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비 독살 사건(윤정란) 오디오북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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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라디오 연속낭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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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막강한 권력을 누리다 살해당한 왕비들의 이야기를 통해 본 비극적인 조선사를 다룬 책이다. 사대부의 나라였던 조선은 가져서는 안 될 힘을 가진 총명한 왕비들을 합법적인 법의 집행을 통해 독살하였다. 저자는 이를 분명한 정치적인 독살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권력과 정치적인 관계 속에서 죽임을 당한 왕비들의 이야기 이면의 역사를 생생하게 재현해 내고 있다.

조 선조 사상 절대 권력에 가장 근접했던 소혜왕후 한씨,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다가 돌아온 후 인조에게 독살 당하는 소현세자빈 강씨, 신분제라는 시대적 배경으로 인해 인현왕후 모해 혐의로 죽은 장희빈 등 조선시대에 독살당한 왕비들의 이야기가 이 책에 실려 있다. 이들의 이야기는 일국의 왕비마저 사약을 들이키고 숨을 거두어야 했던 조선시대에서 500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는 과연 무엇이 얼마나 달라졌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조선시대 왕비들의 독살사건 이야기는 여성사에 대한 역사적인 이해를 통해 여성의 위치를 다시금 조명해보는 시도가 될 것이다

“이보다 슬픈 역사 팩션은 없다!
살해당한 왕비들의 위대한 드라마가 펼쳐진다!”

나는 왕권을 넘보았다는 죄목으로 죽어야 했다!

조 선은 사대부의 나라였다. 왕과 신하들로 구성된 사대부, 즉 남성들은 자신들의 생존권을 걸고 치열한 정치 투쟁을 벌였다. 그렇다면 권력의 최정점에 있었던 왕비들의 운명은 어떠했을까? 이 책 『조선 왕비 독살사건』은 왕비 살해사건으로 보는 비극적인 조선사이다.
흔히 왕비들이 폐위되거나 사사되는 이유는 투기로 알려졌다. 그 대표적인 예가 성종의 왕비였던 폐비 윤씨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녀가 죽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왕권을 넘보았기 때문이다. 윤씨에게는 아들 연산군이 있었고 성종은 윤씨의 친정 가문 남성들이 연산군을 끼고 자신을 위협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윤씨는 피에 젖은 적삼을 남긴 채 저 세상으로 가야만 했다.
여 성으로서 감히 생각했다는 것만으로 큰 죄가 되는, 가져서는 안 되는 최고의 권력을 추구했던 왕비들에게 사대부들은 가혹했다. 왕과 공모한 이들은 왕비들을 죽음으로 몰아갔다. 어떨 때는 유생들을 끌어들이기도 하고 백성들을 이용하기도 했다. 왕은 신하들과의 경연에서, 독대에서 왕비의 이미지를 깎아내렸다. 왕의 몸이 아픈 것도, 꿈자리가 사나운 것도, 그리고 재해가 발생한 것도 모두 왕비 탓으로 돌렸다. 총명했던 왕비들은 권력의 힘을 정확하게 직시했다. 유교적 여성관에 따라 ‘열녀’가 되어도 미래를 보장받지 못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이에 맞서 자신들의 권위와 자존감을 확보하기 위해 불교와 무속을 논쟁의 한가운데로 끌어오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들은 유학의 권위에 감히 도전했다는 이유로 독살당했다. 비록 합법적인 법의 집행에 의해 죽임을 당했지만 죽음으로 몰아가는 과정 면에서 그것은 정치적인 독살이었다.

조선 왕비 독살사건, 그 이면에 가려진 욕망과 슬픔의 역사!
조 선조 사상 절대 권력에 가장 근접했던 소혜왕후 한씨, 즉 인수대비는 여성 최초로 자신의 어머니를 위한 신도비를 세웠다. 그리고 유학을 숭상하는 조정 대신들과 대립하며 불사를 일으키고 『내훈』을 지어 여성들을 자신의 세력 하에 두는 등 가히 여왕의 지위를 누렸다. 그러나 그녀의 절대 권력 또한 손자인 연산군의 분노 앞에서 무너져 내렸다. 흔히 폭군의 대명사로 알려진 연산군은 사실 조선조 최초로 궁중에서 태어난 원자였으며 그 누구보다 정통성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생모가 폐비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연산은 권위에 큰 상처를 입었고, 폐비 윤씨가 누명에 의해 죽었다는 것을 안 순간부터 조정의 모든 사람들을 적으로 돌리며 피바람을 일으켰다. 폭빈이라는 소리까지 들어가며 아들 성종을 장악했던 탓에 권력의 단맛을 향유할 수 있었던 소혜왕후 한씨는 절대 왕권을 원하는 연산군의 욕망 앞에 무릎을 꿇어야 했다.
소현세자빈 강씨 역시 권력 투쟁에서 희생되어야 했던 대표적인 케이스이다. 쿠데타로 집권했던 탓에 늘 왕좌에 대한 불안이 있었던 인조는 자식과 며느리까지 정적으로 의심했다. 특히나 청나라에 볼모로 갔던 소현세자와 강씨가 현실론자가 되어 돌아오자 이들을 두려워하였다. 서구 문물을 수용해 조선을 강성대국으로 만들려 하던 세자 부부의 꿈을 폐쇄된 조선의 사대부들이 받아들인다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끝내 강씨는 인조를 독살하려 했다는 누명을 써 사사당했고 아들들마저 줄줄이 죽음을 맞았다. 후대를 이은 효종이 북벌에 모든 것을 걸어야 했던 이유도 이러한 전 시대의 비극과 무관하지 않았다.
역사 속에서 요부로 각인되었던 장희빈의 왕비 책봉은 조선의 신분제를 뒤흔든 사건이었다. 역관과 천인을 어버이로 둔 여성이 왕비의 자리에 오르는 것을 조선의 사대부들은 용납할 수 없었다. 사대부들은 『사씨남정기』 등 유교적 명분을 내세운 책까지 집필하며 장희빈을 왕후 자리에서 끌어내리려 했고 이에 세뇌된 백성들은 '미나리요'를 부르면서 인현왕후 민씨의 복위를 기원했다. 결국 장희빈의 적은 신분제라는 시대적 배경 자체였다. 장희빈은 인현왕후를 모해했다는 혐의로 사사되었지만 새로운 시대적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숙종 대 이후 백성들은 비밀 결사단체를 만들어 신분제에 항거했으며 수많은 희생을 딛고 새로운 사회로 나아갔다.
반면에 명성황후의 정치 행보는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최근 뮤지컬과 드라마로 화려하게 부활한 명성황후는 조선의 국모로서 재조명되고 있지만 실제로 그녀가 백성들을 자신의 정치적 근거지로 삼았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생존을 위해 외국의 힘에 의탁했으며 매관매직을 성행시켜 백성들의 살림살이를 어렵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했다. 물론 당대 성리학자 황현의 평가처럼 유교적 여성관에 입각한 비난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으나 실제로 그녀가 백성들에 의거한 정치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분명히 짚어져야 한다.

여성 문화 바람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지금 문화계에서는 여성사 바람이 거세다. 여성 영웅을 소재로 한 드라마들이 줄줄이 선보이고 있고 그 중 「선덕여왕」 같은 경우는 시청률 30%를 육박하며 안방극장을 점령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경제력 상승에 따른 문화 소비 주체로서의 여성의 등장과 맥락을 같이한다. 그러나 정치적, 사회적 측면에서 보면 어떨까? 아직까지 여성 정치인의 입지가 협소하고 남녀평등이라는 구호가 오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인 지위는 여전히 차별적이다. 『조선 왕비 독살사건』의 저자 윤정란 씨가 묻는 것도 바로 지점이다. 일국의 왕비마저 사약을 들이키고 숨을 거두어야 했던 조선시대에서 500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는 과연 무엇이 얼마나 달라졌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여성 문화의 바람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본격 여성 팩션 역사서를 표방하고 있는 이 책이 여성의 제자리 찾기에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저 : 윤정란

1963 년 부산에서 출생하여, 숭실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일제시대 한국기독교 여성운동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전남대 호남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로 재직했으며 현재는 숭실대학교에서 한국사 강의를 하고 있다.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한 여성으로서 기독교 여성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가 점차 영역을 넓히면서 조선시대부터 근대 독립 운동가들, 해방 이후 여성들의 삶까지 역사 속 여성 문제에 몰입하게 되었다.
『조선왕비독살사건』에서 저자는 남성 권력 앞에 무릎을 꿇어야 했던 소혜왕후 한씨부터 진정한 국모가 될 수 없었던 명성황후 민씨까지 왕비들 7인의 비극적인 삶을 현실감 있게 펼쳐 보이면서 그 동안 변방의 사료로 취급받아 왔던 왕비 이야기들 뒤에 가려진 남성과 여성, 왕과 사대부, 유교와 불교 및 부속신앙 간의 정치적 긴장 관계를 상세하게 묘파하고 있다. 그리고 견고한 남성 중심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던 조선시대에서 500년이 지난 오늘날 무엇이 달라졌는지 묻는다. 그 동안 펴낸 저서로는 『조선왕비 오백년사』, 『한국기독교여성운동의 역사』, 『전쟁과 기억』(공저) 등이 있다.

『조선왕조실록』과 조선 사대부들이 남긴 자료들은 왕과 사대부들의 권력을 뒷받침하고 강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모든 기록은 남성들에 의해 쓰여졌다. 왕비들을 비롯해 많은 여성들은 역사에서 철저하게 소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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