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자히르

 



대단한 작가의 대단한 작품이다.. 막판에 에스테르가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만을 뺀다면...-_-;;
암튼 저자의 자서전같은 방식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인데,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 부인을 찾으러 가는 과정에서 사랑을 깨닫고, 인생을 깨닫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찾게 된다...
무엇보다 이 책이 주는 매력은 저자가 자신에게 하는 질문들.. 삶에 대한 질문들.. 그리고 사색...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고, 나의 삶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하고, 나 자신과 대화를 하게 된다...
이 책은 소설이라기 보다는 자기개발서에 더 가깝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사랑, 삶, 불륜, 인생, 섹스 과연 이런것들이 무엇일까? 난 언제나 이런것들은 남들이 정해놓은 기준을 바탕으로 내 생각을 조금 추가했을뿐이지.. 세상의 화두에 대해서 제대로 생각해본적이 없던것 같다.
암튼 이제 나를 찾아서, 내 자신을 찾아서.. 그리고 내 사랑과 내 삶을 찾아 떠나야 겠다...


<도서 정보>제   목 : 오 자히르
저   자 : 파울로 코엘료
출판사 : 문학동네
출판일 : 2005년 7월
구매처 : 오디오북
구매일 :
일   독 : 2006/2/3
재   독 :
정   리 :

<이것만은 꼭>
잃어버린 나를 찾자.. 그리고 나의 사랑도.. 나의 삶도...


<미디어 리뷰>
저자 : 파울로 코엘료
1947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태어났다. 17세 때부터 세 차례나 정신병원에 입원했던 불행한 청소년기와, 록 밴드를 결성하고 연극단 활동에 참여하는 등 히피문화에 심취했던 청년기를 보낸다. 1973년 함께 음악 활동을 하던 라울과 『크링 하Kring-ha』라는 만화 잡지를 창간했으나 잡지의 성향이 급진적이라는 이유로 당시 브라질 군사정권에 의해 두 차례 수감되고 고문당했다. 산티아고 순례여행을 계기로 문학의 길로 들어선다.
1987년 자아의 연금술을 신비롭게 그려낸 『연금술사』의 대성공으로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이후로도 그는 『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악마와 미스 프랭』 『11분』 등 발표하는 작품마다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세계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로 자리잡는다. 그의 책은 150개 나라에서 총 6천5백만 부가 팔렸고, 『연금술사』는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영적 구도서로 평가되고 있다.
프랑스의 ‘레지옹 도뇌르’ 훈장, 유고슬라비아의 ‘골든 북’, 독일의 ‘골든 펜’ 등 유럽 각국의 상을 휩쓸었다. 2002년에는 브라질 문학 아카데미 회원이 되었으며, 유네스코 산하 ‘영적 집중과 상호 문화교류’ 프로그램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는 한편, 브라질에 ‘코엘료 인스티튜트’라는 비영리단체를 설립, 빈민층 어린이와 노인들을 위한 자선사업을 펼치고 있다. 소설 집필 외에도 브라질의 대표 일간지 『노보』를 비롯, 세계 각국의 주요 언론에 사회문제 전반에 관한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사랑 때문에 이렇게 멀리 떠난 적은 없었다.”

출간예정 발표와 동시에 세계를 긴장시킨 코엘료의 화제작
2003년 『11분』으로 전 세계 코엘료 독자들을 흥분시킨 뒤로 꼭 2년 만이다. 2005년 4월 1일, 이란에서 세계 최초로 코엘료의 신작 장편소설 『오 자히르』 아랍어 판이 출간되었다. 이튿날인 4월 2일에는, 출간 전 예약 판매로 하루에만 8만5천 부가 팔리는 신기록을 세웠던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원어인 포르투갈어 판이 출간되었다. 연이어 세계 각국의 출간 예정일이 발표될 때마다 출판 관계자들과 독자들은 긴장과 설렘으로 가슴을 졸였다. 이탈리아(4월 6일), 독일(4월 9일), 프랑스(5월 4일), 영국(6월 6일, 7월 현재 베스트셀러 1위) 등으로 이어진 출간에 따라, 각국의 베스트셀러 순위도 요동쳤다. 『오 자히르』는 장기간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던 책들을 단숨에 밀어내고 1위를 차지했다. 초판 25만 부를 발행한 프랑스에서는 1주일 만에 렉스프레스지 집계 1위를 차지했고 4주 동안 1위 자리를 지켰다. 이탈리아는 출간 1개월 만에 42만 부가 팔렸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는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53만 부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전국 서점연합 집계 1위를 차지했다. 그런데 흥분과 열광이 채 가시기도 전인 5월 초, 이란에서 『오 자히르』가 판금되고 출판사의 사장이 구속되었다는 기사가 나오자 세계 언론은 다시 한번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런데 왜 『오 자히르』는 출간 한 달 만에 이란에서 판금되었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주인공 에스테르의 실제 모델인 크리스티나 램은 영국 출신 종군기자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활동했다. 코엘료는 2003년 『11분』 출간 직후 크리스티나 램의 인터뷰 요청을 받고, 남프랑스의 별장에서 만난다(첨부자료 참조). 그리고 작품 속의 중요한 배경인 카자흐스탄에서 구소련 체제 시절 자행된 종교적 탄압과 파괴, 원폭실험 등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인다. 코엘료는 이 작품을 쓰기 전에 실제로 카자흐스탄을 방문하고, 그곳 대통령을 접견하기도 했다(본문 445~447쪽, 작가의 말 참조). 이란 정부가 『오 자히르』의 구체적인 판금 이유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이러한 전후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도, 제목에 들어 있는 ‘자히르’라는 단어가 가장 문제적인 요소로 지적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이 생긴다.

자히르, 신의 아흔아홉 가지 이름 중 하나
코엘료는 이번 신작 소설을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단편소설 「자히르」에서 영감을 받아 구상했다. 원제인 ‘O Zahir(The Zahir)’는 원래 아랍어로, 어떤 대상에 대한 집념, 집착, 탐닉, 미치도록 빠져드는 상태, 열정 등을 가리킨다. 이것은 부정적으로는 광기 어린 편집증일 수도 있고, 긍정적으로는 어떤 목표를 향해 끝까지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에너지원일 수도 있다. 그것은 난폭한 신과 자비로운 신의 두 얼굴처럼 양면적인 힘이다. 아랍어에서 ‘자히르’는 신의 아흔아홉 가지 이름 중 하나일 정도로 신성한 것이다. 코엘료는 바로 이 ‘자히르’를 이번 신작의 중심 주제로 내세운다.
사로잡힌다는 것. 그것은 매혹이자 열정이며 우리의 삶을 추동해가는 근본적인 에너지이다. 무언가에 사로잡혔을 때, 배경으로만 존재하던 일상의 무수한 사물들과 사건들은 전혀 새롭고 낯선 풍경이 되어 시야에 잡혀든다. 사로잡힘으로써 감각은 보다 예민해지고, 영혼은 더욱 섬세해지며, 잠재되어 있던 본능이 발현한다. 그리하여 이전에 보지 못한 것들을 보게 되고 듣지 못한 것들을 듣게 되며, 느끼지 못한 것들을 느끼게 된다. 세계가 숨겨두었던 신비를 벗고, 작은 먼지 같던 존재가 빛 속으로 또렷하게 부상하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무언가에 사로잡힘으로써 우리는 또한 사로잡힌 대상을 제외한 나머지 것들에 대해 무감각해지고, 이야기는 왜곡되고, 세계는 우리 앞에서 변형된다. 사로잡힌 대상만으로 세계가 가득 차고, 그것은 절대적이며 유일한 존재가 된다. 마치 신처럼…… 우리를 지배한다.
코엘료는 작품 속에서 ‘자히르’의 상태에 빠진 자, 중독된 자들의 모습을 세밀화처럼 묘사하고 있다. 일에 중독된 사람, 유흥에 중독된 사람, 사랑에 중독된 사람, 소유에 중독된 사람, 명성에 중독된 사람, 전쟁에 중독된 사람 등등, 『오 자히르』에는 다양한 형태의 중독자들이 등장한다. 사실 무언가에 중독되지 않은 채로 생의 비애와 공포스러운 현실을 잘 견딘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게 뭐가 됐든 무언가에 빠져 있어야만 우리는 ‘시간의 속도감’을 잊을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자신의 위치를 매 순간 또렷이 자각하며 산다는 건 누구에게나 버거운 일이다. 그래서 무언가를 원칙으로 정해놓고, 질문을 던지지 않고, 무작정 따르는 것. 그것이 우리가 일상적인 자히르에 굴복하는 방식이다.
작가는 이것을 ‘기차의 두 선로 사이의 거리’를 예로 들어 설명한다. 현대의 기차의 두 선로는 143.5센티미터 혹은 4피트 8과 2분의 1인치만큼 떨어져 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애매한 숫자일까? 145센티미터든가 5피트로 정하면 훨씬 간단할 텐데? 그 이유는 아주 오랜 옛날, 고대 로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로마의 전차는 말 두 마리를 매어 끌었고, 그래서 도로를 건설할 때 그 폭을 말 두 마리가 나란히 달릴 수 있는 거리로 정했다. 그리고 이 도로는 이후 마차 바퀴 사이의 거리를 결정지었고, 기차를 처음 만들었을 때도 마차를 만들던 도구와 연장을 사용했기 때문에 오늘날의 기차 선로 폭이 정해졌다(본문 168~169, 185~186쪽). 『오 자히르』는 이처럼 정해진 원칙을 의문 없이 따르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다양한 비유와 우화적 에피소드를 통해 말하고 있다. 그리고 원칙이라고 믿고 있던 것, 불변의 사실로 확신하던 것이 깨어질 때 비로소 우리는 자기 자신을 다시 발견하고, 새로운 세계를 보게 된다고 역설한다.


자히르, 길들지 않은 열정 혹은 미칠 듯한 사랑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의 삶에서 가장 강력한 자히르는 ‘사랑’이다. 사랑은 그 열렬한 도취와 탐닉의 에너지로 죽음의 공포를 잊게 한다. 사랑하는 순간에 생명은 불꽃을 터뜨리며, 자신의 내부에 깃든 에너지를 격렬히 소진한다. 그런데 신비로운 것은 사랑의 에너지는 쓸수록 더 큰 에너지를 생성시킨다는 점이다. 사랑은 에너지를 고갈시키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생명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그것은 에너지의 총량은 항상 같다는 물리학의 법칙을 위배한다.
그런데 사랑에는 다양한 결과 깊이가 있다. 『오 자히르』는 바로 이 사랑의 결과 깊이에 대한 소설이다. 베스트셀러 작가인 주인공 ‘나’가 어느 날 갑자기, 말없이 사라져버린 아내에 대해서 갖는 집착과 혼돈은 가장 강력한 자히르의 상태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또한 그가 사로잡힌 것으로부터 벗어나려고 애쓰고, 무작정 걸어가던 걸음을 멈추고, 자기 내부를 응시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독자는 사랑의 깊이와 넓이가 얼마나 무한한가를 느끼게 된다. 그것은 자기 내부의 한계와 마주치고, 그 한계로부터 단숨에 비약해서 폭발적인 에너지로 새로운 층위로 치솟아 들어가는 과정이다. 코엘료는 이것을 ‘아코모다도르’와 화살의 비유로 설명한다(본문 315쪽). 아코모다도르란 우리가 살다가 어느 순간인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에 멈춰서는 한계를 말한다. 이 아코모다도르는 정신적 트라우마로 작용하여 우리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억압하며, 왜소하고 축소된 인간으로 머물도록 만든다. 아코모다도르를 극복하는 첫번째 과정은 우리가 그것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에 있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야 그 위치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한곳에 정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어디론가 나아가기 위한 노력, 그것으로부터 삶의 풍요로움은 시작된다. 그리고 이 움직임이 우리를 사랑의 핵에 가 닿을 수 있도록 이끈다.

“모든 사랑은 여행이다. 그대에게로 떠나는, 그리고 나 자신에게로 떠나는...”
『오 자히르』에서 ‘자히르’에 못지않게 중요한 단어는 ‘노마드’, 즉 유목의 전통이다. 여주인공 에스테르는 카자흐스탄 스텝의 유목민으로부터 중요한 가르침을 받는다. 유목민은 말한다. “온전함에 이르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움직임 속에 있어야 하오. 그러면 매일매일이 달라지니까(본문 275쪽).” 코엘료의 기존 작품에서 ‘순례’로 형상화되었던 이 ‘움직임’의 개념은 이번 신작에서도 여전히 유지된다. 그런데 눈에 띄는 것은 전작들에 비해 그 사유의 폭이 훨씬 더 넓어졌다는 점이다.
코엘료가 말하고 있는 ‘움직임’은 눈에 보이는 현상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고여 있는 모든 상태를 부정하고 육체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공간의 확장을 시도하는 것이다. 물리적 존재인 인간이 시간성과 공간성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그것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열망이자 영원한 숙제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첫걸음으로 우리는 ‘지난 경험’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왜냐하면 ‘경험’은 우리를 더 잘 살아갈 수 있게 도와주지 못한다. 과거의 경험으로는 현재의 고통에 더 능숙하고 더 노련하게 대처할 수 없다. 고통은 매번, 전혀 새롭기 때문에 충격적인 것이고, 그래서 고통스러운 것이 아닌가. 그리고 개인의 역사―경험, 추억, 체험, 과거, 옛이야기 등으로 번역될 수 있는―는 더 많이 쌓여갈수록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는 발걸음을 무겁게 만드는 등짐과도 같은 것이다. 우리는 어느 시점에선가 그 짐을 내려놓지 않으면 계속 갈 수 없다.

언제 생의 한 시기가 끝에 이르렀는지 아는 게 중요하다. 한 주기를 마감하고, 문을 닫고, 한 장(章)을 끝마치는 것. 그걸 뭐라 부르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완결된 삶의 순간들을 과거 속에 놓아두는 것이다. 뒷걸음질할 수 없다는 걸, 어떤 것도 과거의 모습으로 되돌릴 수 없다는 걸 나는 서서히 이해하고 있었다.(본문 227쪽)

『오 자히르』의 중요한 등장인물인 카자흐스탄 출신 청년 미하일은 바로 이 ‘움직임’의 전통, 즉 유목의 전통 속에서 자라난 인물이다. 그는 에스테르와의 인연으로 유럽의 도시 파리로 오지만, 그곳에서도 여전히 노마드들과 더불어 생활한다. 그중에는 걸인, 부랑자, 노숙자 등 실제로 ‘집’이 없이 사는 사람들도 있고, 과거 히피운동 시절을 연상시키는 일군의 젊은이들처럼 자발적으로 ‘거리’를 선택한 사람들도 있다. 본문에서 ‘부족’으로 표현되는 이들은 피어싱을 하고, 영화 속에서 방금 튀어나온 것 같은 차림으로 파리 시내를 돌아다닌다. 그들은 현대 문명 속에서 노마드로 살아가기를 선택했고,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늘 자유로우며, 오늘이 지상에서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간다. 이들은 “단 한 사람의 변화가 세계 전체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신념으로, “사랑의 빛이 세상에 보다 널리 퍼지게” 하기 위해 다양한 계층, 나이, 성별의 사람들과 ‘만남’을 시도한다. 이 도시의 순례자들을 통해서 주인공은 현재에 고착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두렵지만 동시에 환희로 충만한 순례길을 나설 용기를 갖게 된다. 그리고 그 길에서 또다른 많은 여행자들, 순례자들, 노마드들과 만난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파울로 코엘료가 그 신비로운 베일을 벗었다
코엘료는 다양한 우화와 잠언을 통해 자신의 사유와 성찰을 드러내왔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종종 ‘어른들을 위한 동화’로 분류되곤 했다. 이것은 코엘료의 대중적 성공과 관련해 그의 작품이 문학이 아닌 ‘우화’라는 식의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도록 만들기도 했다. 『오 자히르』를 보면 이러한 평가에 대해 코엘료 자신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가 잘 드러난다. 주인공인 ‘나’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문학적 성공이나 이상적 성취를 위해서 글을 쓰지는 않았다고 고백한다. 오히려 볼품없고 소심하며 눈에 띄지 않는 소년이었던 어린 시절, 누군가로부터 “사랑받고 싶어서” 글을 썼다고 말한다. 또한 코엘료는 글을 쓰면서 겪게 되는 고뇌와 갈등, 끔찍한 부담감, 피하고 싶은 마음, 그러나 또 쓸 수밖에 없는 자기 자신의 모습 등등을 솔직하게 작품 속에서 토로한다.

“나는 ‘말[言]’이라는 이름의 배를 타고 가장 가까운 섬으로 항해를 떠나기로 한다. 가는 도중에 파도와 바람과 폭풍우를 만나지만, 나는 계속 노를 저어 나아간다. 지쳐서 힘이 다 빠져버린 뒤에야 내가 항로를 벗어났음을, 배를 대려 했던 섬이 수평선에서 사라져버렸음을 깨닫는다. (중략) 파도가 왜 그를 그가 다다르고자 꿈꾸었던 저 섬이 아닌 이 섬으로 데려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본문 98쪽)

『오 자히르』에는 작가의 자전적 요소와 관련된 모티프들이 수시로 등장한다. 또한 파울로 코엘료의 데뷔작인 『순례기』, 꿈을 찾아 떠난 양치기 소년의 이야기를 그린 『연금술사』, 그밖에 『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와 『11분』의 모티프들이 여러 곳에서 직간접적으로 인용된다. 작가로서의 고민, 평론가들의 평가에 대한 불편함, 영화제작에 대한 코엘료의 생각 등등을 구체적으로 읽을 수 있는 부분도 자주 눈에 띈다. 그래서도 『오 자히르』가 발표되었을 때, 언론과 독자들은 작품 속의 내용과 작가의 실제 삶이 얼마나 닮아 있는지를 몹시 궁금해했다. 그리고 이 궁금증에 대해 코엘료는 이렇게 대답한다. “전 모든 책이 자전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단지 자기 고유의 경험을 조금씩 변형시키는 것뿐이기 때문이죠.” (「뒷북」의 인터뷰 기사 참조.)

『오 자히르』는 삶과 사랑에 대한 코엘료의 성찰이 얼마나 다채로운 깊이와 넓이를 가지고 있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어느 날 갑자기, 말없이 사라져버린 아내, 꿈을 잃고 현실에 안주했던 나에게 생의 의미를 일깨워주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도록 이끌었던 그녀, 에스테르. 영원하고 유일한 사랑인 에스테르를 찾아서 나는 바람과 사막과 초원을 건너는 구도의 여정을 떠난다. 용기와 희망, 사랑과 자유의 메시지로 가득한 『오 자히르』는 『연금술사』의 감동을 이어가는 코엘료의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줄거리>
소유하고 싶고 자유롭고 싶다... 사랑의 두 얼굴을 빛나는 성찰로 그려냈다

어느 날 갑자기, 사랑하는 아내가 아무런 말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나’는 아내 ‘에스테르’의 실종과 관련해 혐의를 의심받아 경찰에 체포된다. 아내가 사라진 날의 알리바이(나는 아내의 친구와 잠자리를 하고 있었다)를 증명해주어서 곧 풀려나긴 하지만, 아내가 종적을 감춘 이유는 도무지 알 길이 없다. 경찰은 아내가 종군기자였고, 현재 내전이 벌어지고 있는 지역에 취재를 다녔기 때문에 납치를 당했을 수 있다고 추정한다. 하지만 나는 안다. 아내는 나를 떠나버린 것이다. 단 한 마디의 인사도 없이.
소설의 주인공인 나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다. 어린 시절부터 친구들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운동에도 소질이 없고 여자친구를 사귀지도 못하는 소심하고 나약했던 나는 대학에도 가지 않고, 이런저런 직업을 전전하며 히피로 살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노래가사를 하나 썼는데 그 노래가 히트를 치면서 작사가로 명성을 날리며 부를 거머쥐게 된다. 그러나 나는 작가가 되고 싶었던 어렸을 적의 꿈을 잊지는 못한 채, 만족스럽지 못한 생활을 한다. 또한 한 인간과 온전한 관계를 맺는 데도 서툴러 결혼과 이혼을 되풀이한다. 그러다가 유명 작사가인 나를 인터뷰하러 온 잡지사의 여기자 에스테르와 사랑에 빠지고 네 번째로 결혼을 한다. 하지만 2년쯤 결혼생활을 하고 나자 나는 이 관계에서도 뭔가 불편함을 느낀다.
여자들은 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구속하려 든다. 하지만 나에게는 절대적으로 자유가 필요하다. 나는 모험과 새로운 만남에 대한 갈망을 포기할 수가 없다. 결국 나는 이번에도 아내 에스테르에게 헤어지자고 말한다. 그런데 에스테르는 현실에 대한 나의 불만이 두 사람의 관계의 문제가 아니라, 나 자신의 문제라고 말한다. 작가가 되고 싶은 꿈을 방치한 채 하루하루 무의미하게 살아가는 것에서 오는 권태로움을 잊기 위해 자꾸만 새로운 모험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스페인의 산티아고로 혼자서 순례를 떠나라고 한다.
두 사람은 격렬히 싸우지만 결국 나는 스페인 산티아고의 길로 순례를 떠났고 거기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글을 써서 성공하게 된다. 두 번째 작품인 ‘꿈을 찾아가는 양치기 소년의 이야기’로 나는 확고부동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 그렇게 작가로서 성공을 거두고 결혼생활에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내는 종군기자가 되어 아프가니스탄 내전에 관한 르포를 쓰겠다고 선언을 한다. 이제 서로 떨어져 각자의 삶을 사는 나날들이 계속된다. 그렇게 2년여의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아내가 종적을 감춰버린 것이다.

사랑하는 단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떠난 가장 길고 위대한 여행의 기록
여느 부부들과 달리 서로를 구속하기 보다는 각자의 자유를 인정하면서도 근본적인 신뢰는 유지하는 열린 관계라고 나는 믿고 있었었다. 그런데 아내는 카자흐스탄 출신의 ‘미하일’이라는 젊은 남자와 함께 사라진 것으로 추정되기에 나의 배신감은 더욱 크다. 나는 떠나간 아내를 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새로운 여자친구도 사귄다. 그런데도 에스테르에 대한 생각은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결국 에스테르에 대한 나의 애증과 집착은 극에 달하고 그녀는 나의 ‘자히르’가 된다. 마침내 에스테르에 대한 자신의 사랑이 얼마나 깊었는지 깨닫고 받아들인 나는 이 고통스러운 경험을 바탕으로 『찢어버릴 시간, 꿰맬 시간』이라는 소설을 쓰고 이것은 전작들에 이어 이번에도 베스트셀러가 된다.
그런데 이 신작소설의 사인회 날, 미하일이 내 앞에 나타난다. 어릴 때부터 어떤 존재의 목소리(어떤 소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사람들로부터 환영을 보는 미친 사람으로 취급받았던 미하일은 취재차 카자흐스탄에 온 에스테르를 만나 그녀의 통역사로 일하게 되면서 자신을 이해해주는 그녀에게서 힘을 얻었다. 에스테르의 간청과 도움으로 파리에 온 미하일은 그녀와 함께 자신의 숙명이라고 생각했던 ‘사랑의 에너지를 퍼뜨려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 자신을 발견하게 돕는 일’을 하게 된 것이다.
나는 미하일이 파리의 한 레스토랑을 빌려 주관하고 있는 ‘만남’의 자리에 참석한다. ‘만남’은 사람들이 자신의 고민들과 불안을 털어놓으며 새롭게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는 모임이다. 그곳에서 나는 에스테르가 나를 더이상 사랑하지 않아서 떠난 것이 아니라 너무나 사랑하기에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해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아내를 찾아 중앙아시아의 초원 카자흐스탄의 어느 마을로 떠난다.
미하일과 그리고 그의 친구인 도스의 도움을 받아 사막을 건너는 험난한 여정 속에서 나는 ‘텡그리(몽골어로 ‘하늘’을 뜻하는 텡그리는 ‘천신숭앙’의 한 형태다)’라는 유목민들의 문화를 배우게 되고 일상의 기적을 찬미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그리고 드디어 카자흐스탄의 어느 마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아내 에스테르를 만난다. 먼 길을 걸어서 마침내 서로에게 다다르게 된 두 사람은 그 여정을 통해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또 상대방을 발견하며, 진정한 사랑을 깨닫게 된다.


<책속으로>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어떤 것들을 그냥 사라지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그토록 중요한 것이다. 그것들에서 해방돼라. 관계를 끊어내라. 속임수를 쓰기 위해 표시해놓은 카드로 게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때로는 따기도 하지만 때로는 잃기도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뭔가를 되돌려주기를, 너의 노력을 인정받기를, 사람들이 네 재능을 발견하기를, 사람들이 네 사랑을 이해하기를 바라지 마라. 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하지만 그 이유가 자존심이나 무능이나 교만이어서는 안 된다. 네가 그 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하는 것은 그게 무엇이든 이젠 네 삶과는 맞지 않기 때문이다. 문을 닫아라. 다른 음악을 틀어라. 집을 청소하고, 먼지를 떨어내라. 지금까지의 너이기를 그만두라. 그리고 너 자신이 돼라.

자유. 그렇다. 나는 지금 자유롭다. 구금되어 있는 동안에도 나는 자유로웠다. 나에게 자유는 여전히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자유에 대한 이런 갈망 때문에 나는 즐기지도 않는 포도주를 마셔야 할 때도 있었고, 다시는 하지 않을 일을 해야 했던 적도 있다. 그것들은 내 몸과 마음에 많은 상처를 남겼다. 나중에 그들에게 용서를 구하긴 했지만, 몇몇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히기도 했다. 나의 광기와 삶에 대한 내 갈망을 따르라고 강요하는 것만 아니라면 타인에게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시절의 일이다. 고통스러웠던 그 순간들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나는 마치 훈장처럼 상처들을 몸에 지니고 있다. 자유는 구속만큼이나 큰 대가를 요구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기꺼이, 웃으면서 그 값을 치른다는 점이다.
비록 눈물 젖은 웃음일지라도...

병원에 있을 때 사랑은 내게 말했다. "나는 모든 것이자 아무것도 아니다. 바람이 그러하듯 난 닫힌 창이나 문으로는 들어갈 수 었다."

나는 사랑에게 대답햇다. "하지만 나는 당신을 향해 열려 있어요!" 그러자 사랑이 말했다. "바람은 공기로 이루어져 있다. 네 집안에도 공기는 있다. 하지만 사방이 닫혀있지. 곧 가구들은 먼지로 뒤덮일 것이고, 그림들은 습기에 망가지고 벽에는 얼룩이 질 것이다. 네가 계속 숨쉬는 한 너는 내 일부를 알게 되리라. 하지만 나는 부분이 아니다. 나는 ''모든 것''이다. 너는 결코 이것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과연 가구들은 먼지에 덮여갔고, 액자들은 습기 때문에 썩어가고 있었다. 창문과 문을 여는 것 말고는 다른 해결책이 없었다. 문을 열자 바람이 들어와 모조리 쓸어가 버렸다. 나는 추억들을 간직하고 싶었고, 많은 노력을 기울여 얻은 것들을 지키고 싶었다. 그러나 전부 사라져버렸고, 나는 스텝처럼 텅 비워졌다.

나는 에스테르가 왜 이곳에 오기로 결심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스텝처럼 텅 비기 위해서였다. 나 자신을 비우자, 바람이 들어와 전에는 들어본 적 없는 소리와, 한 번도 대화를 나눠본 적 없는 사람들을 보내주었다. 나 개인의 과거사로부터 해방되자, 예전의 열정이 되돌아왔다...

당신은 이름을 무엇으로 하겠습니까?
"저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하겠습니다."

왜 선생의 수고가 사랑하는 사람의 복종과 감사, 혹은 인정으로 보상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시죠? 선생께서 이곳에 온 것은 아내의 사랑을 사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것이 선생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현대의 기차의 두 선로는 143.5센티미터 혹은 4피트 8과 2분의 1인치만큼 떨어져 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애매한 숫자일까? 145센티미터든가 5피트로 정하면 훨씬 간단할 텐데? 그 이유는 아주 오랜 옛날, 고대 로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로마의 전차는 말 두 마리를 매어 끌었고, 그래서 도로를 건설할 때 그 폭을 말 두 마리가 나란히 달릴 수 있는 거리로 정했다. 그리고 이 도로는 이후 마차 바퀴 사이의 거리를 결정지었고, 기차를 처음 만들었을 때도 마차를 만들던 도구와 연장을 사용했기 때문에 오늘날의 기차 선로 폭이 정해졌다

나는 ‘말[言]’이라는 이름의 배를 타고 가장 가까운 섬으로 항해를 떠나기로 한다. 가는 도중에 파도와 바람과 폭풍우를 만나지만, 나는 계속 노를 저어 나아간다. 지쳐서 힘이 다 빠져버린 뒤에야 내가 항로를 벗어났음을, 배를 대려 했던 섬이 수평선에서 사라져버렸음을 깨닫는다. (중략) 파도가 왜 그를 그가 다다르고자 꿈꾸었던 저 섬이 아닌 이 섬으로 데려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언제 생의 한 시기가 끝에 이르렀는지 아는 게 중요하다. 한 주기를 마감하고, 문을 닫고, 한 장(章)을 끝마치는 것. 그걸 뭐라 부르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완결된 삶의 순간들을 과거 속에 놓아두는 것이다. 뒷걸음질할 수 없다는 걸, 어떤 것도 과거의 모습으로 되돌릴 수 없다는 걸 나는 서서히 이해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