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이 너와 나를 가깝게 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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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너무 좋다고, 힘들때면 꼭 읽어보라는 많은 서평을 보고 읽게 된 책...
자신이 좋아하던 일을 하다가 부인을 만나서 그곳을 떠나와서 많이 힘들어하던 중년의 주인공이 결국에는 이혼을 당하고, 개마저 죽고난후에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그의 불행의 원인을 아버지때문이라고 생각이 미치자.. 돌연사한 아버지의 자취를 찾아 떠나고, 아버지의 비밀을 알게된다... 하지만 그 과정이 너무나도 지루했다. 왜 이런 책을 추천을 했는지, 읽으라고 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더러운 숲을 읽기 전까지는...
그가 아버지에 대한 미움보다 자신에 대한 자책에 숲을 통과하면서 느끼고, 생각하는 그의 여정... 눈물겹고, 안타까웠다. 그리고 내가 얼마전에 강화도에 혼자서 죽을힘으로 다녀온 일이 떠올랐다.
슬프고, 아픈 느낌을 받기는 했지만.. 아직 그의 자기자신과의 대화, 화해등에 대해서는 몇번 더 읽어봐야 알것만 같다.
아무튼 이 책으로 인해서 나와 나를 더 가깝게 할 수 있었으면...


<도서 정보>제   목 : 이 책이 너와 나를 가깝게 할 수 있다면(원제 Si ce livre pouvait me rapprocher de toi)
저   자 : 장 폴 뒤부아 저/김민정
출판사 : 밝은세상
출판일 : 2006년 10월
책정보 : ISBN : 8984370770 | 페이지 : 252 | 356g
구매처 : Yes24
구매일 : 2006/11/30
일   독 : 2006/12/7
재   독 :
정   리 :

<이것만은 꼭>



<책 읽은 계기>



<미디어 리뷰>
『이 책이 너와 나를 가깝게 할 수 있다면』은 부모를 떠나보내고 아내와도 이혼해 외톨이가 된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장폴 뒤부아의 무르익은 사유의 깊이와 풍부한 감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이 소설은 인간의 내면에 대한 놀라운 탐구, 산다는 것에 대한 진지한 성찰, 대자연에 대한 장엄하고도 신비한 묘사가 어우러진 하나의 도도한 강줄기를 만들어낸다.
‘사람을 평화롭게 살 수 없게 만드는 문제는 과연 무엇일까?’ 바로 숨 가쁜 긴장과 절제된 진지함으로 완성된 장 폴 뒤부아 소설의 중심을 잡고 흔드는 질문이다. 이 소설은 마른 땅에 단비를 뿌리듯 절망의 심연에서 환희의 세계를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한 인간이 안간힘을 다해 고난의 여정을 헤쳐 나온 감동의 기록이며, 우리에게 생을 대하는 진정한 용기란 진정 무엇인지 일깨워주는 장엄한 교향곡으로서의 풍모를 갖추고 있다.
저자 : 장폴 뒤부아(Jean-Paul Dubois)
1950년 프랑스 툴루즈에서 태어났으며 현재도 살고 있다.『케네디와 나』로 프랑스 텔레비전문학상을, 『프랑스적인 삶』으로 페미나상을 수상했다. 현재 《누벨 옵세르바퇴르》의 기자이자 리포터로 활약하고 있으며, 열일곱 권의 소설을 비롯해 다수의 에세이와 여행기를 썼다.
장폴 뒤부아는 『이 책이 너와 나를 가깝게 할 수 있다면』에서 숨 가쁜 긴장과 절제된 진지함으로 지친 삶을 딛고 일어서고자 하는 한 인간의 고뇌, 절망의 심연에서 환희의 빛으로 나아가고자하는 갈망을 성찰과 고난의 여정을 통해 감동적으로 그려나간다. 아버지의 죽음, 아내와의 이혼으로 이어지는 거듭되는 좌절 속에서 여행을 떠난 폴 페레뮐터는 심각한 인종차별주의자, 둘도 없는 망나니, 상처입고 망가진 사람들, 자연과의 합일을 이루며 유유자적 살아가는 낚시꾼 등 다양한 인간군상과 마주한다. 그의 여정에는 경악할 만한 경험이 함께 하며, 놀랍도록 장엄하고 아름다운 자연이 배경이 되어 우리를 매혹시킨다. 사랑과 눈물이 가득하고, 유머러스하고 심오한 이 소설은 피츠제럴드의 작품보다 더욱 감성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주요작품으로는『프랑스적인 삶』, 『케네디와 나』, 『타네 씨, 농담하지 마세요』, 『난 다른 걸 생각해』가 있고, 여행기로『난 미국이 걱정스러워』가 있다.

1.표류하는 운명, 암울한 상실감을 벗어던지기 위한 아름다운 여정!
―장폴 뒤부아 한국 방문 기념『이 책이 너와 나를 가깝게 할 수 있다면』 출간!

『케네디와 나』, 『프랑스적인 삶』, 『타네 씨, 농담하지 마세요』로 국내 독자들에게도 널리 사랑받고 있는 장폴 뒤부아의 한국 방문(2006년 10월 23일-10월 29일)이 결정되었다. 장폴 뒤부아의 소설을 독점 출간해온 밝은세상은 프랑스문화원의 지원을 받아 다채로운 방문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장폴 뒤부아는 열일곱 권의 소설과 수많은 에세이, 여행기 등을 집필한 프랑스 문단의 중견 작가이다. 페미나상과 프랑스 텔레비전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출간하는 작품마다 화제의 중심이 될 만큼 독자들로부터 널리 사랑받고 있다. 장폴 뒤부아의 소설이 매우 중요하게 읽히는 이유는 이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의 삶과 실존의 의미를 치밀하게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장폴 뒤부아의 소설에서 자주 대하는 배경과 인물, 일상적이고 흔한 풍경 속에는 현대인들이 안고 있는 비극적인 색조, 이를테면 권태, 삶의 위기, 무력감, 욕망의 좌절 등이 담겨 있다. 그런 한편 포기할 수 없는 생의 의지, 미래에 대한 희망을 동시에 품고 있기도 하다. 그러하기에 그의 소설은 언제나 생활 주변에 주목한다. 생활 속에서 빈번하게 마주치는 사람, 즉 가족이 그의 소설에서는 주요 등장인물이다. 그러나 가족 구성원들과 연결된 끈은 느슨하게 풀려 있다. 전방위적인 자유를 추구하는 현대사회에서 가족공동체의 의미는 갈수록 미약해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가족은 사람이 나고 자라고 늙어가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부여할 수밖에 없는 공동체이기도 하다.

2.우리의 생을 절망의 심연에서 환희의 빛으로 이끄는 장엄한 감동!

이 소설은 폴 페레뮐터라는 주인공이 읽는 이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이야기가 시작되는 시점으로부터 일 년 전 그가 뜻하지 않게 겪어야 했던 ‘모험’에 대해, 한때 죽고 싶을 만큼 절망감에 처했던 그가 어떻게 그 상황을 헤치고 나왔는가에 대해 진솔하게 술회하는 형식이다. 이 소설의 초반부는 주인공이 존재와 사물에서부터 멀어져 스스로 소멸해가는 상태이다. 일종의 무기력이 그를 침범한다. 너무 깊은 절망에 생을 강타당하는 순간, 의식은 ‘맡은 역할을 해 내기에는 너무 지친’ 상태가 되어버린다. 폴 페레뮐터는 홀로 이 모든 절망에 관한 조사에 착수하고, 자기 자신이 단념할 것들의 목록을 작성한다. 그는 어느덧 쉰을 바라보는 나이이며, 전업 작가로 열세 권에 이르는 소설을 펴냈지만 그 결과는 늘 신통찮기만 하다. 우연히 들른 비뇨기과에서 생식능력이 없다는 진단을 받고, 얼마 후에는 아내에게 버림받고, 곧이어 생의 작은 위안이었던 개마저 죽어버리는 상황에 처한다. 그러잖아도 삶에 대한 열정을 잃어버려 시들마른 일상을 영위해오던 그로서는 더 이상 버틸 힘을 잃고 만다. 그러나 우울증에 빠질 것만 같은, 사라질 것만 같은 순간에 처한 폴 페레뮐터는 ‘살아왔다기보다는 부자연스럽게 생을 포장해왔다’는 표현이 알맞을 자신의 생을 바꾸어보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부활’을 향한 계단 하나하나를 장엄하게 걸어간다.
폴 페레뮐터는 다시 한 번 삶의 물결 속에서 헤엄치기 위해, 행복과 두려움을 맛보기 위해, 거센 바람과 뜨거운 햇볕과 얼어붙는 추위에 맞서기 위해, 돌을 깨고 흙을 파헤치기 위해, 깊이깊이 파헤쳐 그 속에 자신의 생을 잠식해온 절망의 ‘구덩이’를 묻어버리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그는 자신이 절망의 심연에서 허우적거리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제각기 원인 모를 사고로 세상을 떠난 어머니와 아버지, 그 중에서도 특히 아버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그 여행은 ‘유별난 낚시꾼’이자 ‘희한한 가장’이었던 아버지의 죽음을 둘러싼 비밀을 밝히기 위한 여행이 된다. 가시밭길을 자처하며 미국 남부를 헤매다 결국 아버지가 익사한 캐나다 북부 퀘벡의 플라망호수를 찾게 되는 그의 여정은 갖가지 기억할만한 경험으로 채워진다.
그가 여행을 통해 만난 사람들은 저마다의 삶을 각양각색으로 채색하고 있다. 망상에 사로잡힌 마이애미 억만장자, 뱀 굴 위에 세운 호화로운 호숫가 왕국에 유폐된 뉴요커, 자기도취에 빠진 인종차별주의자 등등, 다종다양한 인물 전시장이 아닐 수 없다. 미국 남부의 마이애미에서 네이플스로, 거기서 다시 캐나다 북부로, 그 한가운데 도사리고 있는 ‘더러운 숲’으로 이어지는 여정. 그 멀고도 험난한 길로 이어지는 주인공의 궤적을 따라가는 동안, 읽는 이는 얽히고설킨 인간관계며 그 속에서 벌어지는 온갖 일들이며 거기서 드러나는 인간의 파렴치한 면면들처럼 뾰족뾰족 마음을 찔러오는 ‘가시덤불’을 헤쳐 나가기도 하고, 캐나다 북부의 그림 같은 풍경과 위대한 작가들의 주옥같은 글을 투명하게 비춰내는 ‘호수’를 이윽히 바라보기도 하면서 ‘자유’와 ‘열정’이라는 것에 대해, 편견과 선입견과 모든 이분법적인 사고를 벗어던진 채 오롯이 제 자신의 무게만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것에 대해, 즉 자신을 둘러싼 ‘장막’을 벗어던진 채 다른 사람과 온전히 가까워지는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곱씹어보게 된다. 퀘벡의 플라망호수는 한 번씩 그곳으로 도피하듯 여행을 떠나곤 했던 그의 아버지가 익사한 곳이다. 그는 아버지의 옛 친구 장 잉거쇨을 만나 아버지가 가족 몰래 딴 살림을 차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폴 페레뮐터는 그 충격을 대자연과의 만남을 통해 극복해내는 동시에 자기 자신과도 화해하게 된다.
결국 그가 얻은 진정한 평화는 부조리한 생에 ‘항복’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숨겨진 아주 작은 행복의 땅’으로 들어서는 것이다. 자신에 대한 분노의 끝, ‘강하고 당당한 무언가를 세우기’ 위해 꼭 필요한 용기와의 조우이다.
장폴 뒤부아의 이 소설은 너무나 살고 싶은 마음을 되찾게 해준다. 마치 봄에 불어오는 첫 번째 돌풍처럼 세상에 다시 나가 세상을 사랑하고 싶어지게 한다.


<책속으로>
시작
이혼
기억
여행
엽기 사건
병치레
밝혀진 비밀
호수
더러운 숲

옮긴이의 말

오랜 세월 그렇게 미련을 떨며 얻은 교훈이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책을 통해 더 나은 사람이 될 수는 없다’는 거다. 쓰는 사람이든 읽는 사람이든. 이건 특히 쓰는 사람이 명심해야 될 얘기다. 사실 우리네 작가들이란 대개 주제에 걸맞지 않는 역할을 해내느라 쩔쩔매는 인간들 아닌가. 분에 넘치는 대저택을 짓는가 하면 청승맞게 목 놓아 울다 별안간 호탕하게 웃어젖히기도 하고 때론 일생일대의 사랑에 빠지기까지 하니까. 그러니 작가라면 밤에 이를 갈 수밖에. 제 꼬락서니가 얼마나 한심한지 뼈저리게 느끼면서 어찌 분이 치밀어 오르지 않겠는가. 이야기 속 인물들이 아무리 대단해도 자신은 절대 그렇게 될 수 없으니. 절대로 자기가 이룰 수 없는 것을, 날마다 조금씩 버려야 하는 희망만을 그려야 하니.
--- p.13-14
“죽은 자가 날 가르칠 순 없어.”
돌이켜보면 바로 그때 난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던 것 같다. 어디로 떠날지 얼마 동안 떠나 있을지 그런 건 확실하지 않았지만, 피서차 떠나는 여행이 아닌 것만은 분명했다. 난 돈도 없고 꿈도 없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삶의 물결 속에서 헤엄쳐보고 싶었다. 싸우고 싶었다. 지키기 위해서든 물리치기 위해서든. 행복과 두려움을 다시 맛보고 싶었다. 거센 바람과 뜨거운 햇볕과 얼어붙는 추위와 맞서고 싶었다. 돌을 깨고 흙을 파헤치고 싶었다. 깊이 깊이 파헤쳐 그 속에 내 안의 구덩이를 파묻고 싶었다.
--- p.53-54
“신이든 뭐든 뭔가를 믿는다는 건 말이오, 인간이 갈 데까지 갔다는, 비천해질 대로 비천해졌다는 증거라오. 믿음이야말로 굴종과 예속이 어떤 것인지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니까.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자신을 지긋지긋하게 괴롭히는 존재를 찬양하고, 그를 향해 무릎 꿇고 기도할 수 있단 말이오? 천만다행으로 말이오, 그런 증상에 대해서 약이 하나 존재하오. 불행이라는 약이지. 나도 엄청난 불행을 겪고 나서야 믿음이라는 미혹에서 벗어났으니까. 아직까지 내가 믿는 게 하나 있긴 해요. 그게 뭔지 아시오? 바로 내 발 밑에서 질척거리고 있는 진흙탕이오. 언젠가 때가 되면 나를 빨아들여줄 이 미적지근한 진흙탕.”
--- p.71-72
서쪽 하늘로 저물어가는 태양이 비행기의 벽면을 온통 황금빛으로 물들여놓고 있었다. 둥근 유리창엔 파리가 한 마리 달라붙은 채 꼼짝 않고 그 장엄한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파리는 어디서 날아들었을까? 얼마나 복잡다단한 과정을 거쳐 거기까지 날아들었을까? 도대체 그 무슨 운명의 장난에 말려들어 비행기 여행까지 하게 됐을까? 우주적 차원에서 우린 둘 다 똑같이 보잘것없는 존재였다.
--- p.90
새벽이었다. 나는 빗방울이 허술한 지붕을 무너뜨릴 듯 마구잡이로 두드려대는 소리에 잠을 깼다. 열대지방의 ‘스콜’처럼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었다. 창밖을 내다보니 빗줄기에 가려 맞은편 기슭은 보이지도 않았고, 어제만 해도 거울처럼 매끄럽던 수면은 이제 오렌지 껍질처럼 우툴두툴했다. 나는 그 광경을 바라보며 언젠가 다시 책을 쓰게 되면 그 아름다움을 글로 옮겨보겠노라 생각했다. 돌이켜보니 얼마나 주제 넘는 생각이었는지. 제아무리 공들여 쓴다 해도 거센 비바람에 실려 오는 나무냄새 흙냄새를 다 담아낼 수는 없는 것을. 돌풍에 나뭇가지가 부러지고 나무둥치가 휘어질 때 따뜻한 집 안에 들어앉아 있는 행복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온 숲을, 거기 깃들어 사는 모든 것들을 덮치는 공포를? 책이라는 조그만 거울은 기껏해야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비춰줄 수 있을 뿐 울창한 숲과 깊숙한 진창과 끝없는 바다를 다 보여주지 못한다. 허먼 멜빌의 『흰 고래 모비딕』의 마지막 장면을 제아무리 주의 깊게 읽는다 한들 그 공포감을 주인공이 느끼는 그대로 느낄 수 있을까? 그놈이 마침내 ‘나’를 찾아왔다고? 두려움에 대해 묘사해놓은 글을 읽는 것과 그 두려움을 실제로 느끼는 것은 말 그대로 ‘천양지차’인 것이다.
--- p.165-167
내가 오리지널을 활로 쏘아 죽인 것도, 그 시체를 토막 낸 것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굳윈 내외보다 더 나은 인간이라고 할 순 없었다. 죽이는 자와 죽이는 걸 바라만 보고 있는 자, 둘 중에 누가 더 나쁘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들이 걸어간 길을 따라 피가 점점이 흩뿌려져 있었다. 나는 피로 물든 오솔길을 홀로 걸어 절벽 위에 이르렀다. 저만치 굳윈 내외가 고깃덩이를 둘러맨 채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걸음을 빨리했다. 다시 올라올 그들과 맞닥뜨리지 않기 위해.
이제 난 숲에서 어떤 소리가 들려와도 무섭지 않았다. 곰이 나타난대도 겁날 게 없었다. 와이모어와 아이클에 이어 굳윈 내외를 보고 나서 인간만큼 무서운 존재가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으므로.
--- p.195
손이 끊어져나갈 것 같을 때, 온몸에 열이 펄펄 끓을 때, 배고프고 목말라 미칠 것 같을 때, 그럴 때 제발 이 상황을 벗어나게 해달라며 기도를 한다손 치더라도, 그럴 때조차도 기도란 걸 하려면 털끝만 할지라도 믿음이라는 게 있어야 한다. 굳이 신이라 이름붙일 순 없다 하더라도 뭔가 제 마음의 주인 노릇을 할 수 있는 존재에 대한 ‘믿음’이. 그 존재와 자신 사이에 ‘관계’가 맺어지길 바라는 마음이.
그날 아침, 내가 진정으로 바랐던 건, 내가 진짜로 하고 싶었던 건, 불을 지피고 그 불이 꺼지지 않게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불은 실제로 존재했으니까. 살아서 너울거렸으니까. 내가 믿을 건 불밖에 없었다. 내 눈에 보이는 불밖에.
--- p.232
무려 십삼 일 동안 나는 세상에서 사라져 있었다. 그렇게 말해놓고 보니 좀 우스꽝스럽다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 그 두 주일 가까운 시간 동안 나는 자작나무가 인간에게 얼마나 쓸모 있는 존재인지, 가을밤이 얼마나 추운지, 빗물에선 어떤 맛이 나는지 알게 되었다.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그 숲속엔 ‘흰 고래 모비딕’들이 득실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 등에 올라탄 채 그 숨결이 내 몸을 가로지르는 걸 느꼈다. 그 느낌은 영원히 내 마음속에 새겨진 채 지워지지 않으리라. 이제야 난 죽어가는 친구를 지켜보는 느낌이 어떤지를 알 것 같다.
--- p.244-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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