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쌍들의 꼬이고, 아름답고, 귀엽고, 심각한 사랑의 이야기로 역은 소설방식의 책...
그 이야기들속에서 웃고, 울고, 슬프고, 생각에 잠기게 되는 재미가 솔솔하다.
책 한권에 얼마나 솔직하고, 정확하게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는데, 때로는 가슴아프고, 때로는 지난날을 떠올리고, 때로는 한숨짓게 하고, 때로는 미소짓게 해주는 좋은 책이다.
그리고 정말 멋진 말들이 많이 나온다는...
동희야, 다른 사람의 마음을 비상금처럼 꺼내 쓰는건 안돼.
그건 결국 두 쪽 다 슬퍼지는 일이야. 한쪽만 슬픈게 아니라
헤어진 사람들의 3대 착각
하나, 자기가 제일 불쌍한 줄 안다.
둘, 그 사람도 자기 때문에 조금은 슬퍼할 줄 안다.
셋, 절대로 그 사람을 못 잊을 줄 안다.
도서요약본 |
도서요약본 - 감추기
이미나 지음 아이 러브 유사랑을 말하는 사람들의 불완전한 소통에 관한 이야기이다. 다양한 사랑의 방식이 51개의 에피소드로 펼쳐져 있다. 작가는 사랑을 하면서 겪게 되는 오묘한 심리를 토닥여 주며, 사랑의 불완전한 소통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사랑을 해내는 이들의 모습을 한 편의 멜로드라마로 소개하고 있다. ▣ 저자 이미나 그녀는 라디오 작가로 살아온 6년 동안,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매일매일 쓰면서 오히려 사랑에 대해 궁금한 것이 더 많아졌다고 한다. 모두가 사랑한다고 말하는데, 왜 그렇게 엇갈리는 사람들이 많은 걸까? 왜 오래도록 사랑하지 못하는 걸까? 그래서 이 책은 사랑을 말하는 사람들의 불완전한 소통에 관한 이야기를, 그리고 불완전한 소통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사랑을 해내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녀의 취미는 아무도 물어보지 않는 세 가지 소원을 혼자서 수시로 꼽아보는 것인데, 세계 일주와 열애, 그리고 좋은 번역가가 되는 것이 현재의 소원이다. 그리고 한 가지 소원을 더 꼽자면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 몰라서 혹은 오해 같은 것으로 헤어지는 일이 없기를, 그래서 모두모두 오래오래 사랑을 말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 Short Summary 서른둘의 드라마 제작 피디인 동희의 사랑, 이별을 통고 받은 후에도 그녀는 사랑의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해 집착한다. 동희가 사랑한 대학 강사 성재는 사랑의 아픈 기억을 갖고 있어 동희의 존재감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취직을 앞둔 동희의 조카 진철과 스크립터 지현의 사랑, 몸만 좋은 진철과 이름만 전지현인 이들이 사랑을 이루어 가는 과정은 유쾌하다. 일찍 혼자 되어 가슴 수술을 앞둔 드라마 작가인 엄마 송자와 눈먼 시각 장애인 무용수 지훈의 사랑, 이들은 부족함을 받아들이는 사랑의 행복을 보여준다. 동희의 오랜 친구이자 동료인 동욱의 기다리는 사랑, 더 좋아하는 사람이 더 행복한 것이라며 동희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작은 술집을 경영하며 동욱을 사랑하는 남자 승민의 금지된 사랑, 그의 독백은 이렇다. ‘내 마음속에 네가 있다고 말하면 비웃으려나’ 동희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랑의 엇갈림을 두고 이들의 사랑이 제자리를 찾길 기도하며 잠시 먼 이국 땅으로 여행을 떠난다. 혼자 낯선 곳에서 아무것이나 먹으며 아무 곳이나 걷고 돌아다닌다. 여행에서 동희는 사랑으로 상처 난 자신을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사랑을 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사실과 예전과는 똑같지 않을 달라진 자신을 발견한다. ‘그 사람 하나를 열심히 사랑한 덕분에 나는 이렇게 더 많은 걸 배우게 되었구나. 그를 사랑하느라 힘들었던 그 시간이 나에게 이토록 고맙게 남았구나.’ ▣ 차례
두 사람이 함께 지내 온 시간은 꽤 길었다. 숨소리 한 번에 모든 것을 알아낼 만큼의 지극한 마음은 이미 사라졌다 해도, 최소한 같이 지내 온 시간만큼은 서로를 아는 법이니까. 하지만 그것을 들추어 위로해 줄 마음은 없다. 지금 동희가 뭐라도 말해야겠어서 아무 말이나 지껄이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다만 모른 척할 뿐. 아픔을 외면하는 일도 쉽지 않다. 하지만 아는 척을 하면 동희는 예전의 누군가처럼 매달릴 것이다. 너는 나를 다 알면서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냐고 기어이 눈물을 쏟으며… 그때 한 번으로 족하다.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다. 성재는 동희의 이야기를 건성으로 들으며 두 사람이 처음 만난 날을 떠올렸다. 2년 전 성재가 강의 중인 학교로 웬 드라마 팀이 촬영을 왔고, 촬영 팀이랑 딱히 상관은 없지만 친구를 따라 놀러 왔다는 대학 후배 동욱을 만났다. 그리고 오랜만이라 술을 한잔하게 됐는데 동욱의 친구이자 그 드라마 피디라며 술자리에 나타난 사람이 바로 동희였다. 드라마 피디와 같이 나오겠다는 동욱의 말에 성재는 당연히 컷과 NG를 외치는 드라마 감독을 떠올렸다. 며칠째 감지 못한 머리에 시꺼먼 모자를 눌러쓰고 며칠째 면도를 못한 턱에는 거뭇거뭇한 수염이 나 있는 후줄근한 남자. 그런 이유로 시꺼먼 모자를 쓰지 않고 수염도 하나 없는 동희가 눈앞에 나타났을 때 성재는 그 얼굴이 무척이나 신선하게 느껴졌다. 만약 제작 피디라는 직업이 따로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다면, 모든 드라마 스태프가 후줄근한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그리고 대학 시절부터 꼬인 데라곤 전혀 없어 부러우면서도 왠지 재수 없게 느껴졌던 동욱이가 그런 동희에게 목매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면, 그 바람에 괜하고도 비열한 욕심 같은 것이 생겨나지 않았다면, 성재는 처음부터 동희에게 관심조차 두지 않았을 것이다. 지극히 평범하게 생겨서 어디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여자, 그러면서도 용감하게 화장도 잘 안 하는 여자, 처음 보는 남자 앞에서 자기 별명이 ‘똥’이라고 당당하게 밝히던 여자, 술은 남들만큼 마신다고 자신 있게 말하더니 소주 두 잔에 눈이 풀려 혼자서 키들키들 자꾸만 웃어 대던 여자, 좋아하는 마음을 절대로 감추지 못하는 여자, 좋아한다고 말하며 콧물까지 흘리던 여자… ♬ 성재 독백 : 처음에 네가 그렇게 좋지 않았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울긋불긋한 여드름도 우스웠고 농담과 진담이 모호한 너의 말투도 거슬렸다. 무엇보다 별로였던 건 이렇게나 시시한 나를 네가 그렇게나 좋아한다는 사실이었다. 왜 나를 좋아할까? 왜 하필 나를? 나는 아무것도 아닌데? 시시한 나를 보며 애태우는 네가 나는 시시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네가 놀자고 하면 꼭 다른 사람 하나를 끼워 나갔다. 그럴 때마다 네 얼굴이 굳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못되게도 나는 그런 네 마음을 모른 척했고, 속없이 그 자리에 동참해 주는 바보 같은 동욱이도 있어서 우린 만날 때마다 늘 세 명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네가 불쑥 전화를 걸어 “대전이야”라고 말했을 때 나는 더럭 겁이 났다. 올 것이 왔구나 싶어서. 빗지 않은 머리, 맨발에 슬리퍼 차림으로 현관문을 나서며 나는 머리를 굴렸다. 네가 날 좋다 하면 난 뭐라고 대답할까. 그래,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고 하자. 누군지 물으면 네가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자. 그런데 막상 놀이터에 앉아 있는 너의 얼굴은 불타는 듯 빨간색. 술도 잘 못 마시는 애가 웬일로 술을 마셨을까. 나는 초조하게 너의 ‘할 말’을 기다렸고 한참을 모래만 파던 너는 이윽고 말했다. “너, 내가 못생겨서 싫어하지?” 그러곤 푹 주저앉아 버리고.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네가 귀여워서. 그리고 그때 처음으로 네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술 냄새는 풀풀, 크지 않은 눈은 그나마 반쯤 감겨 있고 어지간히 서러웠는지 눈물 말고도 콧물 같은 것이 살짝 비치는 너의 눈, 코, 이마, 눈썹… 나는 너를 부축하며 그랬다. “너 정말 못생겼구나!” “왜 나랑 사귀게 됐어?” 언젠가 네가 그렇게 물어 보면 나는 ‘그때 이야기’를 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네가 물었을 때 나는 뭐가 그렇게 부끄러운지 딴청만 피웠지. “내가 너를 좋아한다고 누가 그러든?” 그따위 이상한 대답만 하면서. 헤어짐을 숙제처럼 앞에 두고 있는 지금 이 말을 끝내 못해 줬다는 사실이 문득 찬밥처럼 가슴에 얹힌다. 그날 너는 참 예뻤다고…. # scene 7 기분과는 상관없이 삶은 계속된다 “진철아, 누나 바쁘니까 나중에 통화하자. 뭐? 구경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지금 촬영 끝나서 장비 접고 있어. 나중에 텔레비전으로 봐. 그리고 누나 진짜 정신없거든? 끊어, 끊어, 끊어, 끊어, 끊어.” 전화를 사납게 끊는 동희를, 옆에 있던 스크립터 지현이 쳐다보았다. 성질 나쁜 여자 좀 보시게 하는 눈빛으로, 바쁘지도 않으면서 바쁜 척하시네 하는 눈빛으로… 지현은 운이 나빠 하필이면 성이 전씨다. 그런 이유로 별명은 당연히 ‘이름만 전지현’이다. “아니 사촌 동생인데 자꾸 현장에 구경 온다고 그러잖아. 가뜩이나 정신없는데.” 순하게 생겨서는 은근히 사람을 자극하는 재주를 가진 이름만 전지현은 계속 동희를 바라봤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전화를 그런 식으로 끊으시죠 하는 눈빛으로. “아, 네가 진철이를 몰라서 그래. 늘 여자나 소개시켜 달라고 하고, 그것도 보통 여자라면 모를까, 이영애를 소개시켜 달란다. 미친 거지. 이거 왜 이래? 나도 이영애 한 번 보고 싶어. 이 인간은 드라마 쪽에서 일한다고 하면 다 장동건이랑 친군 줄 알아, 바본 거지.” 동희가 마침내 성격을 드러내며 포효하자 이름만 전지현은 그제야 만족한 듯 빙긋 웃었다. 둥글둥글 성격 좋게 생겨서는 은근히 가학적이기까지 하다. 이런 애들이 꼭 침대 밑에 채찍 놔두고 베개 밑에 수갑 숨겨 두고 그런다. “아, 진짜 누구 소개해 줄 만한 사람 없나? 지현아, 네가 몇 살이지?” “스물다섯하고 두 달 지났어요.” “너 미국 사니? 스물일곱이란 말이지?” “12월에 태어나서 그렇게 나이로 막 말씀하시면 좀 억울하거든요?” ‘하긴 그 나이 때는 제 나이가 많은 줄 알지. 나도 그랬으니까.’ 서른둘이 된 동희는 지현이 가소롭기도 했지만 이해도 되었다. “그래, 너 젊어서 좋겠다. 매우 축하하고, 혹시 네 주위에 군대 가기 싫어서 대학 졸업한 뒤 뒤늦게 입대했다가 몇 달 전에 제대해서 취직 준비한답시며 대체로 빈둥거리고, 만날 사촌 누나한테 전화해서 여자 소개시켜 달라 그러고, 드라마 촬영장에 놀러 오면 안 되냐고 그러는, 스물일곱 먹은 남자한테 소개시켜 줄 만한, 남는 친구 없니?” “잘생겼어요, 그 남자?” “쓸데없이 몸만 좋다고 할 수 있어. 누군 있긴 있는 거야?” “난 몸 좋은 남자 좋던데.” 맹랑한 이름만 전지현. 동희는 지현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얼른 약속을 잡았다. “진철아, 너 전지현하고 소개팅할래?” 전화기 속에서 진철의 공룡 불 뿜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슬로를 걸쳐 놓은 듯, 좋우와아아아아우어어어. 동희는 그런 진철에게 이름만 전지현이 정해 준 시간과 장소를 알려 주고는 전화를 끊으면서 생각했다. 내가 전지현처럼 생겼다면 성재는 나를 조금 더 오래 사랑했을까. 아직 사랑하고 있을까. 아 이렇게 못난 생각을 하긴 싫은데 멈출 수가 없는걸. 촬영 현장이 거의 다 정리되는 것을 보고는 자리를 뜨려는데, 난데없이 스태프들이 동희에게 회식을 하자고 덤볐다. 동희는 갑자기 지난번 날아가 버린 PPL 때문에 구멍이 난 제작비가 생각나 얼굴이 잠시 어두워졌다. 하지만 이내 고생 많은 스태프들에게 삼겹살도 못 먹일 만큼 돈이 없는 상황은 아니란 결론에 다다랐다. “좋아요. 오랜만에 자정도 되기 전에 끝났는데, 오늘 같은 날 먹으러 가야죠. 갑시다. 어디? 저번에 갔던 거기? 오케이!” 어쨌든 오늘도 이렇게 하루가 간다. 정신없이 일을 하고 얼떨결에 소개팅을 주선했으며, 지금은 회식 장소를 열심히 찾는 중이다. 헤어짐을 앞두고 마음은 무너져만 가는데 기분과 상관없는 삶은 계속되고 있다. ♬ 동희 독백 : 나도 다음 생에는 인형처럼 예쁜 얼굴과 탐스러운 몸매를 갖고 태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겠어요. 기왕 기도하는 거니까, 목소리는 모렐렌바움에 성품은 마더 테레사, 다섯 살 때는 관현악곡을 작곡해 온 세상을 놀라게 하고 한때는 수학 천재로 불리기도 했으며 5개 국어에 능통. 나날이 아름다워지는 미모 덕에 스무 살 무렵 우연히 여행을 간 모나코에선 나를 보고 첫눈에 반한 그 나라 왕자에게 열렬한 구애를 받지만 정중히 사양. 그 모든 능력과 부귀영화를 접어 둔 채 NGO 단체에 들어가 평생을 난민 구호 활동에 바치며 행복하고 값지게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겠어요. 하지만 만약에 그게 안 되면, 만약에 그게 안 되면… 그 도시에서 내가 한 번 길을 잃어버린 뒤론 바빠도 늘 버스 터미널까지 마중 나와 주던 사람, 나 혼자 보내야 할 때는 지갑에 만 원짜리 두 장과 집 주소를 적은 쪽지를 단단히 넣어 주며 “혹시 길 잃어버리면 택시 기사한테 이것만 보여 줘”라고 말해 주던 한때 그토록 다정했던 사람, 바로 당신과 뜨겁게 다시 뜨겁게 사랑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겠습니다. 하느님은 마음이 좋은 분이시니까, 둘 중 하나는 설마 들어 주시겠지요, 아멘. # scene 9 인연 불변의 법칙 - 짚신도 짝이 있다 “이쪽은 전지현이고, 이쪽은 최진철. 나머진 둘이 알아서 하고, 나는 저 뒤쪽에서 누구 좀 만날게. 다음 작품 같이 할 작가 만나는 거니까. 너희 둘이 서로 싫어서 물어뜯고 싸우게 되더라도 나는 부르지 마. 자 그럼 여기까지.” 동희는 쏜살같이 카페 한구석으로 사라졌다. “이름이 정말 전지현이에요?” 몸만 좋은 진철의 첫마디에 이름만 전지현은 바짝 긴장했다. 소개팅을 하면 이 시간이 제일 싫다. ‘그래서 어쩌라고요’라고 뾰족하게 말해 버릴까, ‘예 어쩌다 그렇게 됐어요’라며 잘못도 아닌데 변명을 해야 할까?, ‘연예인 전지현은 본명이 왕지현이거든요’라고 원조를 따질까…. 몇 가지 상황을 고려하며 망설이다가 지현은 그냥 이렇게 말해 버렸다. “예. 그런데 듣던 대로 정말 몸만 좋으시네요. 파란색 티셔츠가 참 입체적으로 보여요. 불끈불끈.” 손짓까지 해 가며 ‘불끈불끈’이라고 말해 버린 지현. 이건 아니다 싶었지만 이미 말은 입 밖으로 나와 버린 상태. 다행히 진철의 반응이 나쁘지 않다. “지현 씨도 듣던 대로 미인이시네요. 그리고 분홍색 원피스도 정말 예쁘네요.” 빈정거림과 악의가 전혀 섞이지 않은 순도 높은 칭찬이다. 평소 눈빛과 신경전으로 승부를 내던 지현은 그만 순식간에 무장 해제가 되어 버린 느낌이었다. 이 사람 어쩐지 예감이 좋다. 지현은 솔직해져 버리기로 한다. “사실 소개팅하면 이름 때문에 초반에 기분이 상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탤런트 전지현은 그런데 너는 왜 이래, 그런 눈빛 때문에… 고마워요. 그렇게 말해 줘서요.” 진철은 거기서 멈춰야 했다. “아유, 고맙긴요. 정말 예쁘시네요. 솔직히 지현 씨가 탤런트 전지현보다 못한 게 뭐가 있습니까? 나이가 적습니까, 주름이 적습니까, 그렇다고 살이 적습니까, 얼굴 크기가 작습니까, 턱의 개수가 모자랍니까. 딱 보니까 턱도 두 개고, 주름도 많고 넉넉하시네요.” 넋이 나간 얼굴로 지현이 말했다. “이상하다. 왜 그런 말을 듣고도 기분이 안 나쁘지? 이쯤 되면 물 뿌리고 나가야 하는데.” 몸만 좋은 진철이 악의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얼굴과 순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데 저 뒤쪽에서 한 아저씨가 심하게 우렁찬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뭐라카노 또, 지금 들어간다니까. 밥은 묵었지. 이 시간까지 밥도 안 묵었을까 봐? 드간다, 드가. 끊으라 고마.” 그 큰 소리에 지현과 진철의 대화가 잠시 끊긴다. 사투리 감상 시간이 끝나자 진철이 다시 말을 꺼낸다. “아, 저도 저런 전화 좀 받아 봤으면 좋겠네요. 오빠 빨리 들어와, 그런 거.” 지현도 수줍게 말을 꺼냈다. “저도요. 남자 친구가 데리러 온다고 해서 먼저 일어나야겠어요. 그런 말….” “그럼 우리 약속이나 주고 받을까요?” “그럴까요?” 몸만 좋은 진철과 이름만 전지현이 마주 앉아 머리 위로 사랑의 불꽃을 팡팡 쏘아 올리던 그날 밤, 두 사람의 모습을 멀리서 지켜본 동희는 자신의 블로그에 이렇게 일기를 썼다. ‘오늘 카페에서 정말 신기한 커플을 봤다. 미안하지만 스머프같이 생긴 남자랑 미안하지만 우리 집 장롱에서 물 마시는 하마같이 생긴 여자가 앉아 있었는데, 옆에서 보아하니 둘이는 좋아 죽더라. 하긴, 스머프와 하마, 개구리와 쥐벼룩, 코뿔소와 주꾸미, 남들이 뭐라 하건 무슨 상관인가. 진철이와 같이 헬스클럽에 다니는 동욱이에게 이 소식을 전했더니 무척 부러워한다. 내친김에 동욱이에게 어울리는 짝도 찾아볼까나?’ ♬ 동희 독백 : 내가 아닌 다른 두 사람이 연애를 시작했다는데 내 가슴이 떨립니다. 나도 누구와 마주 앉아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어서. ‘사랑해’라는 말을 하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문방구에서 새 볼펜을 골라 시험해 보느라 무심코 쓰는 말 ‘사랑해’. 친구의 전화를 받는 동안 나도 모르게 그려 놓은 낙서는 온통 하트 모양. 사랑을 말하고 싶은 날이 왔다는 건 당신을 얼마만큼은 포기했다는 말인지 혹은 ‘사랑해’라는 말 뒤에 숨어 있는 목적어가 아직도 당신인지… 이 글을 쓰기 전에도 일기장에 한가득 하트를 그려 놓은 나는 잠시 희망에 부풀었다가, 다시 절망하였다가 이젠 나 당신을 잊어 가는구나 생각하다가 이러다 내가 죽어야 당신을 잊겠구나 생각합니다. 철길에나 핀다는 아지랑이가 내 심장에 피었는지 들길에나 흩날린다는 민들레의 포자가 내 목구멍에서 날고 있는지 내 안이 꽤나 웅성거리고 간질거리고 멀미가 납니다. 아마 나는 사랑을 하고 싶은 것 같다, 생각합니다. 봄이 오고 있으니까요. 조금 더 정확하게 말을 한다면 아마 나는 당신을 다시 한 번 사랑하고 싶은 것 같습니다. 조금 더 솔직히 말을 한다면… 나는 당신과 서로 사랑하고 싶습니다. 조금 더 욕심을 내어 본다면… 나는 당신에게 사랑받고 싶습니다. 봄이 오고 있으니까요.
동희는 몇 분 간격으로 계속 걸려 오는 전화를 받느라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있다. 새로 시작하는 드라마에 무슨 문제가 생긴 건가. 눈앞에 놓인 쌀국수가 쌀우동이 되는 걸 눈으로 빤히 보면서도 어찌할 방도가 없는 것처럼, 일에 관한 한 동희를 도울 방법이 없으니 이럴 때는 정말이지 무기력해진다. 좀처럼 전화를 끊을 기미가 보이지 않아 동욱이 일부러 화장실에 다녀온 후에야 동희는 전화를 끊고 다 불은 쌀국수를 먹기 시작했다. “다시 시킬까? 불어서 국물이 하나도 없잖아.” “아니야, 그냥 먹을래. 어차피 입맛도 없어.” 아까는 배고프다고 해 놓고, 동희는 또 걱정만 끼친다. 동욱은 순간적으로 화를 낼 뻔하다가 금방 체념했다. 생각해 보면 동희가 걱정을 끼친다기보다는 동욱이 동희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걱정뿐이라는 말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동희는 걱정을 끼칠 의도가 전혀 없었을 테니까. 동욱이 할 수 있는 건 오직 걱정하는 일뿐, 나머지는 모두 다른 사람, 이성재가 담당하고 있다. 말 한마디로 대전까지 달려갈 에너지를 주는 일, 말 한마디로 동희의 얼굴에서 모든 웃음을 가져가는 일, 그리고 아마도 말 한마디로 저 얼굴에서 슬픔을 말끔히 걷어 내는 일, 그런 것은 모두 이성재의 몫이다. 동욱은 예전에 세 사람이 같이 만났던 시절을 떠올렸다. 동희가 입맛이 없다고 하면 동욱은 애가 타서 자꾸만 음식을 권했다. “먹어, 왜 안 먹어? 조금만 먹어 봐.” 그래 봤자 동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성재는 동희에게 음식을 권하지 않았다. 그 대신 이렇게 말했다. “그럼 먹지 마. 대신 이따가 배고프면 말해.” 그 말에 대번에 밝아지던 동희의 얼굴. 그럴 때마다 참담해지던 동욱. “또 무슨 일인데?” 동욱은 자기가 할 수 있는 걱정이라도 제대로 하려는 듯 동희에게 물어보았다. “캐스팅 디렉터인데, 주연으로 들어오는 여배우 기획사에서 남자 세컨드 역까지 달라고 하나 봐. 왜 주연 배우 출연 조건으로 신인이나 잘 나가는 배우 끼워 파는 거 있잖아.” “그런 게 진짜로 있구나.” “거의 반드시 있다고 봐야지. 그런데 이번 작품은 감독이 편성을 따 낸 거라 우리 쪽에서 캐스팅 가지고 뭐라고 말을 하기도 어려워. 편성을 누가 받았느냐에 따라 캐스팅 권한이 달라지거든. 지금 이 친구 말로는 기획사에서 여배우 몸값을 올리려고 그러는 것 같기도 하다는데, 차라리 그런 거면 좋겠다. 암튼 일단 내가 만나서 이야기를 잘해 봐야지 뭐.” 그런 사람들을 만나는 동희의 모습은 어떨까. 동욱은 그런 것이 궁금했다. “만나면 뭐라고 말해? 그 배우 안 쓴다고 그럴 거야?” 동희는 동욱을 참 순진하기도 하다는 눈길로 쳐다보며 말했다. “배우가 생각만큼 그렇게 많지 않아. 더구나 스타가 아니면 방송 편성 자체가 잘 안 나오고.” “하지만 유명한 사람 나와도 망하는 드라마 있잖아.” 그 말에 동희가 쓴웃음을 지었다. “내가 처음 이 일할 때, 별로 안 유명하지만 연기 잘하는 배우 쓰고, 쓸데없는 해외 로케 안 나가고, 헬기 같은 거 안 띄우고, 그 대신 대본에 공들여서 작고 좋은 드라마 만들면 안 되냐고, 그래서 시청률 15퍼센트만 나오면 성공한 거 아니냐고 했다가….” 말하다 말고 동희가 히죽히죽 웃었다. “했다가?” “너 집에 가라. 그런 무서운 말을 들었지.” 참 이상한 일이지만 사람들은 현실적인 것을 원한다고 하면서 비현실적인 것을 좇는다. 누구도 청혼할 때 당분간은 죽도록 고생해서 20년 후쯤엔 꼭 25평짜리 아파트를 사자고 말하지는 않으니까.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게 해 주겠다는 초현실적인 약속은 할지언정, 나는 돈 버느라 바빠서 빨래와 설거지는 아주 가끔씩만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지킬 수 있는 소박한 약속은 하지 않으니까. 그러니 도박처럼 한번 ‘터지기’만을 바란다는 드라마 쪽에서는 오죽하랴. 그런 생각들 끝에 동욱은 문득 묵묵히 불어 터진 국수를 먹고 있는 동희를 원망 섞인 눈길로 훔쳐보았다. ‘어쩌면 김동희 너도 그런 사람인지 몰라. 너도 내가 좋다고 했잖아. 제일 편하다고 했잖아. 그러면서도 너는 꼭 너를 죽일 듯한 이성재만 찾잖아. 나는 언제나 너만 사랑할 텐데, 평생 너를 버리지 않을 텐데, 이런 좋은 드라마를 왜 넌 선택하지 않는 거니.’ 동희는 결국 쌀국수를 반이나 남긴 채 젓가락을 놓으며 동욱에게 말했다. “술이나 한잔할까, 친구?” ♬ 동욱 독백 : “술이나 한잔할까, 친구?” 노골적으로 친구라고 불린 탓에 나는 그만 마음이 꼬여 버립니다. 그래서 여느 때와 달리 고개를 45도 비틀었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으며 되묻습니다. “술이 필요한 거야, 친구가 필요한 거야?” 그 말에 그녀는 어깨를 으쓱해 보입니다. “둘 다. 왜? 술만 필요하다면 술값만 주고 가려고?” 나는 발끝으로 땅을 툭툭 치며 말합니다. “아니, 나도 술은 마시고 싶은데 네 친구라는 죄로 네가 하는 똑같은 이야기 또 듣기는 싫거든.” 그렇게 말해 놓고는 나는 또 금세 그녀의 눈치를 보며 덧붙이죠. “서운해? 내가 이렇게 말해서? 그 말에 동희는 고개를 심하게 좌우로 흔듭니다. 나를 완전히 이해한다는 몸짓이겠죠. “아니야, 이해해. 충분히 이해하지. 이때까지 참아 준 게 고맙지 뭐. 그러면 내가 오늘은 다른 이야기할 테니까 그냥 서로 모르는 사람인 척 같이 술이나 마실까?” 그렇게 해서 우리는 어둠이 내린 포장마차에서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앉아 있습니다. 포장마차는 참 조용하기도 합니다. 정말 모르는 사람처럼 적막함 속에 서로 술잔만 채워 주는 그녀와 나. 나는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으로 술잔을 빙빙 돌리다가, 몇 번이나 목 울대를 들썩이다가 결국 먼저 이야기를 꺼내고 맙니다. “있잖아, 그 사람 이야기, 하고 싶으면 해. 어차피 앉아 있는 거고 어차피 귓구멍은 열려 있으니까 까짓것, 말해. 내가 들어 줄게.” 힘들게 낸 인심이었는데 그녀는 그냥 넘기고 맙니다. “됐어, 안 할래. 술만 마시면 그 얘기하는 것도 버릇인 거 같아. 이제 그만해야지. 그러지 말고 네 이야기 좀 해 봐. 난 그렇다 치고, 넌 오늘 왜 술 마시고 싶었는데? 혹시 누구 생겼어? 좋아하는 사람?” 그 말에 나는 웃으며 대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도 버릇이 됐나 보지. 금요일 밤, 공휴일 전날 밤, 비 오는 밤이면 늘 너하고 술 마시다 보니까 때가 되면 아, 오늘은 술 마시겠구나 내 몸도 딱 아는 거 있잖아. 그러니까 말해 봐. 그 지겨운 얘기 듣는 것도 버릇이 돼선지 안 들으니까 허전하네. 최근에 전화 온 적 있었어? 아니면 또 네가 술 마시고 전화했어?” 나는 결코 친구가 되고 싶진 않았는데 내가 친구가 되어 주면 좋다 하니 나는 또 어쩔 수 없이 오늘 밤도 친구가 됩니다. # scene 48 “네가 가장 그리웠던 시간은 너와 헤어져 있는 동안이었어” 성재가 정은에게 말한다. “정은이 너한테 몰두하면서 나는 다 좋았지. 너는 나를 정신없게 만들었고, 내가 너한테 매달리도록 만들었으니까. 나는 늘 초조했어. 네가 날 안 만나 줄까 봐. 내 전화를 받지 않을까 봐. 네가 떠날까 봐… 그럴수록 너와 만나는 시간이 가슴 떨렸고 그만큼 좋았어. 나에게 집착했던 첫사랑 민정의 끔찍한 자살의 기억도 가끔은 잊을 만큼, 그런데….” “그런데?” “네가 떠나고 동희를 만났어. 동희는 민정이처럼 자기를 사랑해 줄 아버지가 없었어. 동생은 태어나자마자 죽었다고 했어. 그리고 나를 너무 많이 좋아했어. 나는 동희가 가끔 무서웠어. 민정이처럼 자기의 슬픈 이야기를 다 털어놓으며 내 목에 매달릴까 봐 무서웠고 그러다 죽어 버릴까 봐 무서웠어. 그래서 난 백 번 잘못하고 한 번씩 잘해 주면서 그 앨 묶어 두고 정작 나는 자유롭길 원했어. 그렇게 2년을 만났는데… 너한테 전화가 온 거야. 네가 돌아온다고 했을 때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어. 정은이 온다. 그러니 동희를 보내야 한다.” 그랬는데, 그랬는데. 성재는 정은이야말로 단 하나 잊지 못할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연애는 몇 번 했지만 누군가 사랑했던 적이 있느냐고 물어 올 때면, 첫사랑이나 동희의 얼굴 따위는 떠올릴 겨를도 없이 그녀의 얼굴만이 온 기억을 덮쳐 오곤 했기 때문에. 그런데 성재는 지금 정은에게 그만하자고 말하고 있다. 마음은 그렇지 않았지만 정은은 예상했던 일인 것처럼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 “쉬운 일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어. 내가, 내 결혼이 많이 부담스러울 거라고 생각했어. 그렇지만 바보가 아닌 네가 나하고 다시 시작하겠다고 결심했을 땐 마음의 준비가 제대로 된 줄 알았는데, 이렇게 빨리 지칠 줄은 몰랐어.” 하지만 성재는 고개를 저었다. “지친 건 아니야.” “그렇다면 왜?” “네가 결혼한다는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전해 들었을 때….” 정은이 성재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새삼스럽게 그때 이야기는 왜. “나는 궁금했어. 너하고 헤어진 다음에 나도 몇 번인가 다른 사람을 좋아해 보려고 했어. 실제로 눈이 가는 사람도 있었고, 저 사람 정도면 나한테 과분하다 싶은 사람도 있었고, 그런데 그때마다 마음을 더 낼 수 없었던 건….” 성재는 잠시 숨을 고르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런 생각이 들어서였어. 내가… 저 여자하고도 그럴 수 있을까.” 성재는 정은을 보지 않고, 정은은 성재를 보고 있고, 그런 채로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너하고 그랬던 것처럼, 숨소리가 섞일 만큼, 얼굴이 닿을 만큼, 의자를 바싹 당겨 앉아서, 시켜 놓은 커피는 마시지도 않고 끝도 없이 이야기할 수 있을까. 웃다가 눈이 마주치면 더 크게 웃고, 손이든 어깨든 이마든 발끝이든 어딘가는 서로 맞댄 채로, 불편한 줄도 모르고, 몇 시간씩이나 그렇게… 내가 다른 사람과도 그럴 수 있을까….” “그런데?” “그런 생각 끝에 내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을 보면 도저히 그림이 그려지질 않았어. 참 좋은 여자구나 싶은데 그냥 거기까지. 친구들이 부러워하겠구나 싶은데 그냥 거기까지. 그러면서 나는 계속 너를 생각했어. 너는 다시 사랑을 하고 있을까.” 정은의 입장에선 지금 성재가 하는 이야기와 앞으로 나올 이야기의 연관성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내가 그리웠다면서 지금 너는 왜 나에게. “네가 떠난 후에 그리고 네가 돌아오기 전에, 누구한테 바보라고 불리던 시절이 있었어. 그때는 나 바보처럼 행복했어. 그때는 몰랐고 그때는 너를 기다렸는데.” 정은은 더 이상 ‘그런데?’라고도 묻지 않았다. 결론은 이미 나왔으니까. “내가 그리웠던 건 예전의 너였어. 나와 사랑했던 시절의 너. 그리고 네가 가장 그리웠던 시간은 너와 헤어져 있는 동안이었어.” 여기까지 말한 뒤 성재는 고개를 들고 정은과 눈을 맞춘 채 말했다. 정말로 헤어지기로 결심한 표정으로. 슬프지만 단호하게. “지금은 아니야.” # scene 49 아니, 더 사랑하는 사람이 더 행복하다 동욱이 동희에게 말했다. “내가 사귀던 친구와 헤어진 일이 있고 나서… 일본으로 갔다가 몇 달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사람들이 웃는 게 너무 웃겼어. 뭐가 그렇게 좋다고 웃고 다니나 싶었거든. 그때 나한테는 온통 세상이 그래 보였어. 즐거울 일도 없고, 깜짝 놀랄 일도 없고, 화낼 일도 없고, 먹고 싶은 것도 없고, 맛없어서 못 먹을 것도 없고. 희지도 않고 검지도 않고 우중충한 회색처럼.” 동희도 동욱을 따라 그 시절을 더듬어 보았다. 머리카락이 제멋대로 길어서 삼손 같았던 동욱이. 배나 사과를 싸고 있던 스펀지 그물이나 연습장의 스프링 같은 것으로 머리띠를 하고 바깥을 막 돌아다니던 동욱이. 양말도 신지 않고 운동화를 꺾어 신고 다니던 동욱이. 취직은 해서 무얼 하냐고 말하던 동욱이. 그냥 이렇게 살고 싶다던 동욱이. “그렇게 살던 내 옆에 네가 있었어. 너는 컬러풀하잖아. 좋아하는 것도 엄청나게 많고 싫어하는 것도 엄청나게 많고, 맛있는 걸 먹으면 행복해 죽을 것 같은 얼굴을 하고, 한번 삐딱해지면 온 세상이 싫어진 못된 얼굴을 하고.” 네 앞이라 그렇게 솔직했던 거야. 너는 나를 있는 그대로 봐 주니까.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그러지 못해. 동희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까 내가 움직이더라. 방 안에 늘어져서는 며칠씩 꼼짝도 하지 않다가도 네 전화가 오면 몸을 벌떡 일으켜 5분 만에 집에서 나가더라고. 네가 아니었다면 나는 아직도 누워만 있었을 거야. 너는 나한테 그런 사람이야. 그러니까 너는 이미 그걸로 나한테 해 줄 거 다해 준 거나 마찬가지야. 원래 더 좋아하는 사람이 더 행복한 거잖아.” 동희는 할 말이 많았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너만 괜찮다면 당장 뭘 어떻게 하지는 말자. 너는 네가 모르는 뭔가를 기다리고 있고, 나는… 나도… 뭔가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지금 당장 우리가 어떻게 하기로 해도 잘 안 될 거야.” 동희는 동욱의 말이 다 맞을 것이라고 믿었다. 믿어 버리고 싶기도 했고. 우리 두 사람의 관계에 관한 한 동욱이가 백 배는 더 많이 생각했을 테니 그 말이 틀릴 리 없다고. “만약 그래도 내가 불편하고 또 나한테 미안하면….” 동욱의 말을 들으며 동희는 눈에 힘을 주었다. 다 말해. 다 들어 줄게. 그런 동희를 보며 동욱이 말했다. “불편해도 참아 줘. 그래 줄 수 있지?” 엄마 금방 저 앞 가게에 다녀올 테니까 어디 가지 말고 꼭 여기 있어야 한다. 엄마의 당부에 고개를 끄덕이는 다섯 살 아이처럼, 동희는 고개를 여러 번 단단하게 끄덕거렸다. 응. 응. 응. 응. ♬ 동욱 독백 : 착한 그녀는 나에게 미안해서 잘하고 싶어 동동거립니다. 아니라는 말 대신 모르겠다고만 말합니다. 그래서 나도 모른 척하며 그녀를 일단 붙잡아 보기로 했습니다. 그녀, 그 후론 내가 나오라고 하면 예전보다 더 선뜻 나타납니다. 불편함을 참겠다는 약속을 지키느라 내 옆에 나와서 앉아 있기는 한데 내가 무슨 말을 하면 한 박자씩 늦게 대답하고 내가 웃긴 말을 해도 가끔은 대답이 없고 어딜 갔나 해서 쳐다보면 몸은 내 옆에 있는데 표정은 텅 비어 있고 눈동자에는 구름 같은 것이 잔뜩 어려 있고…. 그런 사람에게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자기도 애쓰고 있는데 거기다 대고 네 마음은 왜 여기까지 오지 못하냐고 왜 네 사랑은 내 사랑보다 이렇게 형편없이 작냐고 그렇게 화내면 안 되잖아요. 나는 나를 불편해하는 그녀를 더 이상 괴롭히고 싶지 않아서 며칠 동안 고향집에 머물기로 했습니다. 옷을 갈아입고는 마루로 나가 드라마에 열중하는 어머니 옆에 털썩 앉아 봅니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해바라기 가득한 화면 속에서 무언가 중얼중얼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나는 그걸 보며 또 생각합니다. 그녀에게 해바라기를 보여 주고 싶다고. 어쩌면 당분간, 어쩌면 영영, 나를 받아 주지 못할 그녀지만 그래도 저렇게 파란 하늘과 노란 해바라기를 그녀에게 보여 주고 싶다고. # scene 50 지금은 나 자신과 결혼할 시간 “기어이 여행을 가겠다고?” 엄마는 나란히 팔짱을 끼고 서서 짐을 싸는 동안 동희를 지켜보고 있었다. 동희는 커다란 트렁크에 차곡차곡 옷들을 집어넣고 있다. “여행 가는 것까지는 좋다고 쳐. 그런데 혼자서 어딜 간다고 그래.” “나 휴가라니까. 회사에서 비행기 값 내준다기에 한번 멀리 가 보려는 거야. 이번만 혼자 갔다 올게. 생각하고 싶은 것도 있고 일단 전화가 안 되는 데로 가고 싶어서 그래. 다음엔 엄마랑 같이 갈게.” 돌아오면 모든 게 나아져 있을까.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누군가의 말처럼 그 먼 곳에서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한참을 돌아다녀도 발자국 하나 남길 수 없는 것이 여행이니까. 돌아오면 책상 위에 놓여 있던 과자 부스러기조차도 그 자리 그대로 놓여 있는 것이 여행이니까. 하지만 그렇다 해도 지금은 무조건 떠나고 싶다. 이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그곳에 가면 쉴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사람과 눈을 맞추며 날씨가 참 좋다고, 비가 와서 울적하다고, 구름이 참 멋있게 생겼다고 킥킥거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7000명이 들어간다는 맥주집이 어디 있느냐고 물어보고, 그러다 같이 맥주 한 잔 마시며 한국에는 왜 그렇게 김씨가 많은지, 독일에는 왜 그렇게 뮐러 씨가 많은지를 이야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휴대폰과 인터넷 없이 사는 열흘이 얼마나 행복하면서도 불안한지를 알게 되리라. 그러다 돌아오겠지. 어느 가게에 가면 1,5리터짜리 생수를 가장 싼 가격에 살 수 있는지를 알게 될 때쯤에, 어느 중국 식당에 가면 물을 공짜로 먹을 수 있는지 알게 될 때쯤에. 어쩌면 모든 것은 금방 식어 버릴지도 모른다. 배가 고플 땐 먹고 싶은 음식을 수십 개도 적을 수 있지만 1000원짜리 김밥 한 줄이면 그 맹렬하던 식욕이 금방 사라져 버리는 것처럼, 이토록 떠나고 싶기만 한 간절한 욕망도 비행기가 45도로 기울 때쯤이면 이미 모두 사라지고 돌아올 날만 기다리게 될지도 모른다. 보나마나 콧구멍만큼 작은 호텔방에 갇혀서 ‘프렌즈’나 ‘네모네모 스펀지 밥’을 방영하는 채널을 찾아 리모컨이나 눌러 대면서, 혹시나 하고 챙겨 간 컵라면을 끓여 먹으며 서울을 주야장천 그리워할지도 모른다. 동욱이랑 지현이랑 진철이… 다같이 모여 놀고 싶어, 맥주와 소시지 대신 깍두기 안주에 소주를 홀짝거리고 싶어, 엄마랑 거실에 앉아서 귤을 한 무더기 까먹으며 텔레비전을 보고 싶어, 촬영 현장에 나가 잔소리를 하고 싶어, 내 옷장 안에 들어가서 라디오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 라고 말이다. 동희는 그래도 돌아올 때쯤이면 무언가는 달라져 있기를 기도하며 공항으로 들어섰다. # scene 51 사랑을 위한 기도 동희의 휴대폰이 계속 꺼져 있자 걱정이 된 성재는 동욱에게 전화를 했다. 동욱은 동희의 여행소식을 전한 뒤 성재에게 딱 하나만 물어보겠다며 말했다. “나만큼 동희를 사랑할 자신 있어요?” 성재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제부터가 사랑의 시작이라고. 그동안 주지 못한 많은 것을 이제는 다 주고 싶다고. 그 말에 동욱은 눈앞이 캄캄해졌지만 그래도 최악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동희가 만약, 그래도 성재에게 돌아가겠다고 한다면 성재가 전혀 변하지 않은 것보다는 나은 것이라고. 동욱은 동희가 여행 중에 혹시라도 메신저에 접속할까 봐 새벽에도 컴퓨터를 켜 놓은 채 잠이 들었다. 하지만 동희는 돌아올 날이 다 되도록 연락이 없었고 동욱은 그것 또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쁜 일이 생겼다면 벌써 연락이 왔을 테니까. 드라마를 보다 짝사랑으로 가슴 태우는 주인공들이 있으면 조금 우쭐해지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고백이라도 해 봤다네. 동희는 아무것이나 먹고 아무 곳이나 돌아다녔다. 너무 걸어 다리가 아프면 무작정 아무 버스에나 올라탔다. 버스 안에서는 방금 십자수에서 튀어나온 듯한 귀여운 아기와 눈을 맞추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까꿍 놀이를 하기도 했다. 그러다 너무 멀리 갔다 싶으면 길을 건너 같은 번호의 버스를 타고 출발했던 곳으로 다시 돌아왔다. 한 번은 길을 잃어 택시비로 5만 원쯤을 탕진하기도 했다. 걷다 보면 사람들의 뒷모습이 모두 누구 같아 보여서 마음이 괴로웠다. 차갑지도 끈끈하지도 않은 바람이 불어올 때면 문득 곁에 누군가가 있었으면 싶기도 했다. 실체가 없는 그냥 누구, 그림자처럼 같이 다녀 줄 그냥 아무나. 그러다 잠시 욕심이 생기기도 했다. 기왕이면 다정한 사람이었으면, 손이 따뜻했으면, 그게 그 사람이었으면. 길거리에 즐비한 공중전화를 볼 때면 마음이 괴로웠다. 전화카드를 샀지만 아무에게도 전화를 하지는 못했다. 전화를 걸려고 보면 너무 늦은 시간이거나 걸면 안 되는 사람 생각만이 간절했다. 밤이면 집에서처럼 돌돌 말아지지 않는 이불 때문에 몇 분쯤 애를 먹었지만 평소보다 운동량이 많아진 덕분에 곧 가릉가릉 소리를 내며 잠이 들었다. 비가 내리던 어느 날은 종일 미술관 안에서 살았다. 그러다 처음 듣는 이름의 화가가 그린 풍경화 앞에서 문득 가슴이 내려앉아 한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동희는 원래 풍경화를 볼 줄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하늘을 삼킨 빨간 노을과 바람에 흔들이는 나뭇잎의 떨림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었다. 그래서 한쪽 벽을 가득 채운 거대한 풍경화 속 한구석에 손톱보다 작은 크기의 사람 하나만 그려져 있어도 눈길은 오직 그쪽으로만 쏠렸었다. 저 사람은 저기서 무얼 하고 있을까. 저 사람은 내 그 사람을 닮았나, 안 닮았나… 그런데 그런 동희의 눈에 풍경이 들어왔다. 인상파 그림 속 햇살을 보고 있노라면 눈이 부셔 자꾸만 눈을 껌뻑거렸다. 또 서울의 것과 별다를 것도 없는 그 도시의 공기를 향해 사진기를 들어 올렸고 숙소의 창문 너머로 희미하게 보이는 하늘빛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꽉 차올랐다. 저 푸른 밤하늘, 개와 늑대의 시간, 점점 더 선명해지는 구름의 검은 그림자… 동희는 원래 연주곡도 들을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아무리 아름다운 연주곡도 사람 목소리가 나오지 않으면 그냥 반주 같기만 했다. 하지만 이제는 식당 안에서 흘러나오는 바이올린 소리에도 가만히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바이올린이 정말 울고 있구나.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그래도 어깨는 들썩이지 않으면서 조용히 흐느끼고 있구나. 내가 이렇게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구나. 그저 살고 있고 그저 머리카락과 손발톱만 나도 모르게 조금씩 자라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 사람을 쫓던 내 눈이, 그 사람에게만 반응하던 내 몸이 그 사람이 나를 떠난 그때부터 그 사람 없이도 살 수 있도록 적응해 준 건 아닐까. 그 사람이 나의 기쁨 같은 것을 다 가져가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집착만이 남은 것 같아 내 자신이 무섭기도 했는데, 나 역시 사랑이 맞았구나. 그 사람 하나를 열심히 사랑한 덕분에 나는 이렇게 더 많은 걸 배우게 되었구나. 그를 사랑하느라 힘들었던 그 시간이 나에게 이토록 고맙게 남았구나. 여행이 끝나고 서울로 돌아가는 순간 모든 것은 제자리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그래서 여전히 나를 웃게 해 주는 사람보다 내가 웃게 해 주고 싶은 사람만을 쳐다보는 해바라기처럼 살지도, 여전히 나를 덜 사랑하는 사람을 더 사랑하느라 지칠지도, 가끔은 목이 꺾이는 것처럼 아파 올지도. 하지만 예전과 완전히 똑같지는 않을 것이다. 이 먼 곳 구석구석 숨 쉬고 있는 풍경과 소리들조차 다 나와 닿아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알 것 같으니까. 너무 마음이 아픈 시간도 있었지만 그것이 오직 아픔만으로 끝나지는 않는다는 것을 이제는 알 것 같으니까. 여행에서 돌아오기 전날, 중앙역 앞에서 하프를 켜는 노파를 만났다. 웬 아이가 보았네, 들에 핀 장미화, 낯익은 음악을 연주하는 할머니의 손톱이 너무나 까매서 울컥했다. 한참을 그 앞에 쪼그려 앉아 하프 연주를 듣던 동희는 기꺼이 동전을 꺼냈고, 동전을 받은 할머니는 알 수 없는 언어로 동희에게 축복을 내려 주었다. 동희의 얼굴을 눈앞에 두고도 먼 곳만을 응시하며 쉰 목소리를 내는 할머니의 눈동자는 투명하게 멀어 있었다. |
<도서 정보>제 목 : 아이 러브 유 : Everyone says I love you
저 자 : 이미나
출판사 : 갤리온
출판일 : 2007년 2월
책정보 : 페이지 295 / 574g ISBN-13 : 9788901063645
구매처 : 왓북리뷰도서/오디오북(소리도서관)
구매일 : 2007/3/11
일 독 : 2007/6/7
재 독 :
정 리 :
<이것만은 꼭>
<책 읽은 계기>
<미디어 리뷰>
200만 독자가 열광한 『그 남자 그 여자』의 작가, 이미나의 최신 화제작.
사람들에게 '헤어진 옛사랑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어봤습니다.
그때 가장 많이 나온 대답은, 놀랍게도 '정말 나를 사랑했니'였습니다.
사랑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라구요?
그러나 그 말은, 다음 말을 하기 위한 첫마디일 뿐이었습니다.
나를 사랑하긴 했니? 그런데 왜 그랬니?
나를 사랑하긴 했니? 나는 정말 사랑했는데...
이 책은 사랑을 말하는 사람들의 불완전한 소통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어떻게든 사랑해내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저자는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사랑하는 이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많이 찾아낼 수 있었으면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동안 더 많은 사랑의 말을 주고 받고, 오해 따위로 헤어지는 일이 없기를, 그래서 모두 오래오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합니다.
사랑에 관한 50여 개의 에피소드가 멜로 드라마처럼 펼쳐지는 가운데, 중간중간 그네들의 '차마 전하지 못한' 30여 개의 독백이 들어 있습니다. 예쁜 일러스트와 함께 담긴 그 이야기들은, 따뜻한 봄날과 잘 어울려, 사랑하고 싶은 기분을 불러 일으킵니다.
저자 : 이미나 |
라디오를 들으며 자라나 2001년에 라디오 작가가 되었다. 2006년까지 MBC ‘FM 음악도시’와 ‘푸른밤 그리고 성시경입니다’ 작가로 일했다. 첫 책인 『그 남자 그 여자 1,2』가 밀리언셀러가 되면서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특히 같은 상황에서조차 다른 남자와 여자의 심리에 대한 탁월한 묘사와 누구나 지나치기 쉬운 일상에서 찾아낸 다양한 사랑의 얼굴에 대한 섬세한 포착으로 독자들의 많은 공감을 얻었다. 현재는 다른 장르의 글쓰기를 준비 중이다. 그녀의 취미는 아무도 물어 보지 않는 세 가지 소원을 혼자서 수시로 꼽아 보는 것인데, 세계 일주와 열애, 그리고 좋은 번역가가 되는 것이 현재의 소원이다. 그리고 한 가지 소원을 더 꼽자면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 몰라서 혹은 오해 같은 것으로 헤어지는 일이 없기를, 그래서 모두 오래오래 사랑을 말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
<줄거리>
<책속으로>
scene 1. 사랑을 말하다
scene 2. “차라리 비나 왔으면 좋겠어”
scene 3. 누구나 ‘안녕’이라는 말을 하기는 쉽지 않다
scene 4. “왜 나랑 사귀게 됐어?”
scene 5. 나쁜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가 흔히 하는 착각
scene 6. 그녀가 노란색 카디건을 버리지 못한 이유
scene 7. 기분과는 상관없이 삶은 계속된다
scene 8. “나만 빼고 다 뽀뽀해, 나만 빼고 다 사랑해”
scene 9. 인연 불변의 법칙 - 짚신도 짝이 있다
scene 10. 사랑하는 사람을 ‘못난이’라고 부르는 이유
scene 11. ‘결혼하자’는 말을 안 하는 남자 vs ‘바람피우자’는 여자
scene 12.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뻔한 거짓말
scene 13. 남자와 여자가 헤어질 때 나누는 대화
scene 14. 짝사랑하는 사람들이 제일 많이 하는 말
scene 15. 엄마에게도 사랑이 오고 있는 걸까?
scene 16. 더 사랑하는 사람이 더 아픈 법이다
scene 17. 배의 ‘왕’자 근육보다 남자에게 더 간절한 일
scene 18. “너무 아프지는 마라, 내 딸”
scene 19. 사랑하는 그를 위로하는 법
scene 20. 헤어진 연인을 마음에서 떼어 내는 마법의 주문
scene 21. “그 사람 때문에 울지만 말고 그냥 나하고 놀자!”
scene 22. 술과 전화와 사랑의 상관관계
scene 23. 상처를 주면 어디선가 똑같은 상처를 입기 마련이다
scene 24. 서로를 알아 간다는 것은
scene 25. 유쾌한 기억상실증에 걸린 남자
scene 26. 기다림, 전화기 옆에서 천천히 죽어 가는 것
scene 27. 헤어진 그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scene 28. 헤어진 남자에게 무작정 찾아가던 날
scene 29. “그때 나 좀 말리지 그랬니?”
scene 30. 사랑이 아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scene 31. “사랑은 끝까지 가 보지 않고서는 포기가 어려운 법이지”
scene 32. 엄마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든 네 글자
scene 33. 결코 공평하지 않은 사랑의 이데올로기
scene 34. 그 남자 그 여자의 달콤한 연애질
scene 35. 남자를 사랑하는 남자
scene 36. 친구가 필요한 여자 vs 친구 말고 연인이 되고 싶은 남자
scene 37. 사랑을 버릴 때는 결코 몰랐던 것들
scene 38. 그들은 정말 사랑했을까
scene 39. 이 잔혹한 세상에서 내 기쁜 일에 울어 줄 사람 하나 있다면
scene 40. 사랑을 고백한다면 이들처럼
scene 41. 사랑하는 사람의 과거 듣기
scene 42. 엄마의 연애를 보는 딸의 미묘한 심리
scene 43. 행복하기에 더 슬픈
scene 44. 아이 러브 유
scene 45. 그 남자가 사랑하는 법
scene 46. 사랑은 끝없는 선택과 책임을 요구한다
scene 47. 다른 사람의 마음, 비상금처럼 꺼내 쓰지 말기
scene 48. “네가 가장 그리웠던 시간은 너와 헤어져 있는 동안이었어”
scene 49. 아니, 더 사랑하는 사람이 더 행복하다
scene 50. 지금은 나 자신과 결혼할 시간
scene 51. 사랑을 위한 기도
참 억울한 건 그 사람은 나한테 거짓말한 적이 없다는 거야. 그러니까 나는 화를 낼 수도 없어. 내가 좋아하냐고 물어 봤을 때 그 사람은 항상 좋아한다고 대답했거든. 그건 거짓말이 아니잖아. 좋아하기는 했을 테니까. 생각해 보면 그 사람은 나를 여자 친구라고 부른 적이 없고, 나만 좋아한다고 말한 적도 없고, 사랑이라는 말을 진심으로 꺼낸 적도 없었다? 그냥 나 혼자 착각한 거야. 나는 왜 당연히 내가 그 사람의 애인이라고 착각했을까? - 동희의 대사 중에서
너를 처음 본 순간 예감했었지. 나는 이제부터 너로 인해 울게 되겠구나. - 승민의 독백 중에서
손을 뻗어도 잡히지 않는 것은 이미 잃어버린 것이란다. 끝까지 간 후에 알게 되는 건 너무도 고단한 일이란다. 나도 그것을 몰라서 너무 멀리 갔단다. 그것이 막다른 길임을 알게 되었을 때 무릎이 푹 꺾이며 눈물이 났단다. 하지만 너는 아마 끝까지 가려 하겠지. 너무 아프지는 마라, 내 딸... - # scene 18 중에서
실은 나 그동안 너한테 좀 그랬어. 너하고 놀면 정말 좋은데 좋으면서도 그랬어. 얘는 왜 공부를 더 열심히 안 할까. 얘가 계속 취직을 못하면 어떡하지. 얘는 왜 아르바이트도 안 하나. 나 그런 생각도 막 했다? 너 몰랐지? 미안.. - ‘사랑을 고백한다면 이들처럼’ 중에서
오겠다고 해 놓고 오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안 올 줄 알면서도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전화를 한다고 해 놓고 하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뻔히 안 올 줄 알면서도 전화기 옆에서 죽어 가는 사람이 있다. 내가 그랬든 어쩌면 동희도 누군가에게는 전화를 하지 않는 사람이겠지. 사람들은 누구나 상처를 받으면 그 상처를 어디선가 푸는 법이니까. - # scene 23 중에서
나는 사람들이 웃는 게 너무 웃겼어. 뭐가 그렇게 좋다고 웃고 다니나 싶었거든. 그때 나한테는 온통 세상이 그래 보였어. 깜짝 놀랄 일도 없고, 화낼 일도 없고, 먹고 싶은 것도 없고, 맛없어서 못 먹을 것도 없고, 희지도 않고 검지도 않고 우중충한 회색처럼. 그런데 어느 날 보니까 내가 움직이더라. 방 안에 늘어져서는 며칠씩 꿈쩍도 하지 않다가도 네 전화가 오면 몸을 벌떡 일으켜 5분 만에 집에서 나가더라고. 네가 아니었다면 나는 아직도 누워만 있었을 거야. 너는 나한테 그런 사람이야. 그러니까 너는 이미 그걸로 나한테 해 줄 거 다 해 준 거나 마찬가지야. - 동욱의 대사 중에서
처음으로, 너의 전화를 일부러 받지 않았다. 나도 한 번쯤은 그래 보고 싶었다. 괴물과 사투를 벌이듯 전화를 받고 싶은 마음과 열심히 싸워 나는 간신히 음울한 진동 소리를 견뎌 냈다. 그 힘겨운 승리로 내게 남은 것은 너의 이름 뒤에 찍힌 부재중 표시. 그리고 잠시 후 덤으로 받은 너의 문자 메시지. - 승민의 독백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