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나침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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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에서는 숭산스님의 걸어오신길.. 그동안의 에피소드.. 스님의 행동, 말등에 대한 제자와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
잠깐만 봐도 대단하고.. 보통의 관념적인 종교적인 접근방법과 다르게 열린 마음으로 불교를 전해주고, 어려운 환경에서 미국을 비롯해서 수많은 외국에 한국불교를 전달하는 숭산스님의 길을 조금이나마 볼수 있는 책이다.
나중에 2권도 함 봐야겠다...

출판사 리뷰

<도서 정보>제   목 : 삶의 나침반 1 : 숭산 큰스님의 웃음과 삶과 가르침
저   자 : 허문명
출판사 : 열림원
출판일 : 2006년 4월
책정보 : ISBN : 8970634967 | 페이지 : 209 | 347g
구매처 : 오디오북
구매일 :
일   독 : 2006/9/15
재   독 :
정   리 :

<이것만은 꼭>



<책 읽은 계기>



<미디어 리뷰>
저자 : 허문명
현각 스님의 출가 수행기인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를 엮고, 숭산 큰스님의 영어 법문집 《선의 나침반》과 틱낫한 스님의 《죽음도 없이 두려움도 없이》, 《두려움의 평정》을 우리말로 옮겼다. 현재 동아일보 문화부 차장으로 재직 중이다.

숭산 큰스님은, 국내에 방송매체와 단행본 등으로 널리 알려진 현각 스님, 캘리포니아 사막에서 한국식 절을 짓고 있는 무량 스님, 계룡산의 국제선원 무상사 조실 대봉 스님 등 전 세계 5만 6천여 명의 외국인 불제자들의 스승이다. 현재 관음선종이라는 이름 아래 세계 30여 개국에 130여 개의 선방이 있으며 1백여 명의 외국인 수행자들이 한국 불교에 귀의하여 스님이 되었다.

‘오직 모를 뿐’이라는 지침을 바탕으로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생각의 전복과 마음의 혁명을 일으킨 숭산 큰스님은 폭넓고 유연한 가르침과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논리로써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방황하던 젊은이들에게 스님은 동양과 서양, 불교와 기독교를 넘어 삶의 방향을 이끌어준 어른이자 친구였다.

식민지 시절의 독립운동, 혈혈단신 고향을 떠나 출가한 일, 한국 종단의 주류 자리를 버리고 마흔여섯의 나이에 머나먼 이국땅에 와서 밑바닥 생활을 감수한 스님의 삶은 그 자체로 선이고 감동적인 가르침이었다. 과로와 피로를 벗 삼아 종횡무진 세상을 누비다 2004년 78세의 나이로 입적한 마지막 순간까지,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주고 목마른 사람에게 물을 준 자비의 경지야말로 스님이 보여준 깨달음의 궁극이었다.

화계사 주지 성광 스님 추천사로 시작되는 이 책은 1권은 숭산 큰스님이 1972년 미국으로 떠나 그곳에서 한국 불교를 포교하기 시작할 당시에서부터 폴란드, 소련 등 공산주의 국가를 포함한 전 세계를 누비며 불법을 전한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다.

2권은 숭산 큰스님의 어린 시절, 독립운동과 한국전쟁, 출가, 고봉선사에게 법을 전해받고 제78대 조사가 된 이야기, 한국 불교 종단의 핵심적인 위치에서 정화운동을 이끌어가고 종비생 제도, 군승 제도 등의 실시에 애써온 역사, 일본군 유골 송환 사건으로 일본에 한국 불교를 포교하게 된 계기, 그리고 마지막 다비식을 내용으로 담고 있다. 큰스님의 법문, 숭산 큰스님을 추모하는 제자들의 글, 연보, 국제선원 목록 등도 2권에 함께 수록되어 있다.

숭산 큰스님 연보
1927년(1세) 8월 1일 평안남도 순천군 순천읍 창리 233번지에서 출생. 어릴 적 이름은 덕인
1940년(14세) 순천공립학교 졸업. 평양시 평안공업고등학교 입학. 독립군을 돕다가 체포되어 감옥에서 4개월을 보냄. 독립운동에 투신하겠다는 결심으로 친구와 함께 만주 국경을 넘어갔으나 친구 형님의 훈계로 귀가.
1945년(19세) 평안공업고등학교 졸업. 대동공전에 입학. 8월 15일 해방.
1946년(20세) 삼팔선을 넘어감. 동국대학교 국문학과 입학.
1947년(21세) 마곡사에 들어감. 《금강경》을 보고 깨친 바가 있어 출가.
1948년(22세) 고봉선사에게서 행원이란 법명을 받고 수덕사에서 안거.
1949년(23세) 1월 25일 고봉선사로부터 전법 건당. 숭산이란 당호를 받고 제78대 조사가 됨.
1952년(26세) 12월에 육군 입대.
1957년(31세) 미타사 강사로 서울 생활을 시작함.
1958년(32세) 화계사 주지로 취임. 불교정화운동 추진. 대한불교 조계종 종의회를 구성하여 종회의원에 피선.
1960년(34세) 대한불교 신문사 초대 사장에 취임.
1961년(35세)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에 취임.
1962년(36세) 통합 종단 비상종회 초대 의장에 피선. 동국대학교 재단 상무이사에 피선.
1964년(38세) 승려들에게 대학 교육을 시켜주는 종비생 제도 실시.
1965년(39세) 일본군 유골을 발견하고 화계사 명부전에 옮겨 49재를 지냄.
1966년(40세) 일본에 홍법원 개설.
1969년(43세) 홍콩에 홍법원 개설.
1972년(46세) 미국으로 건너가 프로비던스 젠 센터 개설. 이후 케임브리지, 뉴헤이번 등 각지에 젠 센터 개설.
1978년(52세) 폴란드, 독일에 젠 센터 개설. 이후 영국, 스페인 등에도 젠 센터 개설.
1982년(56세) 유럽 여행 중에 교황 친견 시도. 세계평화종교지도자대회 개최.
1983년(57세) 브라질 상파울루 젠 센터 개설.
1985년(59세) 프랑스 파리 젠 센터 개설. 세계평화문화인대회에서 세계평화상 수상. 중국 방문.
1986년(60세)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문화적·정신적 지도자들의 역사적 회합’에 참가함.
1987년(61세) 수덕사에서 제1차 세계일화대회 개최(이후 3년마다 개최하여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음).
1989년(63세) 호주 시드니의 불교학술센터 초청으로 특별법회에서 강연.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포교 활동.
1990년(64세)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생존을 위한 환경과 개발에 관한 국제 토론회’ 종교분과위원으로 초청 강연. 대만에서 포교 활동. 서울 화계사에서 국제선원 신축을 위한 불사 시작.
1992년(66세) 홍콩 국제선원 개설. 화계사 국제선원 완공, 개설.
1993년(67세) 싱가포르 젠 센터 개설.
1994년(68세) 베트남 방문.
1995년(69세) 스리랑카, 미얀마 성지 순례 및 포교 활동.
1996년(70세) 만해포교상 수상. 대한불교 조계종으로부터 해외 포교 30주년 감사패를 받음.
1997년(71세) 대한불교 조계종 원로의원으로 추대(2007년까지 10년간).
1999년(73세) 화계사 조실로 추대.
2000년(74세) 계룡산에 국제선원 무상사 개원.
2001년(75세) 대한불교 조계종 법계스님으로 추대(2003년까지 2년간).
2004년(78세) 11월 30일 화계사에서 입적.

<줄거리>



<책속으로>
성광 스님 추천사―열정과 자유, 그리고 커다란 사랑

1. 헬로, 숭산─숭산이 서쪽으로 간 까닭은
프로비던스의 고요한 뜰
태평양을 건너 미지의 대륙으로
불교는 필요한 곳에 있어야 한다
할렘 거리의 세탁기 수리공
이곳에 무엇 하러 왔느냐―제이콥과의 만남
영어를 배우는 ‘쑹싼’ 큰스님
웃음과 행동을 통한 가르침
백팔배를 올리는 뉴요커들
생각의 단절, 새로운 논리의 시작
함께하는 수행
관음선종의 본산이 문을 열다
편지 잘 받았다, 잘 지내니?
‘오직 모를 뿐’은 스님이 만들었나요?
큰스님의 사랑
이분이 선사가 맞는가
관음선종
스님이 된다는 것은
간화선의 전통
공안 인터뷰―사고의 전복
왓 엠 아이, 삶의 근원에 대한 질문
자유란 말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자유니라
너에게 30방망이를 내리겠다
여자도 깨달을 수 있나요
세계로 세계로
5분 후에 선상식당에서 예불을 드립시다
불법으로 하나되는 마음
얼어붙은 땅에도 평화와 자비를
세계는 한 송이 꽃―종교 간 화합
지구의 환경과 평화를 위하여
지구촌을 돌고 돌아 3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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