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조선인 안용복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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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독도때문에 시끄러워서 이런 소설을 읽어주는구나 했었는데, 실존 인물이고, 실제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어부인 안용복이 일반인의 신분으로 2번에 걸쳐 일본으로 넘어가서 일본 막부로부터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땅이며 침범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받았다고 합니다. 요즘 세상으로 따지면 시민단체라고 볼수도 있지만, 그 당시에는 엄청난 일이였을겁니다. 물론 실제로 안용복은 위대한 업적을 남기기는 했지만, 국법을 어기고, 개인의 신분으로 왜나라에 건너가서 정부관리인것처럼 행세를 한것때문에 귀향을 가게되고, 그 이후의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물론 소설의 형식을 빌려서 썼기때문에 조선이나 안용복이 상당히 미화됬을수도 있다고 생각이 들지만,
요즘같이 독도문제로 말이 많을때 기껏해야 게시판에 답글달고, 욕이나 하는 사람이나, 저처럼 가만히 있는 찌질이나
안용복에게서 많을것을 배워야 할것입니다.
잘못된것은 반드시 고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법을 어기면서 행한 행동은 문제가 있겠지만,
주위에 일어나는 부조리, 혹은 제 자신의 잘못등을 보고, 알고, 느끼면서도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저에게 세상을 이렇게 살라고 안용복씨가 알려주는 듯합니다.

역사이야기이지만 상당히 재미있게 쓰여졌고, 두명의 여자와의 관계에서도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도서 정보>
제 목 : 대조선인 안용복 1, 2
저 자 : 김래주
출판사 : 늘푸른소나무
출판일 : 2005년 02월
구매처 : 오디오북
구매일 :
일 독 : 2005/5/25
재 독 :
정 리 :


<미디어 리뷰>
바다와 섬을 놓고 한판대결을 벌이는 한일간의 ‘숨은 전쟁’ 막전막후. 애매한 분쟁이 거듭되어 온 ‘독도’ 문제를 명확하게 국서로 확인한 인물 안용복의 활약상이 드라마틱하게 전개되는 최초의 소설. 왕조중심, 양반중심 역사가 버려둔 평민의 공동체 정신, 큰 삶의 조명하여 전쟁영웅과 지배계층 역사로 점철된 조선사에서 보기 드물게 평민으로 민간외교를 펼친 인물의 놀라운 모험정신과 기백이 실감나게 드러난다. 또한 임진왜란 이후의 조선과 일본 사회, 국내외 정치적 역학관계, 양국 백성들의 고단한 삶이 각종 사료와 더불어 전개되는 가운데 지방의 시민운동가로 겪는 고민과 갈등이 깊이 있게 전개된다.

저자 : 김래주
1961년 경북 봉화생. 시사경제 및 문화 잡지 기자생활과 편집장을 지냈으며 소설가 겸 문화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소설집 『선택』『그 섬에 간 사람들』기업 다큐멘터리『삼성을 2류라고 말할 수 있는 삼성맨』,『3천리자전거에서 엔터프라이즈까지』 등을 출간했다.


300년 전, 단신으로 일본에 건너가 ‘ 독도는 한국의 땅 ’임을 분명하게 못 박은 안용복의 스릴 넘치는 활약이 2,000매(전2권) 분량의 소설로 발행되었습니다.
2005년 2월 22일 일본에서 ‘독도의 날’ 제정 기념행사를 한다며 대대적인 홍보를 꾀하고 있습니다. 1962년 한일회담 당시 ‘독도를 폭파하자’는 망언도 서슴지 않았다고 합니다.

일본은 1962년 9월3일 제6차 한일회담 제2차 정치회담 예비절충 4차회의에서 독도에 대해 무가치한 섬이라면서도 독도 문제를 계속 꺼집어 냈다. 일본측 이세키 국장은 "사실상 독도는 무가치한 섬이다. 크기는 '히비야' 공원정도인데 폭발이라도 해서 없애버리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연막을 피웠다. -2005. 1.17. 연합뉴스

외교협약은 물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독도’를 언급하며 소유 기록의 근거를 보충해 가는 일본의 계산된 전략에 비해 한국은 감정적 고함으로만 일관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때입니다.
300년 전, 일본은 지금과 똑같은 억지를 썼고 조선의 중앙정치도 최근의 정부처럼 어정쩡한 태도로 일관했습니다.
그러나 안용복은 달랐습니다. 그는 단신으로 일본에 건너가 일본의 최고통치자에게 <독도는 조선의 땅이다>는 국서를 받아 조정에 전달했습니다. 지금까지도 양쪽의 주장만 난무하고 있는 이 문제에서 당시의 국가간 문서는 가장 객관적인 사료가 됩니다.
이 국서를 받기까지 안용복의 행보는 놀랍고 박진감 넘치는 것이었습니다.일본의 옷키도 지방에는 그 이름이 지금도 회자되고 있으며 그와 관련된 자료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거꾸로 우리의 사료는 형편없다 할 지경이며 안용복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국민들이 태반입니다. 바로 왕조 중심의 역사, 양반 중심 문화가 낳은 서글픔입니다.
조선과 일본, 두 나라의 당시 권력자들이 혀를 내두른 안용복의 도전적 삶! 『대조선인 안용복』을 발간한 취지입니다.

1. 독도 문제에 대한 본질적 키워드 제공
오늘의 독도문제에서 1999년의 신(新)한일어업협정은 일본에 새로운 기회가 되었다. 두 나라의 2백 해리 배타수역(EEZ)이 중첩되는 동해에서 독도를 포함한 주변해양을 사실상 공해로 분류했기 때문이다. 최근 해외판 지도에서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표기하는 사례가 느는 것은 이와 무관치 않다. 나아가 일본 외무성은 독도문제와 동해의 일본해 표기를 2005년 외교의 중점목표로 다루기로 하여(2004. 8. 26. 요미우리 및 국내언론 보도) 또다시 전운을 예고하고 있다.
이런 때 이 소설의 발간은 중요한 의미를 준다. 일개 지방정부인 시마네현 고시의 허구성과 안용복 지도를 인정하다가 표변한 일본의 기만을 들춰내 보이고, 국민에게 자긍심을 안겨줄 한 영웅의 장쾌한 모험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도서는 소설적 재미와 함께 독도문제에 불리한 논리를 감추려는 일본에 대한 고발이 되어줄 것이다.

2. 서민의 역사, 민간외교의 중요성 부각
17세기, 도쿠가와 막부는 왜 안용복에게 천년역사의 근거가 될 ‘독도 포기 국서’를 써주었을까. 임금이 보낸 사신도 아니요, 군대를 배경으로 한 압력도 아니었는데 일본은 한 명의 조선백성 때문에 몇 차례나 수뇌부회의를 소집하며 토론하고 고민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논리가 일본의 수뇌부를 강타한다.
‘일본은 사무라이의 힘이 있지만 조선의 힘은 중앙관료나 군대가 아니라 하얀 옷의 백성들에게서 나온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은 예상치 못한 두 개의 두려움을 겪었는데 하나는 수군의 이순신이요, 다른 하나는 일반 백성들의 응집력이었다. 이는 지금도 다르지 않다. 대한민국은 중앙권력자들보다 일반 국민들의 저력이 힘을 만든다. 경제전쟁이 치열한 현대에 와서도 민간기업과 우수한 노동자들이 버팀목이 되고 있는 것이다. 300년 전의 안용복은 그것을 증명하는 대표적 사례다.

3. 역사왜곡이 반복되는 동아시아권 역사소설의 방향타
이 소설은 고정 독자군을 가진 역사소설이다. 하지만 ‘과거에 이런 영웅이 있었다’는 식의 단순한 소설은 이제 관심에서 벗어나고 있다. 지금의 우리 현실과 어떻게 관계되고 어떤 새로운 해석이 가능한가에 의해 가치가 달라진다.
지금의 한반도는 많은 위기를 맞고 있다. 남북관계의 변화와 더불어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까지 자행되는 지금 국토와 역사 수호는 사회적 이슈로 반복 부각되고 있다. 그 연장선에서 독도문제는 평시의 관심을 넘어선다. 욘사마 열풍이 만든 한일관계의 우호적 기류 변화와 달리 일본은 더 큰 파장을 몰고 올 정부차원의 공식 개입을 꾸준히 밝히고 있다. 이에 대응할 수 있는 명쾌하고 적절한 근거논리를 이 소설이 제공한다.
일본이 안용복에게 쓴 국서(國書) 요지

안용복이 일본의 막부에서 (1693년과 1696년) 두 차례에 걸쳐 받아온 국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조선국 동래부에 전함.

다케시마와 마츠시마의 국권과 관련해 귀국민 안용복이 호키성에 물어온 내용을 바쿠후에서 심의한 결과, 다음과 같이 정하였다.
一. 다케시마와 마츠시마가 역사적, 지리적으로 조선에 소유권이 있다는 귀국의 항의를 받아들여 일본은 두 섬에 대한 권리주장을 철회한다.
一. 이에 따라 그간 바쿠후가 일본민에게 허가했던 도해허가원은 거두어들이며, 차후 일본에서 두 섬에 나가 어로를 하는 일이 없을 것임을 확인한다.
일본국 겐로쿠 6년 5월
쇼군 도쿠가와 츠나요시

……3년 전 다케시마와 마츠시마의 국권과 관련해 일본국 바쿠후에서 조선국에 전한 서계의 효력을 재확인하며 다음을 약속합니다.
一. 두 섬은 조선국의 소유가 분명하기에 일본국의 백성은 누구도 그 두 섬에 출입할 수 없다.
一. 따라서 1차 바쿠후 서계의 망실을 핑계하여 두 섬에 일본국 백성이 출입한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에 사죄의 뜻을 전하며 그 표시로 금번 조선의 감세장이 적발해온 일본국의 출어 어민 전원을 처벌토록 한다.
一. 이후 만일 두 섬에 일본국 백성이 들어가 어채를 하다 조선국에 적발되어 통보가 올 시에는 그들을 무단월경죄로 다스릴 것을 약속한다.
一. 바쿠후는 이러한 내용을 포함하는 서계를 쓰시마를 통해 다시 조선 국왕에게 정식으로 전달할 것이며, 그 이전까지는 그간 다케시마 경영을 맡아온 관할 다이묘오의 확인으로 위의 약속이 지켜질 수 있도록 한다.
일본국 겐로쿠 9년 7월
호키료오 다이묘오 이케다 고오



<정호의 정리>
안용복은 일개 평민의 몸으로 일본에 건너가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밝히는 놀라운 민간외교를 펼쳤다. 그의 활동은 두 섬에 대한 침탈의 주체였던 대마도와 일본 서부의 시마네―돗토리현에 닿았고, 마지막에는 일본 최고 권부인 막부를 움직여 ‘일본은 울릉도와 독도를 영구히 포기한다’는 국서를 받아 조선 조정에 전했다.

말하자면 오늘의 한ㆍ일간 동해 국계는 그가 이룩한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지금의 독도분쟁을 푸는 데도 그는 중대한 열쇠를 제공할 인물로 역사 속에 살아 있다. 그 점은 독자들도 이 책을 통해 확인하게 될 것이다.

국토를 수호했다는 면에서 안용복은 이순신 못지않은 업적을 남겼다. 그 과정 또한 드라마틱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는 숨겨진 외교가여야 했다. 그 이유는 조선 사회의 오류에 기인한다.
조선은 왕조와 양반이 독점한 나라였다. 평민의 역사는 묻혔으며, 기록조차 제대로 남지 못했다. 안용복은 한양에서 멀고먼 동래 사람이었기에 더욱 가려졌다. 소설에는 많은 이름 없는 민초들도 등장한다. 그들은 안용복과 관계하며 척박한 환경을 딛고 선다. 그 모습은 오늘의 한국사회와 무관하지 않다.

안용복에 대한 기록은 일본 쪽에 훨씬 더 많이 남아 있다. 그가 체류했던 일본 시마네―돗토리 지역의 식자들에게 ‘안용복 사건’은 꽤 알려져 있는 사실이며, 현지의 사료(史料) 역시 상당히 구체적이다. 이는 우리가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저자의 말 중에서

……그 사이에도 조정에서는 용복에 대한 처결을 놓고 몇 차례 입씨름이 더 오갔다. 용복은 이제 더 이상은 대신들 간의 설왕설래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해가 다 갈 무렵, 용복은 예기치 않던 또 한 사람의 방문자를 맞았다. 한양에 남은 동래 사람들을 돌봐주고 있는 전윤으로, 그가 면회를 온 것은 처음이었다. 2년 전 접위관으로 동래에 내려와 용복을 만난 적이 있던 그는 그 사이 승진을 해 부제학에 올라 있었다.
“나를 기억하느냐?”
“알아보겠습니다.”
“너를 도우려 애썼건만 쉽지 않구나. 면목이 없어 와보지도 못했다. 너는 똑똑하니 짐작했겠지만 이건 처음부터 네 문제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대신들 간의 싸움이었다. 좋은 세상은 아직 오지 않았다. 그러나 세상이 바뀌는 날 너는 반드시 조선의 영웅으로 칭송될 것이다. 부디 몸을 보존하도록 하라. 그래야 좋은 날도 맞을 것이 아니냐.”
전윤은 용복의 손을 잡고 진심으로 미안해했다. ‘좋은 세상은 아직 오지 않았다…….’ 용복은 전윤이 남긴 말의 의미를 곱씹으며 허탈한 웃음을 날렸다.


☞ 2005-05-26에 수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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