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근둔, 진간꼭의 신화,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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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와 고졸중퇴라는 컴플렉스를 가졌지만,

그것에 한탄하지 않고 자기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서

택시기사에서 출발해서 건설회사, 영업, 경찰용품사업, 불빛이나오는 팬 등을 개발해서

현재 연매출 80억원 이상을 올리는 업체를 경영하고 있다고 한다...

철저한 자기 반성, 노력, 끈기, 도전정신, 비전... 배울것이 상당히 많은 사람임에 틀림없다.

실패하는것보다 노력하지 않을까봐 두렵다는 김동환씨의 말...

가슴깊이 간직하고...

좀 더 이사람에 대해서 분석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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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부자 K씨의 인생 이력서


이 이력서를 읽어가다 보면 여러분은 그보다 월등히 좋은 조건에서 학교생활이나 직장, 가정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이 이력서야말로 평범한 사람들도 생각과 습관을 바꾸면 성공과 행복, 부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는 신체장애, 짧은 학력, 가난 등 3개의 핸디캡을 가지고 있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현실의 편안한 삶에 안주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957년 출생
1965년 ( 8살) 초등학교 1학년, 소아마비 장애
1972년 (15살) 친척 도박빚으로 빚쟁이에 시달림. 계란장사, 떡장사 나섬(중학교 2학년)
1975년 (18살) 고등학교 2학년 중퇴(생활궁핍)
1978년 (21살) 영업용택시 운전
1979년 (22살) 방송통신 고등학교 입학
1982년 (25살) 건설회사 소사로 일함, 방송통신대 농학과 진학
1985년 (28살) 건설회사 퇴사
1986년 (29살) 액서서리 사업시작, 6개월뒤 실패
1987년 (30살) 단돈 4만원으로 가스총 외판원
1989년 (32살) 결혼
1992년 (35살) 반디펜 개발
1996년 (39살) 도로표지병 개발
현 재 (46살) 연간 매출액 80억원 이상 달성



계란과 떡을 팔았던 어린소년


1,000만원에서 출발해 1억원을 모은 사람과 10억원에서 시작해 1억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비교해 보라. 전자는 자신감을 밑천으로 백만장자가 될 것이고, 후자는 상실감으로 가난뱅이가 될 것이다.


어릴 때 소아마비에 걸려 장애인이 된 사람, 고등학교 2학년 중퇴, 계란장사, 떡장사, 가스총 외판원, 택시기사, 사업실패, 그리고 재기에 성공해 연간 8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중소기업 사장으로 변신.
삶의 밑바닥에서 정상으로 우뚝 선 사람의 성공이력서다. 길라씨엔아이 김동환(46) 사장의 인생 이력에는 많은 굴곡이 있었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들과 한번 비교해보라! 대부분의 독자들은 김사장보다 평탄한 삶을 살아 왔을 것이고, 가정환경이나 주변여건도 훨씬 좋았을 것이다. 김사장이 험난한 인생의 질곡에서 벗어나 성공한 비즈니스맨으로 일어설 수 있었던 성공 X파일은 무엇일까? 김사장의 성공스토리를 듣다 보면 그가 뿜어내는 정열과 결단력에 감동하게 된다. 나보다 못한여건에서 출발해 행복과 성공을 쟁취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감동과 자신감을 불어 넣어준다.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솟아 오르는 것을 느낄 것이다. 꼭 성공하고 싶다는 간절한 열망이 있다면.



에스키모인의 늑대사냥
김사장의 성공 X파일을 열어보기 전에 현실에 그냥 만족하는 삶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에스키모인들의 늑대사냥 방법에서 알아보자. 에스키모인들에게는 선조대대로 내려오는 늑대사냥 방법이 있다. 얼음바닥에 가축의 피를 가득히 묻힌 칼을 꽂아 놓으면 후각이 좋은 늑대가 어슬렁 어슬렁 칼주위로 몰려든다. 그리고 주위를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칼에 묻은 피를 핥기 시작한다. 피맛을 알고, 먹는 속도가 빨라진다. 피를 다 먹은 늑대는 이윽고 혀로 날카로운 칼을 핥게 된다. 자신의 혀에서 피가 나오고, 늑대는 추위로 혀에 감각이 없어져 이것이 자신의 혀에서 나오는 피인지도 모르고 계속 먹어댄다.
감각이 무디어지고 늑대는 결국 그렇게 자기 피를 흘리며 죽어간다. 에스키모인들의 저녁식사 반찬감이 되는 것이다.
세상이 변하는데도 자기자신만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과거를 노래하고 현실에 안주한다면 우리들도 늑대와 같은 신세가 되고 만다. 현실의 가난에서, 지금의 나태와 게으름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결국 늑대와 같이 날카로운 칼날에 혀를 베이고 말 것이다.


이제 길라씨엔아이 김동환 사장이 어떻게 가난과 고교중퇴, 신체장애라는 3개의 커다란 핸디캡을 딛고 정상의 자리에 설 수 있었는지 성공 X파일을 들추어보자. 그는 현실에 만족하지 않았고 항상 변화를 시도했다. 피덩어리가 주는 현실의 달콤함에 취해있었던 늑대와는 달리 현실에 만족하지 않았다. 항상 변화했다.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고교중퇴라는 학력을 보완하기 위해, 신체장애라는 단점을 이겨내기 위해 그가 눈물과 깡으로 살았던 과거로 돌아가보자.


그는 57년 전북 익산의 부자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1학년때 소아마비에 걸렸다. "어릴적부터 장애인이었어요. 그때는 방을 걸어다니는 것이 아니라 몸을 뒤척이며 굴러다녔죠. 어머니는 방에 동아줄을 매달아 놓고 제가 줄을 잡고 걸어다니도록 훈련을 시켰어요.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제가 이 세상을 혼자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쳤어요. 넘어져서 울고, 어머니도 울고 그렇게 어린 시절을 보냈어요." 신체장애에 시달렸던 그는 이번에는 가난이라는 고난을 당하게 된다. "중학교 2학년 때였어요. 재산을 관리하던 친척이 도박으로 재산을 탕진하면서 집이 빚쟁이들에게 넘어가게 되었어요.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힘들었어요. 학교도 제대로 다닐 수가 없었죠. 어머니와 저는 또 한번 울었어요.
부자집에서 잘 살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거리로 쫓겨나는 신세가 된다는것을 생각해 보세요."


그는 같은 1억원이라도 가치가 다르다고 말한다. 1,000만원에서 출발해 1억원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10억원으로 시작했던 사람이 돈을 잃고 1억원을 가지고 있는 경우 그 차이는 엄청나다. 돈의 현재가치는 1억원으로 모두 같지만 미래가치는 현저히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1,000만원으로 시작한 사람은 자신감이라는 백만대군을 얻어 더욱 열심히 삶을 살고 돈을 모아가게 된다.
반면 10억원에서 돈을 잃은 사람은 좌절과 패배감에 젖어 오히려 재산을 탕진한다. 그만큼 자신감은 우리에게 삶의 전체를 바꿀 수 있는 활력소로 작용하는 것이다.


실패하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노력하지 않는 것이 두렵다
중소기업 단체중 팔기회(八起會)라는 모임이 있다. 대기업이나 원청업체에게 제품을 공급하고 어음을 받았는데 이들 어음이 휴지조각이 되면서 부도가 났거나 경영상태가 힘든 중소기업 사장들이 만든 단체다. 부도를 당했지만 '칠전팔기(七顚八起)의 정신으로 일어서자'는 의미에서 팔기회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전에 팔기회 회장과 인터뷰를 한적이 있다. "자신감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기업이 잘 나갈 때에는 무서울 것이 없지만 한번 쓰러지고 나면 바로 좌절하게 되지요. 자신감을 찾지 못하는 사람은 그대로 망한 회사로 남아있고, 자신감을 가지고 현실을 극복하려는 사람들은 다시 재기를 하는 것을 많이 보았어요. 문제는 자신감이예요." 이는 꼭 기업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들 삶과 바로 직결된다. 입사시험에서 떨어지거나, 회사에서 쫓겨나거나, 집안이 갑자기 기울거나, 사기를 당할 경우 우리는 자신감을 잃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실의에 빠져 있다가 자살이라는 극한 선택을 하기도 한다. 언제나 시련은 있게 마련이다. 잠시 내가 실패했다고 해서 초조해 하거나, 자기를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 다시 힘을 내어 자신을 연마하고 재도전해서 성공하면 되지 않는가? 세계적인 농구스타 마이클조던은 '실패하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노력하지 않는 것이 두렵다'고 말했다.


김사장의 얘기로 다시 돌아가자. 졸지에 빚더미에 앉게 된 그는 어머니와 함께 시골시장을 돌아다니며 계란과 떡장사를 했다. "주변 상인들이 장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어요. 방해를 했죠. 텃세라고 있잖아요.
어느 날은 시장경비원이 다가와 계란과 떡이 담긴 바구니를 발로 걷어 차버렸어요. 땅에 떨어진 계란과 떡을 먹으며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어머니는 경비원의 발을 잡고 애원했지만 소용없었어요." 당시 그의 소원은 남에게 쫓기지 않고 장사할 수 있는 시장 한켠의 1평 땅을 구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가난 때문에 고등학교 2학년 때 중퇴했다. 잠을 잘 곳이 없어 남의 집창고에서 몰래 자다가 쥐한테 물어 뜯기기도 하고, 쓰레기통을 뒤져 버려진 음식찌꺼기로 허기진 배를 채우기도 했다. 난지도에 가서 쓰레기를 줍는 일도 했다. 그야말로 삼류 밑바닥 인생 그 자체였다.
"20대 초반이었을 때 영업용 택시를 몰았어요. 지도책을 사다가 서울은 물론 전국의 길거리를 외웠어요. 손님들이 가장 빠른 길로 갈수 있도록 했죠." 그러던 어느날 유명 국회의원이 그의 택시를 타게 되었다. 그의 타고난 부지런함과 성실성을 알아보았던 국회의원은 자기차를 몰아달라고 부탁한다. "영업용택시에도 신용이 있고, 서비스 정신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항상 고객입장에서 차를 몰았어요. 그분이 저를 잘 본 것 같아요." 이후 그는 영업용 포니 승용차에서 그라나다 고급차를 몰게 되었다.


6개월만에 사업 실패
당시 대기업 초임이 19만원 이었는데 그는 개인운전사로 있으면서 30만원을 받았다고 한다. 준비를 하고 있으면 반드시 기회가 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공부에 대한 집념이 대단했다. 가난 떄문에 못배운 것이 한(恨)이었다. "방송통신 고등학교에 입학해 학업을 계속했어요. 또 방송통신대 농학과에 들어가 공부를 이어갔죠. 일을 해 모은 돈으로 저녁에는 공부를 했어요." 그가 평범하지 않다고 생각한 국회의원은 그를 굴지의 건설업체인 S사에 소개시켜준다. "거기서 소사로 일했어요. 복사하고, 심부름하고, 허드렛일을 했는데 저는 최선을 다했어요. 대학을 나온 같은 또래 직원들은 정식사원으로 넥타이를 매고 있었죠." 그는 소사직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식직원 시험을 치고 결국 S기업에 정식사원으로 들어가게 된다. 83년부터 85년까지 S기업에서 일을 했다. "아무도 저를 인정하지 않았어요. 당시만 해도 출신대학별로 파벌이 있었어요. 대학도 제대로 나오지 못한 저를 인정하지 않았어요. 그래도 참 열심히 일했어요. 내가 사업을 할 수 있는 노하우와 경험은 거의 이곳에서 배웠죠." 그는 회사를 나와 86년 그동안 한푼 두푼 모은 돈 5,000만원으로 액세서리 수출사업을 시작했다가 6개월만에 폭삭 망했다. 다시 가스총 외판원으로 나서면서 돈을 모았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사업의 꿈을 접을 수는 없었다.


부자들은 핸디캡을 극복한 사람
"한번 실패했지만 주저하지 않았어요. 그후로 저는 발명과 신제품 개발에 제 운명과 미래를 걸었어요. 이후 신제품을 잇따라 개발하고, 발명특허를 내면서 서서히 운명의 여신은 제 편으로 돌아왔어요. 포기하지않은 댓가였죠." '마쳐야 성공한다'는 가르침이 그의 성공 X파일에 쓰여져 있다. 그 당시 범인들이 휘두르는 칼에 경찰관들이 맞아 다치게 되자 칼이 안 들어가는 조끼를 만들었다. 또 범인들이 수갑을 풀고 도주하는 사건이 빈발하자 풀리지 않는 수갑을 개발해 히트를 쳤다. 그는 92년 '반디펜' 개발로 성공의 길로 들어선다. "우연히 야간에 경찰이 교통위반 스티커를 발부하는 현장을 봤어요. 어깨 사이에 손정등을 끼고 불편하게 스티커를 떼는 것을 보고 어두운 곳에서도 쓸 수 있는 펜을 개발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반디펜은 그렇게 탄생했어요." 볼펜위에 있는 버튼을 누르면 볼펜 불 주위에서 빛이 나와 깜깜한 밤에도 글을 쓸수 있는 반디펜은 해외로 수출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지금까지 25개국에 600억원 가량 수출되었다. 또 열린음악회나 유명 가수들의 공연장에서 사용되는 빛이 나는 막대기(라이트 스틱(Light Stick))를 개발해 방송3사에 공급하고 있고, 이 한 제품만으로 1년에 3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고있다. 그는 꾸준히 연구하고 개발하면서 250개 이상의 특허를 가지고 있다.


가난과 신체장애, 고교중퇴라는 3개의 핸디캡을 모두 이겨내고 김사장은 정상에 서 있다. "아직도 갈길이 멀어요. 정상이라뇨! 말도 안돼요.이제부터 시작이에요. 나에게 주어진 환경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긍정적으로 생각하세요. 그리고 용감하게 도전하세요. 도전하지 않기 때문에 어려워 보일 뿐이지, 도전하고 한걸음씩 나아가면 반드시 성공할 겁니다. 또 평생동안 공부해야 합니다. 공부하지 않고 성공을 기대한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한걸음만 더
필자는 성공한 백만장자 50명에게 '최종학력을 말씀해 주십시오?' 라고 물었다. 그들은 어디까지 정규교육을 받았는지 궁금했다. '대학교까지'가 23명(46%)으로 가장 많았고, '대학원까지'가 10명으로 20%를 나타냈다. 하지만 '고등학교까지'가 11명으로 22%를 차지했고, '중학교까지'도 6명으로 12%를 나타냈다. 필자의 생각과는 달리 의외로 대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들은 남들과 달리 집념과 도전정신으로 부자의 대열에 합류했다.


어느날 김사장은 필자와 한정식 집에서 약주를 하면서 제일 좋아하는 시 하나를 들려주었다. 전부 외우고 있었다. 사회운동가 백기완씨의 '한걸음만 더'라는 제목의 시이다. 이 시는 이렇게 시작해서 이렇게 끝난다. '한걸음만 더, 한걸음만 더, 한걸음만 더, 한걸음만 더, 한걸음만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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