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을듯하지만.. 작가가 소설이라고 했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상상력을 더했으니 소설이라고 불러도 될듯한... 조금은 애매한 자전적인 성장소설이라고 할까?
일제시대에 태어나서 어찌보면 일본인으로 살았고, 625를 겪는 과정까지의 박완서 자신의 이야기였다.
지금 세상이니 허용되고, 이해가 될수도 있지만... 70년대에 이런 책이 나왔다면 거의 매장당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말을 하고, 일본책을 읽고, 한국어를 알고 있다는것을 부끄러워했던 어린 시절부터... 좌익에 가담했던 오빠와 친척의 이야기등등... 조금은 달라지고 포용할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는것은 어찌보면 다행스럽게도 느껴진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지금의 상태와 현상과 사고방식에서 지난 시절을 평가하는것만큼 어리석고 우매한 일도 없을것이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그녀라면 일제시대에 어떻게 살아왔을지... 좌우익이 편을 가를때 어떻게 판단하고, 생각하면 살아왔을지를 조심스럽게 생각해보려하지만... 쉽지는 않고... 내가 그런 시절과 그런 환경에서 살아오지 않은 이상.. 상상일뿐이다.
지대가 높아 동네가 한 눈에 내려다보였다. 혁명가들을 해방시키고 숙부를 사형시킨 형무소도 곧장 바라다보였다. 천지에 인기척이라곤 없었다. 마치 차고 푸른 비수가 등골을 살짝 긋는 것처럼 소름이 쫙 끼쳤다. 그건 천지에 사람 없음에 대한 공포감이었고 세상에 나서 처음 느껴 보는 전혀 새로운 느낌이었다. 독립문까지 빤히 보이는 한길에도 골목길에도 집집마다에도 아무도 없었다. 연기가 오르는 집이 어쩌면 한 집도 없단 말인가. 형무소에 인공기라도 꽂혀 있다면 오히려 덜 무서울 것 같았다. 이 큰 도시에 우리만 남아 있다. 이 거대한 공허를 보는 것도 나 혼자뿐이고 앞으로 닥칠 미지의 사태를 보는 것도 우리뿐이라니. 어떻게 그게 가능한가. 차라리 우리도 감쪽같이 소멸할 방법이 있다면 그러고 싶었다.

그때 문득 막다른 골목까지 쫓긴 도망자가 휙 돌아서는 것처럼 찰나적으로 사고의 전환이 왔다. 나만 보았다는 데 무슨 뜻이 있을 것 같았다. 우리가 여기 남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약한 우연이 엎치고 덮쳤던가. 그래, 나 홀로 보았다면 반드시 그걸 증언할 책무가 있을 것이다. 그거야말로 고약한 우연에 대한 정당한 복수다. 증언할 게 어찌 이 거대한 공허뿐이랴. 벌레의 시간도 증언해야지. 그래야 난 벌레를 벗어날 수가 있다.

그건 앞으로 언젠가 글을 쓸 것 같은 예감이었다. 그 예감이 공포를 몰아 냈다. 조끔밖에 없는 식량도 걱정이 안 됐다. 다닥다닥 붙은 빈 집들이 식량으로 보였다. 집집마다 설마 밀가루 몇 줌, 보리 쌀 한두 됫박쯤 없을라구. 나는 벌써 빈 집을 털 계획까지 세워 놓고 있었기 때문에 목구멍이 포도청도 겁나지 않았다.

위의 작품속 박완서씨의 마지막 글처럼... 내가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하던지.. 어떻게 살아가던지 난 해야만 할 일이있다. 그리고 해야한다... 그래서 살아가야 한다... 처절하게...

<도서 정보>제   목 :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저   자 : 박완서
출판사 : 웅진닷컴
출판일 : 2002년 2월
책정보 : ISBN : 8901017601 | 페이지 : 294 | 444g
구매처 : 오디오북
구매일 :
일   독 : 2006/10/25
재   독 :
정   리 :

<이것만은 꼭>



<책 읽은 계기>
진호가 어디서 책을 빌려왔는데, 읽어봤냐고 물어보기도 했고... 괜찮다는 평을 많이 들어서...


<미디어 리뷰>
저 : 박완서
개성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서울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박완서 씨에게 한국전쟁은 평생 잊을 수 없을 없는 기억으로 남는다. 의용군으로 나갔다가 부상을 입고 거의 폐인이 되어 돌아온 `똑똑했던` 오빠가 `이제는 배부른 돼지로 살겠다`던 다짐을 뒤로 하고 여덟 달 만에 죽음을 맞이하고, 그후 그의 가족은 남의 물건에까지 손을 대게 되는 등 심각한 가난을 겪는다. 결국 대학을 중퇴하고 미군 PX에서 일하다가 훗날의 남편을 만나게 된다.
한국 전쟁과 분단의 아픔을 다룬 데뷔작 <나목>과 <목마른 계절>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틀니> <아저씨의 훈장> <겨울 나들이>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등을 비롯하여 70년대 당시의 사회적 풍경을 그린 <도둑맞은 가난> <도시의 흉년> <휘청거리는 오후> 등까지 저자는 사회적 아픔에 주목하여 글을 썼다. <살아있는 날의 시작>으로부터 여성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작가는 <서 있는 여자>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등 점점 독특한 시각으로 여성문제를 조명하기 시작한다. 또 장편 <미망><그 많던 싱아를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등에서는 개인사와 가족사를 치밀하게 조명하여 사회를 재조명하기도 한다.

평온했던 어린시절에서 전쟁을 치르고 분단이 된 민족사 안에서의 자신과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탁월한 문체로 잔잔하게 읊고 있다. 시큼한 싱아에 물든 고향이 아련하게 다가오는 듯 하다.

이 책은 6.25 전까지의 얘기를,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는 6.25와 그 이후 이야기를 담고 있다.


<책속으로>
다시 책머리에
작가의 말

1. 야성의 시기
2. 아득한 서울
3. 문 밖에서
4. 동무 없는 아이
5. 괴불마당 집
6. 할아버지와 할머니
7. 오빠와 엄마
8. 고향의 봄
9. 패대기쳐진 문패
10. 암중모색
11. 그 전날 밤의 평화
12. 찬란한 예감

작품해설

흰옷이란 얼마나 좋은 것인지, 초가지붕마다 뿜어올린 저녁연기가 스멀스멀 먹물처럼 퍼져 길과 논밭과 수풀과 동산의 경계를 부드럽게 지워버려, 마침내 잿빛 하늘을 인 거대한 한덩어리가 되었을 때도 흰옷 입은 사람이 산모롱이를 돌아오는 것은 잘 분간이 되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다들 흰 옷을 입었다. 특히 송도 나들이를 갈때는 때도 안 묻은 고운 흰옷으로 호사를 했다. 그래도 나는 할아버지와 딴 사람이 헷갈리지 않았다.--- p.16
이차대전을 맞은 것도 괴불마당 집에서였다. 일본 사람들은 대동아전쟁이라고 했다. 무언지도 모르고 신이 났다. 우리는 그전부터 이미 호전적으로 길들여져 있었다. 일본은 벌써부터 지나사변이라 부르는 전쟁(중일전쟁)을 하고 있었고 우리는 중국을 '짱골라'장개석을 '쇼오가이세끼'라고 부르면서 덮어 놓고 무시할 때였다.--- p.128
이런 글을 소설이라고 불러도 되는지 모르겠다. 순전히 기억력에만 의지해서 써 보았다. 쓰다 보니까 소설이나 수필 속에서 한두 번씩 울거먹지 않은 경험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그때 그때의 쓰임새에 따라 소설적인 윤색을 거치지 않은 경험 또한 없었으므로 이번에는 있는 재료만 가지고 거기 맞춰 집을 짓듯이 기억을 꾸미거나 다듬는 짓을 최대한으로 억제한 글짓기를 해 보았다. 그러나 소설이라는 집의 규모와 균형을 위해선 기억의 더미로부터의 취사 선택은 불가피했고 지워진 기억과 기억 사이를 자연스럽게 이어주기 위해서는 상상력으로 연결 고리를 만들어 주지 않으면 안 되었다.--- p.머리말
우리는 그냥 자연의 일부였다. 자연이 한시도 정지해 있지 않고살아 움직이고 변화하니까 우리도 심심할 겨를이 없었다. 농사꾼이 곡식이나 푸성귀를 씨 뿌리고, 싹트고 줄기 뻗고 꽃피고 열매 맺는 동안 제 아무리 부지런히 수고해 봤자 결코 그것들이 스스로 그렇게 돼 가는 부산함을 앞지르지 못한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삼시 밥 외의 군것질거리와 소일거리를 스스로 산과 들에서 구했다. 삘기,찔레순, 산딸기, 칡뿌리, 메뿌리, 싱아, 밤, 도토리가 지천이었고, 궁금한 입맛 뿐 아니라 어른을 기쁘게 하는 일거리도 많았다. 산나물이나 버섯이 그러했다. 특히 항아리 버섯이나 싸리버섯은 어찌나 빨리 돋아나는지 우리가 돌아서면 땅 밑에서 누가 손가락으로 쏘옥 밀어올리는 것 같았다.--- p.26
엄마는 이렇게 온갖 주접을 다 떨다 잠든 아들을 슬픈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생전 안 하던 술 처먹고 우는 버릇을 왜 했을꼬'라는 말밖에 안 했다. 아들이 자는 머리맡도 지나가 본적이 없는 엄마로서는 그 정도만 해도 큰 욕을 한 셈이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본인보다도 엄마가 더 전향의 후유증 같은 걸 두려워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p.215
엄마는 아직도 쫓기고 있었다. 엄마는 좌익조직으로부터 헛되게 도망을 다녔듯이 이번엔 전향한 후환으로부터의 도피를 시도하고 있었다. 나는 엄마가 전전긍긍하는 것을 전혀 터무니 없는 일종의 신경불안 증세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번 이사야말로 가장 성공적인 치료가 되리라고 생각했다. 엄마에게도 나에게도 새롭게 전개될 생활에 대한 예감에 충만한 특별히 아름다운 5월이었다. 그러나 하필 1950년의 5월이었다. 남달리 명철한 엄마도 환멸을 예비하지 않고 마냥 마음을 부풀린다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라는 걸 미처 모르고 있었다. 그해 6월이 다가오고 있었다. (p. 246)

지대가 높아 동네가 한 눈에 내려다보였다. 혁명가들을 해방시키고 숙부를 사형시킨 형무소도 곧장 바라다보였다. 천지에 인기척이라곤 없었다. 마치 차고 푸른 비수가 등골을 살짝 긋는 것처럼 소름이 쫙 끼쳤다. 그건 천지에 사람 없음에 대한 공포감이었고 세상에 나서 처음 느껴 보는 전혀 새로운 느낌이었다. 독립문까지 빤히 보이는 한길에도 골목길에도 집집마다에도 아무도 없었다. 연기가 오르는 집이 어쩌면 한 집도 없단 말인가. 형무소에 인공기라도 꽂혀 있다면 오히려 덜 무서울 것 같았다. 이 큰 도시에 우리만 남아 있다. 이 거대한 공허를 보는 것도 나 혼자뿐이고 앞으로 닥칠 미지의 사태를 보는 것도 우리뿐이라니. 어떻게 그게 가능한가. 차라리 우리도 감쪽같이 소멸할 방법이 있다면 그러고 싶었다.

그때 문득 막다른 골목까지 쫓긴 도망자가 휙 돌아서는 것처럼 찰나적으로 사고의 전환이 왔다. 나만 보았다는 데 무슨 뜻이 있을 것 같았다. 우리가 여기 남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약한 우연이 엎치고 덮쳤던가. 그래, 나 홀로 보았다면 반드시 그걸 증언할 책무가 있을 것이다. 그거야말로 고약한 우연에 대한 정당한 복수다. 증언할 게 어찌 이 거대한 공허뿐이랴. 벌레의 시간도 증언해야지. 그래야 난 벌레를 벗어날 수가 있다.

그건 앞으로 언젠가 글을 쓸 것 같은 예감이었다. 그 예감이 공포를 몰아 냈다. 조끔밖에 없는 식량도 걱정이 안 됐다. 다닥다닥 붙은 빈 집들이 식량으로 보였다. 집집마다 설마 밀가루 몇 줌, 보리 쌀 한두 됫박쯤 없을라구. 나는 벌써 빈 집을 털 계획까지 세워 놓고 있었기 때문에 목구멍이 포도청도 겁나지 않았다. (pp. 286-287)--- p.
'야성의 시기' - 우리는 그냥 자연의 일부였다. 자연이 한시도 정지해 있지 않고 살아 움직이고 변화하니까 우리도 심심할 겨를이 없었다. 농사꾼이 곡식이나 푸성귀를 씨 뿌리고, 싹트고 줄기 뻗고 꽃피고 열매 맺는 동안 제아무리 부지런히 수고해 봤자 결코 그것들이 스스로 그렇게 돼 가는 부산함은 앞지르지 못한다.

'찬란한 예감' - 그건 앞으로 언젠가 글을 쓸 것 같은 예감이었다. 그 예감이 공포를 몰아 냈다. 조금밖에 없는 식량도 걱정이 안 됐다. 다닥다닥 붙은 빈 집들이 식량으로 보였다. 집집마다 서마 밀가루 몇 줌, 보리쌀 한두 됫박쯤 없을라구. 나는 벌써 빈 집을 털 계획까지 세워 놓고 있었기 때문에 목구멍이 포도청도 겁나지 않았다.--- p.27, ---p.287
시골 애들은 심심해서 어떻게 살까 불쌍하게 여기는건 서울 내기들의 자유지만 내가 심심하다는 의식이 싹 트고 거의 짓눌리다시피 한 것은 서울로 오고 나서였다. 서울 아이들의 장난감보다 자연의 경이가 훨씬 더 유익한 노리갯감이었다고 말하는 것도 일종의 호들갑일뿐, 그 또한 정말은 아니다. 우리는 그냥 자연의 일부였다.--- p.27
솔직히 말해서 이렇게 천격스러운 하치 양반 집안에서 총독부에 취직이 된 자식은 가문의 영광이었다. 엄마가 더욱 당당해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오빠는 반 년 만에 총독부를 그만 두었다. 오빠의 다음 취직 자리는 와타나베 철공소라는 일인의 개인 회사였다.--- p.116
서울 아이들이 알기나 할까, 쫙 깔린 달개비꽃의 남색이 얼마나 영롱하다는 걸. 그리고 달개비 이파리엔 얼마나 고운 소리가 숨어있단는 것을. 달개비 이파리의 도톰하고 반질반질한 잎살을 손톱으로 조심스럽게 긁어 내몀 노방보다고 얇고 섬세한 잎맥만 남았다. 그 잎맥을 입술에서 떨게 하면 소리가 나는데 나는 겨우 소리만 냈지만, 구슬픈 곡조를 붙일 줄 아는 애도 있었다.--- p.76
바위라고는 하나도 없이 능선이 부드럽고 밋밋한 동산이 두 팔을 벌려 얼싸안은 듯한 동네는 앞이 탁 트이고 벌이 넓었다. 넓은 벌 한가운데를 개울이 흐르고, 정지용의 시 말마따나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은 아무데나 있었다.--- p. 13
동그란 유리를 통과한 햇빛이 점점 도타워지고 오므라들면서 꼭 칠흑 속에 숨은 고양이 눈깔처럼 요괴롭게 빛나다가 마침내 종이에서 모락모락 연기를 뿜어올려 구멍을 내고 구멍이 실고추처럼 가늘고 새빨갛게 종이를 먹어들어가는것을 지켜보는 동안 나는 숨이 막히고 배창자가 쪼글쪼글 오그라들면서 오줌이 마려웠다.--- p.34
더위가 심해지면서 진중한 오빠도 방에서 견디기가 힘든지 저녁만 먹고 나면 내 손을 잡고 선바위까지 바람을 쐬러 올라갔다. 나는 그때가 가장 즐거웠다. 선바위에 바람을 쐬러 나온 많은 사람들 중에서 오빠가 제일 잘나 보이는 것이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나는 오빠와의 친밀감을 과시하기 위해 멀리까지 가서 조리풀을 따다가 오빠한테 붙들게 하고 조리를 엮었다. 조리풀을 뜯을 때마다 습관적으로 먹을 만한 풀을 찾았지만, 선바위 주위 척박한 따에는 모질고 억센 잡풀밖에 자라지 않았다. 가끔 나는 손을 놓고 우리 시골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하염없이 생각하곤 했다. 말수 적은 오빠도 내 향수를 알아차리고는 여름방학이 며칠 안 남았다는 걸 손가락으로 헤아려 보여 주곤 했다.
--- p.91
그러나 텃밭에는 먹을 게 한창일 때였다. 당장 따서 쪄낸 옥수수의 감미를 무엇에 비길까. 더위가 퍼지기 전 이른 아침 이슬이 고인 풍성한 이파리 밑에 수줍게 누워 있는 애호박의 날씬하고도 요염한 자태를 발견했을 때의 희열은 또 어떻고. 못생긴 걸 호박에 비기는 건 아무것도 모르는 도시 사람들이 지어 낸 말이다. 늙은 호박에 비한 거라고 해도 그건 불공평하다. 사람도 의당 늙은이하고 비교해야 할진대 사람의 노후가 늙은 호박만큼만 넉넉하고 쓸모 있다면 누가 늙음을 두려워하랴.--- p.97
그때 생각을 하면 지금도 미소가 지어지는 것은 그들이 내 눈에 어린에 처럼 자유롭고 귀여워 보였기 때문이다. 나이 든 사람이 티 없는 귀여움으로 인상에 남기는 쉽지 않다. 고서도 남아 있지 않지만 그릇도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엄마와 숙모들의 요새말로 스트레스를 풀고 나서 맛본 건강한 즐거움은 죽는 날까지 그분들의 마음 속 어딘가에 남아 있었으리라고 생각한다.--- p.184
그들은 마치 나를 짐승이나 벌레처럼 바라다보았다. 나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돼 주었다 .벌레처럼 기었다. 정말로 그들에겐 징그러운 벌레를 가지고도 오락거리를 삼을 수 있는 어린애 같은 단순성이 있었다. 다행히 그들은 빨갱이를 너무도 혐오했기 때문에 빨갱이의 몸을 가지고 희롱할 생각은 안 했다. 나는 내가 너무 귀족적으로 자란 걸 다 원망했다. 잘 먹고 잘 입고 떠받들어졌다는 소리가 아니라 수모에 길들여질 기회 없이 커 왔다는 뜻이다. 나는 밤마다 벌레가 됐던 시간들을 내 기억 속에서 지우려고 고개를 미친 듯이 흔들며 몸부림쳤다.

그러다가도 문득 그들이 나를 벌레로 기억하는데 나만 기억상실증에 걸린다면 그야말로 정말 벌레가 되는 일이 아닐까 하는 공포감 때문에 어떡하든지 망각을 물리쳐야 한다는 정신이 들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어버린 부분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여러 군데서 개별적으로 당한 일들이 한 묶음으로 단순화돼 남아 있고, 구체적인 사건들을 추상적으로밖에 생각해 낼 수가 없다. 그건 몸으로 벌레처럼 기었을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폭력에 굴복당했다는 증거겠지만 어쩌랴 그렇게 생겨먹은 게 보통 사람이 안 미치고 견딜수 있는 정신력의 한계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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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으로 수학여행 떠나는 날 엄마는 경성역까지 배웅을 나와서 혹시 개성역에 누가 마중을 안 나오더라도 너무 섭섭해하지 말고 잘 놀다 오라고 타이르고 들어갔다. 제발 아무도 안 나왔으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꼭 나올 것 같아 마음이 영 개운치 않은 채 기차가 개성역을 도착했다. 육학년은 총 다섯반이었다. 개성역 앞 광장에 반끼리 줄을 서서 인원 점검을 할 때였다. '완서야, 완서야.' 하고 내 이름을 크게 부르는 소리가 났다. 저만치서 할머니가 무법자처럼 아이들 사이를 마구 헤집고 다니면서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 숙모도 아니고 할머니였다. 어찌나 창피한지 잠시 꺼질 수 있는 거라면 꺼지고 싶었다.--- p.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