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관 - 누가 커트 코베인을 죽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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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탄한 구성에 시종일관 누가 범인인지 아리송하게 전개되는 방식이 재미있다.
막판에 딸의 한마디에 모든 의문점은 풀리지만...^^;;

기획의도

  HD TV 문학관 ‘누가 커트코베인을 죽였는가?’는 원작의 스토리보다는 그 풍부한 이미지와 캐릭터를 중심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재구성한 작품이다. ‘장미’라는 주인공의 끝없는 욕망을 축으로 주변 인물들을 해체하고 변형시켜 미스테리 수사물로 탈바꿈을 하였다.
한 남자의 살인 사건을 중심으로 엮이게 되는 목격자와 형사들. 사건의 실체가 밝혀질수록 드러나는 그들의 숨겨진 욕망과 진실은 분명 원작의 중심 메시지와 닿아있다.
한국에서 제대로 뿌리 내리지 못한 미스테리 문학을 완성도 높게 제작함으로써 문학관의 영역을 더 넓힐 수 있는 작품이 될 것이다.

작품 해설

'Nirvana'라는 밴드가 있었다.
그 밴드의 리드 보컬인 커트 코베인은 1994년 4월 8일 자신의 집에서 총상을 입고 시체로 발견되었다. 경찰은 이 사건을 자살로 결론지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그의 죽음에서 '살인'을 읽어낸다.
프로이트는 삶이란 살고자하는 욕망(에로스)과 죽음에의 욕망(타나토스) 사이에서 외줄 타기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죽음이란 끔찍하지만, 늘 흥미로운 것이다.

이 이야기 역시 죽음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다만 죽은 자를 둘러싼 살아남은 자들이 말을 할 뿐이다.
장미 꽃 잎을 손에 쥐고, 편안한 미소로 살해당한 남자. 그리고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이나 기억을 잃어버린 그의 아내. 이 사건을 해결해야만 징계를 피할 수 있는 형사. 그 형사의 연인이면서도 또 다른 비밀을 지고 있는 동료 형사. 그들은 퍼즐 조각을 맞추듯 그의 죽음을 하나씩 재구성해나간다. 그러나 한 조각의 거짓이 퍼즐을 완성시키지 못하듯 사건은 다시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만다.

누가 커트 코베인을 죽였는가? 커트 코베인의 죽음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처럼, 이 작품 역시 한 남자의 죽음으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무엇을 감추고 있나요? 말해봐요.


원작자: 김경욱

1971년 광주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하였다.
1993년 <작가세계> 신인상에 <아웃사이더>가 당선되며 문단에 나와 소설집 <바그다드 카페에는 커피가 없다(1996), <베티를 만나러 가 다>(1999), 장편소설 <아크로폴리스>(1995), <모리슨 텔>(1997), <황금 사과> (2002) 펴냈다, 지금은 울산 대학교에서 창작론 등을 강의하며 소설쓰기에 전념하고 있다.


  '너바나Nirvana'라는 밴드가 있었다. 그 밴드의 리드 보컬인 커트 코베인은 1994년 사망했다. 4월 8일의 일이다. 자신의 집에서 총상을 입고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의 죽음은 여전히 의문에 싸여 있지만 자살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유서가 발견되었고 죽기 전부터 이미 치사량에 가까운 신경안정제를 복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죽기 바로 전에는 캘리포니아에 있는 약물 중독 치료를 위한 재활원에 있기도 했다. 로커다운 최후가 아닐 수 없다.

  언더그라운드 밴드로 출발한 너바나의 불가사의한 상업적 성공은 밴드의 멤버들조차 당황하게 했다. 그러나 그들이 당황할수록 대중적 인기는 높아만 갔다. 높이 날수록 추락에의 욕망은 강해진다. 21세기의 물질문명을 주도하는 컴퓨터 디지털 산업이 허름한 차고에서 시작되었듯이 그 물질문명을, 탐욕스러운 기계들을 깨부수라고 울부짖는 밴드들도 차고에서 출발한다. 삶의 아이러니란 그런 것이다.

  평생 도박판을 전전하다 남해안의 어느 작은 도시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감한 아버지라는 사내는 내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인생은 도박과 같아. 한 판의 게임인 게지. 게임에선 그 누구도 승리할 수 없단 말이다. 승자도 패자도 없다는 뜻이야. 게임에서의 본질적인 승리자는 게임 그 자체인 거야. 아무도 게임에서 승리자가 될 순 없어. 아무도,'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죽는 순간에도 그는 게임을 하고 있었고 갑자기 심장마비를 일으켜 쓰러졌다고 했다. 그때 그는 로열 스트레이트 플러시를 손에 쥐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로열 스트레이트 플러시를 쥐고도 게임에서 승리하지 못했다. 궁극적인 승자는 그의 말대로 게임 그 자체였던 셈이다. 내가 기억하기로 그는 평생 로열 스트레이트 플러시를 받아보지 못했다. 평생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패였던 것이다. 노름꾼의 최후 치고는 행복한 결말일 수도 있다. 돌이켜보면 그가 내게 남긴 것 중에서 그래도 쓸 만한 것은 그 말뿐이다. 그의 삶은 전혀 교훈적이지 않았지만 죽음만큼은 뭔가 교훈적인 구석이 있었다.

  '형사 양반, 혹시 커트 코베인을 누가 죽였는지 아시오?'

김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형사에게 담배 한 개비를 얻어 피우며 내가 물었다. 나는 순순히 모든 것을 털어놓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어차피 인생의 궁극적인 승리자는 인생일 뿐이니까. 이 글을 읽는 당신을 게임에 참여시킬 수만 있다면 나는 기꺼이 패배자가 되어줄 용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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