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라디오 엄길청 성공컨설팅-멈추지 않는 도전,성형외과 전문의 정동학의 희망프로젝트

 
잘 풀리지 않는 일이있다면 그것은 다른이유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노력이 부족하지 않았었나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1000:1의 경쟁이 있었다면 999명은 불평하나 불평하지 않는 1명이 있습니다.
저는 공고를 졸업후 8년 1개월간 포항제철에 근무후 회사를 다니면서 공부하여 의대에 입학하였습니다.
이세상에서 노력해서 되지않는 일은 없습니다.
만약 안되었다면 그것은 노력이 부족해서입니다.


뭐라고 설명할수 없을 정도로 감동이 밀려오는 방송이였다.
가난한 형편에 공고에 들어가서 포항제철에 들어갔지만 학력의 벽때문에 자격증과 전문대등을 다녀봤지만 현실에 벽때문에 대학진학을 결심하고, 대학시험을 준비.. 삼수끝에 연세데 의과대학에 들어간다. 동기들과 10년정도 차이가 남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분야에서 블루오션을 개척해서 최고의 수준에 이른다. 그리고 의사들을 위한 포탈사이트를 만든후에 의사도 그만두고 매진하다가 다시 의료계에 들어가서 자신이 가진 기술을 널리 펼치는 정동학박사의 희망 프로젝트...
어찌보면 다른 사람들의 성공스토리와 내용이 다를바없을지도 모르겠지만.. 남들보다 10년이나 늦게 출발한 그가 지금에 이르기까지 노력한 내용들을 보면 눈물겨울정도이다.
남들보다 30분 덜자고 노력하는것이 노력하는것이 아니라, 30분만 자고 노력하는것이 노력하는것이라는 그의 말...
정말 밤낮을 지세우며 노력을 해도 모자를판인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또 나의 멘토로 삼을 분이 한분 나타나신듯.. 그에 대해서 연구하고, 본받도록 하자

얼마전부터 아시아권의 대중 문화의 한류 열풍이 한창이다 . 그리고 또 하나의 한류 열풍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미용 성형술이다 . 우리나라의 성형 기술이 일본을 누르고 아시아의 최고가 되기까지, 코 미용 성형만을 위해 살아온 정동학 원장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  
   
지난 1월 , 우리나라의 성형 기술을 배우기 위해 대만의 성형외과 의사들이 단체로 우리나라를 찾았다.
한번에 2천달러씩 이나 하는 3박4일간의 연수 프로그램 인데도 앞다투어 배우러 오는 이유는 그만큼 우리 성형 기술이 발전되었음을 알려준다. 우리나라 코 미용 성형의 기술을 아시아에 알리는바로 그 주인공 정동학원장.

그를 만나기 위해 그의 병원을 찾았을 때 , 그는 막 수술을 마치고 나 오는중이었다. 손가락으로 대강 쓱쓱 빗어 넘긴 듯 한머리, 마치 고된 작업 현장에 다녀온 듯 걷어올린 소매 하지만 최고의 자리 에서도 혼신의 힘을 다해 수술에 임한 그의 그런 그대로의 모습에서 우리나라 코 성형계의 최고다운 모습이 비춰졌다. 지난 10년간 오로지 코 성형 한 분야만 몰두하여 3천명 이상의 환자를 시술하였고 지금도 항상 코성형 한 가지만 연구한단다.
“ 저는 공고를 다녔고 입학 또한 미술 특기생으로 하였습니다 ” 미술 특기생으로 공고를 다닌 그는 졸업 후 포항 제철에서 만8년간 근무하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하였다. 그리고 이비인후과 전문의가 되었다.
하지만 그가 선택한 길은 바로 전문적인 코성형 이었던 것이다. 연세대 석사 취득 후 인하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기까지 말이다.

“제가 의대에 입학하기 위해 정말 죽어라고 공부했죠. 지금 생각해 봐도 스스로가 '열심히 했다' 라고 생각하니까요.
그리고 그 후부터 지금까지는코성형 연구만 또 열심히 하죠” 다른 의사들과는 조금은 다른 이력을 가진 정 원장 하지만 그 모든 여러 일들이 지금의 정 원장을 만드는데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기억 들이란다.
미술에 소질이 있었고 또 미술 공부를 했기에 지금까지도 그가 미용 성형을 하는데 있어 큰 도웅이 된다. 의대에 입학한 뒤 이 비인후과 전문의가 된 것도 오히려 그가 코성형을 하는데에 중요한 발판이 되었다. 이비인후과 전문의로서 코의 성형 기술뿐 아니라 전반적인 코의 구조나 기능에 대한 깊은 지식을 가졌기에 지금의 위치 까지 올 수 있지 않았나 생 각한다는 정원장.
 
 
"제가 워낙 고집 이 세야지요.저는 제가 좋아하는 한 가지 밖에 하지 않습니다. 성형외과도 여러 부위를 많이 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저는 코 단 한가지만 하고 싶었습니다. 대신 코성형에 관한 한 모든 논문은 전부 읽었을 만큼 정말 공부 열심히 했습니다."

그는 정말 한 가지 밖에 하지 않는다. 아니 할 줄 모른다. 대신 그 한 가지는 끝까지 하는 진정한 장인이다.

정동학 원장이 자랑스레 보여준 자신의 홈페이지. 병원 홈페이지와 정원장 개인의 홈페이지였다. 두 곳 모두 매일 꼼꼼히 게시판에 글을 읽어보고 또 답변도 단다. 하루 종일 바쁜 스케줄 속에 귀찮을 법도 하지만 그는 이 일이 즐겁다고 한다.
"우리나라 분들의 미용 성형에 대한 관심은 정말 높아요. 특히 코성형 이요. 코는 그 사람의 인상을 크게 좌지우지 할 수 있거든요. 최근에는 여성분들만이 아니라 남성분들까지도 많이 관심을 가지고 또 시술을 받곤 합니다." 하지만 그도 요즘 무분별하게 젖어들고 있는 ‘외모 지상주의’ 현상에 대하여는 일침을 가하였다. 만약 진정 자신의 콤플렉스여서 수술 후 자신감을 되찾고 사회 생활에 활력이 될 수 있다면
성형술을 권장 하지만 단지 조금더 예뻐 보이고 싶은 마음에서 성형을 원하는 사람들은 큰 문제라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병원을 찾는 환자들은 거의 대부분 다른 곳에서 코 성형 수술 후 부작용으로 많이 찾는단다. 그리고 말끝에 꺼내 보여준 유리병 속에는 수백개가 넘는 각기 다른 실리콘들이 가득했다.

"이것들이 전부 제가 부작용에 의한 재수술시 환자분들에게서 꺼낸 실리콘입니다. 하나하나 모두 사연이 있는 것들이기에 하나도 버리지 않고 이렇게 모아둡니다." 또한 정원장은 그의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라온 사연과 사진들을 보고 한 달에 3명 정도씩 무료로 수술을 해주고 있다.

"정말 험한 경우의 환자들에게 수술을 해드립니다 수술이 꼭 필요 한 분들이죠. 절대 내세울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의사이니까요 . 그분틀에게는 제가 꼭 필요합니다."

그는 이미 2OO2 년부터 매달 10명씩을 대상으로 국내 미용성형 전문의들을 대상으로 연수 프로그램을 운영 해왔다. 그리고 기회가 되는 데로 해외 연수 프로그램에도 많이 참여했다. "여러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수술 시연을 하는 등 기회가 있는데로 많이 참여했어요. 그러니 자연히 많은 분들을 알게 되고 또 중국이나 대만등 해외 미용성형 전문의들이 여러 차례 학술교류과정에서 자신들을 위한 연수 프로그램을 개설해 줄 것을 요정해왔었죠" 그래서 올해부터 해외로 눈을 돌려 연수프로그램 운영에 나선 것이란다.
이 프로그램 또한 대다수 의사들이 매우 만족해하며 돌아갔고 올해 정원장은 4차례의 연수 코스를 계획하고 있다. 이미 4월 개최 되는 2회 프로그램은 사전 등록이 마감되었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많은 참가자듬은 미국이나 유럽계 국가들의 연수 프로그램에 참가하면 서양인의 얼굴의 구조적 차이로 인해 수술 기술이 달라 어려움이 있었지만 한국은 같은 동양인이기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예전의 아시아의 미용수술은 일본이 앞선 나라로 인식되였지만 정원장을 통하여 일본이 아닌 한국임을 보여주는 자랑스런 일이다.

'늦깍이 의학도'에서 지금의 위치까지 험난한 길을 잠 열심히 달려 온 정동학 원장.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그 때마다 지금의 그가 있기까지 힘을 주고 지켜봐준 그의 아내와 이제 막 다섯 살이 된 예쁜 딸이 있어 너무 행복하고 감사하단다. 그 흔한 골프조차 칠 줄 모를 정도로 바쁜 그는 이제 또 하나의 꿈을 꾼다. "이 곳 건물 전제를 커다란 미용 성형 센터로 자리잠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나아가 동양인의 코성형에서 최고가 될 수 있게 그리고 우리나라 의료 산업이 긍정적인 면에서
우뚝 일어설 수 있게 계속 매진할 것입니다."
 
 
 
         
 
     
리던 근로자였다. 그는 경기 양주의 한 시
골에서 장사하는 부모 밑에 평범하게 자랐다. "기 술입국( 技術立國 )"을 부르짖던 박정희 대통령 시대, 가난하고 똑똑한 젊은이들이
공업고교에 들어가면 특례보충역을 받을 수 있는 제도가 그 무렵에 나왔다. 서울 성동공고 금속 과에 특례보충역 2기로 입학했다.
공고를 졸업 한 정 원장은 포항제철에 입사를 하게 되었다.
처음 입사한 곳에서 핏물
  이 끓어오르는 용광로앞에서 중무장을 한 채 열심히 일을했다. 어떤 일을하든지 파고드는 성격 탓에 직장에서 인정도 받았지만 학력의 벽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직장을 다니면서 당시 2년제인 포항전문대(지금의 포항대학)를 졸업하고 자격증을 8개나 취득했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학력에 대한 높은 벽이었다. 기능공으로서 올라갈 수 있는 최대의 자리가 주임 반장이지만 정규대학을 졸업한 사람은 기관직으로 계장,과장으로 승진을 할 수 있었던 것 이다.

"전문대를 졸업해도 저에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신분상승의 기회가 원천적으로 막혀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차라리 다시 대학을 들어 가자고 마음을 먹고 다시 공부를 하게 된 것입니다"

직장을 다니면서 짬을 내어 공부를 해야만 했던 정 원장은 하루에 거의 2~3 시간 자고 3년 동안 공부를 했다. 2번의 낙방과 3번째의 합격으로 그는 스물 일곱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로 연세대학교 의대에 입학하게 되었다. 일과 공부를 겸해야 했기 때문에 3년 동안 제대로 잠도 못자고 특히 교대 근무를 해야하는 때에는 더 힘들었다며 당시의 정 원장은 회상했
 
         
         
   
 
 
 
 
2004년 5월 16일   
 
 
의술은 한국도 세계적 수준
외국인 환자 유치는 구멍가게
 
  러시아의 대부호 V씨. 1998년 서울 아산병원에서 심장 이식을 받았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러시아에서 입소문을 타자 매년 20여명의 러시아 환자가 이병원을 찾고 있다.
또 일본에선 최근 연세의료원 등 한국 병원에 설치된 양전자단층촬영장치(PET)로 진료를 받는 패키지 여행상품이 인기다. 교통.숙박비 포함, 35만엔의 고가인데도 고객들이 늘고 있다. 우리나라 의료 기술은 어느정도인가. 수치화하기는 어렵지만 이미 국제수준에 뒤지지 않는 분야가 많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이종철 원장은 "기초의학은 좀 뒤지지만 진료기술은 상당한 기술력이 있다"고 평가한다. 일부 분야는 선진국을 능가하는 수준이라고 한다. 일본 후생노동성
  하부 에이지 기획관도 "한국의 의료산업은 상당한 잠재력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영의도 성모병원은 백혈병 환자 조혈모세포 이식부분에서 세계 최고를 자랑한다. 이 병원은 지난해 269건의 이식 수술을 했다. 미국의 존스 홉킨스병원.미시간대학병원(350건)이나 듀크대학병원.메이요클리닉(200건)보다 많다.
세계적인 수준으로 인정받는 성형수술기술은 상품화하기도 한다. 서울 서초동 심미안 성형외과는 지난 1월부터 대만.일본.중국 등지의 성형외과 의사 50여명에게 1~4일 코스로 코성형수술을 가르쳤다.
하지만 병원들은 내놓고 외국인 환자를 유치할 수 없다. 현행 의료법이 환자 유치나 알선, 진료비 할인 등을 엄격히 금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의 우수한 성형기술을 해외에 전파해 주목을 받고 있는 개원의가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외국인 의사들을 대상으로 코성형 연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심미안 코성형 클리닉 정동학 원장이다. 그는 세계 47개국 2천여명의 성형 전문의 들이 모인 학회에서 코성형 부문에 초청될 정도로 세계적인 권위자다.
이달 7일부터 4일간 대만 성형외과 의사 15명은 1인당 2천불씩의 수강료를 지불하고, 정동학 원장에게 코 성형에 대한 집중 교육을 받았다.
정 원장이 외국 의사를 대상으로 연수 프로그램을 개발하게 된 것은 작년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국제미용외과학술대회에서 논문을 발표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됐다. 그 후 2OO2년에 심미안 클리닉을 개원하고 한국에서 직접 수술 기법을 전수 받길 원하는 외국 의사들의 끈질긴 요청으로 연수 프로그램을 개발하게 됐다고 한다. 이러한 배경에는 그가 이비인후과 전공으로 코성형 경력 11년째의 베테랑 의사인 점도 있다.
정 원장은 연수 프로그램을 통해 국내에서 이미 180 여명 정도의 국내 의사들을 배출했기 때문에
 

외국인 대상 프로그램을 개발하는데 무리가 없었다고 한다.
정 원장은 "올해 외국 국제학술대회 5곳에 초청을 받은 상태이며 네 차례 연수과정 계획이 있으나 2기까지는
이미 마감된 상태여서 더 늘려야 할 것 같다"고 치열한 경쟁 분위기를 전하며 뿌듯해했다.

연수를 신청한 의사들은 대만, 중국, 홍콩, 일본, 필리핀 등 아시아권 출신들이 많다.
이달에 개최된 연수에서는 병원의 우수한 교육시설에서 수술실, 시청각 강의실을 통한 현장 교육을 중점으로 이뤄졌다. 코성형 교육에 참여한 15명의 수련의들은 각 수술을 직접 assist, 코성형에 대한 처치법, 드레싱, 환자 면담법, 비디오 강의등 실질적 프로그램 등을 배웠다. 수술 환자별로 코의 특징 및 사용해야 할 재료, 코끝 수술법 등 다양한 실례를 틀어 심도있는 교육이 진행됐다. 연수생 대부분이 개원의, 교수, 봉직의사 등 성형외과 전문의 들이라 이해가 빠르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성형수술은 몇 년전만 해도 일본이 앞서 있었으나 최근 우리나라에서 성형에 대해 적극적 으로 기술을 개발하다보니 결과의 차이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대만의 환자, 의사들은 동양에서는 한국의 성형 수술이 가장 우수하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정 원장은 이 한마디 말로 우리나라 성형술의 우수성을 전했다. 물론 우리나라 의사들의 적극적인 성향과 한류 열풍으로 인한 인식도 우리나라 성형술이 발전 하는데 영향을 끼쳤다고. 또한 클리닉 영문홈페이지를 개설한 이후 대만 '홍콩, 중국등지에서 한국 성형수술의 우수성을 알고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


 
     
   
       
     
 
 
 
 
"한국성형술 넘버원"
연수 참가한 대만 의사들

 
     
 

지난 9 일 서울 서초동의 한 성형외과. 열명의 '외국 수련생' 들이 강의를 들으며 코 삽입용 실리콘을 깎는 기술을 익히느라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곧이어 성형 수술 참관 시간. 다섯명은 수술실에서 수술과정을 지켜봤고, 나머지는 강의실에서 원격 중계되는 수술 장면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이들은 한국의 성형술을 배우기 위해 방한한 대만 성형외과 의사들.

"지금까지는 의료기술을 해외에 나가 배웠지만 이제는 외국 의사들이 한수 배우러 들어와요." 한국을 찾은 대만 의사들에게 성형술을 가르치는 '심미안클리닉' 정동학 (鄭東學.47) 원장은 뿌듯해했다.
그가 외국 의사를 대상으로 연수프로그램을 개발하게 된 것은 지난해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열린 국제미용외과학술대회가 계기가 됐다. 논문 발표 후 "한국에 가서 직접 수술기법을 익힐 수 없느냐"는 외국 의사들의 질문을 받았다. 그는 인하대병원 교수 출신으로 이비인후과 전문의면서도 코 성형수술만 고집해 이를 특화한 인물. 2002 년 개원하면서 국내 의사들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을 만들어 이미 1백 70명을 배 출했기 때문에 외국인 대상 프로그램을 개발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대만 의사들을 대상으로 한 첫 과정은 지난 7일부터 4일간 진행됐다. 연수생들의 출신도 개원의부터 교수.봉직의사(월급받는 의사)등 다양했다.
鄭원장은 "개인당 2천달러씩 연수비를 받았지만 경쟁이 치열했다"며 "당초에는 올해 네차례 정도 연수과정을 열려고 했으나 더 늘려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현재 연수프로그램은 이미 2회까지 등록이 끝난 상태.
한국의 성형술이 동남아에 알려진 데는 한국 의사들이 적극적으로 국제학회에 참석해 성형술을 선전한 데다 때마침 불어온 '한류 열풍' 이 큰 역할을 했다.
대만 의사들을 모집해 참가한 쉬(徐) 성형외과 쉬디엔 윙(53)원장은 "채림이나 송혜교 같은 한국 탤런트들이 TV로 소개된 뒤 대만에 성형붐이 일고 있다"고 말했다.
연수교육에 대한 이들의 만족도는 매우 높은 편이다. 차이나의대병원 성형외과 샤오룽 첸(47)교수는 "수술기법이 다양하고 체계화돼 한국의 성형수술 수준이 일본보다 높다"며 "현재 대만에서 단순하게 코를 높이는 수술비용은 1백20만원 정도지만, 연수교육을 받은 뒤 난이도 높은 코수술을 하면 2백50만 ~ 3백만원도 받을수 있을 것" 이라고 말했다.
鄭원장은 "의료시장 개방을 앞두고 우리의 강점인 손기술을 이용한 성형분야를 국제 상품으로 키워야 할 것" 이라고 강조했다.

 
 
     

 
" 한국 성형기술 배우러 왔어요"

대만의사들 자비들여 개인병원 방문

 
 
 


이 클리닉은 올해 해외 의사들을 대상으로 4차례의 교육을 기획하고 있다. 신청의사들은 모두 중국 일본 필리핀 등 아시아권 국가 의사가 대부분인데 4월 개최 예정인 2차교육도 이미 등록이 끝났다.
 
  대만 성형외과 의사들이 성형 기술을 배우기 위해 단체로 한구에 왔다. 10일 서울 심미안 코성형 클리닉(원장 정동학 이비인후과 전문의.앞 줄 가운데)에 따르면 대만의 성형외과 의사 10명이 지난 7일 클리닉을 방문해 개인당 2000달러의 수강료를 내고 3일간 코 성형에 대한 집중 교육을 받았다. 한국을 찾은 의사들은 대만의 '중국의대병원(China Medical University Hospital)' 교수 등 대부분이 성형외과 전문의다. 정동학 원장은 "국제학술대회에서 만난 대만 의사들이 단체로 교육을 요청해 와 프로그램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http://korea.nose.co.kr/hotnews/news/


         
 


 
 
  " 이미 대만에서도 의사들이 다녀갔고 다음달에는 필리핀 펠로우가 들어올 예정이다. 한마디로 정 원장은 '의료수출'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포항제철에 입사한 이후로 능력을 발휘할수 있는데 한계를 느낀 그는 3년 동안 회사를 다니며 하루에 두세 시간만 자고 공부를 해 연세대 원주의대를 입학하게 된다. 그렇게 힘들게 들어간 의대에서 그는 남들이 잘 하지 않는 코성형을 택한 것이 계기가 되어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다.
두세 시간 자고 의대를 들어간 저력이 어디가랴. 그는 이비인후과 내에서도 열심이었고 그 결과 펠로우를 하면서도 연수강좌를 가질 정도로 코성형에 있어서는 필적할 이가 없었다. 그랬던 그가 어느날 유명한 의료 포털 사이트인 '엠디하우스' 란 회사를 차린 것이다.
"한창 벤처 열풍이 불때 새로운 걸 해보자 싶어서 메디게이트를만들었죠. 하지만 1년 4개월간 매달려 일하고 나니
왠지 이건 내가 할 일이 아니다 싶어 전문 경영인에게 맡기고 다시 학교로 돌아갔습니다." 지금 그가 이사로 있는 메디게이트는 작년 140억 흑자를 창출해 낼 정도로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정 원장은 쉬지 않고 코성형에 매달렸는데 국내 대학병원 거의 모든곳에 가서 시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에게서 3박 4일간의 연수를 통해 코성형을 수료해 간 국내 의사들만 해도 170명이 넘는다.


동양인 코성형의 메카가 되고자

그가 대학에 있을 땐 1년씩 미리 예약이 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그런 그가 작년 6월 사직을 하고 개원을 하게 된 이유는 남달랐다. "동양인 코성형에 있어서 최고의 클리닉을 만들고 싶습니다. 개원을 한 건 더 크게 도약하기 위해서입니다.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그결 국내 뿐 아니라 전세계 많은 의사 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도전 정신으로 그가 해낸 일들을 보면 이 말도 과언이 아닌 듯 했다. 정 원장과 더붙어 우리나라가 코성형을 비롯한 다양한 의료기술의 메카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
 
  정동학 원장을 만나기 위해 심미안 성형외과를 찾았다.
대기실에 하도 많은 의사들이 있어 의아했는데 더욱 놀라운 것은 이들 모두가 중국어로 이야기하는 것 이었다.
정 원장에게 그 이유를 물으니 "코성형에 관해 배우기 위해 3박 4일간 중국에서 연수 온 의사들" 이라고 했다. '대만이나 중국 의사들을 만나면 일본보다 한국의 성형 기술이 더 낫다고 이야기 해요. 일본보다 우리가 더 적극적으로 수술을 해서 그런지...
어떤 중국 의사는 한국여자 70~80%가 성형 수술한 게 아니냐며 황당한 질문을 하기도 했지요. 하하 ~"
이미 대만에서도 의사들이 다녀갔고 다음달에는 필리핀 펠로우가 들어 올 예정이다. 한마디로 정 원장은 '의료수출'을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8회째 코성형 워크숍을 개최했는데 작년에는 전 세계에서 3OO~500명 정도가 다녀 갔어요.
올해는 아마 더 많이 올 것 같아요." 정 원장은 앞으로 불가리아와 상해를 비롯 세계미용성형외과학술대회가 열리는 필리핀에서 다양한 강연과 시술을 선보일 계획이다.
이렇게 그는 코성형에 대한 기술을 전 세계인들과 나누고 있었다.


코성형의 대가에서 엠디하우스를 만들기까지

정동학 원장이 이렇게 코성형의 대가가 되기까지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는 원래 공고를 나와 포항제철에 다니던 공원(工員)이었다. 시골에서 공부를 잘했던 그는 취업이 잘된다기에 그저 공고금속과에 입학하게 됐는데, 금속과가 그저 귀 금속을 만지는 것 인 줄 알았다고 한다.


   
       

工員서 의사변신 정동학 인하대교수


꿀벌이 될 것이냐, 게릴라가 될 것이냐. 이 시대 최고의 경영전략가로 꼽히는 미국의 게리 해멀은 21세기 비선형(非線型)적 혁명의 시대에 필요한 인간형이란 부지런하기만 한 꿀벌이 아니라 게릴라라고 일갈했다. 시키는대로 묵묵히 일만 하다 초개처럼 죽어가는 정규군은 20세기 진보의 시대에나 맞는 인간형. 지금은 독특한 상상력과 도전정신, 하극상의 마인드로 무장한 게릴라가 나서야 한다는 의미다.

우리나라 TV ‘통속극’에서 형편은 어렵고 야망은 뜨거운 남자 주인공들이 선택하는 것은 사장 딸과의 결혼이다. 그러나 현실에서야 때마침 등장하는 사장 딸이 어디 그리 흔한가. 오늘 ‘인물 포커스’의 주인공은 자기 힘으로 게릴라가 되는 길을 택한 이다.

인하대 이비인후과 교수이자 의료포털 벤처기업인 (주)엠디하우스의 CEO 정동학(鄭東學·44)씨는 20년전만 해도 쇳물을 다루던 공원이었다.

99년 10월 창립, 2000년 5월 사이트를 오픈한 엠디하우스(www. mdhouse.com)는 의사를 위한 의료정보 포털사이트를 표방한다. 의학 한의학 치의학 약학 간호학 등 100여명의 전문 의료인들이 각각의 최신 정보를 업데이트하고, 40여개 학회의 학술논문을 데이터베이스화했으며 일류의사들의 수술현장을 다큐멘터리처럼 볼 수 있는 동영상 자료도 갖추고 있다. 자본금 20억원에 회원수가 1만7544명. 우리나라 의사 5만여명중 30% 가량이 모인 이 곳에선 지금 의료재정 파탄에 관한 열띤 토론이 벌어지고 있다.

“제가 새로운 일을 하는 것을 좋아하거든요. 꼭 무엇을 해내겠다는 성취욕이 있다기 보다는 새로운 일을 찾고, 밤잠 안자며 애를 쓰고, 그래서 하나하나 이루어가는 과정을 즐깁니다. 그러다보니 가만히 안주하지를 못하는 편이지요.”

그는 경기 양주 근처 회암리라는 시골에서 장사하는 부모밑에 평범하게 자랐다. ‘기술입국(技術立國)’을 부르짖던 박정희대통령 시대, 가난하고 똑똑한 젊은이들이 공업고교에 들어가면 특례보충역을 받을 수 있는 제도가 그 무렵에 나왔다. 서울 성동공고 금속과에 특례보충역 2기로 입학했다. 금속과에선 금이나 은을 만지는 것으로 알만큼 순진했었다.

▼학력의 벽 극복하기 힘들어▼

졸업 후 포항제철에 입사해 섭씨 1500도로 뜨겁게 끓어오르는 용광로 앞에서 알루미늄 방열복에 무거운 투구를 쓴 채 쇳물과 씨름했다. 힘들었지만 어느 직업이나 다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쇳물만 딱 보면 오차 5도 안팎으로 온도를 알 수 있고, 고로 돌아가는 소리만 들어도 이상여부를 알아낼 수 있었다. 한밤중에 기계설비에 문제가 생기면 회사에선 숙소에 차를 보내 그를 불러올 정도로 인정도 받았다.

“열심히 일하면 그만큼 대우받으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차츰 나이를 먹으면서 어떤 벽을 느끼게 되었어요. 아무리 노력해도 그 한계를 깰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 난 뒤 희망이 없어진거지요.”

대학 갓 졸업한 신입사원에게 공장을 견학시키고 설비에 대해 설명을 해준 것이 엊그제인데, 이삼년만 지나면 그의 상관이 되어 “이것도 일이라고 한거냐”“머리를 바짝 잘라라”고 지시를 해대는 것이 견디기 힘들었다. 그 사이 포항전문대(지금의 포항대학)를 졸업하고, 제선기능사 제강기능사 등 자격증을 8개나 따도 월급이 3000원 정도 오를 뿐이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건 신분의 벽을 뚫을 수 없는 변방때리기에 불과했다”고 그는 표현했다.

스물네살 때부터 대학입시 공부를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하루이틀도 아니고 어떻게 3년을 그럴 수 있느냐”며 잘 믿지 않지만 스물일곱살에 연세대 의대에 입학하기까지 하루 두세시간씩 자면서 공부를 했다. 공부시작한지 2년째 되는 해, 4년을 사귀던 여자친구가 그의 곁을 떠났다. 지금 입시공부해서 어느 세월에 안정을 찾겠냐면서. (그는 쓰지 말아달라고 했지만, 2년 전 우연히 그 여인을 마주친 적이 있다. “그때 내가 기다렸다면 지금쯤 의사 사모님인데….” 하더라고 했다)

의사가 되려는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었느냐고 물었다. 슈바이처나 히포크라테스 얘기를 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는 솔직했다. “그때는 대부분의 수험생들이 예비고사 성적에 맞춰 대학을 정했습니다. 전문직이 좋겠다는 생각은 했었지요.”

대학 입학 신체검사를 앞두고 심장부정맥으로 병원에 입원을 했다. 무리한 탓이었다. 신체검사날 가퇴원을 했는데 의사가 가슴에 청진기를 대는 순간 심장이 ‘갑자기’ 정상적으로 뛰었다. 하늘이 도운 것 같았다.(입학 후 그는 크리스천이 되었다).

▼코성형 수술만 1200여건▼

그는 피나는 노력으로 꿀벌의 길에서 벗어났으나, 그렇다고 모든 사람에게 꿀벌이 되지말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꿀벌의 역할도 엄연히 필요한 것이 사람사는 사회이므로. 옛 직장에선 “우리와 함께 쇳물 다루던 동료가 대학가서 지금은 의사가 됐다”는 게 전설처럼 내려온다지만, 혼자만의 노력으로 학벌의 벽을 깨고 나온 그를 성공의 표상인 듯 세우는 것도 착잡한 노릇이다. 모두들 대학, 그것도 일류대학에 가려고 기를 쓰는 것도 이런 사회구조 때문이 아닌가. 정교수도 인정했다.

“그때 그 직장에서 내가 노력한 만큼 대우받을 수 있었다면 만족하고 지냈을 겁니다. 어찌보면 사회적으로 낭비지요. 학벌과 상관없이 한가지만 잘해도 인정받고 대우받을 수 있는 사회라면 정말 좋겠습니다.”

그는 포철에서의 8년1개월이 지금의 삶에 소중한 밑거름이 됐다고 믿는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닥쳐도 1500도로 끓는 용광로 앞을 생각하면 힘들 게 없다.

마음을 먹는 것이 어렵지, 일단 뜻을 정하고 나면 못해낼 것이 없다는 의지력도 직장생활이 준 선물이다.

게릴라정신을 지닌 그는 이비인후과 중에서도 코성형을 전문으로 하고 있다. 정교수가 코성형을 전문분야로 택할 때만 해도 이 분야는 성형외과 의사들의 독무대였다. 지금까지 그가 성형한 환자가 1200여명. 코성형 워크숍을 매년 열고 있고 20여편 논문도 냈다. 동양인에 알맞는 코 모델을 학문적으로 세우는 것이 목표다.

돈에는 별 관심이 없기 때문에 개업은 생각지 않고 있다. 어차피 돈은 바닷물과 같은 것. 먹으면 먹을수록 갈증이 생기는 바닷물처럼, 돈이란 것도 가질수록 끝모르는 욕심에 허덕이게 된다고 믿는다.

“더 큰 병에 걸렸으면 좋겠다고 할 정도로 코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새벽기도갔다가 트럭에 치어 코가 아예 없어진 아주머니를 고쳐준 적이 있습니다. 갈비뼈를 떼어내 뼈대를 세우고 이마살로 코를 ‘건축’해주었지요. 의사라는 직업은 그래서 좋습니다. 자기가 가진 것을 베풀면 또 고맙다는 소리 듣지 않습니까.”

▼희망을 일궈가는 과정이 행복▼

아내는 의대 동급생으로 산부인과 의사다. 정교수의 표현에 따르면 ‘중이 제 머리 못깎는다고’ 결혼 7년만에 어렵게 아기를 가져 15개월된 딸을 두고 있다. 공원에서 의사, CEO가 된 지금 그는 행복한가. “과정을 즐긴다는 점에서는 지난 날이나 현재나 마찬가지예요. 누구의 행복이 더 크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희망을 가질 수 있는가 하는 점이죠. 희망이 없는 만족은…내 자식에게 주고싶지 않아요.”

▼정동학교수는…▼
▽1957년 서울출생
▽1975년 서울 성동공고 졸업
▽1976―84년 포항제철 근무
▽1979년 포항전문대 졸업
▽1984년 연세대 의대 입학
▽2000년 인하대 의학박사 취득
▽1996년―현재 인하대 교수
▽1999년 엠디하우스 창업
▽1998년 홍콩, 99년 필리핀, 2000년 일본 교토에서 열린 국제 학회에서 코 재건술 발표
▽대한안면외상성형연구회 총무이사, 대한 비과학회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