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녕의 작품집으로 8편의 중단편소설을 모아놓은 책입니다.
전체적으로 쓸쓸하면서도 애뜻한 삶의 이면을 잘 그린듯한 느낌이 잘 전해지는 소설입니다.
표제작인 제비를 기르다에서는 겨울이면 집을 떠나 방황을 하다가 돌아오시는 어머니와 그로 인해 외로움을 겪는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아들이 흠모했던 한 여인과 그녀의 이름이 같았던 문희라는 여인에게서 어린날의 상처와 애환을 떠올리지만, 그녀 또한 어머니와 제비처럼 그를 떠나는데, 주인공이 어릴적 다리가 뿌러진 제비 한마리를 몰래 키우다가 강남으로 떠나가듯이 세상이고, 사랑이고, 사람이고 다 자신의 길을 가고 있다는 애절함이 느껴집니다.
이외에도 예술인의 만남과 이별을 그린 낙타주머니와 짝사랑하던 여자와 오래만에 회우를 해서 결혼에 이른후에 벌어지는 갈등을 그린 못구멍 등 참 괜찮은 소설로 꽉 들어있는듯 합니다.
가족이야기, 사랑이야기, 우정이야기 등 다양한 이야기속에 적어도 한두가지는 자신의 지난 과거와 추억과 일맥상통하는 부분들이 있을텐데, 자신의 과거를 제삼자의 관조적인 입장에서 바라보면서 읽어보고, 느껴보고, 다시금 생각해 보신다면 멋진 시간이 될 소설이 아닌가 싶습니다.
<도서 정보> 제 목 : 제비를 기르다 저 자 :
윤대녕 출판사 : 창비 출판일 : 2007년 1월 책정보 : 317쪽 | 492g
ISBN-10 893643697x ISBN-13 9788936436971 구매처 : Yes24 구매일 : 2010/1/22 일
독 : 2010/4/29
<미디어 리뷰>
제비를 기른다니. 떠나간 제비를 기다리고, 다시 돌아온 제비를 반기는 일도 '기른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러나 그 모습은 우리 인생과
너무나 닮아 있다. 쓸쓸한 그리움의 정조를 넘어 성숙한 삶의 지평에 다다른 윤대녕 소설의 깊이를 엿볼 수 있는 작품집.
작가의
농익은 시선이 묻어나는 이번 작품집에는 발표 당시부터 호평을 받은 단편들이 풍성하다. “윤대녕스러운 것에 이미 얼마간 중독이 되어 있는
이들에게도 중독자가 되길 잘했다는 은근한 기쁨과 자부심을 느끼게 해줄 것”(신경숙, 뒤표지글)이며, 이전에 발표했던 그 어떤 작품집에서보다
탁월한 성찰과 깊이를 느끼게 해준다.
저 : 윤대녕
YOON DEA NYUNG,尹大寧1962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나 대전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단국대
불문과에 문예장학생으로 입학했다. 대학을 졸업하던 198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원'이 당선되었고, 1990년
<문학사상>에서「어머니의 숲」으로 신인상을 받아 등단했다. 출판사와 기업체 홍보실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1994년 『은어낚시통신』을
발표하며 전업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이 책을 통해 존재의 시원에 대한 천착을 통해 우수와 허무가 짙게 깔린 독특한 문학적 성취를 이루며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그 후 9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떠오르며 '존재의 시원에 대한 그리움'을 그만의 독특한 문체로 그려나가고 있다.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1994), 이상문학상(1996), 현대문학상(1998), 이효석문학상(2003)을 수상했다.
여 섯 살 이전의 기억은
전혀 뇌리에 남아 있지 않다는 그의 최초의 기억은 조모의 등에 업혀 천연두 예방 주사를 맞기 위해 초등학교에 가던 날이다. 주사 바늘이 몸에
박히는 순간 제대로 소리 한번 지르지 못하고 정신을 잃고 말았다. 일곱 살 때 조부가 교장으로 있던 학교에 들어갔다. 입학도 안 하고 1학년
2학기에 학교 소사에게 끌려가 교실이라는 낯선 공간에 내던져진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할아버지에게 한자를 배웠다. 한자 공부가 끝나면 조부는
밤길에 막걸리 심부름이나 빈 대두병을 들려 석유를 받아 오게 했다. 오는 길이 무서워 주전가 꼭지에 입을 대고 찔끔찔끔 막걸리를 빨아먹거나
당근밭에 웅크리고 앉아 석유 냄새를 맡곤 했던 것이 서글프면서도 좋았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독서 취미가
다소 병적으로 변해, 학교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어 대기 시작한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들어가 우연히 '동맥'이라는 문학 동인회에
가입한다. 그때부터 치기와 겉멋이 무엇인지 알게 돼 선배들을 따라 술집을 전전하기도 하고 백일장이나 현상 문예에 투고하기도 했고 또 가끔 상을
받기도 했다. 고등학교 3년 동안 거의 한 달에 한 편씩 소설을 써대며 찬바람이 불면 벌써부터 신춘 문예 병이 들어 방안에 처박히기도 했다.
대학에 가서는 자취방에 처박혀 롤랑 바르트나 바슐라르, 프레이저, 융 같은 이들의 저작을 교과서 대신 읽었고 어찌다 학교에 가도
뭘 얻어들을 게 없나 싶어 국문과나 기웃거렸다. 1학년 때부터 매년 신춘 문예에 응모했지만 계속 낙선이어서 3학년을 마치고 화천에 있는
7사단으로 입대한다. 군에 있을 때에는 밖에서 우편으로 부쳐 온 시집들을 성경처럼 읽으며 제대할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그때 군복을 입고
100권쯤 읽은 시집들이 훗날 글쓰기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제대 후 1주일 만에 공주의 조그만 암자에 들어가 유예의 시간을
보내면서 자신을 투명하게 보려고 몸부림쳤다. 이듬해 봄이 왔을 때도 산에서 내려가는 일을 자꾸 뒤로 미루고 있었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의 뻔한
현실론에 떠밀려 다시 복학했고 한 순간 번뜩,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문학이라는 것을 아프게 깨닫는다.
데뷔 이래 줄곧
시적 감수성이 뚝뚝 묻어나는 글쓰기로 주목을 받은 윤대녕은 ‘시적인 문체’를 지녔다는 찬사를 받는다. 그의 글에서는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하는
그만의 시적 색채가 느껴지는 문체가 있어서이다. 동시에 그의 글에서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의 일상을 마치 스냅사진을 찍듯 자연스럽게
포착하여 그려내는 뛰어난 서사의 힘이 느껴진다.
윤대녕은 고전적 감각을 견지하면서 동시에 동시대적 삶과 문화에 대한 예리한 감각을
지니고 있다. 그의 작품들을 지향점을 잃어버린 시대에 삶과 사랑의 의미를 찾아 헤매는 젊은 세대의 일상에 시적 묘사와 신화적 상징을 투사함으로서
삶의 근원적 비의를 탐색한다. 내성적 문체, 진지한 시선, 시적 상상력과 회화적인 감수성, 치밀한 이미지 구성으로 우리 소설의 새로운 표정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작품으로『남쪽 계단을 보라』,『많은 별들이 한 곳으로 흘러갔다』를 비롯해 장편소설 『옛날 영화를
보러 갔다』,『추억의 아주 먼 곳』,『달의 지평선』,『코카콜라 애인』, 『사슴벌레 여자』, 『미란』 등을 발표했다. 산문집 『그녀에게 얘기해
주고 싶은 것들』, 『누가 걸어간다』, 『어머니의 수저』를 펴냈다.
장편은 직접 대중들과 부딪쳐야하기 때문에 작업이 자꾸 직업화되어간다는 느낌을 받는 반면 단편은 장편보다 더 많은 에너지가 드는 훨씬 더
높은 긴장을 요구하는 장르”라며 앞으로는 1년에 단편 3편정도 문예지에 발표하며 문학적 긴장의 날을 세워가겠다고
말했다.
<줄거리> 3년 만에 출간되는 윤대녕의 신작 소설집 『제비를 기르다』. 뛰어난 감성과 감각적인 서사를 특징으로 개인의
내면에 집중하던 이전의 작품세계를 넘어서, 성숙한 삶의 지평을 향한 작가의 농익은 시선이 묻어나는 8편의 중단편이 묶여 있다. 특히 표제작인
「제비를 기르다」를 비롯하여 발표 당시부터 호평을 받은 작품들이 풍성하여, 윤대녕 단편 미학의 절정을 보여주는 작품집으로 꼽힌다. “윤대녕스러운
것에 이미 얼마간 중독이 되어 있는 이들에게도 중독자가 되길 잘했다는 은근한 기쁨과 자부심을 느끼게 해줄 것”(신경숙, 뒤표지글)이며, 이전에
발표했던 그 어떤 작품집에서보다 탁월한 성찰과 깊이를 느끼게 해준다.
윤대녕 소설이 이룩한 황홀한 깊이
초기 윤대녕
소설을 설명해주던 ‘감각’과 ‘내면’의 세계는 “십년 넘은 세월이 강물처럼 흘러”오면서 남과 여, 개인과 개인의 단수적인 관계가 아니라 복수적인
관계의 망 속에서 타인에 대한 연민과 애틋한 시선으로 확장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태어나 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지고 병들고 죽음에 이르는
인간사에 대한 포용 혹은 긍정의 시선으로 충만하다. 이번 소설집에 실린 여러 작품에서 죽음을 앞둔 인물이 등장하지만(「탱자」 「제비를 기르다」
「편백나무숲 쪽으로」) 그들을 감싸고 있는 소설의 정조는, 슬픔은 슬픔이되 어둡지 않고 환하다.
표제작 「제비를 기르다」에서 강화도에서
자란 주인공의 어머니는 철마다 제비를 따라 집을 나가고, 아버지는 급기야 작부를 집에 들이기까지 한다. 아버지 손에 이끌려 갔던 술집에서
‘문희’라는 이름의 작부를 만난 적 있던 ‘나’는 군에서 제대하는 길에 동명이인의 ‘문희’를 만난다. 여자란 모두 제비 같은 존재라는 어머니의
말대로, 문희는 떠나고 돌아오기를 반복하며, ‘나’는 그 옛날 ‘문희’ 할머니를 찾아 강화도로 간다. 어린시절 이해할 수 없었던 어머니의 가출과
때마다 돌아오고 날아가는 철새인 제비를 연결짓고, 이 관계망은 다시 연인이던 문희에게로 이어진다. “‘영원의 나라’처럼 충일한 생의 비의를 한번
보아버린 인간들이 무의미한 일상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세계에서 어떤 기다림 속에 살아간다는 이야기는 윤대녕 소설의 오랜 구도이다.”(정홍수 해설
「강물처럼 흐르다」) 그러나 그러한 구도가 생에 대한 추상적인 부정이나 환멸이 아니라 고단하고 힘겨운 삶을 좀더 넓은 지평에서 끌어안는 긍정의
자리로 열려 있기에 슬프고 쓸쓸하지만 애틋하고 웅숭깊다. 「탱자」에서도 마찬가지다. 열여섯의 나이에 첫사랑 선생과 눈이 맞아 야반도주했던 고모는
끝내 선생에게 버림받고 친정집에서 부엌데기로 살았다. 다시 결혼을 했지만 일찍이 남편을 잃고 외아들과 함께 살았다. 그런 고모가 30년 만에,
친정식구들 중 유일하게 자신을 연민의 눈길로 바라보던 조차를 찾아 제주도에 온다. 고모는 첫사랑 선생과의 추억이 어린 배추밭에서 목놓아
통곡하고, 한산에서 따온 탱자 대신 제주도의 노지 귤 몇개를 품고 서울로 돌아간다. 마치 고사(故事)의 ‘귤화위지’를 몸소 실현하는 듯한 고모는
제주도로 들어온 길부터 삶을 ‘정화(淨化)’시키는 여행을 시작했던 것이다. 「편백나무숲 쪽으로」에서 “생의 회한과 허무를 이겨내기 위한” 고단한
노동 끝에 병들고 지친 몸으로 35년 만에 옛집으로 돌아온 화자의 아버지는 아예 ‘대정(大靜/大定, 큰 고요함)’에 들고 싶다며 다시
떠나버린다.
헤어짐과 죽음과 눈물 앞에서 윤대녕 소설만큼 쓸쓸하면서 따뜻하기도 힘들지만, 낯선 남자와 여자의 우연한 만남을 윤대녕만큼
“감쪽같이 소설 속에 안착”시킬 수 있는 작가도 드물다. 「못구멍」의 기훈과 명해, 「마루 밑 이야기」의 병희와 윤정, 「낙타 주머니」에서 1년
만에 조우하는 주인공과 화가 이진호의 만남이 그러하다. 느닷없고 억지스러울 정도로 우연한 만남과 상황이 윤대녕 소설이 보는 인간사이고 세상이다.
모든 우연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런 세상을 보는 시선을 전체 서사에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녹여내고, 더 나아가 또 다른 필연으로
확장시키는 재주가 탁월하다. 그래서 읽는 사람에게 거북살스럽게 느껴지기보다 필연적인 듯 전체 서사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연」에서 이야기의
발단은 소설 화자인 ‘나’가 북한산 하산길에 우연히 정연이라는 여자를 만나는 데에서 시작한다. 정연은 6년 전 봄날 그녀의 사촌언니 미선과
‘나’의 친구 해운과 함께 만났고, 해운을 마음에 품고 있던 여자였다. 그러나 한달 뒤 미선과 해운이 돌연 함께 자취를 감추고 정연은 그들의
행방을 좇아 ‘나’를 찾아온다. 그들의 소식을 모르던 ‘나’는 그로부터 두 달 뒤 북한산에서 내려오다 우연히 해운과 마주치고 근처 진관사 아래
해운과 미선이 살고 있는 집으로 가서 점심을 먹는다. 그리고 6년 후에 다시 정연을 우연히 만나 함께 돌아가는 길에 구파발역 쪽으로 나오다
기자촌과 구파발로 갈라지는 지점의 공사구간에 이르러 유턴을 하자, 바로 6년 전 우연히 만난 해운의 집에 가는 길이 나온다. 갈림길이라는
지리지와 세 남녀의 엇갈린 만남을 우연과 운명으로 엮어내는 솜씨가 감칠맛 나는 대목이다.
“윤 대녕 소설은 기어코 여기까지 왔다”
「낙타 주머니」처럼 너무 일찍 온 친구의 죽음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마음과 몸을 함께 앓는 이야기도 있지만, 이번 소설집에 나오는
죽음은 전반적으로 오히려 삶 쪽으로 열려 있으며 어떤 긍정의 순간을 품고 있다. 윤대녕 소설의 인물들은 죽음 앞에 이르러서 비로소 고단하고
회한에 찬 삶을 ‘정화’할 수 있는 순간과 만난다.
「작가의 말」에서 윤대녕은 “생의 한가운데를 어두운 숲처럼 더듬더듬 관통하면서 나는
‘그 모든 어찌할 수 없음’에 대한 억누를 수 없는 그리움을 자주 체험했다. 삶의 정체는 결국 그리움이었을까?”라고 묻는다. 강물처럼 흘러온
십년의 세월을 넘어 윤대녕 소설은 때로는 슬프게, 때로는 쓸쓸하게 그리움에 사무쳐 삶을 돌아보지만 결국에 다다른 깊이는 따뜻하고 아름답다 못해
황홀할 지경이다
<책속으로> 연鳶
제비를 기르다
탱자
편백나무숲 쪽으로
고래등
낙 타 주머니
못구멍
마루 밑 이야기
해설 정홍수
작가의 말
수록작품 발표 지면
그리고 삼년 만에 다시 소설집을 낸다. 각별히 고독을 챙기며 살았던 지난해에 여러 편의 중단편을 쓸 수
있었다. 자정에 작업실에서 퇴근할 때면 막사발에 냉수를 받아놓고 아침에 출근하면 그것을 마셨다. 하루하루 그 일을 되풀이하면서 내가 과연 삶의
한가운데로 가고 있나를 산짐승처럼 틈틈이 살폈다. 길을 잃으면 안되겠기에 보다 숨을 낮추고 되도록 말을 꺼렸다. 그렇게 생의 한가운데를 어두운
숲처럼 더듬더듬 관통하면서 나는 ‘그 모든 어찌할 수 없음’에 대한 억누를 수 없는 그리움을 자주 체험했다. 삶의 정체는 결국 그리움이었을까?
살면서 누구나 겪는 일이겠으나, 몇해 동안 여러 죽음의 소식을 접해야만 했다. 그중 한 죽음은 내게 너무도 뼈아픈 것이어서 그것을 덜컥
나의 것으로 받아들여 긴 세월 함께 몸부림쳤다. 그간의 사정을 여기 수록된 「낙타 주머니」에 쓰고 난 뒤, 불현듯 스스로 해방되었을 때, 나는
문학이 왜 내게 문학이어야만 하는 이유를 새삼 절실하게 깨달았다. 그 어찌할 수 없는 그리움들을 밖으로 떨쳐내기 위해서라도 나는 또한 쓰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2005년 제주도에서 돌아올 때 수중엔 고작 「고래등」과 「탱자」 두 편뿐이었다. 그리고 앞서도 밝혔듯 뒤늦게
「낙타 주머니」를 쓰면서 가까스로 글을 되찾았다. 이후 조금씩 담담해진 걸까? 작년여름 더위를 피해 찾아간 원주 토지문화관에서 「제비를
기르다」를 쓸 때는 차라리 행복한 느낌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새 작년의 일이 되어버렸지만 고독이 오히려 내게 온힘이 되어주었다. 다시 소설집을
내게 되었다는 사실이 소중한 위안으로 다가온다.
‘문학의 종언’을 둘러싼 논란이 문단에서 가열한 이때, 또 한권의 책을 보태는 일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독자들은 막상 사정을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삶이 계속되는 한 그리움은 계속되고 또한 누군가 조용히 숨어 글을
바라고 쓰는 일도 계속될 것이다. 선택은 어차피 독자들의 몫이다.
이 책을 내는 데 도움을 준 분들께 감사드린다. 오랫동안 변함없이
가까이에 있어준 이들에게도 다시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큰나무 같은 그들이 있기에 나는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