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강제 침략과 같은 강제 한일합방 100주년을 맞이해서 독일은 어떠한 식으로 2차대전 이후에 잘못을 처리하고 있는지를 돌아봤는데, 돈으로 피해자의 고통을 보상할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으며, 미해결재산문제도 자신들이 빼앗아온 물건은 유태인이나 상대국가에서 찾으려고 하지 않아도 먼저 찾아주려고 노력을 하고 있는데, 일본과 같은 경우는 자민당이 물러나고, 민주당이 들어오면서 태도가 많이 바뀌었지만, 아직도 일본은 올바른 대철르 못하고 있다는 독일교수의 이야기...
독일에서는 나치의 잘못을 왜곡없이 가르쳐야 하는 교육법도 규정되 있다는데, 잘못된 이데올로기의 위험성을 학생에게 가르친다는데, 이런것들은 상대국에 대한 기본적인 태도인것을 떠나서 무엇보다도 자신들을 올바른 과거청산을 위한 행위라고....
일본은 조금바뀐듯하지만, 여전히 교과서 왜곡에, 독도문제에, 배째라식에.. 이정도면 됬지?라는 대응은 참 기가막힐따름이다.
뭐 어찌보면 국가적으로도 과거사정리를 통해서 친일세력을 제대로 정리하지도 못하면서, 이런말을 하는것도 안타깝지만, 나라의 진정한 발전과 미래를 위해서는 우리나 일본이나 확실하게 정리할것은 정리하고,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독일의 과거사 반성은 정치가의 입이 아니라 시민의 마음속에서 우러나옵니다. 유태인 학살에 대한 독일인의 사죄는 세월을 뛰어넘어 끝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유태인을 추모하는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고, 정부가 나서서 2차 대전 당시 나찌가 빼앗은 개인 소장품까지 찾아 돌려주고 있습니다. 이런 철저한 행동은 ‘진실한 반성’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반성을 통해 미래를 열어가는 독일 상황을 최재현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인류 역사에 참상을 안겨준 2차 세계 대전, 유럽에서만 3천7백만 명이 숨졌고, 이중 6백30만이 나치에 학살당한 유태인들이었습니다.
바이마르 외곽의 숲 속엔, 이 참혹한 기억의 일부가 보존돼 있습니다. 유태인, 만 천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강제 수용솝니다. 혹독한 노동으로 숨진 시신에선 금니가 수거됐고, 때론 해부 실험의 대상이 됐습니다.
이 수용소 정문의 시계는 오후 3시 15분, 연합군이 인간의 존엄성을 해방 시킨, 그날 그 시각에 맞춰져 있습니다.
<인터뷰>독일 시민:"사람이 사람에게 이런 고통을 줄 수 있다니, 믿기지가 않습니다. 모든 게 너무 끔찍하고 참혹할 뿐입니다."
수용소의 시신 소각로엔 일본계 학생들이 유태인 희생자에 바치는 추모의 글도 있었습니다. 나치의 만행을 본 이들이 일제의 잔학 상도 떠올렸는지, 모를 일입니다.
<인터뷰>독일 시민:"독일의 역사 수업은 나치의 범죄에 대해 가르칩니다. 학교에선, 강제 수용소의 잔학 상을 다룬 영화도 보여줬지요."
이 유태인 여성은 나치가 저지른 범죄로 부모를 잃었습니다. 지금은 이스라엘에서 살지만, 태어난 곳은 1910년대 베를린입니다. 당시에 살았던 집을 돌아보며 감회에 젖습니다.
<녹취>에리츠(유태인 여성):"우린 3층에서 살았고, 여긴 오빠 방이었어요."
전쟁은, 단란한 가정의 막내딸이 스무 살이 됐을 때, 터졌습니다. 약국을 운영하던 아버지는
수용소로 끌려가 돌아오지 못했고, 어머니도 전쟁의 와중에 숨졌습니다.
<녹취>"당시엔 저도 약사가 되고 싶었답니다."
그리고 60여 년, 이젠 아흔 살이 된 딸의 요청에 따라, 부모의 이름이 새겨진 금속 명패가, 집 앞에 심어졌습니다. 그녀가 꽃을 올려놓고 그리운 부모의 얼굴을 떠올릴 때 독일인은 다시 한번 과거사의 책임을 생각했습니다.
<인터뷰>에리츠(유태인 여성):"작은 명패지만 큰 의미가 있지요. 유태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죄없이 고통스런 죽음을 맞아야 했던 아버지, 어머니를 기리는 그런 의미 말입니다."
모두가 볼 수 있도록 큰 길가에 심어진 명패는 독일 연방 정부가 관리합니다. 훼손이나 절도는 법적 처벌 대상입니다.
<인터뷰>에머리히(독일 공무원):"유태인 희생자 이름을 새긴 명패를 고의로 훼손하거나 훔쳐갈 경우엔, 정치적 범죄로 간주 돼 중한 처벌을 받게 됩니다."
독일인은 과거사가 안겨준 책임에서 도망치지 않습니다. 스스로 나서 피해자를 보상하고, 빼앗은 문화재는 돌려줬습니다. 한발 더 나아가 이 뼈아픈 교훈을 어린 세대에게 전하며, 반성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습니다.
유태인을 애도하는 추모 공간은 독일 연방 의회 앞에 세워졌습니다. 의회로 입성하는 정치가에게 과거사의 책임을 가장 먼저, 생각하게
한다는 취집니다. 더구나 이날엔 귀한 손님도 방문했습니다. 태어나기도 전에 있었던 과거사의 교훈을 배우러, 독일의 고등학생들이
찾아온 겁니다.
<인터뷰>레온(독일 고등학생):"겪어보진 못했지만, 이런 과거가 잊혀 져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되새겨 봐야 할 것 같아요."
추모 공간 옆엔, 나치의 만행을 증언하는 전시관이 서 있습니다. 시민들은 당시의 사진을 보고, 유태인이 남긴 안타까운 사연의
편지를 읽어 봅니다. 진정한 사과는 위정자의 입이 아니라, 그 나라 국민의 마음속에서 우러나와야 함을 깨닫게 합니다.
<인터뷰>그로세(전시장 코디네이터):"독일은 과거사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런 책임을 다하기 위해 연방정부와 의회는 이 전시관 건립에 많은 지원을 했습니다."
과거사 청산을 위한 독일인의 노력은 그들의 국민성답게 철저하기도 합니다. 독일이 세운 이 재단은 강제 노동의 보상금으로 지금까지 8조 원을 집행했습니다.
<인터뷰>자토프(EVZ재단 상임이사):"돈으로 피해자들의 고통을 보상할 수 있다고 보진 않습니다. 다만, 독일이 과거사의 책임을 다하려 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는 부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치 박물관 창고처럼 보이는 이곳은, 나치가 강탈한 예술품과 문화재를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는 정부 기관입니다. 문화재급이 아닌, 개인 소장품도 반환 대상입니다.
<인터뷰>핸들러(독일 재무부 미해결재산처리센터):"지금까지 접수받은 신청 가운데 아직 주인을 찾지 못한 물품의 건수는 7만 5천여 건 정돕니다. 2018년도까지 이 나머지도 모두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초상화도 50여 년 만에 주인을 찾게 됐습니다. 조만간, 영국에 사는 유태인 유가족에게 전달될 예정입니다.
<인터뷰>쾨니히(독일 재무부 미해결재산처리센터):"신청이 없더라도 저희가 우연히 알게 되는 경우가 있죠. 그럴 땐 반드시 주인을 찾아내 돌려주도록, 애쓰고 있습니다."
독일의 이런 노력은 한국의 문화재를 약탈해 돌려주지 않는 일본과 비교됩니다. 전쟁 범죄를 짓고도 반성에 인색한 일본의 태도 역시,
유럽 학계 입장에선 연구 대상입니다. 강제 징용자의 목숨을 앗아가고 10대 소녀의 젊음을 유린한 일제의 만행은 유럽에도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인터뷰>투헬(자유베를린대 교수):"과거사 문제를 대하는 방식에서 독일과 일본은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일본 또한 지금의 자세에서 벗어나 올바른 길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에 대해 독일 교육계는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인터뷰>그림(독일 교사):"독일의 교사는 나치의 잘못을 왜곡 없이 가르쳐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교육법도 그렇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역사 과목뿐 아니라, 모든 과목 수업에서, 잘못된 이데올로기의 위험성을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한다는 겁니다."
독일인은 다른 누구를 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을 위해 과거사 청산에 노력한다고 했습니다. 독일과 그 후손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이런 노력을 게을리할 수는 없다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