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참마속(泣斬馬謖), 삼국지에 나오는 제갈공명과 마속의 고사성어의 듯과 의미

 
EBS 삼국지를 보다가 공성계편에 나오는 읍참마속을 다시 한번 찾아봄...

<십팔사략(十八史略) >에 전하는 이야기로, 제갈량이 눈물을 머금고 사랑하는 부하 마속의 목을 베어 일벌백계(一罰百戒)함으로써 질서를 바로잡은 일을 이른다.
제 갈량이 평소 신임하던 마속(馬謖)을 장수로 임명하여 전장에 보내는데 마속이 제갈량의 지시를 어기고 제 생각대로 전투를 하다 참패를 했다. 마속은 능력이 뛰어나고 성실한 장수이자, 제갈량과 절친한 벗인 마량(馬良)의 동생이었다. 그러나 제갈량은 눈물을 머금고 마속의 목을 베었다. 이에 다른 장수가 제갈량에게 "앞으로 천하를 평정하여야 하는데, 마속 같은 유능한 인재를 없앤 것은 참으로 아까운 일입니다."하고 말하자 제갈량이 눈물을 흘리며 "손무가 싸워 항상 이길 수 있었던 것은 군율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처럼 어지러운 때에 군율을 무시하면 어떻게 적을 이길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출처 - 다음사전



마속(馬謖, 190년 ~ 228년)의 자는 유상(幼常)이며, 양양(襄陽) 의성 출신으로 마량(馬良)의 막내동생이다.

생애
관직은 참군(參軍)이었으며 사마의(司馬懿)를 거짓소문으로 한때 물러나게 한 적도 있어 제갈량(諸葛亮)의 총애를 받는다.
228년, 가정(街亭)의 큰 싸움에서 군량의 중요한 보급로인 산을 맡아 보는 중책을 짊어지게 되는데, 마속은 소홀하여 산을 빼앗기고, 촉군은 후퇴할 수밖에 없게 된다. 제갈공명은 패전 지휘자 마속에 그 책임을 물어 결국 목을 치게 된다.
제갈량이 눈물을 머금고 그를 참하는 모습에서 읍참마속(泣斬馬謖)이란 말이 나왔다. 제갈량휘루참마속(諸葛亮揮淚斬馬謖)이라고도 한다.
참고로 사람들은 가정 전투에 산을 맡아보는 중책에 대해 경험이 많은 오의(吳懿), 위연(魏延)이 추천되기도 했지만 묵살되고 마속이 이를 담당했다고도 한다.

삼국지연의》에서의 마속
《삼국지연의》에서의 마속은 223년, 마량이 제갈량의 남정(南征) 직전에 죽자 상복을 입고 제갈량을 찾아가 참군이 되어 남정에 공을 세운다.
그 후, 228년에 제갈량의 북벌에 참전하여 스스로 가정(街亭)을 원하였고, 왕평(王平)과 함께 가정을 지키나 마속은 스스로 판단하여 산 꼭대기에 오를려했다. 이에 왕평이 그를 막지만 이를 뿌리치고 산 꼭대기에 진영을 세워 위나라의 장수 장합(張郃)에게 격파되었다.
결국 마속은 부장 10명과 함께 아군의 도움으로 구출 되었고, 제갈량은 마속에게 책임을 물어 처형시킨다.



실제로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친한 형제와도 같은 마속을 처형하는 제갈공명이나,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담담히 받아들이는 마속을 보면서 참 독하고, 대단하다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제갈공명의 슬픔과 눈물이 참 인간적인 매력으로 다가오는듯...

우리나라의 정치에도 이런 원칙을 가지고 한다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든다.

오늘 성남시의회의 의원들이 난동을 부려 물의를 일으킨 민주당 이숙정 의원의 제명안결이 부결되었다고 한다. 비단 민주당뿐만이 아니라, 한나라당, 청와대 등 우리의 정치권을 보면, 재갈공명같은 결단을 내리는 지도자도 없고, 마속처럼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는 정치가도 없는듯 하다.

제 식구 감싸기에 바쁘고, 제재를 가하게 되면 토사구팽(兎死狗烹)을 이야기하며 어떻게 나에게 이럴수가 있냐고 방방뜨고, 또 복수의 이를 가는 모습을 보면 그저 안타까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