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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원론적인 이야기이자.. 종교적인 고뇌, 번뇌에 해당할수 있는 이야기를 한 젊은이의 살해 사건을 계기로 해서 그의 행로를 추적하면서 예수와 그를 둘런싼 이야기들을 다른 각도에서 해석을 해본다.
예수가 신의 아들로 인정을 받기 위해서 신의 능력을 보여주라는 젊은이와 그를 사람의 아들이 아닌 사탄의 아들이라고 말하는 예수...
암튼 기독교에 대해서는 건드리지 않지만, 그 주위에 대란 색다른 시각을 이야기로 풀어가면서 종교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이에 대해 고민하고 번뇌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좀 어렵기는 하더구만....-_-;;
<도서 정보>제 목 : 사람의 아들
저 자 : 이문열
출판사 : 민음사
출판일 : 2004년 6월
책정보 : 페이지 386 / 646g ISBN-10 : 8937480484
구매처 : 오디오북(E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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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독 : 2007/3/30
재 독 :
정 리 :
<이것만은 꼭>
<책 읽은 계기>
<미디어 리뷰>
오늘의 작가상 수상(1979)작품이자 유현목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었던 이문열 장편소설 『사람의 아들』이 출간 25기념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사람의 아들』은 1970년대 초반 작가가 군대에 입대할 무렵 쓰기 시작하여 1973년에 중편으로 완성되었고, 이후 장편으로 개작하여 출간되었다. 초판(1979), 2판(1987), 3판(1993)을 거쳐 4판 개정판까지 거치는 동안, 작가의 문학적 궤적과 같이하게 되었다. 『사람의 아들』은 1979년 6월 15일, 제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어 출간된 이래, 25년 동안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 은경축을 맞이하게 된, 작가의 첫 번째 ‘책’이다. 작가 이문열의 문학적 근원이자 회귀점이라고 자평 타평 하듯이, 출간 당시부터 커다란 화제를 불러일으켜 왔고, 이제 우리 시대의 고전으로 자리 굳혀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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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경북 영양 출생.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서 수학. 197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 『사모곡』으로 등단. 장편소설 『젊은날의 초상』『영웅시대』『시인』『오디세이아 서울』『황제를 위하여』『선택』등 다수가 있고, 중단편소설로 『이문열 중단편 전집』(전5권), 산문집 『사색』『시대와의 불화』, 대하소설 『변경』『대륙의 한』이 있으며, 평역소설로 『삼국지』『수호지』를 선보였다. <오늘의 작가상><동인문학상><이상문학상><현대문학상><호암예술상> 등을 수상하였다. 순탄치 않은 어린 시절을 보내고 중고등학교 중퇴 후 검정고시로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에 입학, 다시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등의 굴곡 많은 인생을 살아온 그의 창작에 대한 열정은 남다르다. [대구매일신문]에 [나자레를 아십니까]가 가작으로 뽑힐 때까지 이문열은 많은 좌절을 경험한다. 초등학교를 제외하고는 서울대 사범대까지 모두 중도에 포기했으며, 신춘문예, 사법고시 등에서 연이어 실패를 맛 보았다. 77년에 등단하고 이듬해 [사람의 아들]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1994년 학문 연구의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교수제의를 받아들여 세종대 강단에 섰으나 3년만에 개인적인 이상실현의 문제와 작가로서 충분히 작품 세계를 이룩할 시간적 여유가 부족해지는 것을 우려, '창작전념'을 위함이라며 교수직을 사임했다. 현재는 조각가 친구의 권유로 경기도 이천에 땅을 구입하여 작업실을 마련했고, 그곳에 인문학적 교양을 쌓고 깊은 학문 연구를 할 수 있는 조그만 자리를 젊은 친구들에게 마련해주고자 뒷동산 부아악負兒岳이라는 산 이름을 따와 <부악문원>을 설립하여 새로운 지식의 샘을 젊은 학도들과 함께 탐구하려는 열정을 보이고 있다. 2000년 5월 이문열의 책 판매량이 2천만 권을 넘어섰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 가운데 삼국지, 수호지 평역을 제외한 순수 창작물의 판매량이 천만 권 이상이라니, 한국인 4명에 한 명은 그의 소설책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각종 문학상 수상작품집 등을 따지면 그의 글을 집에 가지고 있지 않은 한국인은 없다고 해도 무리한 주장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상업적 성공은 이문열을 이해하는 단서 가운데 작은 하나일 뿐이다. 이문열의 작품 세계엔 그의 경험이 고스란이 담겨 있다. 월북한 아버지로 인한 좌절, 전통적인 가풍의 집안은 그의 경험이며, 동시에 그의 소설에서 쉽사리 읽어낼 수 있는 특징이다. <사람의 아들>, <황제를 위하여>, <금시조>, <선택> 등의 책은 이런 특징을 그대로 담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의 경험이 한국 현대가 겪고 있는 현실과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그가 거듭 묻는 질문, 전통과 현대의 문제, 분단 상황의 문제 등은 바로 그의 경험에서 나온 것들이며 한국사회가 피할 수 없는 질문들이다. 이 질문들에 대한 이문열의 대답은 보수적이고 전통지향적인 것으로 보인다. 일부에선 수구주의나 남성우월주의로 비판받기도 했다. <선택>을 둘러싼 논쟁이나, 총선연대 활동이나, 언론개혁을 둘러싼 논쟁이 그것이다. 이문열이 자신의 소설에 담고 있는 주장이 무엇이든 그가 소설을 통해, 또는 소설 속에서 던지는 질문이 한국 사회가 해결해야 할, 바로 그 문제라는 것은 확실하다. |
<줄거리>
1976년 초봄. 경찰서 수사과 남경호 경사에게 살인 사건이 맡겨졌다. 어떤 야산에서 근처의 기도원에 있던 민요섭이란 사람이 잔인하게 살해된 시체로 발견된 것이었다. 남 경사는 먼저 그 기도원을 찾아가 민요섭의 신원을 조사하였으나 원장은 그가 신학대학 후배라는 것 외에 이렇다 할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민요섭이 다녔다는 신학대학을 찾아간 남 경사는 옛 은사를 통해 그의 특이한 성장환경과 학교생활에 대해 들었다. 민요섭은 전쟁고아로 외국 선교사의 양자로 자랐고, 그 신학대학에 진학해서는 우수한 학생이었다. 그러나 상급반이 되면서 불량스럽고 반항적이 되더니 나중에는 무언가 신학적 논쟁 끝에 교수와 대판 싸우고 자퇴해 버렸다는 것이었다.
남 경사는 다시 신학대학 학적부에서 찾아낸 민요섭의 옛 주소를 찾아가 보았다. 다행히 그곳에는 외국 선교사의 가정부로서 민요섭을 기르다시피 한 노파가 살고 있어 다시 민요섭의 성품과 어렸을 적 행적을 들을 수 있었다. 한마디로 작은 성자(聖者)와도 같은 모범생이었다. 그러나 당장의 수사에는 도움이 될 것이 없어 다른 자료를 구하다가 민요섭이 썼다는 노트 한 권을 입수했다. 구체적인 정보는 아니었지만 무언가 그의 내면을 추적하기에 도움이 될 것 같은 노트였다.
이어 남 경사는 그 동네에서 민요섭을 아는 사람을 찾아 그의 과거를 뒤져보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민요섭의 모습이 나왔다. 주로 동네 개척 교회 관계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목사의 뺨을 치고 명망 있는 장로의 젊은 아내를 유혹한 파렴치한이었다. 이혼한 장로 부부를 찾아 확인해 본 결과 그 또한 사실이었다.
혼란된 남 경사는 본서로 돌아가는 길에 민요섭이 남긴 노트를 펼쳐 보았다. 얼른 기억되지 않는 외국 인명과 지명들로 시작하는 소설 같은 것이었는데 첫 토막은 대강 이랬다.
<아하스 페르츠는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날 같은 시각에 태어난다. 그러나 그의 출생을 알리는 별은 검고 불길한 것이어서 경배를 하고 돌아가는 세 사람의 동방박사를 떨게 한다. 바리사이파의 세력 있는 율법사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자라나면서 그 총명함과 영리함으로 부모와 이웃의 기대를 모은다. 어린 나이에 벌서 토라를 모두 암송하고 하느님의 사랑을 받은 자들과 선지자들의 행적을 훤히 꿴다.
하지만 열세 살 때 테도스라는 자칭 예언자를 만나게 되면서 아하스 페르츠의 삶은 뒤틀린다. 테도스를 통해 삶의 어두운 이면과 인간이 겪어야 하는 비참을 두루 살펴보게 된 그는 열심히 율법과 예언서를 읽고 사색하는 것만큼이나 조상들의 신앙에 대한 의문과 회의도 키워갔다. 육체적으로 성숙하면서 그 욕망에도 눈떠 아삽이라는 동네 부호의 젊은 아내를 유혹하고 스스로 성년의 여러 죄악들에 앞질러 빠져들기도 했다. 원죄와 자유의지를 부정하며 학자들과 다투기도 하고 불경의 죄로 회당에서 내쫓기기도 하다가 열아홉 살 되던 해 집을 나선다. 새로운, 참된 신을 찾아서였다.>
어딘가 민요섭을 상기시키는 데가 있는 인물이었지만 수사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노트라 읽기를 그만 둔 남 경사는 민요섭의 주민등록이 처음 옮겨간 부산시로 찾아갔다. 그가 찾아간 곳은 신학대학을 떠난 민요섭이 부두에서 막노동을 하면서 지낼 때 묵었던 하숙집이었다.
남경사는 하숙집 주인인 조 노인을 만나서 민요섭과 그의 아들 조동팔과의 특이한 관계를 듣게 된다. 고등학생이던 조동팔이 민요섭의 꾐에 빠져 함께 집을 나간 일인데, 남 경사는 왠지 그런 그들의 결합에서 사교적 교리와 광신의 냄새를 맡았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며칠 뒤 자신의 집에 든 강도가 바로 자신의 아들 같았다는 의심뿐 조 노인은 그들의 행적을 전혀 알지 못했다.
하는 수 없이 남 경사는 다시 주민등록지를 추적해 민요섭이 다음으로 옮겨 앉은 대전시를 찾아갔다. 그곳에는 그들의 구체적인 행적이 남아 있었다. 그들은 그 도시를 떠도는 사회적 부적응자들과 의지할 데 없는 아이들을 모아 생계를 보살피고 배움의 기회를 주었다. 단순한 봉사활동이라기보다는 무언가 종단(宗團)과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집단생활이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살인 사건 해결에 도움이 되는 구체적 증거나 자료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주변을 탐문해 얻어낸 것은 기껏 그들의 재원(財源) 조달 방식에 범죄의 의심이 가고, 민요섭과 조동팔 둘 사이의 관계가 교주와 열성적인 신도 같은 느낌이 든다는 것,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둘의 관계가 미묘한 갈등을 보이기 시작한다는 점이 감지될 정도였다. 거기다가 더욱 답답한 것은 민요섭의 주민등록이 거기서 더는 움직이지 않고 있는 점이었다.
더는 조사하고 찾아볼 곳이 없자 남 경사는 사건 현장 주변에 제보를 요청하는 전단을 뿌리고 다시 민요섭의 노트에 매달렸다. 어렸을 적 주일학교에 잠깐 다녀본 경험밖에 없는 그에게는 어려운 기독교 교리 문제가 있었으나, 힘들여 읽어가다 보니 아하스 페르츠의 삶이 무언가 민요섭과 밀접하게 연관된 듯한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아하스 페르츠는 먼저 ‘신들의 고향’ 이라는 이집트로 간다. 그곳에서 그는 당시 번성하던 이시스교의 사원을 찾아가 그 사제들에게서 배움을 구한다. 이시스교는 부성신(父性神)인 유대교와는 달리 모성신(母性神)을 모시는 종교였다. 그게 그에게는 큰 매력이었으나 조잡한 다신(多神)의 교의나 낭비적인 제례는 끝내 그를 붙들어 놓지 못했다. 어느 날 믿고 우러러온 늙은 사제로부터 결국은 그 모든 것이 '믿기 위한 미신'에 지나지 않는다는 고백을 들은 그는 절망하여 그곳을 떠난다.
아하스 페르츠가 다음으로 참된 신을 찾아 헤맨 것은 중근동(中近東)이었다. 먼저 농경신(農耕神)인 바알을 찾아보았으나 끝내 유대교 시절에 몸에 의심과 부정을 씻어내지 못하고, 다시 사라진 헤태인(히타이트인)의 신을 찾아 떠난다. 그때 그가 만난 게 무와탈리슈였다.
무와탈리슈는 오래전에 멸망한 헤테 왕조의 후예로, 그는 잃어버린 조상들의 신을 찾는 것을 왕국 회복의 시작으로 삼으려 했다. 아하스 페르츠는 그와 함께 옛 도시의 폐허를 돌며 점토판과 벽돌 조각의 기록들에 의지해 헤테인의 신들을 찾는다. 그리하여 여러 해 만에 그 신들의 계보를 찾고 그 교의를 복원하는 데 성공하지만 그가 찾던 참된 신은 아니었다.
실망한 아하스 페르츠가 다음으로 찾아간 것은 바벨론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2천년 이상 번성해 온 전능신(全能神)) 마르두크를 알아보려 했다. 마르두크의 교의를 배우기 위해 옛 신전을 배회하던 그는 우연한 기회에 바벨론의 옛 영광을 되살리려는 야심가 히메루스와 만나게 된다. 히메루스는 추종자들의 미신을 이용해 그를 왕으로 세우고 자신의 양녀를 왕비로 내준다. 그러나 그 왕은 대리왕으로 희생될 운명이었고, 히메루스는 그 희생의 대가로 달아오른 광신(狂信)을 자신의 왕국 건설을 위한 봉기(蜂起)에 이용하려 했다. 히메루스의 양녀이자 그의 아내가 그런 음모를 알려주어 진작부터 마르두크의 교의에 실망하고 있던 그는 탈출하게 되지만, 그를 위해 히메루스의 종단에 남은 그의 아내는 처참한 죽음을 당한다.
동으로 페르샤 고원에 들어선 아하스 페르츠는 다시 이원론(二元論)인 조로아스터교에 몰두한다. 이는 선신과 악신이 공존하는 종교로 그 종말론(終末論)과 더불어 그에게 깊은 인상을 주지만 역시 그를 마음으로 귀의하게 만들지는 못했다. 다시 인도로 들어간 그는 그곳의 잡다한 신들을 거쳐 불교를 만나지만 여전히 찾고 있는 신을 만나지는 못했다.
마침내 지쳐 서쪽으로 되돌아온 아하스 페르츠는 로마로 들어가서 희랍 철학과도 만나게 된다. 그는 학원가를 떠돌고 석학들을 찾아가며 애지(愛知)의 세계를 더듬는다. 그러다가 평생 해를 연구하느라 너무 많이 해를 쳐다본 탓에 눈동자가 타버린 노인을 만나 그에게서 낭패한 자신을 보고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 뒤 아하스 페르츠는 고향의 광야, 쿠아란타리아에서 단식과 명상 끝에 그들의 새로운 신인 <위대한 영>과 만난다. 그러나 새로운 신의 교리에 해당하는 <쿠아란타리아서(書)>는 제목만 있고 뜯겨져 나가 내용을 알 수가 없다. 다만 그 뒤 예수와 대면하는 아하스 페르츠의 언행을 통해 매우 반기독교적이란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었다.
예수와 아하스페르츠가 만난 것은 다섯 번이나 되는데 그 첫 번째는 광야에서였다. 아하스 페르츠는 스스로 하느님의 아들임을 내세우는 예수에게 세 가지 시험을 한다. 허약한 육체와 영혼으로 고통받고 방황하는 인간을 위해 빵과 기적과 권세를 요청하였으나 예수는 그 요청을 거부하고 아하스 페르츠를 사탄으로 규정하며 물리친다. 이에 아하스 페르츠는 그가 약속한 구원의 허구성을 보고 그를 거부하기로 결심한다.
그 뒤 만남을 거듭하면서 아하스 페르츠는 한편으로는 예수를 설득하고 한편으로는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예수를 제거할 음모를 진행시킨다. 그리고 예수가 인간적인 구원을 기어이 거부하자 로마의 힘을 빌려 그를 처형하고 만다. 하지만 예수의 재림이 걱정되어 죽지 못하고 끊임없이 세상을 배회하며 감시하는 역을 맡게 된다.>
미제(未濟)로 처리될 뻔한 사건은 윤향순이란 창녀를 만나면서 해결의 실마리가 잡힌다. 윤향순은 조동팔이 김동욱이라는 가명으로 김순자란 여자와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추적 끝에 김동욱을 찾아간 남 경사는 그 집에서 <쿠아란타리아서(書)>라는 그들만의 경전을 찾아낸다. 거기에는 그들이 그토록 찾으려 했던 신의 모습이 나타나 있다.
그 신은 일종의 이성신(理性神)으로 위장된 무신론에 가까웠다. 곧 선악도 없고 책임도 포상도 징벌도 없이 오직 인간의 이름으로, 인간을 위해, 인간에게 모든 것을 위임한 존재였다. 그리고 그 교리에 따르면, 야훼는 반쪽의 신이며 독선과 아집으로 인간을 구속한 월권적(越權的) 존재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교리와 민요섭의 죽음 사이에 어떤 관련이 있는지, 또 조동팔이 거기서 무슨 역할을 했는지는 조동팔이 부재중이어서 여전히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며칠 뒤 돌아온 조동팔을 잡고 나서야 그 살인의 내막을 들을 수 있었다. 형사들의 급습을 짐작하고 발작이 늦은 독을 마신 조동팔은 허심하게 털어놓았다.
새로운 신을 찾아내고 그 교의를 구성한 것은 민요섭이었다. 처음 그는 열성적으로 그 신을 믿고 그 교의를 펼치려고 노력했다. 조동팔은 그런 민요섭의 열렬한 사도(使徒)였다. 하지만 경제력이 없던 그들은 범죄를 통한 조달로 자신들의 종단을 유지했다. 조동팔은 김동욱이란 행려사망자의 신분을 위장하여, 작은 범죄로 끔찍한 범죄를 숨기는 방식으로 감옥을 드나들며 충실한 사도를 자처했다.
하지만 먼저 배교(背敎)한 것은 교주인 민요섭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자신이 만든 신의 허구성을 깨닫게 되었고, 기독교적인 용서와 구원의 개념에 향수를 키워갔다. 그러다가 조동팔이 다시 감옥을 피신처로 삼고 있는 사이에 자신들의 종단을 해체하고 기독교로 되돌아가 버렸다.
한편 감옥에서 나온 조동팔은 민요섭이 미래의 사도로 키우려 했던 아이들이 흩어져버리고 기도원으로 들어간 것을 알자 절망적인 분노에 빠졌다. 그의 일탈은 그 새로운 신에 대한 믿음에서 감행된 것이었다. 말하자면 민요섭이 부정해 버린 그 신은 그에게는 정의와 자부심의 근거였을 뿐만 아니라 삶의 기반이기도 했다. 거기다가 거듭된 범죄로 일탈된 그의 삶은 정상적인 궤도로의 복귀가 불가능했으며, 정신적으로 돌아가 용서와 구원을 빌 고향(기독교)도 없었다. 그가 자신의 삶과 세계를 지키는 길은 부정의 부정, 곧 민요섭을 제거하는 길뿐이었다. 조동팔은 죽어가면서도 외친다.
“……이 시각 이전에나 이후에나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은 우리의 신뿐이며, 설령 아무도 느끼지 못하더라도 그 고독한 신성(神聖)은 언제나 당신들의 머리 위에서 빛날 것이오.”
<책속으로>
"자유 의지와 선택의 문제는 더욱 고약하다. 옛적 이곳으로 붙들려 온 우리 조상들에게는 아마도 감탄스럽기 그지 없었고, 또 그래서 창세기의 첫머리에서부터 그 개념을 꾸어다 넣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인간에게 억지로 덮어씌운 그 주관적 환상은 변덕스런 신이 우리 인간을 학대하는 데 좋은 구실이 되고 있을 뿐이지 않은가?"--- p. 227 |
하지만 그 말만은 남 경사의 가슴속에 있는 어떤 확신에 도움을 주었다. 그것이 어떤 쪽이든 극단적인 감정과 감정 사이의 전환은 순간적이라는 걸 남 경사는 여러 번 경험한 적이 있었다. 거기에 힘을 얻은 남 경사가 있을지 모르는 물증의 확보 쪽으로 서둘러 방향을 바꾸었다. 심리적인 동기를 파고들어 봐야 그녀가 줄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으리라는 게 그런 그의 짐작이었다.---p. 324 |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그분의 무책임한 방임입니다. 두 개의 상반된 의지 틈에서 인간들이 피흘리며 투쟁할 때, 그리고 끝내 패배하여 타락과 멸망의 길을 갈 때 조차도 침묵하고 계시던 그 분에게 그 결과인 인간의 죄악을 심판하고 벌할 권리가 있다고 믿으십니까? 그분을 다만 냉혹한 형리가 아니라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p. 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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