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환, 나사왕국을 세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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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보이는 그림이 직렬나사라는것인데 보통 볼트, 너트라는 개념을 깨버린 나사라고 한다.
이 나사 하나만으로 하루에 매출이 1억이란다..
거기에 최초로 옛날에 콜라나 소주병 두껑을 막는 기계를 만든 사람도 임정환사장이라고 한다.
지금 나이가 칠순인데도 그의 열정은 변함없이 여전하다.

돈을 번것도 번것이지만 성실함과 일에 대한 집중력, 빠르게 시제품을 만들어 내는 모습에서 존경심을 표하게되고,
그가 골프를 치지 않거나, 회사를 상장하지 않는등의 회사를 경영하는 원칙들을 보면서 다시 한번 존경심을 표하게 된다.
이외에도 파트너를 대하는 자세, 필요한 물건은 꼭 팔린다는 자부심등 배울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왠지 모르게 미래산업의 정문술회장이 생각나는 사람이였다.

지금 당장 내가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즉각적이고 머리로도 많이 생각하지만 , 빨리 실행에 옮기는 모습을 배워야겠다.

다만 너무 일에 바쪄서 다른부분에는 신경을 못쓰는부분이 좀 걸리기는 하지만 보기 좋은 모범사례인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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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간 오직 나사만 만들었다

임정환 명화금속 사장(66)은 지난 50년간 오직 나사만 만들어왔다.

한가지 품목으로 5년을 버티기가 어려운 것이 지금의 현실인데 무려 반세기를 단일 아이템으로 견뎌왔다는 건 수수께끼중 수수께끼다.

그러나 이 수수께끼는 뜻밖에도 쉽게 풀린다.

그는 처음엔 건축용 나사를 생산했다.

그 다음엔 자전거용 나사를 만들었다.

환경이 바뀌자 이번엔 자동차용 나사를 만들었고 또 컴퓨터용 나사를 개발해냈다.

현재는 항공기용 나사까지 만든다.

누구라도 경기 시화공단에 있는 명화금속 공장안에 들어가서 첫번째 놓여있는 나사생산기계를 보면 입을 다물지 못할 것이다.

이 자그마한 기계가 1분에 7백개의 직결나사를 쏟아낸다.

1초당 10개 이상의 나사가 쏟아지는 셈이다.

선진국 나사생산기보다 분당 5백개를 더 산출해낸다고 한다.

이 기계는 임 사장이 직접 개발한 것이다.

이 '직결나사 전용생산기' 외에도 임 사장은 지난 50년간 나사기계분야에서만 1백56개의 특허를 개발,획득했다.

그래서 임 사장을 두고 흔히 '나사박사'라고 부른다.

그렇지만 그가 나사박사로 성공하기까지의 역정은 기막힌 드라마다.

1952년 중학교 1학년이던 그는 서울 영등포 상의용사회관 뒤에 있는 고주파라는 엔진공장에 취업했다.

집안이 가난했던 그는 이곳에서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10년간 각종 나사를 만들며 살았다.

일본사람이 경영했던 이 회사는 기계분야에서 높은 기술수준을 갖추고 있었으나 1백여명의 종업원 가운데 학교를 다니는 사람은 임 사장 뿐이었다.

그는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2시간을 걸어 학교를 다녀야 했기 때문에 잠잘 틈이 없었다.

이때부터 잠을 4시간 이하로 자기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하루 4시간 이상 잔적이 한번도 없다고 얘기한다.

그는 요즘도 잠을 자다가도 꿈에 독특한 나사를 개발할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순간적으로 벌떡 일어나 메모하고 도면을 그린다.

이처럼 그의 머릿속은 항상 제품개발에 쏠려있다.

얼마전 임 사장은 안산에 있는 저수지에 낚시를 하러가서 낚시찌를 보다가 갑자기 참신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낚시찌처럼 쉽게 박히면서 절대 빠지지 않는 그런 나사를 만들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난 것이다.

그는 당장 낚시도구를 접어들고 공장으로 향했다.

이 아이디어를 기초로 그는 떨어져 있는 두 개의 물체를 나사 하나로 고정시킬 수 있는 나사를 개발해냈다.

50년간 쌓아온 노하우로 개발해낸 '블라인드 리벳'이란 이 나사는 현재 시화공장에서 연간 4억개씩 생산되고 있다.

이 제품은 성능과 정교성이 뛰어나 독일의 에조트,영국의 에코파스트 등으로부터 주문이 계속 밀려오는 중이다.

또 중국에서 건축붐이 일어나면서 건축용 나사에 대한 주문도 쇄도해 이 회사 2천8백평 규모의 공장은 하루 24시간 나사를 쏟아내는 소리로 가득하다.

이치구 전문기자
 
자료원:한국경제

꿈속에서도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 명화금속, 임정환 사장

역경이 클수록 강해지지요. 지금과 같은 불황기가 바로 강해질 수 있는 좋은 기회일 수 있습니다.” 평생 나사만 만들고, 나사만 생각하며 살아온 임정환(67) 명화금속 사장에게는 ‘나사 공화국 대통령’이라는 별칭이 따라다닌다.

“강한 기업은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남는다”고 강조하는 그에게 “회사가 어려운 이유는 경기가 나빠서가 아니라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경기가 어려울 때 깊이 생각하면 그런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는 “기업은 환경이 어려운 곳, 어려운 시기에 해야 한다”고까지 말한다.

다 른 기업들은 경기가 나쁘다며 울상을 짓지만 명화금속은 수출도 내수도 좋다. 9월 현재 내수는 1백29억원으로 목표치의 99%를 달성했고, 수출 역시 2백34억원으로 목표치의 94%에 이른다. 외환위기 직후인 98년을 빼면 환경이 어렵거나 좋거나 관계없이 연 평균 15∼20%의 고성장을 지속적으로 달성해 왔다. 그야말로 ‘강한 기업’이 아닐 수 없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

“오직 ‘나사’라는 한가지에만 몰두했습니다. 자나깨나 어떻게 하면 더 좋은 나사를 많이 만들까만 생각했지요. ‘집중력’, 그것이 강해질 수 있는 첫걸음입니다.”

인 생역정을 들여다보면 임사장의 말에 전혀 과장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었던 그가 공장 직공에서 ‘나사 공화국 대통령’의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오직 하나, 나사만 생각하며 평생을 살았기 때문이다.

그 는 1936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났다.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남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인 16세가 돼서야 간신히 초등학교를 졸업했고, 그런 이력을 가진 대부분의 젊은이가 그렇듯 그 역시 다음 해 서울로 올라와 작은 공장의 말단 직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바로 이 ‘첫 직장’이 나사와 관련된 기계 공장이었으니 이 정도 한우물을 판 사람도 흔치 않다. 그가 “나사 인생 50년”이라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말 단 공원에서 ‘나사 대통령’까지. 이 표현 하나가 그의 50년 인생살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이때부터 최고의 자리까지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기 시작했다. 첫 계단은 학교였다. 거칠고 고단한 공장 생활을 하면서도 그는 무려 8년이란 긴 시간을 중·고등학교와 전문대학을 졸업하는 데 바쳤다. 물론 야간이었다. 공장직원 1백명 가운데 야간 학교를 다닌 것은 물론 졸업한 학생은 임사장이 유일했다.

잠을 덜 자는 것 이외는 방법이 없었어요. 누구에게나 똑같은 24시간이었으니까요. 새벽에 보리밥 한 덩어리를 물에 말아 먹고 공장에 가면 기계만이 날 반겼지요. 그때 기계가 따뜻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공장을 마치면 학교로, 그리고 집으로…. 세 시간 이상 잠을 자지 말자고 맹세했지요.”

25세 때인 61년 그는 학교와 공원을 마치고 마침내 젊은 기업인의 생활을 시작했다. 범양금속을 설립해 자신만의 ‘나사인생’을 시작했던 것이다. “돈도 학력도 없던 시절”이었다고 당시를 기억하는 임사장은 “살길은 오직 나사를 잘 만드는 일뿐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도 가난을 물리칠 길은 멀어 보였다. “남이 만들지 못하는 나사를 만들겠다”는 일념은 좋았지만 빛을 보기까지는 10년 이상의 세월이 필요했다. “어떻게 보면 하찮은 물건이라는 것을 잘 안다”고 말한 그는 “좀팽이처럼 자질구레한 짓 좀 그만하라”는 아내 말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는 73년 각종 전자제품 등에 나사를 박고 꼭지를 떼어내는 ‘블라인드 리벳’을 국내 최초로 개발하면서 ‘나사왕’ 등극의 길로 올라섰다. 나사 일을 시작한 지 거의 20년, 사업을 시작한 지 12년이 지난 뒤였다.

이 제품으로 그는 이후 10년 동안 리벳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했다. 이후 경제적으로 상황이 좋아지자 연구 성과도 커졌고 숱한 신제품으로 시장을 섭렵했다.

‘뒤틀린 나사’… 세계 최고

임사장에게 ‘나사왕’ ‘나사 대통령’이라는 별칭이 따라다니는 것도 그가 늘 나사와 함께 살았기 때문이다. 그가 개발해 낸 나사 종류가 8백여종, 나사 관련 특허가 1백80종에 이른다.

언제나 메모지와 펜을 끼고 다니며 이미지가 떠오르면 바로 메모지로 옮긴다. 많은 경우 그 아이디어는 새로운 나사로 드러난다. 심지어 “꿈도 나사꿈만 꾼다”는 그다. 잠자리에서 떠오른 아이디어가 제품화된 적도 여러 번이다.

‘직 결나사’는 그 많은 나사 중에서도 임사장이 자랑하는 최고의 제품이다. 나사의 기능은 본래 두 개의 서로 다른 물건을 하나로 묶는 것이다. ‘볼트·너트형’이 1세대라면 드릴로 구멍을 뚫고 나사를 밖는 ‘일체형’이 2세대, 드릴처럼 직접 물건을 파고 들어가는 ‘직결나사’가 3세대다. 직결나사 시장에 관한 한 그의 회사는 이미 세계 최고다.

“철판을 직접 뚫고 들어가 스스로 두 물체를 하나로 결합시키기 위해서는 나사의 끝이 뒤틀려 있어야 합니다. 미국에서 처음 개발된 이 ‘뒤틀림 나사’는 장인들이 거의 손으로 깎아 만드는 식이어서 만들기도 어려웠지만 만들어도 값이 여간 비싸지 않았지요. 이것을 명화금속이 자동화시켜 처음으로 기계로 찍어내기 시작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게 있다. 나사를 잘 만들고 싶은 생각에 급기야 나사를 만드는 기계까지 직접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의 ‘일생의 자랑거리’로 삼는 공장을 들어가 보자. 무엇보다 1천평에 이르는 공장 부지에 4열 횡대로 늘어선 나사 기계에 기가 질린다. 하루 5천만개의 나사를 쏟아내는 기계들은 한 시대를 웅변하며 명화금속의 역사를 대변한다. 맨 안쪽 기계들은 80년대 만들어진 것으로 이를테면 임사장이 만든 첫번째 ‘자식’들이다. 이들은 분당 평균 1백50개의 나사를 생산해 낸다. 90년대 만들어진 두번째 줄의 기계들은 분당 2백50개의 나사를 토해내고, 최근 만들어진 맨 앞쪽 기계들은 분당 4백개의 나사를 찍어낸다.

명화금속의 역사는 한마디로 ‘생산성 향상의 역사’와 같다. 임사장은 “향후 분당 7백개까지 생산해 내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아 무도 만들지 못하는 제품을 만들어내는 기술력, 그 제품을 만들기 위해 기계까지 만들어내는 집념, 그 제품을 만들어내자 이번에는 생산성을 높여야겠다는 경영능력…. 명화금속은 임사장이 있는 한 그의 말대로 “어떤 불황도 이겨낼 수밖에 없는 강한 기업”일 것 같다.


누구라도 한 우물을 팔수 있다. 대신 먼저 파라.


출처: 이코노미스트 2003.10.10


   (주) 명  화  금  속  

                어떤 회사인가?

1961년 설립, 8백여 종의 나사를 생산 중인 (주)명화금속은 독자개발한 직결나사로 세계 무역장벽을 뚫은 중소기업. 세계일류상품으로 선정된 이 직결나사는 말 그대로 철판을 스스로 뚫고 들어가는 나사로, 기존의 철판에 홈을 파고 나사를 끼워넣어야 했던 방식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특히 나사 자체에 곡선 비틀림각을 주어 스스로 드릴처럼 철판을 뚫고 들어가면서 나사밥이 바로 배출되는 방법을 개발, 현재 독일, 미국, 일본 등 세계 30여 개국에서 명화금속의 직결나사를 수입하고 있으며 상암월드컵경기장과 인천공항에도 사용되는 등 건설시공에서 필수품으로 쓰이고 있다.  

 열일곱 소년공 시절부터 나사를 만들어온 임정환 회장은 자다가도 나사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일어나 메모를 하는 자타가 공인하는 ‘나사박사’. 그가 평생 기록해온 수십권의 노트는 (주)명화금속을 180종의 특허를 보유한 나사왕국으로 자리매김시켰으며, 지난 2002년 중소기업청으로부터 ‘신지식인’ 에 선정된 바 있다.  50여 년 산업현장에서 기계와 씨름해 온 그의 목소리에는 국내 중소기업에 대한 애정과 기업은행에 대한 신뢰가 깊게 스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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