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희망특강 파랑새 - 가천길재단 이길여 회장의 노블리스 오블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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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천길재단 이길여 회장의 성공과 배품의 삶을 돌아본 강연...
뇌과학이 세계최고의 수준인 조장희박사를 스카웃해서 엄청난 지원을 통해서 우리나라의 의료계의 발전에도 기여를 하신분..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부단한 노력과 환자를 돈으로 보는것이 아닌, 가족처럼 사랑을 가지고 대하신듯한데, 네쌍둥이를 대학교 장학금까지 주고, 모두 간호대에 보낸 이야기는 가슴이 뭉클하기까지...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대표적인 분인듯한데, 우리나라에 이런분들이 더욱 많이 계신다면 더욱 살기 좋고, 행복한 나라가 되지 않을까 싶다.

송진구 교수 - 헌신이 만든 기적
헌신이 만든 기적: 꿈, 환자, 인재양성에 헌신

이영권 박사 - 사랑, 나눔
이길여 회장의 사랑, 나눔: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삶
깡촌의 구박받는 소녀에서 의료, 교육, 언론, 문화재단의 경영자로 우뚝 서기까지

가천길재단 이길여 회장의 꿈과 도전의 이야기를 담은 책. 저자의 성장기부터 꿈을 잃지 않고 한계단 한계단 삶의 계단을 올라와 드디어 꿈을 이루기까지 있었던 많은 일들과 그 일들안에서 깨닫게 된 것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간절하게 꿈꿀 것이오, 도전을 한다고 결심했을 때에는 이것이 마치 마지막이 될 것처럼 도전하라는 저자의 말은 그의 삶 전체가 증명하듯이 성공으로 가는 지침이 되었다. 사랑과 봉사의 마음으로 몸 바쳐 환자를 치료하고 더 나아가 전 재산을 바쳐 의료법인을 만든 저자의 모습은 '노블리스 오블리제', 그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전라북도 옥구군 대야면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굴지의 산부인과의사가 되었다. 그러나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두 차례에 걸처 미국과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선진 의료 기술을 배워오고, 의료 취약지에 병원을 세우는 등 가슴으로 치료하는 의사로서의 모법을 보였주었다. 또한 이처럼 의사로서 정점에 도달한 뒤에도 그에 안주하지 않고 후학들을 키워나가기 위해 대학교와 연구소 등을 건립하며 의료, 교육, 언론, 문화재단의 경영자가 되었다. 이처럼 저자의 쉼없는 일생은 그저 편안하게 살아가는 것을 희구하는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랑의 인술을 펼치기 보다는 경제적인 부를 위해 의사의 길을 선택하기 쉬운 요즘, 선한 꿈을 꾸고, 또한 그 꿈을 위해 열정적으로 도전하는 저자의 삶은 여성으로서, 의사로서, 경영자로서 우리 삶의 멘토가 되어 줄 것이다.

저 : 이길여 전 라북도 옥구군 대야면 죽산리에서 태어나서 이리공립여자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의대를 졸업했다. 졸업 후 서울적십자병원에서 수련의로 근무한 뒤 자성의원(慈聖醫院)을 개원하며 의사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1964년부터 1965년까지 미국 메리이머큘리트병원(Mary Immaculate Hospital)에서 인턴 과정을 밟았다. 1965년부터 1968년까지 미국 퀸스종합병원(Queen's Hospital Center)에서 레지던트 과정을 수료했다. 이후 1975년부터 1977년까지 일본 니혼대학교(日本大學校)에서 수학하며 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유학에서 돌아와 ‘이길여 산부인과’를 개원하고 선진 의료 시스템을 도입하였다. 의료 혜택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무료 진료를 실시하고 병원 보증금을 없애는 등의 노력으로 병원 문턱을 낮추었다. 1978년 의료법인 길의료재단을 설립한 뒤 양평ㆍ중앙ㆍ철원길병원 등을 건립하였으며, 환자 중심의 병원 전문화를 위해 여성전문센터, 심장센터, 안ㆍ이비인후과센터, 경원 인천한방병원, 인천 서해 권역 응급의료센터 등을 개원하였다. 또한 우수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1998년 가천의과학대를 설립하였다. 뇌과학연구소와 암ㆍ당뇨연구소를 건립해 연구에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러한 그동안의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 목련장과 무궁화장, 대통령 표창, 대한민국 ‘가장 존경받는 경영인 상’, 사회공헌기업대상, 한국여자의사회 공로상 및 특별기여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가천문화재단, 가천박물관, 새생명찾아주기운동본부, 가천미추홀봉사단 등의 문화·교육·사회봉사 단체를 세워 운영하고 있으며, 길의료재단 이사장, 가천길재단 회장, 경원대학교 총장, 경인일보 회장 등을 맡고 있다

도전하는 사람만이 꿈을 이룬다!
해보지도 않고 처음부터 포기하는 것은
나약하고 비겁한 일이다.


가천길재단 이길여 회장은 1932년 전라북도 옥구군 대야면 죽산리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들을 바라던 어른들의 기대 탓에 태어나던 순간부터 구박을 받으며 자랐지만, 끊임없는 도전 정신으로 노력하여 서울대 의대를 졸업, 굴지의 산부인과 의사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두 차례에 걸쳐 미국과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선진 의료 기술을 배워오고, 의료 취약지에 병원을 세우는 등 가슴으로 치료하는 의사로서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또한 이처럼 의사로서 정점에 도달한 뒤에도 그에 안주하지 않고 후학들을 키워나가기 위해 대학교와 연구소 등을 건립하며 의료, 교육, 언론, 문화재단의 경영자로 우뚝 섰다.
이처럼 이길여 회장의 쉼 없는 일생은 그저 편안하게 살아가는 것을 희구하는 현대의 젊은 세대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랑의 인술을 펼치기보다는 경제적인 부를 위해 의사의 길을 선택하기 쉬운 요즘, 사랑과 봉사의 마음으로 몸 바쳐 환자를 치료하고, 더 나아가 전 재산을 바쳐 의료법인을 만든 그의 족적은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모범적인 전형이 되고 있다.?이처럼 선한 꿈을 꾸고 또한 꿈을 향해 끊임없이 열정적으로 도전하는 이길여 회장의 삶은?여성으로서, 의사로서, 경영자로서, 또 이 시대의 어른으로서 우리 인생을 빛나게 하는 멘토가 되어줄 것이다.

가능성은 꿈꾸는 사람의 몫이다
_ 지는 해를 바라보며 떠오르는 해를 생각해라

여섯 살 때까지 말도 제대로 못해 주위 사람의 걱정을 샀지만 열 아들 부럽지 않은 딸이 되기 위해 이를 악물고 공부해 한 번도 1등을 놓쳐본 적이 없는 아이, 가당치도 않다는 사람들의 편견을 물리치고 당당히 서울대 의대에 입학한 시골 소녀, 의대를 졸업하고 굴지의 산부인과 의사가 된 뒤에도 보다 나은 선진 의료 기술과 시스템을 배우기 위해 미국과 일본 유학길에 오른 사람, 그리고 그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정성껏 환자를 돌보고 환자들을 위해 병원을 전문화시키는 한편 훌륭한 인재를 키우기 위해 학교와 연구소를 건립해 의료 등대가 되어주는 사람.
이길여 회장의 이력을 살펴보면 이렇듯 그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목표를 세우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사람이다. 그의 사전에 ‘실패’와 ‘안 된다’는 말은 없다. 남들이 모두 어림없다고 고개 저을 때 지레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열정적으로 도전하고 마침내 꿈을 이루어낸다. 이러한 이길여 회장의 삶의 자세는 그것이 바로 세상이 만들어놓은 한계와 틀을 벗어나 자신 안에 숨겨진 가능성의 범위를 넓히는 길이라는 것을, 인생은 주어진 재능과 배경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와 노력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그저 정해진 틀 안에서 편안하게 살아가는 것을 희구하는 현대의 젊은 세대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가슴으로 치료하는 의사가 되어라
_ 의사에게 병 고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건 없다

이처럼 끊임없는 도전 정신으로 늘 새로운 것을 향해 거세게 나아가는 이길여 회장이지만 그에게는 삶에 있어 변치 않는 중요한 원칙이 있다. 바로 의사로서 ‘첫째도 봉사, 둘째도 봉사, 셋째도 봉사’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정성을 다해 환자를 돌봐야 한다는 점이다. 그에게 환자는 조국이고 신념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환자들을 기다리게 할 수는 없었기에 이길여 산부인과 시절 병원의 자랑거리이던 엘리베이터 한 번 타지 못하고,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한 채 환자들이 부르면 언제든 달려갔다. 뿐만 아니라 먹고살기 급급해 기본적인 의료 지식마저 갖추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자궁암 무료 검진과 교육은 물론 무의촌 진료를 실행해 나갔다.
실제로 그의 이러한 환자들에 대한 사랑과 열정은 ‘가슴에 품는 청진기’로 나타나기도 했다. 이길여 회장은 가천의대 졸업식에서 제자들에게 청진기를 하나씩 걸어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진료시 청진기의 차가운 금속성 때문에 놀라는 환자들을 배려하여 늘 자신의 품속에 품어 따뜻하게 데워진 청진기를 사용했던, 사소한 것 하나에서부터 환자를 생각하는 마음이 제자들에게도 전해지기를 바라서이다.
사랑의 인술을 펼치기보다는 경제적인 부를 위해 의사의 길을 선택하기 쉬운 요즘, 이처럼 사랑과 봉사의 마음으로 몸 바쳐 환자를 치료하는 그의 모습에서 우리는 ‘참 사람’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사람이 희망이고, 사랑이 자산이다
_ 머리를 쓰는 인재가 있어야 세상이 열린다

1998년 가천의과학대가 문을 열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적잖이 놀랐다. 입학생 전원에게 6년 동안 등록금 전액 면제, 기숙사 무료 제공, 장학금 추가 제공 등의 다양한 혜택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이는 이길여 회장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가난 때문에 의대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우수한 학생들에게 기회를 준다면, 훗날 이들이 따뜻한 가슴으로 인술을 베푸는 의사가 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또한 조장희 박사와 김성진 박사 등 세계적인 과학자로 인정받고 있는 우수한 석학들을 영입하고 최첨단 장비를 갖춘 뇌과학연구소와 암?당뇨연구원을 건립해 연구 지원에 힘쓰고 있다. 이 두 연구 기관은 무엇을 만들어 파는 곳이 아니라 오로지 연구에만 몰두하고 연구 성과만이 나오는 곳이다.
이처럼 이길여 회장이 거액을 들여 학교와 연구소를 설립해 지원하는 것은 훌륭한 인재가 있어야 수만 명의 사람이 편안하고 행복해질 수 있다는 믿음에서다. 이제 세상은 지식과 정보, 두뇌를 앞세우는 시대가 되었기에, 사람만이 희망이고 그 사람을 지원하는 일이 가장 큰 자산이라는 것이다.


나누면 커지고, 움켜쥐면 사라진다
_ 노블레스 오블리제의 모범적인 전형

또한 이러한 이길여 회장의 부의 사회 환원적인 걸음은 1978년 전 재산을 바쳐 의료법인을 설립하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 종합병원을 건립하기 위해서는 먼저 의료법인을 설립해야 했는데, 이는 개인의 재산을 사회와 국가에 헌납하는 것을 의미했기에 많은 개인 ‘병원’이 ‘의원’으로 이름을 바꾸는 것도 불사하던 시절의 일이다.
이후 이길여 회장은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의료 환경이 열악한 양평과 철원, 백령도에 잇따라 길병원을 개원하는 한편, 의료 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인 공단 근로자에게도 24시간 병원 문을 개방해 진료의 기회를 넓히고, 지속적으로 해외 의료 봉사도 진행해오고 있다. 이와 같이 가진 것을 움켜쥐지 않고 늘 베푸는 삶을 살아온 그의 족적은 일신의 영달만을 위해 부를 축적하고 나눌 줄 모르는 많은 현대인에게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모범적인 전형으로서 이 시대의 새로운 역할 모델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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