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푸는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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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정보>
제   목 : 희망을 푸는 두레박
저   자 : 오아볼로
출판사 : 미다스북스(리틀미다스)
출판일 : 2004년 08월
구매처 : 오디오북
구매일 :
일   독 : 2004/11/16
재   독 :
정   리 :


<정호의 생각>
오아볼로라고 해서 처음에는 외국사람의 에세인줄 알았는데,
30대에 인생을 다시 시작하면서 새로 바꾼 이름이란다.
책의 앞부분을 읽으면서 도대체 나는 왜 이러고 사는거야라는 생각이.. 마구 들었다..
이런사람들도 희망을 가지고 남들에게 꿈과 희망을 나누어 주고 사는데...
사지도 멀쩡한 김정호 뭐하냐라고...
일급장애인으로 뼈에 조그마한 충격이 와도 뿌러진단다.. 태어난후 어머니가 아기의 손을 쥐었는데도 뼈가 뿌려졌을 정도니... 암튼 어렵게 살아왔고, 죽을려고도 하던 그가 가장 힘을 얻었던건, 삶에 절망하고 죽으려고 했을때... 어떤 사람이 그러더란다...
"당신은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그래도 당신은 목발에 의지해서 걸어다닐수도 있지 않습니까. 전 하체가 마비되서 당신처럼 걸어다니는게 꿈입니다.
당신의 능력으로 남을 도우면서 살아가세요"라고...
이 대목과 어릴적 고생담을 들었을때 눈물이 핑돌았다...
그리고 자학을 하기 시작했다...
뭐했니 김정호... 뭐하니 김정호...

저자가 20년동안 거의 매일 하루에 100통씩 편지를 써서 50만통정도를 보냈다고 한다.
나무를 심은 사람이 생각났다. 엘제아르 부피에가 생각났다.
하루에 100개씩의 씨앗을 꾸준히 심어서 허허벌판을 숲으로 만든 사람...
난 오늘하루 무엇을 했는지...

저자가 마지막에 멋진말을 남겨주었다.
희망이란 본디 가지고 태어나는것인데, 나이를 먹어가면서 잊어갈뿐이라고...
다시 한번 희망을 가지고 출발이다!!


http://jungho.net/bbs/zboard.php?id=movie&no=254
이곳에 가서 동영상도 보고, 저자에게 우표값이라도 조금이나마 보태주어야 겠다.
혹시 저자를 돕고싶은 생각이 있으시면 위의 링크를 클릭하면 자세한 내용이 있음.



<미디어 리뷰>
“키는 비록 1m도 안되지만 제겐 하나님 ‘빽’이 있지요” | 조선일보 김한수 기자 | 2004-10-01 |  

서울 은평구 응암동의 한 다가구 주택. 햇볕이 잘 들지 않는 작은 방 침대 앞에는 컴퓨터 1대와 전화기, 손때 묻은 성경책이 놓여있다. 침대 위에는 키가 1m도 되지 않는 한 사내가 앉아있다. 7년 전 두 다리뼈가 부러진 후로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한 발짝도 떼지 못하는 오아볼로(본명 오규근·52)씨. 그는 선천적으로 뼈가 자라지 않을 뿐 아니라 작은 충격에도 뼈가 부러지는 ‘골형성부전증’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다. 그러나 그는 20여년째 편지를 통해 마음의 고통을 받는 이에게 위로와 희망 그리고 하나님 말씀을 전하고 있다. 그렇게 그가 쓴 편지는 50만여통에 이른다. 컴퓨터와 전화, 성경책은 그가 세상에 희망을 보내는 통로다. 오씨는 최근 자신의 50년 인생을 정리한 자전 에세이 ‘희망을 푸는 두레박’(미다스북스)을 펴냈다.

책은 독자에게 ‘이 사람을 보고도 희망을 버리겠는가’라고 묻는다. 생후 3일째, 사랑스런 마음에 손을 꼭 쥔 어머니에 의해 처음으로 손뼈가 으스러진 후 서른이 될 때까지 툭하면 뼈가 부러지고 잘못 붙었던 사연은 믿기 어려울 정도. 무럭무럭 자라는 토끼, 쑥쑥 크는 농작물이 부러워서 청소년기엔 토끼풀, 비료까지 먹어봤다. 자력으로 살아보고자 꿀벌을 치고, 만화를 그리고 소설 습작을 쓰는 모습은 눈물겹다. 하반신 마비 사고로 편지 선교를 하던 이바울로씨와의 만남, 결혼, 그리고 기독교계 방송을 통해 자신의 사연을 소개하고 편지를 통해 선교를 결심하는 과정에선 오씨가 새로 태어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라는 성경구절에서 딴 ‘아볼로’로 이름을 바꾼 것도 그의 삶의 큰 전환점이었다.

오씨가 편지를 보내는 대상은 재소자를 비롯해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 인생진로와 학업부진 때문에 고민하는 학생 등 다양하다. 한 가지 공통점은 대부분 오씨보다 성한 신체를 가졌다는 점. 한 사형수는 그와 편지를 나누다 독실한 기독교인이 돼 이제는 신앙에 관한 내용의 편지를 주고받는다. 이런 태도 때문에 방송통신대 신학과 3년을 수강한 것이 정규학업의 전부이지만 그에게 편지를 보내는 이들은 오씨를 ‘전도사’로 부른다. 오씨는 “제가 심한 장애인이란 걸 알기 때문인지 많은 분들이 가족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고민을 이야기하신다”며 “대부분 한 두 번 편지를 주고받다가 연락이 끊기지만 그래도 좋다”고 말했다. 연락이 끊긴 것은 고민이 해결됐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란 것. 오씨는 차마 ‘고맙다’는 답장을 하지 못하는 마음까지 이해하고 있다.

오씨는 “장애가 없는 사람들은 사회에서 쓸 수 있는 일원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잘 모를 것”이라며 “몸은 이렇지만 하나님 빽으로 정상인들을 도울 수 있게 돼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고 말했다. 또 “모두가 마음에 평안을 얻고 그것을 밖으로 보낸다면 사회 전체가 아름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편지를 부칠 우표값조차 후원금에 의지하는 형편이지만 오씨는 “생명이 다할 때까지 편지를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정호의 정리>
그런데 스물이 넘어 신체 검사 통지서가 나왔다는 사실이 의아했습니다. 제 친구들은 대부분 군대에 이미 갔다 왔거나, 군대에 있다 해도 말년 제대를 앞두거나 했을 때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유독 저에게만 뒤늦게 신체 검사 통지서가 날아왔다는 게 어쩐지 이상했습니다. 당시엔 보통 열여덟이 되면 신체 검사를 받고 입대 여부를 판정받았기 때문입니다. 일이 어찌 되었든간에 나란 사람이 국가의 부름을 받은 거니 신기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이 난치병의 약골한테도 신검 통지서가 날아오다니요.
‘군대에 와서 총이나 칼을 들고 네 가족과 친구들의 잠자리를 지켜라!’ 하는 거니 얼마나 뿌듯했겠습니까!
손님이 오면 몹쓸 물건이나 되는 양 이리저리 숨겨졌던 사람이 떳떳하게 인정받았다는 기분까지 들었으니까요.
--- '세상의 냉대를 받다' 중에서


그때 제 유일한 낙은 라디오였습니다. 라디오는 세상과 저를 이어주는 작은 문이었습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들으며 세상살이가 어떻구나 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구나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장애인을 위한 프로그램이란 소리가 제 맘을 단번에 사로잡았습니다. 소외되고 외로운 장애인과 함께하는 사람이 있다는 소식이 저를 설레고 들뜨게 했습니다. 당시에 사람들은 장애인을 병신, 불구자라고 했기에, 장애인이 무엇을 말하는지 몰랐습니다. 환우도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지 몰랐고요. 그런데 장애인이란 말이 왠지 마음에 스며들었고, 라디오 속의 목소리가 나를 향해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 '세상을 향해 눈을 뜨다' 중에서


몇 번의 편지가 오가고 어느 날,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그런데 그 목소리가 너무도 아름답고 예뻤습니다. 노총각 맘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저에게는 천상에서 들여오는 것처럼 너무도 예쁜 목소리였습니다. 목소리를 듣고서는 정말로 기분이 날아갈 듯했습니다.
그후 편지와 전화로 우리 둘은 자주 만났습니다. 한번 전화가 오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나눴습니다. 몸이 건강하다면 당장 달려가 손이라도 꼭 쥐고 싶은 심정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편지와 전화로만 만나니 정말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했습니다. 어떤 사람이기에 이리 마음이 예쁠까 궁금했습니다.
궁금하기는 그쪽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입니다. 정말 저를 궁금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작은 몸과 깊은 장애를 가지고 있었기에 나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내가 자신의 장애를 뚜렷하게 밝히지 못하자 자매는 나중엔 너무 궁금해, 심지어 이런 말까지 했습니다.
“어느 정도예요? 저는 이미 마음을 정했으니 걱정하지 마시고 말해주세요.”
--- '사랑하는 아내를 얻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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