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때문에 시골에 내려가 살고 있는 도종환씨와 그 일대의 우편집배원을 둘러싼 사람 이야기... 처음에는 우체부 프레드같은 사람인가 했는데... 많이 비슷하긴 하지만.. 그보다는 만화 빨간자전거의 주인공 같은 집배원과 그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
독고노인들.. IMF로 시골로 내려온 아이들... 베트남에서 이곳으로 시집을 온 많은 여성들의 애환... 약간은 제목과는 생뚱맞은 감이 없지 않지만... 많은 사람들의 애환... 그리고 약간의 희망을 섞어서 보여주었다.
'시인과 집배원'
▣ 연 출: 유동종 PD / 글 : 김옥영 작가
▣ 방송 일시 : 2006년 12월 24일(일) 밤 8시 (KBS 1TV)
◆ 기획의도 ◆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다.
사람들의 모듬살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그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의해서이고,
세상이 자꾸 삭막해진다고 하는 것은 그 관계가 변질되거나 단절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오늘날 세상에는 사람들은 점점 더 고립되고 외로와지고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그것은 대단한 무엇이 아니라
자신이 하는 일에 ‘마음 하나를 더 얹는 것’만으로도 가능한 일일지 모른다. 그 작은
마음씀으로 세상은 보다 살만한 것으로 변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한 우편집배원과 시인의 만남 속에서, 사람과 사람을 잇는
그 ‘마음의 선 잇기’를 따라가 보고자 한다.
◆ 주요내용 ◆
▣ 충북 보은군 내북면, 가장 가난한 농촌
충북 보은군 내북면은 산지로 둘러싸인 궁벽한 농촌지대. 농경지가 좁고 별다른 산업이
없는 탓으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가난한 곳으로 꼽히는 지역이다. 때문에 이 지역은
우리나라 농촌사회의 모든 문제를 집약적으로 안고 있는 곳이다.
▣ 자식이 있어도 버려진 노인들-“애들은 바빠서 못와요.”
농촌에서는 폐가가 즐비하고 일하는 사람은 노인들이 대부분이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생활능력이 없는 독거노인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독거노인들은 자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홀로 농촌사회에 버려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식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도시에 살고 있고, 노인 홀로 고향 집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몸은 병들고 마음은 외로움에 시달리는 것이 그들의 현실이다.
내북면에서는 전체 가구수 892가구 중 독거노인가구수는 48가구에 이르며, 이분들 중
기초생활수급대상자는 18가구나 된다.
병들어 양로원에 맡겨진 서경자 할머니의 외아들은 교도소에 가 있다. 할머니에겐
아들에게서 온 편지를 읽는 것이 유일한 삶의 기쁨이다. 혼자서 몸을 추스르지도
못하면서 할머니는 아들이 나오면 함께 살겠다고, 이전에 살던 집의 전기, 수도를 끊지
않고 있다. 홀로 낡아가는 할머니의 빈 집은 오랜 기다림의 상징이다.
이재영 할머니는 혼자 몸으로 11남매를 키워냈지만 지금은 150년 된 집을 혼자 지키며
농사를 짓고 있다. 농사지은 먹거리들은 도시에 나가있는 자식들에게 보내줄 것이다.
할머니는 자신의 몸을 돌보기보다 가난에 겨운 자식들 걱정이 더 앞서서 바라는
것이라곤 오직 ‘자신의 몸이 건강할 것’ 뿐이다.
강분임 할머니는 한때 넉넉한 살림이었지만, 사업이 부도가 나자 아들이 빚쟁이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어 이제는 소식조차 모른 채 지내고 있다.
남편의 장례도 아들 없이 마을의 도움으로 치러야 했다. 그에겐 아픈 몸과 견디어야 할
적막한 밤이 있을 뿐이다.
▣ 조부모 손에 맡겨진 아이들-“엄마 보고 싶지 않아요.”
IMF 이후 늙은 조부모에게 맡겨진 아이들이 크게 늘어난 것도 새로운 농촌 문제가 되고
있다. 부모의 이혼과 사업 실패 등으로 아이를 키우기 어려워진 부모들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전체 학생수가 83명인 내북초등학교에서 이런 조부모 슬하의 학생들이 16명
이나 된다. 특히 한 반뿐인 3학년에서는 16명의 학생 중 4명이 이런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은 조부모의 보호 속에서도 마음 한 쪽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갖고 있게
마련이다.
효진과 응규 남매는 아빠가 사업 실패를 하고, 부모가 이혼을 한 경우이다. 9대 종손인
응규를 엄마에게 줄 수 없다 하여 남매는 아빠가 맡았으나, 혼자 아이들을 키울 수
없었던 아빠는 이곳 본가에 아이들을 맡겼다.
엄마는 전화번호를 바꾸어 연락조차 되지 않는다.
아이들은 가족이 모두 모여 살 때의 앨범을 보고 또 보면서도, 그러나 아빠 엄마 보고
싶다는 이야기는 절대 하지 않는다.
지현이는 일찍 아빠를 잃어 아빠 얼굴조차 모른다. 엄마는 신용불량으로 어디에 가
있는지 종적조차 찾을 수 없다. 운동회 때 친구들의 엄마가 올 때 지현이도 엄마가
있었으면 한다.
그러나 엄마가 보고 싶다고 쉽게 말하지 않을 만큼 지현이는 조숙한 아이이기도 하다.
▣ 소통할 수 없는 사이, 베트남 신부들
-“남편도 제 말을 못 알아들어요.”
보은군은 대한민국 전체에서 국제결혼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이다.
가난한 농촌이다보니 이곳으로 시집오겠다는 여자들이 없어 많은 농촌 노총각들이
베트남 처녀들과 결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은군내 베트남 출신 신부는 50명을 헤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외국인 신부들을 문화적으로 동화하기 위한 프로그램은
빈약하기 짝이 없다. 해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몇 년이 지난 시점에도 베트남 여성들은
이질적인 문화의 장벽과, 의사소통의 장애 때문에 깊은 심리적 좌절을 경험하고 있다.
그들의 슬픔과 외로움은 가장 가까이 있는 남편과도 나눌 수 없는 것이다.
레티번은 1년 5개월 전 베트남 꽝빈에서 왔다. 결혼 알선업체의 주선으로 현지에서
맞선을 보고 남편과 결혼했다. 4개월 전에 첫아들을 낳아 시댁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새댁이다.
그러나 그녀는 한국말을 잘 못하고 남편과 시부모들은 베트남어를 하나도 모른다.
레티번의 어머니는 신장병을 앓고 있다. 레티번은 직접 일을 해서 돈을 벌어, 아픈
어머니를 도우고 싶지만, 남편에게 이런 저런 사정을 설명할 수가 없다.
식구들 앞에서는 언제나 웃는 얼굴이지만 혼자 있을 때 그녀는 눈물을 흘린다.
투룸티박튀는 이제 갓 스물두 살. 시집와보니 남편도 나이가 많은데다 시어머니는 무려
여든 살이 넘는 노인이었다.
나라간 문화 장벽 뿐 아니라 세대간 장벽이 더하여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더욱이 언어가
소통되지 않아 오해를 더욱 증폭시켰다.
남편을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그녀를 외롭게 하고 힘들게 한다.
▣ 두 사람의 집배원,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다
올해로 경력 15년차의 집배원인 길만영씨는 이곳이 고향이면서 또한 이곳이 담당 배달구역이다. 그는 내북면의 이 구석 저 구석과 내북면에 사는 모든 사람들을 다 아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는 우편물을 배달하면서 사람들에게 관심과 애정을 함께 배달한다. 편지와 함께
노인과 아이들에게 사탕을 선물하거나 노인들의 읍내 심부름을 해주거나 아픈 이를 위해
산에서 캔 약초를 갖다주기 일쑤다.
외로운 사람들은 우편물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길만영을 기다린다.
또 다른 집배원은 시인 도종환이다. 그는 아픈 몸을 달래기 위해 4년 전 이 내북면에
들어왔다가 길만영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길만영이 우편 배달을 하며 마음을 나누듯, 길만영으로부터 촉발되어 그는 또 다른
집배원을 자청하고 있다. 바로 시를 배달하는 문학 집배원이다.
그는 그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자산인 시를 아침마다 30만의 수취인들에게
배달하고 있다.
▣ 세상의 모든 외로운 사람들을 위하여
이렇게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사람들이 있는 한 세상은 따뜻하다.
서로가 서로를 위한 배경이 되어주는 삶은 따뜻하다.
두 사람의 집배원을 통해서 보는 보은군 내북면의 풍경은 그래서 슬프지만은 않다.
시인 도종환은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이러한 소통이며,‘길과 길이 나눔과 소통으로
이어지고, 길과 길 끝에 서로가 간절하게 기다리고, 서로가 서로를 그리워하는 그러한
삶을 회복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타자의 외로움을 이해할 때, 일상의 손길에 ‘마음 하나를 더 얹을 때’
사람들은 그 사소한 몸짓에서 삶의 희망을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