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간만에 들려봄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된 보물2호 보신각종
용산 국립박물관 주변 맛집
염거화상탑, 봉림사 진경대사 보월능공탑, 보리사 대경대사 현기탑비, 흥법사 진공대사 탑과 석관, 거돈사 원공국사 승묘탑, 현화사 석등...
염거화상 탑 - 강원 원주 흥법사 터 출토로 전함... 통일신라.. 국보 104호...
국보 104호를 이렇게 방치해도 되는건가??
봉림사 진경대사 보월능공탑... 경남 차원 봉림사 터... 통일신라.. 보물 352호
보리사 대경대사 현기탑비... 경기 양평 보리사 터.. 고려시대.. 보물 361호
흥법사 진공대사 탑과 석관.. 강원 원주 흥법사 터.. 고려시대 보물 365호
(興法寺 眞空大師塔 附 石棺)
Heungbeopsa Jingongdaesatap bu seokgwan
- 지정번호 : 보물 제365호
- 소 재 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1 (국립중앙박물관)
- 소 유 지 : 국유
- 지 정 일 : 1963년 1월 21일
- 높 이 : 2.9m
- 재 질 : 화강암
- 시 대 : 고려시대
통일신라시대 말기로부터 고려시대 초기까지 활약했던 고승 진공대사(眞空大師, 869~940)의 묘탑과 탑밑에서 발견된 돌로 만든 관(棺)이다. 이들은 본래 강원도 원주의 흥법사(興法寺)터에 있었으나 1931년 경복궁으로 옮겨왔고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 정원에 전시되어 있다. 진공대사는 중국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신라 신덕왕의 스승이 되었으며, 특히 고려 태조 왕건은 대사에게 극진한 존경을 표하여 대사가 입적(入寂)하였을 때 손수 진공대사의 비문(碑文)을 짓기도 하였다.
이 승탑은 팔각당형으로 널찍하고 네모난 사각형의 바닥돌(지대석, 地臺石) 위에 연화좌 모양의 기단부가 마련되어 있다. 기단부는 밑으로부터 밑받침(하대석, 下臺石), 중간받침(중대석, 中臺石), 윗받침(상대석, 上臺石) 순으로 짜여져 있다. 팔각의 밑받침 옆면에 꽃장식의 무늬곽(안상, 眼象)이 각 면 하나씩 배치되어 있다. 윗면에는 연꽃잎이 덮여 있는데 모서리에는 아담한 귀꽃이 부착되고 연꽃잎은 모두 방향이 약간 옆으로 틀어져 있다. 그 위로는 낮은 고임턱을 돋우어 중간받침돌을 받았는데 이 돌은 온통 구름과 용무늬로 채워지고 그 위의 윗받침은 연꽃 받침형으로 조성되었다.
탑신부는 받침이 없이 밑에 고임 턱만 돌출되어 있다. 몸체의 앞뒷면에는 문틀과 자물쇠가 표현되고 각 면 모서리에는 꽃장식 기둥이 새겨졌는데, 이러한 꽃장식 기둥은 고려시대에 들어 이 승탑에서 처음 등장하고 있다. 지붕 밑에는 층단 받침이 나 있고 서까래와 부연이 새겨져 있으며, 지붕 위에는 기왓골과 우동마루가 뚜렷이 표현되고 처마 끝에도 막새가 표현되었다. 처마는 위로 들려 지붕 밑이 훤히 보이며 지붕 위의 경사면도 강한 탄력의 곡면을 이루며 경사져 있다. 또 처마 끝은 곡선을 그리며 추녀에서 귀솟음을 하였으며 여기에 큼직한 귀꽃이 부착되었다. 지붕 위에는 원래 상륜부를 장식하는 부재들이 있었으나 거의 없어지고 지금은 아담한 보개 하나만 얹혀 있다.
이 승탑은 통일신라시대의 승탑에 비하여 기단부의 밑받침돌이 1단으로 줄어들고 중간받침의 구름과 용 장식은 고달사(高達寺)터의 승탑, 선림원지부도(禪林院址浮屠) 등 중부권 승탑의 조형기법을 계승하고 있다. 반면에 탑신부의 꽃장식 기둥과 지붕 밑의 층단 받침 등은 고려시대에 등장하는 새로운 기법이다. 또한 지붕의 기왓골과 서까래의 표현 등은 중부권 승탑에서는 보기 드문 표현방식으로, 남부지방의 통일신라시대 승탑에서 계승된 전통적 조형기법이 채택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승탑은 고려시대에 들어 과거의 다채로운 기단구성 방식이 단순화되는 한편 새로운 장식기법을 등장시키는 특징이 교차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전체적인 조형기법은 매우 충실하고 특히 지붕의 형태에서는 당당한 기운이 감돌아 삼한을 통일한 고려왕조의 새로운 기량을 엿볼 수 있다. 더구나 이 승탑의 주인공인 진공대사(眞空大師)가 입적하였을 때 태조 왕건이 직접 비문을 짓고 중국 당(唐)나라 태종(太宗) 임금의 글씨체를 모아 비문을 새기게 하는 는 등 대사에 대한 예우가 각별하였으므로, 이 승탑을 세울 때에도 남다른 심혈을 기울였을 것이다.
한편 탑의 왼쪽에 따로 놓여 있는 돌함은, 대사가 입적한 후 시신을 땅 속에 임시 매장하였다가 뼈만 남게 되었을 때 뼈를 수습하여 정식으로 매장하기 위한 석관(石棺)으로 추정되며, 우리나라에서 승탑과 석관이 동시에 발견된 예가 적어 매우 귀중한 문화재로 평가되고 있다. 뚜껑돌과 긴 상자 모양의 몸통으로 이루어진 이 석관은 거의 완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이 승탑과 석관이 제작된 시기는 《고려사》에 의하여 940년(고려 태조 23년)으로 추정되고 있다.
거돈사 원공국사 승묘탑... 강원 원주 거돈사 터... 고려시대 보물 190호...
현화사 석등.. 경기 개성 현화사 터... 고려시대
현화사지에는 7층석탑 · 현화사비 · 당간석주를 비롯하여 석교(石橋) · 석계(石階) · 초석(礎石) 등 지난날의 성황을 알리는 많은 석조 유물이 남아 있으며 이 석등도 이 사지(寺祉)에 있던 것을 일제 때 서울로 반출한 것이다.
평면 방형(方形)로서 일견(一見)하여 고려시대 석등의 특징을 볼 수 있으며 세부 수법에서도 당시의 특색이 여실하다. 하대석 측면에는 1면 3좌씩의 타원형에 가까운 안상(眼象)이 있고 상면에는 단엽 연화가 원좌(圓座)를 이루었다. 이 위의 간석(竿石)은 소위 고동형(鼓胴形)으로서 상하에 앙련(仰鍊8과 복련(覆鍊8이 있고 중간 마디는 구형(球形)에 가까운데 표면에는 화문(花紋)이 조각되었다. 상대석은 하대석과 같은 크기로 밑에 앙련을 조각하여 대칭을 이루었다. 화사석(火舍石)은 따로 만들지 않고 4개의 우주(隅柱)만을 세웠는데 상대석 위와 개석 밑에는 각각 주좌(柱座)와 받침이 연화(蓮花)로 조각되었고 각 우주는 간주(竿柱)를 약식화한 형식을 취하였다. 개석 밑에는 1단의 부연이 있고 낙수면의 경사는 급하다. 상륜에는 위에 복련이 조각된 얕은 노반(露盤), 앙련이 조각된 발형(鉢形)의 앙화(仰花), 구형의 보륜(寶輪), 귀꽃이 있는 육각 보개(寶蓋), 그리고 화염보주(火焰寶珠)가 차례로 얹혀 있다.
석재의 풍화가 심하나 아직은 완형(完形)을 유지하고 있으며 같은 시대의 타 예들에 비해 한층 높은 격조를 보이고 있다. 건립 연대는 현화사 창건과 동시인 1020년경으로 추정된다.
왜 절에 가있지 않고, 국립중앙박물과에 와있나 했는데, 절이 소실되고, 절터에서 발굴된 유물이라고...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된 보물2호 보신각종
용산 국립박물관 주변 맛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