생각에 빠진 적도 없었다. 의사나 정치인이 되는 것은 하나의 <진로 결정>이지만, 작가가 되는 것은 다르다. 그것은 선택하는 것이기보다는 선택되는 것이다. 글쓰는 것말고는 어떤 일도 자기한테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평생 동안 멀고도 험한 길을 걸어갈 각오를 해야한다. 신들의 호의를 얻지 못하면(거기에만 매달려살아가는 자들에게 재앙이 있을진저), 글만 써서는 입에 풀칠하기도 어렵다.

비바람을 막아 줄 방 한칸 없이 떠돌다가 굶어 죽지 않으려면, 일찌감치 작가가 되기를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이해했고 각오도 되어있었으니까, 불만은 없었다. ....... 작가들은 대부분 이중생활을 하고 있다. 생계에 필요한 돈은 본업에서 벌고, 남는 시간을 최대한 쪼개어 글을 쓴다. 이른 아침이나 밤늦게, 주말이나 휴가 때. 윌리엄 칼러스 윌리엄스와 루이 페르디낭 셀린은 의사였다. 윌리스 스티븐스는 보험회사에 다녔다. T.S. 엘리어트는 한때 은행원이었고, 나중에는 출판업에 종사했다. ...'--- p.
나는 조금씩 임기응변의 처세술을 배웠고, 상대를 적당히 다루는 법도 배웠다. 학창시절의 마지막 2년은 이것저것 잡다한 일을 하면서 잡문에 대한 취행을 키웠다. 나는 서른살이 될 때까지 잡문으로 생계를 유지했고 결국 그것 때문에 인생의 낙오자가 되었지만 거기에는 어떤 낭만적인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가령 나 자신을 아웃사이더로 선언하고 훌륭한 인생에 대한 일반적인 통념에 휩쓸리지 않고 혼자 힘으로 해나갈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고 싶은 욕구같은 것. 내 입장을 고수하고 물러서지 않으면 아니 그렇게 해야만 내 인생을 훌륭해질 터였다. 예술은 신성한 것이고 예술의 부름에 따르는 것은 예술이 요구하는 어던 희생도 치르는 것, 목적의 순수성을 끝까지 지키는 것을 뜻했다.--- p. 62
나 자신을 아웃사이더로 선언하고, 훌륭한 인생에 대한 일반적인 통념에 휩쓸리지 않고 혼자 힘으로 해나갈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고 싶은 욕구 같은 것. 내 입장을 고수하고 물러서지 않으면 아니 그렇게 해야만 내 인생은 훌륭해질 터였다. 예술은 신성한 것이고 예술의 부름에 따르는 것은 예술이 요구하는 어떤 희생도 치르는 것 목적의 순수성을 끝까지 지키는 것을 뜻했다'--- p.62
그리고는 돌아서서 내 곁을 떠났다. 카드는 여전히 테이블 위에 펼쳐져 있었다. 그것을 모두 시가 상자에 도로 집어넣는 데에는 1,2분이 걸렸고, 내가 밑바닥까지 내려간 것도 바로 그때였다. 나는 아직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 1,2분 동안이 바로 내가 인생에서 가장 밑바닥에 도달한 순간이었다고.--- p.154
그는 아홉 달 뒤에 간신히 책 한 권-그것도 페이퍼백 복각본-을 세상에 내놓았지만, 내 소설을 출판하는 일은 2년 동안이나 지지부진했다. 마침내 책이 나왔을 때는 배급업자를 잃은 뒤였고, 자금도 한푼 남아 있지 않았다. 어느 면에서 보든 출판업자로서 그는 죽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가 직접 뉴욕 시내를 돌아다니며 서점 두어 군데에 책 몇 부를 배본했지만, 나머지는 골판지 상자 속에 남은 채 브루클린 어딘가에 있는 창고 바닥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잘은 모르지만, 그 책들은 아직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 온 이상,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노력해서, 결말이 어떻게 나는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은 이미 <출판>되었기 때문에 하드커버로 다시 내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관심을 가져줄 만한 페이퍼백 출판사는 아직 남아 있었다. 그런 출판사들에게 거절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내 소설을 버리고 떠날 마음은 나지 않았다. 나는 다시 에이전트를 찾기 시작했고, 이번에는 제대로찾아냈다.

그녀는 내 소설을 <에이번 북스>의 편집자에게 보냈고, 사흘 뒤에 채택되었다. 만사가 그런 식으로 순식간에 진행되었다. 그들은 선수금으로 2천 달러를 제시했고, 나는 거기에 동의했다. 실랑이도 없었고, 흥정도 없었고, 속셈을 감춘협상도 없었다. 나는 자존심을 되찾은 기분이어서, 시시콜콜한 것은 더 이상 개의치 않았다. 원래의 출판업자와 (계약대로)선수금을 나누자 내게는 1천 달러가 남았다. 여기서 에이전트 수수로 10퍼센트를 빼고 나니, 결국 내손에 쥐어진 돈은 단돈 9백 달러였다.

돈을 벌기 위해 책을 쓴다는 건 그런 것이다. 헐값에 팔아 치운다는 건 그런 것이다.--- p.171-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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