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원짜리 지폐의 모델이자, 성리학의 대표적인 학자인 퇴계 이황의 삶을 돌아본 내용의 방송
수많은 왕 밑에서 신하를 했지만, 항상 청량산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던 이황...
고등학교때 이기이원론, 경, 위기지학, 궁리, 사단칠정론 등의 단어를 딸딸 외웠지만, 도대체 왜 그짓을 하나 싶었는데, 나이를 먹고, 이런 방송을 보다보니 그 말들이 답안지의 빈란이 아니라, 성현의 말씀으로 다가온다.
이황에 대한 내용을 학자들과 나레이션으로 설명을 해주면서 꽤 다양하면서도 핵심적인 내용위주로 이야기
퇴계는 청량산을 오가산이라고 하며, 그곳에서 학문을 완성하고, 산수의 즐거움을 누리고 싶어했다는데, 말년에는 호를 창량산 주인이라고 짓기까지 했다고...
오래동안 관직에 있었지만, 선비는 출사를 하기보다는, 자신의 학문의 위한 수양을 기본으로 한 다음에 출사를 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다고,
근본적으로 성인을 추구하며, 자기 개인의 사사로운 욕심, 욕망 이런것을 지우는것이 중요하다고 하고, 부단히 실천을 하기 위해서 노력을 했다고 하는데, 과연 그래서 수많은 왕들이 그를 곁에 두려고 하지 않았나 싶다.
자기 수양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경(敬)으로 항상 몸과 마음을 바로 닦고 경계하면서 자신에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했는데, 위기지학(爲己之學)으로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는 자세를 이야기했는데, 가만히 듣다보니 무슨 철학이나 어려운 학문이 아닌, 지금 세상의 자기개발이나 성공학의 내용으로도 충분한 내용이 아닐까 싶다.
죽는 순간까지 겸손함과 청렴함을 지닌 퇴계이황...
비단 서양의 자기계발 서적이나 고전만이 읽어야 할 필독서가 아닌, 한국인의 입장으로써 이런 분의 책도 쉽게 해석되고, 많이 전파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던 방송
이황은 경북 예안현(오늘날의 안동시 예안면)에서 이식의 7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태어난 지 7개월 만에 마흔 살의 나이로 사망하여, 이황은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야 했다. 이황은 열두 살 때부터 숙부인 송재 이우에게서 학문을 배웠다. 송재는 그때 관직에 있었는데, 바쁜 일과 중에도 퇴계를 가르쳤다.
방송일: 20110102
학자의 고향 홈페이지 - http://www.kbs.co.kr/1tv/sisa/hakja
현대인들에게 주는 교훈
현재 그가 살았던 고향에 터전을 잡은 사람들, 그리고 후손들은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들이 생각하는 학자로서의 그의 가치와 교훈은 무엇일까.그들의 입을 통해 학자의 생애와 사상의 가치를 들어보고, 현재 이것이 우리에게 어떻게 계승돼
오고 있는지 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