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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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데리고 온 남자친구에게서 흠모의 정을 느낀다면?
어느날 갑자기 불쌍하게 사는 장애인과 사랑에 빠진다면?
이중인격을 가진 이혼녀가 총각인 자신을 가지고 논다면?
남편의 부하상사와 사랑에 빠진다면?
어떤 여자가 당신을 만날때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한다면?
헤어져서 결혼한 남자친구에게 어느날 당신에게 전화가 와서 뭔가를 부탁하려고 한다면?
동거하는 남자의 조카와 잠깐동안 사랑에 빠진다면?

일본 여자작가가 쓴 여성의 심리를 아주 재미있고, 솔직하게 잘 표현한듯한 9개의 단편 소설이다.
모두 여자주인공의 시점에 의해서 씌여졌고, 남자중에 일부분은 아주 무기력하고 불쌍한 남자들이다.
참.. 이책이 재미있는것은 넘을듯 넘을듯하면서 선을 넘지 않고, 평소에는 잘 생각하기 어렵지만 사람의 심리를 잘 파해쳐서 이야기에 빠져들다보면 어~ 나에게도 이런면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불륜이야기가 꽤 되는데 남이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멘스라는 말처럼...
불륜이란.. 이래서는 안되는데.. 너무 멋진 이야기라는 생각을 해본다...
왠지 모르게 따스하고 애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뭔가에 자극을 받는다...
저런 사랑은 어떤 기분일까.. 저런 행복은 어떤 기분일까?
조제의 말처럼 죽음같은 것일까?

암튼 초코렛처럼 달콤 쌉싸름한 맛의 책이다...


<도서 정보>제   목 :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원제 ジョゼと虎と魚たち - 1985)
저   자 : 다나베 세이코 저/양억관 역
출판사 : 작가정신
출판일 : 2004년 10월
구매처 : 오디오북
구매일 :
일   독 : 2005/1/10
재   독 :
정   리 :

<이것만은 꼭>
사 랑 이 하 고 싶 어


<미디어 리뷰>
저자 : 다나베 세이코
소설가, 수필가. 1928년 오사카에서 태어나 쇼인여자전문학교 국문과를 졸업했다. 1964년『감상여행』으로 제50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하고, 1978년『꽃같은 옷 벗으니 휘감기네』로 여류문학상, 1993년 제10회 일본문예대상, 1993년 『비뚤어지 일치』로 제28회 요시카와에이지문학상, 1994년 제42회 기쿠치칸상, 1998년『도돈보리에 비 내리는 날 헤어지고 처음』으로 요미우리문학상, 이즈미교카문학상, 이하라사이카쿠상을 수상한 일본 문단을 대표하는 국민 작가다. 그 밖의 작품으로『옛날. 새벽』『여자의 해시계』『부처의 마음은 아내의 마음』『물고기는 물로, 여자는 집으로』등이 있다. 인간에 대한 날카로운 관찰과 뛰어난 지성을 유머로 승화하여 소설과 평전, 수필, 고전문학 번역 등 폭 넓은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2004년 부천영화제 최고의 화제작,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원작을 비롯한 총 9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표제작은 다리가 불편한 소녀 조제와 평범한 대학생 츠네오의 귀엽고도 애달픈 연애담을 그린 작품으로, 일본에서는 소설과 영화 모두 큰 인기를 끌었다. '올해 최고의 연애영화'라는 극찬을 받은 바 있는 영화는 곧 국내 개봉할 예정.

아쿠타가와 상을 비롯한 일본 유수의 문학상을 여러 차례 수상한 저자는 아홉 편의 단편소설 속에서 인생과 연애를 향유하는 "멋진 이중인격"을 지닌, 때론 냉정하고 타산적이면서 은밀히 속내를 감춘 채 사랑에 임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실로 흥미롭게 묘사하고 있다. 감칠 맛 나는 연극적 대사와 미묘한 분위기를 감지하게 하는 문어체의 서술문이 지그재그로 이어지며, 단어 하나하나, 글 한 줄까지 리듬과 의미를 싣고 있으며, 사랑과의 환상과는 거리가 먼 우리 일상의 연애사를 입체적인 캐릭터들을 통하여 예리하고 유머러스하게 그려내고 있다.


<책속으로>어렴풋이 알고 있었어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사랑의 관
그 정도 일이야
눈이 내릴 때까지
차가 너무 뜨거워
짐은 벌써 다 쌌어
사로잡혀서
남자들은 머핀을 싫어해

노랑과 검정이 만들어낸 강렬한 얼룩무늬가 움직일 때마다 햇빛을 받아 번득인다. 조제는 호랑이의 포효에 기절할만큼 놀라 츠네오의 옷자락을 잡는다.
"꿈에 나오면 어떡해……."
"그렇게 무서워하면서 보긴 왜 봐."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걸 보고 싶었어. 좋아하는 남자가 생겼을 때. 무서워도 안길 수 있으니까. ……그런 사람이 나타나면 호랑이를 보겠다고…… 만일 그런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평생 진짜 호랑이는 볼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 p.60

“나는 짜증이 나거나 우울할 때면 다나베 세이코의 책을 펼쳐 든다.
그리고 인생을 사랑하며 사는 법을 배운다.
아무리 어려운 책이라 해도 그걸 가르쳐주지는 않는다.
어려운 이론보다 인생을 행복하게 해주는 게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또, 그걸 모르는 사람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그 사람들에게 다나베 세이코의 책을 권하고 싶지 않다.
너무 아깝다.”

“나 말이야. 지금부터 내 이름, 조제로 할래.”
“왜 네가 조제야?”
“이유는 없어. 그냥 조제가 내게 꼭 어울리니까.”


* 영화 혹은 소설의 내용을 미리 자세하게 알고 싶지 않으시다면, 나중에 보세요 *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그리고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1. 영화 때문에 소설을 알게 되다

너도나도 영화 <조제...>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기에, 어떤 영화인지 한 번 봐야겠다고 생각했었다.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를 다녀온 친구의 적극적인 추천도 한 몫 했다. 개봉을 하고 한참이 지나도록 보러갈 시간을 못 내고 있다가, (게을러서 미루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우연히 극장이 아닌 서점에서 먼저 조제를 발견했다. 노란색 표지가 마음에 들었던 걸까, 진열대에서 제일 먼저 내 눈에 띄었다.

"이 영화, 원래 원작이 따로 있었네?"

새로운 정보를 알게 된 나는 곧바로 그 책을 집어들었다. 영화 <조제...>를 알지 못했다면 그저 무심히 지나쳤을 소설책.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은 짧은 단편이었다. 나는 그것을 자리에 서서 단숨에 다 읽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했다.

"영화를 꼭 봐야겠다."

나는 소설 속 조제와 츠네오에게 반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들을 만들어낸 작가에게도 반해버렸다. 그 짧은 단편에서 내가 느낀 감정은, 이제까지 다른 소설들을 읽었을 때와는 무척 달랐다. 색다르면서도, 강한 그 무언가가 내 가슴을 뒤덮었다. 아마도 그래서 내가 한 가지 사실을 잊어버린 듯하다. '소설을 먼저 보면, 거의 대부분은 영화에 불만을 가지게 된다'는 사실 말이다.


#2. 그리고 영화를 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난 너무도 당황스러웠다.

"어떻게 이럴 수가."

이 생각밖엔 안 들었다. 극장을 찾은 걸 정말 후회했다. 그냥, 소설 속 조제와 츠네오만 내 맘 속에 남겨둘걸. 그러나 이미 늦었다. 나는 그 당황스러움과 불편함으로 두 시간 내내 버텨야했다. 사실 중간에 나가고 싶었지만, 그래도 끝까지 나를 실망시키진 않겠지, 하는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왜 싫었던 걸까. 극장 밖으로 나오면서는 곧장 그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혹시 내가 너무 기대를 했나? 아니면, 소설 속 이미지가 넘 강하게 남아있나?

차근차근 그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나서 지금 내가 여기서 말하려 하는 것은 단순히 소설과 영화의 비교가 아니다.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 얼마나 형편없는 작품인지를 말하려고 한다.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거의 100이면 99의 비율로, 다들 좋다고 했다. (최소한 내가 아는 이들 중 나머지 1%를 채우는 사람은 알엠님뿐이고, 소설과 영화를 모두 본 사람들 또한 거의 대부분 소설보다 영화가 더 낫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나는 이 영화를 깎아내리려 하고 있다. 사람들이 나를 이해 못해도 좋고, '소설과 영화는 별개야, 그것도 모르냐'라고 욕을 해도 좋다. 아무튼 나는 이 영화가 너무 너무 싫다.


#3. 내가 소설 속 츠네오에게 반한 이유, 내가 영화 속 츠네오에게 실망한 이유

조제와 츠네오의 첫 만남, 나는 이 장면을 읽을 때부터 츠네오에게 반했고, 이 장면을 봤을 때부터 츠네오가 싫었다.

사실 이 부분은 소설에서나 영화에서나 매우 중요한 장면이다. 두 사람이 말 그대로 '처음' 만나는 장면이니까 말이다. 영화에서는 ㅡ 대부분 영화를 먼저 봤을 테니 잘 알겠지만 ㅡ 츠네오가 굴러떨어지는 유모차를 그냥 멀뚱히 바라만 볼 뿐이다. 언덕길을 다 내려와서 어딘가에 부딪혀 멈출 때까지, 할머니가 숨넘어가는 목소리로 안을 들여다보라고 할 때까지.

하지만 소설 속 츠네오는 다르다. 적극적으로 몸을 던져 유모차를 막고 붙든다. 자기가 다칠 위험을 감수하고서. 그러니까 영화 속 츠네오는 아기가 타고 있을 ㅡ 물론 영화에선 그 유모차에 든 것이 보물일 거라는 둥 여러 가지 소문이 나돈다. 하지만 츠네오는 그 유모차가 할머니의 유모차인 줄 모르고 그 상황에 처한 거였다 ㅡ 유모차가 내리막길로 위태위태하게 떠밀려가는 것을 그저 '보고만' 있었을 뿐이고, 소설 속 츠네오는 그 안에 타고 있을 아기 ㅡ 조제는 아기가 아니지만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겠지 ㅡ 가 다치는 걸 막으려고 자기 몸을 던져서 구했다.

그 이후 상황에서도 둘의 태도는 차이가 난다. 영화 속 츠네오는 머뭇머뭇 거리다가 할머니의 집까지 데려다달라는 명령 아닌 명령을 받아 엉겁결에 조제네 집까지 '따라' 가고, 소설 속 츠네오는 할머니가 괜찮다는데도 혹시 또 나쁜 사람들을 만날지 모르니 자기가 '바래다주겠다'고 한다. 자기가 더 흥분해서 유모차를 밀친 그 '나쁜 놈' 욕을 마구 하면서. 어쩌면 소설 속 조제는, 나처럼 이때부터 벌써 츠네오에게 반한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영화 속 조제는, 츠네오가 별 볼 일 없는 녀석이기에(?) 이별에 그렇게 덤덤했던 건지도 모른다. (마지막 문장은 그냥 우스개소리로 받아넘겨주길)

마음씨 좋고 평범하게 생긴 츠네오
평범한 성격에 잘 생긴 츠네오


사실, 스크린에 등장하는 츠네오의 얼굴을 보자마자 적응이 안됐다. 그는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잘 생겼고, 그래서 오히려, 이야기에 방해가 됐다. 그냥 '마음씨 좋고 평범하게 생긴' 사람이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래, 여기까진 순전히 내 개인적인 바람이겠지. 소설 속 츠네오가 평범하게 생겼을지 아주 아주 잘 생겼을지 아니면 아예 못 생겼을지, 그건 각자 생각하기 나름이니까. 그렇지만 그 '잘생긴 츠네오'가 '평범하게 생'기지는 않았더라도 '마음씨 좋'은 사람이길 기대했던 나는 또다시 실망하고 말았다. 물론 영화 속 츠네오가 나쁜 놈(?)은 아니다. 그 정도면 '평범한 성격'이지 뭐. 하지만 그게 문제다. 조제를 사로잡으려면, 아니 조제의 날카로운 성질을 잘 받아주려면, '평범한 성격'갖고는 안된다.

영화 속 츠네오의 마음에 안 드는 짓들(?)은 한두 가지가 아니므로 일단 넘어 간다. 가장 마음에 안 들었을 때는 조제네 집을 수리하는 날, 그 녀석이 먼저 조제의 손을 붙잡으며 불확실한 자기감정을 표현한 장면에서다. 자기감정에 자신도 없으면서 먼저 다가가선, 조제 마음만 혼란스럽게 하는 못난 녀석이다. 알엠님 표현을 빌려 쓰자면, 조제와의 이별 후 "울음을 터뜨리는 것으로 스스로를 위로하는" 못난 녀석이다.

그리고 이건 정말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조제의 외모도 그렇게 마음에 드는 건 아니다. 좀 더 귀엽고, 좀 더 당돌한 ㅡ 영화 속에 나온 옆집 꼬마애 같은 그런 이미지 ㅡ 그녀였다면 영화도 더 재밌지 않았을까. 성격도 그러하니 말이다. (하지만 그러한 조제의 성격을 영화 속 조제는 너무 잘 표현을 해주고 있어서, 더 이상의 불만은 없다.)


#4. 괜한 삼각관계, 이 설정도 싫다

조제와 츠네오의 사랑에, 꼭 그렇게 제3자를 집어넣을 필요가 있었을까. 그냥 두 사람의 감정만으로도 충분히 영화를 잘 이끌어갈 수 있었을 듯한데.

물론 소설 속 츠네오도, 조제 하나만을 바라본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최소한, '양다리'는 걸치지 않았다. 조제네 집을 드나들며 유모차를 밀어주기도 하고, 궂은 일을 도맡아 해주기도 하지만, 처음부터 조제에게 사랑을 느꼈던 건 아니다. 그저 '아는 여자', '아는 친구', 혹은 '도움을 주고 싶은 사람', 그 정도였을 뿐 ㅡ 그는 조제의 몸집이 작고 얼굴도 앳돼서, 처음엔 어린 소녀인 줄 알았다가 나중에 자기보다 두 살 위라는 걸 알고 깜짝 놀란다 ㅡ 자기는 대학 생활을 하며 공부도 하고 연애도 한다. 자기 시간을 조제를 돕는 것에만 쓰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대학 친구들과도 어울리고, 시험 기간엔 공부하느라 못 들르기도 하고, 동아리 활동도 하고, 연애도 하고. 그러다가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한 후, 한참 만에 다시 찾은 조제와 살게 된다. 그냥, 그게 원래 정해진 길이었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그런데 이 놈의 영화 속 츠네오는 딴 여자들에게 눈길을 주면서 동시에 조제의 손도 붙잡는다. 이 놈은 대체 무슨 욕심이 이렇게 많은 건가. 그 녀석의 대학 생활, 특히 그 녀석의 연애사를 굳이 영화에서 모두 보여준 이유는 아마도, 소설 속 츠네오 역시 자유로운 연애를 즐겼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 억지로 끌어다 온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ㅡ 조제의 증세가 뇌성마비는 아니고 그 비슷한 알 수 없는 무언가라는 것을 알려줄 때나, 할머니가 조제를 밖에 데리고 나가기 싫어한다는 걸 말해줄 때에도 영화가 소설 내용을 억지로 짜맞추듯이 보여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ㅡ 그러면 그냥 그랬다는 것만 알려주고 말 것이지, 왜 굳이 또 카나에라는 인물을 끌어와서 괜한 삼각관계를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아까 둘의 첫 만남이 소설과는 약간 다르게 설정된 것과는 달리, 이 삼각관계는 아예 소설에선 없는 설정을 새로 만들어서 집어넣은 것이다. 그런 설정이 몇 개 더 있는데, 그 중에서 마음에 드는 거라곤 츠네오의 대학 후배 (조제가 주워서 쓰던 헌 책의 주인공)의 캐릭터밖에 없다. 왜 굳이 유모차 안에 든 것을 비밀스럽게 포장해서 사람들이 할머니에 관한 이상한 소문을 만들어내게 했는지도 모르겠고 ㅡ 사실 그래서 츠네오와 유모차의 첫 만남이 더더욱 생뚱맞게 느껴졌다 ㅡ 앞에도 말했듯이 이 삼각관계의 설정은 정말 정말 마음에 안 든다.

그 설정이 소설과는 다른 영화라는 장르에 극적 긴장감을 높여 주기 위해서였다거나 조제와 헤어진 츠네오에게 변명 거리를 만들어주려는 의도였다면, 더더욱 마음에 안 든다. '극적 긴장감'은 할머니가 츠네오를 집에 못 오게 했던 걸로 ㅡ 이 역시 소설과는 다른 부분. 이럴 거면 차라리 그냥 소설에서처럼 츠네오가 취업 준비로 바빠서 오랫동안 조제네 집을 찾지 못했다는 것만 보여줬어도 괜찮았다. 취업이 잘 안돼서 초조해하는 츠네오와, 츠네오를 기다리는 조제를 보여주는 것만으로 충분했을 텐데, 꼭 굳이 츠네오가 오랫동안 못 올 이유를 억지로 만들어 줬어야 했을까. ㅡ 충분히 끌어갈 수 있었고, 굳이 이쁘장한 카나에가 없었더라도 츠네오는 언젠가는 조제를 떠났으리란 걸, 관객들은 이해할 수 있었을 텐데.


#5.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에는 호랑이가 없다

물론 조제가 츠네오 옆에서 호랑이를 보는 장면은 영화 속에도 등장한다. 하지만 영화에서 그 장면은 있는 듯 없는 듯했다. 별로, 멋진 장면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조제가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꼭 보려고 했었어. 사랑을 못 하면 호랑이도 영영 못 볼 거라 생각했어."라는 대사를 할 때에도, 무언가 '억지'스러워 보였다. 내가, 소설 읽으면서 너무 기대를 했던 탓일까?

내가 기대했던 장면이 몇 개 더 있다. 위에서 말한 동물원 장면(☞ 책갈피), 그리고 츠네오가 한참 뒤에 할머니 없이 혼자 사는 조제를 찾아갔을 때 느꼈을 그 애틋함, 무덤덤하던 조제가 츠네오에게 매달리는 모습, 그 후 두 사람이 첫키스를 하고 섹스를 나누는 장면(☞ 책갈피). 그러나 영화에서 이 장면들은 소설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아니, 다르다기보단 영화가 소설 속 장면들을 모두 여럿 망쳐놓았다. 조제와 츠네오가 호랑이를 보러간 장면은 소설 속 장면을 억지로 끌어다놓은 것처럼 보였고, ㅡ 위에서 말했던 몇몇 장면들처럼 소설을 억지로 설명하는 것 같았음 ㅡ 조제와 츠네오가 섹스를 하는 장면은 소설에서 그 부분을 읽을 때 애틋하고 아름답게 보였던 것과는 달리. 너무 민망했다. 결코 눈으로 직접 봐서 그런 게 아니다. 영화가 분위기를 그렇게 끌고 간 게 문제다. 소설에서 그 장면은, 그렇게 억지스럽지 않다.

이런 아쉬움들은, 그저 소설을 먼저 읽었던 내가 멋대로 상상했던 장면들이 영화에서 그대로 재현되지 않았다는 아쉬움이 아니다. 내가 기대했던 장면들은 모두, ㅡ 아까 말했던 둘의 첫 만남까지 ㅡ 영화에서나 소설에서나 매우 중요한 장면들이다. 동물원에 있는 호랑이는 그냥 호랑이가 아니라 영화의 제목에 등장하는 호랑이이고, 두 사람이 한참 뒤에 만나 나누는 섹스는 두 사람의 감정을 표현하는 중요한 장면이다. 그런 장면을 정말 어이없게 제멋대로 만들어놓았으니, 내가 화가 나는 건 당연하다.


#6. 그래도 영화를 끝까지 보길 잘했다

영화가 100% 내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은 아니다. ㅡ 사실 극장에서 볼 때는 그랬었는데 다시 한 번 차근 차근 생각을 해보니까 ㅡ 조제와 츠네오가 여행을 갔을 때, 그 부분은 참 마음에 들었다. 특히 두 사람의 침대에서 '물고기'가 등장했던 장면. 그 장면은 조제가 물고기를 생각하며 끝이 났던(☞ 책갈피) 소설의 여운을 한층 깊게 되살려냈다.

그리고 마지막 결말.

소설에서는 이들의 이야기에 마침표를 찍어주지 않는다. 둘이서 영원토록 같이 사랑하며 같이 사는지, 나중엔 애도 낳고, 행복하게 사는지, 아니면 슬프게 헤어져버리는지, 소설은 그런 것들에 대해선 말해주지 않는다. 중요한 건, 두 사람이 '지금 현재' 강렬히 사랑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지금 현재' 행복하다는 것. 소설은 그 사실만을 다시금 정확하게 일깨워주고는 끝이 난다. 나는 이 짧은 단편을 읽고 나서 이보다 멋진 사랑 얘기는 없다고 생각했다. 참으로 강렬하면서도,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행복한 이야기.

그랬던 소설과는 달리 영화는 두 사람에게 혹독한 마침표를 찍어준다. 이별,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을지라도 가슴 아픈, 이별. 마치 잠깐 볼 일 보러 나갔다가 다시 돌아올 것처럼, 무덤덤하게 조제네 집을 나서는 츠네오와 역시 아무렇지 않은 듯 인사를 건네며 마지막 선물을 주는 조제. 그렇게 집을 나선 츠네오는 결국 길바닥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끝까지 담담하게 1인분의 고등어를 굽는 조제도, 카메라가 없는 곳에선 츠네오처럼 서럽게 울지 않았을까.

츠네오가 없어도, 혼자서 그럭저럭 삶을 꾸려가는 조제의 뒷모습에서, 나는 안타깝긴 했지만 그런 조제를 보고 안심했다. 그녀라면 앞으로도 잘 살 수 있을 거라는,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맛있는 고등어구이와 계란말이 반찬으로 배불리 밥을 먹고 힘을 냈을 거라는, 소설 속 조제와 츠네오도 나중에 결국은 헤어지더라도, 소설 속 그녀 역시 영화 속 그녀처럼 잘 살아갈 거라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어쩌면 소설처럼 엔딩크레딧이 오를 때까지 두 사람이 행복하게 잘 사는 모습만 보여줬었다면, 이 영화는 더더욱 유치한 사랑 얘기가 돼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ㅡ 특히 이런 식으로 영화를 만들어놓은 감독의 능력으로라면. (만약 둘이 헤어지지 않고 얘기를 끝낼 의도였다면, 소설에서처럼 아까 그 '물고기 장면'을 엔딩으로 해도 좋았을 듯하긴 하다)


#7. 소설이 아니었다면

이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가 이만큼의 호응을 끌어냈을까? 아니, 이것은 물음 자체가 성립하지 않으므로 다시, 이 영화를 만들어낸 감독은,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를 써낸 다나베 세이코 없이 혼자서 다른 좋은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앞 문단에서 이 영화의 몇 가지 마음에 드는 점을 언급했음에도 불구하고, 미안하지만, 난 그런 기대 따위는 하지 않겠다. 이 감독의 다음 작품을 결코 기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럴 수 없을 거라는 말이 아니라 미리 기대는 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이 장면이 마음에 안 들고 저 사람의 캐릭터 변형이 마음에 안 들고, 그런 걸 다 떠나서 이 영화는, 어떤 괜찮은 이야기의 틀을 빌려와서 좀 '있어 보이게끔' 제멋대로 포장한 작품이라고, 감히 말한다. 우리는 어떤 작품이 '괜찮은' 작품인지 '괜찮아 보이는' 작품인지를 잘 구분해야 한다. 후자의 경우 괜찮아 보이는 듯하지만 실은 매우 헐거운 구조로 엉성하게 짜여진 엉터리일 가능성이 높다. '보통'도 아니란 소리다. 그러한 '형편없는' 작품이 몇몇 색다른 요소로 '괜찮아 보이는' 거다.ㅡ내가 그래서 지난 PIFF때 <주홍글씨>를 보고 잠시 착각했었다ㅡ그러니까, 속지 말자.


#8. 다시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을 찾다

그래서 영화를 다 보고 나서, 극장과는 좀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일부러 서점에 들렀다. 소설 코너로 달려가서 애타게 조제를 찾았다. 그렇게 다시 소설을 찬찬히 읽고 나니, 감독이 더더욱 미웠다. 물론 어떤 하나의 작품을 새로운 틀과 새로운 재료로 재창조해낸 작품은 이미 그 원작과는 별개의 것이다. 그러나 몇몇 요소들을 바꾸거나 새롭게 집어넣는다 해도, 그 원작이 가진 '이미지'는 고스란히 되살려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게 아니라면 말 그대로 원작의 '외피'만을 '빌려'오는 꼴이 돼버린다.

'두 시간'여 동안 편하게 의자에 앉아서 감상했던 영화보다, 단 '십 분' 동안 불편한 자세로 서서 읽었던 소설의 여운이 훨씬, 훨씬 더 깊고 강렬했다. 그렇게 다시 읽은 소설이 아니었다면 기분이 나빠진 채로 집에 들어갈 뻔 했다.

"나는 짜증이 나거나 우울할 때면 다나베 세이코의 책을 펼쳐 든다. 그리고 인생을 사랑하며 사는 법을 배운다. 아무리 어려운 책이라 해도 그걸 가르쳐주지는 않는다. 어려운 이론보다 인생을 행복하게 해주는 게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또, 그걸 모르는 사람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그 사람들에게 다나베 세이코의 책을 권하고 싶지는 않다. 너무 아깝다." ㅡ 야마다 에이미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2003)

* 원제 : ジョゼと虎と魚たち
(Josee, the Tiger and the Fish)
* 감독 : 이누도 잇신
* 각본 : 와타나베 아야
* 배우 : 츠마부키 사토시 ... 츠네오 역
이케와키 치즈루 ... 조제/쿠미코 역
우에노 주리 ... 카나에 역
* 상영등급 : 만15세
* 상영시간 : 116분

- 2004.11.10 p.m.12:05 CGV 서면

* 원작 소설 : 다나베 세이코,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 그러고보니 마음에 드는 장면이 하나 더 있어요. 츠네오가 조제네 집에서 '정말 정말 맛있게' 밥을 먹는 장면. 개인적으로 다른 영화에서 봤던 시식(?) 장면들 중에 제일이었다고 생각해왔던, <까페 뤼미에르>에서 여주인공이 감자조림을 먹던 장면을 가볍게 제압(?)했음. ^^;;


+2) 얼마 전 두 페이지에 걸쳐 얘기했던 미사 OST와 함께 도착한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의 노오란 표지와 알록달록한 제목, 전 그것만 봐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아홉 편의 단편 중에 아직 두 편밖에 읽어보질 못했지만, 한꺼번에 다 읽어버리고 싶지 않아요. 너무 아까워요. 어차피 다나베 세이코 씨가 대단한 작가라는 것은 알았으니, 서두를 필요 없겠죠? ^-^


+3) 그 아홉 편의 단편들, 제목만 한 번 살짝 보실래요? 제목에서부터 '색다름'이 물씬 풍겨납니다.

- 어렴풋이 알고 있었어
-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 사랑의 관
- 그 정도 일이야
- 눈이 내릴 때까지
- 짐은 벌써 다 쌌어
- 사로잡혀서
- 남자들은 머핀을 싫어해

어때요? 전 너무나 기대되는 작품들이에요^-^


+4) 아아, 그나저나 이렇게 영화를 '씹어'놓고 나니 살짝 걱정이 되는군요;;


+5) 영화만 보신 분들께는, 사실 소설을 추천하는 게 쉽지만은 않네요. 영화를 먼저 보고 소설을 읽으시면 밋밋하다고 여기실 수도 있고, 또 대부분 영화를 먼저 보신 분들의 반응이 그러했거든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을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서점에 들러서 한 십 분 정도면 다 읽을 수 있는 짧은 단편입니다. 저도 다시 읽을 땐 자꾸만 영화 속 장면들이 떠올라 소설 읽기에 방해가 됐지만, 그래도 역시 처음 읽었을 때처럼 그 느낌이 강렬하고, 좋았어요. 아니, 다시 확인했죠, '소설 속 그들이 훨씬 더 멋지다'는 걸요.


+6) 소설과 영화를 모두 안 보신 분들께는, 먼저 소설을 읽어보시라고 권해드립니다. 영화를 보려고 마음먹고 계셨던 분들도, 우선 소설을 먼저 읽고 나서, 다시 영화가 괜찮은 작품인지 유심히 살펴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네요. 혹시라도 괜히 소설을 먼저 읽은 탓에 영화가 마음에 들지 않으시더라도, 영화보다 소설이 주는 느낌이 더 강렬할테니 손해 볼 것 없습니다. 소설도 좋고, 영화도 좋으시다면, 좋은 작품 두 개를 건지는 셈이 되구요, 소설을 먼저 읽고 실망했다가 영화를 보고 좋아진다면, 그것도 괜찮은 수확일 테구요. 확실히, 영화를 먼저 보면 소설을 읽으면서 상상하는 범위가 줄어들게 되니, 우선 먼저 소설을 찾아 읽으시기를!


+7) 소설만 보신 분들께는, 이 글 자체가 말하고 있듯 절대 영화는 추천하고 싶지 않습니다. 두 시간이 사실은, 아깝습니다.


+8) 굳이, 이 영화를 보시려면, 아직 기회가 있더군요. 며칠까지인지는 몰라도 하이퍼텍나다와 연세대 100주년 기념관에서 이 영화를 아직까지 상영해주고 있더군요!! (나다의 마지막 프로포즈도 끝났는데 말입니다) 연대 가서 보는 게 티켓값을 줄일 수 있으니 (나다는 어차피 하루 한 번인가 상영한다고 들었어요) 참고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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