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가야 할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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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성경책과 함께 꼿쳐있다는 책...
내가 좋아하는 류인 심리학자의 책.
사랑과 인생부분은 다 읽었고,
뒷부분의 성장과 종교는 추후에 읽을 예정...
사랑과 인생부분 죽임...
특히 사랑에 빠지는것과 거기서 빠져나오는것은 항상 유의해야 할것...
여러종류로 번역되었는데 나는 신승철번역판임

동호랑 이책 가지고 이야기를 하다가...
생각나서 요즘 다시 읽고 있는 책...

고통이란 나쁘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왔고.. 그렇게 믿어왔다...
하지만 배부름의 기쁨처럼.. 배고픔의 고통도 즐길줄 알아야 할것이다.
배고픔도 즐길줄을 아는 사람이 배부름의 기쁨도 더 그만큼 느낄수 있을것이다.
이런 생각외에도 즐거운것을 미루어라.. 포기할줄 알아라 등...
기존의 서적에서는 보기 힘든 주장이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면 살아가면서 문제점들이 이런것들을 지켜오지 못해서 그랬던것이 아닌가 싶다라는 생각이 훈련편을 읽고 정리하면서 들었다.

/* 2007-02-22 오후 6:31:17 */
두번째로 오디오북으로 다시 읽었다. 처음에는 사랑과 인생부분만 읽고 종교는 왠지 종교적인 냄새때문에 읽지 않았는데, 이것이 나의 잘못된 판단이라는것을 이제야 깨닫고 후회를 해본다.
정말 대단한 책이라고 밖에는 말할수 없다. 그 동안 내가 읽었던 가십적인 내용들의 책들이 짜증이 나고, 왜 이런 책들을 곁에두고 생각하고, 반성하고, 실천하지 않았는지...
지금의 나의 잘못들과 일생에 걸친 잘못들을 속속들이 꼬집고, 반성하고, 느끼게 해준다.
무엇보다도 게으름에 관한 부분은 가슴에 정말 와 닿으며...  지금부터라도 게으름, 나태에서 벋어나서 평생에 걸친 훈련을 위해서 부단히 노력을 해야겠다.


<도서 정보>
제   목
: M. 스캇 펙
저   자 : 신승철, 이종만 역
출판사 : 열음사
출판일 : 199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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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일 :
일   독 :
재   독 : 2007/2/22
정   리 :


<미디어 리뷰>
"나는 할 수 없어." 혹은 "나는 어쩔 수 없어."

"내가 꼭 해야 했는데." 혹은 "내가 해서는 안 되었는데."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자. 전자는 성격 장애가 있는 사람이고, 후자는 신경증이 있는 사람이다. 나는 이 사실을 스캇 펙의 고전 <아직도 가야 할 길>을 읽고 알았다. 그래서 전자의 성격 장애가 있는 사람은 자기보다 세상이 변화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치유가 어렵고, 후자의 신경증자는 너무 과다하게 책임을 떠안는 스타일이지만 치유가 가능하다고 한다. 보통 사람은 이 두 가지 양상 사이를 왔다갔다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은 미국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히는 고전이라고 한다. 정신 의학자로 신망이 두터운 스캇 펙 박사는 오랜 임상 활동과 의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바람직한 삶을 위한 지표들을 나름대로 제시하고 있다.

좋은 책들에는 문제 해결의 방법이 적힌 책도 있고, 문제를 직시하여 정면 대결토록 권유하는 책도 있고, 또 이 책처럼 위안을 주는 책도 있다. 그런데 나는 이제껏 이 위안을 주는 책의 의미를 별로 높게 보지 않았다. 그것은 왜인가? 우리는 자신의 문제를 대부분 알고 있지만 그것과 정면으로 부딪치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문제 해결의 과정을 자꾸만 미루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위안을 주는 책은 이 문제 해결의 근원적 방법보다는 대증요법에 더 무게를 둔다. 그래서 문제의 무화 내지는 문제의 회피에 기여하는 이런 '위로의 책'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스캇 펙이 분명히 천명하고 있듯 누구에게나 본질적으로 "삶은 살기가 어려운 것"이다. 우리는 이 자명한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따라서 거짓 위안을 주는 대상에게는 항거해야겠지만, 연약한 존재로서의 우리를 긍정하게 하고 휴식하게 하여 혼신의 힘을 다한 학습 쪽으로(우리는 이 어려운 삶을 배워서 헤쳐가야 하니까) 데려가는 어떤 노력의 필요성까지를 부인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이런 점에서 스캇 펙 박사의 이 책은 우리를 온화한 가운데 투지 있게 하고, 조용한 가운데 각성케 하는 훌륭한 지침서다.

인간의 행동에는 어떤 경우든 합당한 책임이 뒤따른다. 저자는 무엇이 우리의 책임인가를 분별하는 것이 실존의 큰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일례로 다음의 삽화를 소개한다

저자가 오키나와 미 해군기지에 근무하는 한 알코올 중독자 직업군인을 상담한 이야기. 그는 그곳에서는 퇴근 후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저녁에 술을 마시는 것뿐이어서 술을 마시는 것이지, 결코 자신이 술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독서를 좋아하십니까?" 저자가 물었다.
"그렇고 말고요. 독서, 참 좋아하지요."
"그럼 술을 마시는 대신에 저녁에 독서를 하지 않습니까?"
"영내에는 독서를 하기에는 주위가 너무 시끄러워서요."
"그러면 왜 도서관에 가지 않습니까?"
"도서관은 너무 멀어서요."
"도서관이 술집보다 더 멀리 있습니까?"
"글쎄, 사실 저는 책을 그리 많이 읽지 않습니다. 책 읽는 데는 취미가 없거든요."
"낚시는 좋아하십니까?"
"그럼요, 낚시를 좋아하지요."
그런데 왜 술 대신 낚시를 하지 않습니까?'
"하루 종일 일을 해야 되는걸요."
'밤에 낚시하러 갈 수 있잖아요."
"아니죠, 오키나와엔 밤에 낚시할 만한 곳이 없지요."
"밤낚시 모임이 몇 군데 있는 것으로 아는데요. 내가 그 사람들을 소개해 드릴까요?"
"뭐, 그 정도로 낚시를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요 뭘."
저자가 결론적으로 말했다.
"당신의 말을 들으니 오키나와에서 술 마시는 일 이외엔 할 일이 없는 것은 아닌데도 다 싫고, 당신이 제일 즐기는 일은 술 마시기인 것 같은데요."

스캇 펙 박사는 말한다. 삶의 문제들을 악화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그때 그때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해결해 나가는(모르는 길을 물어 물어) 것 이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고. 이 단순한 진리의 말씀!

이제 삶의 비밀을 캐려고 부단히 노력하지 말자. 이 삶 외에 다른 어떤 곳에 우리의 가야 할 길이 있지 않다. 이 명백한 사실을 수긍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의미가 있다.

<정호의 정리>
삶은 고해다. 이것은 삶의 진리 가운데서 가장 위대한 진리다. 그러나 이러한 평범한 진리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삶은 더 이상 고해가 아니다. 다시 말해 삶이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래서 이를 이해하고 수용하게 될때, 삶은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다. 왜냐하면 비로소 삶의 문제에 대해 그 해답을 스스로 내릴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고통은 가르침을 준다. 그러므로 현명한 사람들은 문제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문제를 환영하며, 더 나아가서는 문제가 주는 고통까지 기꺼이 받아들인다.
우리는 문제들을 정면으로 대항하지 않고 주변을 맴돌면서 달아나려고만 한다. 그러나 문제와 고통을 피하려는 이 태도가 바로 정신건강을 해치는 원인이 된다. 결국에 가서는 피하려고 했던 바로 그 고통보다도 피하려고 하는 마음이 더 고통스럽게 된다.
어떤경우든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어야 하며, 그때 생겨나는 고통을 회피한다는 것은 문제에 직면함으로써 성취할 수 있는 정신적 성장을 거부하는 것이 되고 만다.   
 
고통을 이겨내는 네가지의 기술은
즐거움을 나중에 갖도록 자제하는 것, 책임을 자신이 지는것, 진실에 헌신하는것, 그리고 균형에 맞추는 일이다.
이것을 지키지못하는 것은 이 방법들이 복잡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고자하는 의지 때문이다.   
 
즐거운 일을 뒤로 미룬다는 것은 하루하루의 생활 가운데서 괴로운 일과 즐거운 일을 계획적으로 짜되, 고통을 먼저 겪은 뒤 즐거움을 갖게 되면 그 즐거움을 더 잘 즐길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이것이 삶을 풍요롭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어떤 사람들은 문제 해결을 시도하기도 전에 체념해 버리기도 하는데, 이것은 즉각적인 해결책을 찾으려고 서두르다가 적절치 못한 시도를 하는 것보다도 더 어리석고 파괴적인 것이다. 그러한 패배의식은 누구에게서나 나타나고 있고 세계 어디를 가나 마찬가지다. 이는 문제가 저절로 사라지기를 바라는 소극적인 태도다.
문제란 그대로 사라져 버리지 않는다. 문제들은 직면해서 해결을 하지 않으면 그대로 남는 것이며, 영원히 정신적인 성장과 발전의 장애물이 되고 만다.   
 
오로지 "이것은 내 문제이고, 이를 해결하는 것도 내게 달렸다."고 말할 때에만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책임을 어디에 둘 것인지 평가하고 또 재평가해야만 한다. 이 평가와 재평가를 제대로 성실하게 하고자 하면 거기에는 반드시 고통이 따른다. 이러한 각각의 과정을 제대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스스로 돌이켜보고 반성하는 습관을 지니도록 노력해야만 한다. 이것은 선천적으로 주어진 능력이 아니기 때문이다.   
 
네가 문제 해결에 참여하지 않으면 네가 문제의 일부가 되고 말 것이다.   
 
현실에 대한 우리의 견해란 지도와 같아서 그걸 지표로 삶의 모든 영역을 판단하게 된다. 만일 지도가 참되고 정화하다면 우리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되고, 어떤 곳에 가야 할 때는 어떻게 그 곳에 도달할 것인지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지도가 거짓이고 부정확하다면, 길을 읽게 될 것이 자명하다.
이 모든것은 틀림없는 사실인데도 대개의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를 무시해 버린다. 그 이유는 현실적으로 우리가 가는 길이 쉽지 않은 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처음부터 지도를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나지는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지도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걸 만드는 데는 노력이 필요하다. 현실을 감수하고 파악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우리의 지도는 정확하게 될 것이다.
지도 제작에 있어서 제일 큰 문제는 아무것도 없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지도가 정확해질 때까지 우리가 계속해서 지도를 고쳐 그려야 한다는 데 있다. 현실은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다.   
 
진실이나 현실이 고통스러울 때는 피하게 마련이다. 우리 자신도 지도를 개편하려면 그러한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훈련을 해야만 한다. 그런 훈련을 하기 위해서 우리는 전적으로 진실에 충실해야 한다. 현재의 편안함보다 궁극적으로 옳은 일들을 추구하기 위해 우리는 언제나 진실 앞에 솔직해야 한다. 우리는 언제나 개인적인 불편을 대수롭지 않게 영겨야 하며, 현재의 진실을 찾는 데 도움이 된다면 그 불편을 오히려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정신건강은 모든 희생을 무릅쓰고라도 오늘의 진실에 충실하려는 진행형의 과정이다.   
 
현명한 생활이란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생활이어야만 한다.   
 
진실에 전적으로 헌신하는 생활이란 자진해서 다가오는 변화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생활을 말한다.   
 
거짓말은 남들에게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도 할 수 있다. 우리 자신의 양심과 현실적인 인식에 비춰 볼 때, 우리의 지도를 변경시켜 적응해야 할 도전이라면 감당하기에 너무 고통스러울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고통을 견디지 못한다면 어떻게 환자가 현실과 대결하는 괴로움을 견뎌 내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앞서 가는 만큼만 남을 인도할 수 있는 것이다.   
 
용감한 사람들은 계속해서 완전히 정직하려고 애쓰고, 그러면서도 필요한 때는 적절히 진실을 숨길 수 있는 능력도 가져야만 한다. 자유로운 사람이 되려면 우리는 자신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만 하고, 동시에 진실로 우리의 책임이 아닌 것은 거절할 줄 아는 능력을 소유해야만 한다. 규모있고 효과적이며 현명하게 생활하려면 우리는 매일매일 즐거운 일들을 뒤로 미루고 미래를 내다 보아야만 한다. 하지만 기쁘게 살려면 파괴적이지 않은 한도내에서 현실적이고 자발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능력도 가져야만 한다. 다시 말해서 훈련 자체가 또한 훈련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급속한 성장을 위해서는 이제 맞먹는 양의 '낡은 자신'이 포기되어야만 한다. 이는 성공적인 정신치료에서도 불가피한 요소이다.   
 
가장 결정을 잘 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결정에 따르는 고통을 기꺼이 감수할 용의를 가진 사람들이다. 한 사람의 위대성의 척도는 고통을 감수하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위대한 사람은 고통을 기쁘게 생각한다. 그래서 고통은 곧 기쁨이라는 역설이 성립하는 것이다.   
 
만약에 괴로움을 피하고 고통에서 도망하는 것이 당신의 목적이라면, 나는 당신에게 높은 수준의 의식이나 영적인 성장을 촉구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선 고통 없이는 이와 같은 것을 달성할 수 없고, 둘째, 이와 같은 것을 달성한다 하더라도 당신은 지금 상상할 수 잇는 것보다도 더 고통스럽게 봉사하도록 요청받게 되기 때문이다.   
 
훈련이라는 것은 문제 해결의 괴로움을 피하는 대신에 문제 해결의 괴로움을 건설적으로 취급하는 기술 체계라고 정의할 수 있다.
즐거운 일을 미루는 것, 책임을 지는것, 진리와 현실에 충실한 것, 그리고 균형을 잡는 것.
훈련이란 이런 기술들의 체계라 하겠는데, 그 이유는 이 기술들이 서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단 하나의 행동으로 둘, 셋 혹은 이 기술 전부를 동시에 사용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각각의 기술들은 서로 구분되지 않을수도 있다.

- 1부 훈련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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